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 가져갈 한복을 다린다. 양복(새로 산)을 찾아놓고

Y 셔츠를 다림질하고 넥타이를 고르고 등등, 숨 가쁜 밤 몇 시간을 보낸다.

근데 한 벌로 구입했던 양복바지가 어디에도 없다. 

이게 무슨 일인가? 어디 있는겨? 그때 분명 바지도 산 건 맞지? 

 

게다가 최신 유행이라는 한복엔 주머니가 전혀 없어 행사 당일

급하게 써야 할 카드며 현금 등을 넣어둘 허리에 차는 전대를 

준비하려니 그 또한 아무리 찾아도 간 곳이 없다. 

분명 어디 있긴 있을텐데~ 

 

아니 이거 왜 이러는가? 참~ 

한복 다림질을 하는 아내는 왜 진즉 그런 걸 준비 못했냐고 드디어 목소리가 커진다.

 

" 진즉 준비라니?

 

아니 누가 그런 소소한 것들을 미리미리 준비한단 말인가?

다 닥쳐서 하지~  물론 며칠 전 완벽히 점검을 끝내고 당일 전 날 한번 더 준비를

하면  좋겠지만~ 내 성격상 그렇게는 못한다!! 

 

결국 임시방편으로 천으로 만들어진 작은 지갑에 양쪽 고리를 달아 전대처럼 쓸 작업을

마칠 무렵 동생 결혼으로 일시 귀국한 아들이 전대 2개를 어디선가 찾아왔다. 

에이~ 괜한 수고를 하고 있었네 그랴~

그것은 26년 전 유럽 가족여행 할 때 여행사로부터 지급받았던 건데 가죽으로 된

꽤나 근사한 제품으로 혹시나 해서 보관해 두었었고 아직도 멀쩡히 쓸만했다.

 

허 거참,아들 이럴 때 쓸만하네~ 어떻게 찾았댜~

맨날 집에 있는 우리가 못 찾는걸  잠시 들른 아들이 찾아 내다니~

 

양복바지는 어딘가 껴 들어갔던 걸 아내가 결국 찾아냈고!

그사이 한복은 다 다려졌다.  자~그럼 이제 대충 끝났으니 이제 잠을 자자고! 

 

헌데 새벽 3시에 얼핏 깨고 나니 다시 잠이 안 온다. 

 

이런 현상은 가끔씩 있는 일이다. 새벽 어디 가는 날 3시에 일어나 준비하는 건

더러 있는 일로  특별히 혼사 전날이라 그런 건 아닐 텐데~ 그치만,

뭐 그래도 큰일을 앞두니 아무래두 그렇겠지.

 

잠도 안 오고, 옛날 내가 결혼할 때가 생생히 떠 오른다. 거실에 나와 A4 용지에 볼펜으로

 오래 전 기억을 더듬어 몇 자 적어 본다 

 

딸도 송파에 미리 나가 홀로 독립한 지 오래인데, 오늘 밤 잠은 잘 자고 있을까?

 

 

바야흐로 약 40년 전 나는 잠실 주공 5단지 아파트를 하나 세 얻어 들어갔었다.

그 집에 거주하면서 결혼 준비를 해 나갔었다. 신혼집은 미리 과천에 얻어 놓았고

헌데,

 

결혼식 당일 이발을 멋지게 한답시고 명동의 한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정돈하고

나니 오후 1시 결혼 미사 시간이 다 되고 말았다. 

그냥 편하게 혜화동 성당 근처 어디 지금의 대학로나 명륜동 언저리에서 머리를

다듬었으면 될걸 무슨 명동이라니~

이거야 말로 안 하던 짓이라는 거이다. 

 

부랴부랴 택시 정류장으로 달려가 늘어선 긴 줄 앞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니

흔쾌히 택시를 양보해 주었다. 

혜화동 성당으로 부리나케 달렸지만 미사 시간에 대략 20여분 늦고 말았다.

당시 성당에 참석했던 하객들은 물론 신부 측에서 더 난리가 났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미사 시간에 신랑이 안 나타나니 그 궁금증이야 오죽했겠는가? 

 

" 혹시 신랑이 결혼식 파투 내고 안 오는 거 아녀? 글쎄~ 

 오다가 무슨 사고라도 난 건 아닐까? "

 

지금처럼 핸드폰이 없었으니 중간에 연락도 안 되고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결정적인 시간에 늦은 건 고등학교 입학시험 치는 날도 있었다. 몇 차례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상황에서 시간 예측도 잘 못했고 버스에서 내려 죽어라 뛰었지만 30분가량 첫 시간에

지각을 했었다. 그런 사건이 평생 단 두 번에 불과한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만 둘 다 아주 치명적인 실수였다. 

 

이번 딸의 혼사를 앞두고 머리를 어디서 할 것인가?로 아내와 의논을 했다.

그래도 좀 괜찮은 데서 해야지~ 가 아내의 생각이었다.

해서 아내와 아들은 전에 살던 분당의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했다.

나는 시간도 마땅치 않아 늘 내가 다니는 수원 약국 옆 아랫동네 그야말로 순수 동네

미용실을 택했다.

 

나 자신 결혼식 때  폼나는 데서 이발을 한다고 했다가 너무도 큰 낭패를

당했던지라 다시는 그런 일에 목숨 걸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던 터이다. 또 뭐 

이 나이에 머리 좀 조금 낫은 데서 잘했기로서니 무슨 인물이 더 날것도 아니고~ 

결혼은 딸이 하지~ 내가 하나? 

 

나와 동갑인 40년 경력의 이발사는 오로지 가위만 써서 이발을 하는데, 벌써 몇 년째

내 머리를 책임지는 단골 이발사이다. 

 

다른 말은 일절 안 하고 이번엔 특별히 평소의 2배 가격을 낼 터이니 신경 좀 써서 해

주시오  했다.

그는 속으로 짐작은 했겠지만, 아무 말 없이 정성스럽게 머리를 손질했다. 

 

머리는 만족하게 잘 다듬어졌다. 

 

어치피 잠도 안 오는데 일어나 쓰는 글이 여기까지 왔다. 

 

오늘 혼사야 잘 진행되겠지 뭐, 그리고 딸아이는 잘 살아갈 것이다.

이미 2년 반 전에 혼자 삼성동 직장 가까운 동네로 독립해 나간지라 시집

간다고 별로 허전함 같은 것도 없다. 

 

어찌 보면 다 큰 아이들은 품속에 끼고 있는 것보다 그 편이 더 좋은 듯도 하다.

말하자면 둥지에서 날아가기 예행연습 이라고나 할까? 

 

단지 상당수의 하객들이 코로나로 인해 함께 하지 못함이 좀 아쉬울 뿐이다.  

 

여기까지 써 놓고 다시 잠을 청했다. 

 

(2021.9.26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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