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번 제주 여행은 시기가 무척이나 애매했다.

그것은 수국이 피기는 좀 이르고, 유채를 비롯한 각종 봄꽃들은

다 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애매한 시기에 제주를 간다? 

 

그러나 안 가본 시기에 제주를 비롯 여러 곳을 가 보자는 게 아내의

적극적인 생각이어서 사실 나는 마지못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이른 아침이야말로 사진을 촬영하는 최적기다. 

 

새들은 지저귀고 아침 공기는 향기롭다. 귤꽃을 비롯한 여러 꽃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 때문일 것이다. 

 

 

 

 

 

올라가는 길 옆에 검붉게 핀 자란,

과자를 구워놓은듯한 꽃,

그리고 중문앞 바다가 어슴프레 보인다.

 

 

 

붓꽃은 한 송이, 금계국이 만발하여 온통 노랗게 마치 

초봄의 유채를 대신하듯 피어있다. 

너무 흔히 보여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는 금계국이지만, 여기서는 좀

특별해 보였다. 

 

공해의 흔적 없이 깨끗하게 피어나는 나뭇잎의 새순에 눈길이 머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할 것이다. 

 

 

 

 

 

귤꽃의 향이 이토록 엄청난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귤은 그저 사서 먹을 줄만 알았지~

꽃에서 이리 향이 나는 줄 어찌 이 계절에 오지 않았다면 알 수 있었을까? 

 

계절이란 그래서 철철이 세세하게 살펴야 겨우 그 진면목을 조금 느낄 수 있는 거

같다.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첫날 아침의 리조트 풍광은 이 정도로 마쳤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통상의 느낌 정도였다고나 할까? 

 

그리고 다음날은 아침 7시까지 남원 쪽으로 고사리를 채취하러 가야 해서

아침 리조트 풍광을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오전 내내 아침부터 리조트를 다시 둘러볼 시간적 여유를 즐겼다. 

 

 

 

 

숙소가 마침 목장과 맞다은 가까운 곳에 있기도 했지만, 내가 이곳에 온 지 처음으로

목장을 찾아 나서니~

 

작은 새끼 토끼가 혼자 굴을 들락거리며 풀을 뜯고 있었다. 

어째서 이 녀석은 홀로 어미와 떨어져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그리고 저기 저 수탉은 수시로 꼬끼요~ 하고 울어댄다. 

수탉의 울음소리~ 

 

요즘은 산에 가서 꾀꼬리 울음소리만큼이나 듣기 힘들다.

그러나 이른 아침 울어대는 수탉의 저 소리는 장엄한 느낌을 갖기에 충분하다.

아니 그보다는 어떤 신비한 옛 추억을 소환한다고나 할까? 

 

 

 

멀리 리조트에 와서 목장은 뭐하러 돌아볼까? 

전에는 그렇게 생각도 했었다. 

 

그것은 후쿠오카 여행 시 올레길을 줄지어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 아니 이 바쁜 여행 시간에 무슨 올레길이나 걷는단 말인가? "라고 처음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얘기다.

 

결국 나는 가족들과 함께 우레시노를 뒤로 돌아가는 무려 5시간이나 걸리는 해발 600여 미터의

산길 올레길 트래킹을 했으니 말이다. 

 

 

알을 품고 있던 거위 쪽으로 다가갔는데 (사실 나는 그냥 거위 집을 지나갔을 뿐인데~)

호위무사인 이 녀석이 꽥꽥거리며 나를 쫓아왔다. 

 

"거위야! 나는 너희를 해칠 마음이 전혀 없다 공~ "

 

황금 털이 기막힌 이 녀석은 아무래두 밤에 목장 가족들을 살쾡이 등 들 짐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세워둔 녀석 같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부드러운 저 털을 만져 보았다. 

 

아침 하늘은 이토록 시원하고 구름이 멋지게 퍼지는 중이었다.

 

구름은 확실히 제3의 자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귤은 통상 잘 식용으로 쓰지 않는 귤이다.

