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 maronie

 

 

 

봄이 온다

 

저 만치서 손짓하며 온다

 

오는 봄은 어차피 온다. 아니 가는 봄도 어차피 간다!

이제 봄이 오네 마네 가네 마네 하는 얘기만큼 진부한 표현은

없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아니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봄은

오게 되어 있고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누가 더 봄을 깊게 심오하게 가슴 가득히 받아들이냐는 중요치

않다. 아니 중요할 수도 있다

 

나의 봄은 형편 없었다~ 너의 봄은 정말 행복하고 의미 있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없지! 형편없건 행복했건 그런 건 봄에게는

상관할 일이 아니다.

 

봄은 천지 만물에 공평하게 내려왔고 속속들이

비추었고 모두에게 나눠졌다.

 

누가 얼마만큼 그 빛을 받아들이는가는 오롯이 자신의 몫일뿐!

 

 

봄을 많이 아주 많이 내 가슴속에 품고 느끼고 삭여냄이

클수록 삶이 풍요해질까?

 

반대로 오는지 마는지 느낄새도 없이 후다닥 지나가 버리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걸까?

 

그야 알 수 없지! 그 역시 온전히 각자 개인의 고유 영역이니까~

 

그러나 분명한 건 하늘하늘 오는 봄이 내 마음에 아무 느낌을 주지

못하면 아마도 인생의 끝에 다 달았거나 더 이상 삶을 이어갈 이유가

없어졌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것이 어디 봄 뿐이랴!!

 

 

*

 

아내와 가까운 남사에 있다는 화훼 하우스를 찾았다. 제2 동탄 신도시

를 지나 플라자 cc 옆길을 따라 내려 간다. 아직 몇몇 건물들이 좀 들어선

것을 제외하면 2-30여 년 전 이 지역을 지날 때와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논도 그대로 밭도 그대로 산도 그대로 나무도 그대로이다

 

남사 화훼 하우스엔 차를 댈 수 없을 만큼 인산 인해였다

 

아니 이 분들이 뭐야? 봄을 느끼겠다고 이리들 야단이란 말인가?

우린 겨우 오늘 처음 찾았는데!

 

아니 봄의 그 미세한 기운이 사람들을 불러낸 것일게다~

 

사람들은 왜 봄이면 꽃을 찾을까? 아파트 베란다에 혹은 집안 마당

어딘가에 혹은 방 안에 조그마한 꽃 모종을 한둘 놔두고 싶은 건 왜

그럴까?

 

 

비닐하우스엔 각종 꽃이며 구근이며 이제 싹이 돋아나고

잎이 돋아나는 각종 봄의 어린 전령들이 즐비하게 우리를

맞이하는 중이다.

 

아! 봄은 이런 곳에서 먼저 느낄 수 있는 거구나!

 

 

영락없는 병아리 주둥이다

 

사람들은 꽃 모종이며 작은 화분이며 하여튼 이런저런

것들을 한아름 가득 집어서 계산대로 향한다. 아내는 대략 3만원

어치쯤 값을 지불했다.

 

옆에 나란히 붙어있는 야생화 단지로 발걸음을 옮겨가 본다.

 

생각보다는 거긴 꽃은 아직 많지 않았다. 아! 그런데 야생화는

왜 이렇게 꽃이 작은 걸까? 노루 궁둥이 꽃은 많이 봐 왔지만

왜 그 이름이 노루 궁둥이 인가는 이제 막 돋아나는 밑바탕을 보니

이해가 된다. 영락없는 노루의 궁둥이였다. ㅎㅎ

 

같은 꽃인데도 봄에 보이는 꽃은 더 신선하고

더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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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즉 2020년은 코로나 19의 여파로 골프가 많이 위축될 걸로 예상을

했는데, 웬걸 그 정 반대였다. 해외여행이 금지된 바람에 그 수요가 오롯이

국내로 몰렸고 해서 국내 골프장은 난리도 아니게 순풍을 맞았다

 

골프장은 발 디딜 틈이 없어졌으며 예약 잡기도 매우 어려웠다. 그뿐인가?

그린피도 살짝 올랐고 한 여름 혹서기 그린피 할인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거기에 더해 의기양양해진 골프장 측은 2021년 연부킹 제도를 아예

없애기 까지 했다.

 

밀려드는 골퍼 때문에 1년 내내 시간이 예약되는 연부킹이 이젠 귀찮아진

것이다. 그거 없어도 손님이 몰려드는데 뭐할라 연부킹이니 뭐니 해서

성가시게 영업할거냐 뭐 이런 것이다. 혹시 내가 미처 모르는 속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거기다 그린피도 약간씩 더 올려야 한다고 벌써부터 야단을 하고

있는데,

 

일찍부터 골프의 가성비를 생각해온 처지에 이런 모든 게 반가울 리가 없는

필자지만, 그렇다고 골프를 때려치울 것이 아닌 이상 일단은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최선은 무엇이냐를 생각

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다.

