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을 빠져나와 하우스텐보스 턱밑까지 달려 짐을 풀었다

이번이 다섯 번째 규슈 여행이다. 

 

위도상으로는 제주보다 아주 약간 내려가 있지만 몸으로

느끼는 그곳 날씨는 매우 차고 춥다. 

 

2019년 4월 하우스텐보스를 방문했을 때 입구에 우람한 위용을

자랑하는 오쿠라 호텔에 압도되었었다. 당시 하우스텐보스 1인당 입장료

77,000원도 파격적인긴했다. 

 

당시 튜울립 천국이던 하우스텐보스는 매우 강한 인상을 주었었다.

 

언젠가 다시 여길 오면 오쿠라 호텔에 숙박을 하리라 다짐을 했었는데, 

이번엔 아들이 유숙하고 있는 2층 목조 주택에서 일단 하루를 묵는다.

전기 히타를 켜야 난방이 되고 말소리도 작게 해야 하는 집이다.

일본의 목조 주택이라는 것이 대체로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하우스텐보스 앞바다에서 유입되어 하이키세토를 거쳐 사세보로 흐르는 바닷물은

상당히 맑은 편이었다. 얕은 바닷물에는 농어를 비롯한 감성돔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손만 뻗어도 잡힐듯한 고기들을 왜? 이 동네 사람들은 낚시질을 하지 

않는지 의문이 든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농어, 감성돔 등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하우스텐보스 입구, 4월 초의 오쿠라 호텔  모습)

단아하지만 조금은 위압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오쿠라 호텔 맞은편에 위치한 '로렐라이 호텔'에서 일단 온천욕부터 하고

저녁 식사를 마쳤다. 해수 온천이라는데 나름 꽤 느낌은 좋았다. 

 

그런데 식사로 주문한 메뉴가 손이 많이 가는지 50여 분 만에

겨우 나왔다. 다른 손님들 간단한 음식은 빨리빨리 나오는데~ 

식당에서 이렇게 오래 주문음식을 기다려 본 것도 처음이다.

 

급기야 매니저로 보이는 여성분께서 살며시 다가와 연신 허리를

굽히며 사과의 말을 이어갔다.  

 

 

 

적당히 단품요리를 주문할걸 괜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시켰나 보다~ 

 

좀 폼나게 첫 저녁 식사를 해보고 싶었는데, 

초장부터 완전 김새고 말았다.

 

미안하다며 식당에선 생맥주 한잔과 주스 한잔을 서비스로 내왔다. 

 

 

동네 제방 길에 핀 나리꽃~

이 동네 날씨가 따듯하긴 한가부다. 이렇게 꽃이 핀 걸 보니!

 

그런데 왜 이렇게 느낌이 추운 거얌? 

 

 

맑은 바닷물이 유입되니  어촌을 겸한 곳이다.

작은 낚싯배들이 보이는 걸 봐서는,

 

그런데 낚시꾼이 하나도 없다? 

우리 같으면 꾼들이 요절을 낼만도 한데~ 

 

다음날은 사세보 옆으로 해서 서해대교라는 곳을 가 보았다. 

마치 울돌목을 연상할 만큼 바닷물살이 세고 급류가 지나는 곳이다.

 

 

 

사실은 근처 어디 가 볼 데가 마땅치도 않았고 내가 바다를

보고 싶다 하니 아들이 이곳을 안내했던 것이다. 

흐르는 물은 맑고 기세가 등등했다. 

 

자그마한 어시장을 겸한 언덕배기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 건물안에 어판장도 있고 레스토랑도 있다. 

 

 

아주 먹음직한 회덮밥이었다. 가격도 적당했다. 

이곳에서 먹어본 미소시루는 내 생애 최고였다. 

관광지를 겸한 동네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다리 아래 좋은 장소에 이런 횟집이 있다.

