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사람들^ 이 얼마나 정겹고 따스한 느낌이 나는 말인가?


고향 친구,이 또한 마찬가지로 포근한 말이다.

고향 사람에 얽힌 얘기가 한 둘이 아니지만 그 중에는

좋은 추억이 서린 얘기가 있는 반면 아주 쓰디 쓴 기억도 있으니,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나름 생각해 본다.

 

그 중의 좋지 못한 기억을 두어개 써 보고자 한다.

 

그 첫째는 지금부터 대략 30 몇년 전 쯤 일이다. 내가 결혼 후 뒤늦게 대학원
을 다닐때 쯤이다. 아마도 1983,4 년 경인것 같다. 시골 국민학교 중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가 서울에서 연락이 닿아 그 친구집에서 꽤 여럿 동창들이
모여 맛있는 요리도 시켜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얼마후였다.

 

갑자기 회사로 전화가 와서 하는 말이 자기가 주택 난방공사를 하다가 하자
가 발생해서 경찰에 불려가게 되었는데 급히 합의금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나는 시골에서 올라와 어렵게 일하는 친구가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냐 해서
안 되기도 했고 또 고향 친구가 그렇게 어려움에 처했는데 못 본체는 더더욱
할수도 없고, 당시 신림동에 살던 친구가 급히 성남의 회사로 온다고해서
기다렸다.

 

다급히 온 친구는 우선 아쉬운대로 돈을 달라했다. 나는 가지고 있던 가계
수표를 작성해서 60만원을 건네 주었다. 친구는 좀더 많이 안 되겠냐 사정했지만
당시 내 한달 월급이 60만원이 채 안될 때였고 대학원 학비대랴 살림하랴 사실
생활에 여유가 거의 없던 시기여서 그 정도도 나한테는 매우 큰 돈이었다.

 

헌데 돈을 빌려간 친구는 그 후로 소식이 끊겼다. 한참 지난 후에 알고 보니
나는 약과였다. 다른 친구 하나는 정기적금을 해약해서 200만원 가까운 돈을
빌려줬다 했다. 물론 그 친구도 그 이후 소식을 못 들은 건 마찬가지다. 35년
전에 60만원,200만원은 지금으로 환산하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아마도 600만원,2,000만원은 되지 않을까?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시골 동창, 그는 계획적으로 동창들의 돈을 빌리고는
잠적한 것이다.

 

2016.6.촬영
 

그러고 또 세월이 좀 더 흐른 1990년대 초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수원 매탄동에서
약국을 하고 있던때 마침 시골 국민학교 몇년 선배인 어떤 분이 부동산을 한다고 나타
나셨다. 나는 당시 약국이 지금보다는 잘 되던때라 약간의 금전적 여유가 있을 때였다.

나는 멋도 모르고 그 선배를 따라 양지의 대학 친구 땅에 아파트를 짓는 계약을 성사
시키려 다니기도 했고, 수원 조원동의 주공 아파트 건립 예정지 앞의 목 좋은 땅을 사

준다고 해서 가 보니 이미 계약이 끝난 곳이기도 하고 등등  흠,나름 친분을 조금씩
쌓아 가고 있었는데~

 

어느날 약국에 찾아 와서는 아들이 충청도 지방에서 무슨 일로 다툼을 벌이다 노인을
때려서 구속이 되게 생겼다. 합의금이 급히 필요하니 어쩌냐~했다. 그때만해도 나는
소형 가방에 깨끗한 현금만 항상 백만원 이상씩 넣어 들고 다닐때였다.


나는 아무 의심없이 120만원을 챙겨 손에 쥐어 주었는데, 이게 참, 그러고는
이 양반 다시는 약국에 나타나질 않았다. 그 후로 몇년은 그 부인이 우리 약국을
들르기도 했지만, 그 돈 문제를 얘기할 수가 없었다. 걍 선배님은 잘 계시냐,
정도로 안부만 물었고 언젠가는 빌린돈 가져오겠지 라고 막연히 기대했으나 그는
끝내 얼굴을 보이지 않았고 몇년이 더 흐르자 부인 마저 나타나지 않고 말았다.

 

고향 선배,동창, 모두 특정 '산북리'라는 한 동네 사람이었다. 흠,그 동네가 왜
그럴까? 물론 어려워서 그리 되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는 일이다.
친구 때문에는 화가 그렇게 많이 나지는 않았는데 고향 선배라는 사람 때문에는
매우 화가 났고 적어도 몇년간은 그 일로 몹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여파가
생각보다 컷었다. 같은 동네 사람에게 두번이나 속아 돈을 뜯겼다는게 몹시도
화를 나게 한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돈 몇푼 때문에 고의적으로 몇 달을 거쳐 나에게 접근해왔던
것이다. 저 정도면 뭐 거의 상습적으로 돈을 갈취하는 그런 사람이 아닌가 여겨
진다.


물론 그 보다 큰 거액을 사기당하는 경우도 충분히 있을 것이지만, 큰 돈이나
적은 돈이나 예기치 않은 이런 경우엔 속이 쓰리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그런데, 이걸 면역으로 여겨야 할듯하다. 더 큰 사기를 당하는걸 미연에 방지
했다고나 할까^ 이 얘기를 시골 사는 다른 친구에게 말하니 그 친구는
오히려 더 큰 돈을 고향 사람에게 당했노라고 말했다.남대문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벌어 한푼 두푼 모았던 돈이라고 했다.그 피같은 돈을 같은 고향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심정이 오죽했을까? 


그 이후론 고향 사람을 만나도 별로 반갑지도 않고 시골 친구들을 만나도
예전같지 않게 되었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을 아주 확실하게 실감했으니까~
당연히 일정 거리를 두고 사람을 보게 되고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만 고향
사람을 대하는 건 예전같지 않게 된 것이다.

 

다만, 위의 두 당사자 분들이 어디에 살건 잘 살고 있기를 바랄뿐이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이니 뭐 어쩔 수 없지 않겠는가? 


물론 이와는 반대로 정말 푸근하고 고마운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이고

실제 나의 경우도 몇번 있긴 했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는거와 같이 세상엔 반드시 명암이 함께 한다는거,

그러나 고향 사람 말씨만 들어도 반갑고 그립고 그런것만은 아니란거,

 

그게 세상인거같다^

 

 

 
 
인생선 / 김다인 작사 / 이봉룡 작곡 (1942) 
 
똑같은 정거장이요
똑같은 철길인데
시름길 웃음길이
어이한 한길이냐
인생이 철길이냐
철길이 인생이냐
고달픈 인생선에
달이 뜬다
해가 뜬다
 
똑같은 시그널이요
똑같은 깃발인데
고향길 타관길이
어이한 한길이냐
인생이 철길이냐
철길이 인생이냐
아득한 인생선에
눈이 온다
비가 온다

사나이 옷고름이
바람에 나붓낄때
연기는 구불구불
희망의 깃발이냐
인생이 철길이냐
철길이 인생이냐
아득한 인생선에
밤이 온다
동이 튼다

 

인생선 / 마로니에(나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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