요즘 사람들은 하루 아니 1분도 폰으로 대변되는 디지털에서

떨어져 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자잘한 게임부터 쌍방 단체

카톡, 사진 영상 뉴스 오락 등등 그 모든 게 폰에 들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세상입니다

 

지하철을 타 보면 10에 9는 모두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습니다. 무슨 사연이 그리 급박한지 앉으나 서나 오로지 폰만

쳐다봅니다. 그런데 정작 폰으로 얻어진 지식이나 영상 정보 등은

기억에 남는 것이 거의 전무할 지경입니다.  예전에 독서를 통해 

얻어지고 기억되던 정보에 비해 허무할 정도로 쉽게 사라져 갑

니다. 물론 저의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고 오히려 그런 영상이 더

잘 머리에 저장 된다는 분도 당연 있겠지요! 

 

현대인들은 그걸 당연히 여기는듯해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2019

년에 얼핏 보았던 이 글을 잊지 못할 뿐 아니라 될수록 원문을 공

개 해서 내어 놓고 싶은 맘이 커서 아래에 올려 봅니다. 과연 이 시

대에 디지털은 무엇이며 인간에게 어떤 결과를 선물하는지~ 

 

특히 어린 손자 손녀를 두신 분들께서는 꼭 한번 아래 글을 보시고

무엇이 진정 미래 아이들을 위하는 것인지를 숙고해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어느 놀이학교. 대기업 오너의 손주들이 많이 다닌다는 이곳은
뜻밖에도 첨단 건물이 아닌 2층짜리 낡은 주택에 있었다. 넓은 잔디 정원 한쪽에 모래
밭과 그네가, 미니 사육장에 토끼와 강아지가 있었다. 

독립서점처럼 꾸며진 작은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언제든 그림책을 읽을 수 있게 했다. 
디지털 접촉을 최소화한다는 원칙도 있었다. 30대 이상이라면 어릴 때 쉽게 누렸던 환경
이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월 200만 원 안팎을 내야 다닐 수 있는 곳이 됐다.

이곳을 갑자기 떠올린 건 어린 시절 스크린을 많이 접할수록 뇌 발달 속도가 늦어진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를 접하고 나서다. 미국 신시내티 어린이병원 연구팀이 3~5세 아이들의
뇌를 자기 공명 영상(MRI)으로 분석했더니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많이 볼수록 중추신경
계에서 각종 정보를 전달하는 백질(white matter)의 질(質)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생각과 감정 표현하기, 사물에 빠르게 이름 붙이기 등 인지 능력이 낮게 나왔다.
그래서인지 최첨단 디지털 기술의 본산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테크 기업 임직원들은 역
설 적으로 자녀에게만큼은 스크린을 허용하지 않는 ‘노 스크린(no screen)’ 교육을 고수한다.

자녀들은 자연과 놀이를 강조하는 발도르프 학교에 보내고 보모에게는 스마트폰 사용 금지
약속을 받아낸다. 심지어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자녀들에게 아이패드를 아예 안 줬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식탁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하고 취침 전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도 제한했다.


디지털 기기가 처음 등장했을 무렵 디지털을 접하는 사람이 그러지 못하는 사람보다 얻는
게 많아지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디지털 격차)를 우려했지만 지금은 반대가 됐다.

오히려 소득·교육 수준이 높은 가구일수록 디지털 기기를 적게 쓰고 자녀에게 창의력과 깊이
있는 사고를 배양해 줘서 지적 자산을 대물림할 수 있다는 것. 디지털 과잉 시대에 걸맞은
‘신(新) 디지털 디바이드’인 셈이다.

실제로 미국 보건정책 연구단체인 카이저 가족재단의 조사 결과 부모 최종 학력이 고졸 이하인
경우 디지털 기기를 접하는 시간이 대졸 이상인 경우보다 하루 평균 90분 많았다. 한국에서도
저소득층 학생의 디지털 중독 위험이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사람과의 접촉이 사치재가 됐다(Human Contact Is Now a Luxury Good)’는 올 초 뉴욕타임스
기사가 생각난다. 빈자(貧者)의 삶에 스크린이 더 많이 들어오고 부자의 삶에선 스크린이 사라
진다.

패스트푸드처럼 강하고 빠른 자극이 아닌, 오감을 풍부하게 하는 느린 자극을 받아 인지 정서
등의 발달 수준이 높은 아이가 사회적으로 더 성취할 확률이 크다. 이들은 무인 자판기에 줄
서서 주문해 허겁지겁 밥 먹기보다는 인간 웨이터가 서빙하는 식당에서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
고, 사무실에선 스마트폰을 안달복달 확인 안 해도 되는 삶을 살 개연성이 높다.

