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매화가 필 것이다.
천년 전, 백 년 전에도 피었고 작년에도 재 작년에도 피었으며
올해도 필 매화~
우리의 선인들은 매화를 칭찬하기에 결코 인색한 적이 없다.
꽃 중에 어느 꽃이 이토록 많은 칭송을 받았으랴~
그런데 나 자신은 도대체 언제부터 매화를 보았는지 기억이 없다.
특히 어릴 적엔~
대체 동네에 매화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겠고,
초 중등학교 교정에도 매화는 없었다.
복숭아꽃, 살구꽃, 진달래, 앵두꽃은 기억이 선명한데~
그런데 교과서는 물론 도처에 매화를 칭송하는 글은 많았다. 그런데 왜?
그 꽃은 그리 구경하기가 힘들었을까?
선인들이 그토록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을 했다면 나라 도처에 매화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어야 마땅하지 않았을까?
해서 나이가 많이 들어서야 겨우 매화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몇 년간 매화를
찾아 두리번 거렸다. 그런데, 내 발길이 짧아서 그런지 도무지 상상으로 그리던
멋진 매화는 만나기 힘들었다.
그림에서 보던 그런 매화는 다 어디 간 걸까?
매화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선인들이 읊은 매화 예찬과는 별도로 진짜 내가 만난 매화는 무언지~
과연 그 칭송에 걸맞는 꽃인지?
꽃 자체로의 매화를 논한다면 나는 유감스럽게 만점을 줄 수가 없다.
매화는 꽃 + 알파가 더해야 그 진가가 발휘되는게 아닐까?
그 알파란 은은한 향기일 수도, 추운 봄 눈을 뚫고 피어나는 꿋꿋함 같은거~
혹은 달밤에 희미하게 비치는 그런 멋 같은 거~
그리고 초여름 선물처럼 다가오는 매실 이라는 열매의 유용함~ 등등
허긴 뭐 그 정도만 해도 여타의 꽃과는 차별화 됨이 확실하다 하겠다.
그런데 나는 수백년 묵은 고목에서 해맑게 피어나는 고고한 매화를 아직
보지 못해서 그런가 여전히 그것에 목 마르다.
더러 사진상으로 그런 고목의 매화를 보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렇게 멋지다고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아! 하나 있다.
구례 화엄사의 흑매화를 본 적은 있다. 그런데 그런 매화는 아래 여러
선인들이 칭송하던 그 매화는 아닌 거 같다.
달 아래 보는 매화 / 이승소(李承召)
매화는 눈과 같고 달빛은 서리 같아
이따금 실바람이 暗香을 보내누나.
달 아래 보는 이 맑음 뼛골에 사무치거니,
다시 무슨 잡념이 일어 시사에 따고 들랴?
매화 가지의 달 / 원천석(元天錫)
눈썹같은 초승달이 추운 밤을 알리는데
매화 흰 바탕의 그 밝음이 사랑옵다.
바람 자고 밤 깊은데 사람들 흩어진 뒤
찬 빛 서로 비추자니 향기도 맑은 지고!
창가의 매화 (우리동네)
매화 핀 창가 /퇴계 이황(李滉)
黃卷中間對聖賢(황권중간대성현) 누렇게 바랜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며
虛明一室坐超然(허명일실좌초연) 비어 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아서
梅窓又見春消息(매창우견춘소식)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
莫向瑤琴嘆絶絃(막향요금탄절현)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을 말라.
도산의 달밤에 매화를 노래하다 / 퇴계
獨倚山窓夜色寒(독야산창야색한) - 홀로 산창에 기대서니 밤이 차가운데
梅梢月上正團團(매초월상정단단)- 매화나무 가지 끝엔 둥근 달이 오르네.
不須更喚微風至(불수갱환미풍지)- 구태여 부르지 않아도 산들바람이 일어나니,
自有淸香滿院間(자유청량만원간)- 맑은 향기 저절로 뜨락에 가득 차네.
山夜寥寥萬境空(산야요요만경공)- 산 속 밤은 적막하여 온 세상이 비었는 듯,
白梅凉月伴仙翁(백매량월반선옹)- 흰 매화 밝은 달이 늙은 신선 벗해 주네.
