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하얗게 쌓인 묘코산 고원에서

생각에 잠기노라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순 없다고 모두들

말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눈을 머리에

이고 산다~

 

겨우내 얼마나 눈이 많이 왔으면 어른 키의

두배 가까이 눈이 쌓였을까?   열흘에 한번이나

했살이 들었을까?

 

범죄와의 전쟁, 무엇과의 전쟁 얘기는 자주

들어왔지만  눈과의 전쟁은 이들의 일상일터~

눈이 전쟁 만큼이나 고달프지 않았을까? 

 

 나그네의 눈에 비친 쌓인 눈은 신비롭고도

멋지다^ 이 고원에 높이 쌓인 눈은 줄기차게

냇물을 만들어 흘러 내려 니가타 평원을 적신다 

 

스키야 말로 완전 자연이 주는 천혜의 선물이다

풍성한 나무 사이를 뚫고 달리는 스키의 상쾌함

하얗게 쌓인 눈은 그 어느것보다 몸과 마음에

 힐링을 선사한다

 

달빛 별빛 아래 고요한 묘코고원의 창가에 앉아

지난 어린시절을 회상해 본다. 그때도 이렇게 하얀

눈에 달빛이 흐르고 바람 소리가 휘익하고 울렸다

 

높은 산 아래 사는 사람들은 순수하다. 강원도 사람들이

순박하고 착한것은 그 어느것 때문이 아니라 바로 높은 산

때문이다. 강원도는 1,000미터 묘코산은 2,000미터 이상^

 어느쪽이 더 인심이 좋을까?

 

허나 3,000미터 급엔 사람이 살기가 어렵다. 캐나다 록키가

그렇다. 무작정 높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사람도 별로 없고 고원지대인 이곳^ 아마도 여름에 오면

 더 좋을지 모른다. 묘코의 고원은 이렇게 급작스럽게 왔다

 홀연히 떠나게 되었다.

 

아아~ 언젠가  1월쯤에 다시 와 볼 수 있을까?

 

(2019.3. 1 밤에 )

아래에 간신히 영상으로 만들어 오오가와의 박달재를 올려 본다
그가 번안한 가사는 이렇다^ 들어 보시고 평가를 하시면 좋을듯
하다

 

大川榮策의 울고 넘는 박달재

 

 

天登山 朴達峠 涙で 越えたよ

천등산 박달재를 눈물로 넘었다오 

あの娘 かわいい 비단(の)저고리

그녀의 사랑스런 비단 저고리

 恋に ひとすじ 女の運命 

사랑에 한결같은 여자의 운명 

せめて なかよく 暮しておくれよお

어떻게든 사이좋게 살아주시오 

 

天登山 朴達峠 なきなき 越えたよ

천등산 박달재를 울어울어 넘었다오 

山のかけすも 後追い鳴いた 

산까치도 뒤따라오며 울었어요 

風に ひらひら 蝶々のように     

바람에 나부끼는 나비처럼 

翔んで おゆきよ こいしい あの人に 

날아 가려무나 사랑하는 님에게로

 

 天登山 朴達峠 流れる 雲よ  

천등산 박달재를 흘러가는 구름아

無事に あの娘を とどけてほしい

무사히 그녀를 데려가 주려므나 

こんど いつ また あの娘に 逢える

언제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있을까 いつも 明るく 咲いてて おくれよ 

언제나 환하게 피어 있어 다오

 

 

 

아래는 주현미가 부른 울고넘는 박달재이다
심플한 반주지만 기품있고 노래가 잘 살아나는 그런 멋진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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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아가씨 / 春江

동백이 이자 많이 져부럿겠지?
12월부터 핀다는데~ 벌써 2월도 반은 지나갔잔어!

동백은 뭐니해도 남도의 꽃인디~
내 어릴적부터 동백이란 꽃은 본적이 없으니께
중부 이북 경기도 서울 강원도에선 그게 남이지~
본적두 없구 만져 본적두 없구 피는건 더더욱 모르니깐!

그런데, 눈이 펄펄 내리는데 피는것두 요상허구
암튼 얼음이 꽁꽁 어는 한 겨울에 피는 놈이
동백 말고 뭐 또 있소까?

매화가 눈 속에 핀다 허나 동백만 하것소!
글고 그 꽃 이쁘기가 아예 비교도 안되쟤
아~ 흰 눈에 붉은 동백이 멋지요? 흰눈에 흰 매화가
멋지요? 말해나 마나지~

그런데 옛 조상들은 뭐 그리 매화가 조타구 그 난리를
피우구,, 동백은 말여 시 한수 그림 한장 남겨논 인간을
본적이 없다니께! 참~
뭐 사대부는 툭 하고 떨어지는 동백을 멀리해야 한다는
미신 같은게 있었다고는 하지맨,아! 꽃이 무슨 죄여?

