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리 한려수도 / 한여름

 

 

閑麗水道~ 는 통영 한산도에서 사천, 남해를 거쳐 여수에 이르는

남해안 뱃길 해안을 말하는건 다 아시는 거지만, 사실 저곳을 한가로이

배를 타고 쭈욱~ 쭈욱 돌아 본 경험은 없읍니다^

 

이미자의 노래로 이 곡이 불려진 이후 그저 호기심으로만 늘상 간직하던

그런곳입죠! 그러나 가사를 보면,

 

 

노을 진 한산섬에 갈매기 날으니
삼백리 한려수도 그림 같구나
굽이굽이 바닷길에 배가 오는데
임 마중 섬색시의 풋가슴 속은
빨갛게 빨갛게~
동백꽃처럼 타오르는데
바닷가에 타오른다네


달밝은 한산섬에 기러기 날으니
삼백리 한려수도 거울 같구나
굽이굽이 바닷길에 밤은 깊은데
섬색시 풋가슴의 피는 사랑은
빨갛게 빨갛게 동백꽃처럼 피어나네
바위틈에 피어난다네

 

 

 

요즘 트롯 경연이 정말 불꽃을 튀기고 있죠?

트롯신이 떳다 , 에 등장한 가수 "한 여름"이 부른 바로

이 노래! 삼백리 한려수도는 그간 잠깐 발만 담궈 봤다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의 한려수도 삼백리길을 잔잔히

떠 올려 보기에 부족함이 없었읍니다^

 

마누라가 좋으면 처가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고 하던데~~

노래를 너무 잘하니 겨우 근처만 갔던 한려수도가 갑자기 그리워

져 이것저것 사진을 뒤적여 봅니다! 아! 우리나라 참 좋은 곳입니다

 

잔잔한 바다~ 봉긋한 섬~ 파란 하늘~ 구름~

갈매기 떼~

 

아스라이 깔리는 해무~ 아침 노을~

붉은 동백~

 

무엇보다 그속에 깃든 평화로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듯 하군요!

 

그저 조금더 자주 그 아름다운 그곳을 가 볼수 있기를 소망해 보면서

사진 몇점 첨부 해 봅니다^

 

통영 미륵산 중턱에서~
한산도 쪽 !
통영의 아침 배~
장사도의 동백~
멀리 거제 해금강
통영 e.s 리조트에서!

앞 차 유리창이 열려져 있다. 담배 연기가 하늘로 피어 오른다.

한참을 더 가다 보면 어느새 담배 꽁초가 차창 밖으로 슬그머니

던져진다.  이런 현상이 점점 줄어 들고 있을까? 아니면 전혀 개선

되고 있지 않을까?

 

담배를 차에서 피는 건 개인의 자유이니 누가 뭐랄 건 없다. 아니

사실은 청명한 하늘에 연기를 뿜어대는 것이니 공기 오염에 일조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기 차에 꽁초를 두면 더 더욱 담배 냄새가 나니

밖으로 던져 버리자! 이거가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지않나?

쓰레기 투척~ 공도 상에 이러면 도로 교통법상 어쩌구 벌금이란것도

있지만, 아! 이게 뭐하자는 건가?

 

도로가 급히 굽어지거나 도시 고속화 도로를 타려고 빙 돌아 가는 곳은

차량 속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돌아가는 길에

무수히 많은 휴지며 플라스틱이며 기타 쓰레기가 허옇게 쌓여 있는걸

목격할 수 있었다. 도대체 이건 또 뭔가? 차량의 속도가 늦어지는 이 구

간이 자기 차의 쓰레기를 밖으로 던지는 절호의 찬스라도 된다는 말인가?

 

이거 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문화란 말인가? 아니 이건 문화란 말을 붙일

그런게 아니다. 아주 못된 후진적 사회현상이라 해야 할것이다.

대한민국이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서구 선진국 보다 오히려 한발

앞서는 나라가 되었다고 난리도 아니게 되었다. 실제로 자존심도 상당

부분 회복한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 꽁초 버리는것과 쓰레기 투척 하는걸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이다. 이러고도 선진 사회 운운 할텐가?

