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진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 포토 에세이와 포토스토리가 있는데~ "

 

~

 

 

어찌 보면 그게 그거인듯 생각되기도 하지만,

 

스토리는 사진에 대한 설명 그 자체라고 생각하고

에세이는 꼭 그 사진에 대한 설명이 아니어도 그것과 관련된 필자의 의견, 생각,

연관된 이야기 등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것 ~

 

이렇게 나는 정의해 본다. 

 

사실은 스토리와 에세이가 반반 혼합된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어느 쪽이 더 비중이 높을 수도

있지만, 그건 필자의 취향일 뿐 나 자신은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해서, 아래 글과 사진은 5월 초의 에세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

 

봄의 1차 경연은 끝났다. 

 

이제 새싹의 향연도 끝났고 신록의 2차 향연이 무르익어 가고 있는 중이다. 

들판에는 청보리가 울울창창할 테고 여기저기 유채가 만발했고 산철쭉도 벌써

떨어지는 중이다. 

 

올 봄은 배꽃도 놓쳤고 목단도 지나가 버렸고 꽃을 마주치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낸 것이 수두룩하다. 

 

동네 담벼락의 계수나무~  잎이 돋아날 때 제일 이쁘다^ 

무릇 모든 나무잎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4.16일에 찍은 것이다. 

5월에 찍어 보니 너무 이파리 색감이 진하고 우중충하다. 해서 2주 전의 것으로

대체해 본다. 

 

앞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어느 집 텃밭에 방풍 나물이 열심히 자라고 있다. 

 

그래도 얼핏 보기엔 숲 속에 자리 잡은 동네다. 

이제 이 동네로 온지도 7년째~ 

나는 여기서 살게된 것을 무한 다행으로 또  감사함을 느낀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간 너무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아이들 학교니 뭐니 해서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고  별생각 없이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살다 보니 그리 되었었다. 

 

 

깨끗하고 맑은 주변 환경~ 소소한 도심이 그리 멀지 않은 걸어서도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다. 

 

역시 그 사진작가의 말씀이

 

"사진은 자신의 집 앞에서 출발하는 거라고~ 

또 사진은 찍어 뭐할라고? "그러는데,

 

글쎄~ 

 

나 자신 전부터 비슷한 생각을 해 오던 터이다. 

 

그래서 첫 번째로 나는 집 주변을 잘 찍는 편이다. 그냥 이런 것 찍어서 다시 보고

즐거움을 반추하는 그 자체가 나는 좋다. 

 

내가 거주하는 동네 주변을 요 몇년 사이만큼 자주 찍어 본 적도 없다. 

 

이 역시 우리 동네의 자두나무가 연한 잎을 뿜어내는 중이다. 

몇 년 전 대대적으로 나무 가지치기하면서 매화나무며, 살구나무, 자두나무 일부, 또

대나무까지 잘라버린 게 너무도 아쉽다. 

 

다 개인 사정이이야 있지만, 왜? 주민들은 나무 잘라내는데 아무 의견을 내지 않았을까? 

그나마 남아있는 나무들에 고마움을 느낀다. 

 

올봄은 황매화 전성기를 놓치고 말았다. 

주의력 부족이다.  출근길에도 마주치는 놈인데 말이다. 

모든 꽃을 항상 전성기에 다 관찰하고 촬영해 두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 5월의 초반에는  푸라타나스의 아스팔트 길도, 

새싹이 돋아나는 오래된 버드나무의 우람한 줄기도 다 멋지고 아름답다. 

 

고목은 별도로 우대를 해 주어야 할까? 

오래된 나무를 대할 때마다 나는 늘 경외심을 느낀다. 무슨 이유일까? 

하여튼 그러고 싶다. 

 

 

 

무 꽃도, 꽃 잔디도, 금낭초도 봄이면 다 제 할 일을 하고 간다. 

 

비록 며칠 지났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철쭉도 있다. 

 

아주 옛날 산철쭉이 이렇게 피었을 때 동네에서 가장 높은 산, 노송산을 간 적이 있다.

그때 비둘기가 구구대며 울던 것이며 소나무에서 나던 새콤한 향기며 상쾌한 산의

정기가 쏴아~ 하고 온몸에 느껴지던 감흥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 산철쭉은 지난주 느닷없이 이천의 야산 자락에 자리 잡은 친구의 집에 가서

몇 장 찍었다. 