그러나 관상용으로는 이보다 더 멋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다 꽃은 그 어느 꽃보다 기막힌 향을 가지고 있으니~

 

 

 

맑고 깨끗한 수목에 둘러싸인 리조트는 이곳만이 가지는 특성이라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대체로 제주의 리조트들은 숲을 가지고 있고, 유사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에스 리조트를 특별히 홍보할 위치에 있지도 않지만, 

왜? 이곳이 여타의 그런 곳과 차이가 나는지를 이번에 비로소 조금 느낀 것 같다.

 

그것은 바로 휴식이란 무엇인가? 

과연 힐링이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이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현실에 접목을 시킨 분이 바로 E.S 리조트의 이종용 회장

이란 느낌이 퍼뜩 들었던 것이다. 

 

 

검은 현무암과 적절히 어우러진 금계국!

이른 아침 이런 계단길을 천천히 오르면 마음의 평안은 물론 그 느낌이

참으로 새로워진다.

 

 

바다는 모름지기 멀리 보여야 좋다. 

아니 모든 물은 호수를 포함 좀 멀리 보여야 한다. 

실제 인간의 주거와 물은 거리를 두는 게 건강상에도 필요하다. 

 

 

 

살짝 이국적인 풍모를 보이지만 결코 화려하지 않은 이곳

리조트다. 

 

 

 

마침 구름이 도와줘서 더욱 신선해 보이는 아침이다.

 

 

 

 

한라산의 산세 흐름에 저항하지 않는 나지막한 건물들^

 

하얀 벽체는 페인팅을 새로 하면 눈부시게 깔끔해질 것이다. 

 

 

*

 

'그냥 번듯한 호텔이 좋아~ 편리하기도 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걸 뭐라할 이유도 없다. 개인 취향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 숨쉬는 자연의 모습이 그대로 반영된 곳~

풀포기 하나, 꽃 한송이,나무 한 그루~ 그리고 건물의 배치까지!!

이 모든것이 휴식이란 철학에 알맞게 어우러져야 비로서 빛을 발하게

될터인즉,

 

바로 그곳이  E.S Resort 란 생각이다. 

 

번듯한 건물, 도시의 냄새가 풍기는 호텔등이 범접하기 힘든 이유이다. 

 

 

 

 

깨끗한 나뭇잎에 반하고~

파란 하늘과 구름에 역시 반하고~

황색의 기와지붕에 조금은 특별함을 느끼고~

 

 

 

 

 

고 향 수(故香樹)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스님께서 송광사에 처음 오실 때 짚고 오신 지팡이를 꽂으시며 시를 남겼다.

爾我同生死(이아동생사) 너와 나는 같이 살고 죽으니,

我謝爾亦然(아사이역연) 내가 떠날 때 너도 떠나고,

會看爾靑葉(회간이청엽) 너의 푸른 잎을 다시 보게 되면,

方知我亦然(방지아역연) 나도 그런 줄 알리라.

그 뒤 지팡이에서 잎이 피어 자라다가 보조스님께서 입적하시니 이 향나무도 따라서 말라버리므로

고향수라 하였다. 고향수 이야기는 1751년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기록되어 있고 1886년 순천부사

이범진이 왕실에 보고하던 지도에도 불생불멸이라는 글자로 표시되어 있다.

 

고향수에 얽힌 여러 이야기 중에서 1960년대 송광사를 찾은 노산 이은상이,

300여편의 시조를 남긴 송광사 주지 인암 스님과 고향수 앞에서 시조 대결을 벌였다는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요즘 같으면 머릿글자로 풀어 가는 삼행시 놀이 비슷한 것이었는데^^*

 

 먼저 노산 이은상이 운을 뗐다.

 

"어디메 계시나요, 언제 오시나요 
말세 창생을 뉘 있어 건지리까  
기다려 애타는 마음 임도 하마 아시리" 

인암 스님이 화답했다.

