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orpions / Hollydays
1976년 2월의 쌀쌀한 날씨에 졸업을 하고 이제 50년이
흘렀다. 대학 4년은 참 하나의 점 같다고나 할까?
4년의 12배 이상의 세월이 흘러갔으니 그저 세월이
무상하다고만 하기에는 그렇고 실제 시간이 많이도
흘러가 버렸다.
졸업 20주년 행사를 한지가 까마득히 멀게 느껴진다.
그 이후 모교를 방문한 건 손에 꼽을 정도다. 뭐 특별히
방문을 할 이유도 없었고 그저 간간이 총동창회 행사에
몇 번 참석을 했을 뿐이다.
우리 기수가 관악산으로 이전한 첫 졸업생이었다.
사실 72년에 입학해서 76년에 졸업을 했지만 그 시절은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과 10월 유신으로 이어지면서
극심한 정치적 긴장이 계속되었고 거의 하루도 학교가
편한 날이 없이 휴강이 밥 먹듯 계속되던, 시위가 일상이
되던 때라서 캠퍼스의 낭만같은거는 기대하기 힘든 시기
이기도 했다.
국가적으로도 불행했고 우리도 불행한 시기에 대학을 다닌
셈이다. 그나마 무사히 졸업을 한 것만도 감사할 일이다.
하여튼 초창기의 썰렁했던 관악캠퍼스는 50년을 흐르면서 많이
변화했고 수목도 울창하게 자랐다. 이 모든 것이 한 두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것이 아닌 모두의 협심 결과물이라 생각을
하게 된다.
조금 일찍 행사장에 도착해서 학교를 전반적으로 둘러볼 생각
이었으나 근래 고관절이 좋지 못해 많이 걷기가 힘들었다. 캠퍼스
위 아래를 훓으며 사진촬영을 해 보려 했으나 결국 간신히 약대
건물만 찾아보았다.



교수회관 쪽으로 먼저 올라갔으나 그곳이 꽤 높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아래 전망은 거의 없었다.
오늘도 교수회관에서는 결혼식이 열심히 열리고 있었다.


드디어 약대 본관 쪽~


건물들은 최신식으로 말끔하게 지어져 있었다.

초대 학장 한구동 교수님

그리고 왠지 숙연하달까?
가슴이 웅장해지는 약학 이란 두 글자!



마로니에는 옛 문리대의 상징이었고 지금도
이렇게 잘 자라고 있었다.
단풍나무는 관리가 소홀했는지 가지만 앙상하다.
잘 자랐다면 많은 꿈을 이 가을 학생들에게 선사했을 텐데~

거의 많은 교수님들이 이미 작고하셨다.




역사관에 들러 몇점 찍어본다.
옛날 연건동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랄 수 있다.


확실히 졸업증서는 옛날이 멋지다.
순 한자 때문일까?

교실을 살짝 들여다봤다.
깔끔하다. 책상도 의자도 예전의 일체형 보다는
월등 좋다.

평생 학자다운 면모를 보이신 이상섭 교수님~
교수님은 거의 성직자 정도의 모습을 견지하셨다.


어떻게든 전체 캠퍼스를 조망하고 싶었지만,
너무 건물들이 오밀조밀해서 이 정도가 끝이었다.
좀 답답했다.
물론 관악산을 한참 올라가면 가능했겠지만,


사범대학 앞에는 박은식 선생의 흉상이
이렇게 세워져 있었다. 무슨 까닭일까?

버들골 아래쪽에서 겨우 관악산이 빼꼼하게 보인다.





우리 동기 80명 졸업 중 17명이 참석했다.
그 정도? 할지 모르지만 실상 많이 참석한 것이다.
행사는 얼추 끝나가고 나는 조금 일찍 서둘러 나왔다.

혹시나 해서 높은 쪽으로 올라가 봤지만,
기대했던 전망은 나오지 않았다. 저 멀리 남산 타워가 가까이
보였다. 관악산이 이렇게나 서울중심에서 가까이 있었단 말인가?
4년 전 입학 50주년에도 참석을 했었지만, 그 사이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우리 윗 기수 선배님들은 거의 볼 수 없었던 게 아쉬웠고 젊은이들
중심으로 변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동기들 얼굴을 보니 반가웠고 50년 이상 현업에 종사
하는 친구들도 많아 뿌듯했다. 건강하게 이렇게 참가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졸업 60 주년에도 함께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 *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다 좋았지만 딱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었다.
그것은 서울대학 관악 캠퍼스가 너무 비좁다는 것이다. 관악산 기슭이
아무리 넓다한들 모든 단과 대학들이 모두 모여 있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세월따라 건물은 점점 더 늘어나게 되고 캠퍼스의 빈 곳이라고는
찾아 보기 어려운 지경이 되고 말았다. 마치 서울 도심의 빽빽한 아파트
촌처럼 되고 만 것인데,
이것은 진정 캠퍼스의 이상적인 모습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생각
된다.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지만 애초에 각 단과대학이
단독으로 존재하던 그 모습이 훨씬 좋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처음 관악캠퍼스가 설계된 이유가 당시 극심했던 대학 시위와 무관치
않았음은 다 아는 사실이고 해서 효율적으로 통제 가능한 방법을 찾다
보니 관악산이 설정된 것이 아니냐? 는 시중에 루머도 있었지만, 서울대학
통합 논의가 1960년대 부터 쭈욱 있었다고 하니 통합의 필요성은 일찍
부터 제기되었다고 보여진다.
문리대, 공대, 상대, 농대, 의대, 법대, 약대 등등이 제각각 떨어져서 나름의
멋을 보여주던 시절이 그립다. 그립다는 것은 현재의 콩나물 시루같은 건물의
난립 때문에 그런 것이지 사실을 말하자면 약대의 경우엔 그때 보다 현재의
상황이 훨씬 나은 것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하버드 케임브리지 컬럼비아 같은 유수의 대학 캠퍼스를 떠 올리는 것이
괜한 일일까? 고풍스럽고 전통이 내려앉은 고색창연한 건물과 아름드리
고목이 울창하게 어우러진 캠퍼스에 여유가 가득한 그런 공간이 학문의
전당이 되어야 하고 우리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을테니까~
과연 지금의 서울대학 관악 캠퍼스는 앞으로 100년 후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나 개인적으로는 졸업 50주년이 되어 이제 와서 많이 아쉬운점이 있다면
일생일대의 명운을 걸고 한번 공부에 매진하지 못한 부분이다. 여러 내, 외의
여건과 과목에 흥미가 없었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사나이로서 사생결단을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땐 왜 그리 공부가 재미가 없었을까?
허나 뭐 어쩌랴!!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고~~
나는 지금 여기에 서 있다.
서울대학이여~ 영원하라^*
'포토 에세이, 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가을들판에 서면 (2) | 2026.09.19 |
|---|---|
| 개미들의 행렬 (0) | 2026.07.14 |
| 용인시약사회 BMW 모임(2026.7.11) (2) | 2026.07.14 |
| 옥수수 이삭 예찬 (0) | 2026.07.11 |
| 봉다리 수국 (0) | 2026.06.1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