평점은 그닥 높지 않다고 하는데~

 

부근이 낚시하기에 매우 좋아 보였고 실제 한 분이 낚싯줄을 던지고 있었으나

고기 잡는 걸 보진 못했다. 혹시 나중에 또 온다면 나도 한번 낚시를 해볼

욕심에 내려가 본  것이다.

 

 

자! 이제 나의 이번 여행 최종 목적지인 우레시노 온천을 향해 움직일 차례다. 

 

가는 길에 아들이 종종 물 뜨러 간다는 산속으로 올라갔다.

도대체 얼마나 좋길래? 

 

꼬불꼬불 좁은 산길을 올라 목적지에 도착했다. 

 

 

 과연 좋은 물이 나올만한 동네였다.

 

 

약수터 뒤 텃밭엔 보기에도 싱싱한 무공해 케일이 자라고 있다. 

 

 

약수터에서 우레시노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嬉野(우레시노)는 일본의 3대 온천이라고 하니 대단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 하겠는데,

일본에 좋은 온천이 그 얼마나 많던가?

 

그중에 3 번째 안에 든다는 말 아닌가?

글쎄 이거는 뭐 순전히 개인적 취향의 문제니까~

등수라는 건 의미가 크지 않을듯 싶다. 

 

일정이 촉박하게 예약을 한 관계로 겨우 두 군데 저녁  식사가 제공되는

료칸을 잡을 수 있었다. 

 

전에도 숙박한 적이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묵어 유명한 화락원은 방은

있는데 저녁 식사가 안 되어 패스했다. 

대신 요시다야와 가수이엔 호텔을 각 1박씩 간신히 예약했다. 그것도 1월 초에 

발생한 서  일본 지진의 여파로 항공기부터 줄줄이 예약 취소 덕분이 아닌가 생각

된다. 

 

이번 여행은 뭘 보러 간 것이 아니라 그저 며칠 온천을 하고 푹 쉬는데

중점을 둔 것이라 온천욕 하는 걸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몇 년 전 북해도로 스키여행을 갔을 때는 하루에 8번의 온천을 하기도

했으나 이번은 전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하루 2번이면 충분하고도

남았으니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우레시노~ 

산간에는 거의 녹차밭으로 뒤덮여 있고 그저 소박하고 깔끔한

동네다.

 

몇 군데 전에 갔던 곳을 돌아다봤다. 

우리나라 시골도 그렇지만 여기도 동네에 도대체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제주의 올레길을 본떠서 만든 우레시노 올레길이 유명하지만

실상 이곳 사람들은 올레길을 별로 다니지 않는다. 

 

올레길 뿐만 아니라 대체로 일본인들은 등산 자체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레시노 뒷산을 넘어오는 5시간짜리 올레길은 몇년 전 가족과 함께

이미 완주한 적이 있다.

 

 

신칸센 우레시노 역이다.

 

 

역에 붙여 지은 메리어트 호텔~

새 건물이라 깨끗하다. 그저 간단히 우레시노에 볼 일 보러

온 사람들이 이용하면 좋을듯하다. 

 

 

우람한 위용을 자랑하는 서광사 앞의 녹나무

 

 

뒷산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녹차밭^

우레시노의 녹차는 맛이 참으로 담백하고도 단맛이 난다.

 

흔히 제주나 보성의 녹차를 맛본 분들이 의례 녹차맛이 별로라 생각하기 쉬운데,

우레시노의 녹차를 마셔 보면 녹차맛이 이런 거였나? 하고 상당히 놀라게 될 것이다.  

 

우레시노는 당초 뭘 볼 것이 많은 동네는 아닌지라, 그저 

온천 하나면 족한 그런 곳이다. 

 

 

온천물만큼이나 따스하고 온순한 느낌이 드는 동네^ 

 

그간 몇 년에 걸쳐 와락구엔, 소엔, 와따야베쇼, 요시다야, 가수이엔 까지 총

5곳을 묵어 본 셈이다. 

