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

겨울은 겨울이고
여름은 여름인게야!

사람들은 아주 지극히 당연한걸 가지고
복잡하게 생각한다^

겨울! 그래 지금이 겨울이야^
그러니 겨울 생각만 하자구~
춥다구 무슨 오지도 않은 내년 봄을 생각하구
더운 여름을 생각하며 이 겨울을 이겨내자고 목청을
높일 필요는 없다니께^

그런데, 춥고 눈오는 이 겨울을 진정 겨울답게 보내는게
뭘까?

2011.2. 북해도 키로로 스키장


7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군!

나이 60이 되도록 북해도를 한번도 가 본적이 없었시요!

눈이 무쟈게 많이 온다는 북해도는 사실 겨울에 가야 진면목이

나타나는거 아니겠슴까? 물론 예기치 않은 폭설에 여행 자체가 망가질수도

있긴하지만,


그런데 이런 여행 기록은 이미 소상하게 이 블러그에 올린바 있지만

당시만 해도 사진 처리 기술을 몰라 영 시원찮은 결과를 올렸기에 이제

다시 과거를 추억하면서 새로운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기 위함입니다^


내 자신도 그랬지만, 겨울에 눈덮힌 북해도를 가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

나요? 일부 스키 매니아를 빼고 사진 촬영에 빠진 분들을 빼고 순수 여행

으로 눈덮힌 풍광을 보러 북해도 뿐 아니라 캐나다,알프스등을 가는 분은

많지 않을것입니다^


신치토세 공항으로 착륙하는 순간의 저 풍광은 정말

감격적이었지요^



북해도 첫 방문이 눈 덮힌 광활한 평야를 보는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왜? 하필 스키요? 그냥 여행도 좋을텐데~

나이 60에 무슨 스키란 말이요?


허긴 내 친구중 스키를 탄다는 얘긴 이제 들어보기 힘들게 됬다

다들,손사래를 친다! 그런건 다 젊을때 얘기라고~


그런데, 북해도 스키장을 가서 봤더니 그게 아니었다^

거긴 나이 70은 넘어 보임직한 노인들이 꽤나 많았다~

이 어찌된 노릇인가? 워낙 스키가 일상화가 되어서 젊어 스키타던

사람들이 나이들어서도 스키를 탄다는 얘길까?


아니면 스키가 정말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면 나이들어 스키장을

찾는게 만용이란 말인가?



북해도 중부 이남에 위치한 니세코 스키장^



그런데 겨울 얘기하면서 하필이면 스키장을 그것도 국내도 아닌

일본의 북해도를 말하는게요?


사실은 스키를 빙자한 겨울 눈 여행을 하는게 나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키도 중급정도는 되어 웬만한 스키장은 다 가보았지만 말이다

겨울에 기막힌 설경을 보러 눈의 나라를 가고 또 스키장을 택한것이다!



니세코 스키장의 일부


첫번 방문에 스키장은 2군데를 갔다~

니세코와 키로로 인데, 두 군데 다 멋진곳이었다^

니세코는 주변에 요테이 산이 있어 그 주변으로 골프장,스키장이

죽 들어서 있는 리조트가 즐비하다^

1950 미터쯤 되는 요테이 산은 여름에도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


그런데 스키장에 슬로프만 보이는게 아니고 주변에 자작나무 소나무

삼나무 등이 우람하게 버티고 있어 그 풍광이 또한 기가 막힌다^


우리나라의 용평,성우리조트,지산,양지, 이런곳은 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인공설로 스키장을 만들어 운영할수 밖에 없는데, 문제는 주변 풍광이

보잘것없다는 점이다. 스키나 보드가 단순히 슬로프를 타는데 있는게 아니라

주변의 멋진 풍광을 함께 감상하는데 그 진면목이 있다할것이다.



키로로


이렇게 날씨가 받쳐주는 경우도 실상 꽤나 드믄데, 1차 방문때는

운이 좋았다^


저정도의 자연설에서 미끄러지는 스키의 맛이란 체험을 안 해보고는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 또한 상급자가 아니라도 웬만한 수준이면

충분히 탈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해도의 겨울 기온이 위도에 비해

그렇게 춥지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서울보다 기온이 같거나 높은 경우가

많다^


사실 많은 분들이 추운 겨울을 피해 더운 남쪽 나라로 휴양을 가거나 골프를

치러 가는데, 나도 몇번 그렇게 해보니 추울때 더운지방으로 갔다가 다시

추운 이 땅으로 되돌아 오는게 신체리듬상 별로 좋은거 같지가 않았다

겨울엔 역시 겨울다운 여행이나 스포츠를 하는게 좋은게 아닐까.. 나름

생각을 해본다!



