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사람이란 살아가면서 여러 방면 즉

자신의 삶 중에 여러 사건, 체험, 노래, 음악, 학교, 친구

등등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살아가게 되는데 그 많은 것 중 노래에

국한해서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한다

 

물론 그것이 어디 한 두곡일까마는 대체로 유년시절의 그것, 중고

등학교의 그것, 대학 기타 성인이 되었을 때의 그것을 나누고 싶다

 

그중 어릴 적 즉 유년시절의 노래로 기억을 쭈욱 더듬어 간다

 

대략 우리 나이쯤 되는 분들은 그것도 시골서 자란 분들은 공통으로

기억하시는 것이 라디오에 접근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원체

그런 게 부족하다 보니 동네마다 유선으로 연결한 스피커라는 게

있었다.

 

그 스피커 라는 건 그야말로 스피커 한 개를 집안 마루나 안방 앞 등에

설치를 하게 되는데 정규 라디오 방송이 이를 통해 각 가정에 방송

되었고 그 마저도 스피커를 달지 못하는 집은 옆집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마도 스피커 사용료가 한 달에 얼마 정도였을까?

가난한 시골 농가에서는그 비용조차 버거웠다. 아쉽게도 우리 집은

스피커가 없었다

 

아무튼 동네 앞 저 멀리서도 스피커는 잘 들렸고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김삿갓 북한 방랑기'였다. 두만강 푸른 물에~ 로 시작되는 노래 연주

가 나오고 구수한 성우의 목소리로 김삿갓이 북한 지역을 방문한 내용이

흘러나왔는데, 무려 이후 30여 년간 지속된 장수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세상에서 유일하게 외부 소식을 들려준 그 스피커에서 때론

노래가 흘러나왔으니 그것이 내가 어릴 적에 들은 유일한 노래였다

50년대 중반 이후 수많은 가요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바로

문정숙이 부른 " 나는 가야지" 였다.

 

겨울이 가고 따듯한 해가

웃으며 떠 오면 ~

 

꽃은 또 피고 아양 떠는데

노래를 잊은 이 마음

 

비가 개이고 산들바람이

정답게 또 불면 ~

새는 즐거이 짝을 찾는데

노래를 잊은 이 마음

 

*아름다운 꿈만을

가슴 깊이 안고서

외로이 외로이 저 멀리

나는 가야지

 

사람을 위해 사랑을 버린

쓰라린 이 마음

다시 못 오는 머나먼 길을

말없이 나는 가야지

 

 

 

그 시절은 지금과 달리 겨울이 무척 추웠다. 난방이래야 인근 산에서

구해온 잡목 가지, 낙엽, 솔잎, 등이었고 의복도 솜으로 만든 것, 양

말도 부실했고 신발은 더 열악했으니 겨울 추위의 체감 정도가 지금

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혹독한 겨울 추위를 지나고 비로소 따뜻한 해가 떠 오르는 봄이 되면 이것

은 단순한 계절의 바뀜 수준이 아니었다. 봄은 마치 나에겐 구세주~

나아가 해방을 맞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 정도로 봄이란 것은 애절하고

다가오는 느낌이 막중했었던 것이다. 당시 농촌에서 살던 또래의 많은

친구들은 느낌이 비슷했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때를 맞추어 이 노래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던 것이다.

그 봄에 들리던 이 노래는 정말 일생을 통해 잊을 수가 없는 노래

가 되었을 뿐 아니라 내가 노래를 좋아하게 된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라 생각한다.

 

가사 조차 '겨울이 가고 따뜻한 해가 ~ ' 로 시작하지 않던가?

 

무슨 가수가 되는 꿈같은 건 꾸어본 적이 없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차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어려서 듣던 것과 결이 비슷한 트롯은

내 삶의 실 뿌리처럼 자연스럽게 나에게 다가왔다.

 

옆집 스피커로 듣던 노래가 바로 나의 애창곡이 되었고 그 이후

수 많은 노래들도 전부 여기서 출발한 셈이 된 것이다.

 

올봄도 이제 서서히 상륙 중이다. 봄이 오면 다시 한번 들어 본다. 수많은

노래 중 '나는 가야지~ 와 봄날은 간다 '는 나의 단골이다. 항상 이 노래를

들으며 나의 봄은 시작이 되었었다

 

나의 봄은 저 멀리서 날아와 나를 통과하고 다시 저 쪽으로 빠져

날아간다^

 

그렇게 올봄도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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