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 Train From Memphis

 

 

 

 

백암 장광 뜰의 가을 (2026.9.17)

 

 

가을들판은 나에게 무슨 의미를 주는가?

 

봄부터 여름 내내 뙤약볕에 땀 흘리며 모내기를 하고 

김을 매 주고 논고랑에 물을 대 주는 수고 하나 한 적이

없는 내가 무슨 염치로 가을들판을 찾는단 말인가? 

 

가을 황금들판이 그저 감상용으로 존재한다는 게 수고한

모든 분 들에게는 참으로 죄송한 일이다. 

 

그래서 그럴까?

 

가을들판에 나서보면 나처럼 황금벌판을 주섬주섬 걸어

다니며 유심히 관찰을 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봄 아지랑이 모락모락 필 때부터 시작한 벼가 여름 개구리

울음소리에 화답하며 몽실몽실 커서 드디어 꽃을 피우고

알알이 볍씨를 맺어 이제 고개를 숙이며 가을이 깊어감을

알리고 있다. 

 

어릴적 시골서 몇 년간 잠시 농사일을 해 본 경험은 있지만,

그것이 저 황금들판을 공짜로 구경할 수 있는 티켓을 준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런데 왜? 나는 일년에 한두 번 이상은 반드시 저 들판을 둘러

봐야 직성이 풀릴까? 

 

여튼 잘 알 수는 없지만, 그렇다는 것이다. 

 

예전엔 잘 익은 들판을 걸어가면 메뚜기 떼가 우르르 앞길을 

가로막곤 했다. 논에도 밭에도 콩밭에도 수두룩하게 앉아있던

메뚜기들!

 

그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9월 중순인데도 벌써 들판은 군데군데 저렇게 벼를 베고 

논바닥을 곱게 드러내 놓고 있다. 

 

아! 벌써 그렇게 됬군^^* 

 

아침 두어시간 돌아보니 인근 백암과 죽산을 거쳐 삼죽까지

충분하다. 리턴하며 보니 풍산개 사육장이라는 팻말이 있고

그 앞으로 메타세퀘어가 나름 준수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따가운 가을 햇살을 나무숲에서 식히며 가을의

정취를 실컷 느껴본다. 

 

이 가을의 초입이 너무 좋다. 코스모스는 찰랑거리고

하늘의 공기는 바닥으로 좌악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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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1957년도에 나왔다. 우리가 6살 때이다.
안성 일죽면 능국리 빼나골 아래에 구름밭이라는 동네가 있었다. 유기원이도 그 동네에 살았었다.

 

때는 1957년도쯤^ 

구름밭에 살던 권혁진 이란 양반이 어느 달빛이 휘영청 밝은 밤에 빼나골로 올라왔다. 

그것이 살구꽃이 뽀얗게 피는 봄이었는지, 보름달이 휘영청 뜨던 추석 무렵이었는지는

이제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옆집 순중이 누나네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 가져온 기타를 퉁퉁 소리내 치고 있었다. 

난 물론 생전 처음 본 기타다. 
청중은 빼나골 6집에 사는 서너 명의 누나들과 내가 전부였다. 

당시 무슨 노래를 기타로 쳤는지는 알수 없지만, 아마도 울어라 기타줄, 타향살이, 

애수의 소야곡 뭐 그런 것들이었을 거다. 
그 달밤에 처음 들어본 기타의 아련한 음색, 노래, 그것은 내 마음속에 한 편의 영화처럼, 

그림처럼, 사진처럼 선명히 기억되고 있다. 

그래서 난 이 노래 울어라 기타줄을 좋아한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잖은가? 

내가 어려서 거의 처음 들어본 기타 소리요, 노래일 테니까!! 


해서 난 기타를 좀 배우고 싶었다. 고등학교때 하숙집 앞 집에 사는 친구집에 오봉기타가

있어서 틈만 나면 그 집에 놀러가 기타를 만져 보고 소리를 들어 보고 했다. 나이 스물이

넘어 겨우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투자해 종로 2가 세고비아에서 기타를 하나 장만했다.

혼자서 열심히 배웠지만, 도저히 잘 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이사 다니는 통에

기타 뒤판이 뜯어졌고 테이프를 붙여 몇 년간 더 버텼지만, 결국 내다 버리고 말았다. 

 

아! 야속한 기타여~

그리고 한 20여 년 전 약국 마치고 밤 9시에 송전 부근에서 중고 기타를 구입했다. 

그 친구는 안성 시내에 산다고 했는데, 아마도 나처럼 기타가 잘 안 돼서 빨간 단풍나무 

기타를 팔았을 거다. 

우리 친구 중에 기타 잘 치는 친구 있나? 도대체 이놈의 기타는 말이야 타고나야 

하는 건지 왜 이리 어려워? 도대체가 난 기타하고는 인연이 없는가벼!!

 

권혁진이란 양반, 우리보다 몇 살 위일 텐데, 아직 살아 계실까? 그 옛날 그 기억을

하고 있을까?
그 달밤에 우리 동네에 와서 솜씨만 자랑하고 싶었던 건 아닐 테지~~ 

아니면 우리동네에서 누군가가 한번 올라와서 기타 좀 쳐줘! 라고 부탁을 했던가.  

모두가 흘러간 추억이지만, 거의 70여 년 전의 그 달밤이 아롱아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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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3 때 일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 우리들은 학교에 퇴비용으로

풀 한짐씩을 베어서 제출해야 했다. 까짓 풀이야 시골에

지천으로 널려있으니 베어다 내는 건 일도 아니긴 했다. 

 

나는 풀 한 짐을 베어 가지고 학교로 갔다. 운동장 서쪽으로

경사진 곳에 움푹하게 흙으로 웅덩이처럼 만든 곳에 풀을 

내려놓고 있는데 나보다 한발 먼저 온 친구 녀석이 이렇게

말을 했다. 

 

" 저 이거는 유 xx 대신 제가 가져온 겁니다" 

 

아니 뭐야!  유 모시기는 당시 학교에서 미모가 뛰어나기로

제1인 여학생이었다. 피부는 백옥처럼 하얗고 얼굴은 갸름

하니 동양미인의 전형이었다. 

 

오가며 한 동네 살았어도 말 한번 붙여본 적이 없이 그저 마음속

으로만 늘 좋아하던 여학생이었다. 

 

이거야 원~ 아니 저 녀석도 걔를 좋아한단 말인가? 

허기사 예쁜 여학생을 좋아하는건 인지상정이지 어디 누구

하나만 특별이 임자가 있는 건 아니잖는가? 

 

근데 그 친구는  중학생인데도 담배를 피우고 영 행동거지가

방정하지 않은 그런 아이였다. 나는 속으로,

 

" 쳇 그렇게 된거란 말이야? "

그 사건 이후로 난 예쁜 여학생에 대한 관심을 끊기로 했다. 

당시 나는 워낙소심하기도 했고 인생에서 그런 문제로 싸워

쟁취한다는 생각은 해 본적도 없는 순진한 시절이었다. 

어떻게 가까운 한 동네에 살면서도 도대체가 말 한마디 해볼

기회가 없었는지~ 하여간 그 여학생하고는 끝끝내  한마디

나눠볼 기회가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고 그 여학생이 서울 어디로 고등학교를

다닌다는 얘기는 풍문에 전해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리고 더 세월이 흘러서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얘기까지는 들었다. 

 

그런데 당시 퇴비를 대납해주던 친구는 어찌 되었을까?

