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오늘은 니세코 스키장을 가는 날이다.

사포로에서 니세코는 상당히 먼 거리로 왕복 열차편과 스키장 렌탈을

연계시켜 표를 팔고 있었다. 

 

편도로만 2시간 이상을 가야하는 꽤 먼 거리이다. 

 

아침 8시쯤인가 우리는 사포로 역으로 가서 니세코행 열차를 탓다. 

 

 

사포로 역에서 니세코 스키장으로 가는 Express  JR 열차를 아침 8시 04 분쯤 탑승했다.

지정석이라서 느긋하게 앉고 보니 별로 사람이 없다. 객실 내부는 아주 잘 되어 있어서 우리의 KTX

와 비슷하거나 살짝 좋은 듯도 보인다. 

이어폰으로 음악도 들을 수 있게 되어있다. 레일을 달리는 승차감도 아주 최상이다.

 

 

삿포로 시내를 지나며 열차 밖을 보니 왼쪽에 스키장이 보인다.

이른 아침부터 한 여인이 눈길을 걷고 있다. 

 

특급 답게 테이네 한번 들르고 바로 오타루에 도착한다. 바다가 나오면서 오타루가 시작된다.

 

 

 

하지만 도심을 벗어나 니세코로 가는 길엔 저렇게 하얀 눈 벌판이 나타난다. 거의 전세 열차처럼

편하게 타고 햇살 가득한 시골길을 특급열차로 달리는 기분이 참으로 좋다. 눈덮인 대평원..을

한번 보고 싶었는데^^  아주 멋지다. 

 

 

구챤역에 도착하여 버스로 갈아 타고 금세 도착한 니세코 스키장~ 앞으로 보이는 요테산의 정경이다.

어제 비행기 타고 오면서 보았던 하늘에 하얗게 빛나던 은빛 봉우리,, 저거인듯 하다.

자,,이제 부터 부피가 큰 내 후지 카메라는 사물함에 모셔둘 차례다.

 

 

니세코.. 그 규모가 엄청나서 도저히 한번엔 다 둘러볼 수도 없는 곳이다. 렌탈을 마치고 서둘러

올라 본 코스에서 아래를 보며 찍어 본다.

 

 

 

 

 

 

니세코가 자랑하는 시라카바 (자작나무)숲 코스를 내려오며 한장 찍어 본다. 저 뒤에 고목같은게

자작나무인데,,우리나라에선 본적도 없는 아주 오래 묵은 나무같다.

千 昌夫(센 마사오) 가 불렀던 北國の春 에 처음 나오는 白樺 靑空 南風 (시라카바,아오조라, 미나미가제) 이

들리는듯하다. 저기 白樺 이것이 자작 나무란 뜻이다.

엄청 상단에 위치한 코스라 아주 상급인줄 알았더니 비교적 쉽게 내려올 수 있었다.

 

 

어떻게 코스를 공략할지를 생각해보는 중이다. 저 보이는 코스같은 것이 양 옆으로 두개가 더 있다는데,,

적어도 3일은 머물러야 니세코의 코스를 둘러보는 정도는 되는 셈이다. 1일 1코스씩~

 

 

할리데이 코스라고 편안하게 탈수있는 코스를 내려 오며 능선의 실루엣과 하얀 눈의 조화가

너무 멋져 찍어본 사진이다.

 

 

풍부한 적설량 때문에 저렇게 산 속 어디나 자유 자재로 넘나들며 스키를 타는

사람이 많다. 마치 산짐승 처럼 보이는 저것이다. 잘못 한번 빠지면 도저히 헤쳐

나올수 없을거 같아 가고 싶지만 참는다^ 좀 더 실력을 키운 후에~

 

 

슬로프 옆으로 스키를 찍어 쌓인 눈을 가늠해 보는 순간이다.

 

 

밑에서 보는 코스는 일반 우리나라의 스키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완전 눈으로 뒤덮힌 설산에

코스만 달랑 만들어 놓은 저 코스는 완전히 느낌이 다를뿐 아니라 몇 번만 타도 굉장히 힘이 많이 든다.

더구나 이곳이 자랑하는 파우다 스노우라는거,, 할리데이 코스를 내려 오다 하도 눈이 포근해서 앉아서

눈을 만져 보았다.

 

 

눈이야 여기서도 보고 저기서도 보고 많이 보아온 거지만,,정말 자세히 만지고 들여다 보니 아! 이게

진짜 눈이 다르구나..

