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에 촬영한 나의 고향 빼낙골

현재는 저 집들이 거의 다 사라졌다.

우리집은 사진 우측에서 두번째 였는데 이미

당시에 사라지고 없었다.

 

 

내 고향 능국리하고도 '동물' 에서도 작은 고개를 넘으면

빼낙골 이라고 있었다.  

 

대체 빼낙골이 뭐야? 허구 많은 이름 중에 어째 그런

요상스런 이름을 쓴댜? 거기다 그 동네는 골이라고 부를수도

없는 작은 뒷산이 있을뿐 골이라 할려면 뭔가 좀 뒤에 웬만한

산이라도 있고 아늑한 골짜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런 동네라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여튼 빼낙골이던, 빼낸골이던, 삐딱골이던, 아주 빼어난

골이란 뜻이건 거 뭐 자세히 알아 뭐하랴!

 

그 동네가 주류는 아니란 건 확실하고 모두 6 채가 있었

으니 걍 작은 마을이란 거였다. 6(여섯) 집에 애들이 있어야

몇이나 있었겠나? 나보다 나이가 몇살 많은 누이뻘이

몇 명, 한두살 아래 동생들이 또 몇 명,

 

나중에 국민학교 들어갈 나이가 되어 아래 큰 동네 '동물'을

내려가 보니 애들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말들을

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욕" 이란 것으로 이새끼, 저새끼, 이년, 저년,

썅놈, 개 x 끼, 씨x 새끼, 등등 난 아마도 그런 욕을 제일 늦게

배운 축에 속할게 틀림없다. 마치 지리산 청학동처럼, 빼낙골은

나름 당시 신성한 동네? 였던거다.

 

그런데 한집 건너 집에 어디서 인지 이사를 왔는데,

그 집에 딱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애가 하나 살았다. 한살

아래였던 그 애는 '선자' 라 불렀다. 그 작은 동네에서 비슷한

또래의 여자 애가 살게 됐다는건 꽤나 큰 반가운 일이었다.

 

겨울이면 그 집 방에 담요를 두르고 앉아 '한송이 순정의 꽃'

이란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물론 노래 제목은

'축배의 노래' 란 거다

 

한송이 순정의 꽃 뉘에게 바치리까~

마음의 창문을 나에게 열어주고

술잔을 높이 들어 이 밤을 노래하리~

인생은 즐거우리 ~ 인생은 즐거우리

나의 사랑! 나의 행복!

어두운 가시밭 길에도 행복은 있으리라

 

 

이 중에서 '술잔을 높이 들어' ~ 이 가사만 아주 선명히

또렷히 기억이 나는데, 여튼 그 어린 시절 내가 6살 정도

였을것이다. 몇년 후 그 애는 아랫마을 '구름밭'으로 이사를

가 버리고 말았다

 

허여 수십년을 그 기억을 잊고 살았다. 술잔이 뭔지도 몰랐고

어차피 난 지금도 술잔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말이다.

 

그러다 작년 쯤인가?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아! 그때 그

노래를 부르며 놀던 그 애는 지금 어디 살지?

또 몇살 아래였던 그 옆집의 갑순이란 애는 지금도

살아 있을까?

 

그래서 동물 출신 후배에게 수소문을 하니 그 선자란 애는

1년 후배이며 지금 서울 어드메에 살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 아! 여보세요~ 선자씨? 나 누군줄 알겠소? 어쩌구 저쩌구

나 빼낙골 살던 누구요!! "

 

"그 잖아도 상애한테 얘기 들었어요~~ 참 오랜만 이어요"

 

자 여기서 부터 이제 옥경이 노래 가사와 같은 이야기가

시작이 된다. 그간

 

"어디서 무얼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그 옛날 빼나골 살때 기억은 좀 나는지~ 등등

 

아니면 최백호가 노래했듯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 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 보렴"

 

뭐 첫사랑이라고 말할것 까지는 안 되지만 어린 유년의

추억으로 말하자면 나름 때 묻지 않은

신선한 기억이니까~

 

전화로 얘기를 한참을 해도 갈증은 가시지 않는다.

그래 우리 언제 한번 만나 그 간의 얘기를 함 해보자구~

 

아이구, 나두 그러고 싶어요! 언제 우리 함 만나요!!

 

_ _ _

 

 

시인 김남조는 안성 난실 마을 조병화 시인의 기념관에

이런 글귀를 하나 남겼다

 

 

 

나의 사투리를 아는 사람은

나의 고향 사람들 뿐이옵니다

 

아, 그와도 같이

 

나의 시를 아는 사람은 오로지

나의 눈물의 고향을 아는 사람들

뿐이옵니다

 

 

- - -

 

마찬 가지로 나의 어릴적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나의

고향 사람들일 것이요!

 

그러나 나의 시(생각)를 아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나의 고향

사람들 만은 아닐거라고 생각을 해 본다.

 

암튼 그렇긴 하지만 선자를 만나 보고 싶어 약속을 하고

미뤄지면 다시 또 약속을 하고~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았다. 그러고 몇 달이 훌쩍 지났다.

 

대략 그 옛날 화롯불 옆에서 노래 부르고 놀던때 부터 60여 년이

넘었으니 이게 이산 가족 상봉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무렴 이산

가족 상봉만이야 할까마는 그 상봉 이라는 것도 만나기 전에는

죽고 살지 못할만큼 그립고 애틋하지만 막상 만나면 그

감흥이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할것이란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추측일까?

 

 

결국은 몇달 사이에 그냥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젠

전화도 별로 않게 되었다. 약속이 자꾸 미뤄지다 보니

기대와 희망도 같이 사라진걸까?

 

아니면 전화로 목소리 듣고 살아 있음을 확인하니 이미

그걸로 충분하다는 어떤 안도감과 더불어 어렴풋히 느끼던

그 옛날의 약간의 신비감? 같은게 사라져서 그럴까?