일부러 디지털 기기를 많이 보여주려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자녀를 보살필 마음의 여유, 체력의
여유, 시간의 여유가 없으면 디지털 기기를 내어주곤 한다. 전문가들은 사람이나 실생활(real world)
로부터의 자극을 늘려야 발달 수준을 높일 수 있다며 아이 생각을 들어주고 아이에게 말을 걸며
사소한 눈 맞춤을 늘리라고 한다. ]

( 디지털 뉴스 김유영 차장, 2019년) 

 

^  ^ 

 

 

물론 이 글에 반론도 있을 것이고 실제 실리콘 밸리에 가서 그곳 대기업 오너들이

정말 자녀들에게 디지털 기기 사용을 금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만일 위 글을 쓴 이의 정보가 틀리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지금과 같은 디지털 과잉이

특히 어린이들에게 매우 좋지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잖아도 팍팍하고 재미없는 세상에 이마저도 금하거나 아니면 사용을 제한 한다면

무슨 낙으로 세상을 살아가란 말이요?  이렇게 즉각 반론이 나올 수는 있을것이나 이

것은 어디까지나 어른이 아닌 어린이 들에게 촛점이 맞춰져 있음을 기억하시면 좋겠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니 어떤 자세를 취할지도 각 개인의 자유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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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몇 정거장을 지나

거의 내릴때 쯤 전철 바닥에 작은 메뚜기 한 마리가 앉아

빙빙 돌며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었다.  제 딴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까? 나름 판단을 하는 것 같았다.

 

한 1분 후면 나도 내려야 하는데, 저 메뚜기를 잡아서 전철역을

빠져나가 풀밭에 날려 주고 싶긴 한데,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전철 바닥에 꾸부리고 앉아 메뚜기를 잡는다는게 좀체 내키질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오가는 발길에 밟혀 꼼짝없이 죽을

운명의 메뚜기가 안쓰럽기도 했다. 필경 저 메뚜기는 누군가의 옷

깃에 붙어 멋 모르고 여기까지 온 게 분명했다

 

잠시의 망설임 끝에 " 에잇 이 정도의 용기도 없어서야 어떻게 하

는가?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고 사실 그건 용기랄것 까지도 없는

일이긴 하지만, 설령 바닥에 주저앉아 메뚜기를 잡은들 그 누가 관심

있게 보기나 할 일인가? ㅎㅎ

 

그러나 도망가려는 메뚜기를 온전히 잘 잡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어차례 숨바꼭질을 한 끝에 간신히 녀석을 손에 잡는 데 성공했으

나 곧 이어 메뚜기는 한쪽 다리를 내 손에 떨구며 휙 하고 다시 날아

갔다.

 

다리가 저리 쉽게 떨어지는 걸로 봐서 이건 필시 적에게 잡혔을 때

다리 하나쯤은 버려도 상관없는 탈출 방편인 거 같고 살아가는데 지

장이 없거나 시간이 지나면 다리가 다시 재생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날아간 메뚜기가 출입문 앞에 앉은 걸 보고 전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려 메뚜기 뒤에 발을 살짝 가져다 대니 역시나 문이 열리자 밖으

로 휙 날아갔다. 나는 훨씬 마음 편하게 이번에는 메뚜기를 잡을 수 있

었다. 아무도 전철 밖에서는 나의 메뚜기 포획을 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손에 잡힌 메뚜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흡사 강아지를 안고

다니는 사람들을 연상하며 개찰구를 지나고 에스컬레이터를 두 번

거쳐서 드디어 밖으로 나왔다. 입구 밖에는 바로 풀밭이 있었다.

 

햇볕이 쨍하게 비치는 초가을 풀밭을 향해 메뚜기를 날리니 녀석은

이때다 싶게 앞으로 날아 올라 풀숲에 떨어졌다. 그리고 금세 풀 속을

헤집고 들어간다.

 

다리 한쪽이 떨어진 저 메뚜기는 앞으로 잘 살아갈까?

 

예전에는 가을 벼가 누렇게 익으면 논두렁을 걸을 때 메뚜기가 양 옆

으로 교차해서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많이 날아올랐다. 메뚜기를 잡

아 솥에 넣고 볶아 약간의 소금을 쳐서 먹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메뚜

기를 잡아먹기까지 했던 내가 이제 한 마리의 메뚜기를 살려 본다고

이런 일을 하다니! 참! 

 

세월이 흘렀네, 생명을 좀 귀하게 여기게 되었나 보다~등 뭐라고 설명

은 할 수 있겠지만,  이건 단지 어쩌다 한번 우연찮게 일어난 일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쩌면 인간은 누구라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거! 

 

그저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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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이 오는 소리
다시 들으면
꽃잎이 피는 소리
꽃잎이 지는 소리


가로수에 나뭇잎은 무성해도
우리들의 마음엔 낙엽이 지고
쓸쓸한 거리를 지나노라면
어데선가 부르는 듯 당신을 생각뿐

*낙엽을 밟는 소리 다시 들으면
사랑이 오는 소리 사랑이 가는 소리
남겨준 한마디가 또다시 생각나
그리움에 젖어도 낙엽은 지고

사랑을 할 때면 그 누구라도
쓸쓸한 거리에서 만나고 싶은 것

  ^

 가을이 온다고 백 마디, 천 마디의 말을 할 수는 있다

 또 가을이 온다고 백 줄, 천 줄의 글을 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것보다 가을이 왔음을 알리고 가슴에
그 느낌을 뭉클하게 전달해주는 건 이 노래 이상이 없
음을 나는 실감한다. 물론 가을을 알리는 노래가 수도
없이 많고 우리 모두는 제 각각 가슴을 울리는 노래가 
다 있을것이다! 