순간 이 것이 쌀 가루라면 온 지구상의 빈곤을 해결하고도 남을텐데,,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원체 눈이 촉감이 좋다보니 별 생각이 다 ^^

 

멀리 보이는 요테산도 수려하고..고운 설질이 정말 이곳에 앉아 머물고 싶을 지경이다^^

몇번 슬로프를 안 탔는데도 무릎과 발목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아무래두 이 정도에서 끝을 맺어야

내일도 탈수있을 거 같아 오늘은 여기서 스키를 종료하기로 아들과 합의를 했다.

 

 

 

 

니세코는 삿포로에서 왕복 하기는 너무 멀다. 

또 스키장 코스가 웅장하여 하루 코스로는 벅차다.

해서 니세코 주변에 숙소를 정하고 최소 2-3일 정도로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북해도로의 스키여행!

그것도 첫 북해도 방문을 스키 여행으로 잡은 것이다.

당시 아들과 나는 6개월 전부터 스키장이며 숙박할 호텔 등을 검색했다. 

 

2011년 2월 ~ 

우리나라 같으면 겨울이 끝나갈 시기였지만, 북해도는 사정이 달랐다. 

눈의 고장 그곳을 스키를 타기 위해 첫 입성을 하다니!

아들도 그랬겠지만, 나 자신도 무척 고무된 기분이었다. 

 

 

아마도 요테이 니세코 스키장 부근에 있다는 요테이 산 인듯하다.

아! 드디어 북해도란 데가 저기구나^^

 

기내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첫 방문지 북해도를 보고 또 본다.

 

 

조금더 가니 하꼬닷떼 항구로 추정되는 부분이 눈에 덮인채 선명히 보인다.

 와우^^ 저 하얀 풍경~

 

좀 더 사포로 근처로 날아가니 이젠 더 멋진 설경이

창아래 펼쳐지기 시작한다..

 

 

신치토세 공항 부근에 저리 넓은 들판이 있다니...

드뎌 설국에 들어온 것이다^^

 

 

 

사포로 시내를 가로 질러 호텔로 가는데,,거리가 꽤 멀다. 기온이 좀 높은지 길가에 쌓인 눈이

조금씩 녹아 내리기도한다. 도시는 그냥 여느 도시와 별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뭔가 좀 다를

것으로 예상했는데,아직은 아니다.

 

 

아들과 4일간 묶을 침대 두개가 딸린 방이다. 5개월 전에 미리 예약을 해서인지 방 값은 비교적

싼 편이다. 아침 식사 제공하고 4박에 25,000엔 이니까 괜찮은 편이다. 더구나 사포로 중심부인

스스키노 역 부근이니,

 

이곳은 날씨가 스키에는 변수인데 햇빛 나는 날이 별로 없다고 한다. 거의 눈 이거나 바람이 휘몰아

친다는데,,운이 없으면 제대로 스키를 탈 수가 없단다. 아들 말로는 도착  당일인 2/3일 만 맑고 다음은

다 나쁘단다. 해서 근처 테이네란 곳의 야간 스키를 타기로 하고 삿포로 역에서 야간 권과 다음날 니세코

스키장 패키지를 구입했다. JR  열차와 렌탈,리프트 권을 묶어 파는 패키지는 매우 저렴해서

반드시 그걸 구입해야만 된다 했다.

 

 

테이네 스키장,우리로 치면 천마산 가기 전에 있는 서울 리조트인가 뭐 그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곳 같다.

호텔에 짐만 풀고 테이네로 달려 갔지만 열차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 타려니 방금 버스는 떠났고,

다음 버스는 한 시간도 넘게 기다려야 온 단다. 아들은 바로 산 밑이면 걸어가도 되지않냐..했지만,

택시를 타고 가 보니 어랍쇼 이게 장난이 아니게 산을 올라가야한다.

 

4시부터 시작되는 야간 스키를 타기 위해 렌트를 마치고 나서니 6시가 좀 넘었다. 사람도 별로 없는데 설질을

관찰하니 우.. 정말 좋다. 뽀드득하는 자연설의 촉감이 부츠로 전해져 온다. 2시간 정도 나름 열심히 테스트와

적응훈련을 마치고 내려왔다. 

이게 말하자면 북해도에서의 첫 스키장 눈을 밟아본 셈이다. 

 

택시비까지 1만엔 정도가 들었다. 아까운 택시비^^ 2500엔~ 안 써도 될 돈인데~

버스를 놓쳐 어쩔수가 없었다. 

