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느즈막히 일어난다.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동네 앞 보라산을 가 보기로 한다.

아내는 가까운 영통에 홀로 사시는 친정 엄마를 모시러 가고

나는 산을 간다고 나섰다.

 

그래도 오늘이 새해 첫날인데, 야트막한 산 이지만 가서

시원한 공기도 마시고 아침 해도 새롭게 보고 그래야지~

영하 7도,  땅은 굳어 있고 길가에 떨어진 낙엽들은 사람들

발걸음에 밟혀 거의 가루가 되어 있다. 

 

보라산 못 미처 저 건너 산이 보이는 언덕까지 간다. 그래도

2,700보쯤 된다. 능선을 올라 새해 소망을 생각해 본다. 

그래도 대여섯 가지는 떠 오른다.  

 

지곡리 쪽으로 보이는 풍경

 

 

그래 이런 소망을 새해 첫날이 아니고 언제 빌어 본단 말인가?

그런 소망이야 일년 내내 가슴에 스며 있지만, 그래도 첫날이

가장 적절하고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산을 내려온다. 중간에 보니 밤나무 옆으로 신발 한켤레가 벗

어져 있다. 양말도 같이 있는 걸로 보아 누군가 이 산길을 맨발로

걷고 있는 모양이다. 글쎄, 영하 7도의 날씨에 뭔가 굳은 맹세를

하는 중일까? ㅎㅎ

 

 

중간에 나무 의자에 앉아 잠시 침묵 속에 빠져본다.

 

까마귀가 저멀리 까까까깍~ 소리를 지르며 사라진다. 어떤 때는 깍깍

또 어떤 때는 그냥 깍 ~ 이렇게 다양한 소리를 낸다. 작은 박새도 요리조

리 나무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새해 첫날이라 그런가 오 가는 사람이 제법 된다. 허긴 봄철부터

가을까지 또 겨울에도 이곳을 오 가는 사람은 상당히 많다. 인근

주민들에게 좋은 산책로이자 휴식처이기 때문이다. 야산답지 않게

나무는 곧게 높이 그리고 빽빽이 자라는 곳이며 공해가 거의 느껴

지지 않는 꽤나 청정한 곳이다.  

 

사실 용인의 야산자락은 마치 곰팡이가 먹어가듯 곳곳이 잠식되어

수많은 집들이 지어지고 있다. 원형 보존이 안 되어 매우 아쉽지만,

쉬운 문제는 아닌듯하다. 숲에서 살고 싶은 사람도 많을 테니까~

 

천천히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한다. 봄 여름 상추며 오이 토마토를

제공해 주었고 작년 가을에는 김장 배추까지 구입해 먹었던 주말농장을

겸한 4천 평의 밭이 쓸쓸히 이 겨울 방치되어 있다. 그 옛날 시골

우리 밭도 3천 평, 겨울엔 저랬었다. 

 

새해라 해서 일출 사진을 찍겠다고 따라 나선 적도 있었다. 그 추운 

바람을 맞으며 새벽 내내 떨었던 그날 찍은 사진은 그러나 그닥 쓸모가

없었다. 그저 잊지못할 추억으로만 남았다. 나는 새해 첫날을

유별나게 기리는 편은 아니다. 

 

2022년 오늘도 그렇다. 그저 평범하게 아주 보통으로 집에서 휴일을

즐기는 중이다. 사실 1.1일을 쉬게 된 것도 아주 오래된 일은 아니다.

그간 줄곳 새해 첫날도 약국을 열었으니까~ 

 

집에 돌아와 옥상에 설치된 어프로치 연습망에서 몇십 개의 공을 쳐 본다.

햇살이 아주 따스하게 느껴진다. 한 겨울 골프장에 갈 것도 아니면서

뭐할라 그런 연습을? ㅎㅎ 그냥 심심풀이로, 또 집중력 향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지 뭐 별거 아니다.

코로나로 단지 내 조그만 연습장이 2년 문을 닫아서 자구책으로 마련한 옥상

연습 기구이다. 

 

 

그러나  새해에는 비용이 턱없이 올라간 이거 골프는 이제 거의

끊는게 답일듯 하다. 수입도 줄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렇게 새해 오전이 흘러가는 중이다. 

오후엔 시집간 딸,사위와, 연로하신 장모님을 모셔와 만두를 빚어

모처럼 저녁을 푸짐하게 먹었다. 