그런곳이 좋기는 하지만, 나는 뚝 떨어져서 산자락에 자리 잡은 집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이 작약은 내가 매일 타러 가는 지하철 역 옆에 피어있었다.

전철 시간에 마음이 급해 매번 그냥 지나치다, 어제 시간을 내어

폰으로 찍어 봤다. 

 

둘러보면 여전히 주변은 지천에 꽃들이 있다. 또 신록이 너무도 멋진 요즘이다. 

어떤 날은 별 볼 일 없다고 카메라를 두고 나간다. 그러나,

비가 온 후 날이 쨍하면 어김없이 카메라는 나의 동반자이다. 

 

새롭고 깨끗한 풍광을 저장해 두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일까?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5월의 하루하루가 또 이렇게 내 곁을 지나가고 있다. 

 

 

고 향 수(故香樹)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스님께서 송광사에 처음 오실 때 짚고 오신 지팡이를 꽂으시며 시를 남겼다.

爾我同生死(이아동생사) 너와 나는 같이 살고 죽으니,

我謝爾亦然(아사이역연) 내가 떠날 때 너도 떠나고,

會看爾靑葉(회간이청엽) 너의 푸른 잎을 다시 보게 되면,

方知我亦然(방지아역연) 나도 그런 줄 알리라.

그 뒤 지팡이에서 잎이 피어 자라다가 보조스님께서 입적하시니 이 향나무도 따라서 말라버리므로

고향수라 하였다. 고향수 이야기는 1751년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기록되어 있고 1886년 순천부사

이범진이 왕실에 보고하던 지도에도 불생불멸이라는 글자로 표시되어 있다.

 

고향수에 얽힌 여러 이야기 중에서 1960년대 송광사를 찾은 노산 이은상이,

300여편의 시조를 남긴 송광사 주지 인암 스님과 고향수 앞에서 시조 대결을 벌였다는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요즘 같으면 머릿글자로 풀어 가는 삼행시 놀이 비슷한 것이었는데^^*

 

 먼저 노산 이은상이 운을 뗐다.

 

"어디메 계시나요, 언제 오시나요 
말세 창생을 뉘 있어 건지리까  
기다려 애타는 마음 임도 하마 아시리" 

인암 스님이 화답했다.

 

"살아서 푸른 잎도 떨어지는 가을인데  
마른 나무 앞에 산 잎 찾는 이 마음  
아신 듯 모르시오니 못내 야속합니다"

 

이처럼 많은 명사들이 기리는 속에 고향수는 보조스님께서 송광사에 환행하여 오시면 다시

푸른 잎을 피우게 되기를 꿈꾸면서 불가사의하게도 800여 년 동안을 이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다.

 

 

 

 

 

보조국사께서 짚던 지팡이라고는 하는데, 

물론 중간에 싹이 나서 한참을 자랐다고는 하나 글쎄~ 

지팡이 치고는 너무 크다. 암튼 이건 설화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 사실 여부가 중요하진 않을지 모르겠으나 나의 생각은 그렇다 )

 

바로 저 위의 우화각이 송광사에서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맑은 계곡수가 그대로 흘러 들어오는 이 누각은 난간에 앉아 잠시 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어찌 보면 송광사 역시 최소 1박 2일 정도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둘러봐야 할 그런 곳이었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 이래 16 국사가 배출된 전통과 유서 깊은 송광사지만, 

역시 법정스님을 빼고는 송광사를 얘기할 수 없다. 

 

올라오면서 봐 두었던 불일암은 오후 4시 이후엔 입장을 삼가해 달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우리는 부랴부랴 시간에 늦지 않게 불일암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불일암에 오르는 길은 두 갈래 길이 있는데, 산을 돌아가는 무소유의 길이 훨씬 가기가

편하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또 다른 길은 매우 가파르다.  

 

담벼락과 기와 처마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청계당 건물. 

 

 

무소유 길에 간간이 피어 있던 산철쭉

 

 

불일암 거의 다 와서 보이는 편백나무 숲!

 

 

이런 몇 개의 글 들을 보면서 오르다 보면 불일암 입구에 다다른다.