 

 

야간이라 스키장은 한산했고, 윗쪽으로 상급자 코스가 있다는데 밤이라 크로스 했다. 

아쉬운대로 몇번 이 정도만 몇번 워밍업 정도로 ~~

 

스로프 좌우에 도열한 자작나무~ 밤에 보니 정말 멋지다. 이곳은 자작나무가 엄청 많은곳 같다.

헌데 저건 아무것도 아님이 곧 드러났다. 키로로에서 본 자작 나무는 정말 벌어진 입이 안 다물어질

만큼 멋졌으니 말이다.

 

JR 완행을 타고 부지런히 삿뽀로 역으로 되돌아 와서 일단 저녁을 먹기로하고 달려 간다.

유명한 삿포로의 라면.. 일단 그 정도면 될거 같았다. 스키장에서 약간의 요기를 했으니,

 

 

한참을 뒤져 라면 골목을 찾았고 돼지 수육 한점이 첨가된 야채가 가득한 라면을 한 그릇

먹고 나니 속이 확 풀린다. 우리와는 라면의 조리법이 많이 다르다. 면도 다르다.

 

사실은 처음이라 몰랐지만 일본에 가서 몇번 먹어 보니 라면은 그닥 먹을게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삿포로의 명물 사포로 클래식 저 사진의 맥주를 여섯개 묶음으로 사서 호텔로

들어왔다. 우유와 샌드위치도 하나 더 사서 조금 더 먹었다.

 

맥주맛은 정갈하고 쓴맛이 조금 덜한듯한데 상당히 맛이 좋았다. 저건 삿포로 외 지역에선

절대 안 판다 하여 돌아갈때 더 사 가기로 했다.

 

이렇게 하여 삿포로 도착 1일차 일정을 마무리했다. 

 

 

 

 

 

 

 

 

1985년 여름이었다. 그전부터 소식만 오가던 일본에 거주하는 6촌 형님과
조카들이 보고 싶었다. 말이 6촌이지 나한테는 현존하는 제일 가까운 친척이다.

大山(오오야마)이란 성으로 개명을 하고 일본에 귀화한 형님은 동경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도치키 현에 살고 있었다. 

 

형님은 70년대 말경에도 가끔씩 한국에 나오시면 나를 찾기도 해 당시로서는 귀한

카시오 계산기 같은 걸 전해 주기도 했었다. 

마침 대웅제약에서 파프류의 생산을 검토할 즈음인지라 일본의 사토 제약에
*파프제의 기술을 전수받을 겸 이 기회에 일본 친척도 만날 겸 계획을 짰다. 
당시 생산부의 김창수 대리와  함께 가기로 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그 친구는 그 친구대로 일본 친척을 만나고 나는 나대로 또 그렇게 하는 비슷한

구상이었다.

 

여름휴가 7일 중 3일은 사또(佐藤) 제약에서 나머지 4일은 친척을 만나는 조건이었다.  

대신 왕복 비행기표와 3일간 사또 제약이 있는 하찌요지(八王子)에서의 숙식은

회사에서 제공해 주었다. 

나리타 공항에 마중나온 조카를 따라 바로 도치키 현으로 달렸다. 조카는 

당시 동경에서 부동산 업을 하고 있었는데 대형 승용차에 기사를 딸려 가지고 나왔다. 

일본의 부동산이 천정 부지로 오를 때이다. 며칠만 지나도 수천만 엔씩 값이 올라

흥청망청 하던 시절이었다. 조카는 8천여만 엔에 구입한 부동산을 불과 얼마 만에

1억 몇천만 엔에 팔았다는 서류등을 보여주며 자랑을 하고 있었다. 

 

동북 고속도로를 140km 이상으로 커브를 돌아 가는데 차가 상당히 성능이 좋아 보였다.

지금은 시속 140 이 별거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커브를 그 속도로 돌아 나가는 것은 꽤나

성능이 좋은 차라고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포니 1,2 가 막 생산되던 때였다.

 

도치키 현에는 우쯔노미야( 宇都宮) 라는 큰 도시가 있고, 일본 최고의 관광지 닛꼬(日光)에서 흘러

내려오는 큰 개울이 있는 언덕위에 형님의 집이 있었다.   
가누마(鹿沼])市란 곳이었는데 근처 개울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이 제법 많이 보였다. 

