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진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 포토 에세이와 포토스토리가 있는데~ "

 

~

 

 

어찌 보면 그게 그거인듯 생각되기도 하지만,

 

스토리는 사진에 대한 설명 그 자체라고 생각하고

에세이는 꼭 그 사진에 대한 설명이 아니어도 그것과 관련된 필자의 의견, 생각,

연관된 이야기 등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것 ~

 

이렇게 나는 정의해 본다. 

 

사실은 스토리와 에세이가 반반 혼합된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어느 쪽이 더 비중이 높을 수도

있지만, 그건 필자의 취향일 뿐 나 자신은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해서, 아래 글과 사진은 5월 초의 에세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

 

봄의 1차 경연은 끝났다. 

 

이제 새싹의 향연도 끝났고 신록의 2차 향연이 무르익어 가고 있는 중이다. 

들판에는 청보리가 울울창창할 테고 여기저기 유채가 만발했고 산철쭉도 벌써

떨어지는 중이다. 

 

올 봄은 배꽃도 놓쳤고 목단도 지나가 버렸고 꽃을 마주치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낸 것이 수두룩하다. 

 

동네 담벼락의 계수나무~  잎이 돋아날 때 제일 이쁘다^ 

무릇 모든 나무잎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4.16일에 찍은 것이다. 

5월에 찍어 보니 너무 이파리 색감이 진하고 우중충하다. 해서 2주 전의 것으로

대체해 본다. 

 

앞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어느 집 텃밭에 방풍 나물이 열심히 자라고 있다. 

 

그래도 얼핏 보기엔 숲 속에 자리 잡은 동네다. 

이제 이 동네로 온지도 7년째~ 

나는 여기서 살게된 것을 무한 다행으로 또  감사함을 느낀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간 너무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아이들 학교니 뭐니 해서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고  별생각 없이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살다 보니 그리 되었었다. 

 

 

깨끗하고 맑은 주변 환경~ 소소한 도심이 그리 멀지 않은 걸어서도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다. 

 

역시 그 사진작가의 말씀이

 

"사진은 자신의 집 앞에서 출발하는 거라고~ 

또 사진은 찍어 뭐할라고? "그러는데,

 

글쎄~ 

 

나 자신 전부터 비슷한 생각을 해 오던 터이다. 

 

그래서 첫 번째로 나는 집 주변을 잘 찍는 편이다. 그냥 이런 것 찍어서 다시 보고

즐거움을 반추하는 그 자체가 나는 좋다. 

 

내가 거주하는 동네 주변을 요 몇년 사이만큼 자주 찍어 본 적도 없다. 

 

이 역시 우리 동네의 자두나무가 연한 잎을 뿜어내는 중이다. 

몇 년 전 대대적으로 나무 가지치기하면서 매화나무며, 살구나무, 자두나무 일부, 또

대나무까지 잘라버린 게 너무도 아쉽다. 

 

다 개인 사정이이야 있지만, 왜? 주민들은 나무 잘라내는데 아무 의견을 내지 않았을까? 

그나마 남아있는 나무들에 고마움을 느낀다. 

 

올봄은 황매화 전성기를 놓치고 말았다. 

주의력 부족이다.  출근길에도 마주치는 놈인데 말이다. 

모든 꽃을 항상 전성기에 다 관찰하고 촬영해 두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 5월의 초반에는  푸라타나스의 아스팔트 길도, 

새싹이 돋아나는 오래된 버드나무의 우람한 줄기도 다 멋지고 아름답다. 

 

고목은 별도로 우대를 해 주어야 할까? 

오래된 나무를 대할 때마다 나는 늘 경외심을 느낀다. 무슨 이유일까? 

하여튼 그러고 싶다. 

 

 

 

무 꽃도, 꽃 잔디도, 금낭초도 봄이면 다 제 할 일을 하고 간다. 

 

비록 며칠 지났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철쭉도 있다. 

 

아주 옛날 산철쭉이 이렇게 피었을 때 동네에서 가장 높은 산, 노송산을 간 적이 있다.

