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제천 지방에 단풍이 아주 절정이야~"

 

지난 주중 아내의 친구가 제천 지방을 여행하면서 보내온 짤막한

카톡을 열어 보며 우리도 이참에 제천 쪽으로 가을 단풍을 보러 가면

어떨까?  아내가 제안을 한다.  

 

" 그래? 까짓 거 당일치기로 다녀오면 안 될 것도 없지~ "  해서 새벽 6시에

출발을 했다. 나는 내심 구인사 ,시원찮으면 부석사, 거기도 시원찮으면 축서사

까지 쭈욱 함 일주를 해 볼 참이었다.  산을 오르는 게 아니니 시간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날 안개가 자욱했다. 겨우 100여 미터 앞만 보일 뿐이었다.  단양 톨게이트를

빠져 도담 삼봉을 지날때도 역시 안개다~ 

 

요즘 유튜브에 핫하게 등장하는 보발재가 바로 구인사 가는 길에 있다. 보발이라는 뜻은

보물이 발원한다는 의미다. 

 

 

 

 

안개라는 것도 만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다. 보발 마을을 지나면서

이때를 놓치면 끝이다 싶어 차를 세우고 잠시 촬영을 해 본다. 밭에 

추수를 기다리는 콩이 도열해 있다 

 

드디어 보발재 전망대에 이르러 보니 앞이 아무것도 안 보인다

 

 

이곳이 보발재이다

 

 

저 아래 굽이굽이 고개에 단풍이 절정이라는데 ~ 아쉽다.

그러나 천천히 내려가면 관찰한즉 역시 올해 단풍은 볼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구인사에 도착해서도 역시 안개는 여전했다 

 

우선 차를 주차시키고 아침 식사부터 하러 식당에 들어갔다. 음식이

나오는 시간에 인근 폐 건물 옥상에 올라가 주변을 살핀다. 

 

 

 

 

청국장으로 뜨듯하게 아침을 먹었다. 마침 이 집 주인이 청국장

 

명인이라 그런지 정말 맛이 있었다

 

자! 그런데 구인사 입구로 올라가며 예전에 기가 막힌 맛을 보여주던

산채전을 지금도 하냐고 대충 그 집을 예상해 아주머님께 여쭤보니 

지금도 한다고 ~  그런데 나중에 아내는 그 집이 아니고 한집 아랫집

이라고 귀띰을 한다.  어차피 아침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산채전은 오늘

먹기가 어렵게 됐지만~ 

 

그저 웬만큼은 단풍이 들었지만, 그다지 찍을만한 풍광엔 미치지

못한다. 날이 갑자기 추웠는지 푸른기가 남아있는 은행잎이 많이 떨어져 있다 

 

 

 

저 위로 돌아 올라가면 구인사 시작인데, 조금 전 위에서 내려오는

어느 여행객(엄마와 딸 ) 에게 물어보니 저 위보다 여기 올라오는 길이

더 낫다 라는 말에 이쯤에서 내려가기로~ 결정 

 

 

여기 구인사는 몇년전에 와서 사찰 끝까지 올라가 본 적이 있기에

저 위의 풍광이 딱히 궁금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멀리 구인사 까지 와서 단풍사진 한 장도 못 남긴단 말이냐?

얼핏 보면 그럴싸 하지만, 사실 나의 기대치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는 단풍

이긴 하다 

 

그래 뭐 이쯤에서 소백산 넘어 부석사로 넘어가자! 소백산 자락으로 돌아

가는 길이 뭔가 운치가 있을 것 같으니~ 

 

그래서 난생 처음 구인사 즉 봉화로 가는 길을 찾아 나서는데~

 

 

 

여기가 영월 동강 래프팅 장소라 한다. 아침 안개가 낀 풍광은 

그런대로 운치가 있었다. 저 아래쪽으로 한참을 가서 강을 건너 우측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참을 달리자 김삿갓 마을이라는 곳이 나타났다. 이름하여 김삿갓면이었다.

차를 세우고 안내 표시판을 봐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김삿갓 유적지도 

있다고 하는데 어디쯤인지 감이 안 잡혀서 그냥 봉화 쪽으로 어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가는 길이 장날이라고 첩첩 계곡을 돌아 들어가니 그쪽이 바로 김삿갓

유적지로 가는 길이었다. 

 

 

 

우선 삿갓 어른이 따라주는 약수

한 잔을 마신다 

 

 

삿갓 선생의 묘는 아주 한적하고 그의 행적 만큼이나

여유롭고 운치 있는 곳에 모셔져 있었다. 이곳엔 아주머니 두 분이 

관리를 하고 계셨다. 

 

 

 

영월 동헌에서 개최된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던 실력이니 그의

글 솜씨는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김삿갓의 수많은 시는

이미 연재 글로 카톡에서도 많이 보셨을 줄로 생각된다. 실존 인물로

전국 곳곳에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생각지도 않게 그의 유적지를 들르게 되었다. 그가 살았던 집은 여기

에서 산속으로 몇 키로는 더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정말 생각지도 않게 김삿갓의 유적지를 둘러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상당한 글재주와 통찰력을 가져 일찍이 벼슬길에

올라도 손색이 없었을 김삿갓이 세상 방랑의 길로 접어든 것도 다 팔자

소관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탁월한 선택이랄까? 만일 그가 시류에 따라

어디 벼슬이나 한 자리 했다면 오늘날 누가 그를 기억이나 해줄까? 

 

김삿갓을 서민문학의 창시자라 부른다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감히 양반

문학이라 해서 쉬이 능가할 그런 것은 아니다 

 

 

 

 

솔직히 조선 어느 왕의 묘소보다 더 한가롭고 자유로와

보이는 그의 묘소였다.  나는 입구에 익어가는 산수유를 몇 개

따서 입에 넣어 보았다

 

국토가 좁네 마네 하지만 죽어 어느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는 거

보다야 백번 더 좋아 보이지 않는가? 

