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평생 처음 외출하다~

그니깐,, 추석 연휴에 어딜 간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거냐
하는건데,


다른 이들한테 평범해도 나에게 일어나면 그래서 특별한거다!
내 또래 일부 친구들은 손자 손녀까지 대동하고 어딜 가더라 마는
나에겐 그건 장래 희망사항일뿐! 요즘은 추석 연휴에 고향 가는
사람들 말고도 해외여행이며 기타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차례 지내
는것에 연연하지 않고 많이들 다니는 추세다

암튼 일가족이 모여 어딜 갔다는게 어디냐? 그것도 추석날에 말이다~
우린 추석 차례를 마친후 나선것이다. 그런데, 집을 나서자 마자 차가
처음부터 밀리고, 피하고 피해 가봐도 또 밀리고~ 용인 동네를
벗어나는것도 쉽지않자 급기야 뒷좌석의 딸래미가 불만섞인 말을 한마디
던진다!

" 그러게 뭐하러 집에서 쉬면 편하고 좋을걸 이 고생을 하고 가느냐고요~?"

'그래도 그렇지 여행은 말야 이렇게 가고 오는거, 들판을 보는거, 하늘을 보는거
딴 동네의 바람을 쐬어 보는거, 뭔가 일상에서 벗어난다는데 의의가 있는거지 ~ '


제천 E,S 리조트 2019.9.13 추석날




난 애써 별 특별할 내용도 없는 말이지만 그렇게 대꾸를 했다~ 딸은 처음부터
그냥 집에서 조용히 쉬기를 원했다. 사실 몇년전부터 이사온 여기 동네 기온이
통상 2~3도 정도 낮은데다 차소리 안 들리지 시원한 전나무 숲이 바로 앞산에
깔려 우리는 자칭 리조트에 산다고 늘상 생각하고 있는터라, 웬만큼 자연이 좋은
심산 유곡이 아니면 우리집만 못한곳이 대부분이었다.해서 어디 여행후 체감 느낌이
그닥 와 닿지 않는것이 문제이기도 했다. 누가 들으면 팔자 좋은 소리 한다고
할수도 있겠으나, 그렇다고 이 동네가 무슨 값비싼 전원주택 단지도 아니고
그저 소소한 작은 숲과 가까운 동네일 뿐인데,

아무리 그렇기로서이니 그렇다고 맨날 집에만 박혀 있을수는 없잖은가?

제천 능강에 있는 호젓한 이 리조트는 이제 꽤나 여러번 찾았다. 이 역시 한계
효용의 법칙이 적용되어 점차 그 신선함은 적어지고 있다 . 결국 인간은 언제고
새롭고 신선한 것을 찾게 되어 있다. 경험해 보지못한 미지의 무엇을 당근 선호
하니 말이다

늘상 가던 곳에선 그냥 쉬는 것이다. 쉬며 새소리 듣고 소나무 향 듬뿍 마시고
밤의 적막을 느끼고 푸르른 산과 멀리 호수를 보고 그러면 끝이다. 이번 제천
이에스도 그렇게 끝났다. 거기다 집사람 동창 가족과의 만남도 추가 되었으니
그만하면 되지 않았나?

추석당일의 그 청명한 하늘을 잊지 못한다. 아마도 한 10년 만의 그런 맑은
하늘이다. 야속하게도 그 다음날은 그렇지 못했다. 그 하늘을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충분히 담지 못한건 너무나 아쉽다. 인생은 늘 그렇게 아쉬움을 남기며
사라지는 걸까? 아래 사진중 일부는 보이지만!!





( 이글은 지난 추석여행후 카카오 스토리에 올렸던 글인데,,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다시 가져 왔다 )



 

 
요새 무슨 재미로 사시오?
 
