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무=진짜나무, 헛개나무= 허깨비 같은 나무, 소나무=소처럼 우직한 나무,

오리나무= 잎이 날아가는 오리 같은 나무, 아카시아=까시가 많은 나무,

등등^^^ (물론 저의 개인 생각입니당~)

 

지금도 시골 야산에 가면 젤루 많은 게 바로 저 참나무입니다.

키가 큰 것부터 나지막한 것까지 새파란 초록빛을 띄우고 윤이 반짝반짝 나는 게

여간 친근한 게 아니지요. 봄이면 긴~술을 강아지 혀처럼 늘어뜨리고 수염을 달고

있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그게 가을이면 도토리를 선사하기 위함인 줄을 저도

요 근래야 겨우 생각해 봤습니다.

 

저건 한 겨울에도 불이 잘 붙고 또 도끼로 패면 쪽쪽 결대로 잘도 잘라집니다.

한 60 센티 정도로 잘라 도끼질을 하면 마치 자장면 면발 갈라지듯 갈라지지요.

영어로는 oak 라 하는데 아무래도 참나무 숲에서 새들이 ' 오~ㄱ , 오~ㄱ ' 하고

울어서 그리 이름 붙인듯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위스키를 오래 숙성시키는데도 참나무는 필수적이니  특별한 나무라

할 수 있겠지요. 

 

ㅎㅎ 그뿐이 아닙니다. 예전에도 그렇지만 숯이란 거는 참나무에서만 만들어

지지요. 그 숯을 집에 모셔놓으면 나쁜 기운을 없앤다, 공기를 정화한다.. 해서

너도나도 한 묶음씩 안방에 들여놓습니다. 또 참나무를 태울 때 나오는 목초액

은 무좀등 소독에 씁니다.

 

그러니  뭐든 다 소용이 많으니 참나무란 말이 맞는 게지요?

이름만큼 참나무는 참 합니다. 향도 담백할 뿐 아니라 모습도 쪽쪽 적당합니다.

느티나무처럼 수백 년씩 똬리를 틀듯 배배 꼬면서까지 살지 않습니다.

많아야 백 년으로 추정합지요.  

 

아무리 빽빽한 숲이라 해도 시커멓게 보이는 소나무 숲처럼 무섭지도 않습니다.

오늘도 출근길에 야산의 참나무를 한동안 바라보다 왔습니다. 7-80 년은 됨직한

듬직한 참나무를 보노라니 왠지 한번 말을 걸고 싶어 집니다.

 

 

" 이보게 참나무! 이곳에 참 오래 있었군그래! 한자리에서 참 지겹지도 않았나?

이 봄에 저리 반짝이는 잎을 어디 하나 상처받지 않고 쭉쭉 뻗어내니

얼마나 대견한가? 

오늘 난 자네를 보니 너무 기쁘네 그려!

그래^^ 내일도 또 시간 있으면 들르지..

고맙네!! "

 

 

그런데 말이지요~

나무가 꼭 어디에 쓸모가 있어야 좋은 나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동네 입구에 매년 저렇게 예쁘게 단풍이 들어 세상살이에 지친  인생들

에게 위로와 쉼을 주는 저 떡갈나무는 어찌 보면 참나무의 압권이라 생각이

듭니다. 

 

나무 한 그루의 단풍이 과연 그럴까요?

 

 

 

어릴 때 겨울 땔감이 부족한 시절 저는 참나무에게 잘못을 많이 했습니다.

너무 추워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옆집 형하고 겨울밤이 깊어지면 뒷동네 깊은

산으로 나무를 베러 갔습니다.

 

그때도 멀쩡한 나무를 베는 건 금지되었었고 또 산 주인한테 들키면 이만저만

혼이 나는 게 아니었지요.

으스름달밤에 깊은 산속 여기저기서 참나무 베는 소리가 슥삭 슥삭 들려왔습니다.

 

무거운 나무 밑동은 옆집 형이, 가벼운 가지는 제가 지게에 꾸려서

가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게 해서 추운 겨울을 겨우 지냈었지요^^

초등학교 5~6학년 때입니다. 

 

소나무는 송진 때문에 가까이 안아 주기가 좀 어렵습니다. 참나무는 그렇게 해도

깔끔합니다. 단단한 밑동을 토닥토닥 만져주면 따스한 기운이 전해져 옵니다.

 

참나무, 진짜나무!!

 

분당 시범단지의 가로수를 참나무로 한걸 보고 참 기뻤습니다.

 

물론 다른 나무들도 저는 좋아합니다.

 

그러면 당신 식물학자가 되지~

 

아닙니다.

저는 나무를 연구하고 분석하는 학문에는 도통 취미가 없습니다.

 

그저 나무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게 좋을 뿐입니다.

 

*     *     * 

 

그런데 오늘 동네 앞 예의 그 떡갈나무를 출근하며 유심히 보니

예전의 아름답던 단풍에 훨 못미치면서 부석부석 시들어 가고 있네요^

어쩌면 금년 단풍을 말해주는 듯해서 조금은 서운합니다.

