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민국 최대 모 온라인 교육 회사의 회장 제수씨가 주식이

폭등해 부자가 되었다는 뉴스가 올라왔습니다. 한국 사교육의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는 회사이니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도 그 옛날 사교육의 대표라 불리던 대성학원의 도움으로

대학을 갈 수 있었지만 이 땅의 사교육 열풍이 상당한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는 동의하지요

 

 

최근에 유튜브를 보면서 참 신기한 느낌이 들었지요. 겨우 이제야

그 프로를 본 게 좀 민망스럽긴 합니다. 그러나 유튜브가 아니었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었으니 감사할 따름이죠!

 

이미 2009년도에 방영된 KBS 명작 다큐였으니까요

 

 

미국 노벨상 수상자의 3분의 1, 아이비리그 명문대 교수진의 40%,
법조계 엘리트의 50% 이상, 할리우드 영화계의 60% 이상이 유태인

이며 음악, 미술, 무용 등 다른 예술계도 마찬가지랍니다. 이미 다 아시는

내용이지만, 지구 상 60억 인구 중 유태인은 0.3%도 안 되는

1500만 명 정도인데 말입니다

 

2009년에 이미 유태계 노벨상 수상자가 179명이었으니 지금은 더

많아졌을게 분명하고 이제 좀 선진국으로 발돋움을 시작하는 한국이

갈 길이 아직 먼 게 아닐까? 는 생각이 듭니다

 

하버드 재학생 중 30%, 예일대 재학생의 30%, 아이비리그 전체
재학생의 25%가 유태인입니다. 이렇게 하면 감이 좀 떨어지지만 하버드
총 2만 명 중 6천 명, 예일 1.2만 명 중 3,600명, 프린스턴 8천 명 중 2400명,


그니깐 아이비 리그 8개 대학의 총 학생수가 대략 12만 명쯤 되는데 그중

유태인 학생이 25% 정도라니까 어림잡아 3만 명 정도가 그들 이란 얘깁

니다. 말이 3만 명이지 이쯤 되면 미국 명문대학의 거의 대부분을 이들 유태

인이 휩쓸고 있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닐듯합니다. 글쎄요! 한국, 한국계 학생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금 현재도 전 세계 모든 영역을 쥐락펴락 하는 그들

인데 향후 날이 갈수록 더더욱 유태인들의 영향력은 커질게 틀림없습니다.

가끔 한국에서 어렵사리 하버드를 비롯한 명문대학을 들어간 학생들이 과연

암기 위주의 우리 공부 스타일로 거기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이제야 좀 듭니다. 그것은 통계가 증명합니다. 아이비리그 등 미국 명문대학

진학을 한 한국 학생 중 45%가 중도 탈락을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설령 어렵사리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했어도 그들 명문 교육의 DNA를

온전히 체득했다고 하기엔 거리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과거와는 달리 그곳 명문 출신 한국인들에 대한 일종의 무조건적인 존경심

같은 것이 상당 부분 사라진 셈입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노벨상 180명 이상을 휩쓴 그들의 진 면목을 위시로 해서 인류사에

큰 획을 그은 주요 유태 인사들의 면면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아인슈타인(1921년 노벨 물리학상)
알버트 에이브라함 마이컬 손(미국인 최초 노벨 물리학상)
어니스트 보리스 체인(노벨 의학상)
조슈아 리더 버그(노벨 의학상, 유전자 재결합과 박테리아의 유전적 형성)
알버트 센트 디외르디(노벨 의학상)
로살린 얠로(퀴리 부인 이래 여자로서는 자연과학분야에서 두 번째로 노벨상 수상)
아서 콘버그(노벨 의학상, DNA 형태와 활성 체계 규명)
프로이트(정신분석학 입문)


마르크스(자본론)
트로츠키(러시아의 혁명가로 페트로그라드의 소비에트 의장)
스피노자(포르투갈계 유태인 철학자)
멘델스존(작곡가)
벤자민 아이작 디즈 렐리(영국 19세기 수상, 신교로 개종 평생 유태인임을 숨김)
앙리 베르그송(1927년 노벨문학상, 시간과 자유, 창조적 진화)
에른스트 카시러(언어와 신화)
헤르만 엘리 코헨(철학자)
마틴 부버(철학자)
프란츠 로젠츠바이크(종교철학자)
에릭 프롬(sound society=건전한 사회)
마르쿠제(1차원적 인간)
한나 아렌트(전체주의의 기원)
레오 칠 라드(미국 핵폭탄 제조 맨해튼 계획의 멤버)
노 비트 위너(MIT 교수, 인공두뇌학)
이시더 래비(노벨 물리학상)
유진 위그너(핵물리학자)