 
패티김의 비교적 초기 시절의 목소리로 생각되는 이
노래~  깔끔하고 신선한 느낌이다. 무릇 수많은 유명
가수들이 나이가 들고 연륜이 쌓일수록 목소리에 기름
이 돌고 기교가 붙어서 초기의 그 순수한 맛이 사라지기
일쑤지만 말이다.

 
 꽃잎이 지는 소리, 피는 소리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 밟는 소리~
사랑이 오는 소리~ 가는 소리!

 
그렇다 그것이 바로 9월이고 가을의 시작이고 결실의
시작이고 동시에 허전함도 덤으로 따라오는 세상의
이치다.

 어느덧 매미 소리는 쓰르라미 소리로 대치되기 시작했다.
가을 풀벌레가 왜 요란하게 밤이면 더 울어 대는지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풀벌레가 여름에도 물론 울기는 하지만
가을이 시작되면 유독 더 심해진다. 

 
창문을 열고 풀벌레 소리를 반주삼아  초 가을의 밤공기를
깊이 들어마신다. 시원하다~ 편하다~ 그리고 평화롭다.

 이렇게 가을이 오는 건가? 그래 가을이 오는 거냐고?

사실 가을은 8월 말 處暑(처서) 정도면 꽤나 우리 곁에 다가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들판의 익어가는 벼에게 물어볼까? 저녁 무렵 날아다니는
잠자리에게 물어볼까? 붉게 피어나는 백일홍에게 물어볼까?
그래 너희들도 가을을 아느냐고? 느끼느냐고!

 그 무엇에게 물어도 대답은 없겠지~
그건 순전히 대 자연의 이치일 뿐이니까~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을 보려고 나서는 이 누구일까?
코스모스 향기를 가슴 깊이 마셔보는 이 누구일까?

 진득한 능이 버섯의 香처럼 이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

 

참고로 1961년에 영화로 제작되었던 Come September 라는

곡이 있다. 이 멜로디도 매우 익숙하여 아련한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이도 많을것이다. 빌리본악단의 연주입니다

 

 

 

찌는 듯한 여름엔 휴가를 안 갔습니다. 아니 못 갔습니다.

뭐가 바빠서가 아닙니다. 일이 많아서도 아닙니다. 가 봤자

별 수 없을 테고, 노 나 안 노나 마찬가지여서 그랬습니다.

 

그리고 8월 하순에 시원해진 틈을 타서 눌루랄랄 ~ 갔습니다

그런데, 빡세게 며칠 뛰어다녔더니 이제 힘이 부치나 봅니다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고 기운도 없고, 그런데도 자판 앞에

앉아 이렇게 글을 씁니다.

 

 

 

 

8.15일의 용평은 엄청 서늘했는데, 열흘 정도 지난 26일

이번은 아닙니다. 두꺼운 옷을 여럿 준비해 갔는데,

하나도 입지를 못했습니다. 가방만 무겁고 싸 들고간

두꺼운 옷 몽땅 도로 들고 왔으니

본전도 못 뽑았구먼요!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아주 아주 많이 웃고 떠들고 죽도록 농담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고 심한 욕을 해도 되고 그런 모임이었습니다.

 

이름하여 삼금회, 고등학교 동창들이었걸랑요!

 

아마도 2년 치 웃음, 아니 3년 치 웃음은 너끈히 해 치웠습니다.

아! 그러니 이런 모임은 빠지지 말아야지요! 한번 가서 3년 치면

5번 이면 15년 치 웃음 아닙니까? 우리 나이 되면 평소에 정말

웃을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노세 노세 젊어 노세'는 진리 중 진리입니다. 세상엔 진리의 말씀들이

아주 많지만, 진리면 뭐 합니까? 인생을 행복하게 해야 가치가 살아

나는 거지~

 

 

르꼼떼 블루에서 밤에 본 은하수~

 

저두 이 멋진 장면을 놓쳤지만 친구 송정수가 이렇게

붙잡아 두었군요!

 

 

횡계리 대관령 '황태회관'의 정식은 참 푸짐하게 먹음직스럽지요.

이 식사는 황태회관의 女사장님과 동창인 신현국이 용평

올 때마다 단독 스폰을 합니다. 벌써 몇 번째이니 정말 고마운

친구입니다

 

 

여기가 "르 꼼떼 블루"입니다

약 30여 채가 있지요

 

버치힐의 아침^

 

 

 

 

 

 

 

이제는 한 달에 한번 잘하면 두 번 겨우 운동이라고 합니다만,

예전에 감히 저와 붙어 볼 엄두도 못 내던 친구들이 이젠 맞짱을

뜨는 건 물론 저만치 추월해 가는 중입니다. 이름하여 실력의 하향

평준화~ 허허.. 뭐 그래도,

 

즐겁게 져 줍니다. 아니 져 주는 게 아니라 제 실력이 그렇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허나 그닥 아무런 화도 나지 않습니다.