담주에 멀리 선운사로 다시 한번 단풍을 보고 사진도 찍으러 갈 예약을

마쳤는데~ 에혀!! 

 

^  ^

 

나무의 꿈

 

초록별 뜬 푸른 언덕에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딱따구리 옆구리를 쪼아도

벌레들 잎사귀를 갉아도

 

바람이 긴 머리 크러 놓아도

아랑곳없이 그저 묵묵히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아름드리 어엿한 나무가~

 

만개한 꽃처럼 날개처럼

너를 품고 너희들 품고

여유비 그치고 눈썹달 뜬 밤

가지 끝 열어 어린 새에게

 

밤하늘을 보여주고

북두칠성 고래별자리

나무 끝에 쉬어 가곤 했지

새파란 별똥 누다 가곤 했지

 

찬찬히 숲이 되고 싶었지

다람쥐 굶지 않는 넉넉한 숲

기대고 싶었지 아껴주면서

함께 살고 싶었지

 

보석 같은 꿈 한 줌 꺼내어

소색거리며 일렁거리며

오래오래 안갯속에서

기다리고 있었지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나무 한 그루 되고 싶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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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느즈막이 집을 나섰다.

 

미꾸라지밥을 사기 위해서는 낚시 체인점을 찾아가야 했다.

동탄과 송전 사이에 있는 정확히는 동탄 남부 끝 프라자 cc 초입쯤에 있는

낚시 체인점은 그 규모가 엄청 컸다. 말하자면 유통점의 코스트코 정도라 할까?

이제 세상 상당수의 업종이 이렇게 큰 규모로 변모하는 중인가 보다. 

 

예전의 자그마한 낚시 가게는 이제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아는 분이 알려준 대로 미꾸라지밥 한 봉지와 새우가 혼합된 미끼 역시 한 봉지

그리고 미꾸라지를 잡을 때 쓰는 어망 하나를 구입했다. 

 

송전을 지나 천리를 돌아 문수산 아래 개울에 도착하니 어스름 저녁이

지나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서둘러 큰 어망 하나, 작은 어망 3개를

개울에 설치했다. 이렇게 밤이 새도록 놔둔 후 내일 일찍 와서 망을 확인하는

순서가 남아있다. 

 

이 시대에 아니 이 나이에 아직도 개울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철렵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사람들은 이미 그런 일은 까맣게 잊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불판에 고기를 구워 먹는 것에 훨 더 익숙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물고기를 잡는 것은 과거를 추억함인가? 

그 어떤 원시적인 그 옛날의 행위에 빠져들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수렵 본능을

일깨우는 그런 것일까? 

 

사실은 지독히도 무덥던 올여름 두세 차례 이미 물고기를 잡으러 갔었다. 

수렵기술이 부족해 아주 적은 성과에 불과했지만 나름 재미는 있었다. 

 

이튿날 일요일 새벽 일찍 일어나 그곳으로 달렸다. 혹시나 누가 어망을 먼저

발견하고 걷어 갔으면 어쩌나~ 그런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아무 일도

없을 거란 확신은 있었다. 

 

 

가득은 아니지만 상당량의 버들치가 들어 있었다. 

이곳은 워낙 물이 맑고 깨끗하여 1 급수에서만 서식하는 버들치가 거의 대부분으로

2,3 급수에 사는 피라미 종류는 아예 한 마리도 없는 게 특징이다. 

 

작은 고기 대부분은 물에 놓아주고 비교적 큰 것만 골랐다. 개중에 몇 마리는 재빨리

손을 빠져나가 도망갔다. 사실은 버들치를 손질하면서도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소량의 버들치를 튀김 가루에 반죽을 하여 튀김을 만들었다. 

추어탕집에 가면 두어 마리 추어 튀김을 서비스로 내오는데 그것과 버들치는 아주

맛이 다르다. 

 

뭐랄까 고오급 튀김이라고 할까? 

 

 

뭐든 양이 너무 많으면 맛이 떨어진다. 

조금 있을 때가 귀하고 맛이 더한 건 자연의 이치~

그렇긴 하지만 버들치 튀김은 꽤나 맛이 독특했다. 

 

이런 골짜기였다. 

 

약국에서 멀지않은곳에 이런 자연이 살아 있다는 건 큰 위안이자 자랑이자

행복이다. 

 

버들치를 깨긋히 손질한 후 골짜기의 끝을 올라갔다. 마을 입구쯤에 위치한 이 집을

보니 너무 한가롭고 깔끔해 보였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집에서 함 살아보고 싶다. 

 

 

이런 전원주택에 살아가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하던데, 

과연 얼마나 힘이 들까? 생활 편의시설과 동떨어져 있고 너무 적적해서 살기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사람끼리 어울려 사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골짜기의 맨 끝까지 올라가니 유기견 보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많은 개들이 모여

있었고 이들이 짓는 소리가 귀청을 아프게한다. 이런 산속에 생각지도 않은 시설이

있었던 거다.