우리는 가끔 이런 얘기를 상대로부터 듣는다
그게 무엇이었 건, 일이 건, 취미 건, 노는거 건, 암튼 사람은
무슨 재미가 있어야 세상을 살 수 있다. 재미라고 표현을 했지만,
의미라 해도 되고, 보람이라 해도 되고, 또 다른 뭐라 해도 좋다
 

 
그렇다!  그 무엇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가 없다. 사실을 말하자면
재미 보다는 의미,보람이 더 큰 삶의 동력일 수 있을것이다. 
 
빅터 플랭클이 쓴  [ 죽음의 수용소에서 ] 를 보면 정신과 의사였던
그가 나치의 수용소를 전전하며 수감자들의 행동 양식을 예리하게
분석했는데, 대체로 삶의 의미를 상실한 수감자는 쾌락으로 기울고
실제 끝까지 생존하는 비율도 현저히 낮다고 파악했다. 
 
그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으려 힘썻고 결국
거기서 살아 나오게 된다.  어찌 보면 인생의 의미를 정확히 직시
하지 못하는 많은 현대인들은 마지막 수단을 쾌락에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건 빅터플랭클의 이 책은 삶의 의미에 회의를
품거나 인생이 뜻대로 잘 안 풀릴때 한번쯤 읽어 보면 큰 도움이
될듯하다

 
 