그런디 올 겨울도 동백은 보러가기 힘들것구먼
매해 벼르긴 하지만 시상일이 워디 맘 먹는다구
되는거여?

올 겨울엔 눈도 시원찮어
그 자주 내리던 눈이 왜 안온다야?
그러니 시원찮은 겨울이지~
먼지만 풀풀 나는 겨울 무슨 재미로 살까나?

아! 까짓거 다 때려치고 동백이나 함 보러 가?
^^
헤일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근디 말여 동백아씨야 너만 그런게 아녀^
수많은 밤을 우는 사램이 어디 한둘이간!

암,, 많고 말고!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왜? 동백 꽃잎이 멍이 드는지 아는 사램
있어유? 아니 아는건 둘째치고

뭐 동백을 봐야 멍이 드는지 뭐가 드는지
알거 아녀?

동백꽃 함 자세히 보시유!
성한 놈이 하나나 있나
뭐에 두들겨 맞아서 그런지 가심이 아퍼 시퍼렇게
멍이 든건지,, 암튼 변변한 놈이 하나도 없는게
동백이라니께^ 온전한 동백 사진 한장 남기기가
하늘에 별 따기유~

그래서 그런가 동백꽃 보러 일부러 남도로 가는 사람은
제 정신이 아닌게 분명하지라! 허허~

그치만 멍이 시퍼렇데 든 동백꽃 하나쯤 부여잡고
동백 아가씨를 불러보면 이 지루한 겨울도 눈 녹듯
사르르 사라질 거구만유^

그 뿐인감유, 동백의 순정이 이내 가심에 폭싹
안겨 오는건 덤이지유^



동백 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아가씨
가신님은 그 언제
그 어느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 오려나

통영 장사도의 동백 2014년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라 했던 적이 있었다

 

허긴 비둘기가 서로 싸우거나 다른 새를 공격하거나 

무리지어 뭔가를 위협하거나 아무튼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걸 본 적은 없다

 

걍 구순하게 구구구 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날아다니는

녀석이다 . 깃털도 부드럽고 걸음 걸이도 그만하면

조신하다

 

어쩌다 약국 출입문 앞에 앉아서 모이를 쪼고 있는 

비둘기를 보고 한줌 잡곡을 던져준 이후 매일 날아

오는 비둘기가 귀엽기도하고 기특하기도해서 한달

정도 꾸준히 모이를 뿌려 줬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비둘기를 빗자루로 쫓아냈다

더 이상 여기 오지 말라고^  ㅋ

 

모이를 미처 못 줄때는 처량한 눈빛으로 약국안을 

들여다 본다. 심지어는 출입문에 일부러 날아서 부딫

치기도한다. 한두마리가 점차 숫자가 늘어 8마리 까지

늘었다.  

 

 

 
약국앞 현관문에 모이를 먹으러 온 비둘기
 

비둘기를 쫓아낸 결정적 이유는 야들이 똥을 너무 많이

싸기 때문이었다. 또 흰 깃털도 많이 근처에 나돌아 다녔

다. 똥과 깃털에서 병원균이 옮기도 한단다. 먹이는 먹되

똥은 멀리 날아가 논밭에 싼다면 언제까지고 귀여움을 받

으며 모이를 얻어먹을 수 있을텐데,, 비둘기의 지혜가 거기

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아마도 한 1000년쯤 더 지나면 비둘기가 그 정도 수준까지

도달할지는 모르지만! 현재는 비둘기에게 애완견 수준의 용변

습관을 기대하기는 무리일듯^ 

 

 암튼 그런등등의 문제로 비둘기는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

졌고 급기야는 퇴출 대상 목록에 오르기까지 한 것이 아닐까?  

 

^^^

 

중학교 3학년 겨울에 내가 하숙하며 살던 일죽면 내뚠이라는

동네 웃골 작은 마을에서 비둘기를 잡아 달라는 요청이 왔다

당시에 나는 장암리라는 인근 동네에 사는 친구가 가지고 있던 

공기총으로 새를 잡으러 자주 다녔었다.여차저차 그런 사정을 잘

아는 당시 하숙집 아주머니가 웃동네의 희망 사항을 나에게 전달했

던 것인데 하필 집 비둘기를 왜 잡아 달라 했는지는 잘 모른다

닭 대신 좀 잡아 먹으려 했는지, 너무 숫자가 많아 귀찮아서 그런

건지, 암튼 그 당시만 해도 평화의 상징이니 뭐니 하던 비둘기를 잡아

달라한 건 사실 꽤나 의외였다 

       

 

나는 친구의 공기총을 빌려와서 일요일 아침 윗골로 올라갔다.