그때 비둘기가 구구대며 울던 것이며 소나무에서 나던 새콤한 향기며 상쾌한 산의

정기가 쏴아~ 하고 온몸에 느껴지던 감흥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 산철쭉은 지난주 느닷없이 이천의 야산 자락에 자리 잡은 친구의 집에 가서

몇 장 찍었다. 

그런곳이 좋기는 하지만, 나는 뚝 떨어져서 산자락에 자리 잡은 집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이 작약은 내가 매일 타러 가는 지하철 역 옆에 피어있었다.

전철 시간에 마음이 급해 매번 그냥 지나치다, 어제 시간을 내어

폰으로 찍어 봤다. 

 

둘러보면 여전히 주변은 지천에 꽃들이 있다. 또 신록이 너무도 멋진 요즘이다. 

어떤 날은 별 볼 일 없다고 카메라를 두고 나간다. 그러나,

비가 온 후 날이 쨍하면 어김없이 카메라는 나의 동반자이다. 

 

새롭고 깨끗한 풍광을 저장해 두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일까?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5월의 하루하루가 또 이렇게 내 곁을 지나가고 있다. 

 

 

아직은 희끄무레한 안갯속 같은 봄 날씨다.

산과 들의 꽃들은 이제 마악 피어나려 하고 화단에는 이름 모를

무언가 붉은 새싹이 삐죽삐죽 솟아나고 있다. 

 

생명의 신비로움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때가 바로 지금 봄이다.

세상엔 온통 생명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새 생명을 가장 잘 보여주는

때는 바로 지금 봄~ 이때다.

 

그래서 봄은 단 하루라도 허투루 그저 그렇게 보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이렇게 봄의 새싹은 아름답게 싱싱하게 그리고 경이롭게

세상에 나타난다.

 

인간의 기억은 유효기간이 있다. 뭐든 직접 보는 것이 제일이라 해도

보고 나면 잊혀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록을 남긴다. 

 

세상에 남겨진 이런 사진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이른 봄의 제주가 아름다운 거는 바로 이 유채가 있기 때문이다. 

노오란 색! 그렇다 노랑은 어린 새 생명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노란색은 土(토)의

기운을 상징한다. 즉 생명의 원천 色인 셈이다. 

 

나는 이른 봄 제주에 갈 때마다 그 무엇보다 이 유채에 반한다. 유채가 국내 여러 군데서

잘 자라고 볼 수는 있지만 유독 제주의 유채가 전매특허처럼 느껴지는 건 왜? 일까? 

 

아랫 사진의 유채밭 돌담장에 날카롭게 새싹을 드러내고 있는 저 덩굴이 더욱더

봄의 예리함을 상징하고 있다. 

 

 

 

 

새 생명의 표상은 도처에 널려있다. 

마치 새의 둥지 안에 알처럼 부화한 제비꽃도 새롭고,

느즈막하게 피어있는 아기 동백나무 앞을 가로지르는 나뭇가지에서도

그걸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들은 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주 예리하게 보여준다 할 것이다! 

 

 

 

거의 야생화 수준으로 피어나는 이런 꽃들을 이 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유채와 무우장다리 꽃이 길 옆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다. 

저~ 도로 끝의 두 남녀는 무슨 희망의 얘기를 속삭이고 있을까?

중문 앞 해안도로 끝자락이다! 

 

 

 

제주의 3월은 이미 신록으로 가득해지려 한다. 

저 나무 등걸에 기어오르며 푸른 잎을 내미는 생명을 보며 어찌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꽃과 잎과 나무가 한껏 새 생명을 표출하는 이 봄이야말로 이 지구가 얼마나

아름답고 환희에 가득 차 있는지를 인간에게 알려주는 최상의 계절이다!

 

 

비록 지난해 이맘때와 비슷한 3월의 제주의 사진들을 이끌고 나왔지만, 

올해 역시 비슷할 것이다.  

나는 1년이 지났건 3년이 지났건 사진의 유효함에는 전혀 차이가 나지 않음을 인지한다. 