 

SUV  차량 한 대가 휙 들어왔다 내리지도 않고 다시 휙 돌려 나간다

그리고 우리 앞서서 봉화 쪽으로 달린다. 아니 내려서 물 한 모금도

안 마시고 도로 갈게 뭐 있나? 

 

한참을 더 달려가다가 앞 차는 슬며시 자리를 비킨다. 나는 의기양양

하게 앞서서 길을 달렸다. 그러나~ 이 길이 어떤 길인지를 알았더라면

나는 절대 이 길로 부석사 쪽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소형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산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옆에 아내는

이런 산길을 평생 처음 차로 와 본다며 ~ 

 

절대 반대편에서 차는 오지 말아라~ 기도하며 고갯길을 올랐다. 그런데

3대의 차량을 만났다. 그들도 멋도 모르고 이 길을 오고 있음이 분명했다

천만다행으로 차가 비킬만한 위치에서 만났으니 망정이지! 

 

부석사를 가며 지나온 산 길을 보니 소백산의 중간 정도 되는 해발 850m

마구령이란 고갯길을 넘어오는 어마 무시한 산 길이었다. 

 

 

 

 

 

부석사는 들어갈 생각도 않고 아내는 연신 사과 파는 노점을

기웃거리며 상황을 파악 중이다. 직접 따고 키로에 5,000원

이라는 사과농장도 보고, 2만 원에 여남은 개의 비교적 큰 사과

를 파는 가게도 보고~ 

 

결국 부석사 들어가는 제일 안쪽 하나 못 미처 농장에서 흥정을

끝냈다. 서리를 두세 번 이상 맞아야 맛이 좋다는 부사 품종이다

 

 

 

집에 와서 풀어놓은 사과~ 이것이 큰 박스에 들어 있던 5만원 어치다 

 

 

 

그런대로 근사해 보이지만 사실 단풍으로는 영 시원찮은

풍광이다. 그것은 단풍잎의 상태를 보면 쉽게 알 수가 있는데, 

칼라며 느낌이 영 예년의 그것이 아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노랗게 소담스럽게 익어가는 모과가

눈길을 끈다. 

 

 

 

부석사는 이번까지 총 4번째 방문이다. 작년에는 해 질 녘 석양에

겨우 당도하여 간신히 볼 수 있었다. 부석사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일망무제의 탁 트인 풍광은 정말 압권인데~  이번은 역시이고 작년

의 석양 풍광을 하나 올려 드릴까 한다! 

 

 

2020.11.4 촬영

 

 

 

부석사는 역시 이 무량수전이다. 목조 건물로 워낙 유명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는 연유를 제공한다. 

 

앞서 김삿갓이 이곳 안양루에 와서 지은 시가 하나 있다. 안양루 내부로

들어가면 볼 수가 있는데,  여기서 김삿갓이 자란 동네와는 산 하나 넘으면

되는 곳이다. 

 

 

 

물론 그 옛날에는 산 넘어 영월 산골에서 이곳 부석사는 쉽게

오고 갈 그런 곳은 아닐 터이지만, 금강산부터 함경도 전라도 경상

각지 까지 천지를 유람했던 김삿갓이 부석사에 당도하여 이런 시를

남겼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그렇게 산천 주유를 하고도 평생에 여가가 없었다니~ 

세월은 무정하고 나는 이미 늙었다는 구절이 가슴에 깊이 박히는

그런 싯구다! 

 

 

 

그나마 조금 남아있는 단풍을 겨우 한 장씩 담아 본다

 

사람들은 바위가 떠 있는 듯 보이는 그 바위에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바위가 어찌 공중에 그냥 뜰 수가 있단 말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마케팅에 부석사는 유명해졌고 인근에 있는 

축서사는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사찰이 되고 말았다. 실상 부석사가

위치한 봉황산은 산세도 미약하고 웅장한 면모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도 250여 키로를 달려갔는데 억울하지도 않소? 뭐라도 좀

보고 오셔야지!  억지로 몇 장 찍어 본 것들이다 

 

 

그렇긴 하지만 이제 단풍은 앞으로도 기대해선 안 되는 거 아닐까? 

그동안 수년간 너무 좋은 단풍을 많이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지구 기후 변화가 오기 전에 그나마 볼 수 있었으니!! 

 

그러면 이제 가을은 뭘 기대해야 한단 말인가? 낙엽?을 기다리면 될까? 

그러나 단풍이 시원찮은데 그 결과물인 낙엽이 좋을 리가 없다 

 

아까 구입한 사과를 소형차에 우리와 함께 태워 주차장까지 배달해 주었다

꽤나 근사한 식당에서 능이버섯 전골을 주문했지만 오늘은 이미 메뉴가 품절

이란다. 할 수 없이 청국장 정식을 주문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계속 청국장만 먹

는다. 그런데 청국장이 맛이 일품이었다. 이쪽 지방은 청국장이 매우 훌륭하다. 

 

서둘러 축서사를 향하는데, 앗! 티맵이 말썽이다. 이쪽 지방이 원체 산간 내륙이다 보니

전파가 잘 안 잡힌다. 축서사로 진입하는 길을 잘 못 찾는다. 축서사는 해발 1200m

에 달하는 문수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소백산 주봉인 국망봉이 1420m 인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높이인 걸 알 수 있다 

 

가는 길에 물야란 동네를 지나는데 그곳은 대학 동기 하나가 일찍이 핵전쟁에서도

무난히 대피가 가능하다고 이곳에 들어와 고구마 농사를 지으며 살기도 했던 곳

이다. 

 

범상치 않은 문수산!

 

 

축서사에서~

 

 

 

축서란 뜻은 독수리가 서식하는 곳 이란 의미라 한다. 대개의 사찰이 

살짝 산중에 돌아서 위치하는데 이곳은 정 남서향을 바라보고 산 중턱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사찰 뒤의 문수산이 워낙 높고 송림이 울창하여 시간이 되면 한번 올라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단풍이 물들긴 했지만 역시 청명한 맛이 없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3개 사찰을 중심으로 여행을 하고도 오후 3시 정도에 마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통상 편도 250여 km 정도의 거리는 당일치기 여행으로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새벽 시간이 있으니 말이다

 

비록 단풍 자체에서는 큰 수확이 없었으나 풍기, 봉화 지역의 사과를 

사 올 수 있었으니 그리 서운할것도 없었다. 좋기로는 능이버섯까지

구입해 볼 것을 고려했으나 그건 가능하지 않았다. 몇 년 전에는 봉화에서

송이버섯도 구입한 적이 있었고 멋도 모르고 시골 친구와 봉화로 송이

버섯을 따 본다고 가 본 적도 있었다. 