셀먼 A. 왁스먼(항생제 스트렙토마이신 개발)
조나스 설크(소아마비 백신 개발)
솔로몬 슈피겔만 (암 연구의 선구자)
카프카(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대표작 변신)
라이너 마리아 릴케(말테의 수기)
솔 벨로우(노벨 문학상)
아이삭 싱어(노벨 문학상)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닥터 지바고의 작가)
아서 밀러(세일즈맨의 죽음)
노만 베일러(모비 딕)
허만 워크(케인호의 반란)
루이스 브렌 다이즈(사학 명문 브렌 다이즈 대학 창립자이자 미연방 대법관)
노암 촘스키(언어학자)
헨리 키신져(미 국무장관, 노벨 평화상 수상)
캐서린 그래함(워싱턴 포스트, 뉴스위크 명예회장)
아돌프 오크스(뉴욕 타임스 오너)
블라디미르 구신스키(러시아 주요 신문 모두 장악 푸틴과 대결 모드)
월리암 펠리(미국 CBS 창립)
바바라 윌터스(ABC 뉴스 앵커)
안톤 루빈스타인(음악가)
아서 루빈스타인(음악가)
레너드 번스타인(웨스트사이드 스토리)
프랭크 로져(아가씨와 건달들)
쉘톤 하닉스(지붕 위의 바이올린)
리처드 로저스(사운드 어브 뮤직)
마르크 샤갈(러시아 태생 유태인 화가)
앨런 그린스펀(FRB의 장 4번 역임)
버냉키(현 FRB 의장)
매들린 울브라이트(미 국무장관)
안네(안네의 일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수, 영화배우, 연극배우)
퓰리처(퓰리처상의 기원)
스티븐 스필버그(영화감독)

록펠러(스탠더드 오일 설립, 록펠러 재단)
카네기(철강왕)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
마이클 델 (델 컴퓨터 창업)
앤드류 그로브 (인텔 공동 창업)
레리 앨리슨 (오라클 창업)
데이비드 사르 노프 (RCA 창업)
에드윈 랜드 (이스트만 코닥 창업, 폴라로이드 사진기 발명)
제럴드 슈워프 (GE)
스타벅스
GAP

유태인 금융자본은 세계 1위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를 비롯하여
베어스턴즈, 체이스 맨해튼, JP모건 영국 로스차일드 은행 등.

(유태인 노벨상 통계등 글은 인터넷 카페 참조)

 

 

나열된 것은 개략적인 것이라 보지만 이 정도만 해도 세계 문명사를

거의 전부 광범위하게 지배하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거 같습니다

 

그럼 과연 유태인은 무슨 교육법을 갖고 있기에 이러한 성과로 나타

날까? 만일 교육이 아니라면 그들의 타고난 재질, 천재성, 기타 유전자

등 에서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제가 파악한 그들의 교육법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그 첫째가 [하브르타 대화법]입니다. 그 요체는

 

네 생각은 어때?

왜? 그렇게 생각하니? 에서 출발하며

이들의 질문이란, 무작정 묻는 것이 아닌 상대, 즉 자녀들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절대적으로 우선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태인들은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유태인의 가정교육법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우리도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마는,

교육은 학교에 보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우리와는 많이 다르죠!

 

저녁 식사만큼은 거의 반드시 부모와 자녀가 한 테이블에 앉아

하며 그 식사 시간에 긴밀한 대화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이들은 꼭 이것을 지킨다 하네요. 하브르타 대화법에는

부모 자식 간에 인정, 존중, 해결책 모색, 위로, 등등 보통 우리네 가정

에서 행해지는 부모 자식 간의 대화방법과는 조금은 다른 양상을

보여줍니다.

 

 

하브루타 대화법의 요체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REACH로 요약되며

 

1. Reflect -- 반영, 네 기분을 알 것 같아~

2. Encourage -- 존중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고

3. Accept--인정, 수용하며

4. Choice & Change -- 스스로 해결책을 찾도록 조언해서

5. Hold & Hug -- 끌어안아 다독여 준다

 

참고로 여기서 좋은 질문과 나쁜 질문을 예시해 보면

 

1, 좋은 질문이란 -- 관심과 애정을 갖고 생각하게 하고 생각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질문입니다, 즉

 

1) 우호적으로 차분하게 질문하고

2) 구체적으로 질문하며

3) 생산적인 질문을 하고

4) 원인 방법을 찾고 새로운 관점을 시도하게 하는 질문을

5) 위대한 질문 - 호기심을 유발하고 때로는 상식을 뛰어넘는

질문을 한다입니다

 

반면 나쁜 질문이란 --

 

1) 답을 미리 정해놓고 아이에게 유도를 하는 질문

2) 부모의 유식함을 드러내고자 자신을 과시하는 질문 등인데

 

부모가 자녀들에게 질문을 하는 건 좋지만 위의 사항을 충분히 고려하여

질문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우리의 부모 자식 간 대화는 대체로

부모의 일방적 훈시나, 자녀의 잘못을 지적하기가 다반사여서 결국 싸움

으로 끝나는 경우가 상당히 많지요. 이것은 다분히 유교에서 기인한

가부장적 전통이 상당 부분 원인이 될 수도 있을듯합니다.