최근에 들은 소식으로는 부산 어디에서 택시사업을 한다고

했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고 인생 또한 변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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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960년대 초중반 그러니까 초등학교 3-4 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시골의 여름은 7월 말쯤 방학을 해서 8월 한달 쭈욱 

방학이 계속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여름은 무지하게

더웠다. 마땅한 피서 방법이 없던지라 그저 동네 큰 나무 아래서

쉬거나  좀 떨어진 논 가운데에 만들어진 커다란 웅덩이를

찾아가서 물놀이를 하는게 거의 전부였다. 

 

실은 웅덩이도 많은게 아니었다. 커다란 들판에 고작 웅덩이는

두세 개 정도? 애시당초 물이 많은 습지를 아예 웅덩이로 만들어

인근 논에 물을 대는 용도로 활용되는 것 들이다. 

 

뜨거운 여름에 웅덩이에 텀벙 들어가면 물 표면이 뜨끈했다. 

한참을 물을 휘젓고 다니면 수면 아래 찬물이 뒤섞여 그런대로

더위를 식혀주었다. 보통 물 속에서 1시간 정도 놀았고 2시간쯤

놀면 입술이 새파랗게 변하기도 했다. 

 

그런 어느 여름날 웅덩이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데 발아래

진흙에서 무언가 미끈한 게 감지되었다. 순간 나는 그것이 가물치

임을 직감했다. 웅덩이 물은 가슴팍 정도의 깊이었고 나는 잠시잠시

물속에 코를 박고 들어가 진흙속에 박혀있는 가물치를 꺼내보려 안간힘

을 쓰고 있었다. 

 

그때 저쪽에서 함께 물놀이를 하던 동네 두어 살 많은 영수란 양반이

눈치를 채고 나에게로 슬슬 다가왔다. 급기야 동생 점수까지 불러

내가 잡아내려 하는 가물치를 새치기 하려 했다. 허긴 물속 진흙속에 있는

가물치가 임자가 있는 것도 아니니 뭐라 할 수도 없긴 했지만, 나는 

안돼~~ 이건 내 가물치라고 소리를 쳤다. 

 

그러나 영수 형제들은 아랑곳 않은 채 물속을 합동작전으로 뒤져

기어이 가물치를 잡아 내었다. 내가 조금만 눈치 있게 잘했으면

잡을 수 있는 거였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가물치를 반강제로 빼앗기고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꺼낸 가물치는 팔뚝 반만 한 꽤 큰 녀석이었다. 

 

원래 놓친 고기가 커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해마다 여름이면 수도 없이 미역 감으러 갔던 새뎅이 동산 쪽 웅덩이

의 가물치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진다. 

그때 가물치를 빼앗아갔던 영수 씨는 꽤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고

그 동생 점수는 내가 살던 동네 쪽으로 이사를 와서 살고 있다. 

 

 

 

일죽면 능국리를 서쪽으로 끼고 한정모래미를 넘어가면 좁다란 오솔길 정도가

이천 송곡리로 이어져 있었고 한정모레미를 지나면 노송산 줄기에서 

꽤 깊게 패인 계곡이 신흥리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예전 내가 초등학교 4-5학년쯤 되었을 때는 그랬었다. 
마침 아버지가 편찮아지시자 큰 누님을 중매해서 급히 시집을 보낸 게 

바로 멀지않은 이천의 송곡리였다. 

아니면 엄마의 무슨 심부름이 있으면 가끔씩 걸어서 송곡리를 가곤 했다. 

때는 5-6월쯤 되었을까? 

여름방학은 아니고 좀 이른철이었을게다. 송곡리를 향해 걸어가던 내 눈에

울긋불긋한 무엇이 보였다. 바로 계곡이 깊은 그 부근이었다. 길에서 조금

벗어나 산으로 들어가보니 이게 웬걸!! 

빨갛게 익은 덩쿨딸기가 온통 산중에 쫘악 펼쳐져 있었다. 무슨 봉지를 

준비했을 리 없는 나는 허겁지겁 딸기를 따서 양 주머니에 넣었다.
그렇게 딸기를 잔뜩 따고 그 자리에서 실컷 먹은 나는 그 길로 걸어서 

송곡리에 닿았고 그제서야 호주머니에 불룩한 딸기를 꺼내 보니 반은

쨈이 되어 있었다. 

어쩌다 이른 봄에 그길을 넘어갈 때는 생강나무의 노란 꽃들이 지천으로 

반겨주었다. 물론 당시에는 그것이 생강나무인줄도 몰랐다. 

 

노송산의 서쪽 부분을 나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한참전 이제는 아스팔트로 잘 포장된 도로를 넘어가다 보니 호국원이

덩그라니 세워져 있었다. 예전의 깊은 계곡도 딸기도 물론 흔적도 없이 사라

졌음은 물론이다. 호국원은 행정 구역상으로는 이천시에 속한다. 또 노송산

남측의 쿠팡 물류센타 보다는 그렇게 노골적으로 산을 훼손하고 있지는

않는 편이다. 그러나, 

노송산의 원 모습은 이미 주지하는 바와 같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남쪽으로는

쿠팡의 물류창고로 산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 버렸고, 서쪽으로는 호국원이 

들어와 있고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건 북쪽의 원경사 덕분이다. 

경기도 일원을 다녀봐도 야산을 완전히 박살 내놓은 곳은 노송산이 거의 유일하다. 

물론 그 큰 책임은 능국리 부락 사람들에게 제일 많고 다음은 안성시 공무원 들일 것이다. 

' 아휴 산만 바라보면 뭐가 나오나요? 까짓거 팔아서 당장 쓰는 게 장땡이지~ ' 

거참, 그럴까?  그럼 왜 다른 동네 산들은 여즉 멀쩡하단 말인가? 

딸기가 자욱하게 깔려있던 호국원 쪽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친구들은 이런 일죽의 변화에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까? 

'거 뭐 일죽에 와서 살지도 않을거면서 무슨 그리 오지랖이요?
이 동네 쭈욱 사는 우리도 멀쩡한데 씰데없는 걱정은 마시구려^ 
대나무 하나 없는 一竹 이 일송이 되든 민둥산이 되든 상관하지 마시오! 

그렇다고 어디 땅덩이가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 

허긴 뭐 그렇기도 하지^* 

 

그렇긴 하지만 멀쩡한 산이 그것도 유일하게 일죽면의 북쪽을 받쳐주던

노송산이 저렇게 허무하게 부서지는데 어찌 아무런 감상도 없을수 있을

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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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도 이제 끝나가는 67년 겨울~


나는 고향 능국리에서 송천리로 집을 옮겨 처음 이종천의 집에서 하재오의 집으로 

자취를 이어가다가 힘에 부쳐  남광민의 집에서 하숙을 시작했고 중3 때는 내뚠이

언덕배기에 위치한 이태순(5년 후배) 의 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다. 

말이 하숙이지 혼자 농촌의 건넌방 하나를 차지하고 지내는 건 사실 많이 쓸쓸하고, 

심심하기도 하고 더러는 고독한 일상이었다. 내가 기거하던 방은 유달리 어두컴컴

했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논밭이 꽁꽁 얼어 그나마 논에 물이 좀 있던 곳은 근사한 얼음판이 

되었을때다. 한동네 내뚠이에 살고 있던 친구 안영기가 저녁즈음에 넌지시 나에게 말했다. 