강에서는 좀 떨어져 있지만, 다이쇼야,세이류도 한번 묵어보고 싶은 곳이긴 하다. 

 

허나 굳이 숙박비가 많이 드는 료칸이 아니더라도 그저 허름하게 잠만 잘 수 있어도

온천을 자주 하며 오래 머물고 싶은 동네이다. 

며칠 사이에 피부는 몰라보게 윤이 나고 반질반질해진 거 같다.

 

짧은 3박 4일간의 온천을 마치고 사가 공항으로 달린다. 

 

시간이 남아 사가성과 인접한 사가 박물관 미술관을 둘러 보았다. 

바람도 많이 불고 날씨는 매우 추웠다. 

 

 

 

 

주춧돌의 규모로 보아 이곳이 꽤 큰 성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아들은 성곽 주변의 울창한 수목에 수백 마리의 백로가

장관이라고 그걸 보여준다고 했으나 이날 소방관들이 총을

쏘아 백로들을 쫓아내고 있었다. 

 

이제 공항으로 달린다. 

 

끝없이 펼쳐진 사가 평야에는 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고 있다. 우리가 멀리하고

있는 밀을 이들은 열심히 심어대고 있다. 식량 자급자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다가오는데 말이다. 

 

 

그저 희망사항으로는 4월 초쯤 우레시노를 가로지르는 강가에(시오타 강) 축 늘어진

벚꽃이 무리 지어 필 때 온천 겸 벚꽃 감상을 하러 와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데~

아마도 그때는 이 동네 방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은 어려울듯하다. 

 

 

 

우리 동네 입구에 있는 마로니에 나무

 

 

 

해마다 마을 입구에 멋지게 물들던 떡갈나무잎이

올해는 조금 기대에 못 미치는듯하다. 

 

허긴 아직 며칠 더 기다려 봐야겠지만, 요즘 거의 매일 

날씨가 흐린 데다가 긴 여름 때문에 가을단풍이 예년만

못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그러나 주변에 날로 더해가는 노오란 은행잎을 보면 

도저히 건성으로 길을 지나칠수 없게 한다. 

 

' 아~ 여기도 노랑, 저기도 노랑, 저쪽 건너편 산 너머도

노랑~ ' 

 

그러니 저기도 가봐야지! 여기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그렇게 매일매일이 흘러간다. 

 

 아침 날이 흐리고 어둑했다. 

 

지난번 한번 들르고 오늘이 두번째 이다.  

카메라는 무거워 집에 두고 폰만 들고 차에서

내렸다. 

아침 출근길에 좌측으로 흘끗 보이는 노란 은행나무 군락들이

너무 근사해 도저히 궁금해서 안 가보고는 못배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100은 아니지만 상당히 멋진 단풍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 여자대학교 연수원 들어가는 길인데~ 

입구에는 아무나 절대 못들어 온다고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아직 아무도 낙엽을 밟은 흔적이 없다. 

 

 

 

거의 아무도 가지않은듯한 단풍길을 10여 분간 잠시 오르며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내일은 좀더 일찍 카메라를 지참하고 한번 더

방문해 봐야겠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어제의 그 장소로 갔다. 

근데 하루 사이에 단풍잎이 조금은 줄어든 느낌이다. 

그리고 자동차가 몇번 지나간듯 하다. 

 

 

카메라까지 지참했는데~

살짝 아쉽다.

 

 

은행과 미류나무의 공존!

미루나무에 단풍이 같이 들었으면 좀 더 멋있을 텐데~

 

 

 

자세히 다시 보니 어제보다 아주 못하지도 않은 것 같다.

아무래도 2 번째 봐서 그럴 것이다.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가을은 변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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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진짜나무, 헛개나무= 허깨비 같은 나무, 소나무=소처럼 우직한 나무,

오리나무= 잎이 날아가는 오리 같은 나무, 아카시아=까시가 많은 나무,

등등^^^ (물론 저의 개인 생각입니당~)

 

지금도 시골 야산에 가면 젤루 많은 게 바로 저 참나무입니다.