 

2일차 일요일 오후 들어 무료함이 느껴져 만만한 미리내 성지를 가

보기로 한다. 아침에 살짝 쌓인 눈이 아마도 성지 앞 호수엔 얼음위로

하얗게 빛날 것이라 생각을 했다. 아내도 초라도 봉헌하겠노라고 따라

나선다. 기대 만큼은 아니었지만 하얀 눈이 호수엔 일부 보였고 아내는

성물가게에서 양초 몇 개를 사서 쌀쌀해진 바람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미산리 호수

 

 

내일 아침 가져갈 한복을 다린다. 양복(새로 산)을 찾아놓고

Y 셔츠를 다림질하고 넥타이를 고르고 등등, 숨 가쁜 밤 몇 시간을 보낸다.

근데 한 벌로 구입했던 양복바지가 어디에도 없다. 

이게 무슨 일인가? 어디 있는겨? 그때 분명 바지도 산 건 맞지? 

 

게다가 최신 유행이라는 한복엔 주머니가 전혀 없어 행사 당일

급하게 써야 할 카드며 현금 등을 넣어둘 허리에 차는 전대를 

준비하려니 그 또한 아무리 찾아도 간 곳이 없다. 

분명 어디 있긴 있을텐데~ 

 

아니 이거 왜 이러는가? 참~ 

한복 다림질을 하는 아내는 왜 진즉 그런 걸 준비 못했냐고 드디어 목소리가 커진다.

 

" 진즉 준비라니?

 

아니 누가 그런 소소한 것들을 미리미리 준비한단 말인가?

다 닥쳐서 하지~  물론 며칠 전 완벽히 점검을 끝내고 당일 전 날 한번 더 준비를

하면  좋겠지만~ 내 성격상 그렇게는 못한다!! 

 

결국 임시방편으로 천으로 만들어진 작은 지갑에 양쪽 고리를 달아 전대처럼 쓸 작업을

마칠 무렵 동생 결혼으로 일시 귀국한 아들이 전대 2개를 어디선가 찾아왔다. 

에이~ 괜한 수고를 하고 있었네 그랴~

그것은 26년 전 유럽 가족여행 할 때 여행사로부터 지급받았던 건데 가죽으로 된

꽤나 근사한 제품으로 혹시나 해서 보관해 두었었고 아직도 멀쩡히 쓸만했다.

 

허 거참,아들 이럴 때 쓸만하네~ 어떻게 찾았댜~

맨날 집에 있는 우리가 못 찾는걸  잠시 들른 아들이 찾아 내다니~

 

양복바지는 어딘가 껴 들어갔던 걸 아내가 결국 찾아냈고!

그사이 한복은 다 다려졌다.  자~그럼 이제 대충 끝났으니 이제 잠을 자자고! 

 

헌데 새벽 3시에 얼핏 깨고 나니 다시 잠이 안 온다. 

 

이런 현상은 가끔씩 있는 일이다. 새벽 어디 가는 날 3시에 일어나 준비하는 건

더러 있는 일로  특별히 혼사 전날이라 그런 건 아닐 텐데~ 그치만,

뭐 그래도 큰일을 앞두니 아무래두 그렇겠지.

 

잠도 안 오고, 옛날 내가 결혼할 때가 생생히 떠 오른다. 거실에 나와 A4 용지에 볼펜으로

 오래 전 기억을 더듬어 몇 자 적어 본다 

 

딸도 송파에 미리 나가 홀로 독립한 지 오래인데, 오늘 밤 잠은 잘 자고 있을까?

 

 

바야흐로 약 40년 전 나는 잠실 주공 5단지 아파트를 하나 세 얻어 들어갔었다.

그 집에 거주하면서 결혼 준비를 해 나갔었다. 신혼집은 미리 과천에 얻어 놓았고

헌데,

 

결혼식 당일 이발을 멋지게 한답시고 명동의 한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정돈하고

나니 오후 1시 결혼 미사 시간이 다 되고 말았다. 

그냥 편하게 혜화동 성당 근처 어디 지금의 대학로나 명륜동 언저리에서 머리를

다듬었으면 될걸 무슨 명동이라니~

이거야 말로 안 하던 짓이라는 거이다. 

 

부랴부랴 택시 정류장으로 달려가 늘어선 긴 줄 앞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니

흔쾌히 택시를 양보해 주었다. 

혜화동 성당으로 부리나케 달렸지만 미사 시간에 대략 20여분 늦고 말았다.