 

 

 

 

 

 

 

 

 

불일암은 소박 단순 고요했다. 

멀리 송광사 앞산이 푸르러 오고 하늘에는 흰구름이 둥실 떠 있었다. 

암자 앞 대나무 숲이 바람이 일 때마다 서걱서걱 소리를 낼 뿐 주변 삼림이 그리 

울창하지도 않았다. 

 

앞마당 끝의 후박나무는 굳건히 우람하게 솟아 있었고, 그곳에 법정스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었다. 

 

나는 방명록에 간단히 아까 올라오며 보았던 글귀와 비슷한 짧은 글 한 줄을 써넣었다. 

 

 

사실은 내가 이전에 상상하던 불일암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좀 더 깊은 산, 좀 더 크고 많은 나무, 근처에 많이 흐르는 계곡 물~ 이런 걸 생각했으나

불일암은 아주 단출했다. 

 

그런 나의 상상은 다 무소유와는 상관없는 유소유였을까? 

그간 법정스님은 미국 메사츄세스에 있는 헨리 쏘로우의 오두막 집을 3번이나 방문을

하셨다했다. 

나는 쏘로우가 살던 동네를 한번도 가 본적이 없지않나? 

 

그렇지! 삶이란 어차피 단순한 것인가 보다. 

 

불일암을 보며 든 생각이다. 삶 자체도 단순해야 하지만, 살아가는 주변 환경 역시도

뭐 그리 웅장하고 복잡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불일암은 그렇게 위치해 있었고 따라서

나도 내가 사는 환경을 단순 소박하게 함이 마땅하다 여기고 있다. 

 

이 봄철에 정갈한 쑥국 한 사발 먹는 그런 맛 이라 할까? 

 

집에 돌아오니 그새 벚꽃은 다 져가고 목련도 전성기를 하루 정도 지났다. 

올 봄은 동네 주변의 봄꽃과 남도 여행을 맞바꾼 셈이다. 

 

그러니 억울할 것은 없다. 

 

비록 남도에서는 살짝 늦은 봄을 맞았고~

우리 동네에서는 전성기 봄을 놓치긴 했지만, 

 

 

민속촌 입구 ~ 전성기를 한 2-3일 정도 지난 모습이다. 

 

 

E.S Resort에서 서둘러 정리를 하고 길을 나섰지만 아침 9시를

넘기고 있었다. 

리조트 앞 해안 도로를 경유하여 미륵산 우측으로 돌아가니 박경리 기념관

쪽으로 안내를 한다. 마침 그 부근에는 수목원이 하나 있어 주차를 하고 걸어 들어갔다. 

 

 

 

가는 길에는 전성기를 며칠 넘긴 산목련이 줄지어 피어있었다. 산목련 군락지였다. 

 

 

수목원은 찾는 사람 하나없이 고요 그 자체였다. 관리인은 물론 인기척도 없었다. 

 

 

 

글쎄~ 이곳은 때마침 수선화가 가득 피어 있었고

호수에는 잉어들이 요동을 치고 있는 데다 산새들의 울음소리 또한 청량하기

그지없었다. 

 

별 목련

 

 

여행 사전 조사에서 이곳을 검색은 했지만, 일부러 찾기보다는 

지나가며 들렀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통영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수목원 앞의 이 집도 참으로 평화의 극치였다. 

암튼 이런 곳에 사는 이는 복 많을진저! 

 

세상살이가 뭐 특별할것도~ 더구나 도시에 산다고 대단할 건 더욱 아니지 않을까? 

다 형편따라 사는 거지만, 자연과 가까이 사는게 최고의 행복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통영-대전 고속도로를 타고 진주까지 올라와서 다시 남해 고속도로를 타고 순천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먼 길이었다. 

남해 고속도로 주변에는 대나무 숲이 울창한 곳이 상당히 자주 나타난다. 

대나무 숲을 보니 내가 남도에 머무르고 있음이 실감이 된다. 

아마도 나는 이 고속도로를 일평생 처음 달려 보는 중이다.  

 

두어 시간을 더 달려 이윽고 송광사에 도착했다. 

이미 때는 점심시간이 되어 송광사 입구 식당에서 산채 비빔밥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그런데 역시 

지역 특성이라할까? 