 

"살아서 푸른 잎도 떨어지는 가을인데  
마른 나무 앞에 산 잎 찾는 이 마음  
아신 듯 모르시오니 못내 야속합니다"

 

이처럼 많은 명사들이 기리는 속에 고향수는 보조스님께서 송광사에 환행하여 오시면 다시

푸른 잎을 피우게 되기를 꿈꾸면서 불가사의하게도 800여 년 동안을 이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다.

 

 

 

 

 

보조국사께서 짚던 지팡이라고는 하는데, 

물론 중간에 싹이 나서 한참을 자랐다고는 하나 글쎄~ 

지팡이 치고는 너무 크다. 암튼 이건 설화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 사실 여부가 중요하진 않을지 모르겠으나 나의 생각은 그렇다 )

 

바로 저 위의 우화각이 송광사에서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맑은 계곡수가 그대로 흘러 들어오는 이 누각은 난간에 앉아 잠시 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어찌 보면 송광사 역시 최소 1박 2일 정도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둘러봐야 할 그런 곳이었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 이래 16 국사가 배출된 전통과 유서 깊은 송광사지만, 

역시 법정스님을 빼고는 송광사를 얘기할 수 없다. 

 

올라오면서 봐 두었던 불일암은 오후 4시 이후엔 입장을 삼가해 달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우리는 부랴부랴 시간에 늦지 않게 불일암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불일암에 오르는 길은 두 갈래 길이 있는데, 산을 돌아가는 무소유의 길이 훨씬 가기가

편하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또 다른 길은 매우 가파르다.  

 

담벼락과 기와 처마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청계당 건물. 

 

 

무소유 길에 간간이 피어 있던 산철쭉

 

 

불일암 거의 다 와서 보이는 편백나무 숲!

 

 

이런 몇 개의 글 들을 보면서 오르다 보면 불일암 입구에 다다른다.

 

 

 

 

 

 

 

 

 

불일암은 소박 단순 고요했다. 

멀리 송광사 앞산이 푸르러 오고 하늘에는 흰구름이 둥실 떠 있었다. 

암자 앞 대나무 숲이 바람이 일 때마다 서걱서걱 소리를 낼 뿐 주변 삼림이 그리 

울창하지도 않았다. 

 

앞마당 끝의 후박나무는 굳건히 우람하게 솟아 있었고, 그곳에 법정스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었다. 

 

나는 방명록에 간단히 아까 올라오며 보았던 글귀와 비슷한 짧은 글 한 줄을 써넣었다. 

 

 

사실은 내가 이전에 상상하던 불일암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좀 더 깊은 산, 좀 더 크고 많은 나무, 근처에 많이 흐르는 계곡 물~ 이런 걸 생각했으나

불일암은 아주 단출했다. 

 

그런 나의 상상은 다 무소유와는 상관없는 유소유였을까? 

그간 법정스님은 미국 메사츄세스에 있는 헨리 쏘로우의 오두막 집을 3번이나 방문을

하셨다했다. 

나는 쏘로우가 살던 동네를 한번도 가 본적이 없지않나? 

 

그렇지! 삶이란 어차피 단순한 것인가 보다. 

 

불일암을 보며 든 생각이다. 삶 자체도 단순해야 하지만, 살아가는 주변 환경 역시도

뭐 그리 웅장하고 복잡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불일암은 그렇게 위치해 있었고 따라서

나도 내가 사는 환경을 단순 소박하게 함이 마땅하다 여기고 있다. 

 

이 봄철에 정갈한 쑥국 한 사발 먹는 그런 맛 이라 할까? 

 

집에 돌아오니 그새 벚꽃은 다 져가고 목련도 전성기를 하루 정도 지났다. 

올 봄은 동네 주변의 봄꽃과 남도 여행을 맞바꾼 셈이다. 

 

그러니 억울할 것은 없다. 

 

비록 남도에서는 살짝 늦은 봄을 맞았고~

우리 동네에서는 전성기 봄을 놓치긴 했지만, 

 

 

민속촌 입구 ~ 전성기를 한 2-3일 정도 지난 모습이다. 