 

뭐든 끝을 추구하면 마냥좋을수만은 없다는 것이 이런 경우일 것이다. 

 

 

약국 바로 뒤에는 이렇게 가을이 노랗게 익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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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nuit / salvatore adamo

 

 

 

백암순대는 아무튼 나의 영원한 최고 음식이다. 고향 일죽에서 가깝기도

하지만 그 옛날 내가 시골 장터에서 어쩌다 한 그릇 사 먹던 바로 그 순대의

맛을 지금도 유감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토요일 약국을 일찍 마치고 백암으로 순댓국을 먹으러 차를 몰았다. 

백암 가는 길이 참으로 평화로웠었는데 SK 반도체 공장이 신축을 하는

바람에 길이 어지러이 변해 버렸고 야산은 몽땅 베어져 민둥산으로 되고

거기 흙을 퍼 나르는 트럭으로 완전 아수라장이 된 지 오래다. 

 

하여튼 순댓국 한 그릇 먹으러 배를 쫄쫄 쥐어짜며 백암에 도착한 건 오후

2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국밥집 안은 만원이었다.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역시 변함없는 이 맛^ 

한 끼의 식사가 주는 만족감이란 이런 거구나~~

 

그래 내친김에 고향이나 가 보자^ 

 

아랫동네 동물 마을회관 앞에 차를 세우고 내가 살았던 빼낙골로 걸어 올라갔다.

풀이 자라 발목 위를 덮고 사람이 다니지 않은 듯 길이 나 있지 않았다.

6 가구 중 딱 한 가구 신축해서 사시는 아주머니 집에 당도해 보니 대문은

굳게 잠겨있고 마당엔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다. 

 

"엇? 돌아가셨나? " 

 

길을 도로 내려와 아랫 동네 마을회관으로 갔다. 안에는 할머니 아주머니 등 몇 분이

티브이 시청에 이런저런 얘기를 도란도란 주고받고 있다. 

 

" 저 말씀 좀 묻겠습니다. 저위 빼나골 기홍이 어머니가 어떻게 되셨나요?"

 

"누구신데~" 

 

" 아 네에,, 저는 빼나골 살았던 나 ** 입니다. " 

 

"기홍이 엄마는 오래전에 요양원에 가셨는데~ " 

 

음 그래서 집이 그렇게 변했구나~ 나는 순간 맥이 탁 풀림을 느꼈다.

이제 고향에서 나와 함께 살았던 그리고 그 동네에 처음부터 살고 계시던 분은

아무도 없구나~ 

 

몇몇 분과 이런저런 얘기 끝에 마침 고향집 맞은편 산비탈에서 복숭아 과수원을 하던

허영우 형의 형수님이 ~ 

 

윗동네인 우리 집에서 아래 큰 동네로 내려갈 때 초입에

있던 살구꽃이 예쁘게 피던 집이다. 완전 폐허가 되어있다.

 

 

 

" 그 당시 복숭아 과수원에서 잡숴보지 못하신 복숭아가 우리 집에 몇 개

있으니 우리 집으로 가십시다. 아마 형님이 논에 피 뽑으러 안 갔으면 계실

거구만유~ "

 

*  *

 

[ 60년쯤 전 어느 비가 부슬부슬 오던 6월 어느 밤~

나는 우리집 바로 그 건너편 과수원의 복숭아가 그리도 먹고 싶었다. 

 

일전에 복숭아 2개에 5원을 주고 사 먹은 그 맛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철조망을 넘고 복숭아나무까지 접근하는 데는 성공했는데 아뿔싸~

과수원 개가 짖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급한 대로 아무 복숭아나무 위로

얼른 올라가서 동태를 살폈다. 주인 아저씨(허형의 아버님)는 개가 왜

이리 짖는 거야~ 뭐가 있나~ 이러시면서 개를 달래시더니 곧바로 과수원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셨다. 

 

잔뜩 긴장하고 나무에 올라있던 나는 한숨을 돌리고 복숭아를 찾아봤으나

어두운 밤에 복숭아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면 이미 다 따낸 복숭아

나무를 잘못 찾아 올라갔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냥 들키지 않은 것만 감지덕지, 허겁지겁 나무를 내려와 실비를 맞으며

집으로 향했다.

일생 일대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복숭아 서리는 이렇게 소득 없이 끝난 것이다. ]

 

*   *

 

대충 이 얘기를 들은 형수님이 그때 맛도 못본  복숭아 하나 맛보라고 ~~ 

거참, 60년 전에 먹고 싶었던 복숭아를 이제사 먹어 본다?? 

 

대문 입구에 만들어 놓은 저온 창고에서 복숭아 몇 개를 꺼내 칼로 깎아 건네 주신다.  

그리고 텃밭에서 맵지 않은 오이고추며 상추며 노각이며 포도까지 줄줄이 따서 비닐

봉지에 담으신다. 