키로로에서


그런데 1차 방문에 이어 2년후 두번째 키로로를 방문했을때이다

1차때 가보지 않은 코스를 돌아보다가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세상에 이런곳이 있단 말인가?


파라다이스 코스!! 스키를 안타도 여기를 갈수있는 방법은 없을까?

과연 파라다이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그런 곳이었다^

사람들은 지상천국을 말한다! 원래 천국은 지상에 있지 하늘에 있지

않치 않은가? 천국을 상상의 결과물로 볼수도 없고 죽은후에 갈 그런

곳으로 얘기할 필요도 없다^ 뭐가 됬건 각자 자기가 상상했던 천국을

지상에서 보게 된다는건 의미가 있다! 그것이 꼭 수려한 풍광만을 의미

하는것도 아닐것이다^



키로로 2차


이런 나무 그루터기에 쌓인 눈을 보는것도

너무 감동적이었다



여기가 파라다이스 코스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너무도 기가 막혀 몇분이면 통과할 거리를 30분 이상을 소요하며

천천히 통과한 곳이다^


나무와 바위와 산 전체가 오직 눈으로만 덮힌곳^


끊임없이 머리 위로는 눈발이 날리고^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지!! 라고 생각이 줄곳

들었던 바로 그곳이다^




세상엔 이보다 더 멋진 설경이 어딘가에 있을지 모른다^

가 볼수만 있다면야 가서 보고 싶지만, 북해도의 이 포근한 풍광

또한 세상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그런곳으로 생각한다^


보관만 된 수많은 사진들^

이 겨울에 꺼내어 먼지를 털고 조금 다듬어서 새로운 맛과 새로운

도전 정신으로 바라다 본다^


그래^


다시 가 봐야지^


이번엔 본토의 스키장, 나가노 쪽으로!

일본 스키의 자존심이 걸린곳이 그곳이니까^*

그런데, 본토는 아무래도 방사능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울수가

없는게 문제다! 이 문제는 좀더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을것이다^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어릴적부터 들어왔던 익숙한
노래가 또는 음악이 가장 깊숙히 가슴에 담겨 있을것은
당연하다 할것인데,
나처럼 6.25 사변중에 태어나 50년 대에 초등학교를 다니고
60년 대에 중 고교를 지낸 이 땅의 많은 이들은 아마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흘러간 우리의 옛노래 및 50-60 가요에 익숙하지 않을까?
70-80 가요도 그 이전의 노래들과는 많이 다르다^ 통키타를 동반한
당시의 팝송과 약간은 혼합이 된듯한 70-80 가요도 많이 익숙한건
사실이지만, 벌써 90년대로 올라가면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는게 나만의
느낌은 아닐것이다^
그렇다고 오래된 가요만 정겨운건 아니다^ 상당수의 팝송과 샹송,칸소네도
귀에 익숙하게 듣고 살았으니 말이다
해서 귀에는 익숙하지만 그 가사를 정확히 알고자 한적이 없는 수많은
팝송중 일단 가사와 멜로듸가 내 취향에 맞는 몇 곡을 선정하여 조금
더 잘 부를수 있게 마스터 해 보기로했다^ 우선 금년 아니 2019년
목표는 10곡이다^ 그냥 단순히 부르는데 그치는게 아니고 녹음실에서
녹음까지 마치는걸 목표로 할 것이다^
이것이 잘 되면 다음에는 샹송과 칸소네를 합친 10곡을 할것이고 그것이
잘되면 다음엔 내가 좋아하는 재즈중 10곡을 목표로 할것이다^
그 뭐 어떤곡을 할려고 하시요?
하신다면 우선 몇곡 눈에 띄는것이
Don't foget to remember me
Sound of silence
Ever green
Living next door to Alice
I have a dreem
Over and over
Once there was a love
Dust in the wind
Rain
Sad movie
등이다
하지만 팝송은 영어로 되어 있어 우선은 조금 쉽다고 할수
있지만, 샹송이나 칸소네는 아마도 만만치 않을듯 싶다^
너무 힘들면 한 두곡만 할 생각이다^
근데 왜 갑자기 익숙한 가요를 두고 팝송을 할라하시요?
물으신다면, 조금더 다양한 감성을 일깨우기 위한 시도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어차피 나의 청년시기를 관통했던 노래들
이니까~

 

 

청평에서

 

 

아랫 글에 서울대 나온 약사란 무엇인가?