 

제가 道人이 돼서 그런 게 아니라, 사진, 글쓰기 등에 주력하다

보니 운동은 이제 예전처럼 아등바등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젠 폼도 조금 엉성해졌지요? 제 폼입니다

 

 

팀당 1만원 내고 버디 하면 공 한 Box 상으로 받는 홀인데

아슬아슬하게 제 공이 안 들어갈때 바로 그 순간의 표정과

모션들입니다 ㅎㅎ 참 기막힌 순간 포착입니다!

 

두 손을 번쩍 든 친구가 이번에도 역시 펜션 3채와 일부 교통편

을 무상 제공했고 저렴한 부킹까지 일체 해결한 용평의 사나이~

이곳 르꼼떼 블루를 운영하는 원수연 Ace 건설 회장입니다

 

 

이 친구 역시 이번 행사에 영상과 사진을 모두 해결한

프로 사진 작가 송정수 친구입니다

 

 

오후 시간에 안반데기라고 근처 고랭지 배추 재배지를 올라가 봅니다

많이들 보신 풍광이지요?

 

 

저는 이번에 처음 가 봤습니다. 배추, 양배추가 정말 실하게

기가 막히게 잘 크고 있더군요! 옛날 화전민들이 살던 곳이라는데

저기서 배추 사다가 가을 김장 담그면 정말 맛이 좋겠다~~ 생각이

드네요!

 

잠깐 여기서 기념 촬영을 하나 합니다. 다들 美男에다가

건강한 모습이어서 참 보기 좋습니다. 아! 방역? 사진 찍을

때만 아주 잠시 마스크를 벗었답니다

 

 

이런 포즈도 취해 보고~

 

 

이런 모션도 잡아 봅니다^

그 옛날 학창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지요~

 

 

그런데 이곳 배추와 양배추가 생각보다 매우 품질이 우수해 보입니다

 

많은 친구들이 다양하게 단독 사진을 찍었지만,

역시 이곳엔 제 사진만 하나 올려 봅니다.

작은 똑딱이 카메라 하나 들고 갔습니다

 

 

아~ 이것도 우리 송정수 작가의 지시대로 포즈를 취해 본

것입니다. 어때요! 비상하는 듯한 나름 자세가 나오지요?

 

 

황태 회관 앞에서~ 앞 가운데 친구가 신현국,그리고

이곳 사장이신 친구의 초등 동창

 

 

펜션에서 저녁 두 끼를 해결하다 보니 정말 개개인의 특성이 살짝

 드러나는듯 하네요! 먹을 것 준비부터 요리까지 궂은일 도맡아

하는 총무 윤병회와 우직한 김진항 친구는 정말 타의 모범이 되어

칭찬을 많이 많이 하고 싶네요!

 

그 외에도 칭찬해 마땅한 친구들은 많습니다.

 

멀리 경주에서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올라온 이승지 친구, 관절

영양제를 회원 모두에게 챙겨준 박기배 삼금회 회장, 언제나 깔라망시를

준비하고 즙을 내서 홍초에 소주를 신묘한 비율로 배합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신현국 친구, 나머지 친구들은 열심히 참석하고 모임이

성사되도록 힘을 보태는 보석 같은 존재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회동에는 여건상 불참 했지만, 그 누구보다 훌륭한 3명의 친구가

더 있습니다.

 

저는 뭐 이번엔 술 잘 깨도록 하는 해독제와 피로 회복을 약간

해주는 정도만 신경 썼습니다. ㅎㅎ

 

삼금회 친구들은 아직 이 나이에도 유수한 기업체를 운영하는

현역이 상당수 입니다. 건강 유지하며 이렇게 한 번씩 모여 쉴

수 있으니 참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저 자신도 먹을 것 준비하고 요리하고 이런데는 소질이 많이

부족합니다. 이번 모임에서 보니 참 배울게 많았습니다. 대신 설거지

라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아무리 나이를 먹어 간다 하지만 아주 약간이라도 봉사하는 삶은

되어야겠다고 말입니다.

 

 

 

노는 건 될수록 젊을 때 해야 하고 베풂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무관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구먼요!

 

누가 뭐래도 삼금회 화이팅! 화이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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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잠화라고도 하고 비비추라고도 하고 모양은 조금 다르지만

거의 비슷해서 혼동이 되기도 하는 가냘픈 꽃!!

 

뭐 보통은 좀 통통한 게 옥잠, 약간 갸름한 게 비비추~ 한데 비비추

는 그 종류가 어마하게 많더군요! 거기다 부레 옥잠이라고 있는데

이건 그냥 옥잠이나 비비추와는 또 완연히 다른 모양입니다.

 

어쨌거나 이 세 꽃들은 보기에 아주 가냘퍼 보인다는 게 특징입니다

여름의 끝, 가을 초입에 활짝 피어 꽃 가뭄을 해소해 주는 고마운 녀

석들이지요!

