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일기 예보가 비교적 정확해서 주간 예보는 물론
매일 매일 예보를 때려 주고 있는데,

 

사실 몇년 전만해도 우리 나라의 기상 예보는 너무 오보가
많아 항의 전화가 쇄도했다는 풍문이 있다. 이제 일기 예보
없이 일상을 산다는 건 생각도 못할 일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지난 3월인가? 부터 마트에서 구입해온 야채 더미
에서 조그만 청개구리가 한 마리 나와서 결국 이 녀석을 아들이
조그만 케이지에 넣어 길러 왔다는건 블러그에 올린 바 있지만,
무슨 이유인지 아들은 청개구리를 집 밖으로 방사하는 걸 극력 반대
하여 귀두라미,모기,굼벵이등을 구해서 계속 먹여 키우고 있다.
지난 여름에 화단이나 습한 곳 물이 좀 있는 곳에 놓아주려 했지만
주변에 많은 새들이 잡아 먹는다고 안된다하여 결국 아들 방 책장
사이에 놓고 기르는중이다.

 

어제 일요일 오후 느즈막히 갑자기 청개구리가 두번 울었다.엇?
이 무슨 소리~ 청개구리가 울면 필히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오기
때문에, 뭐야 또 비가 오나? 이러고 말았다. 헌데 새벽에 일어나 보니
밖에 비가 내리고 있는게 아닌가? 예전 우리가 동화로 배운 바로는
청개구리가 비가 오려하면 우는건 거꾸로 말하고 먼저 돌아가신 어머니를
개울가에 묻어 그렇다고, 했는데, 사실인즉은 청개구리의 비 예지
능력이 있음을 간과한 글이 아닌가 싶다.

 

 

그게 한 두번도 아니고 우리집 청개구리가 울때 아주 여러번 비가 왔기
때문에 이젠 청개구리가 우리집의 기상 예보관이 된 셈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든 생각^이 제갈공명이 풍수를 미리 예견하고 동남풍이
불걸 미리 알고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대목인데, 분명 그의
예지력은 출중했겠으나, 혹시 이런 미물들을 활용한 기상 예측법을 당시
에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는 청개구리. 바람은 뭐, 특히 동남풍은 뭐,이런 식 아니었을까?

 

 

그럼 청개구리의 비 예측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처음엔 습도의 변화를
감지하는 거 아닌가 했는데, 아들 말에 의하면 비가 오려하면 공중의
물방울 입자들이 모이게 되고 그때 전기적 충돌에 의한 약한 자기장
같은 게 발생하는데,그걸 인간은 감지할 수가 없지만 청개구리는 감지가
되어 우는 거 아니냐 라고 말을 하는데,
그런데 그렇다 치고 왜? 청개구리가 꽥꽥 우는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하찮은 청개구리로 인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건데, 참, 그러고 보면
자연계는 우리가 생각하는것보다 훨씬 많은 미스테리가 아직도 풀리지
않고 남아 있는것 같다.

 

 

하버타운(사우스 캐롤나이나)/빅트리 

 

 

 
인간은 세상에 태어 나는 순간부터 이미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거라는 데
사실 동의합니다. 태어 나서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 가는 그 자체가 스트
레스요 고역이요 힘이 드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그러면 아 이건 스트레스네~ 이렇게 매 번 매 시
마다 느낀다면 아마도 살기 힘들 것입니다. 그런 걸 느낄 수 없어야 실은
살아갑니다. 혹여 몸이 어디가 불편하면 그걸 심하게 느끼지만, 그래서
아파 봐야 안 아픈 상태가 얼마나 행복한지도 알게 되지만,
 
 

 

약국에 오는 많은 분들에게
" 혹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나요? "
라고 질문을 해보면 백에 백은 다
" 아니요 난 별루 스트레스를 안 받
읍니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스트레스가 없는 삶을 잊어 먹었거나 그것이 어떤 상태
인지를 감지하기도 힘든 그런 상태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제 밤에 늦게
까지 잠이 안 와서 곰곰이 생각을 해 봤지요. 잠이 안 온 이유는 오후 늦게
무료해서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신게 원인입니다. 제가 커피에 좀 민감합
니다

 