 

그건 그렇고 추운 겨울 내내 골퍼인 나는 무엇을 할 것이냐이다. 연습장 가기도

그렇고 필드는 더더욱 그렇고 동네 1층에 있던 스몰 연습장 마저 문을 닫아 버렸으니

그냥 어물어물하다가는 골프의 감을 정말 상실할지도 모른다.

 

골프의 대 외적 악재에 내적 악재까지 겹쳐 썩 좋지 않은 상황이 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에덴 블루의 새벽

 

몇 년 전부터 꾸준히 해 오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아침 출근 전 퍼팅 연습을 하는

거다. 사실은 허리를 구부리고 퍼팅 연습을 하면 대장 운동이 활발해져서 아침

일을 보기가 수월해지기 때문이었다.

 

3m짜리 퍼팅 매트에서 순 방향, 역 방향 이렇게 대략 2-30 여개의 공을 퍼터로

굴려 보는 연습이다. 이런 거 없이 필드에 나가면 왠지 퍼팅 시 공이 남의 무엇인

양 어색함을 느끼기 쉬운데, 이렇게 매일 연습을 조금씩 하면 그런 어색함이 사라지

기 때문이다.

 

그리고 굵은 고무줄 약 1m짜리를 스윙 모션으로 휘둘러 주는 것이다. 이것은 그냥

몸이 굳는 걸 최대한 억제하고 곧 이어 드라이버나 기타 우드를 빈 스윙하기 전

예열 과정이라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이것 또한 오랫동안 매일 아침 해 오고

있는 나의 습관중 하나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드라이버 빈 스윙을 하루에

대략 10여 차례 많을 땐 20여 번 정도 휘둘러 준다

 

아니 골프는 가성비가 낮다고 누누이 말씀하시면서 무슨 그런 걸 매일 하시나요?

 

이런 질문을 하실 수도 있으나 가성비가 낮으면 골프를 자제하면 될 일이지

그렇다고 아예 골프를 외면할 것 까지야 없지 않을까? 이것이 나의 생각이다.

물론 골프 칠 돈이 충분히 예비되어 있다 해도 과거처럼 물불 안 가리고 필드

로 달려가진 않겠지만 말이다

 

" 아니 그래서 실제 필드에서 무슨 큰 도움이 되나요?"

 

당연 도움이 될 걸로 예상을 한다. 필드를 밥 먹듯 다니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집이나

연습장에서 줄곧 연습도 안 하면 무슨 수로 골프를 원활하게 칠 수 있단 말인가?

 

혹시라도 골프에 대한 생각이 저와 비슷하시다면 즉 필드 자주 갈 생각은 별로 없다면

위의 방법이나 혹 다른 유사한 어떤 방법이라도 쭈욱 해 나가시면 분명 내적 갈등을

줄이면서 골프는 즐겁게 하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이런 정도는 아주 최소한의 감을 잃지 않게하는 수단 중 하나이다. 보통 아마추어

들이 프로가 아닌 이상 매일 연습을 할것도 아니고 그냥 손 놓고 한 겨울을 허송 세월

하자니 너무 아깝고, 해서 적어 본 글이다.

 

나는 이 보다 훨 좋은 방법으로 매일 훈련하고 있어요!! 이럴 분도 당연 계실것이다.

그러나 별 수가 없다면 이 정도라도 매일 조금씩

해 보는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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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엔 마음도 푸근! 시간도 푸근!

아주 천천히 차를 몰고 고향 뒷산을 다녀오는 길에

백암에서 예의 그 순댓국을 연 이틀 2번이나 먹게 됐다

 

그런데 날도 어둑한데 이 고목이 눈에 띈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이 동네를 그토록 많이 지나다녔는데 이제야 이것이

보이다니! 난 어느 동네든 길을 가다 고목이 보이면 차를 세우고

내려서 사진을 찍는다

 

 

 

 

백암을 가로지르는 동네 개울가에 자리한 이 나무~

 

아니 어떻게 이런 나무가 이 동네에 있었지? 도대체 무슨 나무일까?