 

"이미 올해는 8.15일을 넘겼으니 내년 8.15일 경에 와서 꼭 복숭아를 좀 구입하겠

습니다요~ "

 

당시의 복숭아 밭은 다 갈아 엎었고 그 뒤쪽으로 다시 복숭아 나무를 심어서 계속

과수원을 하시고 계신단다. 

 

고향을 떠난 지 대략 60년이 된다. 그 사이 꽤나 여러 번 고향을 찾아본 것도 사실

이나 그냥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기 일쑤~ 동네 어느 집을 찾아들어간

적도 거의 없고 따라서 뭘 손에 들고 온 적도 없었다. 말하자면 이번에 그 복숭아

한 개, 노각 두 개, 고추 한 움큼, 포도 두 송이는 그래서 내가 60년 고향땅에서 가지

고 와 본 유일한 산물인 셈이다. 

 

나는 고추며 상추 등을 비닐봉지에 넣으시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싸아 해짐을 느꼈다.  

 

그 뭐랄까~ 

그것은 단순한 고향에 대한 향수 이런 게 아니었다. 어쩌면 나에겐 고향에 대한 아주 약간의

피해의식? 서운함? 뭔가 모를 아쉬움~ 그런 것들이 늘 마음 한구석에 살짝 남아 있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 작은 사건으로 인해 내 마음이 많이 풀렸다고나 할까? 

고향을 바라보는 인식에 조금 변화가 있을듯한 예감이 들었다는 점이다. 

 

이 텃밭은 내가 어릴 적 친구들과 구슬치기를 하던 큰 마당이었다.

 

 

허영우 형 집 앞에 들어선 번듯한 양옥집~

 

서울 강남에서 내려온 어떤 중년 부인이 지은 집인데, 이동네 이사 와서 새로

결혼을 했고 부부가 골프를 치러 자주 다니는데 동네 사람들 하고는 거의 내왕이 

없단다. 아무 연고도 없는 시골에 이렇게 내려와 사는 사람도 있네~ 그랴! 거참~

 

내년 복숭아 철에 다시와 볼 것을 약속하며 서둘러 인사를 하고 이곳에서 30리 

떨어진 장호원 대서리로 향했다. 

 

20여 년 전 가을걷이가 끝나면 동네분들이 마을회관에 여럿 모이셨고, 한약을 지어

택배로 부쳐 드리던 동네이다. 내 고향 동네 바로 옆집에 살던 누이가 사시는 동네이기도

한데 몇 년 전부터 통 연락이 안 되어 이참에 한번 직접 확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그 누님은 살아 계셨고 허나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어 수술에 수술을 거듭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대서리 근처 동네 가리울~

 

엄마 생존 당시 겨울에 보따리를 이고 행상을 하시며 가끔씩 여기 [가리울] 동네를

말씀하셨었다. 

 

" 오늘은 가리울 누구네 집에서 점심을 한술 떴지~ " 

 

그 가리울이라는 동네, 인심이 그때만은 못하겠지만 웬지 꼭 한 번은 들러보고

싶었던 곳이다. 

 

동네 입구에서 뭔가를 뿌리고 있는 농부를 만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여쭈었다.

가리울은 옛 가리울이 있고 신 가리울이 있단다. 그리고 그 동네에 가래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란다. 

 

 

여기 어드메쯤에 그 옛날 엄마가 점심을 얻어 드셨다는 집이 있을게다. 

어둑해지는 마을에 들어가 그저 잠시 얼쩡거리며 동네를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생각 같아서는 오래된 어느 집에 들어가 그 옛날  그 일을 기억

하시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 엄마~ 나 가리울에 왔어요~~ ~~~" 

 

점심으로 먹은 백암 순댓국이 아직도 배가 든든한데 일죽 당촌리에 있는 어죽

국수가 생각이 났다. 

그러나 찾아간 식당에는 육수가 동이 나서 미안하단 말만 들었다. 

에혀!

 

 

흡사 영주의 무섬 마을과 비슷한 풍광을 보여주는 당촌리 냇가~

여기서 피라미를 잡아 어죽을 끓여줄까? 아니겠지!!

개울의 모래는 꽤나 곱고 깨끗해 보였다.

 

 

근처에 있는 기와집~

청미재^ 

 

아마도 민박을 하는 모양인데 내부를 살짝 들여다보니 정원이

매우 크고 아름답다. 

 

혹 고향에 와서 유숙을 한다면 이 집에서 하고 싶다. 

 

토요일 오후 약국 마치고 다녀본 일정으로는 꽤나 여러 가지를 한 셈이다.

눈 감으면 떠 오르는 고향 마을은 아무리 지금 변한 모습으로 바꿔 보려 해도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는 묘한 그런 게 있다. 

 

그래! 그게 바로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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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수목원 아랫동네에 숙소를 정하다 보니 어딜 좀

갈려면 기본 수십 킬로는 지나야 했다. 