" 말이야~ 친구! 이따 밤에 좀 보자구!! 뭐 근사한 거 보여줄 게 있어^ "

그래? 뭐지~ 저녁을 먹고 밤이 으슥해지자 동네로 슬슬 걸어 나갔다. 영기는 

그 동네 후배 한 녀석을 대동하고 나왔다. 
우리는 아주 조용히 살금살금 꽁꽁 언 밭둑을 지나 저 아래 논으로 내려갔다. 

얼음판이 된 논에서는 누군가 둘 남녀가 얼음을 지치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엇? 누구지!! ?


우리는 들키지 않게 몸을 낮춰 살살 그들에게로 최대한 다가갔다. 희미한 달빛에 목소리와 

모습에서 금세 누군지 알아챌 수 있었다. 

그들은 바로 역사 선생님 신현국과 미술 선생님 윤혜숙 이었다. 
지금이야 그정도는 별거 아닌 얘기 수준의 데이트지만, 당시엔 매우 놀랍고 쇼킹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니~ 선생님들이 이 야밤에 무슨 일이람!! 

헌데 뭐 두분 선생님들은 얼마나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이었을까? 
낯설고 물선 타향 객지에서 서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건 분명 

큰 위안이었을테다. 

사실 두 분이 달 밝은 밤중에 동네 얼음판에서 얼음 지치기를 하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는 자체는 크게 뭐랄것도 없는 상황이기는 했다. 

 

하지만 신현국 선생님은 당시 기혼자였고 윤선생님은 처녀였으니  좀 그렇긴 했지만!! 

우리는 조금더 상황을 지켜보다가 별다른 뭣도 없어 그냥 철수하기로 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들키지 않게, 

다음 해에 나는 서울로 고등학교를 왔고 서울에서 연락이 되는 몇몇 친구가 모여

망우리에 여름방학을 맞아 올라와 계신  윤혜숙 선생님을 찾아갔다.

당시 망우리 선생님댁 앞에는 푸르른 초장이 펼쳐졌고, 주변은 온통 포도나무 

과수원이었다. 

 

선생님을 만나 반갑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헤어졌지만, 

당연하지만, 나는 끝내 그 겨울의 얼판의 얘기 같은 건 차마 입밖에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런 얘기가 전혀 어울리지도 않았음은 물론이다. 제자의 입장에서~ 

당시 홍대 미대를 나오고 교사로 부임하셨으니 당연 집안은 유복했을것으로 추정되고 

집에서도 얼마나 귀여움을 받고 자라셨을지는 보나 마나다. 또 선생님 자체가 귀여운

용모에 천진한 면이 가득했었다. 

나는 시간날때 고향 일죽을 들러 중3때 마지막 하숙을 하던 내뚠이도 자주 가봤지만, 

그때 하숙을 하시던 아주머니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서울로 올라왔고 화양동에서

어렵게 사셨던걸 기억한다. 오랜동안 연락이 두절돼 있었는데,

수년 전 작고 하셨다는 얘길 동네 사람들에게 들었다. 

인생무상, 세월무상, 그러나 그날밤의 그 영상은 지금도 또렷이 내 마음에 

남아있으니^^* 

두 분 선생님은 여즉 생존해 계실까? 

선생님~ 뵙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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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몰라

 

 

 

새벽 맨발 걷기를 한지도 어언 3년이 훌쩍 지났다.

 

비록 작은 오솔길이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온전히

살펴보며 지나갈 수 있는 유일한 나만의 방식이 되고

있다. 

도회지 혹은 도심 가까이 살게 되면 도무지 계절의 변화를

세심하게 살필 방법이 없게된다. 어쩌다 교외로 빠져

나가지만 그것이 연속적인 자연의 변화를 감지하기엔 역

부족이다. 

 

그런데 매일 아침 집앞 오솔길을 걷다 보니 이른 봄의 새싹

부터 늦가을의 단풍, 한겨울의 눈이 내리는것까지 오롯이

몸으로 체득할수가 있게 되었다. 

 

5월 11일에 뻐꾸기가 울어대는 걸 처음 들었고 그로부터 한 달여

이상 뻐꾸기는 울었다. 대략 6월 중순 이후 뻐꾸기 소리는

사라졌다.  그런데 초평을 가서 보니 그 동네는 아직 뻐꾸기가

울고 있었고 제비들이 카페 처마밑에 집을 여러군데 짓고

있었다. 

 

송홧가루는 생각보다 매우 이른 봄에 날린다는것도 알게되었고

소나무의 송진은 역시 송홧가루가 생성될 즈음에 많이 생성되며

아카시아 꽃이 피고 향기가 날리는거며 밤나무 꽃이 피고 그 향이

어떻게 천하를 진동시키는지도 세세하게 느낄수 있었다. 

 

오솔길을 아래만 내려다보며 찬찬히 걷다 보면 흙바닥을 

가로질러 개미들의 긴 줄이 이어지고 있는게 보인다. 처음엔 일단

개미들을 밟지 않으려고 걸음을 껑충 뛰어서 개미줄을 넘나

들었다. 

 

옛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집신에 얼기설기 구멍을

좀 크게 만들어서 신고 다녔다고 한다. 혹시 모를 개미 한 마리

도 의도치 않게 죽일 수 있음을 대비한 것이다.

허나 요즘 오솔길을 걷는 사람들은 땅바닥을 보고 걷지 않는다. 

당연 줄지어 뭔가를 하는 개미들은 졸지에 신발에 깔려 비명횡사를

당하고 말것이다. 

 

도대체 개미들은 무얼 하길래 줄을 지어 이동을 하는 걸까? 

며칠 자세히 살펴보니 이쪽 참나무 등걸에서 저쪽 참나무

혹은 소나무 등걸 나무 밑동과 흙이 맞닿는 부근으로 송송 

구멍을 뚫고 왔다 갔다 하는 중이었다. 

 

먹이를 저장하는 걸까? 

 

조금 큰 개미부터 아주 작은 개미까지 그들의 무리는 두세 곳이나

있었다. 이탈자도 없이 질서 정연히 줄을 지어 움직이는 개미들,

음~ 개미의 이런 습성을 연구해서 박사가 된 분들도 있다.

따지고 보면 세상 박사란 것도 참 우스운 면이 있다. 

 

대체 개미들은 언제까지 위험한 이동을 계속할까? 

 

오솔길을 걷는 인간은 아무 생각 없이 오가지만 개미들에겐

목숨을 건 이동이니까~ 

 

아직 매미가 울어대진 않는 초여름이다. 

곧 매미가 울면 본격적인 더위를 알리는 신호일 것이다. 

 

오솔길의 작은 개미 한 마리를 밟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나 지만, 정작 약국 내에서 발견한 커다란 바퀴벌레는 눈을

질끈 감고 밟아 죽였다. 파르르 떨며 죽어가는 바퀴를 보며

개미를 살리려 하는 마음과 전혀 다른 이률배반적인 나를

생각해 본다. 

 

인간은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을 때에만 선을 베푸는 존재인가? 

 

죽은 바퀴에서 떨어져 나온듯한  탯집같은 껍질을 보며 혹시

새끼 바퀴벌레가 잔뜩 살아 나오면 어떡하지~ 불안한 마음이 스친다. 

아직 새끼 바퀴들이 돌아다니는 흔적은 없지만 말이다. 

 

올해는 장마가 아직 낌새가 없다. 

비가 내리면 흙길은 더없이 맨발로 걷기 좋게된다. 

1년의 절반이 지나갔다. 

 

그리고 낮의 길이가 이젠 점차 짧아지고 있다. 