키가 큰 것부터 나지막한 것까지 새파란 초록빛을 띄우고 윤이 반짝반짝 나는 게

여간 친근한 게 아니지요. 봄이면 긴~술을 강아지 혀처럼 늘어뜨리고 수염을 달고

있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그게 가을이면 도토리를 선사하기 위함인 줄을 저도

요 근래야 겨우 생각해 봤습니다.

 

저건 한 겨울에도 불이 잘 붙고 또 도끼로 패면 쪽쪽 결대로 잘도 잘라집니다.

한 60 센티 정도로 잘라 도끼질을 하면 마치 자장면 면발 갈라지듯 갈라지지요.

영어로는 oak 라 하는데 아무래도 참나무 숲에서 새들이 ' 오~ㄱ , 오~ㄱ ' 하고

울어서 그리 이름 붙인듯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스키를 오래 숙성시키는데도 참나무는 필수적이니  특별한 나무라

할 수 있겠지요. 

 

ㅎㅎ 그뿐이 아닙니다. 예전에도 그렇지만 숯이란 거는 참나무에서만 만들어

지지요. 그 숯을 집에 모셔놓으면 나쁜 기운을 없앤다, 공기를 정화한다.. 해서

너도나도 한 묶음씩 안방에 들여놓습니다. 또 참나무를 태울 때 나오는 목초액

은 무좀등 소독에 씁니다.

 

그러니  뭐든 다 소용이 많으니 참나무란 말이 맞는 게지요?

이름만큼 참나무는 참 합니다. 향도 담백할 뿐 아니라 모습도 쪽쪽 적당합니다.

느티나무처럼 수백 년씩 똬리를 틀듯 배배 꼬면서까지 살지 않습니다.

많아야 백 년으로 추정합지요.  

 

아무리 빽빽한 숲이라 해도 시커멓게 보이는 소나무 숲처럼 무섭지도 않습니다.

오늘도 출근길에 야산의 참나무를 한동안 바라보다 왔습니다. 7-80 년은 됨직한

듬직한 참나무를 보노라니 왠지 한번 말을 걸고 싶어 집니다.

 

 

" 이보게 참나무! 이곳에 참 오래 있었군그래! 한자리에서 참 지겹지도 않았나?

이 봄에 저리 반짝이는 잎을 어디 하나 상처받지 않고 쭉쭉 뻗어내니

얼마나 대견한가? 

오늘 난 자네를 보니 너무 기쁘네 그려!

그래^^ 내일도 또 시간 있으면 들르지..

고맙네!! "

 

 

그런데 말이지요~

나무가 꼭 어디에 쓸모가 있어야 좋은 나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동네 입구에 매년 저렇게 예쁘게 단풍이 들어 세상살이에 지친  인생들

에게 위로와 쉼을 주는 저 떡갈나무는 어찌 보면 참나무의 압권이라 생각이

듭니다. 

 

나무 한 그루의 단풍이 과연 그럴까요?

 

 

 

어릴 때 겨울 땔감이 부족한 시절 저는 참나무에게 잘못을 많이 했습니다.

너무 추워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옆집 형하고 겨울밤이 깊어지면 뒷동네 깊은

산으로 나무를 베러 갔습니다.

 

그때도 멀쩡한 나무를 베는 건 금지되었었고 또 산 주인한테 들키면 이만저만

혼이 나는 게 아니었지요.

으스름달밤에 깊은 산속 여기저기서 참나무 베는 소리가 슥삭 슥삭 들려왔습니다.

 

무거운 나무 밑동은 옆집 형이, 가벼운 가지는 제가 지게에 꾸려서

가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게 해서 추운 겨울을 겨우 지냈었지요^^

초등학교 5~6학년 때입니다. 