총에는 산탄을 장착한 상태였다. 초가집 위에는 비둘기가 

10여 마리 정도 일렬로 앉아 있었다. 헌데 공기총을 들고 대문을 

넘어서는 순간 발을 헛디뎌 들고 있던 총이 '탕' 하고 격발이

되고 말았다. 항상 예기치 않은 일이란게 있는데, 바로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산탄 총알은 그집 뒷방 방문쪽으로 발사되었다.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혹시 방안에 사람이 있었으면 어쩌지?

이거 뭐 비둘기 잡으려다 엉뚱하게 사람을 잡는거 아녀? "

 

산탄 총알은 작은 쇠구슬이 대부분분이지만 더러 큰 구슬도 몇개

 들어간다^ 꿩이나 토끼 이런걸 잡기 위해서다.다행히 방에는 

아무도 없었고 총소리에도 전혀 놀라지 않고 지붕에 한가로이

앉아 있는 비둘기를 향해 다시 한방을 장전해 쏘았다. 비둘기들은 

 

" 그게 총이라는 거요? "

 

비웃기라도 하듯 한마리도 남지않고 모두 날라가 버렸다. 

쳇! 이게 뭐람^ 잡아 달라는 비둘기는 한 마리도 못잡고 엉뚱한

사고만 칠뻔 했잖은가? 

 

2-3일후 하숙집 뒷산 밭고랑에서 죽어있는 비둘기 두어 마리를

발견했다. 아마도 수일 전 공기총에 어딘가를 맞았던 녀석 들일게다.

그 일 이후로 나는 평화의 상징이라는 비둘기를 잡은 걸 몹시도

후회했다. 그것도 총까지 쏘아서 잡다니^ 하필 그런 걸 왜 나에게

부탁을 한거얌! 

 

아무 생각없이 한 일었는데, 

두고두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

 

그런데, 오늘 비둘기를 쫓아내며 당시의 일이 떠 올랐다. 

과연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인가?  평화의 상징이 왜 하필

비둘기 뿐인가? 야외 전시 조각품은 비둘기의 똥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급기야 어느 지자체는 비둘기 퇴치로 수천만원을 

쓰고도 효과가 없어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는 최근의 보도를 보았다,, 

 

사실 비둘기보다 더 예쁘고 날으는 모습이 멋진 놈은 산까치다

집 까치도 과수 농장의 피해로 인해 퇴출대상이 된지 오래지만, 

산까치는 까치와는 많이 다르다^ 시끄러운 소리도 안내고 특별히 피해를

 주지도 않는듯하다.실제 과수 농가에선 어찌 보는지 궁금하지만, 

 

 

그러나 비둘기 모이를 자주 주었으면 좋겠단 마음엔 변함이

없다. 출입문앞 배설물과 흰 털들을 마땅히 치워낼 방법이 

있다면 말이다^  이 추운 겨울에 물을 뿌려 청소를 할 수도 없고,

이상과 현실이 맞지 않는 경우다. 그러나 봄여름가을 이라해서 

비둘기의 배설물을 감당하기란 쉬운건 아니다~ 

 

사실 비둘기가 요즘처럼 눈이 쌓이지 않으면 야생에서 먹이를

구하기가 그리 어려운 건 아닐듯하다. 그러나 동네 근처에서 

맴돌던 습성이 있다보니 논밭에 나가 힘들게 먹이를 구하려고

않는듯하다.  

 

비둘기가 지능이 발달하여 사람들이 뭘 싫어하는지를 인지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대처를 하기를 기다린다는 건 기대난망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비둘기나 까치를 보는 족족 잡아 치우는것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단지 비둘기가 먹이 먹는것 귀엽다고 자칫 집 근처나 매장 앞에

서 모이를 줬다간 큰코 다칠지 모른다는걸 꼭 기억해 주시길 

당부드리는 의미에서 이 글을 쓰는 중이다. 벌써 모이주는 걸 

중단한지 근 10여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매일 아침이면 약국앞

으로 여러 마리의 비둘기가 모여와서 모이 주기를 기다리고 있

으니 말이다.

 

도대체 저 녀석들은 얼마가 지나야 약국 앞에서 모이를 줏어

먹던 기억을 잊어 버리는 걸까? 혹시 한 1년 이상이 흘러야

되는건 아닐까? 