箇中唯有前灘響(개중유유전탄향)- 그 가운데 오직 앞 내 흐르는 소리 들리니,
揚似爲商抑似宮(양사위상앙사궁)- 높을 때는 商음이고 낮을 땐 宮음일세.
步履中庭月趁人(보리중정월진인)- 마당을 걸어가면 달이 사람 쫓아오고,
梅邊行遼幾回巡(매변행요기회순)- 매화 옆을 걸어 돌며 몇 번이나 돌았던가.
夜深坐久渾忘起(야심좌구혼망기)-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길 잊었는데,
香滿衣巾影滿身(향만의건영만신)- 향기는 옷에 가득 꽃 그림자 몸에 가득
晩發梅兄更識眞(만발매형갱식진)- 늦게 핀 매화의 참됨을 다시 알아선지,
故應知我怯寒辰(고응지아검한진)- 이 몸이 추위를 겁내는지를 아는지.
可憐此夜宜蘇病(가린차야의소병)- 가련쿠나 이 밤에 병이 낫는다면
能作終宵對月人(능작종소대월인)- 밤이 다 가도록 달과 마주 하련만.
퇴계가 칭송한 매화는 혹시 이런 모양?
매화 예찬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조선 중기의 문신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의
‘야언(野言)’이다.
오동나무는 천년을 묵어도 제 곡조를 간직하고--桐千年老恒藏曲
매화는 평생 춥게 지내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은 변하지 않고--月到千虧餘本質
버들가지는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돋는다--柳經百別又新枝
신음이 예찬한 매화는 이런 스타일이 아닐까? 매서운 듯, 고고한 듯~
그러나 춥게 지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는 저 싯귀는 지극히 주관적이다 못해
너무 매화의 격을 의인화 시킨 감이 있다. 허긴 작자 마음이니까~
그러나 위의 퇴계의 도산 달밤의 시도 그렇고 신흠 선생의 시도 그렇고 참 너무도
멋지게 매화를 표현했다.
추운 계절에 피다보니 다소 꽃잎이 움추러 들어 그 모양이 완벽해 보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이런 멋진 시로 묘사하고 있으니
매화는 참 행복한 녀석이다.
매화는 꽃이 피어나는 순서, 곧 춘서(春序)의 으뜸이다.
당나라 시인 백낙천은 이렇게 노래했다.
춘풍(春風) / 백낙천
春風先發苑中梅 櫻杏桃李次第開
薺花楡莢深村裏 亦道春風爲我來
봄 바람에 정원의 매화가 가장 먼저 피어나고
뒤이어 앵두 살구 복사꽃 오얏꽃이 차례로 핀다.
냉이꽃 느릅나무 열매 마을 안에 깊숙하니
또한 말하리라 봄바람이 나를 위해 불어 왔다고.
백낙천의 매화는 이런것일까?
매화 예찬 글 중에서 괜찮다고 생각되는 글 몇 수를
가져와 올려 보았다.
당연 매화 사진은 몇년간 나름 심혈을 기울여 찍어본 나의 작품들이다.
허긴 이른봄에 피는 꽃으로 이보다 더 멋진게 따로 뭐가 더 있을까? 마는
이퇴계는 매화를 소재로 107수의 시를 지었을 정도로 매화에 빠졌다.
그런데 그토록 멋지다는 매화는 왜?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단 말인가?
설령 나의 눈에 아직은 띄지 않았다해도 세상 어딘가에는 정말 멋진
그런 매화가 있을지도 모른다.
요즈음 매화 하나 고즈넉이 감상하는 이가 얼마나 있기나 하겠냐 마는,
과연 명성이 맞는지 어떤지 직접 내 눈으로 한번 확인은 해 봐야 하지 않을까?
화엄사의 흑매
이런 산수유가 이른봄 나의 창가에 피어난다면 어떨까?
매화 산수유가 아니라도 좋다. 그 어떤 꽃이라도 다가올 봄
나의 창가에 고즈넉 하게 피어난다면
그거 참 너무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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