아주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마침 형님의 처형이 근처 우쯔노미야의 천리교(天理敎) 회장으로 있어서 다음날부터 
차를 가져와 닛꼬를 구경시켜 주었다. 하얀 백색의 대형차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각이 진 구식  토요다의 Century 로 추정된다. 

 

 

나는 억지로 근처 천리교 회당에 끌려가 아침이면 소위 예배를 보아야 했다. 

헌데 그들의 자세는 정말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 아닌가?

지극정성으로 아침이면 예배를 드리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었다. 

 

당시 우쯔노미야 천리교 회장 직함을 다지고 있던 형님의 처형이 엔카 카셋테이프

두어 개를 건네 주셨는데, 거기에 수록되어 있던 노래가 바로 이런 것이다.

 

사장가노야도(さざんかの宿) - 조아람 

 

 

 

닛꼬를 올라가는 길은 예의 도꾸가와가 만든 삼나무 숲길을 거치게 된다. 그 옛날

조성한 삼나무 숲은 이제 거목이 되어 길 양 옆을 기가 막히게 장식을 하고 있었다. 큰 나무에

비해 길의 도폭은 좀 좁았다. 

담양의 메타세퀘어 숲길을 연상하시면 되겠으나 닛꼬의 숲 길은 그보다 훨씬 웅장한 느낌이다. 

 

2,000미터 이상의 男大山 을 오르면 거대한 폭포가 나타나고 산 중턱에 조성된 칼데라호의 

크기도 엄청난 편이다. 유람선을 타고 그 호수를 도는데 아래 물이 그렇게 맑고 청명할 수가

없었다. 20여 년이 더 흐른 2,005년에 가족여행으로 닛꼬를 겨울에 다시 찾아보았으나 단체

여행이어서 첫  방문만큼 충분히 둘러볼 수가 없었다. 단지 눈쌓인 고갯길을 정말 버스가 아슬아슬하게 

잘도 오르고 내려갔다. 

 

호수 뒤로 돌아가면 유황 온천의 넓은 전장의 벌판이 나타난다.  한여름의 닛꼬는 시원했고 계곡에서

잡은 물고기를 소금에 구워 팔기도 했다. 닛꼬 호수의 청명함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우쯔노미야 천리교 회장이었던 형님의 처형과~


그리고 조카들과 봉고차를 몰고 쯔쿠바 박람회도 갔었다. 한국에서 처음 온 친척을 

대접한다고 그렇게 한 것이다. 今市 (이마 이찌)라고 하는 닛꼬 바로 아랫동네에서 석재

가공업을 하는 조카의 이모네 식구들을 찾아보니 너무나 맑고 시원한  물이 큰 도랑으로 콸콸 

흘러 내려오고 있는 동네였다. 

 

당시만 해도 스키 같은 걸 탈 생각도 못하던 때였는데,

 

" 이 근처가 겨울이면 스키 타기가 아주 좋으니 함 놀러 와~ "

 

남의 속도 모르고 그들은 나에게 말했다. 

일본 스키를 몇 번 가 본 경험으로는 그들은 동네에도 스키장이 웬만하면 

한 둘쯤 있었다. 

 

허긴 형님이 일본 형수님과 결혼해 닛꼬 부근에 정착하신 이유도 원체 경관이

수려하고 동네 사람들 인심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라고 예전에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 당시 내 눈에 들어왔던 닛꼬 아랫동네의 풍광은 너무도 한적하고 깨끗했다. 

벼가 빼곡히 잘 자라고 있는 시골 농촌은 골목까지 포장이 되어 있었고 집 옆에는

어김없이 승용차가 한 두대 세워져 있어,

 

" 아! 우리나라보다 한 수 위군~ 우리는 언제나 저렇게 될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30여 년이 지나 우리나라 시골에 가면 당시의 일본 이상으로 잘 되어 있고

마을에는 자동차가 즐비하게 보인다. 

 

그런데 그 사이 세월이 흐르고 형님도 돌아가시고 조카들과는 말도 안 통하고

하다 보니 차츰 연락이 뜸하게 되었고 결국 아주 연락 자체가 두절되고 말았다.

사실 도치키현은 후쿠시마에서 대략 200여 킬로 정도 떨어져 어찌 보면 

방사능 권역에 아주 약간은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긴 하다. 

 

그렇다 해도 연락이 두절된 것은 매우 아쉬운 점이다. 막상 일본에 겨울철 스키를

타러 더러 가는데 이렇게 되고 만 것이다.

 

조카들과 형수님과~

 

조카 준꼬~  당시 열심히 안내를 해 주었는데, 수 년전 연락을

취했지만 두절되어 매우 안타깝다.