 

 
 

때는 겨울이다^ 춥다^ 눈이 온다! 

올 겨울은 초창기에 두어 차례 조금 눈이 내린후  아직 소식이 없다

 

아주 오래전 근 5-60년 전 얘기를 하나 꺼내  본다^

거 뭐 그딴 옛날 얘긴 뭐할라 꺼내시요? 

 

지나간것은 지나간대로 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전인권은 노래했다

지나간것도 나름이지 뭐든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그래 무슨 의미가

있길래 그걸 꺼낸단 말이요? 

 

 

^

 

아침이 밝아오면 어젯밤에 땐 군불의 기운이 다 되고 웃목 아랫목 할것

없이 방바닥은 식어 싸늘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해가

뜨기 이전에 눈을 부비고 일어난다^ 간밤에 하얀 눈이 내려 안방 봉창

으로 내다보이는 저 건너 들판엔 뽀오얀 눈빛이 어슴프레 파고들기 시작

한다. 곧이어 맑은 하늘 동쪽에선 해가 떠오를 태세다. 

 

촉새를 잡는데 유용하게 쓰일 덮치기를 이미 몇개 만들어 둔 터라 지체없이

덮치기 4개를 양손에 두개씩 끌어안고 꽁꽁 언 밭고랑을 가로질러 200여 미터

앞 뽕나무 밭으로 내 달린다^ 발 아래 밟히는 눈의 감촉이 포삭하게 전해온다

이미 촉새들은 뽕나무 밭 주변에 어지러이 흩어져 모이를 찾고있다. 덮치기를

잘 셋팅해놓고 오던  길로 돌아 눈 발자국을 밟으며 집으로 간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조금 뜸을 들인 다음 뽕밭으로 다시 간다 

 

덮치기에 촉새가 한  마리,두 마리 잡혀있다^ 조심스레 새를 빼내어 새끼줄에

꿴후 다시 덮치기를 셋팅한다^ 집으로 다시 돌아와 아침밥을 먹고 적당한

시간에 잡은 촉새를 소금을 조금 뿌려 불에 구워 먹는다^

 

12월 말부터 다음해 1월 말까지 방학기간중 대체로 눈은 4-5 차례 내린다

한번 눈이 오면 대략 2-3일은 눈이 유지되니 근 보름 가까이 즉 겨울방학의

1/2 정도는 새를 잡는데 소요된 셈이다^  보통 눈이 내린 당일엔 5-6 마리

그 다음날엔 잘해야 1-2 마리 잡는데 그쳤다. 내가 기억하는 하루 최고

포획량은 8마리였다^ 그것도 오후 해가 뉘엇해질때까지 하루종일 들판을 

쏘다닌 결과였다^ 당시 최고 기록이 몇마리를 달성할까 하고 이를 악물고

버틴 결과였다^ 

 

그니깐 방학동안 보통 한 명이 촉새를 30 마리에서 40 마리정도 잡은 셈이다

동네에 새잡던 애들이 수십명이었으니 그것도 다 합치면 꽤나 많은 숫자

였다^ 

 

해서 당시 내가 그 추운 겨울에 일찍 일어날 수 있던 원인은 누가 뭐래도 촉새

를 잡기위함 이었는데, 그것은 지금 말하는 겨울의 낭만이니 일찍 일어나 무슨

좋은 기를 마시기 위함이니 하는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오직 목표는 새~

군것질 대용으로 새를 잡아 먹기 위함이었다^ 

 

 

요 며칠 사이 옛날 생각이 나서 대체 당시 내가 얼마나 빨리 겨울에 잠을

깬 것인가를 유추해 보았다^ 헌데 당시엔 시계가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잠을 잤고 날이 새면 일어났다^ 아침 8시는 되어야 12월말 1월초는 해가

떠 오른다. 정확히는 7시 40여분 경에 일출이 되는데, 앞산에 막히고

어쩌고 하다보면 8시가 되어야 해가 얼굴을 비치는 것^ 따라서 나는 당시

8시경에 일어나 새를 잡기 시작한것이다^ 별로 빠른 시간도 아닌데, 허나

지금껏 나는 겨울에 무척 부지런했다고 나름 생각했었다. 해가 뜰때 일어났

으니까~ 

 

따지고 보면 그렇게 눈덮힌 들판을 걷고 또 걷고 바람을 맞으며 코를 흘리며

 언 손을 호호 불며 새를 잡으러 걸어다니던 그 힘으로 오늘날까지 잘 버티고 

있는 셈이다^ 

 