 

부레 옥잠 몇 송이 올리면서 옥잠화에 대한 전설이 괘나 그럴싸해서

그것도 함께 올려 보겠습니다. 뭐 어차피 꽃 하나 알고 가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이건 부레옥잠이라는 꽃입니다. 주로 물속에서 자라며 꽃이

보기에 정말 야들야들해 보입니다. 가까이 가서 맡아보면 향이

은은하니 참 좋지요

 

 

 

일요일 낮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하다가, 에라~ 미리내 성지 입구

에 가서 새우 매운탕이나 먹자~ 해서 오후 1시 다 되어 출발했습니다.

30분 이내에 도착하니 시간은 뭐 충분합니다. 이제 가을 풍광도 슬슬

시작 되었고 잘하면 실한 코스모스도 보고, 들판에 익어가는 벼도 볼 수

있고 근처 노곡리 포도 농장에도 들를 수 있으니 1석 3-4조 쯤은 되지

않겠습니까?

 

미리내 입구의 '물레방아' 집은 늘 가는 곳입니다. 새우 매운탕 小 짜

를 시키고 점심을 먹는데, 어째 이전의 탕 맛이 덜 나네요! 거기다 노란

강황 가루를 넣고 지은 밥은 왠지 새우 매운탕과는 조합이 덜 맞는지 그

냥 흰쌀밥을 찰지게 지은 것보다 못 한듯 했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나온 앞마당 쪽 끝에 이렇게 옥잠화를 심어 놓은

겁니다. 마치 물 위의 파란 잎들이 고기의 부레처럼 보여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옥잠화에 얽힌 설화를 적어 보겠습니다.

 

 

[옛날 중국의 석주(石州)라는 곳에 한 목동이 살았다. 첩첩산중 시골 마을에서
소를 키우며 사는 그는 무료함을 달래려고 늘 피리를 불었다. 피리 부는 솜씨는
일취월장하여 어느덧 달인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그의 피리 소리에 취해
소와 산 짐승, 새 들도 귀를 기울이고 춤을 추었다. 그의 피리 소리는 산으로
들로 강으로 퍼져 나갔고 마침내 하늘에까지 울려 퍼졌다.

 

보름달이 휘영청 뜬 어느 여름날 밤 목동은 여느 때처럼 뒷산에 올라 피리를
불었다. 그때 문득 보라색 구름이 갈라지면서 영롱한 빛이 감돌더니 하늘로
부터 선녀가 내려왔다. 선녀는 피리 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직접 듣고 싶어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목동은 자신의 피리 솜씨를 알아주는 선녀를 위해 정성을 다해 혼신(渾身)의
연주를 했다. 피리소리에 취한 선녀는 새벽에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늘로 올라가면서 선녀는 고마움의 정표(情表)로 머리에 꽂은 비녀를 뽑아
목동에게 주었다. 그러나 선녀의 황홀한 자태에 눈이 부신 목동은 비녀를 땅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비녀가 떨어져 깨진 자리에는 비녀를 빼닮은 꽃이 피었다.


* 비녀는 여자의 쪽 머리가 풀어지지 않도록 꽂는 장식품이다. 그 모양이 남근
처럼 생긴 비녀는 예전에는 기혼녀만이 꽂을 자격이 있었다. 따라서 비녀는

여성의 지아비에 대한 사랑과 정절을 상징한다. 여성이 비녀를 잃거나 빼서

주면 정절을 포기하거나 몸과 마음을 허락하는 징표(徵表)로 여겼다.

 

남자가 상투를 튼 후 머리를 고정시키기 위해 꽂는 비녀 비슷한 장식물을 동곳
이라 한다. 삼국지연의에는 呂布가 중국의 4대 미인 초선(貂蟬)에게 사랑을 맹세
하면서 그 징표로 동곳을 빼 주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선녀는 목동에게 연정(戀情)을 품은 듯하다. 옥잠화는 선녀와 인간 사이의
이룰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을 대신해 핀다.

 

옥잠화의 꽃말은 추억, 기다림, 아쉬움 등이다.


*27세의 나이로 요절한 조선의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 ~ 1589)은
비녀를 노래한 애틋한 시를 남겼다.

 

 

妾有黃金釵 (첩 유황 금차) 나에게 황금 비녀 있으니
嫁時爲首飾 (가시 위수식) 시집올 때 머리에 꽂았던 것이라오.
今日贈君行 (금일증군행) 오늘 길 떠나시는 임께 드리나니
千里長相憶 (천리장상억) 천리 먼 길에서도 오래도록 기억하소서.]

 

--<이상 水月 블로그에서>--

 

 

 

옥잠과 거의 비슷한 비비추라는 꽃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작년 오산 물향기

수목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좀 옥비녀 같은 느낌이 드시나요?

 

 

그러고 보니 저 簪 (잠)이라는 한자가 '비녀 잠'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옥잠은 [옥으로 만든 비녀] 란 뜻이 되겠지요!