 

에서 3회에 걸쳐 아주 약간 그 특성을 언급한 바 있지만, 약사만 그런게 아니고

서울대 나온 의사, 서울대 나온 판사, 서울대 나온 그냥  보통인,서울대 나온 공무원

서울대 나온 국회의원, 대통령, 등등 열거하기 힘들만큼 여러가지 다양한 타입의

인간 특성이 있읍니다^

 

그러나 하바드 대학 나온 약사, 하바드 대학 나온 상원의원,대통령 등 얘기가

흘러가면 조금 상황이 달라집니다. 왜냐면 하바드만 해도 입학생을 뽑을때

성적만 보지 않기 때문인데, 왜? 걔들은 성적순으로만 뽑지 않고 이것저것

다양하게 사람을 평가해서 뽑을까요?

 

거기다 그 평가란것이 공정성을 담보로 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인데,암튼

그들은 적어도 사회 저변에 깔린 이런 나름의 공정성은 유지하고있다고 보여집니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뽑고 싶어도 밑둥지 공정성을담보할 수 없이 아예 불가능 입니다.

암튼, 사람은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것 만으로는 좋은 품질이 될 수 없다는게 그들의

생각이고 그래서 하바드를 나온 졸업생과 서울대를 나온 졸업생은 동급으로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 같이 각자의 나라에서는 최고 학부라 할지라도 말이지요! 좀 미안한 얘기지만 이

부분에서는 우리가 역부족일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왜? 우리인들 하바드처럼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마는 될수가 없는것이지요~ 제가 하바드 대학을 지원해본 적도 없고

가 본적도 없지만 이제껏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그렇게 유추할 수 있고 해서

이런 글을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때 나온 얘기지만, 골프의 박세리 선수가 하바드를 지원했다면 아마도 입학이

됐을거란 얘기도 있었지요! 서울대학 같으면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에 불과

했겠지만, 우리는 공부 못하면 서울대 들어갈 수 없다는 고정 관념이 이미 이순신의

거북선 만큼이나 철갑을 두른채 머릿속에 모셔져 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러니까 중요한게 뭐란 얘깁니까? 인간의 품성 자질 가치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요소가 머리 좋은것, 암기 잘하는것, 논리가 우수한것 즉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공부

잘하는 것은 하나의 요소는 될수 있지만 결정적 변수는 아니란 얘깁니다.

 

상기 기능이 좋은 자가 상상력,추리력,창의력, 감성력, 공감능력 등등까지 갖추기는

불가능 합니다. 제가 단언적으로 말하는 이유는 인간은 상반되는 두가지 영역을 모두다

잘 수행하기는 매우 어렵게 설계가 되어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소위 공부

잘하는 능력이 출중한 사람에게는 그에게 필연적으로부족한 영역을 부단히 개발하고

노력하여 보충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공부 못하는 영역에 속한다

할지라도 자신이 보유한 능력을 꾸준히 지속 개발시켜 나름 완성의 경지로

가야하는 것이지요~그

 

런데 소위 공부 잘하는 학생은 자기가 뭐든 우수하다고 판단하는 결정적 오류를 가지고

있읍니다. 세상의 가치를 모두 공부하던 잣대로 결정짓습니다 그래서 고시 공부도 그렇게

패스하고 그 결과 고위 공무원이 되고 그 다음 정치에 진출하고 의원이 되고 결국 이제껏

이 나라에 특권층을 형성해 왔습니다. 그리고 공부하는데 특별히 누구의 도움을 받은것도

없으니 자연 자기 힘 만으로 성공하고 출세했다는 의식이 자리잡게 되지요!그 결과 지극히

당연히 자기 중심적인 사고, 개인주의자가 됩니다.