 

무엇보다 내가 일상의 업무에 하루 종일 매달려 맘 대로

시간을 내지 못하고 사는게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이 용두사미가 되어 독자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감이 있긴 하지만, 이 얘기는 내 어릴적 나를 알던 사람! 나란

인간을 원초적으로 기억해 줄 사람!

 

부모 형제 다음으로 그걸 해 줄 수 있을 사람!

 

나는 알게 모르게 고향 일죽을 아니 빼낙골의 원초적

기억을 이렇게 나마 한번 살려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희망 사항이겠지. 나의 사투리를 누군가 알아줄

거라고 믿는건 순전히 나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김남조 시인이 말한,

 

"나의 시를 아는 사람은 나의 눈물의

고향을 아는 사람들 뿐"

 

이라는 말에 아주 격하게 공감을 하면서 나는 나의

시를 아는 사람들을 찾으려 알게 모르게 헤매는건

아닌지? 물론 김남조는 여기서 물리적 고향을

꼭 얘기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안다.

 

과연 그렇다면 나는

 

그 누군가의 '눈물의 고향'을 알아 보려 어떤 노력을

얼마나 하며 살아 왔던가를 자문 자답해 본다!

 

 (등장 이름은 실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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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에 무슨 속초 여행?

 

허긴 요즘 코로나 땜시로 누군들 답답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내와 자주 어울리고 만나는 아내 선배,지인 이렇게 4인이 이른

아침 광교를 거쳐 서울-양양 고속도로로 달렸다

 

우리집에서 속초까지 230km, 중간 가평 휴게소에서 부터는

내가 운전을 했다. 일찍 출발한 덕에 점심은 속초에 있는 황태

음식점에서 여유있게 먹을 수 있었다

 

점심 후 롯데 리조트로 바다 구경을 갔으나 바람이 심하게 불고 이렇다할

풍광이 없어 숙소인 '더 블루마크' 호텔로 잠시 들어와 차 한잔씩을 마셨다.

사실 12월 초의 속초라 해봐야 특별한 풍광이 있을리는 만무하고 이 동네로

시집 와서 5년이 돼 가는 선배 언니의 여 동생이 이때부터 가이드를 자진

하여 해주기 시작했다.

 

롯데 리조트

 

영랑 호수를 돌기로 했다. 가서 보니 얼마전 불어 닥친 산불이 영랑호

도 전부 태우고 만듯했다. 근처 人家는 물론 호수 주변 펜션 수십채가

전부 불에 타서 소실된 채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다. 아! 이곳에 누가 산

불을 낸거야? 하니,, 이게 자연 산불이라 했다. 한전 전깃줄에서 발화

했다는 바로 그 산불이다.

 

그러나 영랑호는 생각보다 아주 긴 코스였다. 7km 가 호수 한바퀴라

는데, 이건 좀 너무 긴게 아닌가 싶다. 한 4km 정도가 산책 코스로는

제격인데~ 이거 어디 처음 도는 사람 다리가 아파 끝까지 돌겠나?

 

 

영랑호수에서~
산불로 소실된 영랑호 주변의 펜션들

영랑호를 중간에 그만 두고 이곳 저곳 안내 하는대로 저녁 먹기 전에 돌아

보았다. 해양성 기후로 아주 추운건 아니지만 바닷 바람이 매우 시리게 바지

가랑이를 파고 든다

 

 

 

겨울 바다는 보기에도 춥다. 가까이 가서 보면 파랗고 예쁘지만 멀리서

보면 푸르고 을씨년 스럽게만 느껴진다. 겨울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심성일까?

 

 

코로나로 갈 길을 잃은 여객선이 녹이 흘러 내리며 정박중이다. 언제 저 배가

바다로 나갈 수 있을지!

 

좀 이른 시간이었지만 오늘의 메인 이벤트인 자연산 횟집으로 찾아 들었다

안내를 맡은 여동생 남편의 친구의 형님이 한다는 이곳 횟집!!

 

이날 우리는 정말 난생 처음? 5가지나 나오는 순 자연산 회를 보았다

 

 

자연산으로 특별 주문된 광어,도미,쥐치,그리고 2가지가 더 있었다

당연 맛은 아주 최고였음은 물론이다. 여기 사진에서 보이는 라임 쥬스 원액을

소주와 맥주에 타서 아주 시원하게 한잔씩 했다. 술 좋아하는 사람 같으면 이 보다

더 좋을수가 없지 않았을까?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인근 노래방도 함께 갈 수 있었을텐데, 다 어렵게 되었고 근처

야경을 구경하러 잠시 틈을 내었다. 속초 바다의 야경은 별 특별할게 없었다. 밤 바람은

차고 해서 잠시후 '더 블루마크' 호텔로 돌아갔다. 지난 7월에 준공되었다는 이 호텔은

오피스텔보다 조금 큰 정도였지만 침대가 2개 중간에 유리문으로 구획되어 놓여 있었다.

시설은 깔금했다

 

남은 회와 소주를 가지고 들어왔지만 피곤해서 손도 대지 않고 곧바로 골아 떨어지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일찍 깨어 멋진 일출을 기대했지만 날씨는 흐리고 제대로 해가 보이질

않았다. 이왕 여기가지 온거 일출까지 좋았으면 금상첨화일텐데~~ 일출 풍광은

틀렸고 간단히 빵으로 아침을 때운 후 11시경에 시내 아주 멋진 대구탕 집을 찾아갔다.