 

" 너 학교에서 오늘 뭐 배웠니? "라고 흔히 우리가 묻는데 반해 그들은

" 오늘 학교에서 무슨 질문을 했어? " 이렇게 묻는답니다. 이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결과는 큰 차이가 날 듯합니다. 우리는 보통 입 다물고

조용히 앉아 있는 걸 당연시 하지만 이들은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 걸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5살부터 13살까지는 모세 5경을 통하여 속속 드리 가르치고 기본을

충분히 익히게 한 다음 13세 이후부터는 탈무드를 가지고 서로 토론을

벌이며 생각을 키워 나가게 한다고 하지요.

 

그 둘째는 그들의 도서관인 [ 예시바] 란 것입니다.

 

보통 도서관 하면 혼자 앉아서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

하게 되는데 유태인의 예시바는 완전히 다릅니다. 예시바에서 그들은

혼자 공부하는 게 아니고 거의 반드시 둘 이상이 문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형식의 공부를 합니다. 그러니 도서관이 매우 시끄럽습니다. 상대방의

생각과 의견을 교환하며 그들은 배워 나가는 셈입니다.

 

이 두 가지가 유태인의 주된 교육법이라고 제가 파악한 내용입니다

각 나라마다 교육방법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권의 교육방법과 유태인의 방법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시바를 처음 알게 되기도 했지만 정말 기상 천외의 뜻밖의 도서관

공부법 이더군요

 

 

그러나 현세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분명 그들의 방법이 좋은 점이 더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암기 위주의 공부를 혼자 독립적

으로 하면 언젠가는 그 지식의 성장 속도는 멈추고 빨리 잊힌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생각하는 힘이 약해진다고 보지요. 상대와 더불어

묻고 답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얻은 지식이라야

생동감이 있고 오래가며 창의적 사고가 풍부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작금에 일방적 주장만 난무하고 상대의 의견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사회 풍토도 체질적으로 소통은 없이 혼자 공부하는 몸에

밴 교육의 결과는 아닐까요?

 

 

우리는 그렇게도 받기 힘든 노벨상을 180명 이상이나 다 방면으로 수상

했다는 실적이 그들의 교육방법이 좀 더 유효함을 증명한다고 봅니다.

철저한 가정 교육과 그들의 교육 방식이 결과적으로 노벨상을 휩쓰는

성과로 나타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그렇다고 다른 이유를

생각해 보기도 힘든 건 사실입니다

 

이웃 일본에서 노벨상을 로비에 의해 일부 수상해 왔다는 얘기도 있지만

180명 이상 받은 유태인과는 전혀 레벨이 다르지 않나 생각됩니다

 

어쨌든 이웃 일본의 사례가 좋은 건 아니지만 우리는 평화상 1개 외에

아직 여타 노벨상은 하나도 받은 적이 없으니 유태인과는 물론 일본과도

비교 자체가 불가일뿐더러 아직 이 부문에서는 우리가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과 글을 써서 무슨 효용이 있을까? 를 자문자답해 봅니다.

 

세계적으로 점차 좋은 평판을 받고 있는 한국인은 지금 당장에도 국제무대

에서 유태인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도 나름 좋은 공부방법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들의 방법을 일부

차용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우리의 양궁이 세계를

휩쓸자 다른 나라에서 앞다퉈 우리나라의 코치들을 영입하였고 이제

는 그들의 수준이 거의 우리를 따라왔음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 부모 자식 간에 질문 토론 대화를 대폭 늘려 가자는 것이지요

 

학교에서는 암기 위주의 공부에 플러스 묻고 답하기 토론하기, 왜?라는 의문

부호를 끊임없이 제기하기를 첨가하면 될 듯합니다. 물론 이는 말처럼

쉬울 수는 없고 오랜 시간과 제도적 개선이 뒤 따라야 가능할 테지만!

 

며칠 전 외암 마을에서 점심식사를 할 때였습니다. 오래된 한옥집이

었는데, 뻥 뚫린 마루 뒤편으로는 간장독과 돌담이 어우러진 곳이었지요.

마침 옆에는 어린이 2명을 데리고 온 가족이 식사를 마치고 잠시 식구끼리

대화중이었는데, 그들은 이런 집이 여름에 시원할까? 천장은 높은가? 등

간단한 대화였지만 옆에서 듣고 있는 나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만일 유태인 자녀들을 데리고 온 가족이라면 어떤 대화를 이어갈까? 를

연상해 보게 되더군요!

 

물론 저도 그런 시기를 자녀들과 해 본다고는 했지만 많이 미숙하고

비 효율적인 대화로 세월을 낭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소크라테스의

' 대화'가 대체 무슨 책 제목이 될까? 늘 의구심이 들었는데 이제야

그것이 교육의 중요한 방편이란 걸 알게 되니 말입니다

 

 

그런데 현재 무조건 외워서 점수를 높여야 인정을 받는 풍토에서 무슨

할 일없는 소리냐고 핀잔을 받을게 뻔하지만, 우리의 교육방법은 사실

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50년 쯤에도 함석헌 선생님같은 분은 오죽 답답하셨으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 라는 책을 내시기도 하셨지요.