자, 그러면 왜 사람들은 자기는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고 생각을
할까? 실은 무감각 한 것도 아니고 스트레스 없는 게 무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어서일 것이라 나름 결론을 지어 본다. 핸드폰을 열어 보고 지인
들과 카톡을 주고 받고 TV 를 보고 자동차를 타고 복잡한 도로를 걷고
무얼 먹을까? 고민하고 어떻게 돈을 벌까, 하는 이 모든 것이 스트레스
라는것이다.
그럼 사람 사는데 그것도 안하고 어찌 삽니까? 라고 반문
하시겠지만,

 

 
지난 6월에 난 분당의 주상복합이라는 복잡한 동네에서 용인의 좀 한적
한 동네로 이사를 왔다. 창문을 열면 온통 자동차 소리로 가득하던 그곳
과는 달리 용인은 새 소리가 가득했으며 자동차 매연으로 얼룩진 공기
대신 맑고 향긋한 전나무 숲과 참나무 등에서 나오는 나무 향이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면서 생각이 들었다.

 

" 아! 이런것이 바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인생의 스트레스 라는 거구나,

 

온갖 소음,자동차 소리,복잡함,자그마한 여러 걱정들,그리고 웬지 정형화
된 도시라는 그 자체가 주는 알수 없는 긴박감, 이런게 바로 스트레스라는거"
네모 반듯한 도로, 직선 구간, 전봇대,자동차,높은 건물,이 자체가 벌써
인간에겐 환경적 스트레스를 안겨 주는 요인이라는 거를 이제사 깨달은 것이다.

 

거기다 각종 인간 관계에서 발생하는 미움,괴로움,서운함,풀지 못한 앙금 찌꺼기
원수같은 마음,남 보다 잘 되려는 욕심, 열등감, 자괴감,기타 명예욕,돈 욕심
등등이 얼키고 설키니 이 모든 스트레스를 어이 할까나^

 

용인 이 동네는 높은 건물이래야 고층 아파트 정도이고 도로는 굽어 있고 나무는
예전 자연림이 주류고 밭이 있고 무엇보다 큰 동네가 아닌 자그마한 동네이다.
얼핏 어설퍼 보이는 이곳이 이렇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줄이야! 그렇구나..사람이
어디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만족해야 하는지,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지, 이런게
꽤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요즘이다.

 

예전 처음 과천에서 신혼 생활을 막 시작했을땐 5층짜리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앞 동의 고층 아파트가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었다.
허나 이제 돌고 돌아 고층아파트에서 졸업을 한 지금은 전혀 그 반대가 되었다.
낮은곳으로 낮은곳으로 몸도 마음도 낮은곳으로 이다.

 

 

" 스트레스 같은거 안 받아요.." 가 아니라..

 

무엇이 인간의 내면을 복잡하게 하는지, 무엇이 나를 편하게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찰이 따라야 비로서 인생이 조금은 자유롭고 편안해질 수
있는것이다.

 

진정 나를 둘러싼 스트레스가 무언지를 알려면 조용한 침잠의 세계로
나를 던져야 한다.

 

그것이 현대 도시 인들에겐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무릇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고 말해도 누구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인간이 무리를 이룬 곳에는 반드시 무언가 그

무리를 이끌고 가야할 리더라는게 필요하고 그 리더를 정할때

결국 다수의 지지를 받는 쪽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약사 사회에도 지난 12.10일 대한 약사회와 16개 시,도지부

지부장을 뽑는 선거를 마쳤다. 우리와 같은 다른 많은 직능 단체

들도 아마 선거를 치르리라 생각된다. 

물론, 국회의원, 시장, 대통령같은 선거를 치러 봐서 선거가

뭐란 걸 쓸 필요도 없으려니와

이미 다 알고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번 직능 단체장을 뽑는

선거를 하며 느껴지는 감회가 없을 수 없어 한마디 적고 넘어 가려한다. 

 

세상은 각자 자유로 살아가는 것이라 단체의 장을 뽑건 말건

전혀 관심이 없는 부류가 있다.

 

이들은 이미 이 모든 정치 행위 에 대한 환멸과 증오가 겹쳐

아예 선거란 장에 발을 디디려 하지도 않는다. 그 결과 투표율

이란게 60%, 많아야 70% 정도에 그치고 만다. 

그리고 그 70%의 참여자도 사실은 리더란 인물의 실체를

거의 모르고 투표란걸 한다.