 

 

약 36년전 일본을 처음 방문했던 기억을 이렇게 정리해 본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무료한 겨울을 뛰어넘기 위해

일본으로 스키 여행을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 파프제 - 파스를 말함 , 당시 기술을 대략 전수받아 왔으나 대웅제약에서는

               파스 제품의 생산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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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시절 내가 자취를 할 때의 일이다. 지금도 사회 취약 지역 극빈자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당시에도 그런 제도가 있었다. 면 내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일부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없지만,당시 면 사무소에서 연락이 오면 나는 사무소로

찾아갔다. 

그러면 큰 자루에 쌀,또는 보리 같은 걸 저울에 재서 넘겨주곤 했다. 
그 양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나는 고맙게 받아 와서 식량에 보태곤 했다. 

하지만 그때에도 면 사무소에 가서 식량을 타 오는 일이 조금은 창피해서

즐겁지 만은 않은 마음으로 가곤 했다. 왠지 그것이 친구들에게 알려질까 봐

살금살금 면 사무소로 들어가곤 했었다. 

 

양곡 배급은 아마도 내가 면사무소 소재지에서 자취를 한 약 2년간 지속되었던

거 같다. 하숙을 하면서 부터는 양곡 지급이란 없었다. 그렇지만 당시 

그렇게라도 하도록 누군가 추천을 하였을 것이고 그 일에 대해

 

나는 뒤늦었지만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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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춥다. 대체 어느 정도로 추울까?

 

어제는 영하 7-8도, 오늘은 영하 10도쯤 된단다!

 

" 그래 올겨울 들어 제일 춥군! 아주 두꺼운 외투를 입고 출근해야 해~"

 

사실 그 두꺼운 외투는 내부에 무슨 털인가가 잔뜩 들었는데, 이거이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6년 전 용인으로 이사 온 그해 겨울에 근처 무슨 할인 매장인가에서

샀는데, 겨울이 다 간 2월 중순쯤이다. 무려 75%의 할인을 해서~ 허긴 정가 다 주고

그런 무거운 외투를 사면 바보지! 

 

"에라 1년에 하루만 입어도 본전이다~ " 뭐 그런 마음으로 구입을 했었다. 

이 녀석은 시베리아 벌판이나, 알래스카쯤 가서 눈에 뒹굴어도 끄떡없을 만큼

엄청난 방한 능력을 과시하지만, 문제는 무겁다는 게 흠이었다. 요즘 뭐 가볍고 

방한은 으뜸인 재질의 외투가 많지만, 일단 저렴하지 않은가? 그것이~ 

 

영하 10도 정도면 좀 덜 춥지만, 그 옷을 꺼내 입고 출퇴근을 했다. 그런데 밤에

잠을 자려니 어깨 뒤 등짝이 시큰하니 결린다. 앗? 이게 뭐야!!

나는 가슴을 침대에 붙이고 등짝을 좀 눌러 달라 아내에게 부탁을 했다. 조금 지나자

어깨는 금세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무거운 외투를 입고 올해 처음 산길을 걸어 오간 때문  같았다.

아니 외투가 좀 무겁기로서니 내 등 근육이 그렇게나 시원찮은가? 허 참!

해서 오늘은 더 춥다는데도 전에 입던 좀 가벼운 외투를 입고 걸어 보니 별로 춥지도 않다. 

 

"괜히 추위에 겁먹었나? "

 

내가 걷는 산길의 마지막 쯤, 운동  기구가 쭈욱 놓인 자리에 도착해 몇 분 여유가 남은 시간에

다리운동 등을 하다 보니 얼핏 이런 싯귀가 눈에 들어 온다. 

  

 

'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값없는 들꽃은 하느님이 키운다~ 

 

하늘의 눈금과 땅의 눈금은 

언제나 다르고 당연 달라야 한다~ ' 

 

초 여름쯤 되어 들꽃이 지천이면 이 시가 좀더 가슴에 다가올 것이다. 

 

시인의 눈은  다르네!!  

 

자! 그러니까 값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사람의 일이고

값이 들지 않는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은 하늘의 일이란 거지~  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능한 기계 문명을 이용하지 않고 태어난 그대로의

내 몸을 활용하는 그 모든 것이 다 하늘의 일이란 것도 자연스레 유추가 된다. 

