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밸리~ 뭐 ,참나무 골 이라는 뜻이겠지요^^ 경기도 양평군과 강원도 평창군을
경계로하여 오붓이 자리 잡은곳, 저거 지을때부터 들여다 봤는데,
결국 회원권을 사진 못했고 지인 회원권으로 겨우 이틀 예약하고
찾아 나섰읍니다.
 
 
여주에서 양동으로 돌아 고개를 넘어서니 저녁  나절 ~
새파란 잔듸의 골프장이 눈에 펄쩍 들어옵니다.
간간이 라운딩하는 팀들이 보이긴 하는데,
 
 
 
밤이 되니 이런 저런 가수들이 중앙 무대에 등장하네요~ 달은 훤하니
중천에 떳는데,시원한 산 공기에 공연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크리에션이라나 여자 쏠로 가수의 가창력은 대단하데요.
아..이 가수가 크리에션^
다음날  최근에 지은 스키장 쪽 콘도로 넘어가 보았읍니다. 남쪽 산등성이를
가파르게 돌아 넘어가니 음,여기도 기슭으론 새파란 잔듸가
융단처럼 깔려 있네요^
 
밤이 되어 나가보니 라이트를 환하게 켜놓아
그런대로 경치가 볼만합니다.
 
아침이 되니 안개가 자욱~
스키장의 리프트가 저리 되어잇읍니다.
 
아침 해가 올라 오니 슬슬 더워집니다. 마지막 떠나기 전 한컷 더 찍어봅니다.
그림같은 잔듸 골프장 이번엔 냄새만 맡고 그냥 구경만하고 옵니다.
허긴 날이 더워 라운딩은 별 재미없을거 같드만요!
 
오크밸리를 잠시 떠나 집사람 동창이 둥지를 트고 산다는
가리왕산을 지나 정선으로 꺽어 들어가는 곳,,
두타산 자연휴양림 입구로 갔읍니다.
개울가에 집이 세채 있었는데,, 
예쁜 꽃들을 잔뜩 심어 놓았더군요!!
 
 
언제 보아도 단아한 모습의 백일홍~~ 저걸 보노라면
한국의 멋 같은게 느껴집니다.
 
머루가 저렇게 잔뜩 익어가고 있었읍니다.
 
음,,이건 제가 제일 좋아하는 글라디올라스 로군요^^
마침 색깔도 천연 그대로 연분홍 치마같은
고운색 입니다.
 
이거 무슨 꽃인지 아시겠어요?
 
 
 
 

    (영월에서 태백으로 향하는 아침 새벽길 -- 차가 단 한 대도 없다)
 
 영월 청령포 숙박 후 일요일 아침 찬공기를 가르며 태백을 향하는 도로는 한가롭기 그지없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3.1절이다.왕복 차량이 한대도 없는 길을 엊그제 군에서 갖 제대한
아들과 함께 달린다. 2년 가까이 군생활로 묶인 몸이 숨통이 트였으나 며칠후 복학을 하게되니
실상 아빠랑 함께 스키를 타볼 수 있는 기회는 오늘 밖엔 없는 셈이다
아침 기온은 영하 5도 정도, 이만하면 오전 스키는 탈만하다. 언제나 자동차로 꽉찬 길만
달리다 옅은 안개가 희미한 산중 도로를 달리며 어줍잖은 지난 스키 이력을 떠올려 본다.
 그렇게 시작된 스키는  맨땅에 헤딩식으로 부닥치면서 지산,양지,홍천대명,휘닉스파크,
성우리조트를 거쳐 용평까지 가게 되었고 난이도가 가장 높다는 용평 레인보우코스까지
오르게 되었다. 남들이 다 말리던 스키를 50줄에 배워 국내의 웬만한 코스는 다 타보게
된것이다. 허지만 실력은 여전히 기초 수준이어서 경사도가 높은곳에 오르
면 이를 악물고 안 넘어지려 애쓰며  간신히 내려오는 정도다.

 

( 하이원의 自然雪 스로프)
 
 하이원 카지노를 돌아 올라간 마운틴 코스는 무슨 세계대회가 열린다고 하여 한참을
돌아 밸리코스로 갔다.수속을 거쳐  나서니 여느 스키장과 크게 다른 건 없다. 자 이제부터
본격 하이원스키를 즐겨보자. 일부 인공설을 뿌려 슬로프를 만들어놓긴 했지만 중간
정도 내려오니 하이얀 자연설이 펼쳐진다. 갑자기 스키 속도가 줄어든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자연설만의 촉감을 천천히 느끼면서 미끌어져 간다.
 
 

 

(곤돌라에서 바라본 산 정상 부근의 참나무 숲)
 
 1340m 정상에 세워진 전망대에 서서 동서남북을 보면 온통 산! 산! 뿐이다. 강원도가
산이지만, 진짜 한국은 산악 국가임에 틀림없다. 평지가 산에 비해 너무 적은것이다.
국토의 8할 정도는 산이 아닐까..저거 빼고 나면 남는 평야라고 해봐야 정말 얼마
안되는 땅이다. 그렇다고 산의 쓰임새가 그리 큰것도 아니다. 바다를 막아 간척지를
만들어도 그 용도가 매우 제한적인 것처럼 산을 손대어 봐도 역시 그 용도는 너무
국지적일것이 뻔하니 그냥 생긴대로 두고 볼 수 밖에 없을거 같다. 작년 봄에 일본
후쿠시마에 가서 보니 거기도 저렇게 희뿌연 나무로 뒤덮여 있었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적절히 배합되어 있는 후쿠시마의 삼림)
 
 비록 작은 땅이기는 하지만 저렇게 가득차있는 나무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일까.
그냥 있는 대로만 있어도 자연은 충분히 제몫을 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숲이 없이 황폐한 이웃 중국이나 내몽고의 황사 바람은 얼마나 기가 막히는지..
 