(7.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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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wine

 

 

 

 

용인시 약사회의 동호회 중에 bmw 란 모임이 있다.

한 달에 한번 토요일 오후에 모여 걷기도 하고 저녁식사도

하고 때론 공연 관람도 하고 더러는 좀 멀리 바람도 쏘이러

나가는 그런 모임이다. 

 

지난 토요일은 용인 내동에 위치한 연꽃을 보러 모였다.

마침 장마 중에 해가 쨍한 오후여서 습도도 높고 무지하게

뜨거운 날이었다. 

 

거기다 올해는 연꽃이 늦게 피어서 몇 송이 피어오른 연꽃도

지난밤 장대비에 쳐 맞아서 고개를 숙이기 일쑤였고 뜨거운 햇살에

꽃이 오므라들어 연꽃은 그저 몇송이에 불과했다. 

 

원두막이 있었지만 오후의 강력한 더위를 막아줄 순 없어서

말이 연꽃 구경이지 돌아다니는 자체가 고역이었다. 

그래도 은은하게 퍼지는 연꽃향은 코끝을 스치며 지나갔고

가까운 곳에 연꽃이 있다는 사실에 뿌듯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정도의 연꽃은 일찍부터 피어 있었지만, 그날은

그마저도 보기 힘들었다(필자는 올해 이곳을 3번 찾았었고 이번이 4번째

방문이었다. 위의 사진은 6.28 오전에 찍은것)

 

 

 

 

 

 

 

자! 그러면 날은 덥고 미리 고지 드렸던 원삼메밀국수를 먹으러 가자~ 

해서 달려가니 시간이 오후 5시밖에 안되었다. 과연 메밀국수가 맛이

있을까? 

 

예부터 시장이 반찬이라고, 배가 고파야 음식이 맛있지, 역시나, 

평소보다 2시간 이상 빨리 저녁을 먹을라 하니 후딱 먹어치울 음식이

속도가 나질 않는다^  그래도 수육에 맥주에 막걸리까지

곁들인 괜찮은 식사를 마치고 좀 전에 이동할 때 봐 두었던 용담호수를

조망하는 La MIR 카페로 이동했다. 

 

평소 자주 이 근방을 지나다녔어도 카페의 존재를 몰랐는데, 막상 와서

보니 규모도 크고 특히 위치가 장난이 아니게 좋다. 

 

이곳에 이런 곳이 있었단 말인가?

 

푸르른 잔디밭에 앞에는 호수를 끼고~ 

야 이거 분위기 괜찮구먼^* 

 

 

이날 모인 8명의 참석멤버~

 

참으로 오랜만에 얘기는 끝도 모른 채 이어져 갔고 용인이 아니면

이런 풍광은 꿈도 꾸기 어렵다고 이구동성으로 예찬을 해가며!

 

 

 

그렇지! 우리 모두는 정말 열심히 수고하고 있는 중이지^^*

 

오래전 나는 여기 저수지로 낚시를 하러 온 적도 있긴 했다. 

또 가을이면 저쪽 문수산 줄기 아래로 뻗어 올라간 다락논의 

누렇게 익은 벼를 사진 찍으러 몇 차례 오기도 했었다. 

 

밤은 깊어가고 모처럼 좁은 약국 공간을 뒤로하고 들판에 

앉으니 도대체 언제 이런 아늑한 분위기를 느껴봤었던지 

감회가 새롭다.

 

고요한 시간을 갖는다는 거~

 

평화가 듬뿍 묻어나는 용담저수지 뚝에 서서 피라미가 호수면에 크고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는 모습을  잠시 바라본다.

 

매일 이런 곳에 나오면 별 감흥을 느끼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어쩌다 정말 희소하게 주어진 기회여서 그런지  오늘의 이 추억은

매우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026.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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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히 먼곳(jazz swing )

 

 

 

 

7월의 중순이 지나고 있다.

 

하지가 지난 지도 20여 일이 넘어가고 아직 매미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지금이 여름의 한가운데임은 분명하다. 

 

오가다 보이는 옥수수 술이 하늘을 향해 꼿꼿하게 도열해

있는 것을 보면 왠지 기운이 솟기도 하고 아~ 지금이 정말

1년중 좋을 때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옥수수 술이 시들해지면 이미 여름은 지난 것으로 생각이 된다. 

더구나 대궁이가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하면 이미 가을이 

다가오는 신호로 읽힌다. 

 

 

그러니까 하찮아 보일수도 있는 옥수수 대궁이, 술을 예찬하게

된다는 것인데! 

 

여기같은 시골동네에는 길가에서 옥수수를 갓 따다가 쪄서

파는 곳도 있다. 일전에는 3개에 5,000원을 주고 찐 옥수수를

구입했고 밭에서 따다 파는 오이를 7개에 역시 5,000원에

구입했는데, 이것이 마트에서 파는 오이와는 차원이 다르게 

신선하고 맛이 훌륭했다. 

 

때마침 칠갑산 모밀국수에다가 그 오이를 사용해서 먹으니 맛이

최상이다. 올 여름에는 모밀국수를 자주 먹게 될 것 같다. 

모밀 쏘스도 자꾸 만들다보니 점점 맛이 좋아져간다. 

 

 

비가 오다말다를 반복한다. 

연꽃밭에는 간밤에 억수로 내린 비 때문에 연꽃이 

전부 고개를 숙이고 축 쳐져 있다. 

연잎에는 물이 적셔지지 않게 되어 있는데, 저렇게 방울방울

예쁘게 물방울이 맺혀있다. 

 

 

그런데 이놈은 혼자 와장창 빗물을 다 받아먹었다. 

저 많은 물을 어찌 견뎌낼까? 마치 어느 재벌을 연상케 하는데,

돈이 많은것도 좋지만 그만큼 인생의 무게가 많이 실린다는 얘기다. 

보통 사람들은 그저 적당히 가뿐하게 짐을 지고 가는 게 순리일듯하다. 

 

 

참깨도 어느새 하얗게 꽃이 피었고~

 

 

느닷없이 내리쏱는 장대비에 근처 원두막으로 잠시 몸을 피한다. 

능소화는 어느새 이별을 고하는 중이다. 

 

 

장대비를 피해서 간신히 제 모습을 유지하는 연꽃^*

 

7월의 전성기는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옥수수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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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바아흐로 수국철이다. 예전에는 제주도나 남부지방

어느 특정지역에만 피던 수국이 점차 북상을 하더니 이젠

중부지방까지도 수국축제가 난리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제주도, 북해도, 밴쿠버 등지에서 수국을 보고

감탄을 금치못한 기억이 있는데, 몇 년 전에는 우리 동네 하우스

뒷편에도 산수국 한송이를 심었더니 점차 커져서 오늘 보니 

꽃이 거의 다 피었다. 그만큼 수국이 이제 가까이 다가왔단

의미다. 

 

작년에 3번 정도 가서 탄성을 올렸던 용인 농촌테마파크를

아침에 찾았다. 헌데 작년과 다르게 올핸 수국이 영 발육도

시원찮고 수국 대궁이도 많이 부족해 보인다.

 

해걸이를 하나?

 

 

앗~~ 그런데 올해 벌써 연꽃이 저렇게 피었다. 

아니 아직 연잎이 겨우 자라 오를까 말까 하는데, 

 

연밭 위 보리가 다 익은 밭에는 양귀비가 가물가물 다 스러져 가면서

손짓을 한다.

 

그래 너두 있었구나~ 아이고^*

 

그동안 내가 미처 널 찾아주질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치기만 했었지!!