 

매번 가는 곳이지만 사실 이 시기엔 그다지 볼 것은 없는 때입니다. 그래도

미리내 성지엔 많은 차들도 북적였습니다. 그런데 올핸 들어가는 입구부터

코스모스가 전혀 안 보입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아내는 성물 방으로 들어가고 저는 이리저리 카메라를 메고 돌아다녔으나

렌즈에 잡힐만한 무엇이 별로 없었지요

 

입구의 성당과 하늘의 구름 한 조각만 찍어 봅니다

 

 

그리고 입구의 이 건물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최근에 이렇게

성체 조배실을 조성했다는 기념비가 있더군요!

 

분당 마태오 성당은 제가 한참 전 수 년간 발을 담그던 곳이라

매우 반가웠지요!

 

 

 

그리고 지난 태풍에 떨어졌는지 성물에 ㅓ 자가 날아간 듯

합니다. 허긴 작년 홍수 때도 이곳 미리내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노곡마을 지나면서 청포도 약간을 농장에서 구입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왜 코스모스가 아직 길가에 보이지도 않는지

좀 이상합니다. 이러다 짠 하고 나타나면 좋겠지만, 어쩌면

아닐지도 몰라 좀 이쉬울라 하네요^

 

그저 이렇게 간략히 휴일을 보내기도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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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정으로 월정사를 기획한 건 순전히 아내였다.

새벽 일찍 출발해서 아침 식사는 용평 횡계리 황태회관에서

해장국을 먹고, 월정사를 들렀다,한국 자생식물원을 보고

근처에서 산채밥을 먹고 등등 ~

 

그렇게 딸과의 추억 하나 더 쌓기 여행이

시작되었다.

 

'황태회관'은 용평에서도 제일 유명한 식당이다. 거긴 내 친구의 초등

여동창이 오래전부터 터를 잡은 곳이라는데, 역시나 아침 시간임에도

손님이 꽤나 많았다. 코로나 시국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업이다.

 

그러나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자 엄청 추웠다. 원체 우리 동네가 아직

더위가 심한지라 깜빡 용평의 기온을 생각을 못한 거다. 아! 겉옷을

하나 챙겨 오는 건데~ 아내는 근처 어디서 얇은 잠바를 하나 사자고

했지만, 밥을 먹고 나오니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여기까지 온 김에 역시 친구가 운영하는 대단위 펜션 ' 르꼼떼 블루'

를 잠시 차량으로 휙 둘러 보았다. 용평에서 30여 채가 넘는 2층 단독

주택형 펜션은 아마도 거의 없지 싶다. 물론 친구는 유명 건설 업체를

운영하니 이건 순전히 부업겸 휴식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월정사는 입구부터 차가 꽉 밀린다. 입장료 징수 때문에

그런 것인데, 차 1대당 운전자 포함 1 만원을 받으니 3인이면 2만 원을

내야 한다. 나는 경로 우대로 면제를 받았다. 근데 여타 국공립 공원에

비해 좀 비싸지 않나?

 

허긴 입장료로 경내 시설물 관리도 잘하면 좋을 것이다.

재작년 나가사키의 하우스 텐보스를 가 보니 1인당 입장료가 대략

8만 원쯤 했다. 4인 가족이면 30만 원이 넘는 입장료를 내야 했다. 그에

비하면 아직 매우 저렴, 고마운 일이다.

 

이번에 좀 자세히 보니 월정사는 그리 큰 사찰이 아니었다. 주변 상원사

등을 제외한 월정사 경내 자체는 매우 협소한 편이다. 이 날 방문객은

엄청 많았다.

 

 

 

우선 기와 선이 멋져 몇 장 찍어 본다. 적광전 뒤의 소나무 숲도

매우 출중하다. 딸도 그걸 얘기했다.

 

"저 너머 숲이 아주 멋지다고~"

 

 

9층 8각석탑을 정면에서 본 적광전 모습이다.

 

석탑 앞에 저렇게 구도하는 석상이 있는 줄도 처음 알았다

 

우린 위쪽 지장암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실은 위쪽으로

계곡을 넘어 다리를 건너 숲으로 연결되는 길을 따라 간

것인데,

 

지장암 입구에 걸려있는 글씨!

 

그렇지~ 세상에 태어나 뭔가 기여한 삶을 살고 있나?

 

 

지장암 올라가는 오솔길을 걷는데 갑자기 다람쥐가 나타났다.

이 녀석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 손짓을 하면 곧잘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처음 보는 일이었다.

 

다람쥐도 깊은 사찰 안에 살면 도를 깨우쳐서 일까?

 

한 부부가 지장암 숲길을 걸어 들어가고 있다

 

지장암을 돌아보고 나가는 아내와 딸~

 

역시 지장암으로 올라가는 스님 일행

 

 

 

우리 각자의 삶은 그 걸음 스타일 만큼이나 다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쪽 상원사는 너무 멀어 아예 처음부터 예정에 없었고 다시

월정사 경내로 내려왔다

 

찻집 근처에 이르자 호랑나비가~

 

 

전나무 숲을 걷는데 역시나 다람쥐가 또 가까이 다가온다

아이들은 손에 해바라기 씨를 몇 개 들고 열심히 다람쥐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다람쥐가 도를 깨우쳐

그런 게 아니고!