당시 성당에 참석했던 하객들은 물론 신부 측에서 더 난리가 났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미사 시간에 신랑이 안 나타나니 그 궁금증이야 오죽했겠는가? 

 

" 혹시 신랑이 결혼식 파투 내고 안 오는 거 아녀? 글쎄~ 

 오다가 무슨 사고라도 난 건 아닐까? "

 

지금처럼 핸드폰이 없었으니 중간에 연락도 안 되고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결정적인 시간에 늦은 건 고등학교 입학시험 치는 날도 있었다. 몇 차례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상황에서 시간 예측도 잘 못했고 버스에서 내려 죽어라 뛰었지만 30분가량 첫 시간에

지각을 했었다. 그런 사건이 평생 단 두 번에 불과한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만 둘 다 아주 치명적인 실수였다. 

 

이번 딸의 혼사를 앞두고 머리를 어디서 할 것인가?로 아내와 의논을 했다.

그래도 좀 괜찮은 데서 해야지~ 가 아내의 생각이었다.

해서 아내와 아들은 전에 살던 분당의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했다.

나는 시간도 마땅치 않아 늘 내가 다니는 수원 약국 옆 아랫동네 그야말로 순수 동네

미용실을 택했다.

 

나 자신 결혼식 때  폼나는 데서 이발을 한다고 했다가 너무도 큰 낭패를

당했던지라 다시는 그런 일에 목숨 걸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던 터이다. 또 뭐 

이 나이에 머리 좀 조금 낫은 데서 잘했기로서니 무슨 인물이 더 날것도 아니고~ 

결혼은 딸이 하지~ 내가 하나? 

 

나와 동갑인 40년 경력의 이발사는 오로지 가위만 써서 이발을 하는데, 벌써 몇 년째

내 머리를 책임지는 단골 이발사이다. 

 

다른 말은 일절 안 하고 이번엔 특별히 평소의 2배 가격을 낼 터이니 신경 좀 써서 해

주시오  했다.

그는 속으로 짐작은 했겠지만, 아무 말 없이 정성스럽게 머리를 손질했다. 

 

머리는 만족하게 잘 다듬어졌다. 

 

어치피 잠도 안 오는데 일어나 쓰는 글이 여기까지 왔다. 

 

오늘 혼사야 잘 진행되겠지 뭐, 그리고 딸아이는 잘 살아갈 것이다.

이미 2년 반 전에 혼자 삼성동 직장 가까운 동네로 독립해 나간지라 시집

간다고 별로 허전함 같은 것도 없다. 

 

어찌 보면 다 큰 아이들은 품속에 끼고 있는 것보다 그 편이 더 좋은 듯도 하다.

말하자면 둥지에서 날아가기 예행연습 이라고나 할까? 

 

단지 상당수의 하객들이 코로나로 인해 함께 하지 못함이 좀 아쉬울 뿐이다.  

 

여기까지 써 놓고 다시 잠을 청했다. 

 

(2021.9.26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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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지문이 독립적이듯 우리가 글을 쓰는 방법도 천차만별

모두 독특하고 다를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전에 저는 볼펜으로 글을 쓰는 것이 무척 불편했습니다. 일단 

글씨를 꾹꾹 눌러야 써지는 게 싫었고 한참을 쓰다 보면 가운데 손

가락 첫째 마디가 아프기도 했지요. 그런데 잉크를 넣은 만년필은

그런 게 없어서 술술 쓰기가 편했습니다

 

그러다 2,000년대쯤인가? 아니 그 좀 전 인듯한데 컴퓨터에 자판

으로 글을 쓰면서 정말 딴 세상이 되었습니다. 쓰다가 안 맞으면 쉽게

지우면 되고 다시 쓰면 되고 너무도 편했지요! 아무튼 그때부터 이런저런

글들을 컴에서 쓰고 저장을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글의 띄어쓰기 같은걸 잘 못해서 표준화된 글을 쓰지

못했는데, 한참 전 친구가 제가 쓴 글을 보더니 

 

" 자네는 글에 사투리 표현이 많고 띄어쓰기가 좀 잘 안되고 있군, 사투

리는 뭐 그렇다 치고~ " 

 

해서 다시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그 친구는 교수 출신이라 글을 많이 쓰고

평가도 많이 하고 그래서 저와는 다른 그런 글쓰기를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해서 저도 심기일전하여 글쓰기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되었지요. 