 

암튼 이래저래 봉화 지역은 나와 친숙한 그런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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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설악산은 대략 25번 정도 찾았었다. 특별한 단풍에 대한 생각도 없이

친구 부부와 내설악을 찾은 건 1997년 이니 이 또한 약 25년 전이다. 그때

본 백담사 수렴동 계곡의 단풍이 워낙 찬란해서 그 이후 다시는 설악을 찾지

않게 된 연유가 되기도 했다. 

 

그 이후 사진에 눈이 좀 틔이고 단풍에 대한 생각도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마곡사, 현충사, 선운사, 내장산, 백양사, 일본의 교또 까지 단풍을 보러 다녔

다. 참으로 수려한 단풍들이었다. 

 

그런데 단풍 자체만 보다 보니 단풍 + 암석 , 혹은  단풍 + 청정 계곡수 등의

설악이 문득 떠 올랐다. 깍아 지른 기암 고봉 밑으로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단풍

을 그려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금년 가을 칠순 여행을 겸해 설악산 단풍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예상과

는 달리 날짜를 전혀 못 맞추고 말았다. 단풍은 커녕 푸른 잎만 아직 청청 했다. 

계획은 수렴동 계곡, 주전골, 천불동 계곡 그리고 인제의 자작 나무 숲 까지 한

번에 설악 계곡의 단풍을 모두 보고 오는것 이었다. 그렇지만 날씨가 안 좋았고 

시기가 맞질 않은  탓에 절반의 성공도 거두지 못한 셈이 되고 말았다 

 

그동안 용케도 단풍철을 잘 맞추고 다닌 셈인데 이번은 아니었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닌가? 항상 다 좋을  수 만은 없지! 뭐~

 

 

아침 9시 용대리에 도착하여 황태 해장국을 먹은 후 백담사

쪽을 바라 보니 가슴이 뛸 만큼 날씨가 좋다 

 

 

버스를 타고 백담 계곡을 거쳐 하차 후 다리를 건너며~

 

 

산행에 별 자신이 없는 아내도 호기롭게 따라 나섰다

백담사를 둘러봤으나 마음이 바빠 만해 기념관이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고 서둘러 빠져 나왔다 

 

 

봉정암부터 100개의 연못이 있다하여 붙여진 백담사 ~ 

너무도 맑은 계곡물이 마치 수정처럼 빛나고 있다

 

 

 

 

사실 아직 단풍이 거의 안 든 상태이나 군데군데 약간의 단풍이,

특히 노란 단풍이 물들고 있었다. 노란 단풍은 청단풍이라 하여

귀히 보여지는데 일찍 물드는 녀석이다 

 

얼핏 보면 단풍이 꽤나 진행된듯 하지만 어림없는 얘기다. 내 생각은

1주일  후 아니 열흘 후에도 단풍은 절정에 이르기 어려울듯한데, 이 글을 

작성하는 최근에 기온이 급강하하여 시기를 좀 앞당길 수 있을지는 모르

겠다 . 사진 촬영 시기는 10월 14일이다 

 

 

 

 

때로는 이처럼 한 떨기 단풍잎이 더 강렬한 느낌을

주기도한다

 

 

 

수렴동 대피소를 지나서 겨우 봉우리를 만났다. 암봉과 

그 주변의 멋진 단풍의 조화를 기대했는데, 전혀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 

 

여기서 계속 봉정암 쪽으로 오르면 점점 더 멋진 장관을 볼 수 있을 터이지만

이쯤에서 내려 가기로 했다. 단풍이 더 이상 들지도 않은게 원인이었다 

 

 

간간이 이런 단풍도 있지만, 대세는 아니다

 

 

감아 돌아가는 계곡의 맛이 일품이다. 수렴동 계곡의 바위는

하얀 빛을 띈다. 이것이 여타 설악의 다른 계곡과는 차이가 나는

점이 아닐까! 

 

 

여전히 내 눈은 이런 단풍에 쏠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매우 

아쉽다

 

 

다시 영시암으로 내려오다 한장 남긴다. 영시 ~ 영원히 본다는 

의미 같다

 

 

마침 하늘에는 기막힌 구름이 떠 있었다. 이곳 영시암에는 약수물이

졸졸 흘러 내렸다. 여기까지 거의 평지성 길 이지만 금세 올라올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여전히 조금 물든 단풍에 눈이 머문다

 

 

간혹 이런 나무잎도 눈길을 끈다! 

 

이때 부터 슬슬 우측 무릎 옆 인대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특별히

다친적도 없는데, 긴 산행을 하면 이것이 갈 길을 막는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겨우 버스를 타고 용대리에 내려 속초 숙소로 향했다

 

아내가 적극 추천한 '이모네집'은 예약도 힘들만큼 성업중이다.

우리는 모듬 찜을 택했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다. 여기  뿐만 아니고 속초 시내 곳곳이

아무도 밤에는 다니지 않는다. 밤 8시가 예전 밤 12시 수준이다. 

코로나가 이렇게 세상을 바꾸고 있었다 

 

 

숙소 현관에서~

밤 바다에서 파도 소리가 멀리서도 들려왔다. 

 

다음 날은 예보 대로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어제 그렇게나

청명했던 날씨가 어떻게 하루만에 이리 돌변할 수 있단 말인가?