 

 

수국의 매력? 아니 그 맛은 무엇일까? 

 

시원함, 꽃의 거대함, 색감의 오묘함, 떼거지로 모여 피는

집합성?  글쎄~ 

보는 이의 생각과 마음은 각자 다 다를 것이다. 

 

나 개인으로는 단연 청초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때묻지않은 깔끔하고도 청순한 느낌이 수국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보자면,

 

올해 군락은 좀 시원찮지만, 여전히 청초한 수국의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농촌 테마 전나무 숲 원두막에 누워 잠시 있자니 뭔가 좀 부족함

같은 게 느껴졌다. 어디 가까운데 수국농원이 없을까? 

 

해서 온라인상에 대거 등장하는 백암의 자작나무 숲으로 향했다. 

 

자작나무 숲에는 아침 10시 정도인데도 관람객이 꽤 많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중년부인도 여럿이고 머리가 하얗게

센 노숙미를 자랑하는 할머니들도 여러분 보인다. 

역시나 수국을 애호하는 분들은 차림새며 인물이 뭔가 좀

다른 면이 있어보인다. ㅎㅎ 

 

 

산수국은 청색이 대부분인데, 

이런 핑크색도 있다. 아마도 화분의 토양을 알칼리 성분으로

한 모양이다. 

 

 

꽃잎이 좀 크긴 하지만, 나름 깔끔함은 있다. 

관람객들은 수국밭에서 눈을 떼질 못하고 아주 즐거워

하고 있었다. 

 

 

 

모두가 화분으로 조성된 수국밭이다.

뭔가 좀 꽃술이 거친 느낌이 난다. 야생과는 약간은 차이가 난다고나

할까? 

 

이곳의 상징과도 같은 자작나무 숲인데, 나무는 싱싱하고

잘 자라고 있었다. 

다른데 자작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 가을이 되면 노랗게 물드는

자작이 연상된다. 

 

 

 

빨간 지붕에 장미꽃이 잘 어울린다^^*

 

봉다리 수국이라고 쓴 것은 봉지 커피와 같은 느낌에서

표현을 해 본 것이다. 수국의 화분이 그렇게 생각이 들기도

했고~ 

 

좋기로는 땅에 직접 심어 자연의 기운을 최대한 받아내는

그런 수국이 좋겠으나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농테마파크의 수국은 규모는 아주 작지만 땅에 심겨있는 것이다. 

 

사진에서 보면 윗쪽의 수국이 약간은 더 청초해 보인다. 

아래 수국은 조금은 강해 보인다고나 할까?  

아니면 전성기를 아주 살짝 지나쳐서 그렇게 보일수도 있을듯

하다. 

 

아침고요 수목원등 여러 수국정원이 요란하게  유혹 중이지만,

더 이상 수국정원을 찾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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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리는 고모령 / 장마리-레게

 

 

 

 

미처 만개하지 못한 작약이 활짝 피기를

기다리는 중에 비가 내리며 주말이 지나갔다. 

아뿔싸~ 어쩌지! 

 

1주가 넘게 지나간 5.22일에 시간을 내어 찾은 

작약밭은 예상과는 너무 달랐다. 

 

매년 꽃의 상태는 이렇게나 차이가 날 수도 있구나!

 

 

 

 

전체적인 작약의 상태는 작년의 그것에 비해

아주 좋지 않았다. 도타운 맛도 없고 마치 폭우가 한바탕

지나간 듯 그렇게 보였다. 서둘러 그중 괜찮은 꽃들을

찾아 몇 장 찍고는 농테마파크의 원두막에서 한택식물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활짝 만개해서 자신의 본모습을 다 드러낸 작약^*

 

 

 

조금은 아쉽지만 올해 작약은 이걸로

마쳐야 할 듯하다~!

 

아쉬운 마음에 백암의 한택식물원으로 발길을

돌려본다.

 

 

 

자주닭의장풀이 입구부터 반긴다. 

어릴 적 옆집 담장 안에 소복이 피어있던 저 꽃~ 

나는 당시 저 거이 난초인 줄 알았었다. 왜냐면

화투의 5 난초가 저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엉겅퀴와 이름 모를 열대식물 꽃이 보드랍기가

이를 데 없다. 

 

 

나무에 피는 꽃인데~

 

 

낙우송 그늘 벤치에 앉아 초여름 정원의 산들바람과

울울창창한 나뭇잎들~ 그리고 새들의 즐거운 지저귐에

한참을 빠져든다^ 

아! 이제 돌아가야지! 마냥 쉴 수만은 없잖아? 

 

 

 

그래!! 이 맛이야^*

5월의 신록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것이지~

 

 

꽃들은 한낮의 뜨거운 햇살에 졸고 있고~

 

패랭이~

 

 

병꽃이 아직도 피어있네!!

 

 

 

인동초는 지금이 제철인 듯^

 

 

 

작약밭은 철이 지나 황폐화되었는데,

두어 송이 작약이 아직 수줍게 빛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작약은 겹꽃보다는 홑겹이 더 이쁜거 같다.

그것은 동백도 비슷하다^*

 

 

매일 이른 새벽 걷기 중에 더러 만나는 새~

도무지 동네에서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는데, 

여기서는 도망도 안 가고 카메라에 잡혔다. 

역시나 사람도 그렇고 새도 그렇고 산중에 살면

경계심이 적어지나보다. 

 

이렇게 5월은 갔고~

 

나는 그 오월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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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파도처럼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니 결국 연중 최고의

계절이라는 의미 아닌가? 

 

 

하늘을 향해 맘껏 연초록 잎을 키워내는 목련~

과연 어린이날답다. 

 

 

 

 

이 계수나무 잎은 어떤가?

과연 5월은 5월이도다~

 

 

 

까짓 계수나무 정도를 가지고 뭘 그러시오?

 

이럴 분도 물론 계실 것이다. 

 

허나 나날이 하늘을 향해 커가는 이 나뭇잎이 나에게는

정말 예삿일로 보이지 않았다. 

 

 

 

민들레는 이렇게 하얀 고깔처럼 변했으며

작약은 이제 꽃 몽우리를 맘껏 키워 올리고 있었다.

 

 

농테마파크의 나비 표본~

 

 

그리고 비가 오고 어영부영 10일이 지났다. 

5.15일쯤의 작약은 어떻게 되었을까?

 

 

 

 

디기탈리스가 요즘은 관상용으로 인기가 많은 모양이다.

5월 중순이 되니 붓꽃이 와르르 피어난다. 

 

 

 

 

그러나 기대했던 작약은 아직 30%도 개화가 되지

않았다. 산중이라 그럴까?

 

 

 

연핑크에 백색까지 나름 예쁘게 피어오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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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 최고의 황금기는 아마도 5월일 듯하다.

푸르른 신록 속에 선다는 것은 자연의 품 안에 안기우는

것은 물론 자연의 정기를 내 안에 맘껏 채우는 일이다.

 

 

세종시 초입에 있는 베어트리파크로 달렸다.

5.1 근로자의 날~ 휴일이다.

 

 

그저 자그마한 분재가 아니다. 

수백년을 견뎌온 듯한 주목을 어떻게 저리 잘 보존해

왔을까?

 

 

뭐니뭐니해도 이곳의 제일 자랑은 바로 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품 원본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전 세계에 26점인가만 진품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그 작품~ 

 

 

작품에 대한 소상한 해설이다.