 

 

E.S Resort에서 서둘러 정리를 하고 길을 나섰지만 아침 9시를

넘기고 있었다. 

리조트 앞 해안 도로를 경유하여 미륵산 우측으로 돌아가니 박경리 기념관

쪽으로 안내를 한다. 마침 그 부근에는 수목원이 하나 있어 주차를 하고 걸어 들어갔다. 

 

 

 

가는 길에는 전성기를 며칠 넘긴 산목련이 줄지어 피어있었다. 산목련 군락지였다. 

 

 

수목원은 찾는 사람 하나없이 고요 그 자체였다. 관리인은 물론 인기척도 없었다. 

 

 

 

글쎄~ 이곳은 때마침 수선화가 가득 피어 있었고

호수에는 잉어들이 요동을 치고 있는 데다 산새들의 울음소리 또한 청량하기

그지없었다. 

 

별 목련

 

 

여행 사전 조사에서 이곳을 검색은 했지만, 일부러 찾기보다는 

지나가며 들렀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통영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수목원 앞의 이 집도 참으로 평화의 극치였다. 

암튼 이런 곳에 사는 이는 복 많을진저! 

 

세상살이가 뭐 특별할것도~ 더구나 도시에 산다고 대단할 건 더욱 아니지 않을까? 

다 형편따라 사는 거지만, 자연과 가까이 사는게 최고의 행복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통영-대전 고속도로를 타고 진주까지 올라와서 다시 남해 고속도로를 타고 순천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먼 길이었다. 

남해 고속도로 주변에는 대나무 숲이 울창한 곳이 상당히 자주 나타난다. 

대나무 숲을 보니 내가 남도에 머무르고 있음이 실감이 된다. 

아마도 나는 이 고속도로를 일평생 처음 달려 보는 중이다.  

 

두어 시간을 더 달려 이윽고 송광사에 도착했다. 

이미 때는 점심시간이 되어 송광사 입구 식당에서 산채 비빔밥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그런데 역시 

지역 특성이라할까? 

 

사찰 바로 입구의 관광지 음식 치고는 수준이 좋고 맛이 있었다. 우리는 송광사 관람을 마치고 내려와서도 같은 식당에서

수수부꾸미를 하나 더 먹었다.

올해 80세라는 식당 할아버지는 열심히 우리에게 송광사의 연혁, 가 볼 데를 설명해 주셨다. 

 

 

입구에서 만난 눈이 큰 명자씨! 

평생 보아온 명자 꽃중에 제일 크고 깨끗했다. 

 

 

역시 명승 고찰답게 입구부터 범상치 않은 풍모를 보여준다. 

 

 

거기다 송광사는 저 아래 속세로부터 수십 리 아니 어쩌면 예전 같으면

걸어서는 하루 종일을 와야 도달할 그런 산중에 위치해 있다. 

뭔가 제대로 된 명승고찰을 대하는 느낌이 든다. 사찰이란 좀 이런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사찰 이모저모를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뭔지 모를 시간에 쫓기듯

우리는 둘러보기 시작했다. 

 

 

석가래와 기둥 사이을 받치고 있는 저것이(이름은 모르겠음) 통도사는 3개인데 비해

송광사는 4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어 뭔가 격이 좀 높게 보인다. 

 

 

 

 

 

 

유서 깊은 사찰을 이렇게 마구 관람해도 되는 것인가?

누구의 설명도 없고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볼뿐이다. 

 

 

8월쯤 목백일홍이 만개할 때 오면 황홀할 것이다. 

 

 

 

 

 

 

나의 발걸음이 설법전 앞에 머물렀다.

아쉽게도 내부로 진입을 금하고 있었다. 이곳은 수도하는 곳 이라했다. 

 

 

 

 

 

 

 

그저 어디를 봐도 호젓하고 정갈한 풍광뿐이다. 

