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필자 

 

 

30여 년 골프와 더불어 지냈던 세월을 뒤로하고 딱 손을

놓은 건 정확히 2022.7 월 이후다. 

 

당시 위층 의원이 5월 말에 폐업을 하고 7월부터는 함께 일하던

직원도 제 갈 길을 떠나고 달랑 혼자서 약국을 운영하기 시작

하면서부터 골프는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해서 그 길로 골프와는 딱 이별을 하고 말았다. 

 

그 훨씬 이전인 2,000년 도에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었다.

그땐 용인 88cc 앞에 대형 약국을 개업하여 나간 때였다.

1년간 골프와는 담을 쌓고 출퇴근 길에 어쩌다 태광 cc 골프

연습장을 가끔 들러 열심히 연습하는 사람들을 보며,

 

' 저 사람들은 무슨 팔자에 이 시간에 저리 연습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말하자면 골프가 무척이나 그리웠을 때이다. 해서 약국 오가는

길에 연습장이라도 한번 들러보고 싶었던 거다.

 

그러던 마음이 이번에는 전혀 달랐다. 

 

그때와는 사정도 달랐지만 무슨 이유인지 연습장은 커녕 골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나질 않았다.

어쩌면 나에게 닥친 현실에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만 앞섰으니 이거이

뒤늦게 철이 든거라 해야할까?  

 

그러는 와중에 약국을 다시 이전 개업하고 이제 1년이 좀 더 지났다. 

 

거 뭐 골프 쉬어보니 별거 아니더라,

골프에 매달릴 이유가 하나도 없더라~

 

이런 상투적인 얘길 하려는 건 아니다.

 

여전히 골프에 목말라하고 재미가 있고 함께하는 친구 동료

선배들이 있어 그것이 너무도 소중하고 즐거운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그만큼 이 나라에서 골프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과소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소회라 할까 그것은,

 

골프 딱 끊어도 그것이 중독성의 여파로 못 살 거 같다든가 가는 길이

흐트러진다든가 일상생활 영위에 지장을 받는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 아닐까? 

골프가 뭐길래~

 

담배는 딱 그날로 끊기가 사실 불가능하다. 그만큼 몸에 미치는

중독성이 대단하다. 

 

그런데 골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나 개인에 국한된 얘기지만,

 

어떻게 30여 년 친 골프를 하루아침에 끊어도 아무 지장이 없지?

 

어찌 보면 나의 경우는 약국에 온전히 매달릴 수 있어 그런지 모르겠다.

또 하나 작년 봄 즉 23년 4월 아내가 갑자기 쓰러진 이후 1년 이상 병원에

쭈욱 입원해 있다 보니 나의 생활 자체가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졌고 시간적,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어진 것이 어쩌면 결정적 원인일듯도 하다. 

 

약국을 직원에게 맡기지 않고 온전히 주체적으로 하루 10시간 가까이

전적으로 매달리다 보니 1년 반 정도 사이에 뚱뚱하던 뱃살은 온데간데없고

호리 한 몸매로 바뀌었다. 

 

' 그래 열심히 일하니 뱃살도 사라지는구나~ ' 

 

배불뚝이 사람들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내장 비만이 사라진 건

덤으로 얻은 아주 큰 소득이다. 

 

 *

 

생각해 보면 30여 년 전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가 바로 1991년 봄

4월 21일 따스한 봄바람이 불던 때이다. 당시 형편도 좀 나아지고

그동안 궁금하던 골프를 함 해보자는 마음이 불쑥 들었다.

 

골프 연습화 한 켤레를 신발주머니에 넣고 점심시간에 공원 건너

88 연습장(수원)으로 향한 게 시발점이었다. 

 

아하~그러니까 형편도 좀 피고 마음에 여유도 생긴 때로구나. 

 

헌데 지금은 형편은 어느 정도 되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는 탓일까?

도무지 골프를 다시 시작하고픈 마음이 안 생기니 이건 무슨 조화

일까? 

 

아마도 그것은 골프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이미 깨진지 오래고 

터무니없이 비싼 그린피에 말도 안 되는 카트비 떠 넘기기,

수준낮은 식음료 비용, 캐디피등 무엇 하나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고 비용의 골프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내면의 소리 없는

저항이 주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이런 생각은 이 땅의 많은 골퍼들이 공통으로 직면하는 문제

이긴 할것이다. 