첫 눈에 봐서는 한 500년? 아니면 1000년은 됨직한 그런 위용이었다

 

 

혹시 일본 우레시노 서광사에서 보던 그 나무 아닐까? 가서 푯말을

보니 같은 나무는 아니다

 

참고로 우레시노의 서광사에 있는 820년 된 구스 나무를 아래 올려

본다. 아래 팻말에도 나와 있지만 이 나무는 장뇌의 원료가 되고

우레시노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라고 한다

 

800년이 넘은 나무 치고는 그리 거대한 면모가 보이는 건 아니

지만 가지에 푸른 이끼가 끼어 고풍스러움을 더해준다

 

백암의 이 고목 주변에는 주택이 붙어 있고 전신주가 나무 옆

에 가까이 있어 온전한 나무의 풍모를 보여주는데 한계가 있긴

하다

 

하늘을 뒤덮을듯한 나무 가지는 이렇다

 

이 나무는 왕버들이라는 거, 수령은 고작 150년!

어떻게 나무가 150년에 이렇게 거대하게

자랄 수 있을까?

 

 

 

봄이 오면 제일 먼저 잎이 나오는 것이 버들이다

또한 버들은 가을에 제일 늦게 까지 푸른 잎을 드리운다

 

저 개울가에 봄이 한창일 때 과연 이 왕버들 나무엔 어떤 잎이

솟아날까?

 

 

왜? 자연은 한 번에 모든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우리의 눈은

어째서 보는 것만 줄곧 보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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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마지막 일요일, 고향을 가고 싶은 게 아니라 고향

저편 뒷산 노승산을 한번 올라가 보고 싶었다.

 

해발 310m! 이것도 산 인가? 그렇다 산이다!

어릴 적엔 그 보다 높은 건 없었다. 멀리 마을 뒤편으로

거대하게 솟아 있던 산! 세상에서 제일 높던 산이었다.

 

암튼 그 산을 근 60년 만에 올랐다. 가까워도 자주 가지 않던

산~ 산을 갈 필요를 못 느끼며 살던 바로 그 산!

 

노승산 원경사

노승산 뒷편으로 예전부터 있던 절, 그러나

아마도 처음 가 보는 절! 그 옛날에도 이곳 절을 가 본 적은 없다

마치 가야산 해인사를 들어가듯, 내설악 백담사를 들어가듯

호기심을 가지고 들어간다!

 

이렇게 작은 규모의 대웅전을 보는 것도 처음이다

 

범종루 아래 약수물이 나온다

 

종루 아래 위치한 이 샘에서, 먼저 산을 올랐다 내려온 후 나는

물을 한통 길었다. 물론 복전함에 약간의 지폐를 넣었다.

 

저 아래 동네가 내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동네이다

그 누구라도 만약 고향의 전경이 보고 싶으면 이렇게 고향 주변 산에

오르면 될 것이다

 

 

노승산 정상에서 그야말로 기념 사진을 남긴다

 

비록 야트막한 야산이지만 산 뒤편으로는 굵직한 참나무며

오래된 소나무가 상당히 많았다. 또 오동나무도 몇 그루 있어

5월 초쯤 오면 신선한 꽃을 볼 수 있을듯했다.

 

조촐하게 자리 잡은 원경사 전경, 주변에 유독 소나무가 많다

 

 

산 북쪽으로 본 이천군 설성 방향! 멀리 금당 저수지가

보인다 맞은편 봉우리가 설성산 인 듯!

 

 

 

노승산 남쪽 편 즉 일죽면 쪽으로는 어떤 물류 회사가 산을 사 들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무슨 다른 용도로 산을 구입했다가 여의치

않아 물류창고 부지로 전환했는지 정확치는 않으나 아무리 높지 않은

산 이라 해도 산 중턱에 창고를 짓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이미 일이 이렇게 진행되고 말았으니 어쩔 순 없다 해도

멀쩡한 산을 파헤쳐 이런 공사를 한다는 게 과연 제 정신

으로 하는 걸까? 국토의 70%가 산이라 하지만, 글쎄~

 

떨떠름한 마음을 안고 산을 내려온다. 아까 첨 올라갈 때

보았던 소나무 숲이다. 꽃무릇을 식재해 놓았다. 9월 말쯤이면

예쁜 꽃이 필 것이다.

 

 

노승산 절 - 원경사 인 줄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초등학교 시절

누님들 따라 올라가서 가재도 잡아 보았고 산철쭉이 필 때 산에

올라 뿌연 운무에 신비롭게 산 등성이들이 보이던 그곳!

 

가을이면 겨울 땔감을 구하기 위해 1주일씩 동네 합동으로 영

나무란 걸 하던 산, 어린 나에겐 모든 신비로움의 대상이던 그곳

이른 봄 칡뿌리를 캐러 두리번거리던 산!

