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요즘은 산중의 주말 농장에서 따오는 상추가 없으면
식단이 허전함을 느낀다. 상추 맛을 제대로 알면
그렇게 된다는데,
 
매일 앞산을 오르기도 그렇고,오늘은 좀 쉬자. 근데,약국
에서 점심에 먹을 상치가 없구나. 8시 00분,
안되겠다.
농장에 가서 상치와 고추,오이를 좀 구해 오자.
 
아들을 데리고 집사람을 대동하여 부랴부랴 올라 간다.
농장 주인 할머니는 벌써 오셔서 일하고 계신다.
 
 

 

부지런히 상치를 딴다. 딸이 맛이 있다고 한 상치를

우선적으로 더 많이 딴다. 도라지 밭에는 이제 집단으로

꽃이 필 채비를 하고있다. 전부가 보라색 꽃인듯하다.

 

상치를 전자 저울에 달아 보니 3000원 어치다. 먹을 만큼만

따면 된다. 오이와 고추,전부 합치니 1만원이다.

 

이제 할머니는 우리가 반가운듯하다. 자주 가니 그렇기도

하고,이집 살때 계약했던 부동산 아저씨가 키우는 주말농장

텃밭이 할머니가 분양한 농장 바로 입구에 있다. 아저씨는 자기네

텃밭의 상치를 언제라도 가서 그냥 따 먹으라 했다는데,

 실제로 가 보니,

 

상치가 별로 없다. 흠,그래도 그 맘이 어디냐^ 시골이니

가능한 얘기지.

 

쓰고 갔던 모자를 아들에게 집 입구에서 건네고 바로 지하로

가서 차를 몰고 약국으로 달린다. 출근때는 신호가 잘 안 걸

린다. 금세 도착한다.

 

분당 정자동의 마태오 성당 형제회 카톡방에다 이런 글을 올릴까?

생각도 했지만 접는다. 15년 분당 생활에서 유일하게 몇몇

아는 사람이 성당 사람들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

지는 법, 이사 가면 그 뿐이다.

 

그나마 다른 동네보다 공기가 좋다고 여기며 사는 정자동

사람들에게 굳이 이 동네의 공기가 이렇네 저렇네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공기라는거,그거 마셔 보지 않은사람은 몰라^ 설악

산에 사는 사람이 우리동네 공기좀 마셔 보러 오시요~

 

이렇게 광고하지는 않잖아?

 

우리 앞 동에 자라고 있는 담쟁이 덩쿨

 

 

 

아들과 함께 쓰레기 분리수거하고 들어오다 앞동의 저 담쟁이

덩쿨을 봤음다. 일단 보기 좋아요. 마치 유럽의 어느 고성을 보는

듯허고,

 

헌데,즉시 마음이 바뀝니다. 저거이,만일 벽을 새로 페인트 칠을

하면 어떻게 하지? 다 잘라내야 하나? 뭐,이런 생각이,그리고

아무래두 벽체를 타고 오르니 뭔가 시멘트에도 균열이 생기지

않을까?

 

그러니 담쟁이가 다 좋은건 아니지 않느냐?

 

그렇군요. 세상 뭐든 다 좋은것만은 없읍니다. 그렇다고 다

나쁜것만도 없읍니다.

 

오늘 아침에는 유달리 새가 많이 지저귑니다. 까치부터, 비둘기

뻐꾸기,직박구리,멧새,등

 

근데 새는 왜 아침에 울지? 생각이 미치자,

글쎄..입니다.

 

그런거 생각해본적이 없으니,새는 그냥 우는가부다했지,그게

왜? 아침에 우는지,무슨 이유로 그러는지,아침이 됐다고 환호

하는 건 아닐거 같고, 서로 부르는 신호도 아닌거 같고,암튼

그렇게 아침부터 한낮을 지나도록 울고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면

잠잠해 집니다.

 

제 집을 찾아 자러 가는 거지요. 어두워지면 벌레 같은것도

보이지 않고, 그러니 나무가지에 앉아 쉬며 밤을 보내는

거겠지요. 하늘을 나는 새도 둥지가 있고 여우도 제 굴이 있는데

인자는 세상에 머리 둘곳이 없노라.. 하신 예수님 말씀이 갑자기

뜬금없이 생각이 납니다.