그런 심오한 분석은 차치하고 내가 생각하는 인생의 큰 부분은 바로
재미라는 건데, 혹자는 술먹는 재미, 산에 다니는 재미, 여행하는 재미,
혹은 글쓰는 재미, 책 읽는 재미, 맛나는 거 먹는 재미, 옷 입는 재미,
영화 보는 재미,음악 듣는 재미,골프 치는 재미, 등등에 일하는 재미도
있다. 뭐 이도 저도 아니면 남 보다 잘 사는 재미, 좋은 차 타는 재미도
있는 것이다
~~~ 
 
이런 재미에 산다 해서 비난할 건 없을것이다. 제 잘난 맛에 산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그냥 제 잘난 맛으로 사는것이 인생이랄 수도 있다 .
굳이 그걸 제 잘난 맛이라고만 표현하기도 적당치 않을 수 있지만~ 
 

그런데, 그런 재미가 몇년 지나니 별게 아닌게 되어서~  
 
" 예전엔 한때 나도 그런거 좋아하고 살았는데,, 이젠 별 재미가 없어"
 
이런 얘길 심심찮게 듣는다. 이젠 별 재미가 없다?  그럼 어쩌자는 건가?
뭐 새로운 재미라도 찾아냈다는 말인가? 
 
한때 영화도 좋아했다. 음악 듣는것도 좋아했다. 산에 가는것도 좋아했다.
소소하게 놀러가는 것도, 여행 가는 것도 다 좋아 했는데,, 이젠 재미가 없다! 
 그런데 재미 없어진 종류만큼 새로운 재미를 발견 못했다~  그러면 재미란
종류에 마이너스가 되었단 얘기 아닌가?  
 
그 마이너스가 극에 달해 제로가 되면 인생은 끝난거다!
그렇지 ~ 그 끝은 죽음이지.. 별거 아니네^ 
 

 

2019.11.13 촬영
 

그런데 자신이 느끼는 재미가 최상, 보편적인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술 잘 먹는 사람은 술 못 먹거나 안 먹는 사람을 아주 재미
없이 사는거라 단정기도 한다. 담배 피는 사람도 그럴까? 아니지!
극단적으로 마약하는 사람은 그거 안하는 사람들을 재미없이 사는거라
생각할 수 있을까?  그들이 느끼는 쾌락의 순간이 최고라 생각할 수는
있으나 인생이라는게 그게 전부는 아님은 분명하지 않은가? 
 
인간은 대체로 두 가지를 동시에 잘 할 수 없다. 어느 한쪽이 우월하면 다른
한쪽은 시원찮다. 예컨데 술이 주는 이로움이 크지만 술을 못하는 사람은
다른 쪽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느끼는
재미가 너에게 없다고 너는 허당이야~ 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몇년이 지났다고 이젠 재미가 없어~ 라고 말하는 건 진정한 재미를
몰랐기 때문이거나 고도의 프로페셔날적 추구를 안 하고 적당히 해 본거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것이다  
 
 
 
고산 윤선도는 해남으로 유배를 가서 오우가를 지었다. 당시 그가 취할수
있던 최선의 방법이었다. 
 
수석송죽달 -- 水石松竹月
 
이제 와서 " 아니 그까짓게 무슨 벗이요? " 이렇게 말하면 곤란하다

지금 이 시대에 물과 돌과 소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달을 제대로 보고
느끼고 거기에서 무한 의미를 찾는 이 얼마나 될까? 세상이 발전했다고
해서 천지와 인생의 기본이 바뀐 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걸
무시하는 현대인이야 말로 허접한 인생을 보여주는 거라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슨 벗이 있으며 어떤 재미를 갖고 살고 있소?
라고 묻는다면 일목요연하게 답할 사람 몇이나 있을까?  
 
그러나 남의 재미를 평가하지 말자했으니 더 이상 말하지 않으련다
단지, 나 자신은 5가지 재미를 기본으로 오래 지나도 결코 실증 내거나
한 때의 그것으로 여기지 않으려 꾸준히 정진하고 있다. 그 다섯 가지는
여기 블로그에 써 올린바가 있다
 

그 누구라도 자신의 인생 재미는 곧 삶의 의미이자  인생의 원동력이
될것이다. 그것이 세월이 지나 재미 없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될수록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함이 좋을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재미를 다 보자고 덤벼들지는 않는게 현명하다.
그것이야말로 지나친 욕심이 아니겠는가? 재미라 하긴 뭐하지만,
돈,명예,권력을 동시에 쥐려고 발버둥치다 나락으로 떨어진 이가
헬수 없이 많지 않던가?

 
어느것 하나를 얻었으면 그걸로 만족할줄 아는 인생!

 

 
거기로부터 자신에게 가능한 소소한 행복을 찾아갈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현자라고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 은행나무

 

 

 