따지고 보면 걷는 건 내 몸을 위함이다. 걷는 것이 심폐기능은 물론 혈액순환, 근 골격의

강화, 위 내장 기능의 활성, 정신적 활력 증가 등 전신에 걸쳐 모두 유익하니 그걸 택하는

것이다. 

 

물론 미세먼지가 많은 날은 차를 탄다. 

그렇게 하루에 왕복 80분, 9,500 보 걷는 걸 나는 무척 다행으로 여긴다. 

 

 

 만일 내가 이전과 같이 차를 타고 출퇴근을 주로 한다면 이 겨울 입는 옷도 지금처럼

두텁진 않을 것이고, 훨 가벼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하 10도 정도에 차를 가져와서

이곳 아파트 지상에 하루 종일 떨게 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차를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정도로

끔찍이 여겨 그런 건 아니다. 웬지 이 추운 겨울에 지상에 세워놓은 차들을 보면 가끔씩 그런

생각이 난다. 

 

"지하 주차장이 없는데 어떡해요"  

 

허긴 그건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여기 약국 동네를 걸어 들어오며 보니  출근 시간이

좀 지났는데도 대략 80% 가량의 차들이 그냥 오롯이 주차된 채로 추위에 방치되어

있다. 

 

" 차 들도 무척 춥겠군~ "

 

 

만일 내가 걸어 다니지 않는다면 이 정도의 중 무장은 안 할 것이다. 모자도

써야 하고 귀마개는 필수다. 추위에 마스크를 쓰고 걸으면 김이 서려 금세 마스크가 

축축해진다. 

 

 

" 그래 걷는 건 하늘의 일이지~

타는 건 사람의 일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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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느즈막히 일어난다.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동네 앞 보라산을 가 보기로 한다.

아내는 가까운 영통에 홀로 사시는 친정 엄마를 모시러 가고

나는 산을 간다고 나섰다.

 

그래도 오늘이 새해 첫날인데, 야트막한 산 이지만 가서

시원한 공기도 마시고 아침 해도 새롭게 보고 그래야지~

영하 7도,  땅은 굳어 있고 길가에 떨어진 낙엽들은 사람들

발걸음에 밟혀 거의 가루가 되어 있다. 

 

보라산 못 미처 저 건너 산이 보이는 언덕까지 간다. 그래도

2,700보쯤 된다. 능선을 올라 새해 소망을 생각해 본다. 

그래도 대여섯 가지는 떠 오른다.  

 

지곡리 쪽으로 보이는 풍경

 

 

그래 이런 소망을 새해 첫날이 아니고 언제 빌어 본단 말인가?

그런 소망이야 일년 내내 가슴에 스며 있지만, 그래도 첫날이

가장 적절하고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산을 내려온다. 중간에 보니 밤나무 옆으로 신발 한켤레가 벗

어져 있다. 양말도 같이 있는 걸로 보아 누군가 이 산길을 맨발로

걷고 있는 모양이다. 글쎄, 영하 7도의 날씨에 뭔가 굳은 맹세를

하는 중일까? ㅎㅎ

 

 

중간에 나무 의자에 앉아 잠시 침묵 속에 빠져본다.

 

까마귀가 저멀리 까까까깍~ 소리를 지르며 사라진다. 어떤 때는 깍깍

또 어떤 때는 그냥 깍 ~ 이렇게 다양한 소리를 낸다. 작은 박새도 요리조

리 나무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새해 첫날이라 그런가 오 가는 사람이 제법 된다. 허긴 봄철부터

가을까지 또 겨울에도 이곳을 오 가는 사람은 상당히 많다. 인근

주민들에게 좋은 산책로이자 휴식처이기 때문이다. 야산답지 않게

나무는 곧게 높이 그리고 빽빽이 자라는 곳이며 공해가 거의 느껴

지지 않는 꽤나 청정한 곳이다.  

 

사실 용인의 야산자락은 마치 곰팡이가 먹어가듯 곳곳이 잠식되어

수많은 집들이 지어지고 있다. 원형 보존이 안 되어 매우 아쉽지만,

쉬운 문제는 아닌듯하다. 숲에서 살고 싶은 사람도 많을 테니까~

 

천천히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한다. 봄 여름 상추며 오이 토마토를

제공해 주었고 작년 가을에는 김장 배추까지 구입해 먹었던 주말농장을

겸한 4천 평의 밭이 쓸쓸히 이 겨울 방치되어 있다. 그 옛날 시골

우리 밭도 3천 평, 겨울엔 저랬었다. 