 

우중에 설악동을 향해 출발하기 전에 속초 지인이 추천해준 아침

식사를 위해 순두부 집을 찾았다. 인근 다른 식당은 조용한데, 이 집만

바글바글, 차를 댈 데가 없다. 그러나 두부 요리는 내 취향과는 조금 덜

맞는듯했다

 

 

 

어차피 비도 많이 내리고 비선대 쪽으로 가 봐야 뭘 보겠냐 싶어

권금성 케이블카를 탓다. 예전에 케이블카를 타 봤는지 기억이 없다. 

허나 권금성에 내려 위쪽으로 끝까지 올라 봤지만 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단풍 때문일 것이다~

 

예전 설악산 대청봉을 오를때는 오색에서 1박을 하고 새벽 4시 반에 대청으로 

출발하여  화채봉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권금성 쪽으로 하산하기를 여러차례

반복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화채봉 정상에서 쌓인 눈을 녹여 끓여 먹던 된장라면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권금성인데,~ 지금 보이는 경관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 아마도 이쪽에서

오르는데 한계가 있어서 그럴것이다 

 

 

 

 

다행히 토왕성 폭포로 추정되는 폭포가 멀리서 관측되었다

주변 단풍이 아직 들기 전  이어서 그닥 경관이 볼만하진 않았지만, 

 

 

케이블카를 내려온 후 우리는 신흥사로 향했다. 비는 점점 더 

세차게 내린다. 댓돌 마루에 걸터 앉아 고즈넉히 내리는 비를 감상

한다. 그래~ 이렇게 비 내리는 걸 본 적도 오랜만이지!!

 

 

대웅전 뒤 추녀 밑으로 비가 쉴새 없이 내린다. 

빗소리~ 물 소리~ 그리고 간간이 까마귀 소리까지~ 

 

점심은 설악동 아래  어느 집에서 산채 비빔밥을 먹었다. 그런데 역시나

산체도 초 봄의 일이지 이 가을에 먹을 음식은 아니었다. 겨우 겨우

먹은 산채밥은 결국 저녁에 회를 거나하게 먹은 후 일을 내고야 말았다~ 

 

속초 동명항의 횟집에서 

 

 

평소 우리 약국에서 레시틴을 비롯한 건강 보조제를 오랜동안

구입해 드시는 잘 아는 지인 부부가 동명항의 자연산 활어회 집으로

안내를 해서 몇가지 활어를 정말 거나하게 잘 먹고, 대접을 해 드렸

는데, 이날 못 먹는 맥주를 많이 마신게 화근이 되었다. 

 

숙소로 돌아와 밤에 무려 설사를 15번이나 하고 토 하기를 두  차례~

내 평생 이런 일은 처음 겪었다. 맥박은 밤새 120여 회를 넘나 들었고 

한 숨도 못잤을 뿐 아니라  온 몸이 매우 쑤시고 견디기 힘  들었으니 말이다. 

 

결국 우리는 다음날 일정을 깨끗이 포기하고 겨우 체크아웃을 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함께 회를 드신 지인 부부는 아무 탈이 없었

음은 물론이다.

 

그러게 외지에 가서 회를 먹는  일은 앞으로 극히 조심하여야 함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했다. 그 뿐인가? 집에 돌아 와서도 2-3일 이상 설사에 시달렸고

며칠째 죽만 먹으며 장을 달래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이번 주 말이나 다음 주 초 정도면 백담사 수렴동 계곡엔 단풍이 절정을

이룰게다. 생각 같아선 한번 더 가고 싶지만, 글쎄! 이 정도에서 만족하고 다음

을 기약해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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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정으로 월정사를 기획한 건 순전히 아내였다.

새벽 일찍 출발해서 아침 식사는 용평 횡계리 황태회관에서

해장국을 먹고, 월정사를 들렀다,한국 자생식물원을 보고

근처에서 산채밥을 먹고 등등 ~

 

그렇게 딸과의 추억 하나 더 쌓기 여행이

시작되었다.

 

'황태회관'은 용평에서도 제일 유명한 식당이다. 거긴 내 친구의 초등

여동창이 오래전부터 터를 잡은 곳이라는데, 역시나 아침 시간임에도

손님이 꽤나 많았다. 코로나 시국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업이다.

 

그러나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자 엄청 추웠다. 원체 우리 동네가 아직

더위가 심한지라 깜빡 용평의 기온을 생각을 못한 거다. 아! 겉옷을

하나 챙겨 오는 건데~ 아내는 근처 어디서 얇은 잠바를 하나 사자고

했지만, 밥을 먹고 나오니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여기까지 온 김에 역시 친구가 운영하는 대단위 펜션 ' 르꼼떼 블루'

를 잠시 차량으로 휙 둘러 보았다. 용평에서 30여 채가 넘는 2층 단독

주택형 펜션은 아마도 거의 없지 싶다. 물론 친구는 유명 건설 업체를

운영하니 이건 순전히 부업겸 휴식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월정사는 입구부터 차가 꽉 밀린다. 입장료 징수 때문에

그런 것인데, 차 1대당 운전자 포함 1 만원을 받으니 3인이면 2만 원을

내야 한다. 나는 경로 우대로 면제를 받았다. 근데 여타 국공립 공원에

비해 좀 비싸지 않나?

 

허긴 입장료로 경내 시설물 관리도 잘하면 좋을 것이다.

재작년 나가사키의 하우스 텐보스를 가 보니 1인당 입장료가 대략

8만 원쯤 했다. 4인 가족이면 30만 원이 넘는 입장료를 내야 했다. 그에

비하면 아직 매우 저렴, 고마운 일이다.

 

이번에 좀 자세히 보니 월정사는 그리 큰 사찰이 아니었다. 주변 상원사

등을 제외한 월정사 경내 자체는 매우 협소한 편이다. 이 날 방문객은

엄청 많았다.

 

 

 

우선 기와 선이 멋져 몇 장 찍어 본다. 적광전 뒤의 소나무 숲도

매우 출중하다. 딸도 그걸 얘기했다.

 

"저 너머 숲이 아주 멋지다고~"

 

 

9층 8각석탑을 정면에서 본 적광전 모습이다.