이날 날씨는 유례가 없이 맑고 화창했고, 기왓장과 담벼락~ 그리고 멀리 푸르게 

새싹이 돋아나는 조계산과 어우러져 기막힌 풍광을 연출하고 있었다. 

 

 

 

대웅전 앞의 연등과 역시 오래된 목백일홍! 

연등과 함께 목백일홍이 장엄한 느낌을 보여준다. 

 

거 뭐 사찰이란 게 다 그렇지 뭐 특별할 게 있소? 이렇게 누가 반문한다 해도

사실 할말이 없다. 

나는 아직 사찰을 좀 더 깊게 보는 안목이 없으니 말이다. 

 

 

 

비슷한 규모이지만 앞서 통도사에 비하면 정말 사진 찍을 일이

많은 송광사이다. 

 

송광사가 통도사에 비해 볼 것이 많다~ 뭐 이런 뜻이 아니다. 이날은 호젓하기도

했고 내가 선호하는 풍광이 더 많이 펼쳐졌다는 의미다. 

 

 

수백 명 아니 수천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밥을 퍼 줄 수 있을듯한

통나무로 만든 밥통?  비사리구시란 푯말이 붙어 있다.

 

설명서에 보면 물 2600 리터가 들어가는 느티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 절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쓰였다 한다. 

 

 

오래된 산수유 나무!

 

그런데 꽃이 보통의 꽃 보다 좀 커 보인다. 대개 고목이 되면 꽃이

작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말이다~ 

산수유가 다 그렇지~ 이렇게 말하기엔 너무 꽃이 신선했다. 산수유 철을 한참을

넘기고 있었는데도~

 

꽃은 아니지만 이런 모습은 선운사 가을 감을 보면서도 들었던 생각이다.

 

'스님들의 독경 소리를 들은 감이며 꽃들이 속세의 그것들과는 다르게 나타난다는 느낌~ '

 

 

이 모습은 통도사에도 있었다. 통도사의 것이 더 크고

오래된 듯 보였는데, 아무튼 이런 고목의 흔적을 버리지 않고 보존하는 건

유서 깊음을 나타내는 것 같아 참 좋다. 

 

 

송광사의 연혁이다.

 

창건은 신라 말 혜린 선사에 의해 시작되었고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중창불사를 해서 크게 확장했다는 글이다. 

 

 

이날도 불일 서적 안에는 몇 분이 앉아 조용히 뭔가를 대화중이었는데

참 보기가 좋았다. 아무도 없었으면 들어가 봤을텐데~

내부에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송광사의 일주문이 좀 작네, 뭐 그런 얘기가 많다는 바로 그 문이다. 

그보다도 일주문이 조금 한참 위에 올라와 있다는 게 특이했다. 저 아래 입구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글쎄 ~ 그 송광사를 잘 모르니 뭐가 뭔지 얘기한다는 건 적절치 않을듯하다~ 

 

 

 

통영 E.S 리조트로 목적지를 잡으니 그 먼 길을 가고 오는 시간을

생각 안 할 수가 없었다. 

단순히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왕복하기엔 아까웠다. 

 

해서 가는 길에 통도사~

오는 길엔 순천 송광사를 들러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실행에 옮겨 보니 총 이동거리가 생각보다 매우 길었고 간단히

돌아볼 그런 일정은 아니었다. 

 

이 나이 되도록 한국의 3대 사찰을 한 곳도 못 가봤으니 어쩜 한심하기도 하고

도대체 그동안 뭐한다고 바빠서 이리됐나? 도 생각이 들고~ 

 

상주를 거쳐 경주를 지나 통도사 입구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내려가는 차 안에서 아내가 열심히 맛집을 검색하여 도착한 곳이, 

 

 

모 생선 구이집이었다. 고등어와 칼치 한토막, 그리고 뭔지 모를 작은 생선 한 마리~

헌데 이 지역에서는 꽤나 이름이 난 곳이라는데, 영 맛이 나에겐 맞지 않았다. 

주차장에 차도 댈 데가 없을 만큼 빼곡했는데 말이다! 