 

식객 허영만에 나온후 너무 유명해져 버리고 말았다는데, 차라리 방송을 안 탓으면 더

좋았을거라 한다. 그래도 서울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생 대구탕을 1만원에 먹을 수

있었다. 솔직히 나는 이런 수준의 대구탕을 처음 먹어 본다. 속으로 더 이상 이 집이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소비자와 주인의 입장은 이렇게나 차이가 난다

 

오랜만에 설악산을 구경하기로 했다. 설악동 쪽으로 들어가기는 어언 40여년 만이다

입구 중간쯤부터 벛나무가 장난이 아니게 크게 자라있었다. 예전에는 그런거 자세히

보고 다니지도 않았는데, 아! 이거 꽃피는 4월이면 정말 장관을 이룰것이다.

 

신흥사 입구 찻집에 아지트를 틀고 주변을 둘러보니 마침 안개가 약간 낀 주변 경관은

아주 신비했다. 아니 설악동이 이렇게 멋진 곳이었나? 왜? 예전 설악산을 뻔질나게

드나들땐 이런 풍광이 눈에 안 들어 왔을까?

 

 

마치 흑백 수묵화를 보는듯^

설악산의 진면목은 바로 여기 입구부터 펼쳐지고 있었다

 

 

온 김에 비선대까지를 올라가 보기로 했다. 중학교 2학년때 수학여행을

와서 비선대를 가 본적이 있고 그 이후로도 물론 몇번 가 보기는 했던 곳이다

 

그간 수백만 수천만 사람이 이 길을 지나갔겠지? 허나 흙도 돌도 길가의 나무도

그대로 오롯히 잘 지켜지고 있었다. 산천은 의구하단 말이 맞는구나!!

 

밧데리 수명이 다 되어 될수록 아껴가며 몇장을 더 촬영했다. 비선대에

보니 그 너르고 깨끗한 바위 위에 웬 그리 이름들을 많이 새겨 놨는지!

참 인간들^ 뭐이 그리 대단한 이름이라고 저 난릴까?

챙피한줄을 알아야지!

 

이거이 그 훌륭한 이름들이다

 

 

맑은 계곡수를 찍어 보려 했으나 해가 산 뒤로 넘어가 어렵게

되었다. 그래도 참 맑다!

 

 

비선대를 본 후 하산하며 ~

 

 

설악산은 이걸로 마치고 저녁식사 전까지

속초 해변을 좀 돌아 보기로했다

 

바다 정원과 켄싱턴 호텔 리조트를 돌아봤다.

바다 앞은 이렇다할 아무것도 없어 사진을 찍기엔 좀 쉽지 않았다

바람도 거세고 날씨가 생각보다 많이 매서워 이른 저녁을 먹기로해

돼지갈비집으로 향했다

 

 

맛집이야 어디나 많은거지만, 암튼 여기서 이른 저녁을 맛나게 먹었다

이제 서울로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

 

고속도로는 한산하기 이를데 없었다. 코로나 영향도 있지만, 정말 이런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려 보기도 오랜만이다.

 

서울-양양 고속도로는 참으로 터널이 많다. 끝없는 터널을 다 지나자

서울이 눈앞에 나타났다. 마치 소설 '설국'의 긴 터널을 지나자 눈의 나라가

나타났다 와 같은 식이다

 

이번 여행은 내내 안내를 맡아준 덕분에 편히 할 수가 있었다. 덕분에

호텔비도 저렴했고 이모저모 알찬 여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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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 스님 / 정악 상령산

 

 

가을 단풍을 찍고 또 찍고~ 그저 매년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렇게

숨가쁘게 수 년을 지내왔다. 물론 본격적인 건 몇년 안 되지만~

 

사진을 찍기만 했지 다소곳이 시간을 내어 정리를 해 본 적 사실

많지 않다. 도대체 사진은 얼마만큼 찍었고 앞으로는 어찌 할거며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더 신경써야 할지를 차분히 생각해

보는것도 나쁘진 않을것 같았다.

 

전편에 이은 2편이 되겠습니다

 

마곡사

 

 

dslr 로 바꾼후 첫 출사가 바로 이 마곡사였다. 뭐 카메라 라는게 대체로

조작이 거의 비슷하지만 첫 카메라로 찍은 사진 치고는 꽤나 근사하게

촬영이 된 셈이다. 그 이후로 두 세차례 마곡사를 더 갔지만

첫 출사 만큼의 사진은 얻을수가 없었다.

 

당연 단풍의 품질 때문이다.

 

 

 

사실 마곡사에는 단풍나무가 몇 그루 되지도 않는다. 항상 그렇듯이 量이

많아야 質이 꼭 더 좋은건 아니다. 마곡사의 단풍이 딱 그러하다. 때만

잘 맞추면 그 몇 그루의 단풍이 어마한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느껴지는 건 저 단풍나무는 심어서 지금껏 단 한번도 가지 치기나

무슨 인공적 가미를 한것 같지는 않다. 단풍나무의 특성은 몇 백년이

지나도 키가 그리 크지 않으며 흉측하게 제 멋대로 가지를 뻗지도 않는듯

하다. 흔히 아파트 단지에서 조경수 관리한답시고 나무 가지를 자르며 단풍

나무까지 자르는 미련한 짓들을 더러 하는데, 한번 잘린 단풍은 다시는 그

아름다운 잎이며 가지를 보여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혹 수십년이 지난다면

어떨지는 모르지만~ 허나 내 생각으로는 그게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너희가 나를 이렇게 마구 대한다면

다시는 아름다움으로 너희를 기쁘게 해 주진 않으리라~ "

 

단풍의 입장에선 뭐 이런건 아닐까? 마곡사건 그 어디건 멋진

단풍나무를 볼 때마다 나는 늘상 이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굳이 이런 얘기를 적는 것은 혹시 여러분들이 거주하는 동네에 조경수 나무

가지 치기를 해야 한다면 단풍 나무 만큼은 적극 손대는 걸 막아 주십사 하는

주민 의견을 내 달라는 것이다. 3년전 내가 사는 단지에 이런 일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단풍나무에 대한 의견을 내지 않았고 결국 가지가 잘린 단풍은

완전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걸 명백히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집 혼자 적극

의견 개진을 했지만 그것이 한 집에서 그리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분당 중앙공원의 단풍나무

 

 

  위의 단풍나무를 보면 심은 후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모름지기 모든 단풍 나무는 저렇게 자라야 하지 않을까?