 

새해라 해서 일출 사진을 찍겠다고 따라 나선 적도 있었다. 그 추운 

바람을 맞으며 새벽 내내 떨었던 그날 찍은 사진은 그러나 그닥 쓸모가

없었다. 그저 잊지못할 추억으로만 남았다. 나는 새해 첫날을

유별나게 기리는 편은 아니다. 

 

2022년 오늘도 그렇다. 그저 평범하게 아주 보통으로 집에서 휴일을

즐기는 중이다. 사실 1.1일을 쉬게 된 것도 아주 오래된 일은 아니다.

그간 줄곳 새해 첫날도 약국을 열었으니까~ 

 

집에 돌아와 옥상에 설치된 어프로치 연습망에서 몇십 개의 공을 쳐 본다.

햇살이 아주 따스하게 느껴진다. 한 겨울 골프장에 갈 것도 아니면서

뭐할라 그런 연습을? ㅎㅎ 그냥 심심풀이로, 또 집중력 향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지 뭐 별거 아니다.

코로나로 단지 내 조그만 연습장이 2년 문을 닫아서 자구책으로 마련한 옥상

연습 기구이다. 

 

 

그러나  새해에는 비용이 턱없이 올라간 이거 골프는 이제 거의

끊는게 답일듯 하다. 수입도 줄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렇게 새해 오전이 흘러가는 중이다. 

오후엔 시집간 딸,사위와, 연로하신 장모님을 모셔와 만두를 빚어

모처럼 저녁을 푸짐하게 먹었다. 

 

2일차 일요일 오후 들어 무료함이 느껴져 만만한 미리내 성지를 가

보기로 한다. 아침에 살짝 쌓인 눈이 아마도 성지 앞 호수엔 얼음위로

하얗게 빛날 것이라 생각을 했다. 아내도 초라도 봉헌하겠노라고 따라

나선다. 기대 만큼은 아니었지만 하얀 눈이 호수엔 일부 보였고 아내는

성물가게에서 양초 몇 개를 사서 쌀쌀해진 바람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미산리 호수

 

 

내일 아침 가져갈 한복을 다린다. 양복(새로 산)을 찾아놓고

Y 셔츠를 다림질하고 넥타이를 고르고 등등, 숨 가쁜 밤 몇 시간을 보낸다.

근데 한 벌로 구입했던 양복바지가 어디에도 없다. 

이게 무슨 일인가? 어디 있는겨? 그때 분명 바지도 산 건 맞지? 

 

게다가 최신 유행이라는 한복엔 주머니가 전혀 없어 행사 당일

급하게 써야 할 카드며 현금 등을 넣어둘 허리에 차는 전대를 

준비하려니 그 또한 아무리 찾아도 간 곳이 없다. 

분명 어디 있긴 있을텐데~ 

 

아니 이거 왜 이러는가? 참~ 

한복 다림질을 하는 아내는 왜 진즉 그런 걸 준비 못했냐고 드디어 목소리가 커진다.

 

" 진즉 준비라니?

 

아니 누가 그런 소소한 것들을 미리미리 준비한단 말인가?

다 닥쳐서 하지~  물론 며칠 전 완벽히 점검을 끝내고 당일 전 날 한번 더 준비를

하면  좋겠지만~ 내 성격상 그렇게는 못한다!! 

 

결국 임시방편으로 천으로 만들어진 작은 지갑에 양쪽 고리를 달아 전대처럼 쓸 작업을

마칠 무렵 동생 결혼으로 일시 귀국한 아들이 전대 2개를 어디선가 찾아왔다. 

에이~ 괜한 수고를 하고 있었네 그랴~

그것은 26년 전 유럽 가족여행 할 때 여행사로부터 지급받았던 건데 가죽으로 된

꽤나 근사한 제품으로 혹시나 해서 보관해 두었었고 아직도 멀쩡히 쓸만했다.

 

허 거참,아들 이럴 때 쓸만하네~ 어떻게 찾았댜~

맨날 집에 있는 우리가 못 찾는걸  잠시 들른 아들이 찾아 내다니~

 

양복바지는 어딘가 껴 들어갔던 걸 아내가 결국 찾아냈고!

그사이 한복은 다 다려졌다.  자~그럼 이제 대충 끝났으니 이제 잠을 자자고! 

 

헌데 새벽 3시에 얼핏 깨고 나니 다시 잠이 안 온다. 