 

석탑 앞에 저렇게 구도하는 석상이 있는 줄도 처음 알았다

 

우린 위쪽 지장암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실은 위쪽으로

계곡을 넘어 다리를 건너 숲으로 연결되는 길을 따라 간

것인데,

 

지장암 입구에 걸려있는 글씨!

 

그렇지~ 세상에 태어나 뭔가 기여한 삶을 살고 있나?

 

 

지장암 올라가는 오솔길을 걷는데 갑자기 다람쥐가 나타났다.

이 녀석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 손짓을 하면 곧잘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처음 보는 일이었다.

 

다람쥐도 깊은 사찰 안에 살면 도를 깨우쳐서 일까?

 

한 부부가 지장암 숲길을 걸어 들어가고 있다

 

지장암을 돌아보고 나가는 아내와 딸~

 

역시 지장암으로 올라가는 스님 일행

 

 

 

우리 각자의 삶은 그 걸음 스타일 만큼이나 다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쪽 상원사는 너무 멀어 아예 처음부터 예정에 없었고 다시

월정사 경내로 내려왔다

 

찻집 근처에 이르자 호랑나비가~

 

 

전나무 숲을 걷는데 역시나 다람쥐가 또 가까이 다가온다

아이들은 손에 해바라기 씨를 몇 개 들고 열심히 다람쥐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다람쥐가 도를 깨우쳐

그런 게 아니고!

 

인간이나 다람쥐나 먹을것 앞에 약해 지기는 매 한 가지인 듯싶다

道는 무슨! 그러면 그렇지~

 

그러나 깊은 산중의 다람쥐는 도회지 근처 숲의 다람쥐에 비해

매우 순수해 보였다

 

 

이날 전나무 숲은 인파가 빼곡했다. 사실 이런 곳은

이른 새벽에 호젓이 맨발로 혼자 걸어야 제맛이다

 

 

 

 

전나무 숲길을 되돌아 올라가니 월정사 입구에 정말

수려한 소나무가 보인다. 속리산 정 이품 소나무와 체형이

비슷해 보인다.

 

 

둔내 부근부터 쭈욱 보아 온 거지만 정말 강원도엔 소나무가

쭉쭉 빵빵 참으로 빼곡하고 멋있다. 올핸 병충해도 그다지 없는 것

같아 푸르디푸르다. 월정사 주변은 말할 것도 없이 더 멋지다

 

강원도는 우리 국토의 보배 중의 보배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좋은 곳에 소나무 향이 그윽한 이런 곳에 왜? 사람들이 와서

더 많이 살지 않을까?

 

옆에서 딸이 한마디 거든다

 

" 산수만 좋으면 뭐해요~ 먹고 살 뭐가 있어야지요~ "

 

그렇지! 결론은 먹고 사는 거지~

 

 

 

 

' 산들 산채' 식당으로 찾아 들어 우선 도토리묵과 감자전을

주문한 다음 산채밥 2인 분을 해서 3명이 나눠 먹었는데, 이 동네는

온통 홍당무 천지 답게 도토리 묵에 양념으로 섞여 나온 홍당무가

아주 맛이 신선하고 좋았다

 

 

한국 자생 식물원은 딸아이가 중학 시절쯤 왔던 곳인데, 그 사이에

불이 한번 났다 하고 이제 겨우 정비해서 일반에 공개 중이었다

 

 

이런 팻말을 찍어 두긴 하지만 사실 식물원에서

생소하게 처음 본 꽃들은 여간해서는 기억하기

쉽지 않다

 

눈에 좀 띄는 꽃은 이런 것들입니다

 

용담이 이런 꽃인지도 처음이다. 학교 때 학명 외운다고

애쓰던 기억도 나고! Gentiana scabra라고~

[용담 사간탕]이라고 소변에 열이 차고 잘 안 나올 때 또는

염증이 있을 때 사용하는 君약이다!

 

이 꽃 역시 매우 흔하고 눈에 자주 띄는데 ~

 

 

식물원은 나름 꽤 넓어 한참을 둘러봐야 하고

본 건물에는 많은 책들을 구비하고 있어 차나 커피 등을

구입해 마실 수 있는 쉴 공간이 잘 마련되어 있었다

 

자~ 이제 다음은 무얼 하지? 아내가 계획한 건 여기 까지였다

 

어차피 천천히 올라가기로 하고 왔으니 아예 저녁까지 해결하고

가자~ 그러려면 올라가는 길에 봉평은 어때? 해서 이효석 마을로

향하게 되었다.

 

 

^ ^ ^

 

봉평 가는 국도 변도 풍광이 좋기는 매한가지~! 소나무는 여전히

울창했고 국도도 너무 포장이 잘되어 있었다!

 

 

일단 효석 문학공원을 간다. 두어차례 와 봤지만 그때도 주마 간산 격

으로 대충 훑어 본 지라 이번엔 찬찬히 둘러 보자고 다짐을 한다.

 

 

 

1907년 출생의 이효석은 평창 공립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추천으로 경성

제일 고등 보통학교 ( 현 경기고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의

영문과를 졸업한 사실 당대의 수재라 할만한 사람입니다. 인텔리 중의

인텔리로 졸업 후 잠시 총독부에 근무했다가 사직하고 평양의 숭실고 보

경성전문대학의 교수로 재직을 합니다

 

그의 화려한 학교 이력을 굳이 올리는 이유는 이런 것입니다.

즉 수재형 인간이 동시에 서정성이 풍부한 글을 쓴다는 게 현실적

으로는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뇌라는 게 동시 다발적으로

양면에 걸쳐 능하기는 쉽지 않은 까닭인데, 이효석은 그것이 가능한

조금은 특별한 면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효석을 생각할 때마다 항상 아쉬움이 많이 남는 건 그가 너무

일찍 요절을 해서 입니다. 불과 3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니

더구나 33세인 1940년에 부인을 복막염으로 잃고 또한 둘째 아들

마저 동시에 잃었고 불과 2년 후 그 자신마저 결핵성 뇌막염으로 돌아

가셨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선생께서는 어찌 그리 빨리 세상을 따나신거요?