 

차라리 그 비용이면 1년에 몇 차례 동남아나 일본등에서 며칠씩

골프와 스키등을 즐기는 게 편하지 않을까? 그 경우엔 친목이나

친구 동료들 간의 유대관계가 다소 소홀해지는 안타까움을 감수해야

하지만~

 

대략 앞으로 그럼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을 해 본다.

 

결론은,

 

칠 수 있으면 치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둬도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것이다. 

 

그뿐이다. 

 

오거스타내셔널 골프코스 

'골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PGTCA 티칭 프로골퍼 도전기  (0) 2022.01.12
2021 US Open 테니스  (0) 2021.09.14
삼금회 -- 용평 2021  (0) 2021.09.01
나의 골프 인생샷  (0) 2021.06.01
골프, 이 비수기에 뭘 해야!  (0) 2021.02.18

 

 

80이 훨씬 넘으신 할머니가 치과 약을 지으러 오셨다.

얼른 보기에도 주변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듯했다.

 

" 에혀~ 이거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데, 세 개 박는데

300이 넘게 들어~ 시골서 농사 지어서는 정말 힘들고

그냥 더 살고 싶지도 않은데, 참 ~"

 

" 쌀 한 가마가 얼만디요~?"

 

"몰러 한 20만 원 하징!"

 

그러고 보니 쌀 한가마는 80kg , 보통 20kg짜리로 구입해

먹으니 금세 감이 안 온다. 

 

"막내아들이 그냥 다니던 치과에서 하라구 해서~

여기 2층에 새로 생긴 치과가 엘리베이터도 있고 다니기 편한데,

그냥 다니던 저쪽으로 가는 겨~ "

 

그러고 생각하니 참 임플란트가 비싸긴 하구나. 시골서 애써

농사지어도 임플란트 하나 하려면 쌀이 몇 가마는 들어야 한다. 

쌀 몇 가마 만들어 내려면 그 시간과 품이 얼만가?

물론 임플란트가 치과에 혁명을 가져온 건 분명하지만 여전히

그 높은 비용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고령이 되어도 임플란트 하나 없이 치아를 온전히 보존한 사람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설령 한 두 개, 몇 개 정도의 임플

란트로 버틸 수만 있어도 성공적이라 본다. 

 

틀니로 연명하는 분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그 불편함이 

얼마며 음식을 씹어 맛을 온전히 느끼기엔 한계가 있어 그 또한 먹는

즐거움을 상당 부분 잃게 되니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어찌 됐건 틀니만 안 하고 여생을 보낼 수 있어도

행복한 인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헌데 이 글을 어느 카페에 올렸더니 반박이 들어왔다.

 

틀니가 그렇게 안 좋기만 한건 아니라고~

글쎄~ 그 부분은 해서 좀 더 판단을 유보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쉬자~

하루 조용히~

 

근데 그게 70-80km는 차를 타고 가야 하고

그게 조용히 쉬는 건가?

 

요 근래 어찌 된 일인지 등짝이 아프더니 목뒤가 아프고

덩달아 허리도 안 좋다. 

 

일을 많이 해서 그런가?

 

이 나이에 그런 말 하면 빈정대는 소리가 들릴게

뻔한지만, 

 

누구 놀리쇼? ㅎㅎ~ 뭐 그런 말~

 

아무튼 해서 온천을 가 보고 싶었다. 다녀 오면 몸이 좀 풀리것

같았다. 예전에 겨울이면 더러 가 보던 곳이다. 

 

능암온천이라고 충청도 앙성이라는 곳에 있는 온천이다.

우리나라의 온천이 뻔하지만 다행히 이곳은 탄산온천으로

나름 온천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차가운 온천수에 탄산이

마치 칠성사이다처럼 뽀글뽀글 솟아오른다. 

 

탕 중앙에는 음수대가 있어 맘껏 목욕하면서 마실 수도

있다. 

 

 

점심을 안 먹고 탕에 들어가면 아무래도 느긋하기가

어려울듯하여 인근 식당에서 설렁탕을 한 그릇 주문했다.

한산한 식당에 내가 첫 손님인 듯,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끓여 온 설렁탕은 도회지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진득한 국물맛에 덤으로 전을 한 접시 내왔다. 