작은 폭포까지 있던 산이다

 

 

그러나 지금 노승산은 좌우 앞으로 너무 유린을 당하고 있다

남 쪽으로는 물류 창고 공사로 초토화가 되어 산의 원형을 거의

찾기가 힘들다. 서 쪽 옆구리로는 호국원이라는 장묘터가 들어

와 역시 산의 원형은 상당 부분 훼손되었다.

 

겨우 310m짜리 산에 어째 이리 시련이 많을꼬!

겨우 북측에 자리한 원경사로 인해 간신히 원형을 유지하는

중이다. 노승산이 이제 더 이상 훼손되는 건 불가하다. 산의 원형

을 이 상태라도 유지하고 전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영원히 일죽이란

동네를 품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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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월요일 밤(2.8일) 이 프로를 보신 분도 계실터인데,

사실 요 근래 트롯 경연을 비롯하여 상당수의 경연 프로가

막을 내린 바 있다. 미스 트롯 2를 비롯하여 아직 진행 중인

프로그램도 있긴 하지만,

 

어제 씽 어게인 최종전에서는 이승윤이 우승을 했다. 시청자

와 평가자 모두가 각자 개성이 다르다 보니 누가 우승을 해도

특별한 불만은 없을듯하다. 나 개인적으로는 정홍일의 그 시원한

보컬이 우승을 하기를 바랐지만 시청자 국민투표가 아무래도 젊은

가수에게 표를 많이 준 덕에 이승윤으로 낙점이 되었다

 

 

 

처음부터 프로를 본 건 아니고 중간 어디쯤부터 시청을

하기 시작했는데, 월요일 밤 10시 30분부터 시작을 하게 되어

KBS의 가요무대와 겹치는 시간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워낙

트롯 경연이 불붙다 보니 가요무대를 보는 눈이 예전과 달라

졌고 피 튀기는 경연 출전자 보다 왠지 맥이 빠져 보이는 가요무대

를 점차 외면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채널을 돌린 게 JTBC

의 씽 어게인이었다

 

여기서 제가 말하려는 것은 프로그램의 공정성, 수준, 인기도, 이

프로가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 등등이 아니라 10년 무명, 20년

무명이 거의 대다수인 출전자들에게 노래를 해 볼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해 줬다는 커다란 공헌 이외에 시상 방법의 문제를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함이다.

 

 

결론적으로는 왜 노래 경연은 골프나 테니스 같은 그런 시상 방식을

택하지 못하는가 이다.

 

과연 프로 골프 한 대회의 영향력이 이런 노래 경연대회보다 월등히

파급력이 크고 대회를 스폰하는 기업의 광고효과가 수십 배 이상으로

전파력이 큰 것일까?

 

일단 한국 국내로 한정을 해 보자. A 기업이 프로 골프 대회 하나를

개최하려면 최하 5억 많게는 2-30 억 정도의 비용 부담을 한다.

그리고 대회는 4일 만에 끝난다. 상금은 우승부터 본선에 진출한 모든

선수에게 차등 지급된다. 물론 우승 상금이 압도적으로 많은 건 사실

이다

 

그러나 2위부터 본선 진출자 꼴찌까지 전부 상금의 일정 부분은 지급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시행되어온 모든 노래 경연 프로가 재작년의 미스 트롯 1

에서는 우승자 1인에게 겨우 3000 만원이 지급되었고 이제 상금 액수

가 1억으로 증액되었다는 것 외에 출전자 들에 대한 어떠한 배려가 있다

는 걸 들어 본 적이 없다. 이것이 왜? 그럴까?

 

골프는 출전 엔트리가 1백 몇십 명으로 아예 못 박혀 있다. 그들만이 1년간

모든 대회에 출전을 할 수가 있다. 대회 스폰은 1개 기업이 맡는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일반 국민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과연 1개 골프

대회와 방송국 주최의 노래 경연대회 어느 것이 더 영향을 미칠까?

물론 광고 효과가 가진 파급력을 따진다 해도 말이다

 

평균 6개월여에 걸친 피 말리는 경연의 결과 치고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는 게 나의 개인적 생각이다. 물론 최종 출전자들은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

을 알리게 되고 이후에 여러 경로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최종 1등 우승자에게만 상금을 주는 게 과연 적절한

방법일까?

 

희망 사항이지만 상금의 액수를 대폭 올릴 수는 없을까? 적어도 현재의

10배 정도는 올려야 우승자뿐 아니라 2,3등 기타 Top 10 기타 본선 진

출자 수십 명 정도에게 상금을 수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까지 했

으니 다음은 당신들이 알아서 해봐라! 하는 게 방송국의 태도가 되어서는

뭔가 좀 부족하다 할 것이다. 혹은 국민 정서상 노래하고 놀고 무슨 상금을

저렇게나 많이 주냐? 하는 동떨어진 정서를 퍼트린다고 우려를 할수도

있겠지만,

골프대회를 참고하면 충분히 답이 나오지 않을까?