 

 

문학관을 후세에 이리 멋지게 남긴 건 아무리 봐도

잘된 것 같았습니다. 공기 좋고 평화가 넘치는 이곳에서

될수록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아래 생가 복원터로 내려갔는데, 아내와 딸은 피로하다고

근처에서 쉬고 저 혼자 올라갑니다. ㅎ

 

첫눈에 띈 이 생가는 그러나 나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이런 세트장 같은 생가 보다 될수록 옛날 맛이 나는 초가집을

만들어 놓으면 안 되는 건지?

 

지붕의 모양하고 전체적으로 이 집은 좀 다르게 다시 만들어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 집이 평양에 거주할 때 사셨던 벽돌집 이랍니다.

 

 

'찰나를 영원으로기록한 것이 사진'이라고 제가 늘 생각하는 건데

여기 그 비슷한 문구가 있군요~ ㅎㅎ

 

이 집에서 단란한 생활을 하셨고 메밀꽃 필 무렵도 집필하셨다네요~

담쟁이가 무성한 이 벽돌집은 그나마 옛날 느낌이 좀 납니다

 

그런데 자료를 좀 찾아보니 이효석은 단편 문학에서는 발군의 서정성을

발휘한 반면 장편소설에서는 그다지 주목을 받는 글을 쓰지 못했다고

하네요. 그는 철저히 짧은 단편에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 셈입니다

 

그리고 이효석이 한국 서정 문학의 거두로 올라온 이면에는 경성 제일

고보 동창인 유진오 박사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내용도 있네요.

 

 

 

한편 이효석은 매우 토속적인 글을 저술한 반면 그 자신은 버터에 빵에

커피를 즐기고 서양 음악,영화에 심취했으며 말하자면 서구 생활을 무척

동경한 면이 있다 합니다.

 

글쎄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 순전히 개인의 사생활이니

후세에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라 봅니다만,

 

 

생가 입구 멀찍이 피어있는 한쌍의 해바라기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군요! 혹시 이효석의 내면도 이와 비슷하지는 않았을지,,

어쩌면 우리 대부분도 이런 양면성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나요?

 

 

그러나 문학관과 생가터 그리고 평양에 있었다는 벽돌집을

보고 내려오는 내내 아무튼 제 마음은 무척 안타까운 부분이

컷고 반면 봉평과 강원도에 대한 애착은 좀더 깊어가고 있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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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천년의 침묵외 30곡

 

 

일요일 아침 7 시대 승용차로 용인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일사천리~ 난생처음 이런 확 뚫린 서울 도심길을

달려 본다. 불과 40여 분만에 40여 키로의 서울길을 주파

하다니! 살다 보니 이런 경우도 있네 그려!

 

그러나 일찍 도착한 경복궁은 9시부터 입장 티켓을 발매했다.

그 사이 카메라를 들고 분주히 광화문 누각 앞 뒤를 배회했다

 

경복궁이 무엔가?

 

정도전은 《시경》(詩經) 〈주아〉(周雅)에 나오는

“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기취이주 기포이덕 군자만년

개이경복)” 에서 2자를 따서 “景福宮”(경복궁)이라고 지었다.

 

왕과 그 자손, 온 백성들이 태평성대의 큰 복을 누리기를 축원한다는

의미라 한다

 

서울, 아니 서울 근처에 살면서 경복궁 한 번쯤 가 보지 않은 이

누가 있을까? 다들 "아~ 거기" 이렇게 말할게 틀림없다.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없지만, 제대로 들여다본 이는 드물듯한 경복궁!

 

사실 나 자신도 언제 거길 가 봤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최초의 경복궁 방문은 1968년이다. 당시는 희고 우뚝한 석조의

조선총독부 건물이 떡 하니 버티고 있을 때였다. 그걸 중앙청이라

불렀다. 중학교 때 광주의 모 육군부대와 자매결연을 맺은 덕에

 

( 당시 시골 중학교가 무얼 어찌해서 군 부대와 자매결연을

했는지 잘 모르지만)

 

그 부대의 군용 차량으로 몇몇 학생들이 서울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부대와 가까운 남한산성에 올라 서울 전경도 보았고 서울서 제일

높은 건물이라는 중앙일보 사옥 23층을 목이 젖혀지도록 올려 보았고

총독부 건물인 중앙청 내부를 들어가서 위아래로 답사를 한 것은 물론

남산 순환도로에서는 영화를 촬영하고 있던 배우

김지미 씨를 보기도 했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서울로 왔고 광화문 중앙청 앞을 수도 없이 지나갔지만 막상

경복궁 내부를 들어간 건 몇 번 없었다. 아마도 문민정부 들어 김영삼 대통령이

총독부 건물을 헐어 버린 후 한 두번 정도 들어갔었던 거 같다. 그러니까 내 평생

전부해야 몇 차례 방문한 것이라 봐야 할 것 같다. 허기사 일반인들이 경복궁을

자주 가 봐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이니까~

 

 

이번에 자세히 보니 광화문을 넘어 들어가면 한참을 걸어야 흥례문에

다다르게 된다. 아마도 예전 총독부 건물은 광화문과 흥례문 사이

흥례문을 부수고 근정전까지 그 사이에 지어졌던 거 같다.

 

흥례문은 최근래에 증축된 것 치고는 정말 준수한 빼어남을

자랑하고 있었다. 참으로 단아하고 멋지다

 

禮를 부흥시킨다는 의미 아닐까?(興禮) 남대문의 현판이 崇禮門 인걸 생각하면

조선의 건국이념은 첫째도 둘째도 禮 에 둔 건 분명해 보인다. 원래는 弘禮門

이었는데 고종 때 중건하면서 흥례문으로 바꿨다고 한다

 

이 누각의 추녀선이 목조인가? 시멘트인가?