뭐랄까~ 이름만 맛집? 이었다고나 할까~

 

그냥 통도사 입구로 식사할 곳을 정해도 충분한 것이었다. 

 

통도사 아랫동네는 마치 도봉산 입구의 동네처럼 번잡스럽고 잡다한 상점들이

줄지어 들어차 있었다. 

 

아! 이것이 통도사란 말인가? 나는 초장부터 김이 새기 시작했다.

 

헌데,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주변 풍광이 나를 압도했다. 와! 하며 내리다

순간 망원렌즈를 카메라 가방에서 떨어뜨리는 실수를 범했다. 에혀!!

호사다마라더니~ 이게 웬일인가? 

사실 기분이 좀 안 좋았지만, 나는 애써 마음을 잡고 여행 자체에 충실하는데 집중을 하기로

했다. 

 

 

 

입구부터 눈길을 잡아 끄는 대나무 숲! 과 울창한 나무에 매료되어 한 장 찍고 보니

화장실 앞이다.

 

 

마치 북어 머리, 늑대의 울부짙음 같은 모양을 한 이건 뭔가? 

오래된 나무 등걸이다~ 

 

이런 걸 제거하지 않고 보존해둔 통도사의 센스가 돋보인다. 

이 비슷한 건 송광사에도 있었다. 

 

 

바다 위를 용이 질주하는 피안의 세계를 그린 것이라고 영상에서 본거

같은데,  

 

 

 

이런 단아한 전각들이 순 목조건물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 유명한 통도사의 홍매화는 어디 있는 걸까? 

마음이 급해 천천히 둘러볼 시간을 내지 못한 게 아쉽다. 

허긴 이 꽃 홍매화도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사통팔달로 뚫려 있다는 통도사의 대웅전!

 

 

이날 뒷전으로 보이는 이 풍광이 가장 평화롭고 시원함을 주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는 이곳은 아무 때나 출입을 

할 수 없었다. 

 

 

석가모니가 설법을 하던 인도의 그 산과 거의 유사하다는 통도사 뒤 멀리 보이는

영축산! 

 

 

경내를 빠져나와 사명암을 찾아볼 생각에 옆으로 돌아가는데, 

 

 

 

 

 

 

 

그야말로 할미꽃이 이렇게 피어있고~

동강의 할미꽃과는 너무도 다르다! 

 

 

 

 

 

 

첫날 통도사는 이렇게 수박 겉핥기로 끝났다. 

방문객이 상상 외로 무척 많았다. 

 

통도사는 많은 중생들의 사랑을 받는 사찰임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건물들이 너무 다닥다닥 많이 지어져 있었다. 땅이 좁아서 그리됐을까?

조금은 여유가 아쉬웠다. 

거기다 사찰과 세속 동네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었다. 뭐 좀 2,30리는 산으로 들어가

절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통도사는 오래된 고찰답게 우뚝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으며 목조와 단청 등이

매우 고색창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 아니 그렇긴 하지만, 이게 통도사의 전부란 말이요? " 

 

물론 극히 일부라 할수 있을것이다. 통도사를 이런 식으로 주마간산격으로 방문해서야

어디 될 일인가? 

 

다음에 제대로 공부를 좀 하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다시 방문을 해야 할 거란 생각을 해 본다.  

 

 

" 아산에 아주 좋은 꽃 식물원이 있다는데~? "

 

흠! 아산이면 그리 멀지도 않고 이번 주 일요일에 함 가보자구~ 

 

그러나 말이 아산이지 실제로는 도고에 있었다.

유명한 도고 온천을 지나자 논 밭같은 평원에 식물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1인당 8,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데 나중에 꽃 화분을 구입하면

그걸로 대신하는 것이니 실제로는 무료 입장이나 같았다. 

 

 

 

  튜립의 꽃 상태는 매우 튼실하고 색감도 최고 수준이었다. 