 

우리와 사정이 다르지만 미국의 남자 골프대회는 통상 상금 규모가 대회당

크게는 1000만 달러를 넘는 것도 있고 적어도 5-600 만 달러나 한다.

우리 돈으로 6-70억 에서 100억이 훌쩍 넘는 규모다 과연 우리의 노래 경연이

이들의 1/50, 1/100 수준도 안된다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대회의 결이 다르고 스폰하는 기업의 홍보 효과가 전혀 다른 차원이란걸

모르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이런 글이 찻잔 속의 떨림도 안될지 모르지만 영향력 여부를 떠나서 한 번쯤

의문을 품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해서 적어본 소회일 뿐이다.

 

그렇다!

노래 경연이 왜? 이런 방식에 머물러 있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소박한 질문인 셈이다

아직 초기 단계라 점차 달라질지는 모르지만!

 

 

노래가 주는 파급력은 결코 특정 스포츠에 떨어지지 않는다. 스포츠도 각본

없는 드라마라 해서 보는 이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그러나 노래는 스포츠보다 더하면 더했지 위로와 감동은 물론 시원한 해방감을

주는 크기가 결코 적을 수 없다고 본다.

 

골프나 테니스 농구나 배구 축구 등이 약간은 하드 웨어적 특성이 강하다면

노래는 장르를 불문하고 훨씬 더 소프트 웨어적 특성이 크다고 할 것이다.

 

향후 이 나라에서 펼쳐지는 노래 경연이 좀 더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그

상금 규모가 커지고 다수 출전자들을 좀 더 배려하는 쪽으로 발전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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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을 찾아오는 분들 중 가장 많은 경우는 무엇일까?

제1은 아마도 파스를 찾는 분들이 아닐까?

 


허리가 삐끗했다, 자고 일어 나니 목을 돌릴 수 없을 만큼아프다~

길 가다가 발목이 접질렸다, 주부들 중 상당수는 안 하던 일을 많이 해서

손목이 아프다, 등등

 

심지어는 강아지 데리고 가다가 목줄에 몸이 감겨 넘어져 갈비뼈가 금이 갔는지

의심스럽다는 이가 없나 참 다양하고 기기 묘묘한 환자가 많다.

 


그러나 파스의 종류는 그렇게 다양하지 않다. 케토톱으로 대변되는 살갗에 붙인 후

유효 성분이 시간에 정비례하여 쭈욱 흡수된다는 제품류부터, 한방을 이용한 한방파스,

동전 크기의 동전파스, 습포제를 동반한 제놀 종류의 제품 등으로

구분할 수 있을듯하다

 


나 자신도 오래 골프를 치다 보니 고질적인 손목 통증을 갖게되어 이것저것 여러

종류의 파스를 사용해 봤다. 거기다 최근엔 무거운 카메라를 왼손으로 지탱하다 보니

여전히 통증이 진행형인 셈이다.

 

나의 경우는 진통제 성분이 직접 들어가지 않은 한방 파스를 애용하는 편이다.

약간의 냄새는 나지만~

 


"냄새 없는 걸로 주세요~ " 허나 냄새가 없는 제품은 전부 진통제가 함유된 제품이다.

진통제가 되었건 뭐건 소비자들은 일단 빨리 안 아픈 걸 찾는다.

 

 

그런데 잇몸에 관련된 호소를 하는 분들도 의외로 많다.

젊은 사람들이야 잇몸의 문제가 뭔지 이빨이 무슨 속을 썩히는지 알 턱이 없지만,

틀니 소독제를 사러 오는 분들을 볼 때마다

 

" 아! 나는 제발 틀니 까지는 가지 말아야지~ "

 

차선책인 임플란트로 막을 수 있다면 훌륭하지 않을까? 를 늘 생각 중이다.

 

그런데 며칠 간격으로 연속 치과 처방을 들고 오는 분들을 보면

가끔씩 한마디 건네 본다.