단풍 나무뿐 아니라 그 어떤 나무도 그렇게 자랄 권리가 있다고 본다

 

요즘은 위의 이런 멋진 벗나무를 발견하기가 매우 힘들다. 대개는 단풍

이 들기도 훨씬 전에 잎이 거무스름하게 말라서 떨어져 버리기가 일쑤다

 

 멋진 벗나무 잎은 그 어느 단풍나무 잎에도

색감이 뒤지지 않는다.

 

 

공세리 성당의 가을을 찾아 나선건 이른 새벽이었다. 서쪽 하늘엔

아직 초승달이 걸려 있었다. 곁에 함께 자란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는 분간이

가지 않으나 잎은 다 지고 마침 빨간 감을 하늘에 드리우고 있었다.

 

 

   혹여 저 나무에

단풍잎이 함께 있을때 한번 더 방문해 보면 어떨까?

 

 

처음 찾은 가을 공세리 성당은 사실 너무 아름다웠다. 적어도

5년은 매년 찾아 와도 결코 충분하지 않을 그런 곳이라 생각해

본다. 

 

아! 내년 가을엔 꼭 다시 한번 더 가 봐야지^^

 

 

  인생도 자연도 똑같이 반복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분명한

건 내년에도 저런 단풍이 다시 찾아 올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이다

 

 

 

그리고 베스트 단풍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동네는

바로 선운사이다. 얼마나 첫 감동이 강했으면 블러그에 소개하기를

처음엔 꺼려했을까?

 

마치 부채 춤을 추고있는듯한 저 풍광! 고목과 어우러진 단풍의

위엄이 바로 이런것 이었다. 

 

 

우리 속담에 가는 날이 장날 이라고, 대체로 지금껏 보면

첫 방문할 때가 가장 단풍이 좋았던 기억이 많다. 그저 대략적으로

일정을 잡고 간 날이 가장 적기였던 경우다. 그런데 이건 운이 좋았을

뿐이지 매사를 그렇게 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사진 역시 고목을 어린

단풍이 휘감는 형국이다. 동네 근처에서도 멋진 단풍을 보기는 하되

이런 풍모를 접하긴 어려운 이유다

 

시원한 뻥뜷림!

 

선운사 중간 계곡의 녹차밭의 풍광이다. 단풍도 단풍이지만 어떻게

저런 기막힌 날을 잡은걸까?

 

그 뿐만이 아니다. 여기선 감히 속세의 그것과는 비교 불가의 이런 풍광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계곡의 단풍에는 눈길을 주고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

지만 감나무 아래서 그 아름다움에 경탄 하는 이는 별로 보지 못했다.

 

 

선운사에는 절을 따라 산 계곡을 쭈욱 올라가는 맛이 일품인건

다 아는 사실인데, 시간이 넉넉하고 산을 좋아하는 분들은 대체로 윗쪽

까지 올라가지만 대부분은 선운사로 만족을 하는 편이다. 그러나 시간을

내어 윗쪽 까지 오르면 거의 이 세상의 풍광이 아닌듯한 기막힌 단풍을

접하게 되는데, 물론 날짜와 기상, 그리고 그 해의 행운이 따라야 할것이다

 

 

과연 이 세상의 단풍이 아닌걸로 느낀게 나만 그럴까? 그럼 이 세상이

아니면 어디 세상이란 말인가? 

 

 

그저 좋은날 잡아서 1박 2일 정도로 한적한 날 가서 순전히 단풍만 들여다

본다한들 어떠랴! 1년에 한 이틀 나를 위해서 이렇게 쓴다면

더 없이 좋지 않을까?

 

단풍을 위하여~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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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산수유에 엄청 꼿힌 적이 있었다. 얼핏 보면 그닥 눈에 띄거나

이쁜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아마도 이른 봄 거의 제일 먼저 꽃을 피워서 그랬던 거 같다. 춘설을

뒤집어 쓰고 피는 건 매화가 으뜸이지만, 산수유 또한 매화에 뒤지지

않는다. 피는 시기도 비슷하다^

 

2017년 3월 21일 구례 산수유 마을 산동 마을에 한옥집을 찾아 들었

다. 멀리 지리산엔 흰 눈이 희끗하게 쌓여있었다. 한옥집이라고 유리문

이 아닌 창호지를 창문에 발라 놓았다. 밤 새 지리산에서 흘러 내리는

골짜기 물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마치 천둥이 치듯 했다. 아침에

가서 보니 돌로 된 별로 높지 않은 폭포 같은 거였는데~

 

아침 일찍부터 카메라를 들고 나서 보니 이미 수많은 진사님들이 여기 저기

몰려다니고 있었다. 살짝 진눈깨비가 내리는 삼월의 날씨는 매우 추운 편

이어서 손가락이 얼얼한 걸 호호 불어 가며 겨우 산수유 사진을 찍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산동 마을의 산수유나무는 매우 젊어 생기가 풋풋했다

그리고 멀리 지리산 연봉의 하얀 눈을 배경으로 해서 나름 운치를 더해

주었다.

 

 

산동 마을의 산수유 2017.3

 

아마도 산동 마을의 산수유는 이런 특성 때문에 또 아주 이른 봄에 전국 맨 먼저

봄소식을 전해 준다는 것 때문에 나름 유명해지지 않았을까? 지리산을 배경으로

하는 이런 풍광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니까!