태백산 정상 쪽이 그랬고 불영사 또한 그랬다. 보통 60여 키로는

달려야 했다. 물론, 땅이 넓은 나라에 거주하시는 분들이 보면 새발에

발톱 정도도 안될 거리이긴 하지만~ 

 

찌는듯한 도심에 비해 훨 시원한 동네에 오긴 했지만, 이틀밤을 

자고 나니 그만 집으로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휴가는 며칠 더

남아 있었다. 

 

오늘은 그 옛날 가 보았던 불영사를 들른 후 영주 무섬을 거쳐 소수서원을

경유해 집으로 가기로 했다. 

 

 

 

 아참! 

 

그 이전에 엊져녁 저녁을 먹으러 갔던 봉화 지역의 오전 약수터 

얘기를 하고 넘어가야겠다. 

 

약수~ 하면 나는 설악산 오색약수를 먼저 떠 올린다. 직장 다닐 때 

1박 2일로 대청봉을 오르기 위해 머물던 오색마을의 오색약수는 그 맛이 참으로 독특했었다.

나중에 장인 어른도 그 오색약수로 위장병을 고치셨단 얘길 집사람에게 들었다. 

 

신기하게도 그 찝지름한 탄산수가 나는 입에 잘 맞는다. 

허나 지금 오색약수터는 폐허가 되고 말았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숙소에서 산 하나를 넘으면 도착하는 [오전] 약수는 우선 일대 계곡이 아주

청정했다. 어떻게 약수터 계곡이 이리도 깨끗하단 말인가? 

위의 계곡물이 바로 그곳 약수가 흘러나오는 지점이다. 

 

약수터 계곡에서 닭백숙을 주로 만들어 파시는 아주머니 얘기로는 이번 폭우에

계곡에 지저분한것들이 싹 씻겨 내려가서 그렇단다. 

 

위의 청진 식당이 평점이 아주 높은 집인데, 우리도 백숙 한 마리를 주문해

먹었다. 약숫물로 끓인 백숙~이라 그럴까? 매우 특별한 맛이었다. 허긴 좋은

물이 지천인 이 동네서 어떤 물을 쓴들 그 맛이 안 날까 마는~ 

 

나는 준비해간 20리터 바이오 물통 가득 약수를 담고 추가로 2L 병에 두어 개 더 

물을 담았다. 집에 가져가서 똑같이 그 물로 백숙을 해 먹을 생각이었다. 

 

어두운 태백의 산길을 꼬불꼬불 넘어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은 상쾌하고 즐거웠다.

 

 

예전엔 불영사를 가려면 버스를 타고 마치 서커스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 위험한 길을 끝없이 달려야 했었다. 

 

지금은 쭉 뻗은 고속화 도로를 편하게 갈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러나

만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울창한 소나무를 비롯한 푸르른 수목을 보며 가는 길은

뙤약볕이지만 매우 상쾌하고 즐거웠다. 

 

어찌 이리도 산이 깊고 인적이 없는지~ 

저 산 기슭 어디쯤에 들어가면 세상모르고 평생을 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불영사에는 때마침 목백일홍이 예쁘게 피어 있었고 고즈넉한 절 분위기는

한낮의 땡볕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무려 40 여년전에 처음 와 봤던 불영사는 전혀 내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 그래 이 더운데 불영사까지 와서 뭐 좀 본 게 있소?" 

 

글쎄 올시다~ 뭘 봤다기보단 그저 한 폭의 좋은 그림을 보고 간다 할까~ 

오고 가며 깊은 산골짝과 소나무와 숲을 보았으니 그만하면 한번 올만하지

않았겠소? 

 

사찰 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냉커피 한잔과 아이스크림을 주문해 먹고

고추며 약초등을 파시는 동네 할머니가 앉아 계시는 곳으로 걸어갔다.

새빨갛게 말린 태양 고추는 1kg에 2만 원, 5킬로 비닐 포장에 10만 원,

매실청은 2리터 한 병에 3만 원~

고추가 탐 났지만 가져가도 활용이 어려울 거 같아 포기하고 대신 매실청

을 한병 구입했다. 

 

 

 

 

" 8월 태양이 내리쬐는 불영사 ~

전각 모퉁이에 서서 수련 자욱이 핀 뜰앞을 바라본다

 

천축산의 줄기 뻗어 내려와 절 뒤쪽으로 흐르는 계곡물과 만나고

강아지도  더위를 피해 한 마리 없는 앞뜰엔 태양이 내리꽂는다!

 

나뭇잎은 무르익어 가을을 재촉하고 

쓰르라미 울어 울어 이 또한 가을을 재촉하노라~

 

갈 길 있는 나그네의 마음 또한 뜨거운 햇살에 녹아

불영사 앞뜰에 내려앉는다~ "

 

 

 

거의 솥에서 찌는듯한 폭염에 불영사를 나서니 점심시간이 되어간다.