 

" 왜 치과를 계속 오시나요? "

 

" 잇몸이 약해서 치료를 계속 받는데 영 안 좋아지네요~"

를 비롯해서 충치 치료를 하는 사람, 임플란트 시술 중인 사람, 사랑니를 뽑은 사람

, 등등 여러 경우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이 60 정도가 넘어서 이유 없이 이가 나빠지고 잇몸이 약해지는

경우이다. 사실은 글을 쓰는 나 자신도 치아 자체는 그다지 튼튼하게 태어나지 않은 편이라

나름 조심을 해 오긴 했는데, 적어도 10년 이전부터라도 이런 문제를 의식하고 대비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불과 2-년 전부터 겨우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예전엔 편균 수명이 60이 채 안 되었고 그 마저도 칫솔질을 제대로 안 해 치아

상태가 지금보다 훨씬 나빴던 게 사실이다. 거기다 과도한 출산으로 인해 나이 40만

넘어도 칼슘 부족으로 이가 많이 빠지고 단백질 섭취가 부실해져 거의가 60 이전에 죽고

만 것이다. 그러니 치아의 문제가 오히려 지금 현세대보다 역설적으로 적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90세 100세로 가다 보니 뼈의 문제가 예전과는 달리 큰 문제가 되고 말았다.

인체의 대들보가 되는 척추와 팔다리 그리고 영양 섭취의 첨병인 치아는 대체 몇 살까지

버티도록 애초 설계가 되었을까?

 

60년일까? 70년일까? 아니면 90년일까? 100년일까?

분명한 건 특정한 기간 일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람에 따라, 받은 몸 상태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아무튼 나이 60 정도가 되기 전에 어떤 대비를 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예전 60년 살던 인간이 영양 상태가 좋아졌다고 아무 대비도 없는데 90년 100년을

무탈하게 갈 수는 없을 것이란 점이다. 물론 지금은 현저히 의료의 혜택을 많이 보고

있긴 하지만!

 

즉 뼈와 인대 근육에 필요한 원료를 충분량 공급해줘야 함은 물론 이것들이 복합하여

넉넉히 우리 몸을 지탱해 줄 수 있도록 적절한 운동 등이 따라야 할 것은 물론이다.

 

 

오늘 이 동네 사시다가 멀리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신 70이 좀 넘은 고객분이

세 번째 치과 처방을 들고 오셨다.

 

" 도대체 왜 계속 치과를 오시나요? "

 

" 충치 이런 건 하나도 없는데, 잇몸이 좀 부실하대 "

 

나는 예의 위에 이런 문제를 한참을 설명드렸다. 그리고 현재 내가 하고 있는 방법을 또 말씀드렸다.

칼슘 마그네슘 복합체인 영양제품과 MSM 성분의 제품 2가지를 우선 꾸준히 1년도 좋고 2년도

좋으니 계속 드시라 했다. 사실은 향후 10년 이상이 된 들 하등 나쁠게 없는 일이지만~

 

물론 잇몸 염증과 부실한 치아를 보강하는데 위의 방법 외에 여러 좋은 방법이 당연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지만 일단은 내가 하는 방법을 소개해 드렸다. MSM 은 Powder로 해외 직구를

해서 한 동안은 치약 대신 양치질에 사용해 보기도 했었다

 

비타민 D 나 골다공증 제품도 좋으나 일단 흡수율 높은 뼈의 원료인 Ca 이 충분히 공급되어야

하고 급성 심장질환에 좋은 예방제인 Mg 또한 나이 들어서는 필수이다. 콜라겐이 함유된 염증

제거에도 좋은 MSM 역시 물론 요긴한 제품이다. 문제는 급이 좀 낮은 Ca 복합제품의 경우

우리 몸에 흡수가 너무 조금만 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우유 칼슘에는 의외의 패러독스라는 게 있다.

어려서부터 뼈 = 우유라는 공식을 누구나 알고 왔는데 최근의 연구 결과 이것이 사실과는

매우 다르다는 점이 밝혀졌다.

 

즉 우유를 많이 먹는 덴마크, 스위스 등의 나라와 우유 섭취량이 현저히 적은 중국, 아프리카를

비교한 결과 고령층의 고관절 fracture(파손) 율이 덴마크나 스위스가 훨씬 높다는 것으로 밝혀

졌다. 이것은 단순히 우유를 많이 먹어 칼슘만을 많이 섭취하는 것이 뼈의 건강을 무조건 담보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 준다.

 

2019년 악성 어깨 통증을 거의 1년에 걸쳐 완전히 회복할 때도 위의 성분들은 필수였다.