 

그래서 산수유는 산동 마을로 오랜동안 굳혀 있었다. 그리고 이천에 산수유 마을이

있다고 난리를 쳐도 그닥 신통하게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구례의 산수유가 유명하니

까 엇비슷하게 그런걸 만들었나 보다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일종의 고정관념이

나름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며칠 전 이천 산수유 열매를 한번 보고 싶어 졌다. 집에서 가까운 데다 빨갛게

익은 산수유 외에는 이 시기에 볼 게 없기 때문이었다. 무심코 찾아간 이천 백사면의

산수유는 그러나 나의 예상을 훨씬 뛰어 넘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그 꼴이었다.

 

이곳 산수유는 조선 중종 때(1500년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니 약 500 년의

역사가 있는 곳이었다. 나무도 오래되었고 동네를 온통 산수유 열매가 화안 하게

감싸 비추고 있었다.

 

마치 벚나무 오래된 듯, 산수유 나무가 이렇게 큰 것이 있단 말인가?

 

마을 입구에 조촐하게 나무 하나가 반긴다^

사실 이 정도도 우리가 쉽게 볼수 있는 산수유 나무는 아니다!

 

이날 아침 기온은 영하 4도, 귀마개를 하고 마스크를 쓰자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마스크가 금세 습기로 축축해진다. 손도 시리다.

마을 주민들은 보이지 않고 사진 찍는 분들만 여럿 이리 저리 몰려다니고

있었다.

 

이 좋은 산수유를 두고 어디로 떠난 걸까? 얼추 집을 떠난 지 10여 년은

족히 되어 보인다^ 마당엔 사람의 발길이 끊어져 잡초만 무성하다!

 

'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 아래~ 그 옛날 내가 사알던

고향이 있었건만~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바다에는 배만 떠있고 기름진 문전 옥답~ 잡초에 묻혀 있네~'

 

 

이 집 말고도 꽤 여러 채가 주인이 없는 채 방치되고 있었다. 반면 언덕에는

번듯한 전원주택이 꼬리를 물고 신축되고 있었다

 

동네를 살짝 벗어난 산길에 호기롭게 열매를 맺은 산수유!

 

잠깐씩 해가 비친다^ 소담스런 산수유가 아침 햇살에 빛난다

 

이런 가지엔 봄 산수유 꽃도 아름답게 필 것이다

 

 

이쯤 되면 가히 산수유 천국 이라해도 될 듯하다^

우리가 흔히 보는 곧게 자란 밋밋한 산수유 나무가 아니다^ 몇 백년을 버티고

자란 나무의 위용이란 이런것이구나!

 

500 년의 오랜 세월을 버텨온 산수유 나무는 이곳에 대대로 정착해 살아온

사람들의 정성이 없으면 애당초 존재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예전에는 한약재

로서 쓰임이 많았을 것이나 최근에는 그것도 좀 시들해지지 않았을까?

 

마을을 쭉 둘러 보며 든 생각은 산수유 열매 따는 것도 결코 쉽지는 않을 거 같았다

일단 시골엔 젊은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고, 오래된 나무에 올라가 열매를 따기가

간단치도 않을 것이란 점이다.

 

 

산수유가 못내 아쉬워 며칠 후 이른 아침에 다시 한번 더

찾았으나 역시나였다.

 

아무래두 산수유를 보거나 사진을 찍기는 11월 중순 이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과육에 수분이 빠지기 전에 봐야

탱탱한 예쁜 맛을 감상할 수

있을것 같다!

 

이제 남은 건 흰 눈이 내려 붉은 산수유 열매를 뒤덮을 때이다

아마도 그때까지 산수유는 나무에 듬뿍 매달려 있을

걸로 예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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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25년쯤 전이다. 남쪽 나라로 여행을 가는 비행기에서 나는 옆자리의 후배 약사

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 자 자유로운 여행이니 한번 스스럼 없이 얘기나 해 보자고! 그래 당신은

약사가 되어서 가장 좋은 점 이랄까? 여튼 타 직업에 비해 독보적인 것이

뭐라고 생각 하시오? "

 

그는 잠시후 이렇게 말했다

 

" 나는 그 누구에게도 내 맘대로 약을 쓸수 있으니 인생의 큰 보람으로 알고 있지요~

세상 고관 대작인들 그 누가 나처럼 약을 쓸 수 있단 말이요?"

 

당시는 사실 약사는 거의 대부분의 약을 쓸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대답은 나의 기대치와는

살짝 달랐다. 약사의 기본적 권한 정도가 최고의 만족이라 하기엔 웬지 좀 부족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약사로서의 개인적인 어떤 인생관 내지는 특별한 보람이나 혹은 사회적 구속력을

넘어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고 있다던지 뭐 그런것을 기대하고 있었지 않았나 기억한다

 

과연 이 땅에 약사로 살면서 추구해 볼만한 삶의 방식은 무엇일까? (물론 이것은 개인적

소견임)

 

 

 

첫째, 자기 본업에만 매진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분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한 눈 팔지

않고 내 일에만 매달렸더니 오늘의 성공을 거두었노라고 말한다. 심지어는 다시 태어나도

나는 이 일을 할 것이라고도 말한다. 매우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골프, 야구, 축구, 바둑, 테니스, 기타 특정 예술인 등 이들은 자기가 주력하는 일 외엔 다른 건

모르고 평생을 살아 간다. 그러나 먼 후일 과연 그것이 어떤 문제를 초래할지는 사실 아무도

속단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본업도 열심이지만 적절한 취미를 살려 보다 풍부한 인생을 살아가는 경우다. 익히

알려진 취미 중에 자동차, 사진, 오디오, 골프, 등산, 여행, 옷맵시, 책 읽기, 글쓰기, 등을 간략

히 예로 들면(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취미 군은 있다) 그 모든 것이 상당 기간의 연마 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잘 해 봐야지 한다고 잘 될 수가 없는 것들이다. 죽어라

일 해서 돈을 모은 후 나중에 그 돈으로 여러 취미 생활을 즐기며 노후를 보내겠다고 맘 먹

는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약사들은 정년이 없는 대신 오래 일할 가능성이 많다. 예전엔 60세 정도면 은퇴를 고려

했지만 지금은 그 보다 훨 뒤로 미루어졌다. 그러나 은퇴 후 막상 나머지 여생을 즐겁게 살려고

해 보지만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고 어쩌면 현재보다 더 무미건조하게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본업과 여가 생활은 분리되어 先, 後가 있는 게 아니라 동시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즉 현 업에도 충실하고 여가 시간도 소홀히 하지 않고 공존하는 삶이 유지되도록 부단히

애써야 한다는 점이다.