 

소나무는 송진 때문에 가까이 안아 주기가 좀 어렵습니다. 참나무는 그렇게 해도

깔끔합니다. 단단한 밑동을 토닥토닥 만져주면 따스한 기운이 전해져 옵니다.

 

참나무, 진짜나무!!

 

분당 시범단지의 가로수를 참나무로 한걸 보고 참 기뻤습니다.

 

물론 다른 나무들도 저는 좋아합니다.

 

그러면 당신 식물학자가 되지~

 

아닙니다.

저는 나무를 연구하고 분석하는 학문에는 도통 취미가 없습니다.

 

그저 나무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게 좋을 뿐입니다.

 

*     *     * 

 

그런데 오늘 동네 앞 예의 그 떡갈나무를 출근하며 유심히 보니

예전의 아름답던 단풍에 훨 못미치면서 부석부석 시들어 가고 있네요^

어쩌면 금년 단풍을 말해주는 듯해서 조금은 서운합니다.

담주에 멀리 선운사로 다시 한번 단풍을 보고 사진도 찍으러 갈 예약을

마쳤는데~ 에혀!! 

 

^  ^

 

나무의 꿈

 

초록별 뜬 푸른 언덕에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딱따구리 옆구리를 쪼아도

벌레들 잎사귀를 갉아도

 

바람이 긴 머리 크러 놓아도

아랑곳없이 그저 묵묵히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아름드리 어엿한 나무가~

 

만개한 꽃처럼 날개처럼

너를 품고 너희들 품고

여유비 그치고 눈썹달 뜬 밤

가지 끝 열어 어린 새에게

 

밤하늘을 보여주고

북두칠성 고래별자리

나무 끝에 쉬어 가곤 했지

새파란 별똥 누다 가곤 했지

 

찬찬히 숲이 되고 싶었지

다람쥐 굶지 않는 넉넉한 숲

기대고 싶었지 아껴주면서

함께 살고 싶었지

 

보석 같은 꿈 한 줌 꺼내어

소색거리며 일렁거리며

오래오래 안갯속에서

기다리고 있었지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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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느즈막이 집을 나섰다.

 

미꾸라지밥을 사기 위해서는 낚시 체인점을 찾아가야 했다.

동탄과 송전 사이에 있는 정확히는 동탄 남부 끝 프라자 cc 초입쯤에 있는

낚시 체인점은 그 규모가 엄청 컸다. 말하자면 유통점의 코스트코 정도라 할까?

이제 세상 상당수의 업종이 이렇게 큰 규모로 변모하는 중인가 보다. 

 

예전의 자그마한 낚시 가게는 이제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아는 분이 알려준 대로 미꾸라지밥 한 봉지와 새우가 혼합된 미끼 역시 한 봉지

그리고 미꾸라지를 잡을 때 쓰는 어망 하나를 구입했다. 

 

송전을 지나 천리를 돌아 문수산 아래 개울에 도착하니 어스름 저녁이

지나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서둘러 큰 어망 하나, 작은 어망 3개를

개울에 설치했다. 이렇게 밤이 새도록 놔둔 후 내일 일찍 와서 망을 확인하는

순서가 남아있다. 

 

이 시대에 아니 이 나이에 아직도 개울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철렵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사람들은 이미 그런 일은 까맣게 잊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불판에 고기를 구워 먹는 것에 훨 더 익숙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물고기를 잡는 것은 과거를 추억함인가? 

그 어떤 원시적인 그 옛날의 행위에 빠져들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수렵 본능을

일깨우는 그런 것일까? 

 

사실은 지독히도 무덥던 올여름 두세 차례 이미 물고기를 잡으러 갔었다. 

수렵기술이 부족해 아주 적은 성과에 불과했지만 나름 재미는 있었다. 

 

이튿날 일요일 새벽 일찍 일어나 그곳으로 달렸다. 혹시나 누가 어망을 먼저

발견하고 걷어 갔으면 어쩌나~ 그런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아무 일도

없을 거란 확신은 있었다. 