물론 추가로 몇 가지 성분을 더 복용했지만,어깨가 회복되자 복용을 중단하려 했는데,

그 유익함을 알고는 지금껏 3년째 쭈욱 계속해 오고 있다

 

좋은 칼슘 마그네슘 제품은 배합 비율이 2;1 정도로 알고 있는데 Ca 은 단순히 뼈의 조성뿐

아니라 체액의 Ph 조절, 골격근 평활근의 수축력 조절, 면역기능 유지, 혈액 응고의 필수 인자,

충분한 숙면 등에 필수적일 뿐 아니라 매일 마시는 커피, 술로 인한 Ca, Mg의 과도한 배설

증가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칼슘만 섭취했을 때 올 수 있는 뇨로결석, 칼슘의 결정화 및 혈관내 침착을 막고

체액 중에 Ca을 액상 상태로 유지시키려면 K, Mg, Vit-K2, K-citrate 등이 함께 함유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중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칼슘제품엔 이런 세밀한 성분 구성이 안 되어 있거나

부족한 실정이다. Ca-Mg과 V-D 가 함께 들어 있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잇몸, 치아의 문제를 손 놓고 보기만 해서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치과가 이런 예방적 차원의 모든 걸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먹는 음식으로 다 대응이

되는 것도 아니다.

 

잇몸이 약하신 분들은 이 점을 꼭 유념하셔야 할 것이다

 

 

 

 

 

 

 

 

 

 

 

 

 

 


학교 수업 시간의 홍문화 선생님은 그저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전문적인 약학 지식 이외에 약학의 밑바탕이 되는 철학, 역사, 기타 약에

관한 비밀스런 스토리 같은 걸 많이 말씀하신 걸로 기억이 나는 분이다^

그런데 언제인가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도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 내가 말야 어쩌다 우리 졸업생들이 하는 약국엘 가 보면, 대체로 침침하고

어둑해~ 그런데 약국 구석으로 내 팔을 잡고 가서는 하는 말이


" 선생님 제가 공부를 더 해서 박사가 되어 연구를 하거나 교수가 되었어야

하는데 이렇게 약국을 해서 뵐 면목이 없읍니다"


"이렇게 얘기를 한단 말이야~ 아니 왜 약국하는 게 어때서 떳떳하지 못하게

저렇게 말하는가 말이야! 여러분들은 그렇게 하면 안돼요! "


이렇게 말씀하신 걸로 기억을 하는데, 허나 당시엔 학교 다니며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단 말씀 정도로, 또 아! 그렇다면 약국은 졸업 후 해서는 안 되겠군

쯤으로 단순하게 이해했었다. 아마도 선생님 말씀은 졸업 후 어떤 일을 하더

라도 떳떳하게 당당하게 살아가란 의미에 방점이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느낀 바로는 서울대학 나와서 약국 같은 걸 해서야 되겠나?

서울대학은 그야말로 온통 아카데믹의 알파요 오메가요 그러니 교수 아니면

박사가 되어 연구자로서의 명성을 떨쳐야 할 것이라는 무언의 압박을 느낀 것이

사실이고 또 그것이 서울약대의 자부심의 일부였다고 생각을 해 본다.


선생님은 또 이런 말씀도 하셨다.


" 내가 말이야 이제껏 주례를 선 게 1500여 쌍이 된다고~ "


당시는 도대체 주례 1500 쌍이라면 어느 만큼 대단한 정도인지를 실감하긴

어려웠고 아무튼 주례를 부탁하는 졸업생들이 엄청 많구나~ 정도만 추측해 볼

따름이었다. 사실 보통 일생에 주례를 서는 횟수라는 게 몇 번 되기도 어렵고

100번 200번도 엄청난 횟수인데 1000번 이상이라는 건 가히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 아닌가?


1주일에 한번 정도 주례를 보셨다 치고 1500번이면 이게 햇수로 얼마가 필요

할까? 1년이면 대략 50주 10년이면 500주, 1500번이 되려면 얼추 30년은

꼬박 주말에 주례를 서셨어야 가능한 일 아닌가? 혹여 1주에 가끔은 두어 번씩

보셨다 해도 암튼 25년 이상은 그 긴 세월 동안 주말을 몽땅 주례에 바치신 것이니

이것은 특별한 아주 특별한 선생님의 주례에 대한 철학이 없이는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어찌 보면 그만큼 선생님의 명망이 높았다는 반증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학 졸업 후 몇 년이 지난 1979년 가을, 대학 동기인 김x식 군이 결혼을

하면서 나한데 결혼식 사회 부탁을 했다. 그리고 주례는 바로 그 엄청난 횟수를

자랑하시는 홍문화 선생님 이셨다. 당시 홍익대 미술 강사였던 김 군의 신부는

최연소 동양화 국선 입상 작가였고 미술계 선배가 가지고 있던 당시로는 최고급

승용차인 그라나다를 운전기사까지 딸려 보내서 흑석동에 거주하시던 홍문화

선생님을 모시고 오도록 하였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주례를 많이 서신 선생님께 너마저 또 주례를 부탁드렸다는 거냐?