 

삶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간혹 뭔가 외부적 명예나 감투 등에 집착을 하는 사람도 있다.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내재적 충만감 부족이 때로는 자신 밖의 외부에서 그것을 채우

려는 속성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바, 우리 사회가 기, 승, 전, 결, 의 마지막 '결' 대신에 정치가

들어간다는 얘기는 여전히 정치란 가치를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사실 최 선진국으로 갈수록 정치적 가치보다는 개인의 행복 추구가 최상의 가치로 자리잡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각자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따른 것이니 꼭 좋다

나쁘다 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본업과 취미의 관계는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취미 자체가 본업인 사람도 세상엔 더러 있지만

막상 그것이 본업이 되면 취미 때와는 다르게 재미없을 확률이 커진다. 따라서 보통 사람이면

본업 따로 취미 따로가 바람직한 관계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면 취미가 본업으로 됐을 때 오는

지루함 답답함은 그 무엇으로도 해결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도 얼마든지

있긴 할 것이다. 그러니 취미는 내 인생의 동반자라고 봐도 무방 할 것이다.

 

취미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이다

 

 

 

 

셋째, 삶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점이 바로 자유로운 생각과 자유로운 행동과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반드시 예술가나 특정 직업군만 자유의 삶을 추구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

은 접어둘 필요가 있다. 약국 현실과는 좀 먼 얘기 아니요? 할수도 있지만, 그러나 조직화된 공무

원,군인, 회사원 등과는 엄연히 다른 삶의 방식을 취하는게 약사들이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온갖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인으로 살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마땅히 내 놓을게 없다. 그러나 끊임없이 상상하고 삶의 변화에 지속

적으로 반응하며 그것과 함께 호흡하는 생활을 부단히 이어갈 때 우리의 내면의 자유는 증가

할 것이 분명하고 그에 따른 기쁨 또한 배가될것이 확실하다.

 

과연 당신은 약사로서 자유인으로 능동적으로 살기를 소망하고 있는가?

 

넷째, 우리가 익숙히 많이 듣던 단어 중 하나가 사회 봉사활동이다. 아마도 전문가 집단중에

봉사를 캐치플레이로 내세운 곳으로는 약사회가 그 선두에 있지 않을까? 사회 통념상 약사는

아픈 이들을 위로하고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동고동락하는 이미지가 강했다고 본다. 그 연장

선상에 약사의 사회봉사 활동이 존속 되어 오지 않았을까?

 

10여년전 약국신문 릴레이 인터뷰에서도 밝힌바 있지만 나의 최대 사회봉사는 바로 약사 자신

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길이라고 생각을 해 본다. 주변의 많은 동료 약사들이 시간에 찌들지

않고 행복한 일상을 살아갈 때 약사의 사회적 위상은 고양되고 그 선한 영향력은 주변에 행복을

전파할 것이라 확신한다. 이것은 단순히 나만 잘 살고 행복하면 모든게 끝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우선 너 자신이 행복함을 느껴라! 그것이 약사이건 어느 직업군이건 간에 스스로 만족하는 행복

한 삶을 이뤄야 타인도 행복하게 해 줄 가능성이 커진다! 는 의미이다

 

 

다섯째, 약사의 희망이자 보람이라면 질병의 사각지대에 놓여 고통 받는 아픈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왜? 의술과 약으로 세상의 모든 병이 고쳐지지 않는지를 잘 이해

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진정한 건강이 무엇인지, 인체가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교육 받거나 공부를 한적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약으로 모든 병을 고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이 세상에 치료가 힘들어 고통받는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구제하는 것보다 더 큰

보람과 봉사가 있을 수 있을까? 인간으로 태어나 더 큰 봉사와 보람이 당연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정도라면 아주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 한 가지가 더 있으니 바로 약사의 노후 준비이다. 정년이 없는 평생 일자리라고

안일하게 세월을 보내서는 필경 나중에 후회하게 될것이다. 좀더 이른 나이에 투철한 금융

지식을 쌓고 적절한 나이에 흔쾌히 은퇴를 할수 있게 대비하는 길이다. 적어도 10년,20년,혹은

30년 후를 내다 보고 미리 준비를 할 일이다. 세상은 항상 변한다. 지금 괜찮은 형편이 먼 장래

까지 이어지긴 힘들다. 내가 만일 2-30년 전에 이런 얘기를 선배들로부터 진지하게 들었다면

아마도 나는 조금은 다른 선택과 실천을 해 나갔을 것이다

 

 

긑으로 아모르파티중 가사 일부를 소개하며 마치고자 한다

 


인생이란 붓을 들고서
무엇을 그려야 할지
고민하고 방황하던
시간이 없다면

거짓말이지

 

자신에게 실망 하지마
모든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파티!!!

 

* * *

 

이 글은 2020.10 월호 경기도 약사회 월간지에 제가 칼럼으로 쓴 글입니다

(원문에서 약 1% 정도의 변형을 했읍니다)

 

 

 

 

허무한 마음 / 마로니에

 

 

단풍 구경 안 가면 몸살이 날게 분명해서 올해도(2020년) 2번을 작정을 하고 

아산 현충사와 청량산을 갔음다. 지난 수 년간의 가을 단풍 행적을 조사해 본 즉 올해가

가장 사진 量도 적고 실적도 부실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단풍에 한해서 입지요!