 

거기서 그치는게 아니다. 예쁘게 떨어진 낙엽이 수북히 쌓인 도로엔 어디나

하얀 휴지나 오물 기타 플라스틱 쓰레기가 떨어져 있다. 그들의 눈에는 그

예쁜 낙엽도 한낮 쓰레기 더미로 보이는 모양이다. 이렇게 심미안이 떨어

져서야 무슨 낮으로 선진국이네 마네 할텐가?

 

이 문제는 무슨 캠페인을 할것도 아니고 국민 스스로가 깨어나는 길 밖엔

도무지 방법이 없어 보인다. 사실은 쓰레기 투척에 엄청난 벌금을 물리는

길만이 답일 수도 있을것이다. 싱가포르처럼 껌 하나 길에 뱉다가 수십 만원

의 벌금을 낸다면 아마도 쉽게 사라질것이다. 환경 보호의 문제도 있지만

공공 장소에 청결을 의무로 해야함을 숙지할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가 있어

야 할것이다.

 

 

사실은 세번도 아니고 방문한것만 치면 5번째는 될것이다. 우리집에서

멀지않고 또 내 고향 안성 땅이기 때문에 친근감도 있을뿐 아니라 난실마을

자체가 아담한 뒷산에 넓지않은 논밭이 펼쳐져 있어 마치 고향같은 느낌이

나기 때문이다. 또 바로 옆에는 미리내 성지가 있어 더 자주 찾게되는 곳이다.

 

어제도 새로 구입한 망원렌즈도 테스트 해볼겸 날이 흐린중에 방향을 잡아 일단

미리내 쯤으로 가는중 이었다. 아내가 조병화선생 기념관 내부를 본적이 없다해서

급히 길을 찾아 들었다

 

 

모든 사물이 그렇듯 한번에 전모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기념관도 갈 때마다

다른것이 자꾸 보인다. 생전 53권의 시집과 110여권의 산문등등 책을 출간한

선생은 참 대단한 분이다 라고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저 웬만한 저술가라도

몇십권 정도지 이처럼 다작을 내기는 힘들다. 우리는 평생 몇권의 책을 낼수

있을까?  단 한권도 내지 못하는 이가 거의 대부분이다.

 

 

마로니에는 밤보다 일찍 익는다. 서양칠엽수로 알려진 마로니에 나무는

저렇게 열매가 익었다. 망원렌즈의 힘이 느껴진다. 일반 렌즈로는 저 열매가

저렇게 찍히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가로수에 많이 심지만 사실 저 나무

는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다. 서양 외래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 나무가

서울 문리대 교정에 있었고 또 대학 초년시절 그 나무 밑에서 사진도 찍고 가끔

나무 아래 앉아 있기도 해서 나의 닉네임을 마로니에로 하게되었다.

 

 

지난번에도 썻지만 관리가 힘들어 울창한 담쟁이 밑둥을 잘랐다는데 일부는

싹을 내어 자라고 있었다. 지자체등이 관리하지 않고 오롯이 후손들이 관리

하기엔 벅차긴 하지만, 못내 아쉬운 점이다

 

 

버릴거 버리고 안버릴것까지 버렸다는 말씀!  인생이 누구나 그렇듯

이 말씀은 짧지만 울림이 매우 크게 느껴진다

 

 

 

웬만한 사진은 지난번 방문때 대충 다 찍은고로 이번엔 좀 색다른걸로

몇장 찍었다. 누가 그린걸까? 찍은걸까?

 

 

많은 후배 문인,동료, 선배들의 글들이 많지만 이번엔 이 김남조 시인의 글이 눈에 쏙 들어

왔다.  그래 맞는다!  나를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의 고향도 아니고 나의 '눈물의 교향'을

아는 사람들 뿐이로구나! 오죽하면 이런 글이 나왔을까?

 

코로나 여파로 옆쪽 편운재는 안내를 안한다 했다. 해서 본채 기념관만 관람을 했다. 전보다

아주 약간 내부 진열품의 구조 변경을 한듯했다.

