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70년도 초반 , 정확히는 72년 73년 그 즈음이다.
가까스로 대학은 갔지만, 그 넘의 학비가 자나 깨나 걱정이어서
어떻게 하면 학비를 벌 수 있을까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당연
공부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 밖에~ 한 학기 등록금은 4만 원 정도
였고 한 달 과외비는 대략 2만원 이었으니 잘만 하면 학비는 충분
하고 용돈까지 되고도 남는 괜찮은 장사였다.
실제로 과외비 벌어서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세고비아 통기타를
종로 2가에 가서 덜컥 사기도 했으니까~
당시는 유신 반대 데모가 거의 일상이 되다시피 해서 하루도
캠퍼스가 평화로운 날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학비 걱정으로
나날을 지새우는 처지에 무슨 데모인들 눈에 들어올까?
거 뭐 데모도 다 먹고살만하니 하는 거지~ 흠!
일간지 광고란에 엄지 손톱만한 크기로 '과외' 광고를 특별히 싼 값에
낼 수가 있었다. '과외, 전화번호, 어느 학교 ' 정도를 적을 수 있었다.
돈 없는 학생이라고 특별히 봐준 것이다. 그때 돈으로 한 천원 정도지
싶다.
요즘처럼 다른 일거리를 해 볼 수도 없었고 오직 과외 외에는 학비 충당
의 기회가 전무했던 시절이다.
그런데 어느 날 연락이 왔다. 어이쿠 이게 웬 떡이냐~~
나는 보문동인가 하여튼 어느 허름한 다방 약속 장소로 학교 마치고
부랴부랴 나갔다. 테이블에는 중년의 잠바 차림의 수수한 분이 앉아
있었다. 통상 학교 어쩌고 등의 소개가 끝나자,
" 우리는, 아니 나는 공화당의 자제들 모임인 ' 송아지 회' 란 모임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요! 그런데 당신의 할 일이란 게 공부를 가르치는 그런
게 아니고 안성에 가면 안법 고등학교가 있지. 거기 가서 학교 선생들이
어떻게 수업을 잘하고 있는지, 거 뭐 어려울 것도 없소. 수업할 때 복도에서
슬쩍 한번 들으면 대충 파악이 가능할 거 아니요?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으니,
또 학교 분위기나 운영 사정 같은 것도 좀 봐 가면서~
그런 거 슬슬 관찰해주면 되는 거요! "
" 아니 과외 때문에 저를 보잔거 아니었나요? "
" 그 그렇긴 한데, 어차피 이것도 공부에 관련된 일이잖소? 그리고 음
이걸 잘 해결해 주면 말이지 까짓 학비 정도는 껌값도 안되게 될 거야~
또 송아지회에도 좀 관여 할 수 있고~ 그러니 어떻게 한번 해 볼 생각이 있소?"
그러나 나는 선뜻 이해가 잘 되지도 않았고 이게 대체 나 보고 뭘 하라는
소린지 도무지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 내가 뭘 학교에 가서 염탐꾼이 돼라
는 얘긴가?
우물쭈물하는 나를 보더니 그 사람은 잠시 화장실을 갔다 오겠다,, 하고는
자리를 비웠다. 그런데 1분이 지나 5분이 지나 10분이 지나 30분이 지나도
도통 돌아올 줄을 몰랐다. 아니 그 사람은 영영 자리에 안 돌아오고 말았다
하염없이 다방 구석에 앉아 생각에 생각을 하다 결국 집으로 허탈한 마음을
안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 에잇 오늘도 과외는 또 허탕이군~ "
나는 왠지 그가 제안했던 그것이 갑자기 매우 괜찮은 조건인 듯 생각되기
시작했다. 그냥 무조건 해 본다고 할걸 그랬나? 놓친 고기가 커 보인다고~
그런데 뭔지도 모르고 덜컥 한다고 하기도 그렇잖아?
혹시 그 사람 어디 간첩은 아닐까? 순진한 학생들 데려다 소위 학교 내에
프락치를 심으려는 건 아니었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는 무엇을 위하여 나를 만났는지 그게 궁금하다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니 그보다도 세상 물정이라고는 새털 하나만큼도 모르는 쑥맥 같은 나를 보고
아예 틀렸다 하고 때려치운 건 아닌지!
아마도 그 일이 진짜 무엇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분이 나 외에도 다른 학생들을
만나봤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간혹 이 나이에도 이상하리 만치 특정
집단에 충성을 바치는 친구들을 보면서 혹시 저 친구 그때 저런 일로 학비를 충당했
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뭐 이건 추측일 뿐이다
그때 그 일이 결론적으로 잘 된 건지, 잘 못된 건지, 새옹지마의 고사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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