 

설렁탕을 먹고 온천탕에 들어가길 잘했다. 무려 한 시간 반

이상을 탄산수에서 버텼으니까~ 

목욕 마치고 탈의실에 바디후렌드가 보이길래 2000원 내고

마사지도 받았다. 

 

그래서 그런가? 

 

뒷목도 허리도 훨 부드러워졌다. 

 

예전에 잘 가던 온천 뒤쪽 남한강이 흐르는 곳에 비내섬이 있고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던 동네~ 

그러나 차량이 조금 많아져 예전의 그 적막감은 느끼기 어렵게

되었다. 

 

마치 반포 잠수교와 같은 복여울교를 건너 맞은편 복탄이란

동네로 가 본다. 

 

복여울교 중간에 내려 남한강을 조망해 본다. 

 

 

그리 높지 않은 산, 마치 시골 강아지를 보는 듯 평화롭고 따스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강 건너 마을로 차를 몰고 천천히 들어가 본다. 

 

온천 후의 나른함과 이날 유달리 따스한 겨울 날씨에 마치 봄이

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까마귀 몇 마리가 내 주위를 맴돌며 

함께 놀자는 듯 낮게 날아 돈다. 

 

복숭아나무의 티눈이 마치 버들강아지 같다. 

 

겨울을 대비하는 밭고랑을 바라본다. 

흰 눈이 쌓이면 저 밭둑 건초 더미에 촉새들이 먹이를 찾아 

날아들 것이다. 

 

남한강은 유유히 흐르고 까악 까악 주위를 맴돌던 

까마귀들과 작별한 채 발길을 되돌린다. 

 

 

뭐라도 하나 기념으로 사 오려 했지만 겨우 요구르트 

2병이 전부다. 겨울이라 그런가 지역 특산물도 눈에

띄는 게 없다.

 

그저 모두가 숨죽이고 겨울을 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진정한 휴식일까?

 

아마도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코로나를 지나기도 했지만  몇 년 만의 능암 온천행

이기 때문이다. 

 

(2023.12.11 작성)

그러니까 정확히 몇 년도부터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인터넷 동문회 친목회 등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던 그때가 대략 1990년대 

말쯤이 아니었나 싶다. 

 

중학교 다닐 때 교지에 딱 한번 글 올려본 게 전부이고 어디에 투고란걸 해

본 적도 없었는데 수십 년이 지난 그 나이에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게 그렇게 재미

있을 수가 없었다.

몇 줄 쓰다가 시원찮으면 지우면 되고 수정하기도 쉬울뿐더러  

자판을 두드리면 술술 쉽게 생각이 떠오르고 글이 써지기도 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이곳저곳에 올린 글을 한번 출판을 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교정이나 퇴고도 대충 해서 책을 한 권 내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세심하게 글을 다듬을걸~

당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2003년이니까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책 제목을 뭐로 하지? 

 

 ' 기억 뒤편으로 세월의 강은 흐르고' 

 

내 딴엔 그래도 근사한 제목이라 생각되어 붙인 책 이름이다. 헌데,

막상 책을 만들어 보니 딱히 어디다 줄 곳도 많지 않았다. 이런저런 동문회니

약사회 모임이니 친목회 등에 나누어 주고 남은 것이 상당해서 약국 창고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보관되어 있었다. 

 

동기 중에는 책 제목이 기억 뒤편이 뭐냐~ 고 토를 다는 녀석도 있었으나 

그렇다고 책 제목을 잘못 정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기억은 항상 뒤편에 있는 것이니 과히 틀린 것도 아닌데 ~ 뭘!

 

남들처럼 출판기념회니 이런 건 아예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대신 선배님 출판 기념회에서 사회를 본 적은 있다.

사실 출판 기념회는 약간의 자기 과시이자 선전이고 그런 면이 

있지만 그건 각자의 취향이니 뭐라 할 것은 아니라 본다. 

 

책 냈으면 됐지 무슨 기념회는~뭐,

 

 

 

 

 

그런데 수원에서 용인으로 작년에 약국을 옮기면서 보니 책이란 게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정말 책이 이렇게나 무거운 것이었나? 

두세 박스나 되는 책을 가져오는 건 다른 짐도 많은데 참으로 고역이었다.

 

어차피 누군가가 읽으려고 만든 책인데 허구한 날 창고에 처박혀 있는 것이

보기에도 그렇고 도대체 쌓아둘 이유가 없었다. 