 

 

편운 문학상 수상자는 수도 없이 많았다. 지금 왕성한 문학활동을 하고들

계실터이다

 

선생의 생가터이자 후손이 살고 있는 집^

 

 

동네 담벼락에는 군데군데 이렇게 글들이 씌여져 있었다. 충무의 동피랑 마을을

연상케 한다. 동네가 옛적 모습을 간직하니 이것도 가능할게다

 

 

 

이렇듯 고향에 땅이 있고 후손이 살고 있고 또 고향에 묻히신 선생은 행복한

분이다. 이 시대에 그 누가 고향이 온전히 보존되며 집과 땅이 있으며 더구나

고향땅 태어났던 곳에 묻히는 이 누가 있으랴?  동네도 평화롭고 아름답지만

이런 부분이 가장 부러운 점이다

 

 

 

난실 마을의 9월 정취는 이렇게 무르익고 있었다

 

우리는 비가 살짝 뿌리는 미리내를 찾아 들었다. 이번 호우로 미리내

안쪽 올라가는 길은 큰 피해를 입었다. 도로 한편 물 흐르는 쪽이 대거

빗물에 쓸려나가 버린것이다. 아스팔트 일부도 마치 지진을 당한듯 주름이

크게 잡혀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동네 아낙이 파는 토마토 가지등을 사고 포도밭에서는

거봉과 요즘 신품종 연두색의 포도를 좀 구입했다. 아내는 새우 매운탕을

먹자고 했으나 저녁을 먹기엔 너무 이른 오후 4시경이라 사실은 저녁값으로

과일을 산 셈이다.

 

그러나 그 토마토는 내가 이제껏 평생 먹었던 그어느것 보다도 맛이

좋았다. 설령 독같이 시골땅에서 키운 토마토라 할지라도 이것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좋은 토질은 좋은 사람을 만들어 내고 좋은 사람이

좋은 과일도 만들어 낸다. 난실 마을이 바로 그런곳 아닐까?

오늘 따라 우연히 컴을 뒤적이다 이런 영상을 발견했읍니다.

노래란것은 각자 좋아하는 장르가 있고 목소리가 있고 가수가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특정 가수를 평가 비슷하게 얘기하기는 조심스러운게 사실입니다.
또, 그 어떤 가수라해도 곡에 따라 들리는 느낌은 최고작부터 졸작에 이르기
까지 다양할 것입니다. 사진을 찍어도 수십장 중에 한장 작품이 나올까 말까한
이치와 같다고 할것입니다.
 

진성의 노래는 '안동역에서' 와 '내가 바보야' 두곡을 일찌기 녹음도 했었고
비교적 최신 노래중에서는 트롯의 맛이 좋은 노래라 많다고 여기고 있었지요.
그러다 진성이 큰 성공뒤에 어려운 병을 얻었고 그것이 평생 끌고 가야할
숙명적인 그런것임을 알았다고 할때 그의 얼굴에 스치는 쓸쓸함 같은걸 얼핏
발견하기도 했지요. 그뿐 아니라 초등학교도 늦게 들어가 불과 2년밖에 다니지
않아 속칭 그야말로 가방끈이 아주 짧고,거기다 무명 가수를 아주 오래
했다는거~
거기다 어린시절 혹독한 가난과 불우했던 가정사 까지~

그러나 그는 이런 모든 불리함을 끝끝내 참고 이겨내어 트롯 가수로의 입지를 굳건
하게 다졌읍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오랜 기간의 고생과 스트레스와 인내의
결과에 따른 성공도 무참한 병마로 물거품이 될 운명에 처했읍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읍니다. 현재는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다행이긴 합니다.

그의 지병을 아주 조금은 도울만한 방법도 가지고 있긴한데 아마도 좋다는거,도움이
된다는거는 안해본 방법이 거의 없지 않을까 해서 사족이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그의 주택에는 온갖 종류의 약초, 자연물들이 방 하나에
꽉 차 있더군요!

 





대전부르스를 여러 가수가 부른걸 듣고 또 제 자신도 직접 녹음도 해 봤지만
위의 진성 만큼 마치 노래를 톱으로 썰어 하얀 구름빵을 만들듯 강력하게 넣고 빼고가
분명하게 하는 가수는 처음입니다. 힘이 있지만 원곡의 아련한 감성도 결코 놓치지
않는~,, 원창자인 안정애를 비롯하여 이 곡의 대표 주자인 조용필도 엄밀히 말하자면
트롯적 역량은 진성에 미치지 못한다고 볼수도 있읍니다. 일본 엔카가수로 이 노래를
잘 부른다는 아오에 미나(靑江三奈)도 전혀 따라올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창법이자
진성만의 감성이 듬뿍 배어 나옵니다. 영상 중간에 노래 분위기를 저해하는 불 필요한
영상이 더러 나오긴 하지만!
 