 

뭐가 좀 부족하고 어려워야 남들은 어떻게 하나? 누구의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닌지~ 또

그랫으면 나도 누구를 도와서 살아가야 하는지 등을 생각해 보게 되는데,그게 없게 됩니다.

세상은 나 혼자면 되는 것이고 남이야 살든 말든 죽든 말든 상관을 안합니다. 그러니 동창

이고 동문이고 커뮤니티의 일원이고 나발이고 다 멍멍이 짓는 소리로 들리게 되는것입니다.

물론 예외는 있읍니다.

다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소위 이 나라의 프레임을 결정하는 자리에 오른 다수의 인사들이 어떤 정책을 펼때 함 자세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왜? 저렇게 밖에 못하지?그런 의문이 들때가 없던가요? 왜 그럴까?

왜 그런게 아니라 상당 부분은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겟다 생각 되지요!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받은 혜택도 많지만, 그 바람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잃는것도 많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해도 마음에 들어 오지도 않읍니다. 한마디로 뭐가 문제인지를

분간을 못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원래부터 아예 그런 능력이 차단되어 있는거냐? 하면 당연 아닐겁니다. 인간의

능력이란게 사실 엄청 나니까요! 마음을 비워라! 낮은곳으로 임해라^ 경청해라! 입장을 바꿔

생각해라 이런 말은 전부 다 남과 함께 할수 없음을 과감히 타파하고 조금만 더 자신을 내어주고

시간적으로 물질적으로 조금도 손해볼 생각이 없는 마음을 접어두고 동참하는것 등등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출발이 어렵지 한 발만 내 딛으면 다음 부터는 쉽습니다.때로는 개인주의가 필요할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전체주의가 필요한때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둘다 없어야 좋을때도

있습니다.그러나 서울대 나온 인사는 개인주의를 상당부분 먼저 버려야 합니다. 버린다고

버려도 아주 조금밖에 못 버릴 것입니다.

거의 다 버렸다고 생각해야 아마도 30% 쯤 버린 결과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접어두고 전체가 동참하는데 참여한다는게 뭘 의미할까? 무슨 가치가 있다고

맘이 내키지도 않는데 참여를 할까? 이것은 서울대학을 나온 여러 분야의 사람들만 그런게

아니라 인간은 그 누구도 자기를 죽이고전체에 동참하는게 애시당초 다 힘든 일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참여해서 동질성을 확인하는가? 까짓 안 하면 그만이지! 뭐가 대수라고^

그러나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긴 글을 써가고 있는 중입니다

 


평창 무이 학교

 

결과적으로 그것은 당신이 현재 참여하고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깨어지지 않은

무의식적 개인주의를 일정부분 용해시키는 역할을 하게될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커뮤니티든지 즉, 지역 향토 모임이든, 중 고등학교 동창회든,종교 활동이든, 친척 모임이든

그런 모임까지 쏙 빠지고 홀로 살고 있는 건 아니겠져?

 

국가는 개인의 집합체이지만 거기엔 너무도 다양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읍니다. 지연,학연,혈연,

직장연,등등 그중에 학연과 지역연을 말하고있는 중입니다.결론적으로 서울대학을 나온 인사가

뿔뿔이 흗어져 길가의 잡초처럼 자라면 어떻게 된다? 지나가는 행인의 발길에 밟혀 존재 가치가

훼손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데 모여 꽃을 피우면 많은 이들이 지나다가 멈춰 꽃을 바라보고 기쁨을 느낄것입니다.

더 좋기로는 세상의 프레임을 바꾸는 역할을 해주면 금상 첨화일테지요.

 

함께 모여 꽃을 피우는게 바로개인주의의 타파요 동질성의 회복이요 좋은 가치의 공유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개인주의만도 전체주의만도 아닙니다. 두가지 가치가 함께 융합해야 살기 좋은 세상이

됩니다.

 

(이 글은 서울약대 수원동문회 카페에 올렸던 글입니다)

 

제천 E.S 리조트

     

숲,이러니,누구는 대뜸 이렇게 말한다. 

 

"아! 우리 동네도

숲으로 둘러싸여 있음다. 공기가 기가 막히고 새 울고 좋아요^" 

그래?  어딘데요~~ , x x 동이요!  