 

이런 현상은 가끔씩 있는 일이다. 새벽 어디 가는 날 3시에 일어나 준비하는 건

더러 있는 일로  특별히 혼사 전날이라 그런 건 아닐 텐데~ 그치만,

뭐 그래도 큰일을 앞두니 아무래두 그렇겠지.

 

잠도 안 오고, 옛날 내가 결혼할 때가 생생히 떠 오른다. 거실에 나와 A4 용지에 볼펜으로

 오래 전 기억을 더듬어 몇 자 적어 본다 

 

딸도 송파에 미리 나가 홀로 독립한 지 오래인데, 오늘 밤 잠은 잘 자고 있을까?

 

 

바야흐로 약 40년 전 나는 잠실 주공 5단지 아파트를 하나 세 얻어 들어갔었다.

그 집에 거주하면서 결혼 준비를 해 나갔었다. 신혼집은 미리 과천에 얻어 놓았고

헌데,

 

결혼식 당일 이발을 멋지게 한답시고 명동의 한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정돈하고

나니 오후 1시 결혼 미사 시간이 다 되고 말았다. 

그냥 편하게 혜화동 성당 근처 어디 지금의 대학로나 명륜동 언저리에서 머리를

다듬었으면 될걸 무슨 명동이라니~

이거야 말로 안 하던 짓이라는 거이다. 

 

부랴부랴 택시 정류장으로 달려가 늘어선 긴 줄 앞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니

흔쾌히 택시를 양보해 주었다. 

혜화동 성당으로 부리나케 달렸지만 미사 시간에 대략 20여분 늦고 말았다.

당시 성당에 참석했던 하객들은 물론 신부 측에서 더 난리가 났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미사 시간에 신랑이 안 나타나니 그 궁금증이야 오죽했겠는가? 

 

" 혹시 신랑이 결혼식 파투 내고 안 오는 거 아녀? 글쎄~ 

 오다가 무슨 사고라도 난 건 아닐까? "

 

지금처럼 핸드폰이 없었으니 중간에 연락도 안 되고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결정적인 시간에 늦은 건 고등학교 입학시험 치는 날도 있었다. 몇 차례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상황에서 시간 예측도 잘 못했고 버스에서 내려 죽어라 뛰었지만 30분가량 첫 시간에

지각을 했었다. 그런 사건이 평생 단 두 번에 불과한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만 둘 다 아주 치명적인 실수였다. 

 

이번 딸의 혼사를 앞두고 머리를 어디서 할 것인가?로 아내와 의논을 했다.

그래도 좀 괜찮은 데서 해야지~ 가 아내의 생각이었다.

해서 아내와 아들은 전에 살던 분당의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했다.

나는 시간도 마땅치 않아 늘 내가 다니는 수원 약국 옆 아랫동네 그야말로 순수 동네

미용실을 택했다.

 

나 자신 결혼식 때  폼나는 데서 이발을 한다고 했다가 너무도 큰 낭패를

당했던지라 다시는 그런 일에 목숨 걸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던 터이다. 또 뭐 

이 나이에 머리 좀 조금 낫은 데서 잘했기로서니 무슨 인물이 더 날것도 아니고~ 

결혼은 딸이 하지~ 내가 하나? 

 

나와 동갑인 40년 경력의 이발사는 오로지 가위만 써서 이발을 하는데, 벌써 몇 년째

내 머리를 책임지는 단골 이발사이다. 

 

다른 말은 일절 안 하고 이번엔 특별히 평소의 2배 가격을 낼 터이니 신경 좀 써서 해

주시오  했다.

그는 속으로 짐작은 했겠지만, 아무 말 없이 정성스럽게 머리를 손질했다. 

 

머리는 만족하게 잘 다듬어졌다. 

 

어치피 잠도 안 오는데 일어나 쓰는 글이 여기까지 왔다. 

 

오늘 혼사야 잘 진행되겠지 뭐, 그리고 딸아이는 잘 살아갈 것이다.

이미 2년 반 전에 혼자 삼성동 직장 가까운 동네로 독립해 나간지라 시집

간다고 별로 허전함 같은 것도 없다. 

 

어찌 보면 다 큰 아이들은 품속에 끼고 있는 것보다 그 편이 더 좋은 듯도 하다.

말하자면 둥지에서 날아가기 예행연습 이라고나 할까? 

 

단지 상당수의 하객들이 코로나로 인해 함께 하지 못함이 좀 아쉬울 뿐이다.  

 

여기까지 써 놓고 다시 잠을 청했다. 

 

(2021.9.26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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