 

더구나 리더란 개인적 인물의 탁월성이 기본이 되어야 하지만

실은 궂은 일 뒷치닥거리, 의견 조합력,돌발적인 개인 주의등을

나타내지 않아야하고 때로는 몸을 낮추고 굽신거릴 줄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리더의 능력을 무엇이다,라고 정의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사심으로 돈을 밝히지 않아야하고

일처리 가 공명정대 해야하며 뒷돈을 챙기거나 자신의 향후

유익을 위해 의사 결정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무지해서

판단력이 없거나 문제에 봉착해서 우와좌왕 방향을 못 잡는 일이

있어서도 안되는 것이다.

 

뭐가 됐건 마지막 결단은 리더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리더는 인간적인 개인적 훌륭함에 더하여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하는

묘한 자리인 것이다.  그런데 직능 단체의 선거라고 뚜껑을 열고

보니 이게 정치판은 저리가라 라는 점이다. 결국 정치판의 온갖

못된 방법만 배워서 비교적 순수하고 젠틀 해야할 선거가 완전

흑색 선전에 네가티브의 극치를 보여준것은 유감을 넘어 심히

불쾌하고 다시는 선거라는 걸 하고 싶지도 않을 맘이 생기게

했다는것이다. 

 

결국 선거란 게 무관심한 많은 대중에게서 표를 얻는자가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에 여기엔 정의도 양심도 특단의 가치도 끼어들

이유가 없고 오로지 상대후보를 깍아내리는 자극적인 문구와

확인되지 않은 온갖 루머, 그리고 추측성 소설을 써서 이렇다 할

정보가 없는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면 그만인 그런 게임이란

것이다.

 

물론 유권자 개중에는 이미 깨어있어 그 어떤 흑색선전에도 미동

도 않는 판단력을 갖추고 있는자가 있긴하지만 대체로 그런 부류는

총 유권자의 10%도 안 될것으로 나름 추정을 해본다. 그만큼 인간은

세상의 이치에 깨어 있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 살기도 바쁜

데 언제 남의 인생살이에 끼어들어 그들의 족적을 자세히 알 수가 있

겠는가?

 

해서 결국 선거는 누가 더 자극적인 흑색선전을 잘 하느냐에 승패가

달려있다해도 과언이 아닌,,그런것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공약이란 건

그 누구도 쳐다 보지도 않고 선거 끝나면 유권자도 후보도 잊어 먹기

딱 좋은 그런 시시한 것이되고 만다.

 

거기다 결정적인것이 돈이다. 돈 없이 양심적으로 선거해서 이긴다는건

바닷물 속에서 생수를 찾아 마시겠다는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몇푼이

라도 ** 밥이라도 얻어 먹거나 해야 표를 찍어주는게 인간의 본능

이라할까. 또 그런 저런 비용을 충분히 대주지 않으면 누가 자기 돈

들여 열심히 운동을 해 주겠는가?

 

모든 유권자가 세세하게 후보의 성격과 인격과 그의 장단점을 알고

과연 리더로 누가 더 적격인지를 알아낸다는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게 원초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조차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불완전한 리더를 택하는것이니 그 과정이 그렇게 되고 결과 또한

신통치 않게 되는것이다.

 

그렇다고 선거를 안하고 더 좋은 방법이 있는가? 현재로서는 없다.

그러니 이 문제 투성이의 선거란 괴물을 가지고 갈수 밖에 없는데,,

긍극적으로는 리더가 필요없는 사회가 온다면 될지도 모른다. 과연

리더가 없어도 잘 굴러가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글쎄다^

 

아무도 단체장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는것도 문제지만 서로 달겨들어

그걸 하겠다고 나서는것도 문제는 문제다. 왜? 달겨드는가? 거기에

그만한 반대 급부가 있으니 그러지 않겠는가? 물론 일의 보람도 없으란

법은 없으나 대체로 정치적 어떤 그런것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단체직능의

대표를 국회의원등으로 불러들이는것은 좋게 보면 민의를 수렴하는 것이지만

뒤집어 보면 그것도 하나의 통치의 수단인 셈이다.

 

마약같은 그 유혹에 단체장이 휘둘리면 그 직능단체의 운명은 보나마나가

되고 만다. 단체를 팔아 개인의 정치적 야심을 채우게 되기 때문이다.