 

사찰 바로 입구의 관광지 음식 치고는 수준이 좋고 맛이 있었다. 우리는 송광사 관람을 마치고 내려와서도 같은 식당에서

수수부꾸미를 하나 더 먹었다.

올해 80세라는 식당 할아버지는 열심히 우리에게 송광사의 연혁, 가 볼 데를 설명해 주셨다. 

 

 

입구에서 만난 눈이 큰 명자씨! 

평생 보아온 명자 꽃중에 제일 크고 깨끗했다. 

 

 

역시 명승 고찰답게 입구부터 범상치 않은 풍모를 보여준다. 

 

 

거기다 송광사는 저 아래 속세로부터 수십 리 아니 어쩌면 예전 같으면

걸어서는 하루 종일을 와야 도달할 그런 산중에 위치해 있다. 

뭔가 제대로 된 명승고찰을 대하는 느낌이 든다. 사찰이란 좀 이런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사찰 이모저모를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뭔지 모를 시간에 쫓기듯

우리는 둘러보기 시작했다. 

 

 

석가래와 기둥 사이을 받치고 있는 저것이(이름은 모르겠음) 통도사는 3개인데 비해

송광사는 4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어 뭔가 격이 좀 높게 보인다. 

 

 

 

 

 

 

유서 깊은 사찰을 이렇게 마구 관람해도 되는 것인가?

누구의 설명도 없고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볼뿐이다. 

 

 

8월쯤 목백일홍이 만개할 때 오면 황홀할 것이다. 

 

 

 

 

 

 

나의 발걸음이 설법전 앞에 머물렀다.

아쉽게도 내부로 진입을 금하고 있었다. 이곳은 수도하는 곳 이라했다. 

 

 

 

 

 

 

 

그저 어디를 봐도 호젓하고 정갈한 풍광뿐이다. 

이날 날씨는 유례가 없이 맑고 화창했고, 기왓장과 담벼락~ 그리고 멀리 푸르게 

새싹이 돋아나는 조계산과 어우러져 기막힌 풍광을 연출하고 있었다. 

 

 

 

대웅전 앞의 연등과 역시 오래된 목백일홍! 

연등과 함께 목백일홍이 장엄한 느낌을 보여준다. 

 

거 뭐 사찰이란 게 다 그렇지 뭐 특별할 게 있소? 이렇게 누가 반문한다 해도

사실 할말이 없다. 

나는 아직 사찰을 좀 더 깊게 보는 안목이 없으니 말이다. 

 

 

 

비슷한 규모이지만 앞서 통도사에 비하면 정말 사진 찍을 일이

많은 송광사이다. 

 

송광사가 통도사에 비해 볼 것이 많다~ 뭐 이런 뜻이 아니다. 이날은 호젓하기도

했고 내가 선호하는 풍광이 더 많이 펼쳐졌다는 의미다. 

 

 

수백 명 아니 수천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밥을 퍼 줄 수 있을듯한

통나무로 만든 밥통?  비사리구시란 푯말이 붙어 있다.

 

설명서에 보면 물 2600 리터가 들어가는 느티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절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쓰였다 한다. 

 

 

오래된 산수유 나무!

 

그런데 꽃이 보통의 꽃 보다 좀 커 보인다. 대개 고목이 되면 꽃이

작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말이다~ 

산수유가 다 그렇지~ 이렇게 말하기엔 너무 꽃이 신선했다. 산수유 철을 한참을

넘기고 있었는데도~

 

꽃은 아니지만 이런 모습은 선운사 가을 감을 보면서도 들었던 생각이다.

 

'스님들의 독경 소리를 들은 감이며 꽃들이 속세의 그것들과는 다르게 나타난다는 느낌~ '

 

 

이 모습은 통도사에도 있었다. 통도사의 것이 더 크고

오래된 듯 보였는데, 아무튼 이런 고목의 흔적을 버리지 않고 보존하는 건

유서 깊음을 나타내는 것 같아 참 좋다. 

 

 

송광사의 연혁이다.

 

창건은 신라 말 혜린 선사에 의해 시작되었고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중창불사를 해서 크게 확장했다는 글이다. 