 

인간이나 다람쥐나 먹을것 앞에 약해 지기는 매 한 가지인 듯싶다

道는 무슨! 그러면 그렇지~

 

그러나 깊은 산중의 다람쥐는 도회지 근처 숲의 다람쥐에 비해

매우 순수해 보였다

 

 

이날 전나무 숲은 인파가 빼곡했다. 사실 이런 곳은

이른 새벽에 호젓이 맨발로 혼자 걸어야 제맛이다

 

 

 

 

전나무 숲길을 되돌아 올라가니 월정사 입구에 정말

수려한 소나무가 보인다. 속리산 정 이품 소나무와 체형이

비슷해 보인다.

 

 

둔내 부근부터 쭈욱 보아 온 거지만 정말 강원도엔 소나무가

쭉쭉 빵빵 참으로 빼곡하고 멋있다. 올핸 병충해도 그다지 없는 것

같아 푸르디푸르다. 월정사 주변은 말할 것도 없이 더 멋지다

 

강원도는 우리 국토의 보배 중의 보배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좋은 곳에 소나무 향이 그윽한 이런 곳에 왜? 사람들이 와서

더 많이 살지 않을까?

 

옆에서 딸이 한마디 거든다

 

" 산수만 좋으면 뭐해요~ 먹고 살 뭐가 있어야지요~ "

 

그렇지! 결론은 먹고 사는 거지~

 

 

 

 

' 산들 산채' 식당으로 찾아 들어 우선 도토리묵과 감자전을

주문한 다음 산채밥 2인 분을 해서 3명이 나눠 먹었는데, 이 동네는

온통 홍당무 천지 답게 도토리 묵에 양념으로 섞여 나온 홍당무가

아주 맛이 신선하고 좋았다

 

 

한국 자생 식물원은 딸아이가 중학 시절쯤 왔던 곳인데, 그 사이에

불이 한번 났다 하고 이제 겨우 정비해서 일반에 공개 중이었다

 

 

이런 팻말을 찍어 두긴 하지만 사실 식물원에서

생소하게 처음 본 꽃들은 여간해서는 기억하기

쉽지 않다

 

눈에 좀 띄는 꽃은 이런 것들입니다

 

용담이 이런 꽃인지도 처음이다. 학교 때 학명 외운다고

애쓰던 기억도 나고! Gentiana scabra라고~

[용담 사간탕]이라고 소변에 열이 차고 잘 안 나올 때 또는

염증이 있을 때 사용하는 君약이다!

 

이 꽃 역시 매우 흔하고 눈에 자주 띄는데 ~

 

 

식물원은 나름 꽤 넓어 한참을 둘러봐야 하고

본 건물에는 많은 책들을 구비하고 있어 차나 커피 등을

구입해 마실 수 있는 쉴 공간이 잘 마련되어 있었다

 

자~ 이제 다음은 무얼 하지? 아내가 계획한 건 여기 까지였다

 

어차피 천천히 올라가기로 하고 왔으니 아예 저녁까지 해결하고

가자~ 그러려면 올라가는 길에 봉평은 어때? 해서 이효석 마을로

향하게 되었다.

 

 

^ ^ ^

 

봉평 가는 국도 변도 풍광이 좋기는 매한가지~! 소나무는 여전히

울창했고 국도도 너무 포장이 잘되어 있었다!

 

 

일단 효석 문학공원을 간다. 두어차례 와 봤지만 그때도 주마 간산 격

으로 대충 훑어 본 지라 이번엔 찬찬히 둘러 보자고 다짐을 한다.

 

 

 

1907년 출생의 이효석은 평창 공립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추천으로 경성

제일 고등 보통학교 ( 현 경기고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의

영문과를 졸업한 사실 당대의 수재라 할만한 사람입니다. 인텔리 중의

인텔리로 졸업 후 잠시 총독부에 근무했다가 사직하고 평양의 숭실고 보

경성전문대학의 교수로 재직을 합니다

 

그의 화려한 학교 이력을 굳이 올리는 이유는 이런 것입니다.

즉 수재형 인간이 동시에 서정성이 풍부한 글을 쓴다는 게 현실적

으로는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뇌라는 게 동시 다발적으로

양면에 걸쳐 능하기는 쉽지 않은 까닭인데, 이효석은 그것이 가능한

조금은 특별한 면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효석을 생각할 때마다 항상 아쉬움이 많이 남는 건 그가 너무

일찍 요절을 해서 입니다. 불과 3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니

더구나 33세인 1940년에 부인을 복막염으로 잃고 또한 둘째 아들

마저 동시에 잃었고 불과 2년 후 그 자신마저 결핵성 뇌막염으로 돌아

가셨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선생께서는 어찌 그리 빨리 세상을 따나신거요?