 

새로 옮겨온 이 동네 사람들에게 선물로 한 권씩 드리면 어떨까? 

요즘처럼 책 읽기 싫어하는 시대에 뭔 책을?

살짝 그런 걱정도 있었지만~ 

 

몇 달 전부터 약국 카운터 위에 책을 쌓아 올려놓고 한 권씩 가져가시면 감사

하겠다고 써서 붙였다. 하루에 몇 권씩 쌓아놓은 책은 사라졌다. 어떤 이는

그냥 가져가기가 그렇다며 옆집 이디아에서 커피를 사 왔다. 

 

약국을 방문하는 분들은 약사가 수필도 쓴다는 게 신기한 모양이다. 

 

" 이거 약사님이 직접 쓰신 거예요? " 

 

이렇게 묻곤 한다. 

 

내가 쓴 수필집이지만 지금까지 세세하게 정독을 한 건 두세 번 정도다.

소위 말하는 글쓰기 공부를 따로 해 본 적도 없고 인터넷에 자판을

두들겨 쓴 글들을 모아 책을 낸 거이니 그야말로 소소한 신변잡기라 할까? 

 

그런데 약국을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나누어 드린 책이 생각 외로 괜찮은

반응을 일으키는 듯하다.  

 

" 내가 배움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 책을 보고 느끼는 바가 많았다오~"

 

연로하신 어느 할머니가 말씀을 하신다. 

 

 

내가 가끔씩 생각하는,

 

사진은 찍어 뭐에 쓰나?

글은 써서 무엇을 할 거며

노래는 누구를 위해 부르는 걸까? 

 

이런 모든 것들이 그저 홀로 자기만족에 그친다 해서 누가 뭐라 할 일도

없을 테지만 그런 것들이 크던 작던 이웃과의 소통에 다소나마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딱히 누구에게 서문을 써 달라고 부탁을 할 처지도 아니어서

내가 스스로 써 본 서문이다. 

글쎄~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시는지 잘 모르겠다. 

 

첫 수필집 출판 이후 써서 모아놓은 글들이 이미 책 한 권은 넘고도 남지만

이 시대에 누가 남의 글을 그리 열심히 볼까? 에

생각에 이르면 다시 책을 더 출판할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더구나, 이 시대에는 별 쓰잘데 없는 글들이 책으로 만들어져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뭘 모르고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써 보았던 20년 전의

글들이 지금에 와서 보면 더 풋풋하고 신선한 느낌이 나는 듯 하니

 

좀 더 젊을 때라 그럴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

 

글이란 여러 번 고치고 다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란 생각도 든다. 

 

'포토 에세이, 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앙성 봄 나들이~  (2) 2024.04.01
유자따는 남해처녀 / 정서주  (0) 2024.03.21
그해 겨울  (1) 2024.01.23
가을 단풍 (동네)  (1) 2023.11.03
참나무 예찬  (1) 2023.11.03

한번 찍은 사진을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보는 경우가

있을까?

 

 

 " 거 뭐 지나간 세월을 되 돌려 보면 뭐하요?"

 

 뭐 하긴~ 그렇게라도 이 겨울을 그냥 보내기 섭섭해서

그렇다오!!

 

 

겨울의 장엄함을 처음 일깨워 준 것은 60년대 말에 단체로

구경을 갔었던 대한극장의 닥터지바고 영화에서였다. 

눈과 얼음으로 하얗게 뒤덮힌 집~

 

달빛 처연한 밤에 음습한  늑대의 울음소리~까지

유리창에 성에가 끼어 밖이 아무것도 안 보이는 얼음같은 집~

평생 그런 풍경은 처음 보았었다. 

 

그런데 10여 년 전 갔던 북해도의 스키장에서 지바고 와는 또

다른 겨울을 보았다.  

 

" 아! 이것이 진짜 눈,겨울이구나~" 

 

올 겨울 막바지 추위가 진행 중이다.

 

딱 10년 전에 갔었던 북해도의 그 환상적이던 산속의 눈을

기억해 본다. 

사람이 평생 눈만 보고 살수는 없지만 그곳과 같은 눈을 

한번은 봐야 하지 않을까? 

 

 

바람 속으로 걸어 올라갔다

아니 눈 덮힌 산으로 빠져 들어갔다. 

거기서 이 세상 모습을 넘어선 천국의

풍광을 보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