대전부르스는 1950년대,아주 까마득히 먼 시절의 노래입니다. 사실 50대 후반
60대는 되어야 겨우 기억이나 할까 말까한 거의 고전에 속하는 노래이지요.
눈쌓인 하얀 대전역,혹은 비가 철철 내리는 아니면 안개가 자욱한 밤 0시50분
대전역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야했던 정경을 상상해 보면 지금도 그
느낌은 물씬 가슴에 차 오른다고 말할 수 있지요! 지금은 그 시각 열차는
사라지고 없다고 합니다.

참고로 일본 가수 아오에미나가 부른 대전부르스를 첨부해 봅니다. 왜 거기에
일본 가수가 나와? 할수도 있으나 대전부르스는 원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곡
이란 반증이고 한국 일본을 비롯해 내노라 하는 많은 가수들이 불렀던 노래
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뜻하지 않게 진성이 부른 대전 부르스에서 시작
된 것입니다





그런데 트롯의 장인인 진성의 면모는 여러군데서 확인됩니다. 그의 대표곡의
하나인 보릿고개도 자세히 들어보면 아주 깊은 감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읍니다



요즘 사람들은 물론 전부 그렇진 않지만 보랫고개란 걸 잘 알수가 없다고
봅니다.시골서 농사를 짓던 안 짓던 이젠 이 나라에서 보릿고개란 단어는 사라진지
꽤 될것입니다. 양력으로 3-5월 아직 밭에는 보리가 다 익지않아 추수가 멀었고
작년 가을 수확한 쌀은 다 떨어져 먹을것은 그 어디에도 없던 시절, 쑥이나
어린 소나무 껍질이나 아니면 밀가루 약간으로 이런걸로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던
그 전설같은 얘기를 지금 이 시대에 누가 이해를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진성은
굳이 이런 노래를 만들었지요. 도무지 노래로는 힛트가 될거 같지 않은 노래를
말이지요~

어렵고 힘든 시절을 겪어본 사람만이 꼭 노래를 절절하게 잘 한다고는 하기는
힘들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6.25 이후엔 가수가 거리에 넘쳐 났어야할게
아닌가요? 힘들다고 다 목소리가 좋고 노래를 잘 부를수는 없는게 분명한데
진성같은 가수는 아무튼 좀 독보적이라 생각이 듭니다. 노래의 결과 스타일은
분명 다르지만 조용필과도 대비되는 트롯의 장인인것만은 확실합니다.




이 노래방은 진성의 집에 설치한것 같읍니다. 아무래도 마이크나 뭐 기계장비
같은걸 일반 노래방 보다는 조금 높게 설치하지 않았을까 생각은 되지만,
그런것 치고는 음향의 질이 아주 높아 보입니다. 뭐 저 정도 노래가 녹음이
된다면 집에 한번 설치해 보고 싶긴 한데,여건이 안 되니 그저 희망 사항일
뿐이지요^
굳이 공연실황이 아닌 이런 영상을 덧붙인 이유는 그 어느 자리에서든
진성의 진가는 특별하다, 특히 트롯에서는 그렇다는걸 실증해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과연 이시대 한국 최고의 트롯의 장인은 누굴까? 그것은 각자의 취향과
노래에따라 각양각색이 당연할것이지만, 일단은 나의 판단은 남자에서는
진성을 꼽아 봅니다.

 

 

보통 수준의 취미생활을 목표로 할경우 대체 카메라는어느 정도까지 추구

할거며 렌즈 또한 어디까지 구비해야 하는지가 고민이 많은 분들도

있을듯하다.

 

취미를 처음부터 일정수준으로 한정하고 시작할건 아니지만, 골프건

사진이건 그 일로 돈을 벌어 쓰지 않는 이상 대략적인 범주는 정해두는게

좋을것 같다. 본업을 제켜두고 취미 생활을 본업처럼 하는것도 썩 바람직

하지는 않다는게 나의 평소 지론이다. 뭐 나이 들어 은퇴후 그렇게 하는거야

뭐라 할것은 못되지만 말이다.