 

이제 단풍은 가 볼만큼 가 봤다~ 사진도 찍을 만큼 찍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일까?

코로나 시국에 웬지 올해는 급한것도 없고 가면 가고 못 가면 말고~ 그렇게 되고

말았다 !

 

사진도 그래요. 무작정 찍어만 두면 뭐하나! 다시 꺼내 볼 여유도 이유도 없다면

이거 다 도로아미 타부르 아닌감? 하다 못해 그 중에 몇장 사진으로 뽑아서 집에

걸어 놓고 가끔이라도 들여다 봐야 무슨 의미가 있지!

 

2012년 가을 어쩌면 인생 처음으로 단풍의 매력을 체험한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데,

그로부터 대략 2만 여장의 사진을 발품을 들여 찍었음다. 물론 전문가들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량이지만, 단풍만 고르고 골라 약 70 여장 따로 저장을 마쳤지요.

 

이런식으로 하자면 봄철 꽃 사진 따로, 신록 사진 따로, 벛꽃만 따로, 등등 목록을

만들어 분류해 두는것이 당연 필요하고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 저장된 사진 일부를 올려 보여 드리려고 하는 중입니다

 

테마별로 사진을 정리했다해서 다 되는것도 아닐 것임다^

모름지기 세상의 모든 물건은 그 용처가 있어야 할텐데, 그냥

저장만 해 두면 무슨 쓸모가 있겠읍니까? 물론 저장해 두면

언젠간 꺼내 볼지도 모르지만~ 그게 가 봐야 아는 거지요

 

그것이 요즘 사진을 찍어 가며 드는 의문이기도 합니다

 

 

분당 주택 전시관 옆 탄천변에서 2012

 

바로 이 벚나무지요^ 우리집 거실 창에서 보면 저쪽 탄천 건너 비탈에

항상 가을이면 빛을 발하던 벚나무^ 좀 궁금했어요! 저거 대체

무슨 나무야? 그때만 해도 단풍에 별 관심이 없던 때 였으니!

 

오직 '봄'을 좋아하고

 

"남자는 가을이지~ "  하면 도대체

"왜? 가을이란 말이야! 난 봄이 좋은데,"

 

이럴때 였읍니다

 

어느날 아침 집에 처박혀 있던 자전거를 모처럼 끌고 궁금해서 천변으로

산책을 나간 게 가을 단풍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된 첫 발자욱이 된 것입니다

그 이전에 그렇다고 단풍을 싫어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눈과 가슴에 확

박히는 그런 체험이 없었다 그런 말씀 입니다! 그러니

 

이만 하면 저 평범한 벗 나무에 크게 감사를 해도 부족함이 없을듯 합니다!

 

 

분당 마태오 성당

분당 마태오 성당 앞에서 찍었던 이 노란 단풍! 느티나무!도

그때는 별 생각없이 사진 한장 남겨 두자~ 해서 늘상 작은 카메라를

들고 다녔는데, 그것이 이렇게 좋은 추억으로 남을 줄은 미처 몰랐지요

 

사실은 혹자는 가을이 싫다는 사람도 있어요.

누렇게 말라 떨어지는 낙엽이 마치 자신의 인생도 그러한 것 처럼

자꾸 연상이 되어서 싫다는데! 그러니 단풍이 싫으면 가을도 자연

싫어질 테지요!

 

분당 성 요한 성당 부근 2012

 

그렇지만, 단풍이나 낙엽을 그런식으로 연상하며 생각하는 건 개인의

취향이자 자유지만 이 아름다운 단풍 잎새를 보면 그런 생각 다 부질 없다고

느껴집지요^ 이 멋진 단풍잎에서 어찌 사그라 드는 인생의 황혼을

떠 올릴 수 있는지? 오히려 저는 그 반대로 무한한 기쁨과 희망을

떠 올린답니다^!

 

하여튼 그건 제 개인 생각이지만~

 

어디 멀리 가지 않고 그야말로 집 주변 가까운 곳에서 찾아 보았던

단풍과 낙엽으로 부터 나의 가을 사랑은 시작되었어요! 왜? 이런 보물을

가까이 두고 멀리 관광버스를 타고 단풍 여행을 하는지, 당시 멋도 모르고

청송의 주왕산 단풍놀이 하는 관광 버스 탓다가 파 죽음이 되어 돌아온

이후 다시는 그런 식의 단풍 여행은 제 사전에서 사라졌읍니다 ~

 

또 보시다시피 위의 사진들은 일반 보통 카메라로 찍은 것들로 웹

상의 육안으로는 전혀 고급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구분이 되지 않지요

아주 크게 뽑아 어디 전시회를 할게 아니라면 카메라 장비에 구태어 비싼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입니다. 90% 이상의 보통 사람들은

사진으로 전시회 같은 걸 하지 않으니까요. 물론 적당한 수준의 보정

기술은 꼭 필요하지만요!

 

교또의 단풍 2014년 촬영

 

보통 일반 똑딱이 라는 카메라를 들고 멀리 교또 까지 단풍여행을

갔다온 흔적이지만 사실은 저 정도의 사진이 남겨진 것에 충분히

만족을 하는 편입니다.

 

허나, 가까운 분당의 가을이 수려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이후

연속적으로 그 곳을 찾을 생각을 못했음다. 그 다음 가을에 한번 더 갔지만

남동 발전소 수위실에서 막히고 말았어요. 왜냐면 멋진 단풍이 남동발전소

구내에 있었기 때문이지요

 

플라타나스의 잎이 이토록 푸른 가을 하늘에 빛나는 걸 자주 본적이 없어요.

대개는 메말라 비틀어진 그저 그런 플라타나스가 자주 눈에 들어 오는게

일상이지요!