 

 

이날도 불일 서적 안에는 몇 분이 앉아 조용히 뭔가를 대화중이었는데

참 보기가 좋았다. 아무도 없었으면 들어가 봤을텐데~

내부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송광사의 일주문이 좀 작네, 뭐 그런 얘기가 많다는 바로 그 문이다. 

그보다도 일주문이 조금 한참 위에 올라와 있다는 게 특이했다. 저 아래 입구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글쎄 ~ 그 송광사를 잘 모르니 뭐가 뭔지 얘기한다는 건 적절치 않을듯하다~ 

 

 

 

 

 

통도사를 출발하여 양산, 부산, 마산을 통과하여 통영까지 가는 길은

무척이나 멀었다. 

부산 뒤편을 통과하는 길이지만, 상당히 큰 산들이 즐비했다. 특히 마산을

우회하는 도시 외곽 도로의 풍광은 매우 준수했다. 마산의 중심 부근은 어떨지

몰라도 외곽을 둘러싼 산이 출중한 경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눈에 띄는 나무의 수종도 아열대풍의 이색적인 모습이었다. 

 

" 아! 이러면 이런 동네에 인물이 수월찮게 나겠는데~~" 

 

산수와 인물을 연관시키는 것이 약간의 무리가 따를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나의

첫 感은 그렇게 다가왔다. 

 

마산을 빠져 나가자 급격히 풍광은 그저 그런 야산의 풍모로 바뀌고 있었다.

눈에 띄는 나무들도 이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시원찮은 평범한 것들이었다. 

 

고성에서 통영-대전 고속도로를 다시 타고 내려갔다. 고성은 공룡알과 발자국으로

유명하지만, 눈에 보이는 풍광은 그 예전 전혀 공룡이 살았을 거 같지 않은 평범한

동네였다. 

 

통영 서호시장에 도착했다. 해물도 좀 사고 만성 복집에서 저녁도 해결할 심산이었지만

복집은 이미 문을 닫았다.

식당이 오후 일찍 이렇게 문을 닫는단 말인가? 

 

' 새벽 일찍 문을 열기 때문에 그래요~'라고 인근 가게 주인이 답을 해 주긴 했지만,

아무래도 이거이 선진국형으로 우리 사회가 바뀌고 있는 중 같았다. 

 

아내는 유튜브에서 봤다며 지금 계절에 먹을 수 있는 좋은 거라며 '호래기'라는 작은

꼴뚜기 같은 걸 샀다. 숭어도 2 마리나 사서 회를 떠 가지고 일단 리조트로 출발했다. 

 

달아 공원 약간 못 미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아직 혿동백이 빨갛게 피어 있었다.

 

 

리조트에 도착하여 부랴부랴 저녁 준비를 했다.

아까 서호 시장에서 구입한 호래기와 회를 먹어보니 기대만큼의 맛을 보여주지 못했다. 

 

" 아~ 오늘은 먹는 건 다 꽝이로구나~" 

결국 남은 호래기는 삶아서 술안주로 해 치웠다. 

 

여행에서 더러 이런 일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먹는 게 시원찮으면 덩달아

여행 자체도 재미 없어질 수 있다는 거~  그것이 문제였다. 

 

이튿날도 날씨는 좋았다. 얏호!!

 

나는 미래사 편백나무 숲으로 안개 낀 다도해를 보기 위해 아침 식사 전 리조트를 나섰다. 

아내는 이미 한번 가 본 적이 있는지라 안 따라가고 쉬겠다고 한다. 

 

E.S 리조트에서 본 아침 풍광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풍경은 평화롭고 고요했다!

 

 

 

아침 일찍 미래사는 찾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미래사 편백나무 숲 끝에서 본 다도해 풍경

 

저 멀리 한산도~ 거제도 등이 구름처럼 넘실대며 안갯속에 보인다. 

 

 

어촌의 이른 아침 풍광은 너무도 평화 그 자체이다~(미래사 입구)

 

 

"그래~ 그렇지! 이걸 보려고 멀리 여기까지 온 거야^ "

 

리조트에 다시 들어오니 그 어느 풍광에 못지않은 평화로운 모습이

여전히 전개되고 있었다. 

 

 

이것이 E.S 가 자랑하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그런 모습이다. 

 

 

숙소에서 바라본 통영 앞바다도 못지않게 준수하다.