그 이후는 말할 필요도 없을것이다.

 

아^ 선거.. 참,,민주주의의 핵심이긴한데,,이것이 그렇게 이상대로만 되는게

아니다. 없앨수도 없고 놔 두자니 갈수록 문제투성이가 되고 무관심한 대중이

갑자기 유관심한 사회로 될수도 없는것이고 , 선의의 경쟁은 이미 저 멀리 사라

졌고 무슨수를 써서라도 상대의 흠집을 잡아 침소봉대해야 이길 수 있다,,

누구를 탓하랴^ 이게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닐터^

 

되지도 않을 일에 끌탕을 하지말고 나는 내 갈길을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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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도 최북단 시레토코 가는길 ..달리는 차안에서 촬영(2011.8)

 

 

그대는 모르시더이다 / 마로니에 

 

 
  

사는게 뭐 있어?  없어~

  인생 뭐 있어?   없어~ 

  

  

있긴 뭐있어 없어! 그럼 아무것두 없단 말이냐? 아니지, 뭔가 있긴 있을테지~

 

20여 년쯤 전인가  태국행 밤 비행기에서 옆에 앉은 후배 약사님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음~ 당신은 약사가 되어 인생에 보람이 되었거나 아니면  다른 직업에

 비해 이게 좋은 점이다^^ 할만한게 뭐라 생각하슈?" 내가 물었다. 골똘히 생각

하던 그,

 

"나는 말입니다. 뭐 좋은 점이 많겠지만 나나 가족이나 아는 사람들이

불편할때 맘대로 약을 쓸 수 있으니 그게 제일로 좋은 점이라 생각해요" 

 

 

음! 그렇지 제 아무리 고관대작이라 해두 지 맘대로 필요할때 약을 쓸순 없지~ 

소위 전문가적 특권이란 게 그거라 할 수도 있었다. 그것도 지금같은 분업하에선 

내 맘대로 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긴 한데,그게 약사가 되어 내세울 수 있는 차별화된 점이란 말인가? 

아니 그건 약사의 일상의 일이지 참,

 순간 나는 가슴이 살짝 답답해 왔다, 그건 내가 기대했던  

 답과는 사실 먼 그런것이었다.

 

허긴 약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의약 분업도 강력히 찬성했지 않는가? 약사는

이래 저래 약을 다루고 만들고 약가루 속에서 일생을 보내는 게 숙명이다.

 그렇다 해서 인생 자체가 약가루 속에 파묻혀 스러질 수야 없지?

 

 

당시 내가 생각했던 약사의 최대 强点은 自由人 이었다. 물론 보이지 않는

이곳 저곳에 자유를 억압하는 요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적어도 회사원이나

 공무원에 비해서는 덜한 게 사실 이었다. 개국약사는 자유를 극대화 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해야 그 가치가 빛날 수 있다는 거였다.물론 그 외에 봉사 활동을 중시 하거나 환자의

 치료에 더 비중을 두거나 지역 사회 활동에 큰 의미를 둔다거나 등등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종국적으로 그 모든 극점이 자유의 극대화로 모아지지 않으면 빛을

 발할 수 없다는게 나의 소신 이었다.

 

 

 물론 이것은 약사란 직업의 목표만도 아니고 세상의 수 많은 자유직업을 가진 

이들의 인생목표일 수도 있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자유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자유롭지 못하게 살면 인생에서 뭘 더 바랄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인생 뭐 없는거다. 자유직업 아니 

자영업이라 표현하기도 하는 부류의 직업은 스스로 하는 직업이란 말 아닌가?

엄밀한 의미에서 약국을 자유업이라 부르긴 조금 미흡하지만 될수록 그쪽으로

포함시키고 싶은 것이 나의 희망사항 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겉으로 보기엔 개국약사란 직업은 가장 자유가 없는 직종으로 널리

인식되어 온 게 사실이다. 좁은 공간에 갇혀 일생을 지내는 것으로 보여져

왔고 또 사실 그렇지 않은가?  맘대로 약국을 비울 수나 있나.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일반 국민들의 눈에는 약사는 부자유한 직업, 답답한 인생, 옴짝달싹 할수

 없이 고리타분하게 세상을 사는 사람으로 여전히 이해되고 있는게 현실일 것이다.