 

정말 우리 민족이 생각이 없는 민족인지는 이견이 분분하겠지만

어려서부터 생각하는 훈련을 제대로 받지않고 자란 사람이 커서

도 생각을 깊이 잘하긴 어려울 테니까요

 

교육에 대한 근본 생각과 철학이 우리 세대부터 상당 부분 바뀌어야

하지 않을지요? 당장 교육부가 해결할 수도 초중고등학교에서 바뀔

수도 없는 문제이니 말입니다.

 

 

이것이 이 무더운 여름날 유태인의 비상함과 그 교육법에 대하여

단편적인 몇몇 유튜브 내용을 기초로 하여 생각을 정리해 본

이유입니다.

 

* 참고한 유튜브는

[KBS 명작 다큐 유태인의 공부법] 1~ 5 편 외 기타 몇 편과, 관련

인터넷 자료들입니다

 

 

큰 기대를 할 수가 없다보니 아마도 향후 100년, 아니면 2-300 년은

지나야 우리의 교육방법에 획기적 변화가 올 수도 있겠다~ 생각해

봅니다. 왜냐면 수천 년 이어져온 우리의 공부방법이 쉽게 바뀔 수는

없기 때문이겠지요.

 

 

참고로, 아이비리그(Ivy League) 8개 대학에서 이제껏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

는 400명 이상이고 미국 대통령도 15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2019년 기준

전체 노벨상 수상자는 607명이고 그중 미국이 385명,일본은 28명입니다

 

아이비리그 8개 대학은 미국 북동부에 있는 하바드(Harvard), 예일(Yale),

프린스턴(Princeton), 콜롬비아(Columbia), 다트머스(Dartmouth),

브라운(Brown),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코넬(Cornell) 8개 대학을

가리키는데, 여기에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스탠퍼드(Stanford)를 합쳐 아이

비 플러스 리그(Ivy Plus League)라고도 부른답니다.

 

 

 

 

 

 

 

 

 

 

 

 

 

 

 

 

 

 

 

'포토 에세이, 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9월이 오는 소리  (0) 2021.09.08
더위! 여전히 진행중  (0) 2021.08.14
자주 달개비 ~ 그 추억의 꽃 !  (0) 2021.07.09
진천 보탑사~ (산채나물 밥)  (0) 2021.06.09
梨花에 月白하고~  (0) 2021.04.19

 

 

 

자주달개비 학명은 ' Tradescantia spathacea ' 로 닭의장풀 과에 속하고
여러해살이 초본 식물입니다. 양달개비, 자주달개비,라고도 하며 원산지는

북 아메리카 입니다


초 여름인 5월 경부터 피기 시작하며 아침에 피었다가 햇볕이 뜨거운
낮이 되면 봉오리가 아물어 들지요. 꽃 말은 ' 외로운 추억, 짧은 즐거움'

이라는 다소 낭만적인 뜻이 있군요.

 

무슨 꽃이든 다 이렇게 소속, 학명, 의미 등이 있게 마련이지만 사실 그런 거
에 누가 그리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그저 이쁘면 되고 자주 볼 수 있으면
만족하는 게 보통이지요. 그렇지만 우리나라 토종 꽃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색감이 곱고 느낌이 야리야리해 많은 분들이 나름의 추억이 얽혀 있을 듯

한 이 꽃이 오늘 아침 출근하며 동네 화단을 보니 거의 다 져 가고 있더군요!

 

해서 부랴 부랴 이 꽃에 얽힌 추억의 한 페이지를 한 장 작성해 보려 합니다

 

이 꽃을 처음 본 것은 어린 시절을 살았던 제 고향 안성의 우리 집 바로

옆집에서 입니다. 시골 우리 집은 담장이 없었지만 옆집은 흙벽돌로

쌓은 담장이 있었고 그 담장 안 한쪽 켠에 바로 저 자주달개비가 이만큼

한 묶음처럼 자라서 초 여름이면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는

없으면서 자주색을 띤 꽃이니 당연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지요

 

당시는 무슨 꽃인지 물론 이름도 몰랐고 막연히 참 예쁘다,, 정도로 생각

했던 꽃입니다. 화투장 중에 5 난초 열 끗짜리에 그려진 꽃이 이것과 아주

흡사해서 나이 들어 성인이 지나 한참까지도 저는 당시 그 꽃이 난초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딜 가다가 저 꽃이 눈에 뜨이면 언제나 어릴 적 옆집 담장 안의

그 꽃 ~ 난초를 연상했지요!

 

 

매우 곱게 자란듯한 제천 이에스 리조트 인근의 솟대 박물관에서

본 달개비입니다. 뭐랄까~ 달개비를 저리 잘 이쁘게 키우는 주인의

심성은 어떨까? 를 생각해 봅니다. 그도 나처럼 그 어떤 옛 추억이 저

꽃에 있어 그럴까?