어차피 세상 만물은 1분이 지나도 과거일 뿐이니~ 너무 새것에 집착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미리 올봄을 가져다 보는 것은 이 봄을 좀 더 두근두근 가슴에 퍼 담아

생명을 느껴보고자 함이다. 그렇게라도 펌프질을 해야 미적지근한 우리의 마음이

달궈지지 않을까? 

 

앞으로 찬란하게 펼쳐질 봄을 위하여!!!~~

나와 우리의 청춘을 위하여~~!! 

 

'포토 에세이, 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카시아 향기는 천지를 덮는데~  (0) 2022.05.18
5월은 맑다^  (0) 2022.05.04
핸드폰 5cm  (0) 2022.03.08
눈 떠보니 선진국 (책 소개)  (0) 2022.03.08
봄이 겨울을 이기는가?  (0) 2022.03.08

출근 전차 옆자리에 젊은이가 휴대폰에 눈을 바짝

붙이고 무언가를 보고 있다. 

엇? 뭐지? 무슨 요상한 영상을 보고 있나? 해서 슬쩍

돌아다보았다.

 

그 청년은 휴대폰 화면을 거의 눈에 붙이듯 하고 영상을 보며

때때로 문자까지 열심히 날리고 있었다. 내가 어림잡아 손가락으로

재어보니 한 5 센티미터 정도였다. 

그 5 센티도 안 되는 공간에서 문자를 잘도 쓰고 있었다. 

 

그렇게 화면을 보는 것도 신기할 정도였지만, 저렇게 하고도 눈이

멀쩡할까?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무슨 눈을 가졌길래 눈을 붙여야

사물을 볼 수 있단 말인가? 

거, 참 희한한 사람도 다 있네~ 

 

저렇게 해야 뭘 볼 수 있다면 정상 거리의 사물은 어떤 방식으로 볼까?

원 거리의 물체는 보이기는 하는 걸까? 

 

그 젊은이는 내가 내리고자 하는 한 정거장 앞서서 내리고 말았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 머리에 떠 올랐다. 

 

빈부 격차, 양극화가 날로 심화되는 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

추세인데, 그렇다면 도대체 이를 완화할 방안은 무엇이란 말인가? 

 

뭐 복잡한 건 모르겠고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살펴보자.

 

과거엔 영세 자영업자인 골목 상권이란 것이 다양하게 존재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대형 마트란 놈이 도시 곳곳에 우후 죽순처럼 생겨났다.

소비자들은 신이 났다. 일단 거기 가면 골고루 물건이 쌓여있어 발품을 조금만

팔면 싱싱하고 좋은 물건을 양껏 살 수가 있었다. 

 

처음 코스트코라는 대형 마트가 양재동에 생겼을 때 거기 진입하는데만 30분

심지어는 1시간 가까이 차량이 줄을 서던 걸 기억한다. 해서 힘들게 들어갔으니

물건을 양껏 카트에 집어넣는 게 일상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3-40만 원은 기본

이고 5-60 만원 어치의 물품을 잔뜩 사서 돌아오곤 했었다. 

 

양재동은 지금도 주말엔 오랜 대기 시간을 필요로 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E 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E 마트 트레이더스, 등등 

그중에는 간혹 상권이 안 좋아 폐점을 하기도 하지만, 이들의 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매년 성장하고 있다. 

 

코스트코를 잠깐 언급해 보면,

 

전 세계 매장 -- 약 800개

미국-- 540개

캐나다-- 100개

일본 --26개

한국 --10개 

 

2020년 총매출 -- 1560억 달러 ( 약 170조 원)

참고로 월마트, 아마존 ,코스트코의 합산 총 매출은 약 1조 달러에 육박하여

우리 돈으로는 1,200조 에 이른다 . 우리나라 한해 예산의 2배를 거뜬히 넘기는

금액이다. 

 

참고로 삼성전자의 2021년 총 매출은 279조 였다. 

 

* 전 세계 탑 10 매출액 매장 중 한국이 1위--5위까지 싹 쓸이

부동의 1위였던 양재점이 세종점에 1위를 빼앗겼다 함, 

도대체 세종점이 뭐길래?? 