춘양을 지나 다덕 약수터까지 씽씽 달려갔다. 그곳에 장작불로 고아서 판다는

소머리 국밥집이 있기 때문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소머리 국밥집은 목요일 그날이 휴일이었다. 결국 근처

산채비빔밥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영주를 지나 전부터 익히 들어왔던 무섬을 

향해 달렸다. 오후 2시를 갓 넘긴 무섬마을은 그야말로 푹푹 찌는 폭염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중이었다. 우산을 받쳐 들고 동네를 걸었으나 더위가 너무 심해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무섬 마을을 둘러싸고 흐르는 개울을 본 순간 ~ 하는 감탄사가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그것은 진정 이 땅의 개울이 가지고 있어야 할 넓은 모래사장을 이곳이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개울은 고유의 모래사장을 잃고 온갖 잡풀이 무성한 하천으로

변해버렸다. 가축의 분뇨가 개울로 흘러들어 유기물을 다량 주입시킨 덕에 그리된

것으로 추정을 하는데, 이것이 어느 특정지역이 아닌 전국의 하천을 오염시켰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하겠다. 

 

무섬 마을 둘레가 특별히 잡풀을 제거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전국의 지자체에서 한번쯤

와서 그 연유를 찾아 봄직한 연구대상이라 생각된다.

 

 

이런 모습이 원래 우리의 개울이었던 것이다. 

이랬던 하천은 요 수십 년 이래 아주 그냥 개판이 돼 버리고 말았다. 

 

" 하천의 모래를 돌려주오~ "

 

 

 

 

무섬마을의 그 유명한 나무 다리는 폭우에 다 망가져 보수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망가지기전 그 다리를 건너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영주 시내를 거쳐 흐르는 시냇물은 그닥 깨끗하지 않았다. 무섬 마을이 영주

보다 상류에 위치했더라면 더 좋았을걸~ 허긴 그랬다면 이런 마을이 생기지도

않았을테지만!!

 

한걸음 옮기기도 벅찬 무더위에 우리는 마을 중간에 마련해 둔 쉼터에서 아이스

크림과 참외 하나 그리고 냉커피 한잔을 마시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기착지인

소수 서원을 향해 차를 돌렸다. 

 

 

소수서원은 꽤 오래전 한번 와 본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은

남아 있는게 거의 없었다.  이번에 와 보니 오래된 낙락장송이 참으로 일품

이었다. 

 

소수가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이미 무너진 학문을 다시 수습해 이어 닦게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했다. 암튼 당시 서원을 설립한 풍기군수 주세붕은 

매우 훌륭한 인물이라 생각이 되었다. 

 

이곳 서원에서 배출한 인물이 도합 4000명 정도라 하는데, 당시로서도 그렇고 설령 지금 현재라

해도 대단한 업적이 아닐까?

 

 

 

 

 

무더운 여름날 깊은 산중은 모르겠지만 이렇듯 평지나

도회지 근처는 아무리 인내심이 강해도 찬찬히 둘러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이런 더위엔 어디 무얼 보러 다닐게 아니라 그야말로

산중에 박혀 피서를 할 일이다. 

 

서둘러 소수서원을 나와 입구에 좌판을 벌여놓은 복숭아 판매점

애서 큼직한 복숭아 한 박스를 트렁크에 넣고 쏜살같이 집으로 내

달렸다. 

 

 

어디라도 좀 다녀와야지?

이 더운데 어딜 간다 해도 시원하게 피서를 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라고

생각되었다.

 

서벽이라는 동네는 백두대간 수목원 바로 아랫동네였다. 동네 모퉁이에 

자리 잡은 2층집은 방이 2개였고 거실에는 살림 도구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어 지내기에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깨끗하고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의 방과 거실 천장에는 편백나무가 시공되어 은은한 향이 몸과

마음을 휘감았다.  

 

무엇보다 저렴한 숙박비는 덤이었다. 1일 65,000원은 이 깊은 산중에

찾는 이가 드물단 반증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금년 여름휴가는 전에도 몇 번 가 본 적이 있는 봉화지역을 거쳐

가면서 부터 시작되었다. 

 

점심으로 찾은 봉화 한약우 타운~

 

 

 

그런데 이곳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를 하고 있었다. 

 

바로 은어를 가득 수조에 가득 넣어두고 판매를 하는 거였는데, 이번 유례없는 강원지역

장맛비로 애써 준비한 은어 축제가 무산되어 할 수 없이 비축해 둔 은어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행사였다. 

 

마당 앞쪽에서 은어 1kg에 1.2 만원~ 

우린 1.5 만 원어치 튀김을 구입했다. 튀긴 은어 맛~ 조금은 특이하기도 했지만 특유의

은어향은 별로 나지 않았다. 

 

"저 많은 은어를 대체 어떻게 잡았대요? " 물으니

 

"은어가 양식이 되잖아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은어가 저리 많은가? 은어 양식장 한번 들러보고 싶네~ 

 

 

이번 숙소가 있던 서벽리~ 에 있는 서벽초등학교!

해질녁에 저 운동장에서 맨발 걷기를 몇 번 했었다. 

 

이런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될까?