나무라 하기엔 너무 결이 곱고 시멘트라 하기엔 너무 섬세하다

한때 시멘트로 광화문을 중수한 적이 있다 보니 헷갈리기도

하지만 지금 저 모습은 목조가 분명하다

 

이른 아침 광화문 앞은 한적하기 이를 데 없었다. 비록 앞 광장이

또다시 공사 중이긴 했지만 광화문 안쪽에서 서울 시내 1번지를 들여다

보기도 하고 해태상을 자세히 또한 들여다본다. 도대체 광화문 앞 저곳은

왜?허구한 날 뜯었다 고쳤다를 반복할까? 속된 말로 지랄도 풍년이란 말이

떠 오른다. 한번 손을 대었으면 백 년 정도는 가만히 좀 두어라!

이 사람들아 !

 

이 해태상은 조선 제작 당시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걸까?

 

아주 잠시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재빨리 궁 입구를 돌아보다 보니

9시 티켓을 발매하기 시작했고 거의 첫 번째로 내부에 입장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예기치 않은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생과방은

10시부터 입장이 되는데 일일이 한 팀씩 안내를 해 들어가는 통에 우리

예약 번호가 11번이었지만 엄청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니까

경복궁 입장 시간까지 1시간 여, 또 생과방 입장을 위해 다시 1시간 반을

줄곧 기다려야 했으니 말이다. 도합 2시간 반이다

 

사실 이 내용을 미리 좀 알았더라면 경복궁 내부를 조금 더 둘러볼 수도 있

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날려버린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른 생각을 갖겠지만

조선왕들이 드셨다는 과자류 보다는 경복궁 자체에 나는 의미를 더 두다 보

니 막상 생과방에 입장해서는 불과 5-10분 만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1시간

여를 두고 충분히 느릿느릿 그 맛과 시간을 음미하라고 했지만~

 

 

혹시 생과방을 무슨 특별한 뭘 체험하겠다고 오시는 분들이라면 나는 말릴

생각이다. 입장과 티켓 예약에 너무 과도한 시간이 소모된다는 걸 꼭 인지

하시길~ 극히 주관적인 평가지만 한 마디로 시간 대비 효용이 정말

꽝이라 말하고 싶다

 

 

그나마 무료하게 기다리는 시간에 혼자 잠시 이리저리 궁 내부를

재빨리 둘러보았다

 

유난히 뜨락엔 살구나무가 많았다. 뒤쪽 후원쯤에는 앵두가

빨갛게 익어가는 중이었다. 시골 살던 추억이 있는 분들은 이 살구가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를 기억할 것이다. 물론 요즘엔 살구 맛이 거의

없어졌다는 걸 잘 알지만 노랗게 익은 살구를 보면 추억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느낌이다. 풀숲에 떨어진 살구를 열심히 찾아본다

 

자경전과 바로 옆에 청연루가 우아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다

1888년 중건된 대비 신정왕후를 위해 지은 연침(燕寢)-- 한가롭게 거처하는 곳

 

그리고 淸讌樓(청연루) 글자 뜻은 맑은 잔치를 여는 누각 이라는데 여름철

시원하게 지내기 위해 만든 곳이라 한다

 

 

 

근정전 뒤쪽으로 있는 교태전은 왕비의 침실로 사용되었는데

수차례 불이 나 전소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역시 불로 소실된 창덕궁

대조전의 부 재료로 헐리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특이한 점은 지붕 위

용마루가 지나는 곳 처리가 여늬 건물과 다르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전각들은 왜 그리 자주 불이 난 걸까? 물론 왜란, 동란 등 전쟁이 원인이

기도 했지만, 그것 말고도 너무 자주 불에 타 버렸으니 말이다

 

교태전의 측면 모습-- 매우 화려하다

 

그리고 교태전 뒤 후원의 아미산~

경회루 연못을 팔 때 나온 흙을 가져다 후원의 뒷 산을 만든 것이라

하는데,

 

 

얼핏 보아도 눈에 확 뜨이는 단아한 모습이다

이 아름다운 굴뚝들은 최초 만들어진 원형일까?

아무래도 근래에 다시 쌓아 올린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굴뚝 치고는 대단히 화려한 치장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굴뚝에

이런 공을 들인 나라가 또 있을까?

 

 

한참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생과방을 들어갔다. 이렇게 하염없이

기다릴 줄 알았으면 궁 내부로 더 들어가 나머지 궐들을 충분히 보는

건데 정말 아쉽다. 이번에 못 본 부분은 교태전 바로 옆인 경회루 쪽과

윗부분의 향원정인데(물론 그 외 부속 건물들이 아주 많지만) 계절적으로

썩 그리 경관이 좋은 시기는 아니어서 가을 정도나 꽃피는 봄쯤을

다시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사실 경복궁은 현재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긴 하나 궁 전체를 다 들여다

보려면 하루 온종일을 봐도 부족하리만큼 상당히 범위가 넓은 곳이다.

 

아마도 몇 차례에 걸쳐 나누어 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생과방을 온 것도 처음이지만, 입장하느라 너무 오랜 시간을

허비한 것이 옥의 티로 남는다

 

" 지금부터 대략 몇 십분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니 그 사이에

궁을 충분히 관람하고 오세요~ "

 

이런 멘트는 좀 해줄 수 없는 걸까? 허기사 여기 근무하는 이들은

공무원 아닌가? 기대할걸 기대해야지!~ 쯧!

 

 

참새 목욕하듯 생과방을 마치고 나오니 여늬 오동나무 꽃 과는 다른

흰 오동꽃이 이렇게 만발을 하였다. 이날 껏 보라색 꽃만 보아 왔는데

이건 특별한 종자일까?

 

 

 

인근 청수정 돌솥밥 집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길가엔

백합 등 꽃들이 많았고 매우 정돈된 느낌을 주는 동네였다

거리에 한복을 입은 청년들! 백합이 피어 있고 이 동네 특유의

회화나무가 상당히 많이 보였다. 서울 전체가 이 정도의 모습을 보여

준다면 매우 좋을 텐데! 희망 사항이지만~

 

보통 일반 동네에서 이 정도의 꽃을 보기는 쉽지 않다

지역 주민들의 웬만한 정성이 없으면 불가한 일이다. 하지만

이날 한낮의 더위가 엄청 심하여 이런 꽃들을 제대로 감상

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 부근 동네엔 잘 알고 있는 유명 인사들의 집터가 많다.