 

* 코스트코의 주가는 500$ 를 기준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음 

 

소비자들은 당연 이렇게 말한다.

 

' 아, 그거 물건 가격 싸고 믿을만한 품질이고 넓은 주차장에 그만하면 됐지,, 뭘?'

 

물론 맞는 말이고 나 자신도 그래서 인근의 코스트코를 비롯한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편이다. 

 

자, 그런데, 세상의 시스템은 이렇게 부익부, 빈익빈을 향해 세팅이 되어 왔고 

우리 모두는 그렇게 되도록 일조를 하며 살고 있다. 당연 동네 상권이란 것은 

덕분에 지리멸렬이다. 

 

그러면 ' 싸고 편하고 좋은 물건 '을 찾는 인간의 본성을 억제하고 될수록 만인이

평등하고 비슷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아마도 그건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양극화니 뭐니 하는 말 자체를 꺼내지도 말아야 할거 아닌가? 

 

양극화가 심화되어 경제 성장도 한계에 직면했다고 다들 얘기한다. 빌 게이츠도

그랬다. 그런데 세상의 시스템은 양극화가 커지도록 이미 만들어져 작동되고

있다. 

 

그럼 도대체 누가 무슨 방법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단 말인가? 

시민들의 자발적 인식의 전환으로?

쳇, 공염불도 유분수지, 이게 될 일인가? 

 

정치 제도적으로 혹은 정치적 결단으로 일부 완화가 가능할 순 있겠지만, 이미

굳건히 가고 있는 방향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한 10년 후 20년 후는 세상은 어찌 될 것인가?

 

잘 사는 부유층은 더욱더 주체할 수 없는 돈을 가지게 될 것이고 없는 사람은 

더욱더 빈한하게 살게 될 것이다. 그 정도가 어느 수준으로 될지 상상 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전철에서 핸드폰을 마치 눈에 붙이고 보던 젊은이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눈앞의 이익 이란 이런 것일까?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달라지긴, 뭐가~ 

이런게 뜬금없는 생각 이라는 걸까? 

 

핸드폰에 눈을 바짝 붙이고 화면을 보는 친구를 보다가 이런 생각이 떠 올랐다는

것이다. 암튼 생각의 물꼬가 마르지 않고 있다는데 위안을 삼는다는 정도! 

 

 

 

 

 

 

'포토 에세이, 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5월은 맑다^  (0) 2022.05.04
왜? 이봄에 가슴이 뛰어야할까?  (0) 2022.03.24
눈 떠보니 선진국 (책 소개)  (0) 2022.03.08
봄이 겨울을 이기는가?  (0) 2022.03.08
매화에 대한 나의 생각  (0) 2022.02.24

선진국?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그런데 왜? 나라가 이래? 

선짓국은 아니고?

 

우리가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소위 거시적 국가지표라는 건

확실히 선진국이 분명한데, 

잡다한 사회현상부터 곳곳에 숨어있는 여러 지표들은 선진국은커녕

후진국에 다름 아니니 이게 대체 왜? 이럴까? 

 

[그러니 이건 현 정치가 엉망이라 그래~부터

눈 가리고 아웅이지 무슨 선진국?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자살률 봐라, 출산율 봐라, 빈부격차 봐라, 교통 사고율 봐라,

산업현장의 재해율 봐라, 

무엇보다 4류에 불과하다는 저 정치꼬라지 좀 봐라~ ]

 

이런 방면에 전문적인 연구를 하지 않는 이상 보통 시민들이 이 이상하고도 이해할 수

없는 자기모순 같은 현상을 제대로 꿰뚫어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연히 유튜브 보다가 알게 된 이 책은 바로 이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아하! 그래서 그렇구나~~

 

왜? 란 질문도 또 해답도 일부 제시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은 일단 전체 220 여 페이지 정도에 불과하고 글도 상당히 

짧게 짧게 간략히 서술되어 있어 읽어 나가기가 편하다. 

생각 같아선 서너번 반복해서 읽고 싶은 마음이 난다. 