 

요즘 약국에서 집에 오면 밤 늦도록 그저 창가에 앉아 시원한 공기

마시는 게 일상이 되었읍니다. 그렇다고 묵상을 즐기는건 아니고 그

냥 쉬면서 청량한 공기 마시는게 더 없이 좋읍니다.

 

테레비도 잘 안 보게 되고 신문도 이사 오면서 끊었지요. 뭐 제대로

기사가 실리지도 않는 신문,안 봐도 사는데 지장도 없더군요.

 

이제 좀 정리가 되면 뭘 하나~고민중입니다. 밤 10시부터 1시간

정도 매일 공기만 마시고 지내기는 아까우니..

 

 

 

 

 

2015년 6월에 15년 이상을 살았던 분당을 떠나

용인으로 왔습니다. 당시 느낌을 적어둔게 있어

3년이 흘렀지만 다시블로그에 올려볼 합니다^

 

 

 
 

 

15년전 분당 첨 이사와서 보았던 청매화는 이제 너무
키가 커졌다.
꽃은 하늘 높이 매달려 있다. 땅으로 내려온 가지중에
하나를 찍어 본다.
약수물도 거의 한두방울씩 떨어 진다. 허긴 15년이
흘렀으니 많이 크기도 했지.

 

청매화의 상콤한 향이 주변을 맴돈다. 어.. 상쾌 유쾌 통쾌다.
그 말은 이럴때 쓰는 거다.

 

 

 

 

그리고 그 옆에 이제 막 피어나는 진달래,역광에 빛나는 청초한
저 자태,

 

아효,, 오늘 어쩜 이리도 때를 잘 맞춰 왔을까??
봄의 신령한 기운을 유감없이 맞닥뜨릴 수 있었다.
지난 15년간 단 한번도 이렇게 봄의 문턱을 만나지 못했다.
대개 봄이 지나 가거나 꽃이 다 피어 버리거나 그런후 여기를
찾았었다.

 

헌데, 이걸 보고 나니 비로서 난 분당을 떠나는구나^
이 동네 와서 최고의 자연과 풍경과 꽃과 낙엽을 선물 받았던 분당^
그래서 사는데에 한톨의 부족함도 아쉬움도 없었던 동네^
천당 아래 분당을 정말 누구보다 깊이 느끼던 동네,
이제 이곳을 나는 얼마 안 있으면 떠나게 될듯하다.

 

아마도 그리웁겠지. 벚꽃 흐드러진 탄천 변과 중앙공원 앞을
다시 찾아오게 될까?
연분홍 산철쭉이 쭉쭉 피어나는 중앙공원 숲을 다시 보러 오게 될까?
가을 단풍의 매력을 생애 처음으로 가르쳐준 열병합 발전소,
느티 마을을 다시 찾으러 오게 될까?

 

  그래 내가 분당 정자동 최고 중심가에 살면서 늘상 그리워 하던곳이
바로 그런곳 아니었을까?
그래,이제 좀 힐링이 필요한 그곳으로 가는거야^
분당의 초 봄을 이렇게 처음으로 푹~느끼니 이제 떠날때가
오고 말았다.

 

인생이란 늘상 그런거 뭔가를 알면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거.
그러나 별로 아쉽지는 않다. 왜냐면 난 이동네서 느낄 수 있는거
해볼 수 있는거 거의 다 해봤으니까.
사실은 진작에 떠났어야 한다. 그럴 향편이 못되어 눌러 있었을 뿐이다.
이제 새로운 동네에서 새로운 자연을 만나고 새로운 느낌으로 살 것이다.
이제껏 분당을 찬양했던 것처럼그 동네를 찬양하고 즐겁게 살 것이다^

 

 *       *
(윗글은 지난 2015. 3월 말에 집 계약을 하고 당시의 소감을
적어뒀던 일부입니다. 아랫글은 이사 와서 작성한 글이고요) 
  

 

그러나 시골태생인 나는 언제나 자연을 그리워하는 본성이 있었다.
십 수년 전에도 전원주택의 꿈을 안고 수도권 인근을 기웃 거렸다.
사실그 당시는 여건이 맞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결국 그 꿈은 접고
말았지만 자동차 소리 소음이 주류를 이루는 다운타운에서의 삶이
많이 피곤하고 지친건 사실이다.
성냥갑같은 고층 아파트에서 벗어 난다기보다 아주 조금은 해방된
공간에서 살고 싶었다. 너무나 익숙한 자동차 소음소리 마치
소음이 반주곡인양 그것이 습관이 되어 사실 별 거부감도
없게된 게 아닐까? 