물론 개국 외에 타 분야에 속하는 약사는 다르게 평가를 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약사의 인생 목표를 자유인으로 설정하는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무슨 얼토당토 않은 목표란 말인가? 

 

캐나다 록키산 레이크 루이스 호수 2012.8.촬영 
  

 

우리가 약대 초년병 시절에 배운 물리약학 시간에 전자의 자유도란 말이

있었다. 자유도가 높은 전자와 그렇지 못한 전자가 있다. 공유결합을 이루는

전자는 자유도가 없이 찰떡 궁합이되어 매우 안전한 궤도를 돌고 반대로 자유도가

높은 전자는 궤도를 쉽게 이탈하여 떨어져 나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유도란 개념

(degree of freedom)을 인생의 자유에 연관시킨 것인데,전자의 자유도와 인생의

자유도가 정확히 일치하는 개념으로 보긴 조금 어렵지만 자유란 맥락에서 그

의미를 빌려 본 것이다.

 

 

인생도 이와 같이 자유도가 거의 없는 일생을 사는 이가 있는 반면 자유도를

높일 만큼 높여 가며 사는 인생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직업에는 속성상 나름의 구속과 제약이 수반되어 인간 본연의 자유를 충분

히 발휘하지 못하는 분야가 있게 마련이다. 사람마다 그 기준도 다르고 평가도

다르니 쉽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예를 들자면, 상하의 계열이 확실한 기업체

간부나 또는 최고경영자,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되면 아무래도 역학 관계상 운신의

폭이 일정부분 제약을 받기 마련이다.서열과 조직 생활을 꼭 부자유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그런 종류의 직업이 자유로운 삶의 실현에 적합하다고 보진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 직업군이 누리는 삶의 자유도와 우리 같은 직업군이 누리는 삶의 자유도는

분명 약간은 차이가 있을 것이지만,

 

여기서는 약사의 자유도를 말하는 중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으며 그 어떤 직업도 절대적 존엄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저것에 비해 질이 낮다거나 가치가 더 높다거나 등으로 등급을 매길 수는 없다.

무슨 일을 하든 하늘 아래 모두 존귀한 가치를 갖는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그래서

예로부터 전해져 왔다.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인생이 행복을 위한 것이 분명하다면, 자유도의 정점이자 최종

목적은 행복 추구에 있을 것이다. 약사가 추구하는 자유도도 거기에 있다. 자유롭게

인생을 노래하고,자유롭게 자신의 일을 해 나가며 자유롭게 세상을 오가고,자유롭게

해보고 싶은걸 해 보고,느끼고,그렇다. 답은 간단한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하길 원하는

지는 속단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원하고 버란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태생적으로 외적 한계와 내적 자기 구속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란 게 맘만 먹으면 저절로 굴러 들어오는 게 아닌

것이다. 특히 내적 자유가 만만치 않을 뿐더러 우리는 외적 자유에 매우 취약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內外는 상호 연결되어 있어 외적 자유가 부실하면 내적 자유도

변변치 못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커지므로 절대 소홀히 할수 없는 부분이다.

 

 

예전 회사에 다닐 때는 회장이란 분이 늘상 강조한게 "본업에 충실하라"였다.

회사원이 본업에 충실하면 어떻게 되는가? 당연 회사가 좋아지고 그 다음에 사원도 나쁠건

없겠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본업만 충실하면 행복해 지는가? 약사가 약국만 충실하면

저절로 행복이 찾아 오는가? 국민들이 자기 일에 충실하면 국가와 국민이 건전해 지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곧 모두가 행복해 지는것 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본업에 충실하지 않은 행복은 실재하기 힘들다. 따라서 본업과 행복지수는 필요

충분 조건이 될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는 것이다. 뭐가 됐든 행복은 긍극에 인간의

자유가 동반 되어야 빛이 난다는 의미다.

 

 

자유도를 높이다 높이다 아예 약국이란 울타리를 튕겨져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전자궤도를 이탈한 전자가 다른 궤도로 가서 결합하는 꼴이다. 허나 99.9%의 약사들은

그렇게 하기 힘들다. 우린 그렇게 직업 자체의 자유도가 높은 불안정한 직업군이 애초에

아니기 때문이다. 해서 그걸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제 아무리 높여봤자 약국을 맴돌기

때문이다.