 

최근의 저의 글쓰기 방법을  좀 외람되오나 한번 올려 볼까 합니다.

 

1, 글은 억지로 쓰려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작정 써질 때까지 기다리는 건 아니다

 

2, 생각이 날 때 어떤 시상이나 글의 주제가 문득 떠 오를 때 잘 기억해 두었다가

글로 옮긴다. 특별히 즉시 메모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다. 폰의 메모장에

가끔 메모도 병행한다

 

3, 대체적인 글의 얼개를 생각 나는 대로 작성한다

4, 써 놓은 글의 전후 좌우를 살펴서 글을 다듬는다

5, 컴 내 카페에 저장을 해 두고 당분간 지켜본다

 

6, 중간에 첨부할 내용이 있으면 집어넣는다. 문득문득 추가로 넣을 내용이 떠 오른다

7, 잘못 쓴 내용, 기타 뺄 내용이 있으면 삭제한다

8, 그러고 다시 글을 다듬는다. 

 

9, 어떤 글은 1주일, 혹은 한 달 이상 어떤 글은 6개월 이상 보고 또 보며 

내용을 고쳐 나간다. 계속 봐도 어쩐지 계속 미진한 글이 있다 

10, 이 과정을 나는 글을 숙성하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마치 포도주를

오랜 기간 동안 숙성시키는 것과 같다

 

아무리 빨라도 2-3번 수정은 기본이고 10번, 20번, 어떤 글은 30번 이상 다듬는

경우도 있다. 이는 내가 쓰는 글에 무슨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11, 적절한 타이밍이 되었다고 판단되면 글을 꺼내어 블로그 또는 카페에 올린다 

12, 블로그에 올리는 글과 카페에 올리는 글은 같을 수도 있고 약간 다를 수도 있다 

13, 예전에 쓴 블로그의 글이 맘에 안 차면 일부 수정도 한다. 그러나 글 쓴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여 그냥 두는 게 대부분이다 

 

글을 다시 정리 즉 퇴고할 때는 최재천 선생의 3원칙에 따라 해 본다.

즉 ~

 

a, 정확하게 써졌는가?

b, 군더더기 없이 경제적인 글이 되었는가?

c, 표현이 우아하게 되고 있는가? 

 

여기서 잘 안되면 그것이 될 때까지 계속 두고두고 손질을 한다

 

그러나 모든 글을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어떤 경우는 즉시 써서 약간의 

수정만 거쳐 올리기도 한다.  타이밍이 필요한 때이다. 

 

위의 3원칙 외에 더 참고할 사항이 있다면 추가로 차용할 예정이다

 

" 거 너무 글 쓰는데 시간이 걸리는 거 아니요? " 

 

그럴 수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글은 내가 혼자 보는 글이 아니다 보니

읽는 분이 편해야 하고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도 가급적 줄여야 하고 또 쓰다

보면 나만 이해하고 독자는 문맥을 파악하기 어렵게 쓴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을 좀 들이는 편이다  

 

*

 

그런데 여전히 많은 오류가 나는 건 역시 띄어쓰기지요. 카페의 글쓰기에서 

띄어쓰기 오류를 검사해 보면 정말 많은 미스가 발생합니다. 이것은 예전부터

몸에 글쓰기가 체화되어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기본 띄어쓰기 외에 문맥만 통하면 그냥 내 맘대로 해도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언제쯤 컴 내부의 도움 없이 완전하게 띄어쓰기를 해 낼 수 있을지 참 막연할

따름이지요.

 

그런데 글을 써 놓고 오래 숙성하다 보니 과연 이런 글을 올리는 게 맞는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글 올리기를 주저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러니 글이란 착상이 떠 오를때 즉시 써서 몇번의 간단한 수정을 거친 후 곧바로

올려지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장고 끝에 악수 라는 말이 있듯이 너무 오래 숙성시키다 보면 뜻하지 않게 부패가

일어날 공산도 있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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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사람들은 글은 전문적 식견이 있는 사람이 쓴다고 생각하기 쉽다.

일반인들이 무슨 글을 그렇게 거창하게 쓴다고 그러실까? 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게만 볼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 역시 지금까지 그 어떤 글쓰기 훈련이나 특별한 지도를 받은 적은 없고

오로지 글은 컴퓨터 자판으로 카페와 제 블로그에 올린 것이 전부다.

