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중학교 졸업식날 / 마로니에 부름

 

과거란 무엇인가?

 

역사적 과거, 국가의 과거, 등 거창한 과거란 말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한 개인에게 있어 중요한 건 바로 그 사람 즉 '나의 과거' 인 셈이다.

 

" 내가 누군줄 알어? 짜슥들이~ "

" 거 뭐 나의 과거는 묻지 말아 쥬쇼~"

" 에효 말도 마슈! 옛날 얘기하면 눈물 나요~ "

 

등등 천층 만층 구만층인 게 바로 개인의 과거사다!

 

그런데 1959년도에 나왔다는 '과거를 묻지 마세요'의  노래 가사는 이렇다.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풀려

어둡고 괴로웠던 세월도 흘러

끝없는 대지 위에 꽃이 피었네

아~아~ 꿈에도 잊지 못할

그립던 내 사랑아

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

 

구름은 흘러가고 설움은 풀려

애달픈 가슴마다 햇빛이 솟아

고요한 저 성당의 종이 울린다

아 흘러간 추억마다

그립던 내 사랑아

얄궂은 운명이여

과거를 묻지 마세요

 

 

나는 이 노래를 정말 잊을수가 없다.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도 풀렸다.

어둡고 괴로웠던 세월도 흘렀다.

구름은 흘러가고 설움도 풀렸다.

애닯은 가슴마다 햇빛이 솟았다.

 

그래 그런 것이 과거일 수 있고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암튼 난 이 가사가 마음에 든다. 정성수란 분이 작사를 했고 나애심의 오빠

전오승이 작곡한 노래이며 나애심이 불러 당대 큰 힛트를 쳤던 곡이다.

 

그 옛날엔 여러분들이 잘 기억하듯이 콩쿨 대회란 게 있었다.당시 우리 큰 누

님이 그 콩쿨 대회에 출전을 하셨는데, 바로 이 노래를 불렀다. 해마다 추석때

쯤 농번기가 끝나면 행해 오던 가설무대에서였다.

 

김철은이란 친구 형님인 김철호 이 양반이 얼마나 노래를 잘했는지 기억 난다.

또 장암리 어디 살았던 젊은 처녀가 부른 대머리 총각도 기억이 난다.이 분들은

모두 1등상인 황소 한 마리를 집으로 데려갔다.

철호형은 아마도 몇 마리는 되었을 거다.

 

그런데 문제는 노래를 부르는 도중 심사 위원이 '땡' 하고 종을 울린것이다.

나는 몇 십년이 지난후 이 얘길 큰 누님에게 했다.

헌데 누님은 그게 무슨 말이냐며 난 절대 콩쿨대회에 나간 적이 없다고 펄쩍

뛰신다. 허 이게 어찌된 노릇인가?

내가 당시 뭘 잘못 본 겐가? 착각을 하고 있었나?

 

암튼 내 어릴적 기억엔 이 노래를 부르던 누님이었는데 말이다. 큰 누님이

노래를 잘하는지는 몰라도 8순이 다 되어가는 요즘에도 동네 노래 교실을

꾸준히 다니는 걸 보면 노래를 좋아한다는 건 분명하다.

 

 

여튼 그래서 이 노래는 내가 잊을 수가 없는 곡이 되었다. 내 기억이 잘못된

건지 아니면 다른 어느 누님뻘 되는 이가 이 노래를 부른 건지 확실치 않지

만 말이다. 그건 뭐 이제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

 

자! 그런데 여기서 과거에 대해 얘길 해보자. 흔히 과거를 묻지 말라 하면

힘들고 고생하던, 떠 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를 말하기 마련이다. 더러는 결혼 전

남녀가 가지고 있었던 로맨스를 과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암튼,

혹시 우리 친구중에

 

'내 과거는 쓸만했지, 그만하면 난 좋았어' 하는 이 몇이나 될까?

 

6.25 중 태어난 우리들은 거의 대개가 어렵게 살지 않았는가? 먹고 살 것이

넉넉한 집안이 별로 없었다. 다들 겨우 겨우 살았다.

 

그러다 보니 소위 '불행 증후군' 이란걸 알게 모르게 가슴에 품고 산다.  

 '내가 제일 힘들게 살았고 불행했으며 제일 가난했다' 같은 것이다. 

 

" 나 만큼 고생한 놈 있으면 나와 봐! 내 고생은 말도 마! 우리 집이 제일 가

난했어! 어휴 나 같은 사람도 있을라구!! " 등등이다.

 

어쨋거나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했고 가난했고 힘들었고

이런 감정을 갖고 사는 이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때로는 그것을 마치 무슨 훈장처럼 여기고 사는 이도 더러 있게 마련이다

 

해서 웬만한 남의 고생 얘길 들어도

 

" 까짓 그게 뭐 고생이라고 야단이야~ 흥^ "

 

이러곤 만다. 뭐 하나 끝까지 들을 생각을 안 한다. 왜냐면 내가 겪은 것에

비하면 그 무엇도 다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갖고 사는 게 얼마나 자신에게 --(마이너스) 영향을 끼치

는지 잘 모르는 거 같다.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했고  불행했으며 가장

힘든 삶을 살았다고 늘 생각하는 마음에 행복한 감정이 깃들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또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일치감을 잘 느낄 수 있을까?