 

몇년이 지난 후 분당의 다른 지역을 찾았을때 그 어느 고궁 , 사찰에 못지않은

멋진 가을 풍경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바로 아래 분당 중앙 공원의 가을

풍광입니다. 제가 선호하는 떡갈나무와 멋진 단풍 나무 잎이지요. 이거이 중앙

공원만 그런게 아니고 곳곳의 크고 작은 여러 공원도 이와 사정이 비슷할걸로

생각이 드누만요

 

분당 중앙공원 2017년

꼭 단풍이 아니더라도 가을은 많은 괜찮은 감성을 내 안에 불러 일으킵니다

허긴 봄도 여름도 겨울도 어느것 하나 버릴게 없지요^ 그저 모든 계절이 새롭고

그런 자연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자연이 주는 그 모든 아름다움에

인간이 할수 있는건 오직 감사 외에 별로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마곡사 2015

 

그러다가 2015년 소위 말하는 카메라 업그레이드를 하게 됩니다. 카메라를

택배로 받자마자 바로 그 다음날 새벽 공주 마곡사로 달려간 그 날을 잊을 수

없읍니다. 마침 그 날은 마곡사 최고의 단풍이었지요. 어설피 새 카메라를 간신히

조작을 했던 그날의 사진이 그 이후 몇번을 더 갔어도 그걸 능가하지 못하는

최고의 사진이 된 셈입니다

 

지역 사진가 협회 회장을 하셨던 80이 넘은 울 동네 老 사진가 한분이

가끔씩 국제교류 사진전 책자를 가져다 주십니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책자에 실린 사진이 너무 난해 하다는 것입니다. 평상시 볼 수 있는

보통의 풍경,보통의 소재보다는 뭔가 특이한 것, 뭔가를 비비 꼰듯한 것들이

책자에는 담겨 있더군요!

 

평범한 사진은 고수들의 눈에는 가치가 낮아 보이는 건지? 아니면 너무

평이해서 재미가 없어진 건지~ 그도 아니면 내가 사진을 이해하는

수준이 아직은 너무 낮은 건지! 뭐 알 수 없지만,

 

인생이 그렇듯 평범을 넘어 너무 비범한 그 어떤 것도  평범을 마냥 쉽게

뛰어 넘기는 어렵다는 게 저의 생각이긴 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사진은 자기만족 외에 그닥 가치가 없는걸까?

어떤 사진을 보고 장엄한 느낌을 갖는다고 쳐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수 밖에 없을 운명이지만 과연 사진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에서 찾을 수

있을까?

 

 

사진을 볼줄 아는 눈이란건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단순한 자연의 복사본에 불과한 사진이 생명이 덧 입혀지고 환희가 곁들여

지는 그런것이 되려면 아마도 그 어떤 경지란게 있을듯 하고 또 그것을

감지할 눈과 마음의 힘이 길러져야 할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아직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지만 그런 날을 위해 아니 조금더 자연 속에

일치감을 느끼기 위해 오늘도 나는 사진을 찍고 또 찍는 중입니다!

 

(위에 덧붙인 정원의 "허무한 마음" 은 늦가을 낙엽이 다~ 지고 난후

불러 보면 꽤나 추억도 생각 나고 운치를 더해주는 그런 노래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제목처럼 허무한 마음만 드는건 아닙니다. 어찌 보면 단풍의

아름다움에 별 어울리지 않는 노래일수도 있겠으나 애창곡이라서 그냥

덧붙여 봅니다!)

 

삼백리 한려수도 / 한여름

 

 

閑麗水道~ 는 통영 한산도에서 사천, 남해를 거쳐 여수에 이르는

남해안 뱃길 해안을 말하는건 다 아시는 거지만, 사실 저곳을 한가로이

배를 타고 쭈욱~ 쭈욱 돌아 본 경험은 없읍니다^

 

이미자의 노래로 이 곡이 불려진 이후 그저 호기심으로만 늘상 간직하던

그런곳입죠! 그러나 가사를 보면,

 

 

노을 진 한산섬에 갈매기 날으니
삼백리 한려수도 그림 같구나
굽이굽이 바닷길에 배가 오는데
임 마중 섬색시의 풋가슴 속은
빨갛게 빨갛게~
동백꽃처럼 타오르는데
바닷가에 타오른다네


달밝은 한산섬에 기러기 날으니
삼백리 한려수도 거울 같구나
굽이굽이 바닷길에 밤은 깊은데
섬색시 풋가슴의 피는 사랑은
빨갛게 빨갛게 동백꽃처럼 피어나네
바위틈에 피어난다네

 

 

 

요즘 트롯 경연이 정말 불꽃을 튀기고 있죠?

트롯신이 떳다 , 에 등장한 가수 "한 여름"이 부른 바로

이 노래! 삼백리 한려수도는 그간 잠깐 발만 담궈 봤다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의 한려수도 삼백리길을 잔잔히

떠 올려 보기에 부족함이 없었읍니다^

 

마누라가 좋으면 처가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고 하던데~~

노래를 너무 잘하니 겨우 근처만 갔던 한려수도가 갑자기 그리워

져 이것저것 사진을 뒤적여 봅니다! 아! 우리나라 참 좋은 곳입니다

 

잔잔한 바다~ 봉긋한 섬~ 파란 하늘~ 구름~

갈매기 떼~

 

아스라이 깔리는 해무~ 아침 노을~

붉은 동백~

 

무엇보다 그속에 깃든 평화로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듯 하군요!

 

그저 조금더 자주 그 아름다운 그곳을 가 볼수 있기를 소망해 보면서

사진 몇점 첨부 해 봅니다^

 

통영 미륵산 중턱에서~
한산도 쪽 !
통영의 아침 배~
장사도의 동백~
멀리 거제 해금강
통영 e.s 리조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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