(작자 미상)

 

 

그 뿐이 아니다^ 어릴적 교육의 최고 성과는 바로 놀이를 통해 배우는 것이라

했다^ 최근들어 놀이의 중요성이 급부상하고 있다^ 놀이를 통해 상상력도,

추리력도,창의력도,협동심도,문제 해결력도 모두 터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그 겨울 촉새 잡이가 얼만큼 나의 인성에

영향을 미쳤을까? 새잡는 것만이 전부였던게 아니다. 딱지치기,구슬치기,

연 날리기, 자치기,썰매타기,새알찾기,미역감기,나무하기,밭매기,고기잡기

메뚜기 잡기,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만큼 다양한 놀이를 거의 매일 빠지

지 않고 하며 지냈으니 나와 동 시대의 친구들은 놀이가 곧 일상이었다^ 

봄여름가을겨울 모두 집에는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집 안에서는 할게 없

었기 때문이다. 요즘과는 너무도 사정이 달랐다. 

 

그때 밭고랑을 걸으며 발아래 느껴지던 언 흙의 촉감, 눈의 포삭함,매서운

겨울바람의 따가움, 하늘의 청량함, 나무를 훓고 스쳐가는 겨울 바람소리, 

얼음판의 갈라짐 소리,낫으로 한번 치면 쫘악하며 잘라지던 소나무 가지 소리,

솔잎이 불에 타닥거리며 타던 소리,쥐의 울음 소리,참새의 포드득 소리,무엇

보다 밤새 내리던 눈 쌓이던 소리, 눈내린 밤 늦게 청명히 빛나던 달빛,

그 밤의 고요함, 이런것들이 내 마음과 기억속에 쌓여있는 부피는 그 

깊이가 얼마인줄을 모르게 육중하고도 조밀하다.

 

도회의 아이들이 저런류의 체험을 얼마나 했을지는 모른다. 아마도 많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내 생각에 유년시절의 1년은 장년기 이후의 5년에 

버금간다고 말할수 있을것이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 

 

' 난 도대체 어린시절에 뭘하고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말을 한다면

그는 필경 유년의 추억이 부족하거나 없는것이리라.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별 볼일 없던 시절의 기억은 어느정도 한둘씩 가지고 있다. 같은 시기라도

어느쪽의 기억은 선명한데 학교 생활의 기억은 거의 없거나 이런 식이다. 

뭐가 됬건 기억이 사라진쪽은 별 볼일 없던 시기가 분명하다^ 어떤 이는 

유년시절이 그렇고 어떤 이는 청장년 시절이 그렇고 어떤 이는 40대가 그렇고

등등이다. 

 

유년시절의 추억이 전 인생을 좌우한다고 말할순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중요함에는 틀림이 없을것이다. 자라나는 우리의 자녀,손자,손녀에게는

놀이를 통해 자아를 완성해가는 단초를 많이 제공해보자^ ㄱ,ㄴ,ㄷ, 

A,B,C 등 글자를 가르치려고 애를 쓸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른이 된후는 어떨까? 그때도 놀이가 그만큼 유효할까?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어릴적 놀이로 날을 새운 이들은 어른이 되어도

놀이로 일관할 가능성이 크다^ 일을 해도 노는것처럼, 공부를 해도

노는것처럼, 그리고 실제 놀이방법도 다양하게 개발해서 활용할것이

맞는다 할것이다^ 

 

' 난 도대체 취미가 없어요' 

 

이렇게 말하는 이들은 어릴적 다양한 놀이를 해보지 않았다고 볼 수가

있을것이다^ 취미도 없고 이렇다할 재미도 없고 따라서 사는 재미도

뭣도 없게 사는 이들이 생각보다 주위엔 많다. 이래서야 되겠는가?

 

해서 난, 이 겨울 어릴적 촉새잡이에 나섰던 추억을 다시 꺼내어 음미

하는 중이다. 눈 쌓인 밭 고랑을 달려간다. 맑은 하늘에 해가 떠 오른다

바람이 분다. 걷고 또 걷는다. 발이 시리다. 몸이 차다. 손이 시리다.

그래도 다시 덮치기를 걷어 다른곳으로 옮긴다. 그리고 잡은 촉새를

만져본다. 그리고 불에 구워 먹는다~~~

 

오후가 되면 새 잡는 건 끝이다. 새들은 오후에 먹이를 잘 먹지 않는다

대신 겨울바람이 분다. 집더미가 쌓인 곳을 찾아 연을 날린다

파란 하늘에 높이 떠서 날으는 연을 본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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