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몇 정거장을 지나
거의 내릴때 쯤 전철 바닥에 작은 메뚜기 한 마리가 앉아
빙빙 돌며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었다. 제 딴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까? 나름 판단을 하는 것 같았다.
한 1분 후면 나도 내려야 하는데, 저 메뚜기를 잡아서 전철역을
빠져나가 풀밭에 날려 주고 싶긴 한데,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전철 바닥에 꾸부리고 앉아 메뚜기를 잡는다는게 좀체 내키질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오가는 발길에 밟혀 꼼짝없이 죽을
운명의 메뚜기가 안쓰럽기도 했다. 필경 저 메뚜기는 누군가의 옷
깃에 붙어 멋 모르고 여기까지 온 게 분명했다
잠시의 망설임 끝에 " 에잇 이 정도의 용기도 없어서야 어떻게 하
는가?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고 사실 그건 용기랄것 까지도 없는
일이긴 하지만, 설령 바닥에 주저앉아 메뚜기를 잡은들 그 누가 관심
있게 보기나 할 일인가? ㅎㅎ
그러나 도망가려는 메뚜기를 온전히 잘 잡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어차례 숨바꼭질을 한 끝에 간신히 녀석을 손에 잡는 데 성공했으
나 곧 이어 메뚜기는 한쪽 다리를 내 손에 떨구며 휙 하고 다시 날아
갔다.
다리가 저리 쉽게 떨어지는 걸로 봐서 이건 필시 적에게 잡혔을 때
다리 하나쯤은 버려도 상관없는 탈출 방편인 거 같고 살아가는데 지
장이 없거나 시간이 지나면 다리가 다시 재생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날아간 메뚜기가 출입문 앞에 앉은 걸 보고 전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려 메뚜기 뒤에 발을 살짝 가져다 대니 역시나 문이 열리자 밖으
로 휙 날아갔다. 나는 훨씬 마음 편하게 이번에는 메뚜기를 잡을 수 있
었다. 아무도 전철 밖에서는 나의 메뚜기 포획을 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손에 잡힌 메뚜기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흡사 강아지를 안고
다니는 사람들을 연상하며 개찰구를 지나고 에스컬레이터를 두 번
거쳐서 드디어 밖으로 나왔다. 입구 밖에는 바로 풀밭이 있었다.
햇볕이 쨍하게 비치는 초가을 풀밭을 향해 메뚜기를 날리니 녀석은
이때다 싶게 앞으로 날아 올라 풀숲에 떨어졌다. 그리고 금세 풀 속을
헤집고 들어간다.
다리 한쪽이 떨어진 저 메뚜기는 앞으로 잘 살아갈까?
예전에는 가을 벼가 누렇게 익으면 논두렁을 걸을 때 메뚜기가 양 옆
으로 교차해서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많이 날아올랐다. 메뚜기를 잡
아 솥에 넣고 볶아 약간의 소금을 쳐서 먹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메뚜
기를 잡아먹기까지 했던 내가 이제 한 마리의 메뚜기를 살려 본다고
이런 일을 하다니! 참!
세월이 흘렀네, 생명을 좀 귀하게 여기게 되었나 보다~등 뭐라고 설명
은 할 수 있겠지만, 이건 단지 어쩌다 한번 우연찮게 일어난 일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쩌면 인간은 누구라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거!
그저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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