 

과거의 그런 나를 버리지 못하는 한 현재의 내가 정상적으로 균형있게 잘 살아

가기는 매우 힘들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낮

게 될뿐 아니라 자칫 인생이 우울 모드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나 자신도 한참 전 까지는 그런 생각이 다소나마 좀 있었던 거 같다. 시골서

논 마지기 하나 변변히 없었지,친척도 없지 물려받은 재산은 물론 부모님도 일찍

돌아 가셨지~ 도대체가 뭐 하나 내세울만한게 아무것두 없었으니 나도 불행증후군

환자였음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어려서 부유한것이 꼭 좋은것도 아닌 걸 많이 보았다. 그 부유가 사람을 나태하게

해서 이렇다 할 업적을 내지 못하는것도 많이 보았고 유약한 심성으로 인해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쉽게 무너지는 것도 많이 보아 왔다.

 

사필귀정이란 말이 있지만 인생이란 꼭 좋은것만이 다 좋지도 않더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기 전 까지 나는 내가 누리고 살았던 즉 나에게 주어졌던 삶이

얼마나 귀중하고 행복했던 것인가를 잘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또 나중에 주변을

돌아 보니 다들 나 이상으로 어렵게 살았고 힘든 과정이 있음도 알게 되었다.

 

세상 불행을 자로 잴수는 없다. 따라서 누가 더 불행한지 더 가난했는지 측정

하기는 어렵다. 또 설령 측정했다손 쳐도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데 마냥

자신이 최고로 불행했다고 느끼며 사는 인생이 과연 행복에 이를 확률이 얼마나 될까?

 

바로 이것이 '불행 증후군'에서 시급히 벗어나야할 이유이다.

 

나의 과거는 화려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불행하지만도 않았다. 나는 태어난

고향도 있고 어린 시절 행복했던 추억도 있다. 가난했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

으며 형제 자매간 꿈 같은 시절을 보냈었다. 그후 이런 저런 인생의 질곡은 있었지만

나름 잘 살아왔고, 어디 내어놓을만큼 뻐젓한 무엇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만하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스스로 자평하고 있다.

 

 

내가 겪어 보니 어릴적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 마음도 넓고 사람도 잘 사귀고

하는거 같았다. 지독히 가난하거나 암튼 뭔가 너무 악 조건에서 성장한 사람은 무언가

모르게 심성이 약간씩 비뚤어 지거나 성격이 모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설령 가난하게

살았다 한들 그게 뭐이 자랑이며 자랑까지는 아니라 해도 그걸 내세울 건 아니지 않은가?

 

물론 그 상황을 극복하고 훌륭하게 성장한 사람이 주변에는 많지만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행복한 인생은 누가 만들어 줄 수도 꾸어 올 수도 없다. 돈만 많으면,

지위가 높으면, 기타 뭐만 잘하면 행복하냐? 이런 바보같은 물음은 그만 집어 치자.

그럴 수도 안 그럴 수도 있는게 인생이다. 남 보기엔 우스워 보여도 나름 행복한 삶을 사는

이는 많다. 남 보기에 뻐젓해 보이지만 실제 불행하게 사는 이도 많다. 그러니 겉만 보고

사람을 평가 할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 ~ 화성의 낚시터에서 (1980년대 후반)

 

 

과거를 물을테면 물어라! 충분히 대답해 줄 것이다.

현재를 물어라! 역시 또한 충분히 대답해 줄 것이 아주 많다.

 

 

행복이 무어냐고 묻지를 마라~ 그건 각자의 가슴 속에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를 묻지 말라는 건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는 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오히려 자신의 과거 정체가 무엇인지 잘 밝히고 오픈하여 투명

사회로 나아가는게 바람직한 미래의 우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뭐든 감추고 쉬쉬하며 회색빛 인간이 난무하는 작금의 현실이 조금은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어떤 사람을 안다고 할때 현재의 모습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할 수가 있다

과거의 그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안다는 건 그만큼 그 사람에 대

한 신뢰성을 더하는 일일 것이다. 아무리 현재가 중요하다고 하나 그의 과거에

지울 수 없는 흑 역사가 있다면 과연 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 쉬운 일례로 카페

에서 알게된 사람을 깊이 신뢰하기 까지는 난관이 많다. 당연하지만 그 사람의

과거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카페등에서 자신의 과거 인생을 소상히 밝히는

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나의 블로그에 최대한 나의 과거부터의 기억을 살려 올려

두려 노력하였다. 물론 현재의 나란 사람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기는 마찬 가지다.

 

그것은 '내가 누구요'~ 하는 명함 한 줄과는 게임이 안 되는, 명함 100장 1,000장

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나의 인생 고백서이기 때문이다. 여러 블로그를 보아 왔지만

나와같은 형식을 취하는 블로그는 아직 찾지 못하였다.

 

그런 방식이 꼭 좋다고 볼 수 없을지 모르지만 하여간 나는 그렇게 생각해 왔고

그런 방식을 고수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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