교정에는 이순신과 세종대왕 동상을 세워두긴 했는데, 물론 그런 위인을 

본받아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애써야겠지만,

 

그 보다도 행복한 생을 살아가는 법을 좀 가르쳐 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백두대간 수목원은 아직 초창기라 할까~

호랑이 두 마리를 가두어 기르긴 하지만, 그 멀리 태백산 자락까지 가서

수목원만 탐방하기엔 조금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긴 한데!. 

그 높은 산에 웬 호두 나무가 그리 많은지!

 

 

 

도착 당일 찾았던 백두대간 수목원에서 본 호랑이~

수목원에 유달리 많은 호두나무~

 

 

 

 

펜션옆을 흐르는 개울에서 밤새 물소리가 마치 폭우가 내릴 때 나는 소리처럼 들렸다.

찌는 듯한 도시와는 달리 시원한 밤공기가 좋았지만 나는 잠을 쉽게 잘 수가 없었다.

태백산 줄기아래 서벽이라는 단출한 동네~

 

마침 보름달이 불그스름하게 창을 비추는데 베란다에 나가 이렇게 소회를 적어 보았다.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

서벽이라는 백두대간 수목원 바로 아랫

동네는 이렇게 밤이 깊어간다

 

붉으스레 떠 오르는 보름달이 정겹네^

 

마치 비가 퍼붓듯 좌르륵 좌르륵 들리는

개울물 소리는 

이 세상이 아닌듯 

 

그렇게 나의 간장을 녹이는 구나! 

 

 

 

 

 

 

 

 

 

 

 

 

태백산과 만항재등을 오가며 찍은 여름 고산지대 꽃들~

 

솔직히 태백산 정상 까지는 너무 덥고 힘들어 오르지 못했고 유일사라는 절 

까지만 갔다. 

 

그런데 말이지요~

 

유일사의 화강암 수조에 흘러나오는 물은 가히 천하의 명품수라 할 만 했다.

내 평생에 이렇게 찬 물은 이날 껏 접해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물이 이렇게 찰 수가 있을까?  잠시 팔뚝까지 흐르는 물에 적셔 보았으나

손이 저려서 곧 그만두어야 했다! 

 

 

바로 이 물~.

 

그리고 만항재는 태백산 유일사 부근에서 어느 분이 제 카메라를 보더니

한번 꼭 가보라 해서 찾아 올라갔는데, 광범위하게 심어진 고산 꽃들이 멋지기는

하지만 그다지 사진으로 남길만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춘양에서 삼척 가는 길로 돌아 태백을 올라가다 보니 정말 태백의 소나무 숲은

세계 어디에 내어놔도 명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저리 소나무가 울울

창창할 수가 있을까?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한국 태백의 소나무가 들어갈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참으로 이 나라의 보배~ 소나무^ 

 

40여 년 전 춘양 입구의 어느 남의 집 밭 근처에서 텐트를 치고 하루 유숙을 한 이래

다시 찾아본 이 일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소나무 숲이 울창했고 산중의

산이었다. 

 

단지, 승용차로 휙 지나다 보니 그 멋진 소나무 군락을 촬영하지 못한 게 매우 아쉽다.

 

 

 

 

 

2022년 7월 이후 줄곳 혼자서 약국을 운영해오다 보니 평일에

나의 개인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되고 말았다. 

 

1년을 그렇게 지냈다. 

 

그러다 근래 약국을 접고 은퇴한 동기가 1주일에 두어 차례 우리 약국을

봐주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중이었다. 몇 차례의 수습 시간을 거쳐 이젠

친구에게 혼자 약국을 맡겨도 될 만큼 훈련이 되었다. 

 

지난 4월 아내에게 큰 변고가 생긴 이래 아빠의 건강을 걱정하는 아이들이

조금씩 쉬어가며 일을 해야지 않겠냐 해서 그리 결정을 했다. 허나 당시와는

다르게 이젠 나 자신 건강도 웬만큼 회복되어 혼자 약국을 운영해도 될 것 같긴

한데, 그러나 굳이 혼자 버틸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20여년간 허리통증으로 고생을 해온 대전에서 약국을 하는 친구가 지난 6월 말

허리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재활 중인데, 안부와 수술경과를 묻는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 돈 벌려고 애쓰지 말고~

골프도 하고 운동도 하고~

그렇게 살어~~"

 

친구는 수술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어 그 긴 시간을 그렇게 버텨온 것이었다. 

 

몸이 아파보면 욕심도 줄어든다. 거창한 인생의 꿈같은 거는 다 부질없는 

주제가 되고 말기도 한다. 

 

' 그저 이 한 몸 아픈 거나 없어지기를~  '

 

이것이 유일무이한 인생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사실은 그간 쌓인 피로 탓인지 지난달 하순경 아무 이유 없이 1주일 정도 옆구리며

허리며 앞배까지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다 보니 정말이지 몸 아프지 않고

시원한 공기 마시며 편히 잠잘 수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보다 더 큰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분들에 비하면 너무 소소할 수도 

있지만 ~ 

 

해서 친구에게 약국을 반나절 맡겨 놓고 아침 식후 앞산을 올랐다.