 

 

이사 온 단지 앞쪽으로 본 전경  

 

 
자동차 소리가 들리지않는 집,
내가 1982년 9월 잠실 주공 5단지 고층 아파트에 방 하나를
얻어서 독신으로 시작한 첫 아파트 생활 이후 33년이
흘렀지만 언제나 자동차 소음은 내 친구였다. 창문을 닫으면 그런대로
버티지만 열면 들리는 우렁찬 소음^ 결국 인간이 자연에서 멀어지는 첫
째 요인은 바로 이 자동차 소음인 것이다. 전혀 자연과는 거리가 먼 인간
이 만든 소리이기 때문이다.

 

 

암튼, 그래서 지금 이사온 이곳은 과연 어떤가? 우선 층고가 저층이기
도 하지만 자동차 소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문을 열면 오직 새소리와
어린이들이 뛰노는 재잘거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릴뿐이다. 뻐꾸기,비둘기,
까치,직박구리,소쩍새,등이 돌아가며 울어 댄다. 워낙 밖이 조용하다 보니
실내의 냉장고 소리가 크게 들린다. 그렇다! 소음은 오직 그 소리 뿐이다.
그렇다고 저곳이 무슨 고급 단독 전원주택 같은 곳은 전혀 아니다~ 그저
수수한 단촐한 타운하우스 이다^

 

 
"새 소리가 밥 맥여 줍니까? 쳇^ 까짓 소음이 뭐 그리 대수라고^ 우린 그런
거 전혀 개의치 않읍니다. 누구 약올리기요? " 이러실 분도 물론 없으면
이상한게 이 나라다. 그래~ 새소리의 가치를 그 누가 얼마로 매길 것인가?
 
아침 5시에 눈을 떠 창문을 여니 역시 새소리 부터 반긴다.
온갖 숲의 내음이 코를 찌르는 아침에 새소리를 고요히 듣고
있자니 과연 이 숲과 고요와 새소리와 맑고 깨끗한 이 공기의 값을
얼마를 매기면 될까? 생각을 하게된다. 아니 값을 매긴다기 보다 숲과 새
의 가치는 무한대라해도 부족함이 없을 지경이다. 난, 대체 이 나이 먹도
록 무슨 삶을 살았단 말인가? 내가 추구한것이 고작 정자동의 이름난 주상
복합이란 말인가?
 

 

거기 살땐 그 아랫지역 같은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뿐 아니라 강남
보다도 훨 좋다고 생각했다. 강남은 탁한 공기가 가슴을 짓누르는데 반해
신분당선을 타고 정자역에 내리면 공기 자체가 완전 달랐기 때문이다.지하
주차장엔 수입 차가 반 이상을 차지하던 그런곳이다. 그러나,

 

 
내가 정자동에 사는것과 이 동네에 사는것의 비교를 할 필요는 전혀 없
을것이다. 거기는 거기대로 여기는 여기대로 다 존재 이유가 있으니까.
다만, 33년만에 느끼는 이 고요와 해방감과 편안함과 충만함은 지금껏
살아오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숲으로 가라는 쏘로우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그것이 가끔이 아니고 일상이 되었을때의 그 의미를
앞으로는 조금 잘 알게 되지 않을까?

 

 
인생은 결국 선택이라 말할 수 있겠지. 어디에 사는것도 결국은 선택
이다. 어떻게 사는가는 더더욱 나의 선택인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던
그건 개인의 자유다. 나처럼 시골 태생은 이곳을 택한것 뿐이다. 그것도
완전 자유 의사가 아닌 어쩌면 약간은 반 강제적인 경로로 말이다. 그러나
그 반 강제적이었던 그 이유가 이렇게 나를 자유롭게 하다니^
 

 

 

아침에 일어난 아들이 말했다.