 

 

금년 5월에, 2006년 대한민국의 예쁜 정원으로 선정된 오산의 서오랑 호수

에 위치한 안홍선 님의 정원을 가 보니 역시 정원에 달개비가 상당히

많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서오랑의 안홍선님 정원

 

글쎄요~ 그럴 가능성은 많지 않지만 제가 자그마한 정원을

꾸미게 된다면 당연 1순위로 달개비를 심을 거 같긴 합니다

 

그것은 내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추억이 있어서

이기도 합니다.

 

자주달개비를 볼 때마다 어릴 적 나의 고향과 초가집을 새삼

떠 올릴 수 있다는 건 어쩌면 크나큰 행복중의 하나일 테니까요~

 

'포토 에세이, 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위! 여전히 진행중  (0) 2021.08.14
유태인들의 교육방법을 보며~  (0) 2021.07.21
진천 보탑사~ (산채나물 밥)  (0) 2021.06.09
梨花에 月白하고~  (0) 2021.04.19
진달래의 추억  (0) 2021.03.25

 

 

 

 

때는 바야흐로 산채를 풍성히 먹어 볼 시기이다

 

몇 년 전에는 양평 용문산 입구로 산채를 먹으러 몇 번 갔었다

헌데 휴일 그 일대가 교통 요지경이 된지는 오래다. 저녁 시간에

이쪽 서울 근교로 돌아올라치면 어마 무시한 교통 체증을 각오

해야 한다

 

그러니 양평 쪽은 생각을 접어야 했고 그 대체 후보지를 물색하다

보니 진천 쪽을 택하게 되었다. 더구나 유튜브에 산나물 등으로 이미

잘 알려진 산채 정식집이 마침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김유신 장군 탄생 유적지 인근인 그곳에 약속 시간을 잡고 마침 대전에

사는 집사람 여 동창 부부와 만나기로 했다. 집에서 한 시간 여! 대전에서도

비슷한 시간이 걸린단다.

 

안성 고삼을 지나 입장을 끼고 서운산을 돌아 올라간다. 예전에 산삼을

캤다는 서운산은 푸르고 청청했다. 이 산을 넘어가면 히든밸리라는 골프

장이 그야말로 숲 속에 감춰져 있는 곳이다.

 

히든밸리를 지나면 앞서 안성 땅과 확연히 달라지는 충청도 땅이 느껴

진다. 산속 골은 깊고 숲은 울창하다. 인적은 드물고 집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백곡 저수지 3거리에서 천안 쪽으로 한참을 돌아 나가면 유명한 사찰인

보탑사 삼거리가 나온다. 보련산 중턱에 자리 잡은 보탑사는 전에도 두어 번

와 본 적이 있는 곳이다. 고려시대의 절터에 비구님 스님 3분이 1996년도

에 대목수 신영훈이 참여하여 창건한 사찰이라 하니 연혁은 비교적 짧은

편이지만, 그 풍모가 상당히 고풍스럽게 느껴진다.

 

김유신이 어찌하여 이 동네에서 태어나셨을까? 처음엔 매우 의아했으나

몇 번 와 보니 과연 충분히 그럴만한 곳이라고 생각이 된다. 인근 만뢰산

보련산 등의 산세는 깊고도 수려하다. 말하자면 충청의 오지 중의

오지라 할까?

 

"산골 맛집"의 산채밥을 넷이서 주문해 먹고 동동주도 한 사발 시켰다.

진천의 막걸리가 참으로 맛이 좋은데 그건 판매를 하지 않는단다. 그 좋은

자기 고장의 명물 막걸리를 외면하다니~ 마진의 문제일까?

 

동동주 한 잔에 기진맥진하여 나머지는 페트병에 넣어 달라해서 대전

사모님께서 챙겨 가져 갔다. 한 달 전쯤 제천의 한약 밥을 워낙 감명 깊게

먹은 터라 이제 웬만한 산채밥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깔끔하고도 수준급

이었지만 말이다

 

보탑사로 올라가니 때 마침 초여름 꽃들이 지천이다. 비구니 스님들이 기거

하셔서 그런지 정말 꽃들이 다양하다. 나는 미리 준비해 간 큰 물통에 사찰 중

간쯤에서 콸콸 솟아 나오는 약수를 가득 담았다. 그리고 사찰 주변에 흐드러

지게 핀 여름 꽃들을 분주히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 와서 그런가

사찰 풍광은 둘째고 아름다운 주변 꽃만 보인다

 

 

요즘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꽃들이다

 

그러나 산사에서 보는 꽃은 조금 느낌이 다르다

 

꽤나 많은 참배객들, 방문객들로 북적이는 보탑사이다

예전엔 사찰 정문 앞쪽으로 연꽃이 자라는 연못이 있었는데

메꾸고 주차장 공간으로 만든 것 같다

 

혹시나 때 이른 연꽃이나 혹은 좀 일찍 피는 수련을 기대했는데

살짝 아니 꽤나 아쉬움이 남는다

 

 

소나무에 기댄 붓꽃!