끝으로 길가에서 발견한 예쁜 꽃 한 무리를 올리며 무더웠던

휴일의 경복궁 방문기를 마친다. 비록 충분치는 못했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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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어버이날을 맞아 9순이 넘으신 장모님을 모시고 제천을

가기로 했다. 그간 헬수없이 여러번 제천으로 통영으로 우리만

갔지 연로하신 어머님을 모시고 갈 생각을 못 했으니~

 

물론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쉽게 생각할 수는 없기도

했지만!

 

허나 두시간이 넘는 자동차 여행에도 장모님은 끄떡 없으

셨다. 차멀미도 안 하시고!

 

 

제천을 갈때면 으례 점심을 먹으러 들르는 미당 광천 막국수 집,

보기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도는 막국수다!

 

꿩 만두도 맛있고 메밀 전병도 좋았으나 이번에 보니 전병은

너무 맵다. 다음엔 전병은 주문하지 말고 꿩 만두를 더 시켜

먹기로 했다

 

 

이에스 리조트에서 바라본 월악산 쪽~

 

사상 최악의 5월 황사에 산천이 흐릿하다. 아무리 좋은

5월의 신록도 황사엔 무용지물이다. 신선미 라고는 1도

없다

 

정말 풍광 제로라고나 할까?

 

이번엔 제천 바이오 밸리에 근무하는 큰 처남 아들도 합류하게

되어 2 가족이 나란히 방 2개를 빌렸다.

 

황사로 인해 도착해서 줄곧 방 안에만 머물 수 밖에 없었다.

딱히 외부에 나가 봐도 특별히 뭘 볼게 없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이튿날 일요일 인근 솟대 박물관을 가니 휴관이었다.

이 집은 이맘때 매발톱이 많이 피고 있었는데,, 물론 올핸

계절이 빨라 다 지고 없을것이다.

 

바람은 오늘도 매우 강하게 불고 있었다~

 

장모님과 큰 처남, 조카

 

 

 

입구 언저리에서 본 거대한 떡갈나무~ 거대하다는 건

우리 동네기준으로 볼때 그렇다는 얘기다. 나는 참나무 중

유독 이 떡갈나무에 정이 많이 간다

 

 

바로 옆에 붙은 힐링 하우스를 올라가니 인적도 없고 고요

하다. 산책로를 따라 오르니 수레국화가 예쁘게 피어 있다

아내와 어머님은 쑥을 뜯는다고 가파른 산책길을 오르신다

장모님은 쑥만 보이면 무조건 뜯고 보신다! 지금은 쑥이 훌쩍

자라 끝 순만 따면 그런대로 먹을수는 있을거 같았다

 

 

연로하신 노모를 모시고 더 이상 어디 갈수도 없어 곧장 제천 시내에

처남이 가르쳐 준 한약밥 정식 집으로 달렸다. 처남댁 식구들은

청풍호 떡갈비 정식을 먹고 능강 유람선을 타기로 하여 여기서 헤어

졌다

 

 

 

제천 시내 중심부가 아닌 외곽 동네이긴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제천 보다는 매우 깔끔했고 어쩌면 청정한 느낌마저 드는

그런곳 이었다

 

나중에 지도 검색을 해 보니 어제 낮에 막국수를 먹었던 바로

근처였다. 약간 산 뒤쪽으로는 힐데스하임이란 골프장이 위치

한 곳이다

 

식당 입구에 핀 마가렛?

 

 

한참 순서를 기다려 마주한 약밥 정식!

 

반찬으로 나온 나물들이 특이했고 돌솥밥 자체가 워낙

정성이 들어간 것은 물론( 남,여 밥을 달리 짓는다 )

거의 모든 반찬이 정갈하기 그지 없었다. 이것이 약초가 많이

생산되는 제천이기에 가능한듯 보였다.

 

가까운 곳에 산다면 1주일에 한번만이라도 정기적으로

먹고 싶은 밥이다. 솔직히 너무 손님이 많아 상호를 생략

하기로 한다

 

 

 

이왕 제천까지 왔는데, 제천 10경중 제 1경이라는 의림지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의림지는 시내가

아닌 외곽 높은 산 밑에 자리잡고 있었다. 호수는 청정해 보였

고 우리는 자동차로 한 바퀴를 돌아 보는 선에서 마쳤다.

 

5월의 신록이 빛나는 의림지는 매우 깨끗해 보였다.

 

그리고^

 

 

이제 가까운 배론성지로 달린다. 옛날에 한번 와 보긴 했는데

다시 찾은 배론성지는 더없이 깔끔하고 청정했다. 깊고 깊은 산중에

자리한 배론!

 

 

 

七克 이라!  입구 돌 명판에 새겨진 글귀이다~

몇번 읽고 또 읽어 보지만 수도 없이 많이 읽어야 가슴에

심겨질 그런 글귀다

 

 

 

 

 

 

황사영의 백서로 익히 알려진 배론 성지~

5월의 오후 햇살에 고즈넉히 빛나는 이곳은 평화 그

자체 였다. 그 심하던 바람도 여기선 잠을 자는듯 조용했다

 

 

 

가을 단풍에 버금가는 홍 단풍이 곱게 물들고, 목련의

연둣빛 칼라는 푸른 하늘에 빛난다 ~

 

 

 

그저 조용히 바라보는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고도

남을 그런곳!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황사영의 순교 현양탑이 우뚝 빛나고 있다

 

 

 

마치 배의 밑바닥 처럼 생겼다해서 배론이라 불리는

이곳!  녹음의 칼라며 그 깊음이 기가 막힌다~

 

 

거동이 힘드신 어머님을 차에 쉬시도록 모셔 놓고 뒤늦게

올라온 아내는 기어이 이렇게 한장 남긴다

 

 

황사영이 숨어 지내던 토굴 옆에는 이렇게 엉겅퀴 종류가

마치 파수꾼처럼 토굴을 지키듯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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