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산수유에 엄청 꼿힌 적이 있었다. 얼핏 보면 그닥 눈에 띄거나

이쁜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아마도 이른 봄 거의 제일 먼저 꽃을 피워서 그랬던 거 같다. 춘설을

뒤집어 쓰고 피는 건 매화가 으뜸이지만, 산수유 또한 매화에 뒤지지

않는다. 피는 시기도 비슷하다^

 

2017년 3월 21일 구례 산수유 마을 산동 마을에 한옥집을 찾아 들었

다. 멀리 지리산엔 흰 눈이 희끗하게 쌓여있었다. 한옥집이라고 유리문

이 아닌 창호지를 창문에 발라 놓았다. 밤 새 지리산에서 흘러 내리는

골짜기 물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마치 천둥이 치듯 했다. 아침에

가서 보니 돌로 된 별로 높지 않은 폭포 같은 거였는데~

 

아침 일찍부터 카메라를 들고 나서 보니 이미 수많은 진사님들이 여기 저기

몰려다니고 있었다. 살짝 진눈깨비가 내리는 삼월의 날씨는 매우 추운 편

이어서 손가락이 얼얼한 걸 호호 불어 가며 겨우 산수유 사진을 찍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산동 마을의 산수유나무는 매우 젊어 생기가 풋풋했다

그리고 멀리 지리산 연봉의 하얀 눈을 배경으로 해서 나름 운치를 더해

주었다.

 

 

산동 마을의 산수유 2017.3

 

아마도 산동 마을의 산수유는 이런 특성 때문에 또 아주 이른 봄에 전국 맨 먼저

봄소식을 전해 준다는 것 때문에 나름 유명해지지 않았을까? 지리산을 배경으로

하는 이런 풍광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니까!

 

그래서 산수유는 산동 마을로 오랜동안 굳혀 있었다. 그리고 이천에 산수유 마을이

있다고 난리를 쳐도 그닥 신통하게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구례의 산수유가 유명하니

까 엇비슷하게 그런걸 만들었나 보다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일종의 고정관념이

나름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며칠 전 이천 산수유 열매를 한번 보고 싶어 졌다. 집에서 가까운 데다 빨갛게

익은 산수유 외에는 이 시기에 볼 게 없기 때문이었다. 무심코 찾아간 이천 백사면의

산수유는 그러나 나의 예상을 훨씬 뛰어 넘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그 꼴이었다.

 

이곳 산수유는 조선 중종 때(1500년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니 약 500 년의

역사가 있는 곳이었다. 나무도 오래되었고 동네를 온통 산수유 열매가 화안 하게

감싸 비추고 있었다.

 

마치 벚나무 오래된 듯, 산수유 나무가 이렇게 큰 것이 있단 말인가?

 

마을 입구에 조촐하게 나무 하나가 반긴다^

사실 이 정도도 우리가 쉽게 볼수 있는 산수유 나무는 아니다!

 

이날 아침 기온은 영하 4도, 귀마개를 하고 마스크를 쓰자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마스크가 금세 습기로 축축해진다. 손도 시리다.

마을 주민들은 보이지 않고 사진 찍는 분들만 여럿 이리 저리 몰려다니고

있었다.

 

이 좋은 산수유를 두고 어디로 떠난 걸까? 얼추 집을 떠난 지 10여 년은

족히 되어 보인다^ 마당엔 사람의 발길이 끊어져 잡초만 무성하다!

 

'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 아래~ 그 옛날 내가 사알던

고향이 있었건만~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바다에는 배만 떠있고 기름진 문전 옥답~ 잡초에 묻혀 있네~'

 

 

이 집 말고도 꽤 여러 채가 주인이 없는 채 방치되고 있었다. 반면 언덕에는

번듯한 전원주택이 꼬리를 물고 신축되고 있었다

 

동네를 살짝 벗어난 산길에 호기롭게 열매를 맺은 산수유!

 

잠깐씩 해가 비친다^ 소담스런 산수유가 아침 햇살에 빛난다

 

이런 가지엔 봄 산수유 꽃도 아름답게 필 것이다

 

 

이쯤 되면 가히 산수유 천국 이라해도 될 듯하다^

우리가 흔히 보는 곧게 자란 밋밋한 산수유 나무가 아니다^ 몇 백년을 버티고

자란 나무의 위용이란 이런것이구나!

 

500 년의 오랜 세월을 버텨온 산수유 나무는 이곳에 대대로 정착해 살아온

사람들의 정성이 없으면 애당초 존재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예전에는 한약재

로서 쓰임이 많았을 것이나 최근에는 그것도 좀 시들해지지 않았을까?

 

마을을 쭉 둘러 보며 든 생각은 산수유 열매 따는 것도 결코 쉽지는 않을 거 같았다

일단 시골엔 젊은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고, 오래된 나무에 올라가 열매를 따기가

간단치도 않을 것이란 점이다.

 

 

산수유가 못내 아쉬워 며칠 후 이른 아침에 다시 한번 더

찾았으나 역시나였다.

 

아무래두 산수유를 보거나 사진을 찍기는 11월 중순 이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과육에 수분이 빠지기 전에 봐야

탱탱한 예쁜 맛을 감상할 수

있을것 같다!

 

이제 남은 건 흰 눈이 내려 붉은 산수유 열매를 뒤덮을 때이다

아마도 그때까지 산수유는 나무에 듬뿍 매달려 있을

걸로 예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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