 

물론 나름 자그마한 숲일지라도 옆에 있다는 것은 크나큰

복락이라 할 것이다^ 

 

숲이 어느 정도 제 기능을 발휘하는 산맥과 연결되어 있나를 보려면

일단 다음 지도를 보면서 위성 사진을 보고 판독해야 비교적 정확하다. 이

동네가 어느 산으로 연결되는지,주변에 어느 정도의 삼림이 에워싸고

있는지,그저 도심으로 둘러쳐진 중에 빼꼼하게 나무가 고립되어 자라는

곳인지,등등 

 

중학교 친구중 하나의 카카오 스토리를 들쳐 보니 자기집 베란다에서 멀리

시야 가림이 없이 K 마운틴 숲이 보인다고 올려 놓았다. 물론 K 산은 꽤 

큰 산이긴 하지만,이 산은 완전 고립무원의 도심에 홀로 서 있는 산이다. 

주변 어느 산 과도 연관이 없다. 북한산과 연결된 것도 아니요 청계산과 

연결이 된것도 아니다. 거기다 주변 안양,과천 신림동,독산동,인덕원으로 

철저히 도심으로 둘러쳐 있다. 산으로 들어가면 숲만 보이겠지만 위성

에서 보면 도시 중앙에 박힌 숲인 것이다. 물론 조선 말기 정도만 해도 

주변의 수리산,청계산과 어느정도 연결이 되어 있었겠지만,

 

물을 따질때 1급수,2급수,3급수로 나눈다. 3급수 이하는 물도 아니라

거론조차 안한다. 3급수에는 잉어같은 무딘 고기가 살고 1급수에는 꺽지,

열목어, 산천어,이런 놈이 산다. 피래미는 2급수에 산다. 3급수에 사는 놈을

 1급수에 가져다 놓으면 물론 못산다. 먹을게 없기도 하고 지저분한 물이 맞는

 녀석에게 너무 깨끗한 물은 맞지를 않아서, 

 

그럼 사람도? 1급 공기,2급 공기,3급 공기가 적용 될까?  사람은 

 3급 공기에 늘상 살다가 1급 공기에 가면 잘 살지만 1급 공기에 살다

3급 공기로 가서는 못 산다. 물론 고기도 마찬가지지만, 

 

아주 예전 한 50년 전 쯤인데,내가 고등학교때 하숙하던 주인 집에 누나

뻘인 분이 간호사로 미국으로 가서 살다가 가끔 한국에 오는데, 이런

얘기를 했다.

 

'김포 공항에 내리면 목이 탁 맥혀서 ' 숨이 막힌다고

 

당시는 그게 무슨 얘긴지 통 감이 오질 않았다.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서 이륙 할때와 김포공항에 착륙해서의 공기 차이가 그 정도로

확연히 다르단 얘기였다. 그 정도로 우리나라 공기가 나쁘단 말인가?  

그 얘긴 그 이후로도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외국에 살다 온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그런 얘길 했으니까,  

 

이미 50여 년 전에 벌써 한국의 공기는 그 수준이었다는 얘기다. 우린 뭐

이런 나라에 살아서 뭐가 뭔지 분간도 못한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셈

이지만. 그냥 3급수 같은 공기에 적응이 된거다. 그건 숲의 중요성을 

미처 모르고 나무를 가꾸긴 했지만,미국같은 선진국에 턱없이 부족했다,

뭐 그런 얘기라 할까!  

 

'사람이 공기만 먹고 삽니까?' 이렇게 말하는 분들과는 얘기 자체가 안되

지만  전반적으로 공기의 질이 떨어지는 한국이라해도,그래도 좀 나은데는

있단 말씀이다. 물론 먹고 살만 하니 공기의 질이 어쩌고 하는 건 맞는 말

이다. 먹고 살기 힘든데 공기 운운하는 건 일종의 사치란것도 잘 알고

있다. 

 

도심에 쌓인 변변치 않은 숲과 산으로 연결된 진짜 숲 정도는 구별해야 

겠지만, 진짜 숲이 없으면 부실한 숲에서라도 위안을 찾아야하고^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은 인공 숲이라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도심에 많은 

숲을 조성해서 매연에 찌들은 백성들을 조금이나마 구해내야 한다. 이

매연을 이기고 평균 80-90세를 사는 이 나라 국민이 참 위대하지 않은가? 