2003 년에 동문회, 카페 등에 올린 글을 모아서 수필집이라고 한 권 낸 적은

있었다. 그러니까 순수 아마추어 글 생산자일 뿐이다.  

 

우연히 최재천의 '독서는 일이다'라는 유튜브를 보게 되었다. 아마도 글을

어떻게 써야 좋은지를 생애 처음 들은 셈이다. 그리고 그 방법을 지금까지

글쓰기에 적용해 오는 중이다. 단, 그 영상은  진리의 한 파편일 뿐으로  글을

어떻게 잘 쓸 것인가에 대한 방법은 그 외에도 헬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최재천 선생의 글쓰기 방법을 위주로 해서 기술해 보고자 한다 

 

 

"  정확하게,  경제적으로,  우아하게 "

    precision, economy and grace!! 

 

 

1, 정확하게 ~ ~ 어떤 내용을 기술할 때 사실에 부합한 정확성을 먼저 확인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문법이나 서술, 앞뒤 문장의 일치 등은 기본이고 사실에 맞지 않는

엉터리 수치라든지, 어렴풋한 내용이라든지, 그런 것들은 가능한 소위 fact를 먼저

확인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좀 귀찮지만 맞춤법, 띄어쓰기 등도 포함될 것이다. 

 

그렇게 해도 틀리는 글을 쓸 경우는 많다 

 

2, 경제적~ ~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있으면 과감히 잘라 버려라. 중언부언 중복 설명할

경우 등 , 애매한 묘사 같은 건 가차 없이 도려 낸다는 의미로~  

 

3, 우아하게 ~ ~정확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써졌다 해도 미적 아름다움과 향기가 나도록

우아하게 써야 한다는 뜻이다.

 

어찌 보면 이것이 제일 어려운 일로 생각된다  

 

어떤 글은 지나치게 화장을 해서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글을 더러 만나기도 한다.

미사려구가 많으면 양념을 너무 친 음식같이 된다. 글은 담백미가 있는 게 좋다. 

 

그렇다면 그런 글은 어떤 글이요? 혹 최재천 선생의 샘플 글이라도 좀 올려 보시구려~ 

네에,  이 글의 말미에 몇 구절  짧게라도 한번 올려 보겠습니다.

그래야 이 글을 쓴 의미가 완성되겠지요~ 

 

 

 그리고 최재천 선생은 이렇게 덧붙였다. 

 

4, 미리 써 놓고 가다듬으면 누구나 글을 잘 쓸 수 있다

 

어느 정도로 가다듬어야 하는가? 

 

일단 글을 쓴다.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발음할 때 약간의 걸림돌이 있어 숨이 차거나

하면 안 된다. 자연스럽게 발음되도록 수십 번 고쳐 쓴다. 50번 100번도 좋다.

 

실제 저 자신도 그렇게 10번 ~20번 이상 글을 고쳐 써 본 적이 있다. 처음 쓴 글과 완전히

다른 글이 되어 있음을 보고 놀란적이 있다. 그러나 실제 50번이나 글을 고쳐 쓸 수 있을까?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도 아닌데~ 

 

5, 그리고 많이 읽어야 글은 더 잘 쓸 수 있다

 

흔히 글을 좀 쓰면 주위에서 ' 그 사람 글재주가 있네~' 이렇게 말을 하는데, 재주로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말에는 흔쾌히 동의할 수 없다. 손재주, 발 재주 이런 의미의 재주란

뜻과 글은 다르지 않을까? 

 

많은 독서량이 글을 좌우한다는데 동의하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평소 아무것도 안 읽으면서 혹은 인생의 어느 한때라도  다량의 독서 경험도 없이

글을 잘 쓸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리고 최 선생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물리학자는 Richard

Feynman 으로 알려져 있고 다윈 이후 최고의 생물학자도 역시 Richard Dawkins 로

알려지게 되었지만 이 두 경우 모두 저 분들이 일반인들을 위한 책을 썼기 때문이라고~

 

논문만 발표한 것이 아니고!! 

 

6, 그만큼 책을 쓴다는 건 생각 외로 중요하다는 걸 얘기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로버트 위버 교수가 하바드 대학으로 박사 코스를 밟으러 가는 최재천

선생에게 써준 추천서에는 이 문구가 들어있다 

 

He writes  with precision, economy and grace!! 

