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중국의 석주(石州)라는 곳에 한 목동이 살았다. 첩첩산중 시골 마을에서 소를 키우며 사는 그는 무료함을 달래려고 늘 피리를 불었다. 피리 부는 솜씨는 일취월장하여 어느덧 달인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그의 피리 소리에 취해 소와 산 짐승, 새 들도 귀를 기울이고 춤을 추었다. 그의 피리 소리는 산으로 들로 강으로 퍼져 나갔고 마침내 하늘에까지 울려 퍼졌다.
보름달이 휘영청 뜬 어느 여름날 밤 목동은 여느 때처럼 뒷산에 올라 피리를 불었다. 그때 문득 보라색 구름이 갈라지면서 영롱한 빛이 감돌더니 하늘로 부터 선녀가 내려왔다. 선녀는 피리 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직접 듣고 싶어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목동은 자신의 피리 솜씨를 알아주는 선녀를 위해 정성을 다해 혼신(渾身)의 연주를 했다. 피리소리에 취한 선녀는 새벽에 되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늘로 올라가면서 선녀는 고마움의 정표(情表)로 머리에 꽂은 비녀를 뽑아 목동에게 주었다. 그러나 선녀의 황홀한 자태에 눈이 부신 목동은 비녀를 땅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비녀가 떨어져 깨진 자리에는 비녀를 빼닮은 꽃이 피었다.
* 비녀는 여자의 쪽 머리가 풀어지지 않도록 꽂는 장식품이다. 그 모양이 남근 처럼 생긴 비녀는 예전에는 기혼녀만이 꽂을 자격이 있었다. 따라서 비녀는
여성의 지아비에 대한 사랑과 정절을 상징한다. 여성이 비녀를 잃거나 빼서
주면 정절을 포기하거나 몸과 마음을 허락하는 징표(徵表)로 여겼다.
남자가 상투를 튼 후 머리를 고정시키기 위해 꽂는 비녀 비슷한 장식물을 동곳 이라 한다. 삼국지연의에는 呂布가 중국의 4대 미인 초선(貂蟬)에게 사랑을 맹세 하면서 그 징표로 동곳을 빼 주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선녀는 목동에게 연정(戀情)을 품은 듯하다. 옥잠화는 선녀와 인간 사이의 이룰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을 대신해 핀다.
옥잠화의 꽃말은 추억, 기다림, 아쉬움 등이다.
*27세의 나이로 요절한 조선의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 ~ 1589)은 비녀를 노래한 애틋한 시를 남겼다.
妾有黃金釵 (첩 유황 금차) 나에게 황금 비녀 있으니 嫁時爲首飾 (가시 위수식) 시집올 때 머리에 꽂았던 것이라오. 今日贈君行 (금일증군행) 오늘 길 떠나시는 임께 드리나니 千里長相憶 (천리장상억) 천리 먼 길에서도 오래도록 기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