 

매연이 심해도 땅의 기운이 좋은건지,  

 

 

어쨋거나, 이 나라에 참 숲에 사는 많은 분들은 복받은거다. 그건 당연

도심과는 거리가 좀 먼 곳일게다. 아무리 자동차 매연이 하늘을 덮어도

참 숲까지 다 오염시키지는 못한다. 숲과 땅은 그럴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게 자연의 위대함이다. 어차피 매연도 자연에서 나온것이기는

하다. 질량불변의 법칙은 성분 불변의 법칙도 포함하는게 아닐까? 

쓰레기 매연,폐수도 결국은 자연으로 부터 유래한 것이다. 무에서 

유가 창조된 경우는 어떤 경우도 없다. 유독 21세기에 인간은 나쁜 

물질을 대량 생산했다. 그 결과 지구가 앓고 있지만,그렇다고

지구가 죽기야 하겠는가? 

 

시골이라고 공기가 다 좋은 건 아니다. 숲이 없으면 그저 그런 공기

를 마실뿐이다. 그러니 가급적 숲이 많은 동네에서 살자. 다가올 

시대는 숲과 좋은 공기의 시대가 될것이다. 지금처럼 학군이 좋고 

교통이 편리한 곳이 1순위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머지 않아 숲 좋고

환경 쾌적한 곳은 뚫고 들어가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제 이만큼

오염된 도심에서 살았으면 됐지,

 

뭘 더 얼마나 그렇게 살 것인가? 

 

 

 


평창 허브나라

 
--이상은 2015년 6월 전후해서 작성했던 글입니다--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정든땅 언덕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나가 길쌈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 보련다

 

서울이 좋다지만 나는야 싫어

흐르는 시냇가에 다리를 놓고

고향을 잃은 길손 건너게 하며

봄이면 버들피리 꺾어 불면서

물방아 도는 내력 알아 보련다

 

작사-손로원 작곡-이재호

 

 

 

이 노래는 흔히 재산도 명예도 무엇도

다 잃은 사람이 고향 초막에 돌아가 무념

무상으로 욕심없이 사는 모습을 노래한것으로

다들 알고 있는 그런 노래입니다.

 

 

그런데 작사가 손로원 선생이 왜? 이런 가사를 썻을까?

그것은 바로,숲에 들어가 새들이 우는 소릴 자주 듣게되니

조금씩 이해가 되는듯 합니다.

 

 

이제 며칠 지나지도 않아 너무 이렇게 글을 쓰는게 좀 뭣하긴 하지만

암튼,그 며칠 새에 느낀 바로는 새들이 왜? 우는지

 

저 가사에도 나와 있지만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 보련다

라고 했잖어요?

 

 

새들이 왜 우는지를 생각해 보면서 이 노래가 떠 올랐고

그저 그런 낙향자가 부르는 노래로만 알았던 이 노래가

그런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단

말씀입니다.

 

 

사실 벼슬이 뭡니까? 서울이 뭡니까? 잘먹고 잘살자는

그것 아니던가요?

해서 서울로 서울로 명예와 벼슬을 찾아 아둥바둥

공부하고 자격증 따고

부동산으로 뭘로 돈벌고,위장 전입을하고 별 짓을 다하며

살아온 이들이 수두룩한게 이 나라입니다.

 

 

그런데, 뭐, 그결과 어쨋다는 겁니까.

 

저 가사처럼 살기는 어렵다 치고 저 가사대로 사는게

인생 최고의 복락이다~ 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허투루 들었던 옛 노래 하나에서 새로운 걸 발견한 느낌입니다.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보는 것도 새들이 우는 소리가 들려야

하는 게지요. 오염된 공기를 마시는지도 모르게 살면 그뿐^

 

신선한 청량한 공기값을 대체 하루에 얼마로 쳐야할까?

라는 허튼 생각이 듭니다. 하루 만원이면 1년 365만원

4가족이면 1500만원..10년이면 1억5천만원,,

 

 

사실은 그 보다 더 값이 나갈겁니다.

 

물방아 도는 내력까지는 알아볼 방법이 없지만,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하루 일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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