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정확히 몇 년도부터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인터넷 동문회 친목회 등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던 그때가 대략 1990년대
말쯤이 아니었나 싶다.
중학교 다닐 때 교지에 딱 한번 글 올려본 게 전부이고 어디에 투고란걸 해
본 적도 없었는데 수십 년이 지난 그 나이에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게 그렇게 재미
있을 수가 없었다.
몇 줄 쓰다가 시원찮으면 지우면 되고 수정하기도 쉬울뿐더러
자판을 두드리면 술술 쉽게 생각이 떠오르고 글이 써지기도 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이곳저곳에 올린 글을 한번 출판을 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교정이나 퇴고도 대충 해서 책을 한 권 내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세심하게 글을 다듬을걸~
당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2003년이니까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책 제목을 뭐로 하지?
' 기억 뒤편으로 세월의 강은 흐르고'
내 딴엔 그래도 근사한 제목이라 생각되어 붙인 책 이름이다. 헌데,
막상 책을 만들어 보니 딱히 어디다 줄 곳도 많지 않았다. 이런저런 동문회니
약사회 모임이니 친목회 등에 나누어 주고 남은 것이 상당해서 약국 창고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보관되어 있었다.
동기 중에는 책 제목이 기억 뒤편이 뭐냐~ 고 토를 다는 녀석도 있었으나
그렇다고 책 제목을 잘못 정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기억은 항상 뒤편에 있는 것이니 과히 틀린 것도 아닌데 ~ 뭘!
남들처럼 출판기념회니 이런 건 아예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대신 선배님 출판 기념회에서 사회를 본 적은 있다.
사실 출판 기념회는 약간의 자기 과시이자 선전이고 그런 면이
있지만 그건 각자의 취향이니 뭐라 할 것은 아니라 본다.
책 냈으면 됐지 무슨 기념회는~뭐,
그런데 수원에서 용인으로 작년에 약국을 옮기면서 보니 책이란 게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정말 책이 이렇게나 무거운 것이었나?
두세 박스나 되는 책을 가져오는 건 다른 짐도 많은데 참으로 고역이었다.
어차피 누군가가 읽으려고 만든 책인데 허구한 날 창고에 처박혀 있는 것이
보기에도 그렇고 도대체 쌓아둘 이유가 없었다.
새로 옮겨온 이 동네 사람들에게 선물로 한 권씩 드리면 어떨까?
요즘처럼 책 읽기 싫어하는 시대에 뭔 책을?
살짝 그런 걱정도 있었지만~
몇 달 전부터 약국 카운터 위에 책을 쌓아 올려놓고 한 권씩 가져가시면 감사
하겠다고 써서 붙였다. 하루에 몇 권씩 쌓아놓은 책은 사라졌다. 어떤 이는
그냥 가져가기가 그렇다며 옆집 이디아에서 커피를 사 왔다.
약국을 방문하는 분들은 약사가 수필도 쓴다는 게 신기한 모양이다.
" 이거 약사님이 직접 쓰신 거예요? "
이렇게 묻곤 한다.
내가 쓴 수필집이지만 지금까지 세세하게 정독을 한 건 두세 번 정도다.
소위 말하는 글쓰기 공부를 따로 해 본 적도 없고 인터넷에 자판을
두들겨 쓴 글들을 모아 책을 낸 거이니 그야말로 소소한 신변잡기라 할까?
그런데 약국을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나누어 드린 책이 생각 외로 괜찮은
반응을 일으키는 듯하다.
" 내가 배움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 책을 보고 느끼는 바가 많았다오~"
연로하신 어느 할머니가 말씀을 하신다.
내가 가끔씩 생각하는,
사진은 찍어 뭐에 쓰나?
글은 써서 무엇을 할 거며
노래는 누구를 위해 부르는 걸까?
이런 모든 것들이 그저 홀로 자기만족에 그친다 해서 누가 뭐라 할 일도
없을 테지만 그런 것들이 크던 작던 이웃과의 소통에 다소나마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딱히 누구에게 서문을 써 달라고 부탁을 할 처지도 아니어서
내가 스스로 써 본 서문이다.
글쎄~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시는지 잘 모르겠다.
첫 수필집 출판 이후 써서 모아놓은 글들이 이미 책 한 권은 넘고도 남지만
이 시대에 누가 남의 글을 그리 열심히 볼까? 에
생각에 이르면 다시 책을 더 출판할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더구나, 이 시대에는 별 쓰잘데 없는 글들이 책으로 만들어져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뭘 모르고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써 보았던 20년 전의
글들이 지금에 와서 보면 더 풋풋하고 신선한 느낌이 나는 듯 하니
좀 더 젊을 때라 그럴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
글이란 여러 번 고치고 다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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