 

그런데 현재 우리네 대학은 어떤지 몰라도 그 옛날 미국의 대학에서는 어떻게 글을 잘 쓸 수

있는가? 에 대한 별도의 강의가 있었다 한다. 그것은 아무리 연구를 잘해도 논문을 발표할 때

그걸 얼마나 잘 글로 표현하느냐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정도로 그들은 글쓰기의 중요성을 일찍이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우리는 과연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걸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까?  중 고 대학은 물론이거니와

일반 사회에서 까지! 

 

 

"이 나이에 글은 그렇게 써서 무엇해? "

"까짓 맘 편하게 나는 되는대로 그냥 쓰고 말겠다 고요~ "

"그렇게 써서 출판할 것도 아닌데~~ 뭐! "

 

물론 그런 맘을 먹고 계시는 걸 이해 못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사실 나 자신도 그냥 그러고 싶은 맘이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혹시 나는, 또 우리 세대는 그렇다 치고 자식들 혹은 손자녀들에게는 이런 식의 글쓰기

방법이 그들의 앞날에  도움이 될 가능성은 없을까? 걔들이 좀 더 글을 잘 써서 그들의

본질적 가치 외에 부가적 성과를 높일 수 있다면 밑져도 본전은 넘을 테니 말이다!

 

물론 앞서도 언급했지만 최재천 선생의 글쓰기 방법이 유일한 것은 물론 아니다.

 

글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느냐 하는것이 관건일 따름이다. 

 

실제 저 자신도 아직 공부 중인 아들이 어떻게 글을 써내는지 이제껏 물어본 적도 없지만,

이 글을 기회로 한번 알아볼 생각이다. 

 

"  아들아~도대체 너는 글쓰기에 어떤 원칙 같은 게 있냐? 리포트 같은 건

어떤 식으로 써서 제출하고?"

 

 

그런데 최재천 선생도 영상 말미에 언급을 하셨지만, 위의 3원칙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오히려 글쓰는데 일부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고 한다. 

 

글이란 다소 투박하여 거친 질그릇처럼 써질 수도 있고 매끈하게 잘 다듬어진 청자처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을 택할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이라 생각한다 

 

 

---------------* -------------

 

참고 , 최재천 선생의 "인간과 동물" 중 일부 글 첨부 

 

• 다윈과 윌리스의 이론에 따르면, 몇가지 조건들만 맞아떨어지면 진화는

반드시 일어나며 그 중 어느 하나라도 맞지 않으면 진화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조건들을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하지요. 다윈과 윌리스가

정리한 이론들을 보면 대충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먼저 '변이'가 있어야 됩니다. 예를 들어, 모양.크기.색깔이 똑같은 달팽이

집단에서는 아무리 서로 짝짓기를 하여 자손을 낳아도 아무런 변화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애당초 아무런 변화도 없는 곳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완벽하게 복제 인간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아무리 다양한

형태로 결혼을  하더라도 다양한 형질의 자식을 얻을 수 없습니다. 

 

​•다윈의 이론은 한마디로 개체를 중요시하는 이론입니다. 다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 따로따로 숨 쉬는 개체, 그리고 개체의 번식을 통한

형질의 계승이었습니다. 다윈의 이론은 생물학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문학, 예술, 철학 등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인의 의식

구조와 삶까지도 바꿔놓았습니다. 모든 것은 변하며, 개인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런 영향은 가히 혁명적이어서 우리는

이를 '다윈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  글 자체가 간결 명료하며 보통 우리들이 신경을 좀 써서 작성한

글과 대동소이하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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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를 비롯한 너무나 훌륭한 팀들이 즐비한 이번 풍류 대장을 띄엄 띄엄

어떤 週는 보다가 또 어떤 週는 빼먹기도 하며 그럭저럭 시청을 이어 갔는데,

드디어 어젯밤(12.21)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국악의 크로스오버, 순수 국악만이 아닌 팝과 블루스 재즈 발라드 등이

함께 결합된 어쩌면 세계 시장을 넘보기 위한 시도라 보이는 풍류 대장~

 

사실 그동안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캐치프레이즈로만 끝난 감이 있는 이 우리 것~  좋으면 뭐하나? 즐기지를

않고 찾지도 않고 은연중  무시하고 그저 흘러간 옛 시절의 유물 정도로만

여기던 창, 판소리 등등! 아닌가? 

 

 

그런데 사실은 그것들이 별 재미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춘향가,

심청가, 등 몇 가지로 소재가 한정되어 늘상 그것만 우려먹는 느낌이었다.

