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이 되면서 아니 정확히 5월 말로 위층의 의원이 짐을 쌌다.

의원 개인 사정이야 내가 알 길이 없지만, 그가 상가 2층에 온지는 어언 8년째~

의약분업 22년 중의 14년은 다른 2곳의 의원이 있었다. 

 

우리 동네는 전체 1330세대의 꽤나 대단지 아파트다. 

요즘이야 3천 세대니, 5천 세대니 대단지 아파트가 우후 죽순 이상으로 많이

생겨나지만, 30여 년 전 그때는 1천여 세대 이상도 상당히 큰 단지였다. 

 

아시다시피 의약분업은 2000년 8월~부터 실시되어 벌써 22년이 지났다.

의약분업 전에 약국으로 명성을 날리던 상당수의 약국은 분업으로 하루아침에 대부분

그 유명세를 잃어버렸다. 

 

그것은 약국의 운명이 거의 전적으로 병의원의 역량에 달려 있는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과연 의약분업 제도가 이상적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이제 별 의미가 없다.

세상 모든 제도에는 음과 양이 공존하는 것이고 서양 여러 나라와 OECD 국가들의 관례를

좇아 우리도 보조를 맞춰야 했으니까~ 

 

' 한국은 아직도 의약분업을 안 했단 말이요~? ' 라며 마치 미개국을 보듯 그들은 질타 아닌

질타를 해 대고 있었으니까! 

 

세상 모든 일에는 쏠림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병의원의 환자 쏠림과 그에 따른 약국의

처방전 쏠림도 예외가 없다. 말하자면 약국이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와 준비를 하고

있어도 인근 병의원이 처방을 잘 내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문제는 어쩌면 대한민국 약국의 허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생각된다. 즉, 충분한 자본력

으로 유망한 병의원 가까이 정착하면 약국이 별 탈없이 운영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자유경쟁을 원칙으로 하는 사회에서 누구도 이런 행태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분업이 병의원에 끼친 영향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약국에 끼친 영향은

매우 드라마틱했다 할 것이다. 

 

뭐 다 흘러간 과거의 일이지만, 한 국가의 인적 자원이 국민보건을 위해 경쟁적 노력을 하도록

하는 것과 어느 한편에 일임해서 수동적 역할만 하도록 하는 것 중 과연 어느 편이 더 바람직

할지는 하나마나한 얘기일 수 있겠다.

 

과연 이것이 의와 약에만 국한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서로 대칭적인 위치에 있는 여러 다양한 업종들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아무튼 나는 2달째 처방전과는 아주 가끔씩 인사를 하며 약국을 운영하는 중이다. 

그동안 의원에게 빌려주었던 코너 간판도 다시 약국으로 원상 복구했고, 함께 30여 년을 일했던

직원도 7월 부터는 다른 일을 찾아 떠났다. 

 

그래서 초창기 약국을 개업할 당시와 마찬가지로 혼자가 되었다. 

 

청소부터 빈 박스 처리, 약 주문, 배치 , 라벨 찍기, 정리정돈 등 그동안 별로 신경 쓰지 않던 일을

모두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근데 구석구석 청소를 하다 보니 웬지 이제부터 새롭게 진정한 약국의 주인이 되는 기분이다. 

밴드 하나 파스 한 장 혹은 박카스 한 병 마시러 오는 분들에게 전과는 다르게 조금은 더 정성이

가는 말과 응대를 하게 된다. 

 

사실 직원을 고용하면 뭔가 급여만큼의 일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심리가 은연중 작용하여 

상당 부분의 일을 떠맡기는 걸 당연히 여기고 있었다. 

 

 저녁에 집에 가면 밤 10시를 넘기지 못하고 잠에 빠져든다. TV 나 유튜브 시청은 거의 못하는

실정이다. 물론 일정기간이 지나면 조금 나아질 것이라 생각은 든다. 

 

코로나를 겪으며 수많은 이 땅의 자영업자들이 상당수 몰락하거나 겨우 살아남았다 해도 1인

경영체제를 유지하는 중이다. 이런 판국에 일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

 

 

일이야 혼자 하면 어떤가? 

 

꼭 직원을 두고 일을해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전에는 누구랑 대화 상대도 없이 홀로 일한다는게 썩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15년 이상 쌓인 묵은 때를 벗겨내며 약품 배열도 새롭게 하고 정리정돈도 매일 조금씩 하고 있다.

 

 뭘 새롭게 준비하고 출발한다는 건 우선 청소부터 하고 볼 일이라 생각이 든다. 

 

그렇게 완전 홀로 20여 일이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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