 

 

이곳에는 곰을 비롯하여 다양한 식물 분재 등이 분포해

있지만, 나의 눈을 끄는 것은 단연 이런 거대한 주목이었다.

 

 

 

그리고 북해도에서 어렵게 가져왔다는 이 주목~ 

50억을 준다 해도 팔지 않겠다는 작품이다. 허긴 뭐 

이런 나무는 발견하기도 하늘에 별따기고 구해 오는 건

더 말해 무엇하랴^^

 

 

기타 수많은 분재며 식물 및 장미원도 있었다. 

곳곳을 다 둘러본 것도 아니고 일단 5월의 첫날에

한번 본 것 중 인상 깊었던 것만 소개해 올렸다. 

 

보리가 5월 첫날에 이렇게 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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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대한문 앞을 수도 없이 지나다녔다.

시청 앞 광장도 물론 수없이 버스를 타고 지나갔었다.

그런데, 근처 덕수궁은 딱 한번? 정도 들어갔던 거 같다. 

 

지난 토요일('26.5.9)오후 느지막하게 친구 아들의 결혼식이

정동길 끝자락 프란체스카회관에서 있었다. 

 

"야호~ 오랜만에 덕수궁 돌담길을 한번 걸어 보겠군~"

 

그런데 용인에서 버스를 타는것이 첫판에서부터 어긋났다.

넉넉히 시간을 재서 나왔지만, 탑승이 줄 선 중간즈음에서 

잘리고 말았다. 이런~! 30 여분을 정류장에서 땡볕에 다시 줄을

서서 기다려야했다. 정류장 건물 안에 의자가 있었지만, 거기

들어가 쉬다가 줄을 놓치면 또 버스를 놓칠까 봐 그냥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거야 원~ 

 

버스도 자주 타봐야 요령이 생기는데, 1년에 한 번 타 볼까 말까

하다 보니 영 젬병이었다. 

 

*

 

시청앞 광장에선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대한문을 거쳐 덕수궁 

돌담길에 접어들었다. 

 

캬~  이게 대체 얼마만이야?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 보다니!!

 

사실 나는 덕수궁 돌담길 뒤편으로는 이날 껏 한 번도 걸어가 본 

적이 없었다. 돌담길 좌측으로는 이런저런 가게가 늘어서 있었고

꽤 많은 사람들이 가게안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시내 중심부가 매연으로 뒤범벅이 되어있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가는 중이었다. 

 

뒷편길 4거리쯤에 아담하지만 묵직한 느낌을 주는 정동교회가 

보였다. 오우 저것이 그 유명한 정동교회구나~~! 

 

오늘 열심히 자료를 찾아보았다. 

우리나라에 거의 처음으로 아펜젤러 선교사가 지은 교회라는 거~

여기서 현대家의 많은 자녀들이 단골로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는 거,

무엇보다 이문세가 부른 광화문 연가에 등장하는 눈 덮인 조그만 예배당이

바로 이 정동교회였다는 거~ 

 

내가 감탄사를 연발하며 친구 아들 결혼식이 열리는 프란체스카 회관으로

더듬더듬 발길을 옮기다 보니 정동 예술극장, 이화여고등이 나타났다.

호~ 이화여고가 아직도 이런 유서 깊은 동네에 자리 잡고 있네^ 

 

학교건 그 무엇이건 어디에 위치하는가는 그 자체가 바로 가치를 증명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것도 유구한 역사와 함께라면~

유관순 열사의 모교라 하니 더욱 의미가 깊어진다고나 할까? 

 

원래 이 동네는 정릉동으로 불렸는데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 신덕왕후의 

능이 현재의 정동 4번지 일대(현 영국 대사관)에 위치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냥 정릉동으로 불러도 될듯한데 릉자를 빼고 정동으로 지금껏 불려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은 조촐하고 내부는 매우 깔끔했다. 

부리나케 달려왔지만, 예식시간은 한참 지난 후였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 혼배 미사에 참여를 하고 있는데 수원에서 온

후배가 눈짓을 하며 밖으로 나가잔다. 

 

2층 피로연실에 올라가니 손님들이 빼곡하다. 

나 자신도 혜화동 성당에서 혼례를 했지만, 실상 그 후로 성당
결혼식에 직접 참여한 것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이른 저녁 식사를 하고 여러 안면이 있는 분들과 인사를 하고

신랑 혼주 부부와 겨우 축하의 인사를 나누고 잠시 후 밖으로

나왔다.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정문앞에 세워져 있다.

 

 

650

1976년에 520년이 된 나무라니, 현재는 570여 년이나 된

오래된 고목이다. 이 동네가 그만큼 유서가 깊다는 얘기다. 

 

그래~ 저런 곳에서 커피 한잔이면 나름 운치도 있고

고풍스러운 느낌도 나겠네~ 

 

1970년대 종로 5가를 중심으로 대학을 다녔지만, 이 동네는

사실 얼씬도 한 적이 없다. 대체 나는 무얼 하며 서울을 다녔단

말인가? 겨우 버스 노선이나 전철길을 타고 다닌 거 외에 서울을

제대로 알아보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겉핧기식으로 서울을 대한게

전부였다. 

 

덕수궁 돌담길에 잠시 앉아 어느 외국인의 버스킹을 잠시

보다가 덕수궁을 한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덕수궁 안의 나무들과는 달리 궁밖의 나무들은 수도 없이

길을 뜯어 고치다 보니 수령이 현저히 짧은 그저 그런 나무

들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듯했다. 

 

예전의 궁궐 축조 당시보다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덕수궁^

처음에는 경복궁을 두고 왜? 이런 작은 궁궐을 지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나름 이유가 다 있긴 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해설사를 이곳저곳 따라다니다가 집으로

돌아갈 버스시간을 맞추느라고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임금 레벨은 봉황이요~

황제급이면 용을 새길수 있다는 등 해설사가 설명을

이어 가지만, 왠지 그런 것이 다 허망하다는 생각만 들뿐, 

용이면 뭐 하나? 망해가는 대한제국의 서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석조전 앞의 목백일홍이 우아하게 다가온다.

7-8월쯤 오면 멋진 백일홍을 볼 수 있을 듯^^

 

아마도 덕수궁은 이번이 2번째일듯하다. 

좀 더 고궁 관람을 늘려야 할 것 같다. 

 

시청 앞 광장을 가로질러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어느

건물 앞 댓돌에 걸터앉아 잠시 쉬어본다.

 

예전의 시청 앞이면 매연이 코를 찔렀을 것이다. 근래

바람도 많이 불고 환경이 좋아진 탓도 있으나 서울시내의

공기는 예전의 그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천연가스 버스, 전기버스의 영향도 막대하지만, 이건 상전이

벽해가 된 느낌이다. 서울의 공기가? 오호~ 

 

일본의 청정도시라는 삿포로 시내와 극명하게 비교가 된다.

그 코를 찌르는 디젤의 매연냄새^ 나가사키도 예외는 아니

었다. 도심에 뿌연 매연을 풍기며 내달리는 시내버스들^* 

 

우리의 서울이 얼마나 청정해진지를 이제 비로소 조금 체험을

한 셈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서울 도심을 다녀온 소감이다.

 

나는 사실 시골 전원 자연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도심의 중심부도

한 번씩 나가볼 일임을 가슴깊이 새기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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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먼곳에~

 

 

 

 

어느덧 4.15일이 되었다.

 

지난 4.12일 일요일 안성 일죽 고향동네에 위치한

서일농원에 점심식사하러 갔다가 보니 농장 앞 마을에

배꽃이 환하게 피고 있었다. 