바람이 소리를 내지 않는다

햇빛이 나대지 않는다

하늘이 땅으로 내려 앉는다

 

인적도 없다

개도 짖지 않는다

고개숙인 벼가 삼단 머리처럼 머리를

조아리고 기도하고 있다

 

논둑을 걸어 간다

신발 아래 흙이 스르륵 무너진다

갈 길을 막던 메뚜기는 사라진지 오래다

 

 

이 가을을 먹는다

가을의 하늘을 품는다

누런 벼의 색감을 눈에 넣어 본다

벌써 논두렁의 반은 베어지고 없다

 

가을은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들판의 가을은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코스모스도 씨가 여물기 시작한지

벌써 한참 지났다 

 

 

이제 딱 한달 남았다

 

10월 한달이야말로 1년중 가장

눈부신 달이다

 

다른 계절 두달인들 시월 한달과 바꾸랴!

 

도시인의 80%는 아마도 벼가 익는지

베어지는지 모르고 지날것이다

 

그들에게 벼를 심고 가꾸고 추수하는 농민들은

이방인일 뿐이다 

 

들판에 나갈 사람은 나갈 것이고 도시의 아스팔트와

아파트에 갇혀 지낼 사람은 또 그렇게 살 것이다

 

 

해가 진다. 지는 해에 코스모스가 후두둑 흔들린다

어둡기 전에 셧터를 재빨리 누른다

 

어두워진 백암 뒷길을 30키로로 천천히 달린다

앞 뒤 차가 없는 이런 길을 달리는 건 축복이다

 

창문을 연다. 시골의 밤 냄새가 스며 든다

길 옆에 적당히 자란 코스모스, 풀, 논 둑의 벼,

띄엄 띄엄 어둠속에 서 있는 집 들^ 

 

콩 냄새,벼 냄새, 풀 냄새, 코스모스 냄새, 들깨 냄새

특히 고추 익어가는 냄새~

 

그리고 땅 냄새, 마을 냄새, 산 냄새가 몽땅

합쳐져 차 안으로 들어 온다 

 

 

 

아주 천천히 될수록 천천히 달린다

학일리를 거쳐 문수 산을 지나 이동을 거쳐

집으로 간다^ 

 

 

아무튼,

 

나에겐 이런 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가을 그리고 가암~ 감~
감나무가 있으니 온나무도 있어야지^
가는 나무만 있구나^^
 

  밭에 심는 단감부터 대접감, 대봉감,등등!!
크기와 모양에 따라 여러가지가 있다 . 물론 맛도
가지각색이다
그 열매 즉 감은 그런데,,
 
헌데, 감나무는 어떤까? 나무의 모양 말이다.
나무!!
내가 감나무의 美에 눈 뜬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선은 멋진 감나무를 주변에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2014년 가을에 처음 그런 멋진 나무를 보았다
그리고 해마다 감나무를 찾아 가을 여행을 떠났다!!
물론 단풍여행이 주 였음은 사실이긴 하지만,

 

 
오래된 감나무의 꺽임새는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나무가 저런 모양을 보여 줄까?
거기다 잘 익은 빨간 감 색까지 더하면!! 
 
내 평생 본 가장 아름다운 감나무이다~
지난 몇년간의 가을은 단풍도 좋았지만
감나무로 인해 행복했다

 

 

 

 

 

 

 

 

정말 멋진 감나무를 보기 원하시는가?

그러면 이 가을 떠나시라!

 

고만고만한 동네에는 저런 멋진 나무가

없다~

 

세속과는 멀리 떨어진 산중에라야 저만한

풍모를 지닌 나무가 있다!!

 




아침 출근길에 kbs 라디오 독일 특파원이 전하는 말을
들었다 
 
독일의 자연보호에 관한 사례를 말하는 거였는데,,
 
자기집 정원에 크는 나무라도 이걸 베거나 치워 버리려면
시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반드시 나무 한그루를 보충해서
심어야 한다는^ 물론 그렇다고 아무 나무나 베어 버리고 대신
심으면 된다는 뜻은 아닐것이다

 
우리도 벌목에 관한 법령은 아마도 꽤나 그럴싸하게 만들어져
있을걸로 짐작을 해보는데,, 산이나 들의 나무를 함부로 벨수는
없을것이다^ 시행을 엄격히 하는지는 별개의 얘기가 될 터이지만,,
 
그런데 인간이 나무를 지 맘대로 벨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자연
파괴요 우주의 질서를 모르는 무식한 생각의 발로인 것이다.
대체 무슨 권리로 인간이 나무를 벨수 있는가? 누가 그런 권한을
인간에게 주었단 말인가?  어느 경전이 그런걸 가르치던가?


정원의 커다란 자작 나무에 관한 얘기를 한것인데, 물론 우리가
독일의 환경보호를 그대로 따라 하기는 무리일수도 있을것이다.

방송 내용인즉은~


용인 우리동네



{우리집 정원에는 대략 50년은 자랐음직한 거대한 자작나무가 있다
그러나 북유럽을 덮치는 올칸(Orkan)이라는 허리케인이 오면 필경
저 나무가 집으로 쓰러질것 같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밤이면 잠을