너무 평범하잖아! 선생님 좀 그만 괴롭혀 드리지~ "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암튼 나는 부탁받은 대로 선생님을 결혼식장으로 모시고

가야만 했다


대나무가 담장을 삥 둘러친 흑석동 山 중턱의 선생님 댁은 단아하기 그지없었다.

지금처럼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에 선생님의 전화 구두 안내를 따라 용케도 금세

댁을 찾았다. 선생님을 모시고 남산 쪽에 있던 호텔 식장으로 차를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하얀 메모지에 볼펜으로 여덟 글자를 쓰신 후 건네주시면서 이렇

게 말씀을 하시는 거였다.


" 이제 자네들 졸업 동기 중에도 일찌감치 출세를 하여 돈을 많이 벌었네, 높은 자리

에 올라갔네 뭐 그럴 거야~ 그렇지만 그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지! 이 글자의 뜻은

말이야 인간이 지나치게 어떤 사람에게 폭 빠지면 덕을 잃게돼~ 그리고 물질, 재물, 즉

돈에 너무 탐닉 하면 그 세운 바 뜻을 잃게 되지! 그러니까 자네는 내가 써준 이 글의

뜻을 잘 새겨서 인생에서 낭패 보는 일이 없도록 하게나~ "


대략 이런 말씀으로 기억을 하는데, 선생님이 써주신 글자는 딱 여덟 글자였다

玩人喪德 玩物喪志


나는 이 메모지를 공손히 받아 품에 깊이 간직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

도록 집을 십여 차례 이상 이사를 할 때도 이 메모지만큼은 내 책장 한편에 고이 간

직하고 다녀서 최 근래까지도 보관이 되어 있었는데, 막상 이 글을 쓰려고 찾아보니

아들에게 책장을 물려준 때문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해서 당시 선생님의 필적이 남

겨진 메모지 실물 사진을 올릴 수 없는 게 매우 유감이다


물론 당시 선생님이 말씀하신 사람에 빠져 고생을 한적도 또 돈을 너무 벌어 아니면

고위직에 올라 뇌물 때문에 초심을 망칠 일도 없어 그다지 현실에서는 저 글자의 위력이

나 개인에게 발휘될 기회는 없었지만, 이 글의 출처는 서경(書經)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 원전의 뜻을 덧붙여 보고자 한다


* * *


《서경(書經)》의 여오(旅獒)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주 나라 무왕이 어느 날 서방의

먼 곳에 자리 잡은 여(旅) 나라로부터 큰 개 한 마리를 선물 받고 그 개를 좋아했다. 이

것을 본 태보(太保) 소공(召公)(무왕의 동생) 이 글을 올려 다음과 같이 간언 했다.


‘사람을 가지고 놀면 덕을 잃고(玩人喪德), 물건을 가지고 놀면 뜻을 잃습니다(玩物喪志)

이 말을 듣고 무왕은 은 나라의 멸망을 교훈 삼아 그 개는 물론 제후국에서 보내온 獻上

品들을 모조리 다른 제후들과 공신들에게 나누어 주고 정치에 전념했다

 

* * *

 

 


당시 신랑 신부는 선생님의 주례사의 어떤 부분을 기억하고 있을까? 솔직히 그 누군들

결혼식 주례 말씀을 고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마는, 사회를 본 신랑 친구에게는

저런 글을 써 주시고 또 그 글귀를 수십 년이 지나도록 보관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날의

주인공 신랑 신부에게는 글자로 뭘 남겨 주지 않으셨으니 어찌 보면 그날 결혼식에서 진짜

주례사를 받은 건 사회를 본 친구인 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허긴 저 글자는 인생을 막

새로 출발하는 신랑 신부에게 해줄 말씀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혹시 그 많은 주례를 서 주실 때 선생님을 모시고 갔을 수많은 결혼식 사회자 등에게 저

비숫한 어떤 글귀를 써 주신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든다. 특별히 나에게만 저런

글자를 써 주셨는지 확인은 어렵지만 혹시라도 이와 유사한 선생님에 관한 일화를 누군

가가 올려 준다면 그것도 꽤나 흥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만큼 선생님은 박학다식하시고 성현들의 말씀을 읽고 몸소 실천하는 그런 삶이 아니

었을까~ 추측해 본다. 그래서 선생님 생존 시에는 서울약대를 대표하는 훌륭한 교수님들

중 유독 세상에 이름을 넓게 알리신 분이 아니었을까!

이 글을 쓰면서 벌써 꽤나 오래전에 영면하신

선생님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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