 

 

가득은 아니지만 상당량의 버들치가 들어 있었다. 

이곳은 워낙 물이 맑고 깨끗하여 1 급수에서만 서식하는 버들치가 거의 대부분으로

2,3 급수에 사는 피라미 종류는 아예 한 마리도 없는 게 특징이다. 

 

작은 고기 대부분은 물에 놓아주고 비교적 큰 것만 골랐다. 개중에 몇 마리는 재빨리

손을 빠져나가 도망갔다. 사실은 버들치를 손질하면서도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소량의 버들치를 튀김 가루에 반죽을 하여 튀김을 만들었다. 

추어탕집에 가면 두어 마리 추어 튀김을 서비스로 내오는데 그것과 버들치는 아주

맛이 다르다. 

 

뭐랄까 고오급 튀김이라고 할까? 

 

 

뭐든 양이 너무 많으면 맛이 떨어진다. 

조금 있을 때가 귀하고 맛이 더한 건 자연의 이치~

그렇긴 하지만 버들치 튀김은 꽤나 맛이 독특했다. 

 

이런 골짜기였다. 

 

약국에서 멀지않은곳에 이런 자연이 살아 있다는 건 큰 위안이자 자랑이자

행복이다. 

 

버들치를 깨긋히 손질한 후 골짜기의 끝을 올라갔다. 마을 입구쯤에 위치한 이 집을

보니 너무 한가롭고 깔끔해 보였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집에서 함 살아보고 싶다. 

 

 

이런 전원주택에 살아가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하던데, 

과연 얼마나 힘이 들까? 생활 편의시설과 동떨어져 있고 너무 적적해서 살기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사람끼리 어울려 사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골짜기의 맨 끝까지 올라가니 유기견 보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많은 개들이 모여

있었고 이들이 짓는 소리가 귀청을 아프게한다. 이런 산속에 생각지도 않은 시설이

있었던 거다.

 

뭐든 끝을 추구하면 마냥좋을수만은 없다는 것이 이런 경우일 것이다. 

 

 

약국 바로 뒤에는 이렇게 가을이 노랗게 익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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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nuit / salvatore adamo

 

 

 

백암순대는 아무튼 나의 영원한 최고 음식이다. 고향 일죽에서 가깝기도

하지만 그 옛날 내가 시골 장터에서 어쩌다 한 그릇 사 먹던 바로 그 순대의

맛을 지금도 유감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토요일 약국을 일찍 마치고 백암으로 순댓국을 먹으러 차를 몰았다. 

백암 가는 길이 참으로 평화로웠었는데 SK 반도체 공장이 신축을 하는

바람에 길이 어지러이 변해 버렸고 야산은 몽땅 베어져 민둥산으로 되고

거기 흙을 퍼 나르는 트럭으로 완전 아수라장이 된 지 오래다. 

 

하여튼 순댓국 한 그릇 먹으러 배를 쫄쫄 쥐어짜며 백암에 도착한 건 오후

2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국밥집 안은 만원이었다.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역시 변함없는 이 맛^ 

한 끼의 식사가 주는 만족감이란 이런 거구나~~

 

그래 내친김에 고향이나 가 보자^ 

 

아랫동네 동물 마을회관 앞에 차를 세우고 내가 살았던 빼낙골로 걸어 올라갔다.

풀이 자라 발목 위를 덮고 사람이 다니지 않은 듯 길이 나 있지 않았다.

6 가구 중 딱 한 가구 신축해서 사시는 아주머니 집에 당도해 보니 대문은

굳게 잠겨있고 마당엔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다. 

 

"엇? 돌아가셨나? " 

 

길을 도로 내려와 아랫 동네 마을회관으로 갔다. 안에는 할머니 아주머니 등 몇 분이

티브이 시청에 이런저런 얘기를 도란도란 주고받고 있다. 