잘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관공서를 뻔질나게 드나든 덕분에 나무 벌목 전문가가 나오길 두달을
기다려 마침내 그가 집에 왔다. 나무가 병이 들어서가 아니고 위험해서
자르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가 줄자로 곳곳을 재고 살핀후 이 나무는 올칸
에 쉽게 넘어질 나무는 아니라고 안심을 시킨다. 그래서  나는 벌목 승인을
받을수 있겠냐고 성급히 물었다. 그는 나무로 부터 조금 떨어진 곳으로
나를 데려가서 높은 가지를 가르키며 나에게 말했다
 

" 자,, 저 위를 한번 봐요^  당신은 나무가 살고 싶어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나무도 생명입니다. 사람이랑 똑같이 살고 싶어해요! 난, 나무의
소리가 들리는데 당신은 들리지 않나요? "
 
열심히 벌목 이유를 늘어놓던 나는 갑자기 할말을 잊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변명을 늘어 놓았다.
 
"주변에 저런 나무가 쓰러지는걸 많이 보아 왔지요. 만일 바람에 쓰러져서
사람이 다치고 집이 무너진다면 어떻게 되는거죠? " 내말에 끄떡이더니 그가
대답했다
 
" 내가 해줄수 있는 이야기는 다 했어요 . 그 다음은 당신의 선택이죠. 그런
위험성을 감안해서 서류를 작성할 것이고 벌목 허가는 관공서에서 서류심사후
최종 가부를 통보해 줄겁니다 " 말을 마치고 그가 잠시 나무를 안타까운 눈
으로 훓어 보더니 정원을 나갔다
 
몇달후 '위험성을 충분히 인정해 벌목을 허가 하지만 나무를 벤 자리에 반드시
대신할 수 있는 다른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조건부 허가서가 배달되었다. 



그런데 나무 전문가가 다녀간 후부터 위험한 애물단지같던 나무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위험해서 베어내야 하지만,, 나를 원망하는것도 같고, 
 
1층 내방에서 컴 자판을 두드리다가 창밖을 내다보면 나무는 항상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봄이면 벨 준비를 하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 앙상한 겨울 나무의
몸짓이 슬퍼 보인다. 비람이 불면 나뭇가지 부딪치는 소리가 흐느끼듯 가슴을
적셔 온다^  }



우리동네 앞산




독일에선 새가 알을 낳고 둥지를 트는 계절엔  벌목을 금지 한다고 한다.
땅에서 1m 정도 높이에서 잰 몸통의 둘레가 70cm 를 넘는 경우 반드시 시의
허가를 받아야 벨수 있다
 
아마도 위 독일 교민은 그 나무를 베지 않았을 거라고 나는 추측해 본다.
우리나라 같으면 위험한 나무가 내집에 있다면, 허가고 자시고 할것없이
그날로 결심만하면 댕강 잘라 버리지 않을까?  얼마전 내가 살고있는 단지
의 1층 베란다 앞의 꽤 굵은 느티나무가 딱 1m  높이를 남기고 싹뚝 잘려

나갔다


깜짝 놀라 관리소에 물어 보니 집 주인의 요청으로 충분히 생각한 결과
그렇게 했노라고 했다. 잘린 나무는 살아 보려고 미세한 가지를 여러개 새로
뻗어내고 있었다^  나무가 무슨 죄인가?  물론 이러저러한 이유야 있겠지만

자기 베란다 앞에 우뚝 솟은 적어도 30년 이상은 키워야 될 그런 나무를

싹뚝 자르기로 결심한 이의 속 마음을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울

뿐더러 만일 내가 그 입장이라면 나는 단연코 나무를 그냥 두고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며 살것이다



 
세상의 나무를 일체 손 안대고 그냥 둔다해서 지구가 망하지는 않을것이다.
우리 나라도 보호수라고 지정된 나무가 많다^ 보호수를 더 확대해야 할

뿐더러 그렇지 않은 나무도 최대한 보호하고 함부로 베어내지 못하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대한 민국이 세계에 자랑할만한 산림녹화국이 된건 사실이지만

아직 국민 의식 저변엔 나무를 하찮은것쯤으로 여기는 풍조가 완전히

사라진게 아닌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종종 들곤 한다



아직도 나무와 자기 자식은 내 맘대로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가

상당수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글도 2018.5 에 카카오 스토리에 올렸던 글입니다

역시 보존 차원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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