대중의 취향은 날로 새로움을 찾아 다양화 해 가는데, 재료는 100년 200년

전의 것 그대로를 테이블에 늘 올렸던 것은 아닐지~(국악 장르에 얼마나

많은 영역이 있는지 저 자신도 잘 모름)

 

그것을 탈피하고자 함이랄까? 그렇다! 심사위원으로 나온 송가인 조차 

저들이 그냥 국악 세계에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하는데 이런 자리로 불러내게 된

그 자체에 미안함을 표하고 있었다. 저 수많은 국악 후예들이 그 본래 자리를

지킬 수 없음은 변해가는 시대의 외면을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웠음이리라. 

 

국악인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몸부림을 쳐 왔는지는 그저 말끝마다

 

"이제는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지 않았으면 좋겠다~ "

 

로 표현된다. 얼마나 엉성한 공연 수준이면 그들이 탈의실 하나 없는 공연장을

찾을 수 밖에 없었을까? 그동안 우리 국악의 현주소를 잘 말해준다 하겠다. 

 

우리 것이 좋다는 것은 태어난 이 땅과, 물과, 하늘과, 곡식과, 그 모든 것이

애당초 우리 몸에 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출발한 노래, 글, 그림,

기타 그 모든 것이 당연 몸과 마음과 영혼에 잘 맞을 것이란 건 당연지사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남의 것이 더 좋게 보이는 세월을 살아왔을까? 

 

국악이든 크로스오버 국악이든 그 외면의 본질은 이 문제를 떠나서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 以下의 글은 저 자신의 판단입니다. 우리 것이 외면당한 이유가 이것만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

 

그건 조선 500년의 모화(慕華) 사상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본다. 우리보다 

큰 대국, 중국의 것은 뭐든 좋다는 생각~ 그저 왕을 포함 고위 대신들이 자나깨나

중국을 칭송하는데 백성인들 별 수 있었을까? (그중에 몇몇은 반대의 생각을 했다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제 36년간 저들의 조선인 비하 정책이 또 한 번 큰 역할을 했다. 일본

제국보다 뭐든 열등한 조선~ 그저 엽전들은 해봤자 벼룩이지~ 거 뭐 니들이 

잘하는 게 뭐야? 이름하여 식민사관~

앞다퉈 일제에 빌붙기 바빴던 좀 배웠단 식자층들! 그중엔 역사학자도 많다.

조선 500년도 모자라 다시 한번 자기 비하의 수난을 겹쳐 받아야 했다. 

 

그리고 해방 후 이젠 그 대상이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으로 범위가 넓혀졌다. 

 

"뭐든 미국 것은 좋은 것이여~ 유럽? 그야 하나마나한 얘기지~ 우린 죽었다

깨어나도 저들을 따라잡을 수 없어~ 쟤들 것은 뭐든 우리보다 훌륭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모든 것이~ "

 

이름하여 모양(慕洋) 주의다. 대상이 예전 중국에서 미국을 위시한 서양 제국으로

바뀐 것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자신이 서구 문물에 흠뻑 빠져 그들을

칭송하기 바쁘다는 걸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실은 나 자신도 이 慕洋주의란 얘기는 김갑수(꽁지머리 그분 아님) 선생으로부터

불과 1-2년 전 처음 들었으니 말이다. 당연 慕美 주의도 있을 것이다. 사실을 말하면

서양 유럽 제국들의 수려한 자연환경, 유수한 건축물, 문화 예술, 거기에 더해 앞선

복지정책 등을 보면 분명 우리와 다른 탁월한 면이 있고 도저히 우리가 따라가기 힘든

부분이 엄연히 있는 게 사실이다.

 

자연환경이나 수백 년 걸려 지어진 건축물들은 우리가 노력한다고 갑자기 그들을 능가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남의 것이 더 좋게 보이거나 생각되는 건 우리에게만 있는 현상은 아닐 것이다.

중국도 미국도 서양 여러 나라에도 일정 부분  당연 있을 수 있는 현상이라 본다.