 

" 저 말씀 좀 묻겠습니다. 저위 빼나골 기홍이 어머니가 어떻게 되셨나요?"

 

"누구신데~" 

 

" 아 네에,, 저는 빼나골 살았던 나 ** 입니다. " 

 

"기홍이 엄마는 오래전에 요양원에 가셨는데~ " 

 

음 그래서 집이 그렇게 변했구나~ 나는 순간 맥이 탁 풀림을 느꼈다.

이제 고향에서 나와 함께 살았던 그리고 그 동네에 처음부터 살고 계시던 분은

아무도 없구나~ 

 

몇몇 분과 이런저런 얘기 끝에 마침 고향집 맞은편 산비탈에서 복숭아 과수원을 하던

허영우 형의 형수님이 ~ 

 

윗동네인 우리 집에서 아래 큰 동네로 내려갈 때 초입에

있던 살구꽃이 예쁘게 피던 집이다. 완전 폐허가 되어있다.

 

 

 

" 그 당시 복숭아 과수원에서 잡숴보지 못하신 복숭아가 우리 집에 몇 개

있으니 우리 집으로 가십시다. 아마 형님이 논에 피 뽑으러 안 갔으면 계실

거구만유~ "

 

*  *

 

[ 60년쯤 전 어느 비가 부슬부슬 오던 6월 어느 밤~

나는 우리집 바로 그 건너편 과수원의 복숭아가 그리도 먹고 싶었다. 

 

일전에 복숭아 2개에 5원을 주고 사 먹은 그 맛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철조망을 넘고 복숭아나무까지 접근하는 데는 성공했는데 아뿔싸~

과수원 개가 짖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급한 대로 아무 복숭아나무 위로

얼른 올라가서 동태를 살폈다. 주인 아저씨(허형의 아버님)는 개가 왜

이리 짖는 거야~ 뭐가 있나~ 이러시면서 개를 달래시더니 곧바로 과수원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셨다. 

 

잔뜩 긴장하고 나무에 올라있던 나는 한숨을 돌리고 복숭아를 찾아봤으나

어두운 밤에 복숭아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면 이미 다 따낸 복숭아

나무를 잘못 찾아 올라갔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냥 들키지 않은 것만 감지덕지, 허겁지겁 나무를 내려와 실비를 맞으며

집으로 향했다.

일생 일대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복숭아 서리는 이렇게 소득 없이 끝난 것이다. ]

 

*   *

 

대충 이 얘기를 들은 형수님이 그때 맛도 못본  복숭아 하나 맛보라고 ~~ 

거참, 60년 전에 먹고 싶었던 복숭아를 이제사 먹어 본다?? 

 

대문 입구에 만들어 놓은 저온 창고에서 복숭아 몇 개를 꺼내 칼로 깎아 건네 주신다.  

그리고 텃밭에서 맵지 않은 오이고추며 상추며 노각이며 포도까지 줄줄이 따서 비닐

봉지에 담으신다. 

 

"이미 올해는 8.15일을 넘겼으니 내년 8.15일 경에 와서 꼭 복숭아를 좀 구입하겠

습니다요~ "

 

당시의 복숭아 밭은 다 갈아 엎었고 그 뒤쪽으로 다시 복숭아 나무를 심어서 계속

과수원을 하시고 계신단다. 

 

고향을 떠난 지 대략 60년이 된다. 그 사이 꽤나 여러 번 고향을 찾아본 것도 사실

이나 그냥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기 일쑤~ 동네 어느 집을 찾아들어간

적도 거의 없고 따라서 뭘 손에 들고 온 적도 없었다. 말하자면 이번에 그 복숭아

한 개, 노각 두 개, 고추 한 움큼, 포도 두 송이는 그래서 내가 60년 고향땅에서 가지

고 와 본 유일한 산물인 셈이다. 