 

앗! 벌써? 배꽃이 피다니~ 작년만 해도 4.20일에 피었는데^

3일을 간신히 기다려 15일에 안성의 누렁이 과수원으로 달렸다. 

그 일대는 이미 배꽃 천지였다. 

 

 

이 배밭의 마스코트~ 누렁이 

거참 개팔자가 상팔자라더니~ 배꽃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배밭에 뒹구는 니가 상팔자로구나^* 

 

 

이날 베스트 샷은 바로 이 꽃이었다. 

이렇게나 배꽃이 멋질수가 있다니!!

 

 

배밭으로 둘러쌓인 어느 교회~

안성 참 평화로운 동네네! 

 

 

이쪽 동네로 배꽃을 찍기 위해 4-5회 정도는

찾은 거 같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적기에 최상의

작품을 얻기는 매우 힘들다^

 

 

미리내의 노주현 카페에도, 그 윗쪽의 폐업한 어느 카페에서도

흐드러지게 피어 오르는 봄을 만날 수 있었다. 

 

 

4.16일 

 

우리동네의 계수나무는 이제 잎이 훌쩍 커졌다.

어린이 주먹만해진 계수나무 잎을 아침 출근 전에 

부랴부랴 담아 본다. 

 

그리고 4.19일이 되었다.

이제 봄은 저만치 손짓하며 멀어지는 중이다. 

 

통상 5월초에 피던 황매화가 벌써 피다니!!

그것도 4월 19일에^ 

 

시절이 이러할진대 어물어물하다가는 피는 꽃도

제대로 못 보고 봄날은 끝나는거다. 

 

 

아쉬워서 참나무 잎새도 찍어보고

동네에 핀 겹벚꽃도 애써 찍어본다. 

 

산에는 연두색 물결이 몽실몽실 번져가고,

 

"이제 봄이 끝났어요~ " 라고 외치는듯하다.

 

 

그렇긴 하다마는 봄이 너무 짧지않냐? 

3월 말쯤 시작된 너희가 불과 20여일 만에 

물러가다니~ 

 

그래서 봄은 늘 애틋하고 안타깝고 아쉽고 

그런가보다. 너무 짧아서~

 

인생도 그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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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rs in paris

 

 

 

 

해마다 잠시 오는 봄이지만 항상 봄은 새롭다.

그것은 매일 떠 오르는 태양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과

같은 이치리라. 

 

해서  어? 언제 봄이 다 가버렸지?  이렇게 지나기 

일쑤이니 간단하게나마 그 기록을 매년 나는 남겨두는 중이다. 

 

 

그 첫 기록은 세종수목원이었다. 2026.2.8일 ~

 

그때는 이렇게 핀 꽃을 보는 게 가슴이 뛰었다. 

금년 첫 꽃이었고, 아! 이제 봄이 오는구나~ 라고 생각

되었기 때문이다.

 

명자나무 분재다. 

 

 

언제나 봄이면 가슴을 뛰게 만드는  진달래와 매화다^* 

올해는 전과 같이 이들을 찾으러 이리저리 나서지 않았다.

그냥 윗동네를 기웃거렸을 뿐이다. 

 

 

목련이 어느새 피었고 곧 벚꽃이 따라 피었다.

벚꽃이 피어오르면 마음은 하늘로 날아오른다.

세상천지가 다 내 것 인양 들뜨게 된다. 

 

아! 올해도 또 벚꽃이 피는구나~ 

 

 

그리고 벚꽃과 더불어 계수나무가 싹을 틔운다.

 

 

 

벚꽃은 더 화사해졌고, 단지 내 조경한다고

뭉텅 잘라버린 자두나무에서도 하늘을 향해 손짓을 한다! 

나 아직 죽지 않았노라고~

 

수도없이 강조하지만 단지 내 수목은 될수록 자르지 말고

원형을 보존하는것이 선진국 위상에 걸맞은 조경이라는 점이다. 

공동주택의 단지내 나무들이 속절없이 잘려나가는 모습을

너무 자주 보게 되는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나무를 자르는 이유는 저층의 일조권이 아닐까? 그렇다면 

거실쪽이 아닌 후면쪽까지 자를거야 없지 않을까? 건물의 측면은

또 무슨 이유로 자르는가? 

 

 

그저 숲 속에 쌓인 고요한 동네다.

 

여기까지가 4.5일이었다. 

 

 

4.12일이 되었다. 동네의 계수나무에서 잎이 조금씩 커져간다.

 

 

계수나무를 보며 10여 년을 동네에 살았지만

올해 처음으로 그 멋을 제대로 느끼는 것 같다. 

사소한 거 같지만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저 지나치기

일쑤인 게 우리네 삶이다. 

 

아무래두 계수나무만 특집으로 연재를 해 봐야 거

같기두 하다.

 

그렇지 아니한가?

 

이토록 예쁜 봄의 나무잎새를 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봄이 아름답다 해도 적시에 봄을 주시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찾을 게 없을 것이다. 될수록 가까운

곳에서 매일매일 변화하는 봄을 예리하게 포착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앞산으로 올라가 본다.

산중에서도 봄의 잔치가 멋지게 열리고 있었다. 

그래 이것이 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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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도대체 이제 어딜 가야 구경을 할 수

있는 게냐?

 

매화 산수유보다 훨씬 이른 계절에 피어나는

꽃 아닌 꽃!!

 

근데 도대체 버들강아지는 왜? 우리 주변에서

흔적을 감춘 걸까? 

 

그나저나 버들강아지가 이쁘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여튼 인간들은 버들강아지를 잘라버리기 시작

했고, 봄의 최전선에서 예쁘게 피어나는 그들을

찾아보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워지고

말았다^^

 

버들강아지에 대한 글을 대략 3번 정도 올린것같다.

그래도 자꾸 버들강아지를 떠 올리는것은 나름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 버들강아지를 찾으러 용인 남부지역부터 백암일대

더 멀리 죽산 용설 저수지~ 일죽 청미천 주변까지 쭈욱

찾아봤지만 그 어디에도 버들강아지는 보이지 않았다. 

 

분당의 중앙공원 앞 개울에서 탄천에 이르는 그곳에

전에는 버들강아지가 꽤 많이 식재되어 있었지만, 

어제 가보니 다 잘려 나가고 없었다. 

 

혹시 버들강아지가 괜찮게 자라고 있는 곳을 아시는 분

계시면 댓글에 부탁드려 봅니다. 

 


 

Lo Que No Se Dijo

 

 

 

 

 

 

2026.3.8 분당 중앙 공원 앞 개울에서~

겨우 몇 그루 찾아냄!

북해도 키로로 스키장(2012년)

 

 


 

인생길 나그네길 / 나레연 

 

 

 

 

 

사나이 한번 나서

고향에만 살 수 있나~

 

젊어서 한때라면 고생을 살자

부모님 슬하 떠난 이 못난 자식^

.

 

하여튼 이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나훈아의 초창기 곡이지만 많은 분들이 이 노래를 잘

모르는듯 한데, 

 

녹음도 당시 노래방에서  한 것이라 썩 깔끔하지는 않지만, 웬지

이 노래를 들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낀다. 

 

' 그래 한번 해보는 거야~ 까잇거 인생이 뭐 별건감? ' 

 

그러나 실상 세상은 만만치 않고 무슨 일이든 맘 먹는다고 다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살아가다 보면 벽에 부딪쳐 쓰러질 때도 좌절할

때도 많다.