물론 맨발로 걷는 것이다. 

 

올라가는 길에 할머니가 운영하는 농장에서 갓 따놓은 토마토와 오이 1만 2천 원

어치를 사두고 출발하여 한 시간여를 맨발로 걸었다. 이젠 맨발 걷기가 보편화

된 것인지 산길에서 만나는 사람 70%는 맨발이다. 

 

내가 맨발 걷기를 시작한 지는 이제 1주일 정도다. 따로 시간이 없으니 근처 주차장에서

하루 출퇴근 시에 20여분씩 대략 4-50분 정도를 하고 있다. 다행히 주차장이 흙으로

된 덕분이다. 

주말에는 집 앞 야산을 1시간여 걷는다. 

 

토마토와 오이를 집에 가져다 놓은 후 물통을 챙겨 자주 가는 사찰로 물을 뜨러 

나섰다. 집에서 약 25킬로 정도 떨어진 곳^ 

 

물을 뜬 후 약국으로 돌아오면서 원삼의 고초골 성지를 들른다. 성지에 차를 세우고

다시 한번 잠시 맨발로 주변 마당을 밟아본다. 신을 신고 걷는 것과 맨발로 걸어보는 건

어쩐지 느낌도 다르고 뭔가 이 땅에 내가 정말 서있다는 친밀감도 더한다.

 

여러 가지 꽃을 가꾸고 있는 성지 인근 주택지를 천천히 둘러본다. 그 옛날 내가 살던 시골서

보던 그런 꽃들이다. 

 

소박한 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로움이 가슴 가득 스며든다. 

 

반나절의 시간이 이렇게 긴 건가? 

 

약국에 도착하여 친구와 함께 인근 식당에서 된장 찌개로 점심을 먹고 친구는 집으로

가고 나는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는 중이다. 

 

비록 아침 몇 시간을 휴가처럼 활용했지만 참으로 평일로서는 1년 만이고 홀가분하고

자유로움을 맘껏 즐긴 셈이다. 

 

" 그려~ 어디 아픈데 없고 태양 아래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걸을 수 있다는 자체 만으로

충분한겨~

 

까짓 날씨가 좀 더운 것쯤이야 덤이지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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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최 전성기가 흐르고 있다.

 

해가 아주 길어 보이지만 벌써 하지를 넘긴 지 보름이 훌쩍 넘어간다. 

해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극심한 무더위는 이제 한 달이 조금 더 남았을 뿐이다. 물론 이 더위는

인간을 괴롭히기 위해 존재한다기보다 들판의 곡식을 익게 하기 위한 

자연의 보살핌이라는 건 일찍이 생각해 온 바이지만, 

 

암튼 텃밭의 옥수수 대궁이가 쭈욱 자라 오르고 수염이 허옇게 피어나고

옥수수가 굵어지는 이때가 최 전성기임은 분명하다. 

 

덥지만 참 좋은 계절이다. 여름을 사랑하는 이는 분명 활기찬 지구의

이 시절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에너지 넘치는 인생을 즐기는 분이 분명할 듯

하다. 

 

" 그래 당신은 이 여름을 좋아하오? "

 

라고 누가 묻는다면 단연코 나는

 

"그렇다" 고 대답할 것이다. 

 

봄은 온갖 종류의 꽃으로 시작되고 여름은 풍성한 과일을 선사하며 가을

또한 풍부한 결실로 응답하니 그 모든 계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겨울 또한 침잠과 사색으로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고 갈무리를 하게 하니

이 또한 너무 좋은 계절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 년 사시사철 어느 계절이건 다 좋을 수밖에 없다. 자연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선물은 무한 풍부하며 그 속에서 맘껏 행복하게 살아야 함은 당연지사라

할 것이다.

 

그러니 " 더워서 못살겠네~ " 라든지 

"추워서 죽겠네~ " 이런 얘기는 가급적 하지 않기로 하자^

 

사람 중에는 추위나 더위를 정말 못 참는 분들도 없지는 않고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그런 걸 감내하기 어려운 분들이 계실 것이다. 뭐 그렇긴 하지만, 대부분의 보통인

들이라면 그저 주어진 계절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그렇게 살아감이 온당하다 

할 것이다. 

 

여름 휴가를 어디로 갈까? 

뭐 좀 맛있는거 없을까? 

 

이런 것은 다 복에 겨워하는 생각이지~

몸이 당장 어디가 아프기만 해도 그것이 모두 부질없는 희망이란 걸 금세

깨닫게 된다. 

 

덥건 춥건 주어진 환경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자체가 복 받은 것이고 어디 아프지만

않아도 행복은 차고 넘치는것이 아닐까? 

 

그렇다 해서 뭔가 더 재미있게 보람되게 알차게 인생을 설계하는 것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형편이 허락되면 당연 그렇게 해야 할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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