 

"지금까지 이사해 본 집 중에 제일 좋은곳
같아요^ "
 

 

그래? 그러면 됐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집에만 오면 습관적으로 틀던 TV
를 켜고 싶지 않다. 그냥 조용히 새 소리에 집중하고 싶다. 그동안 멀리하던
책도 좀 볼 수 있을까? 음악도 조금 더 듣게 되지 않을까? 나는 살면서
거의 한번도 닦지 않던 가구들을 수건으로 열심히 먼지를 닦고 있었다.
 

 

웬지 짓눌려지지 않는곳, 사람과 학생과 어린이가 많이 돌아 다니는곳!
정자동에 비해 웬지 삶의 활력이 느껴지는 수수한 동네~ 아들,딸도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대나무 돗자리를 깔려고 했으나 너무도 시원해서 실크양
탄자를 다시 거실에 깔았다.분당 밑으로는 절대 내려갈 수 없다고 버티던
집사람도 언제 그랬냐는듯 완전 만족한 표정이다.
 
이사에 지친 몸이 좀 풀리면 아침에 저 옆으로 산을 함 올라봐야지^
오늘 일찍 일어나 보니 산기슭으로 뿌연 안개가 자욱히 끼어 있었다.

 

이쯤되면 크게 후회할 선택을 한건 아니겠지?
 
 

 

2015,6.18 아침 둘러본 인근 경작지의 도라지,오이  

 
 
아! 자연이여^ 숲이여^ 바람이여^ 새소리여^
향긋한 땅의
냄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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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 1년에 한번 가는 수원동문회 야유회^

거센 비가 스쳐 지나간 평창은 청명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소나무 낙엽송 잎들은 마치 린스를 발라 놓은듯 반짝이고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은 비취빛이었는데,

그 맑기가 형용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푸르디 푸른 나뭇잎과 맑디맑은 계곡수를 보는것 만으로도

이미 오장 육부는 씻어진거다^

 

도시의 매연과 때에 찌들은  우리 몸과 마음이

한번에 세탁되다니^ 

자연은 위대할지어다!!

 

 

 

그보다 더 좋은건 여러차례 함께 다니다 보니 이젠 스스럼이  없어

어려움이 내재할수 밖에 없는 선후배 사이가 좁혀지고 

이런저런 농담도 되고 웃음도 뒤따르니 어찌 이런 야유회를 

마다할 손가?

 

열일을 제쳐두고 따라 나서야 하지 않겠는감?  28인승 럭셔리 관광버스에

비행기 1등석 못지않게 의자를 뒤로 제치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가 된다~ 

모름지기 여행은 이런  버스로 할찌어니! 

 

봉평은 허브나라에 비하면 거의 속세에 가까웠다.

사람들 발길에 길에선 뽀얀 먼지가 날렸다.

 

 

 

봉평 초등-경기 중고-경성제대 영문과를 졸업한 수재중의 수재

그런 그가 어떻게 저런 서정성의 최고봉에 자리하는

메밀꽃 필 무렵을 썻을까?  봉평이란 동네 때문일가? 

 

1920-30 년대의 봉평이라면 능히 그럴만도 할것이다^ 

콩크리트 아스팔트의 도회지에서 유년시절을 자라서 무슨수로

그런 글을 쓸수 있을까? 

 

여럿이 하는 여행은 그 때문에 좋고

혼자하는 여행은 또한 그 때문에 좋다^

 

 

 

이제부터 가을이다^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손짓하는 자연으로 돌아가자^ 

누우런 벼가 고개숙인 들판으로 달려가 보자^ 

석양에 반짝이는 날개를 휘날리는 잠자리를 만나러

들판으로 가 보자^

 

뽀오얀 아침 안개속에 늦잠을 자고 있는 메뚜기를

만나러 논으로 걸어가 보자^ 그

 

리고 무엇보다 단풍과 낙엽을

 

만나러 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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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가 다 익은 논둑길도 좋았지만 실상 5월 초에 모내기를 하면 

6월 넘어 중순쯤 벼는 상당부분 키가 자라게 된다. 온 들판은

새파란 그린 칼라로 뒤덮힌다^ 초록의 들판에 그러나 장마가

진다. 