 

아무튼 사나이 건 가스나 건 한번 태어나서 고향에만 묻혀 살 수는 없는 일! 

고향에만 살았다 해서 누가 뭐랄것도 없는 거지만~

 

그 고향이 못나서도 아니고 살기 힘들어서도만도 아니다. 우연찮게

떠나는 사람도 있고 작정하고 떠나는 사람도 있다. 

아예 외국으로 영영 떠나는 사람도 많다. 

 

지난 연말 고향에서 옛 친구 둘을 만나 점심을 같이했다.

예전에는 자주 만나 산삼주도 얻어먹고 포도밭에서 유명한 안성 포도도

실컷 따서 먹기도 했는데, 어쩐 일인지 서먹해지며 잘 안 만나게 되었었다. 

이 친구들은 하나같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중학과정을 겨우겨우 마쳤지만,

한 친구는 농장으로 또 한 친구는 천막과 필터 공장으로 자립하여 멋지게 살아

가는 중이다. 

 

내가 어려서 초등학교때 소풍을 더러 갔었던 '물탕골'이라는 야트막한 야산에 있는

오리 고깃집에서 만났다. 그런데 그 옛날 풍광은 온데간데없고 낯선 모습에 

어디가 어딘지 분간조차 힘들었다.

 

 

아!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 는 옛 선인의 말씀도 다 헛것이구나.

산천이 의구하기는?  뭘! 

산천은 말할것도 없고 인걸도 온데간데 없는게 요즘의 우리네 고향인듯하다.

 

어떻게 이렇게 옛 모습이 무참하게 변했단 말인가? 

 

포도 농사를 거쳐 돼지 농장을 하고 있는 친구는,

 

' 난 이 나이 되도록 주민등록을 한 번도 옮겨 본 적이 없네 그려 ' 

 

그것은 내가 이제껏 이사를 스물여덟 번이나 했다는 말에 답으로 나온

거였다. 그렇게 수도 없이 이사를 다니고 살다가 결국엔 고향 일죽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용인에 안착한 나는 돌고 돌아 결국은 원점으로 회귀한 듯하다. 

 

삶이란 원래 그런 건가!!?

 

자~ 다시 노래로 돌아가서^

 

눈보라 치는 길이 

끝이 없어도

일곱 번 쓰러져도 

일어설 테다

나그넷길 

인생길

 

아무튼 이 가사를 접하면 힘이 불끈 솟는다. 

 

그래 다시 일어설 테다. 

나그네 길이 인생길이지 뭐 까잇거^* 

한번 해보는 거야~~!

 

그렇게 2026년이 시작되었지만, 사실은 뭘 해본다고

의욕을 불태운다기보다 이제는 조용히 어디 아픈데 없고

하루하루가 안녕하기만을 기원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은 이 노래를 불러본다.

 

사나이 한번 나서 고향에만 살 수 있나~ 

암^ 그렇구 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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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ng /Englishman In New York

 

 

 

눈이 푹~ 쌓인 벌판, 혹은 얼음판을 보면

시원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고 무언가 아늑한 

평온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웬지 그 안으로 들어가 휘휘 걸어

보고도 싶고 스케이트가 있다면 몇 바퀴 돌아보고도

싶다.

 

눈이 덮히 건 맨 얼음판이 건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저런곳엔 '절대 들어가지 말 것' 이란 경고가 붙여져있다.

얼음판 한 귀퉁이에는 숨구멍이라는 게 있어서 자칫 

방심하고 돌아다니다가는 그곳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꽝꽝 얼음이 두텁게 언 경우에 그것만 주의

하면 절대 얼음물속에 빠질 위험은 없을 것인데,

과도하게 주의를 주는 바람에 저렇게 멋진 얼음판을

아무도 들어가는 사람이 없게 된 것이다. 

 

물론 단 한 번의 사고보다도 안전이 우선임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서 그럴까? 

 

나 자신은 겨울이면 한 번은 꼭 저런 얼음판을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호수라고 해야 저 이상되는 거대한

그런 건 기대할 수 없지만, 뭐 저  정도만 해도 충분히 만족

이다. 

 

미루나무 한 그루가 멋지게 얼음판에 뿌리를 박고

늠름하게 버티고 있다. 그렇지만 나무는 무척 춥지 않을까? 

 

 

 

주변을 조금 더 돌아보니 이렇게 멋진 참나무가 하늘을

향해 가지런히 가지를 뻗고 있다. 연초록 잎이 나오는

4월 중 하순 정도에 와보면 너무도 멋질듯하다. 

 

 10여 일 이상 지속된 한파  덕분에 이렇듯 약간

내린 눈도 얼음판 위에서는 하얀 설원을 만들어 멋진

풍광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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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로로 

 

 


 

고향설 / 마로니에 

 

 

 

한송이 눈을 봐도

두송이 눈을 봐도 

그것이 고향 눈이라는 건데~

 

기껏 100년도 아닌 5-60년 전 만해도 이 나라에는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

먹고살기 위해 정든 산천을 버리고 타향으로 밀려들었고

그 이전에는 나라를 잃어 만주로 일본으로 중국으로 뿔뿔이

흩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흘러든 타향 객지에서 추운 겨울에 오들오들 떨며

내리는 하얀 눈을 보는 기분이 어떠했을까? 

 

햐~ 저것 참, 저거이 고향에서 보던 눈이랑 똑같네!!

소매에 떨어지는 눈도 뺨에 부서지는 눈도 그냥 예전 

내 고향에서 보던 눈과 똑같애!! 허허^* 

 

그래 타향은 낯설어도 눈은 낯익어^*

그래 이참에 고향노래나 한번 불러 보세나!! 

타향살이에 얼마나 지치고 고단했으면 내리는 눈을 보고

마치 내가 고향에 온듯한 생각을 했을까? 

 

지금 이 시간 2026.1.12일 오후 3시 반 ~ 

용인 이동면 창가 건너편에도 눈이 내리고 있다. 

가사에 등장하는 모란눈은 아니지만 약한 바람에 사선을 

그으며 흩날리고 있다. 

 

눈은 겨울철 최대의 낭만 중의 하나지만 도회지 사람들에겐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일단 출퇴근이 무엇보다 걱정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리는 눈을 보면서 아무 생각도 없이 걱정만

앞선대서야 어찌 그걸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눈에 빠지고 눈 때문에 자빠지고 눈 때문에 새를 잡고 

밤 깊도록 아랫동네에서 놀다가 집에 가려고 문을 여니

하얀 눈에 달빛이 희미하게 비치던 그 시절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이름조차 기가 막히게 지은 백년설 ~ 이분이 부른 노래가

바로 고향설이다. 

 

물론 지금은 당시만큼 고향을 그리는 이도 적어졌을 테고 

고향이 무슨 신줏단지 같은 그런 존재는 더더욱 아닌 시절이

되긴 했다. 또 고향이라고 찾아가 봐야 오히려 타향, 내가 살고

있는 동네보다 더 낯설게 변했고 아는 사람도 거의 없음을 

누구나 느끼실 것이다. 

 

낮선 동네에 살아보니 적어도 5년 길게는 10년은 지나야 겨우

내 동네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해서 가슴 한편에 아련히 남아 있는 고향의 그림자 고향의

냄새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그런 것이리라. 

 

노래 1절과 2절 사이에 간주에서 커다란 눈송이가 팔랑팔랑

바람에 휘날리는듯한 그 느낌을 받으신다면 아마도 이 노래를

올린 보람이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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