 

"그래 내가 너의 쉴 기둥이 되어줄게~" 소나무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정말 본 적이 없는 디기탈리스가 요즘은

매우 흔하다. 강심제로 쓰이는 디기탈리스,, 그러고 보니 꽃 모양이

염통을 조금 닮은 거 같다

 

 

삼층 목조 건물의 맨 윗 단부터 이런 현판이,

대자보전, 수다라전 , 극락보전

 

 

 

 

 

 

도대체 절에 와서 꽃만 찍는 이유가 뭐요?

그렇게 물어볼 사람도 없겠지만~

 

그거야 뭐~ 글쎄 말입니다!

 

 

사찰 뒤편에 자리 잡은 이 방, 삼 소실~ 스님들의 수행 공간

이라는데, 대체 뭘 3번 웃는다는 의미일까?

 

 

20 L 물통을 끌고 옆 길로 겨우 내려오다 보니 이렇게 삼층 목조 건물의

모습을 담게 되었는데, 못 하나 쓰지 않은 전통 기법으로 축조하여 가히

1,000년은 굳건히 버틸 걸로 지은이는 장담을 했다는데~

 

허긴 천 년이 아니라 2천 년도 버틸 수 있을게다! 사찰 건물이

대체로 불이 나서 사라졌지 오래돼서 쓰러졌단 얘긴 들어 본 적이

없으니께~

 

 

 

인근 만뢰산 자연휴양림으로 가기 위해 보탑사를 떠나 밑으로 내려

가다가 커피숍을 발견 찾아들었다

 

시원한 냉커피 한 잔을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니 산나물로 씔 여러 풀

들과 뱀딸기가 수북이 자라고 있었고 뽕나무에는 검게 뽕이 익어가는

중이었다. 노랑붓꽃이 예쁘게 뒤뜰에는 피어 있었다

 

철 지난 매발톱도 이렇게~

 

 

커피숍 주인 아주머니는 눈에 보이는 산나물은 맘대로

뜯어도 좋다 했다. 아내와 친구는 한참을 돌며 여러 산나물을

뜯었다. 예전엔 미처 식용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던 풀들이 모두

산나물이란 사실도 최근 알게 되었다

 

 

비교적 꽃 모양이 온전한 한련화를 만뢰산 자연 휴양림에서

발견했다. 한련화는 왜? 꽃 모양이 온전한 게 그리 없을까?

 

 

 

위 사진은 이름을 모르겠고 아래는 꿀풀로 알고 있었는데

'숙근 사루비아' 란다

 

 

 

자연휴양림이 전국 곳곳에 분포되어 있지만 사실 이곳

만뢰산 중턱에 자리 잡은 건 좀 의외다. 주변으로부터 접근성

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과연 이런곳을 누가 찾아올까 싶었지만

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숲 속에서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집에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와서 산채밥을 맛있게 먹고 인근 휴양림

에서 나머지 시간을 온종일 맑고 깨끗한 바람을 쐬며 쉰다!

 

그것도 하나의 좋은 힐링의 방편은 될 것이다. 나무 그늘 잔디에

돗자리를 깔고 한숨 늘어지게 잔다 해서 뭐 안 될 것도

없지 않은가?

 

 

 

'포토 에세이, 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태인들의 교육방법을 보며~  (0) 2021.07.21
자주 달개비 ~ 그 추억의 꽃 !  (0) 2021.07.09
梨花에 月白하고~  (0) 2021.04.19
진달래의 추억  (0) 2021.03.25
냉이, 쑥 캐기가~  (0) 2021.03.23

 

 

 

梨 花 月 白 三 更 天(이화월백 삼경천)
啼 血 聲 聲 怨 杜 鵑(제혈성성 원두견)
儘 覺 多 情 原 是 病(진각다정 원시병)
不 關 人 事 不 成 眠(불관인사 불성면)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 이조년(1268~1342) -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너무나 익히 잘 알고 있는

시조입니다. 뭐 처음에는 구전으로 전해져 오다

1700년 대에 漢譯으로 한 것이 위의 원문 입니다!

 

여기서 주제로 등장하는 건 어쨋던 배꽃입니다.

두견새가 울 건, 은하수가 흐르 건 , 잠이 안 오 건

간에 일단은 하얗게 핀 배꽃이 있다는 거죠!

 

 

 

아시다시피 이조년은 고려말의 학자이자 귀족 집안의

쟁쟁한 5형제 집안으로서 5형제 모두가 출중한 인물

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름도 백 년, 천년, 만년, 억년, 조년

이렇지요.

 

고려 말 충렬왕부터 충혜왕까지 무려 4분의 왕을 모신

이조년은 주색 가무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는 충혜왕

에게 사직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후 상심한 마음을

달래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손자인 이인임은 썩어가는 서까래 같은 고려

정가에서 부정부패와 사리사욕에 빠져 진흙탕 속 헤엄을

치고 있었죠!