 

6월 중순 이후의 여름 장마다~  넘치는 물은 큰 개울을 덮치고

방파제를 넘어 들판을 뒤 덮기도한다. 청미천 물이 일죽 들판을 

뒤덮으면 며칠씩 교통이 두절되기도 했다. 길을 건너 학교에 갈 

방도가 없었다^ 

 

그런데 그 장마가 지면 논둑길과 수로에는 송사리 떼가 창궐을

했다. 송사리를 잡는 방법은 얼게미라는 걸 가지고 물이 흐르는 

반대 방향으로 대는 것이다. 얼게미를 대놓고 손가락을 살짝 철사

망에 대고 있으면 송사리가 흐르는 물을 거슬러 위로 올라가다 철

망을 치는 느낌이 온다^ 그렇게 해서 한 마리 두 마리 열 마리 송사

리를 잡는다. 잡은 송사리는 금세 죽는다^  초여름 풀을 먹고 자란

송사리는 실상 맛이 쓰다^ 너무 작아서 배를 따고 끓여 먹기가 어

려워 그냥 졸여 먹는다. 

 

장마철 학교 끝나고 집에오면 송사리 잡는데 나머지 시간을 다 바쳤다

비가 많이 내리면 송사리뿐 아니라 붕어들도 물을 쫓아 오르내리는데

어느날 집으로 오다 동네 앞 200여평 되는 풀밭을 지날때였다^ 

 

커다란 붕어들이 허연 배를 드러내 놓고 풀밭속에 퍼덕이는게 보였다

기껏 송사리만 잡던 나에게 이건 엄청난 일이었다^ 얼른 집에가서

얼게미를 가지고 와서 풀밭을 훓었다. 붕어는 끝이 없이 나왔으니

그날 잡은 붕어도 상당량이었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붕어를 공짜

잡는 횡재를 한것이다^ 

 

 

 

초여름 붕어를 잡을때는 저렇게 파란 벼가 자랄때이다^ 장마철

송사리를 잡을때도 물론 저렇게 녹색의 들판일 때이다.

 

어릴적 시골서 자란 이들은 아마도 이런 글이 조금은 공감이 갈

것이다^ 지금이야 기계로 모내기를 하고 기계로 벼를 베고 기계

에서 탈곡을해서 사람의 손이 거의 안 가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의 손으로 농사를 짓던 그때는 논과 벼와 논둑과 그것들이 어우

러져 수많은 추억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벼를 다 베어낸 논에서도 스토리는 계속

만들어졌다.

 

 

겨울이면 얼음이 언 논 한편에서 삽으로 흙을 퍼내어 미꾸라지를

잡았다. 비교적 좀 큰 논에서는 얼음위에서 팽이치기,설매타기

를 하루 종일 했었다. 이래저래 논은 정말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인간에게 더없이 유익을 주는 장소였다.

 

논둑길에 못지않게 밭둑길에 얽힌 추억도 많다^

 

논둑 밭둑 작은 동산, 마당, 동네 뒷담, 초가집, 수수밭,보리밭,

개나리,진달래,미류나무,우물가,들깨 냄새,아카시아 나무 냄새,참나무,

소나무,참새,촉새,하얀 눈, 소낙비, 장마비,비닐우산,우비,도시락,

책가방,모래갱변,개울가의 갈대,고구마,땅콩,,, 끝도 없이 떠오르는

기억들^ 하나하나에 몇가지씩 딸린 글을 써도 모자랄 판이다!

 

 

그렇게 유년시절을 보냈던 나의 기억들^ 불과 십여년의 추억이

이렇게 방대하다^ 누가 뭐래도 그 추억들은 나의 보물창고 임이

분명하다

 

 

그 논둑길을 보며 시골길을 달린다^ 저수지에 담긴 물보다 더

많은 나의 기억들을 꺼내면서 들판을 바라 본다^

 

 

아! 그 누가 공감하는이 있어 나와 같은 마음으로 저 들판을 바라

볼까?