 

 

통상 식물원하면 이것저것 잡다한 식물들이 잔뜩 심겨 있는 곳으로 

생각되는데, 무언가 여기 식물원은 그 느낌이 좀 달랐고 꽃들도  신선했다. 

 

 

이렇게 예쁜 작약도 실상 난 처음 본 느낌이다. 봉긋한 꽃 모양이

참으로 단아하다. 보통은 헤벌레 퍼지기 일쑤인데~

 

 

 

 

식물원은 여러개의 하우스로 나뉘어 있었는데, 마침 점심시간이 좀 지났지만

배 고픈줄도 모르고 열심히 보아 나갔다. 식물원 내부나 인근에는 식당이 없었다. 

 

 

 

 

 

 

 

많지는 않지만 부겐빌레아도 잘 자라고 있다.

 

 

 

개중에는 향이 매우 진한 허브 종류도 여럿 있었다. 

일일이 꽃의 이름을 알기는 어려웠지만, 이런 식물원이 집 가까이 있으면

매우 좋을텐데~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 입장료 16,000원을 조금 넘는 18,000원짜리 화분을 하나 구입했다

실제 2,000원만 추가로 지불했다. 

 

시계는 얼추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입장료를 받는 입구 카운터에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앉아 계시는 나이 많이 드신 할아버지께로 다다가

 

" 이렇게 좋은 꽃을 보유한 식물원은 처음 이고 꽃도 매우 예쁘다 " 고 엄지를 치켜

세우며 칭찬겸 격려의 말씀을 해 드렸다. 할아버지는

 

"사진 좀 많이 찍었어요? " 라며 화답하셨다. 아무래도 그 할아버지가 식물원의

설립자 같이 생각되었다. 

 

우리는 부지런히 검색한 도고 온천 방면으로 달렸다. 

그리고 찾은 이 집^  온천 정육식당이다. 

 

 

 

그런데 이 집에서 먹은 삼겹살은 내 기억으로는 일생 최고의 맛이었다. 

너무 배가 고파서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삼겹살의 맛이 훌륭했으니 말이다. 

우리는 선지 해장국도 하나, 냉면도 하나 주문해서 모처럼 맛난 식사를 마쳤다. 

 

나올 때 한우 불고기도 한 근 포장해서 가지고 왔다. 

 

인근에 위치한 도고 온천에 들어가니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아내는 근처 커피숍에 가서

쉰다 하고 나는 온천을 했다.( 실제로는 인근 방죽에서 쑥을 띁었다함! )

그러나 도고는 군데군데 폐가가 속출하고 동네는 사그라들고 있었다. 왜? 이 동네를 찾는 사람이

없을까? 

한때는 그리 유명했는데~ 

 

식물원 일대를 미리 조사해둔 바에 따라 봉곡사의 '천년의 숲'을 찾아 길을 재촉했다. 

천년의 숲 이란 지명은 북해도의 오비히로에서도 들러본 적이 있었다. 거기도 한적하고

좋았는데 봉곡사의 그것은 어떨까? 

 

 

 

봉곡사 입구의 오래된 소나무 숲을 말함인데, 정말 신기하게도 숲이 너무 멋지게

만들어져 있었다. 

 

 

 

맑은 공기, 고요한 숲!!

천년의 숲은 그렇게 우릴 맞이하고 있었다. 

길 양옆에는 때마침 현호색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봉곡사는 뒷산에 대나무를 휘장처럼 두르고 있었고 오래 묵은 나무들이

군데군데 서 있어 오래된 고찰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며칠 후 벛꽃이 필 때쯤 다시 오면 매우 아름다울 거 같았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고 우리는 집으로 갈길을 재촉했다. 

 

오늘은 식물원의 꽃도 좋았고 도고의 점심은 말할것도 없었고 거기다 온천욕도

하고 또 천년 노송의 숲에서 힐링까지 한 셈이니 매우 흡족한 하루를 보낸 셈이다. 

 

이렇게 뜻하지 않은 여행에서 만족을 얻은 경우는 흔치 않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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