 

이 모든 것이 할아버지 이조년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지~

 

하얀 배꽃이 은하수 아래 수를 놓고 두견새가 멋지게 우는

밤이지만 허허로운 맘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게 아닐까!

 

교과서에서 배울 땐 아무 배경 같은 거 설명 듣은 바도 없고

그저 멋진 배꽃을 노래한 시 로구나~ 생각만 했지,

 

아무래두 배꽃하면 이조년의 이 시가 등장할 수 밖에 없어

약간의 부연 설명을 곁들였읍니다

 

 

허나 요즈음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배꽃은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아니 의미는커녕 배꽃이 피는 줄을

알고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거 배꽃 피는 거 알면 뭐하고 모르면 또 어떻소? 살아가는데

무슨 지장이 있단 말이요? "

 

??

 

 

올해는 배꽃은 물론 모든 꽃들이 너무 일찍 피고 말았다. 지나

는 길에 보이는 꽃들은 그래도 시기가 감당이 되었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배꽃이며 복사꽃 같은 것은 도대체 언제 피는지 알 길이 없게

되고 말았다.

 

부랴부랴 정신을 차리고 안성으로 달려가 보니 이미 배꽃은 전성기를

지나 하나 둘 떨어져 사라지고 없었다.

 

아뿔싸! 일이 이렇게 되다니!

 

 

몇 장 찍어 온 사진은 예년의 그것과 비교해 보니 영 형편이 없었

다. 나는 그것도 모른 채 언젠가는 멋진 배꽃을 다시 찍을 날이 오

기를 고대하고 있었는데!

 

 

 

 

그저 웬만한 배나무만 보아 오다 이렇게 아름드리 배나무를

보니 생각이 180도로 전환되었읍니다. 적어도 50년은 지나야

이 정도 나무가 되죠!

 

실은 안성 공도에 1백년이 넘은 배나무가 있다는 얘길 듣고 몇 년 전

그 나무를 찾아 나섰지만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백 년 넘은 배꽃도

보려고 한 것이지만,

 

 

배꽃의 아름다움에 반한 이유는 바로 이 붉은 꽃술에 있었지요!

배꽃은 그냥 하얀 줄만 알았는데, 뜻밖에도 저런 꽃술이 있었어요!

 

 

2014년 안성지역을 지나다 발견한 이 멋진 배꽃!

그러니까 아직 채 10년도 안 됩니다. 배꽃의 아름다움에

반한 지가~~

 

그 보다 몇년 전 용문산을 가는 도중 배꽃의 저 붉은 걸 처음

발견하고 환호했던 적이 있긴합니다

 

 

그렇다고 아무 농장이나 지나다 들어가 배꽃을 찍거나

감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과수원 한 곳을 아예 터놓고

허락을 얻게 되었습니다.

 

"배꽃 사진을 맘대로 찍는 대신 가을에 배를 많이 사서

먹겠다고~"ㅎ ㅎ

 

약속대로 가을에서 겨울까지 익은 배를 여러 차례 구입했습니다.

한 2년 동안은 겨우 내내 배를 먹기도 했습니다

 

<<  이상의 사진들은 2014~2018 까지의 것들 입니다 >>

 

지난 일요일(4.18) 안성 공도지역 배 밭에서 떨어져 가는

배꽃 한 장 건진 게 이것입니다. 그런데 이곳도 우람한 배

나무가 올 가을의 그림을 그려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끼가 낀 배나무 등걸!

사실 이 정도가 되면 과수원의 배 나무를 교체해야 할듯도

합니다만~

 

배밭 주변엔 복숭아 과수원도 있었고 주차했던 공터에선

망초대 나물을 뜯기도 했습니다. 거 망초 나물이라는거

평생 처음 먹어

봤는데, 맛이 아주 좋더군요!

 

 

사실 이화에 월백하며

은한이 삼경 ~ 운운 이런 풍광을 직접 보고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환경에 보통 사람이 살아가기는 거의 불가하지요!

 

그저 어쩌다

운 좋게 어딜 지나다 그런 때를 만나면 행운이라 여기고

있습지요!!

 

엊저녁 퇴근길에 산에서 소쩍새가 울더군요!

아! 저거로구나~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예년처럼 4월

하순에 배꽃이 피었다면 필경 밝은 달밤에 하얗게 핀

배꽃을 볼 수 있었을덴데 말입니다!

 

'포토 에세이, 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주 달개비 ~ 그 추억의 꽃 !  (0) 2021.07.09
진천 보탑사~ (산채나물 밥)  (0) 2021.06.09
진달래의 추억  (0) 2021.03.25
냉이, 쑥 캐기가~  (0) 2021.03.23
아~ 봄바람, 님바람  (0) 2021.03.19

 

 

 

매화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로 시작되는 봄의 꽃 중 가장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꽃은 무엇일까?