 

딱 이 자리~

 

식탁에서 내다본 앞바다 풍광이다!

그저 이 자리에 몇 시간이고 앉아만 있어도 몸과 마음이 푹 쉬어질 그런 경치다.

 

 

가는길에 얼핏 보여서 들러본 마을 옆의 이 나무들!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통영 케이블카를 타러 나선다. 그동안 통영을 7-8차례 

왔지만 케이블카는 생각을 못했다. 

휴일이라 그런지 관광객들이 무척 많다. 대기 번호에 맞춰 10여 분 정도 기다렸다. 

 

설악산의 권금성 케이블카도 그렇고 여기 통영의 미륵산 케이블카도 그렇다. 

도대체 케이블카를 타는 목적은 뭘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산 정상에서의 시원한 전망을 보기 위함이다. 

물론 시간을 아껴 산 정상에 도달하기 위함도 있다. 

 

 

 

미륵산 정상에서 본 동원 cc 골프장 및 한산도, 거제도 등의 모습

 

 

미륵산 서쪽으로는 박경리 기념관과 멀리 당포 앞바다가 보인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번에 케이블카를 탄 건 잘한 일 같다. 

통영을 아무리 자주 온들 땅 밑 동네만 다녀서는 이런 전체적인 조망을 얻을 수 없다. 

이제 보니 통영은 참 작은 도시다. 

 

미륵산 정상에는 진달래가 때마침 예쁘게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동서남북 통영 주변의 다도해를 실컷 조망한 후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을 했다. 

 

통영이 낳은 화가 전혁림 미술관과 이순신 기념 공원을 둘러보는 것이 오후

일정이다. 

 

 

생전 거주하던 집을 미술관으로 개조한듯한데,

이 동네가 항구도시 치고는 매우 정갈하고 깔끔한 동네였다. 

 

이분의 작품이 청와대에 걸려있다고 소개가 되어 있었다. 

전시실 내부에는 피카소의 작품이 걸려있었고 내부 촬영을 금하고 있었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미술관 담벼락 쯤에 놓인 화분~

뭔가 깔끔한 이 느낌은 뭘까?  이런 기분은 재작년 이천의 도자기 공방에

갔을때도 있었다. 

 

미술관 바로 앞에는 이렇게 운영하는 책방도 있었다. 

 

'봄날의 책방' 

 

 

점심을 인근 '통영 해물 뚝배기'집으로 정했는데, 맛집으로 소문이 난 듯 손님이 무척 많았다.

마치 제주에 가면 맛볼 수 있는 뚝배기와 비슷한 맛인데, 그래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입에 맞는 식사를 한 셈이다. 

 

 

사실 통영까지  와서 봄 벚꽃 놀이를 할 건 아닐지 모르지만, 만일 우연히 

이곳을 벛꽃 시즌에 지나게 된다면 바로 '용화사'가 있는 이 동네 전후좌우

도로는 아주 멋진 풍광을 보여줄 것이 틀림없다. 

 

한산도 제승당을 꼭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그럴려면 한산도를 투어링 하는 

별도의 배를 타야 했다. 해서 이번에는 패스하기로 했다. 대신 통영의 동쪽 끝에

있는 이순신 공원을 가 보기로 했다. 

 

백전백승이란 말도 있지만, 실제 이순신 장군은 32전 32승을 거뒀다는 

이야기이다. 

 

공원 중앙에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높게 건립되어 있었고 멀리 한산도 입구 

통영 앞바다를 바라보고 계셨다. 

 

동백은 아직 다 지지 않았고, 철쭉은 이제 막 필 준비 중이다. 

 

만일 수국을 좋아한다면 6월 말쯤 이곳을 찾는다면

온통 공원을 물들일 수국의 천지를 보게 될 것이 분명하다. 

 

벚꽃이 살짝 지고 진달래는 아직 피어있는 그리고 동백꽃이 여전히

붉게 곳곳에 남아있는 통영의 늦은 봄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리조트에 늦게 들어오며 수산과학관에서 본 리조트 앞  바다 모습이다. 

 

 

통영 E.S 리조트로 목적지를 잡으니 그 먼 길을 가고 오는 시간을

생각 안 할 수가 없었다. 

단순히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왕복하기엔 아까웠다. 