그들이라해서 한국의 어떤 부분에 빠져들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땅에 상당 세월을 약소국으로 살아온 우리에게 그 비율이 좀 더

높지 않을까 가정을 해 본다 

 

그렇다 하더라도 무조건적인 서양 숭배는 과연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충분한 이유가 있는 존중은 마땅히 표해야겠지만~ 

 

그저 그리스 로마 하면 껌뻑 죽고, 스위스의 자연환경에 기가 팍 죽어 도대체

이놈의 나라는 그동안 뭐 한 거야?  독일의 철학자, 클래식 음악 얘기만 나오면

그냥 꼬랑지가 척 내려갔던 건 아닐지! 만에 하나 그런 이유로 그들의 문학, 예술,

기타 문물에 애써 잘 맞는 척, 아는 척, 즐기는 척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지~

물론 척 에 그치지 않고 실제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들이 우월하다는 전제하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닌지 한번 냉정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테스 형을 목청 빠지게 부르짖던 이 노래! 도 그렇다. 왜? 하필 소크라테스인가?

세상이 왜 이런지~ 사랑이 왜 이런지~를 구태어 아테네에 물어봐야 하나?  

 

가까운 우리 나라에 원효~ 성철을 비롯해서 혹 발음이 시원찮으면 퇴계~ 퇴계 형!

발음도 비슷하네!  원효 형~ 성철 형~ 이렇게 물으면 안 되나? 뭐 이 정도를 모양주

의의 발로라 하기엔 좀 그렇지만, 우리의 인식이 하여간 이쯤 어디엔가 있다는

의미다! 

 

"거참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오!  ㅎㅎ "

 

그렇다고 아무런 실력이나 근거도 없이 우리가 최고라는 똥 배짱만 부린다고 될 일

은 물론 아닐 것이다. 

 

'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갈길이 따로 있구나~' 란 박일남의 노래가 있다. 어쨌든

모양 주의자는 그 길을 갈 것이고 그건 아니지! 하면 가던 길을 멈추기도 할 것이다.

 

 

 

 

국악이 좋은지 어떤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는 건 차치하고라도 그것이 실제

대중 속으로 파고들 만큼 매력이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우리 것을 소홀히 했다고

책망하기 전에 그것이 대접받을 만큼 우수해야 함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풍류 대장을 본 소감은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건반, 기타, 베이스, 드럼, 퍼커션으로 이루어진 구성에 거문고, 꽹과리, 대금 등이

함께하는 악기의 조합~  그러나 단순히 악기를 조합만 한다고 기대하는 작품이

될 수는 없다. 서도의 탁월한 보컬은 어떻게 저런 목소리를 보여줄까?  

대체로 이번 풍류 대장 출연진을 보면 그 탁월한 목소리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판소리의 성악이라는 '정가'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마치 피리를 불때 나오는

소리와 같은 정가는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어떤 이는 국악 그 특유의 목소리 패턴을 약간은 식상한 듯 얘기하는데, 다른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에 비해 그 두터움, 미묘한 연결음, 탁월한 고음, 등등은 과연 이들이

어떻게 훈련을 했기에 저런 소리를 낼까? 흥미롭기만 하다 

 

우리 것이 좋아지기 위한 몸부림도 날이 갈수록 구체화되고 있지만, 그에 발맞춰 우리의

의식도 차츰 예전의 그 열등감과 자기 비하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는 중이다.

이 둘의 접점이 교묘하게 교차하고 있는 듯한 일련의 현상을 점차 감지하게 된다 

 

아직 부족하고 개선되어야 할 점들이 부지기수지만, 이제 우리는 그렇게 만만한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한류 열풍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한류가 실제 어느 정도로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정확히는 모르

겠다 

 

다수의 심사위원이 한 목소리로 칭찬을 했지만 박정현은 하루빨리 이들을 세계

무대로 내보내야 한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BTS 가 세계 무대를 주름잡지만 사실 그들의 음악이 진정 한국의 어느 부분을

보여주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국악의 크로스오버를 표방하는 서도밴드의

그것은 분명 한국적인 독보적 그 무엇이 있다.

 

꼭 우리 것이 들어가야 세계적인 것이 될 이유는 없지만, K-pop을 위시한

K-culture의 주축으로 국악의 크로스오버가 일정 부분을 담당할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p.s

그리고 심사위원인 김종진, 이적, 박정현, 성시경, 송가인, 우영, 솔라, 박칼린은

하나같이 그 심성이 착해 보이고 감동을 숨기지 않고 온몸으로 표현했다. 

어찌 보면 이들의 뭔가 가족적이고 풋풋한 인간 냄새에 풍류 대장을 자주

보게 된 건 아닌지 생각되기도 한다. 특히 솔라의 얼굴 표정을 보는 건 참 재미

를 배가하는 요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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