 

나는 고추며 상추 등을 비닐봉지에 넣으시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싸아 해짐을 느꼈다.  

 

그 뭐랄까~ 

그것은 단순한 고향에 대한 향수 이런 게 아니었다. 어쩌면 나에겐 고향에 대한 아주 약간의

피해의식? 서운함? 뭔가 모를 아쉬움~ 그런 것들이 늘 마음 한구석에 살짝 남아 있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 작은 사건으로 인해 내 마음이 많이 풀렸다고나 할까? 

고향을 바라보는 인식에 조금 변화가 있을듯한 예감이 들었다는 점이다. 

 

이 텃밭은 내가 어릴 적 친구들과 구슬치기를 하던 큰 마당이었다.

 

 

허영우 형 집 앞에 들어선 번듯한 양옥집~

 

서울 강남에서 내려온 어떤 중년 부인이 지은 집인데, 이동네 이사 와서 새로

결혼을 했고 부부가 골프를 치러 자주 다니는데 동네 사람들 하고는 거의 내왕이 

없단다. 아무 연고도 없는 시골에 이렇게 내려와 사는 사람도 있네~ 그랴! 거참~

 

내년 복숭아 철에 다시와 볼 것을 약속하며 서둘러 인사를 하고 이곳에서 30리 

떨어진 장호원 대서리로 향했다. 

 

20여 년 전 가을걷이가 끝나면 동네분들이 마을회관에 여럿 모이셨고, 한약을 지어

택배로 부쳐 드리던 동네이다. 내 고향 동네 바로 옆집에 살던 누이가 사시는 동네이기도

한데 몇 년 전부터 통 연락이 안 되어 이참에 한번 직접 확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그 누님은 살아 계셨고 허나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어 수술에 수술을 거듭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대서리 근처 동네 가리울~

 

엄마 생존 당시 겨울에 보따리를 이고 행상을 하시며 가끔씩 여기 [가리울] 동네를

말씀하셨었다. 

 

" 오늘은 가리울 누구네 집에서 점심을 한술 떴지~ " 

 

그 가리울이라는 동네, 인심이 그때만은 못하겠지만 웬지 꼭 한 번은 들러보고

싶었던 곳이다. 

 

동네 입구에서 뭔가를 뿌리고 있는 농부를 만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여쭈었다.

가리울은 옛 가리울이 있고 신 가리울이 있단다. 그리고 그 동네에 가래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란다. 

 

 

여기 어드메쯤에 그 옛날 엄마가 점심을 얻어 드셨다는 집이 있을게다. 

어둑해지는 마을에 들어가 그저 잠시 얼쩡거리며 동네를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생각 같아서는 오래된 어느 집에 들어가 그 옛날  그 일을 기억

하시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 엄마~ 나 가리울에 왔어요~~ ~~~" 

 

점심으로 먹은 백암 순댓국이 아직도 배가 든든한데 일죽 당촌리에 있는 어죽

국수가 생각이 났다. 

그러나 찾아간 식당에는 육수가 동이 나서 미안하단 말만 들었다. 

에혀!

 

 

흡사 영주의 무섬 마을과 비슷한 풍광을 보여주는 당촌리 냇가~

여기서 피라미를 잡아 어죽을 끓여줄까? 아니겠지!!

개울의 모래는 꽤나 곱고 깨끗해 보였다.

 

 

근처에 있는 기와집~

청미재^ 

 

아마도 민박을 하는 모양인데 내부를 살짝 들여다보니 정원이

매우 크고 아름답다. 

 

혹 고향에 와서 유숙을 한다면 이 집에서 하고 싶다. 

 

토요일 오후 약국 마치고 다녀본 일정으로는 꽤나 여러 가지를 한 셈이다.

눈 감으면 떠 오르는 고향 마을은 아무리 지금 변한 모습으로 바꿔 보려 해도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는 묘한 그런 게 있다. 

 

그래! 그게 바로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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