 

 

 

논둑길 글을 쓰다 잠시 다른 얘길 하는 바람에 맥이 끊기고

말았다^ 이제 다시 이어본다~

 

논둑길은 직선길이 아니다^ 여기서 저기 빤히 보이는 길을 가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질러 갈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 생각에는

그 옛날 걷고 또 걸었던 일죽의 들판 논둑길이 떠오른다^

 

논둑길이 끝나면 방파제처럼 꽤 높이 쌓아진 둑이 나타나고 그 둑을

따라 한참을 걸으면 우리 모래밭이 나타난다^ 이미 그 둑에 다달으면

마치 뒷동산같은 느낌이 들만큼 갈대며 딸기 나무가 듬성듬성 자라고 있

었고 잠시 쉬어 가도 좋을 만큼 잔듸와 흙이 깨끗한 모래로 되어 있었다^

 

서울 살던 이는 덕수궁 돌담길이나 남산 옆길 이런곳을 떠올릴 테지만

나에겐 우리 밭을 가던 바로 그 논둑길이 마치 거미줄처럼 눈앞에

떠오른다^

 

그러면 그 논둑길이 과연 무엇이었단 말인가? 그냥 길인가?

논둑길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공존했다^ 논에 자라는 풀들이 우선

있었고, 벼가 있었고, 논에 서식하는 개구리가 있었고, 송사리

붕어,미꾸라지가 있었고 또 그것을 잡아 먹으려는 백로, 두루미,

뜸부기가 있었다^ 그리고 뱀도 있었다^

 

그 논둑길을 걷는건 단순히 길을 가는게 아니었다^ 수많은 생명

들과 마주치는 길이요~ 논둑사이로 졸졸 흐르는 깨끗한 물과 마주

치는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논에서는 벼 특유의 향기가 있었

다~ 논에서만 맡을 수 있는 냄새^

 

 

 

벼가 풍성하게 자라고 있는 남의 논을 가로질러 갈라치면 왜?

이 많은 논중에 우리논은 없을까? 아쉬워 하기도 했다. 기름진 평야

에 있는 논은 벼도 튼실했고 가을에 쌀맛도 유달리 더 좋았기 때문

이다^

 

발에 전해지는 푹신한 흙길의 감촉^ 메뚜기가 내 앞에서 끝없이 날라

가는 논둑길^ 학교 갔다 오는 초가을쯤 되었을까? 어디선가 붕어가

물이 적어지면 내는 소리가 들렸다^

 

' 두두둑~두두둑~ 치지럭 치지럭'

 

직감적으로 어딘가 붕어가 몰려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찾아 들어가니

어느 논 구석에 붕어가 떼를 지어 마지막 남은 물을 의지해 몸

부림치고 있었다^ 책보 하나만 메고 온 터라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

가 그릇을 들고 다시왔다^ 저토록 붕어가 물이 말라 소리를 내는데도

아직 아무도 그 근처를 지나간적이 없는거였다^

 

힘 안들이고 붕어를 한 바가지 이상 잡아 집으로 갈때의 그 통쾌함^

뿌듯함을 아직도 기억한다^ 만일 지금이라면 그 붕어들을 근처 웅뎅이에

놓아 주었을까? 허나 그 당시엔 붕어도 귀한 먹을거리였다^

 

들판에 벼가 이제 막 자라날때는 벼 포기가 포물선을 그리며 마치 손

바닥을 벌리듯 퍼진다. 그 퍼진 벼끝에 아침 이슬이 영롱하게 맺힌걸

보신적이 있으신가? 안개가 약간 덮히면 더 기가 막히게 멋지다^

해가 중천에 올라오면 이슬은 사라진다^

 

벼가 조금더 자라면 벼 잎새는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팔을 뻗는다

그렇게 한참을 유지하다가 꽃이 핀다^ 그 다음에는 벼가 열리고 곧

이어 고개를 숙인다^ 지금 8월 하순 정도면 온 들판의 벼는 누렇게

익어갈 것이다^ 처서가 가까울쯤 되면 농부들은 논둑의 풀을 마지막으로

벤다. 잡풀에 엉켜 잘 지나 다니지도 못했던 논둑길 풀이 베어지고 나면

논둑길을 다니기가 훨씬 수월해 진다.

 

위 사진처럼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인 논둑길을 아침 저녁으로 걸을라

치면 금세 바지가랑이가 이슬에 젖는다. 정강이로 전해져 오는 축축함

을 느끼며 논둑을 걷는다^ 주로 저녁 메뚜기를 잡을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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