 

 

뱅쿠버 포트무디  요트장 2012.8  

 

 

 

약국을 열고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위와 같은 생각을 했다. 무려 20년도 훨씬 전 이다.

뭔가 해보고 싶었다. 무엇을 해보면 내가 좀 자유롭게 되는 걸까? 아니 어떻게 하면

이 직업에서 나의 가치와 존재 이유가 빛이 나게 되는 걸까?

 

 

학창시절에 그토록 유행을 하던 테니스는 당시 돈이 없어 해 볼수가 없었다. 직장을

다니며 비로서 테니스 라켓을 잡아볼 수 있었다. 주말마다 등산도 많이 다녔다. 그것

들이 말하자면 자유도를 높이는 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약국을 하면서 골프를 알게 됐다.

탄력이 어마어마한 공이 푸른 하늘로 높이 날아 가는 걸 보며 난 가슴이 뻥 뚫어지는

해방감을 느꼈다. PGTCA 티칭 프로도 되었고 0.1%에 속한다는 싱글도 되었다.

 

국민 소득이 3만불 4만불 시대에는 요트,승마,자가용 비행기 같은 것들이 등장한다

했다. 조금 기다리면 이 나라에도 곧 그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자동차도 그렇게 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스키도,노래 하기도,글 쓰기도,사진도 그렇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취미 활동을 열심히 하는게 자유도를 높인단 얘기냐? 라고

반문 하실지도 모르겠다. 물론 취미 활동을 하며 여가를 활용하는 것만이 인생의 자유도를

높이고 자아 실현을 하는 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묵묵히 본업에만 충실

하며 사는 것이 삶의 전부라 말할 수도 없는 것은 위에서 설명한 바 있다.약국하면서 취미

활동만 한것도 아니다. 본업에 속하는 다양한 분야의 공부도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고 나름

열심히 해왔다. 따라서 '이것이 인생의 자유도요' 라고 한마디로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고

결국 판단은 각자 개인의 몫으로 남겨 진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덧붙여서 인생에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보람이나 성취욕이 있는데 그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을 옧죄는 부메랑으로 돌아와서는 곤란한 것이다. 높은 위치에는 도달

했지만 그 때문에 행동에 제약을 받고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인생을 산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따라서 자유도를 높인다는 것은 높여진 그것이 자기 자신을 구속하지 않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자유란 한 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높이되 무엇으로 부터의 얽매임이 적어야

하고 천정없는 하늘을 날듯 가벼워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해 볼게 없다는 건 자유의 종말을 의미한다. 버킷 리스트를 운운할것도

없이 알프스 연봉을 올라보고 그곳에서 스키도 타 보리라. 티벳의 고산을 트레킹

하고 안데스 산맥에도 올라 보리라. 계림에서 골프도 쳐보고 황산 장가계는 물론

곤명도 다시 한번 가 봐야지.다가올 세대는 중국의 시대라 하지 않던가?

 

그러니 부지런히 이곳 저곳 다니며 견문을 넓혀야할 것이다.북유럽과 북미의

태고적 자연에도 가 봐야지.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석양을 바라보며

멋지게 건너 봐야지~

 

 

  유후인의 봄날 2014.5  

 

 

이와 더불어 최근 공부한 자연요법은 병의원에서 치료하기 힘든 무수히 많은 질병

들을 치유의 길로 인도한다. 분업하에서 대다수의 약사들이 처방 조제에 일생을

바치는 이때에 제 3의 영역에서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음에 나는 무한한

감사와 약사됨의 보람을 극도로 느끼고 있다.이것은 본업의 곁가지에서 자유도를

높이는 중요한 부분임을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다.

 

 

 

좁은 공간에서 일생을 보내는 우리지만 내면적 성장은 무한히 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연의 빈약함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실은 자칫 잘못 하다가는 내외 모두

부실하게 일생을 마칠 공산이 아주 큰 직업이다.답답함을 견디다 못해 틈만 나면 여행만

다니는 여행 증후군에 속하는 이들도 있지만, 균형이 있어야 한다.外延의 확장에 못지않게

내면의 자유도가 잘 조화 되도록 해야한다. 그렇게 되면 세상 그 어떤 직업군도 무엇도

따를 수 없는 행복을 성취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생의 자유도란 개념을 처음부터 가져야 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되 언젠가는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꿈이 아니라 부단한 자기와의 투쟁과 성찰이

병행 되어야만 상당 수준의 성과를 거둘 수가 있을 것이다.