 

해서 가는 길에 통도사~

오는 길엔 순천 송광사를 들러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실행에 옮겨 보니 총 이동거리가 생각보다 매우 길었고 간단히

돌아볼 그런 일정은 아니었다. 

 

이 나이 되도록 한국의 3대 사찰을 한 곳도 못 가봤으니 어쩜 한심하기도 하고

도대체 그동안 뭐한다고 바빠서 이리됐나? 도 생각이 들고~ 

 

상주를 거쳐 경주를 지나 통도사 입구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내려가는 차 안에서 아내가 열심히 맛집을 검색하여 도착한 곳이, 

 

 

모 생선 구이집이었다. 고등어와 칼치 한토막, 그리고 뭔지 모를 작은 생선 한 마리~

헌데 이 지역에서는 꽤나 이름이 난 곳이라는데, 영 맛이 나에겐 맞지 않았다. 

주차장에 차도 댈 데가 없을 만큼 빼곡했는데 말이다! 

뭐랄까~ 이름만 맛집? 이었다고나 할까~

 

그냥 통도사 입구로 식사할 곳을 정해도 충분한 것이었다. 

 

통도사 아랫동네는 마치 도봉산 입구의 동네처럼 번잡스럽고 잡다한 상점들이

줄지어 들어차 있었다. 

 

아! 이것이 통도사란 말인가? 나는 초장부터 김이 새기 시작했다.

 

헌데,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주변 풍광이 나를 압도했다. 와! 하며 내리다

순간 망원렌즈를 카메라 가방에서 떨어뜨리는 실수를 범했다. 에혀!!

호사다마라더니~ 이게 웬일인가? 

사실 기분이 좀 안 좋았지만, 나는 애써 마음을 잡고 여행 자체에 충실하는데 집중을 하기로

했다. 

 

 

 

입구부터 눈길을 잡아 끄는 대나무 숲! 과 울창한 나무에 매료되어 한 장 찍고 보니

화장실 앞이다.

 

 

마치 북어 머리, 늑대의 울부짙음 같은 모양을 한 이건 뭔가? 

오래된 나무 등걸이다~ 

 

이런 걸 제거하지 않고 보존해둔 통도사의 센스가 돋보인다. 

이 비슷한 건 송광사에도 있었다. 

 

 

바다 위를 용이 질주하는 피안의 세계를 그린 것이라고 영상에서 본거

같은데,  

 

 

 

이런 단아한 전각들이 순 목조건물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 유명한 통도사의 홍매화는 어디 있는 걸까? 

마음이 급해 천천히 둘러볼 시간을 내지 못한 게 아쉽다. 

허긴 이 꽃 홍매화도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사통팔달로 뚫려 있다는 통도사의 대웅전!

 

 

이날 뒷전으로 보이는 이 풍광이 가장 평화롭고 시원함을 주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는 이곳은 아무 때나 출입을 

할 수 없었다. 

 

 

석가모니가 설법을 하던 인도의 그 산과 거의 유사하다는 통도사 뒤 멀리 보이는

영축산! 

 

 

경내를 빠져나와 사명암을 찾아볼 생각에 옆으로 돌아가는데, 

 

 

 

 

 

 

 

그야말로 할미꽃이 이렇게 피어있고~

동강의 할미꽃과는 너무도 다르다! 

 

 

 

 

 

 

첫날 통도사는 이렇게 수박 겉핥기로 끝났다. 

방문객이 상상 외로 무척 많았다. 

 

통도사는 많은 중생들의 사랑을 받는 사찰임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건물들이 너무 다닥다닥 많이 지어져 있었다. 땅이 좁아서 그리됐을까?

조금은 여유가 아쉬웠다. 

거기다 사찰과 세속 동네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었다. 뭐 좀 2,30리는 산으로 들어가

절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통도사는 오래된 고찰답게 우뚝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으며 목조와 단청 등이

매우 고색창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 아니 그렇긴 하지만, 이게 통도사의 전부란 말이요? " 

 

물론 극히 일부라 할수 있을것이다. 통도사를 이런 식으로 주마간산격으로 방문해서야

어디 될 일인가? 

 

다음에 제대로 공부를 좀 하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다시 방문을 해야 할 거란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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