 

 

문학관을 후세에 이리 멋지게 남긴 건 아무리 봐도

잘된 것 같았습니다. 공기 좋고 평화가 넘치는 이곳에서

될수록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아래 생가 복원터로 내려갔는데, 아내와 딸은 피로하다고

근처에서 쉬고 저 혼자 올라갑니다. ㅎ

 

첫눈에 띈 이 생가는 그러나 나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이런 세트장 같은 생가 보다 될수록 옛날 맛이 나는 초가집을

만들어 놓으면 안 되는 건지?

 

지붕의 모양하고 전체적으로 이 집은 좀 다르게 다시 만들어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 집이 평양에 거주할 때 사셨던 벽돌집 이랍니다.

 

 

'찰나를 영원으로기록한 것이 사진'이라고 제가 늘 생각하는 건데

여기 그 비슷한 문구가 있군요~ ㅎㅎ

 

이 집에서 단란한 생활을 하셨고 메밀꽃 필 무렵도 집필하셨다네요~

담쟁이가 무성한 이 벽돌집은 그나마 옛날 느낌이 좀 납니다

 

그런데 자료를 좀 찾아보니 이효석은 단편 문학에서는 발군의 서정성을

발휘한 반면 장편소설에서는 그다지 주목을 받는 글을 쓰지 못했다고

하네요. 그는 철저히 짧은 단편에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 셈입니다

 

그리고 이효석이 한국 서정 문학의 거두로 올라온 이면에는 경성 제일

고보 동창인 유진오 박사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내용도 있네요.

 

 

 

한편 이효석은 매우 토속적인 글을 저술한 반면 그 자신은 버터에 빵에

커피를 즐기고 서양 음악,영화에 심취했으며 말하자면 서구 생활을 무척

동경한 면이 있다 합니다.

 

글쎄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 순전히 개인의 사생활이니

후세에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라 봅니다만,

 

 

생가 입구 멀찍이 피어있는 한쌍의 해바라기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군요! 혹시 이효석의 내면도 이와 비슷하지는 않았을지,,

어쩌면 우리 대부분도 이런 양면성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나요?

 

 

그러나 문학관과 생가터 그리고 평양에 있었다는 벽돌집을

보고 내려오는 내내 아무튼 제 마음은 무척 안타까운 부분이

컷고 반면 봉평과 강원도에 대한 애착은 좀더 깊어가고 있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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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그거 지겹지도 않소?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더구나 사상 유례없이 더웠던 올 여름에 ~ "

 

한 가지 꽃을 집중해서 9번을 보았다는 것도 최초이고 그것이

뻔하지 않은 매번 새로움을 주었다는 것도 역시 처음 이었습니다.

세상 일이 대개는 한두 번, 잘해야 3번 정도인데 말

이지요.

 

그래서 뭐 좀 발견한 게 있단 말이요?

 

글쎄 말입니다.

이른 새벽에 나가 보니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그 색감이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멋지다는 것~

네, 뭐 그 정도~

 

 

사람들은 흔히

 

" 지금을 즐겨라~ 현재가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상태를 말한다. " 등등

 

여러 표현을 애써 해 보지만, 28년 연꽃 촬영 애호가 분은 자신은

이렇게 사진을 찍다가 여기서 그냥 죽는다 해도 세상 아쉬울게 없을 거

같다고 말하더군요. 사진 촬영이 얼마나 행복하기에 저

런 말이 튀어 나온단 말인가?

 

저야 뭐 아직은~

 

글라디올라스~ 연꽃 동산 앞 마을에 핀것!

 

 

이렇게 아름다운 색감을 과연 어떤 꽃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아산 신정호의 그 아름답던 칼라를 잊지 못해

한번 더 새벽에 찾았는데, 아주 약간은 그 느낌이

달랐습니다. 더 나은건지 어떤지는 판단하기 어렵

고~

 

칼라가 위의 것들과는 조금 다른 자주색 핑크를 띄고

있는데, 일부러 이렇게 보정한 건 아니고 그날 아침의

특이한 어떤 색감을 나타내는것 같네요~

 

호수의 아침은 이렇듯 치열합니다

한마리 잡은 피래미를 서로 뺏고 빼앗는 새들^

 

 

어느새 햇살이 뜨거워 집니다

 

내친김에 아산서 멀지않은 당진 합덕제방까지 내 달려

봅니다. 그곳은 또 다른 연꽃의 매력이 있네요!

 

목을 길게 빼고 솟아 있는 연꽃들 ^

 

 

 

합덕만의 자랑이 이런게 아닐까..

 

하와이 무궁화~ Hibiscus 라고 합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합덕 성당입니다

단아하며 평화로운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곳입니다

 

 

성당앞에는 이렇게 백일홍이!

 

 

며칠후 일욜 저녁에 혹시나~ 해서 용인 원삼으로

달려가 보니 이런 연꽃이~  빅토리아 수련인데, 저녁

부터 밤에만 피고 꽃은 딱 3일만 보인답니다. 허긴 일반 연꽃은

4일간 생존하니, 비슷한데,

 

이제 연꽃은 거의 막바지인데, 글쎄요! 8월의 하순에

피는 연꽃은 어떤 맛을 보여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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