 

암튼 맘만 먹으면 금세 읽을 수 있다. 

 

 왜? 한국이 선진국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문제가 다양한지~

그 원인은 어디서 출발하는지~ 

그래서 우리 각자는 어떤 생각을 하는 게 좋을지~

 

이런 문제에 대한 좋은 해답을 구하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바이다. 

'포토 에세이, 나의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이봄에 가슴이 뛰어야할까?  (0) 2022.03.24
핸드폰 5cm  (0) 2022.03.08
봄이 겨울을 이기는가?  (0) 2022.03.08
매화에 대한 나의 생각  (0) 2022.02.24
낙엽 치우기 ~ 풀뿌리 민주주의!  (0) 2022.02.15

뭐 다 아시는 거지만,

승용차를 타고 가는 것과 걸어서 가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무슨 '생각'을 할 수 있느냐이다. 

 

승용차를 타고 가게 되면 일단 안전하게 차를 운전하는데 초 집중을

하게 된다. 뭐 슬슬 하는 거 같아도 몸과 마음은 온통 차를 몰아 가는데

한시도 집중을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음악을 동시에 듣는다~

이럴 수는 있어도 무언가를 생각해 나가기는 대단히 어렵게 된다. 

 

만일 차 타고 가면서 무언가 골똘하게 생각을 한다~

그러면 결과는 뻔할것이다. 극히 위험하고 당연 피해야할 사안이다. 

 

반면 걸어서 가면 옆 사람이나 나무나 보도 블록 같은 거에 부딪치지 않으려

주의를 기울기는 하지만 아주 약간이면 된다. 한적한 산 길을 걸으면 그 마저도

거의 무시할 수준이 된다. 거기다 속도가 아주 느리지 않은가?

따라서 무언가를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전철을 타고 가는데

 

" 그 어떤 겨울이라도 다가 오는 봄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 

 

이런 글귀가 어느 교회의 광고 문안으로 걸려 있었다. 음 ~ 나는 순간 생각의 물꼬를

거슬러 올라갔다. 

 

'봄이 강해서 겨울을 이기는가? ' 

'겨울은 봄 보다 약하다는 건가?'

 

물론 이 글의 뜻은 그런데 있지 않음을 잘 안다. 

 

제 아무리 힘들어도 따스한 봄 바람으로 당신의 어려움은 극복될 수 있습니다~ 

뭐 이런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우리 교회로 오시오~  

우리가 위로하고 녹여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감성적 접근도 있지만 이런 이성적 접근은 어떨까? 

 

봄,여름,가을,겨울은 그 어느 것도 서로에 대해 더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다. 

겨울은 봄보다 약하지 않고 봄은 여름보다 약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여름은 

가을보다 약하지 않으며 가을은 겨울 보다 약한 것이 아니다. 

 

오직 계절이라는 것은 태양으로부터 지구에 전달되는 열량의 변화에 정확히 부응할

뿐인 것이다. 지구가 생긴 이래로 지금까지 이 법칙은 변하지 않았으며 제 할 일을 정확

하게 수행해 왔을 뿐이다. 

물론 중간에 빙하기니 뭐니가 있었다지만, 극히 예외적 상황이었고 그 이후 쭈욱 지구는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 계절변화에 어찌 이기고 짐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당연 대부분의 우리 인간들은 계절을 그렇게 인식하고 있지도 않을것이지만~ 

 

이 세상은 아니 정확히 이 지구는 매일 매시간 변하지만, 한편 변하지 않는 것이 진리라 할 수 있다. 

변하는 것은 생성된 일체의 것들은 반드시 사라진다는 것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우주의 질서와 운행법칙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 하나의 현상이라면   

제법 무변(諸法無變)은 또 하나의 법칙인 셈이다. 

(無變이 맞는지 不變 이 맞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다.)

 

항상 변하지만 결코 변한것은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을 뿐이다. 

 

흔히 제행은 무상 이여~ 하다보니 온통 세상에 안 변하는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변할 수 없는 것이 있어 세상은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궁평리 아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