 

"인생 뭐있어? 없어!! "

 

이것은 民草들의 절규에 가까운 아우성이다. 허긴 억만장자도 고승도 철학자도

한결같이 "없어" 라고 외쳤다. 일찌기 성경 잠언에도

 

"헛되고 헛되도다"

 

라고 말했다. 그러니 없으니 어쩌란 말인가? 뭔가 있을듯 있을듯 한데 끝에 가서 보니

아무것두 없더란 말 아닌가? 하지만, 이건 아닌데,아닌데,하면서 하루가 저무는 인생!

그런 인생을 살 수는 없다.

 

 

그러니 후일을 기약말고 현재에 충실할 일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나중에

행복할리가 없잖은가?

 

단호히 "없어"라고 선언하는 순간 긍정의 불길이 활활 타오를 것이다.

어차피 없는 인생 그래 함 살아보자. 너무 아끼지 말고 너무 주저하지 말고 쓸데없이

욕심부리지 말고 내가 못하는것 부러워만 하지 말고 남이 잘한다고 시기 질투하지

말고 주어진 나의 자리에서 내가 할수 있는 최대의 자유를 누리고 이루어 내며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말고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것이다.

 

"없지만" 결국은 있게 되는 인생! 그렇다. 더 이상 넓힐 수 없을 만큼의 자유도의

정점에서 없을거 같던 인생이 있음이 되는 그런 삶,

 

그 무지개 같이 피어 오르는

꿈을 가슴에 안고 한번 멋지게 살아 보자.

 

 

 

 

마곡사의 가을 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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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도의 여름 2011.7.30 촬영

 

빗소리는 나의 마음  나의 고독^

 

 

빗소리를 언제 들어 보셨나요?

 

시골 볕짚 초가지붕에서 떨어지던 빗소리를 기억한다. 비가 내리면

볕짚으로 엮은 초가지붕에서 물이 떨어져 아래 흙으로 된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똑똑똑 또로로똑! 주주주죽,좌악,솨르르 좌악^

 

비가 많이 올때와 조금 올때 각각 그 소리가 달랐다. 가랑비가 올때 들

리는 그 소리는 또로록 똑, 어둑한 날 시골 촌 동네에 이 소리를 들으며

아득한 평화속에 낮잠을 잔다

 

그 빗소리를 도회지 생활을 하며 거의 잊어버렸다.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그저 살기 바빠 신경도 안 썻다. 허긴 비오는 소리가

살아가는데 무슨 소용이 되나?

 

눈이 쌓이는 소리는 마음으로 듣는데 번잡한 도시생활에서는 그 소리

역시 들릴리가 없다.

 

어제 밤에 비가 내렸다.

 

맹공이 소리가 멀리서 들려 그 소리 듣고 자려고

거실로 나온건데 결국은 빗소리에 잠이 깻다. 그리고 빗물이

떨어지는 딱닥 따다닥 딱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난다. 그것이

흙으로 떨어지는 소리는 아니지만 왜 그리 정겹게 들리는지!

 

문득 그간 잊고 살았던 그 빗소리가 생각이 난 것이다.

 

 

사람이 살아 가면서

감사할것이 어디 한둘이겠냐마는, 빗소리와 맹꽁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에 나는 무한한 감사와 고마움을

느낀다.

 

거기다 새 소리까지 덤으로 들리니^^

 

 

 

 

빗소리는 나의 마음/섹소폰 연주

 

빗소리는 나의 마음 나의 고독

길잃은 나그네의  조용한 흐느낌

사랑은 슬픈 사연 슬픈 추억

 

길잃은 나그네의 무거운 침묵

아아 밤은 깊어 비는 내리네

 

빗소리는 나의 마음 나의 눈물

길잃은 나그네의 조용한 쓰라림

사랑은 슬픈꿈 슬픈상처

길잃은 나그네의 무거은 발길

아아 밤은 깊어 비는 내리네

 

*  *

 

 

빗소리!!

 

길떠난 나그네의

영혼의 안식처

 

메마른 대지의 위로자

생명의 은혜

 

마음과 영혼에

내리는 저 소리를

 

비는 나그네

비는 위로자

비는 생명

 

비는 사랑

비는 희망

(maro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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