 

사람의 취향은 모두 다르니 딱 잡아 뭐라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핑크 혹은 붉은색으로 피어나는 꽃과, 노랑으로 피어나는 꽃 그리고

흰색으로 피어나는 꽃들이 있다. 그런데, 이 봄 가장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칼라는 핑크색이다. 그중의 으뜸이자 최초의 꽃은 바로

진달래인 것이다

 

사실은 나의 일생 거의 대부분은 진달래의 꽃 모양새에 주목하지

는 않았다. 그냥 이른 봄 멀리 산천을 물들이는 연분홍색을 무작정

좋아했을 뿐이다.

 

 

진달래가 피면 봄이 온다!

아니 봄이 오면 진달래가 핀다!

우중충한 갈색 산속에 발그레한 분홍색이

감돈다

 

봄은 희망이다. 따스함도 곧 희망이다.

 

 

산에 산에 피어있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

 

그러나 진달래 먹을 즈음엔 물장구를 칠 수가 없다. 산과 들의 물은

아직 너무도 차기 때문이다. 허나 다람쥐는 쫓을 수 있겠지~~ ㅎㅎ

 

내 나이 열살도 되기 전 당시 봄이면 아버지가 멀리 마곡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오실때 늘상 지게 머리에 진달래를 한묶음 꼿고 오셨다

마당에서 놀다 보면 저 멀리서도 붉은 진달래 송이가 보였다.

 

마치 마중하듯 달려가 지게에 꼿혀있는 진달래를 쑥 뽑아 우리들은

열심히 진달래 꽃잎을 먹었다. 그것이 내가 진달래를 접한 최초의

일이었다

 

진달래의 모양에 주목하기 시작한 건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다.

그때부터 자꾸 꽃의 예쁨 평범함을 구별하기 시작했다. 더 예쁜 꽃

더 아름다운 꽃, 뭔가 더 평범치 않은 꽃! 등등

 

그저 꽃이면 됐지 자꾸 뭘 구분하려는 마음이 과연 좋은 걸까?

 

 

 

해마다 봄이 오면 진달래가 혹시 미처 내가 보지 못한 사이 다 피고 지나

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그것이 보통 3월 28일 전후였다. 여기 서울

남부 경기도 지역에선 그랬다. 그런데 올해는 1주일 이상 빨랐다.

 

봄꽃이 일찍 핀다는 건 일찍 진다는 걸 의미한다. 아무래도 올봄은

빨리 지나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저만치 혼자 피어있는 진달래!

 

연한 분홍빛과 그리고 꽃잎이 얇아 바람에 쉽게 떠는 진달래는

그 가냘픔이 매력이 아닐까?

 

이른 봄 피어나는 꽃 치고 씩씩한 느낌의 꽃이 있을까 마는 어둑한

산속에서 발그레하게 피어오르는 진달래의 수줍음은 그래서 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지난 10여 년간 봄이면 진달래를 기다리고 사진으로 남겨 보았다

초창기의 둔탁한 진달래 사진부터 점차 조금씩 예리한 모습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화려한 군락의 진달래가 없는 건 아니다

 

진달래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 것도 아니다. 그저 사는 동네

주변을 쫓아다니고 어쩌다 고향 동네 근처를 지나다 들여다본 게

전부다. 나에게는 소위 '출사'란 남의 동네 얘기나 마찬가지다

 

수십 년 만에 고향 뒷동네 산을 가서 예쁜 진달래를 만난 적도 있다

그때 감격은 몇 배 이상이었다. 왜? 내 고향의 진달래는 그 느낌이

더할까?

 

 

고향의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 가는데!!

 

이번 봄은 출퇴근길에서 봄을 만났다. 노란 생강나무 꽃도

거기서 만났고 그토록 고대하던 진달래도 거기서 매일 들여다

보며 길을 걸었다.

 

 

진달래꽃 한 잎을 따서 입에 넣어본다. 한 잎에서는 새큼한

진달래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옛날처럼 툭툭 잎을 훑어서 입에 넣을 수는 없다.

여러 잎을 입에 넣으면 혀가 새파랗게 변한다. 새파란 혀를

날름 대며 하루 종일 뛰놀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고 가슴이

저며 오기도 한다

 

 

오래 묵은 아카시아 나무 뒤에서 살짝 웃는 진달래다.

 

수년간 항상 그 자리에서 그렇게 봄이면 인사를 했다.

혹시 언젠가 이곳 진달래가 꺾여 사라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그렇다!

 

진달래가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고 내 희망도 핀다

비록 더 이상 찍을 새로운 진달래가 없다 해도 나는 봄이 되면

카메라를 들고 인근 산을 여전히 헤맬 것이다!

 

 

 

'포토 에세이, 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천 보탑사~ (산채나물 밥)  (0) 2021.06.09
梨花에 月白하고~  (0) 2021.04.19
냉이, 쑥 캐기가~  (0) 2021.03.23
아~ 봄바람, 님바람  (0) 2021.03.19
'나는 가야지' 와 나의 애창곡  (0) 2021.03.1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