 

해서 dslr 을 구비한 처음부터 나는 충동적으로 렌즈를 사 들이지 않도록

매우 조심을 했다. 많은 분들이 그때그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사들인 렌

즈를 감당못해 도로 팔거나 처박아두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해서 찬찬히 실력도 쌓을겸 24-70과 100 mm 하나 그렇게 달랑 두개의 렌즈

만 가지고 5년정도를 버텼다. 보통은 계륵이라는 24-70 을 나는 한우갈비 이상

으로 잘 활용했다. 사실 일상 생활에서 필요로하는 사진은 저정도만 해도 부족

함은 거의 없다할수도 있다. 특정 사진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분들이라면 당연

추가로 렌즈가 있어야할 것이지만, 소소한 일상 여행이나 계절의 변화 그리고

봄철 화려한 꽃을 담아 내기에 문제가 된적은 아직 없었다.

 

그러나 만일 조금은 더 특수한 상황을 맞이했을때 현재의 렌즈로는 분명 부족

함이 있을것으로 생각은 늘상 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망원렌즈였다. 광각과

망원중 뭐가 급선무일까를 오랜 시간동안 고민한 결과 먼저가 망원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망원도 분류가 다양하고 각각 퍌요로하는 영역이 있다보니

쉽게 결정을 하기도 어렵다. 고가의 렌즈를 사두고 활용을 못하면 이것처럼

답답한일도 없을것이다. 그런데 결정이 됐다면 새걸로 살지 중고로 살지를 또

정해야한다. 거기다 고급품을 선택할지 보급품을 선택할지도 정해야한다.

문제는 고급품을 사야 좋은 사진을 얻을수 있다는 막연한 기준을 갖을 경우다

대개 이런 경우 잡다한 비싼 렌즈를 많이 구매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좋은 화질을 원하는데 적절한 비용을 쓰자면 괜찮은 중고품을 구입해야 할것

이다. 그러면 중고는 또 어떻게 구매해야 잘하는 것일까? 의 문제가 남는다.

 

그 결과 엊그제 내가 선택한 답은 캐논의 70-300mm f 4~5.6 L 렌즈였다.

일명 할매백통이라 불리는 무게는 1KG, 비교적 가벼운 제품이다. 사실 dslr 의

문제는 무거운 무게이다. 나의 경우는 왼손목의 통증때문에 도저히 무거운

카메라나 렌즈는 감당이 안된다. 오랜 기간동안 골프를 하며 생긴 결과이기도

한데 아무리 삼각대를 끼고 다닌다 해도 무거운건 역시 무거운것이다. 해서

바디도 좀더 가벼운 6D 로 입문을 했으니 말이다. 사진을 하다 보면 자꾸

장비에 대한 갈증이 생기는건 사실이나 나는 전혀 그럴 이유가 없다고 생각을

한다. 가격이 저렴한 서드파티도 나름 충분히 훌륭하다고 나는 믿는다.

 

문제는 나의 기술이나 감각, 감성의 부족이 더 크지 절대 장비의 고가 여부에

사진이 달렸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설령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

에서 조금 더 나은 수준으로 오른들 그걸 업으로 삼지 않는 다음에야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사진은 생활의 일부여야 한다. 나의 궤적을 좀더 의미있게 오래 보존할수 있을

정도의 사진이면 오케이지 않을까? 우리의 눈이 보아서 좋고 기쁨을 줄수 있는

사진이라면 되었지 뭐를 더 바랄것인가? 단지 아쉬운건 많은 분들이 핸드폰의

발달로 또 편리함으로 그 수준의 사진에서 만족한다는데 있다. 핸폰으로도 충분

히 멋진 사진을 얻을수는 있지만 대개의 경우는 나의 기준에는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아까운 시간 장소를 보존하는데 대충 넘어갈수는 없지 않은가?

 

앞으로 새로 구입한 망원렌즈로 어떤 사진을 보여줄지가 무척 기대가 된다.

새제품은 아니고 어느분이 사서 몇백장 정도 겨우 찍었다는걸 대략 반값 정도에

멀리 성남까지 가서 업어온 녀석이다. 태풍이 불어 아직 시험테스트도 못해봤다.

이제 곧 누런들판이 나를 반길것이다. 망원을 썻을때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또 하늘 높이 달려있는 감을 찍을때 어떤 변화가 있을것이가? 등등으로 올 가을

을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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