 
( 하이원 밸리 최상급 코스)   
 
 저기 저곳을 이제 올라야 한다. 십 몇년전 한참 스키를 타러 돌아다닐 때는 겁도 없이 무조건
최상급 코스를 올랐었다. 이를 악물고 겨우겨우 내려오면서도
"이제 이곳의 제일 난코스도 다 올랐지.."
하는 일종의 자부심 같은걸 느끼는게 좋았다.
용평의 최상급 레인보우 코스는 영하 20도의 기온에다 강풍까지 동반했는데도 올랐었다.
중간에 어찌나 바람이 강한지 반쯤 내려와서 저절로 멈추기까지 했다. 귀를 잘못 덮는 통에
반쪽이 얼어서 혼나기도 했다. 그때 생각하면 저 정도는 별거 아닌 셈이다. 허나 벌써 십
몇년전 일이다. 더구나 아주 낮은 코스인 지산에서 넘어져 정강이를 스키날에 크게 베인후
부터 몇년간 스키를 접기까지 했으니,, 이제 실력도 그 시절보다 떨어지지 않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아들 앞에서 도전에 움츠리거나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
그래 한번 해보자~
 
 그러나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눈이 적고 얼음이 많은  상급자 코스에서 초반에
보기좋게 넘어지고 말았다. 빠른 속도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겨우 일어나 보니 허리가
엄청 아프다. 아! 또 오늘도 피니쉬를 말끔하게 장식하지 못했구나~ 언제나 마지막 한두번
코스에서 부상을 입거나 넘어지는 일이 발생하곤 했는데, 허나 어쩌랴~ 아직 미숙해서
그런걸!!
스키에서 넘어지는것은 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선수들도 툭하면 넘어지는걸 종종 볼 수 있으니 말이다~

 

      ( 밸리에서 마운틴으로 넘어가는 곤돌라에서 본 밸리하우스 전경)
 
 겨울엔 눈이 온다. 눈이 없는 동남아시아 인들은 사계절이 분명한 한국을 많이 부러워한다고
한다. 대만인들도 겨울엔 한국으로 스키여행을 많이 온다. 허나 눈이 오는것은 좋으나 쌓이면
우선 집에 돌아갈 걱정이 앞서는게 우리네 심정이다.
모든 잎새를 땅에 내려놓고 가지만 남은 나무에 하이얀 솜사탕처럼 쌓이는 눈!! 겨울의
최대의 낭만은 역시 눈이라 할 수 있다. 정말 눈이 많이 내린다는 일본의 북해도나 아오모리
지방을 한겨울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 깊이가 10미터에 이르는 다테야마(立山)의 눈길
도로는 보기만 해도 탄성이 나온다. 그러나 지난해 중국에는 폭설로 막대한 인명
재산피해가 났었다.
눈.바람,비,불, 어느것도 과하면 재앙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적절한 자연은 그 자체가
축복이다. 그 축복을 제때에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것 또한 행운에 속할듯하다.
 

 

 

(하이원 정상에서 아들과 함께)  
 
 간신히 허리를 추스리고 歸路에 오른다. 영월 제천을 거쳐 충주 앙성으로 향한다. 제천의
박달재는 예전엔 돌고돌아 한참을 걸리던 곳이지만 이젠 몇분이면 터널로 통과한다. 박달재
정상에서 목을 축이고 가던 길을 계속하던 지난날이 오히려 그립다. 박달재의 전설이며 그런것을
읽어보곤 했었는데,
박달재를 지나면 이제 산세가 완연히 작고 아담해진다. 여기서 장호원까지 비슷한 산세를 이룬다.
그 마지막 즈음에 앙성 탄산온천이 있다. 물을 직접 먹기도 하는데 몸에 매우 좋다고한다. 삐끗한
허리도 좀 풀겸해서 온천을 들어간다. 냉온탕을 반복하며 몸을 풀어본다.
아! 여기 와 본지가 얼마만인가?
전에는 걸핏하면 겨울 온천하러 들르던 곳이다. 온천 후 뒤로 돌아 남한강 상류로 돌아가면
무성한 갈대밭에 들새 소리가 하늘로 퍼지던 곳이다.
웬지 인심도 후덕할거같고 음식맛도 매우좋은 곳이다. 온천과 산과 골프장과 과일이 풍부한
곳이 충주지방이다. 은퇴후 지내기 제일 좋은곳이라 추천되는 곳이 바로  이 주변이다. 
(충주 앙성온천 부근의 산세)  
 
 이제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하이원에서의 어설픈 식사 탓일게다. 멀지않은 장호원
근처 고갯길에 외할머니집 이라는 두부 전문식당이 있다. 수년째 단골로 가던 곳인데 너무
오랜만에 찾다보니 근처로 옮긴줄 모르고 원래 있던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래도 두부 전골을
아들과 함께 맛나게 먹을 수 있었다. 고향동네인 일죽을 천천히 거쳐 백암으로해서 올라 왔다.
밥을 한그릇 더 주문해먹은 아들은 너무 배가 부르다며 결국 백암의 약국에서 소화제를
한병 사 먹었다.
산수유가 망울을 터뜨리는 춘삼월 첫날의 하이원 스키는 이렇게 마무리가 되어
기억속에 남게 되었다.   
 
 

 

* 이 글은 지난 2006.2월 말 경 경기도약 임원 각 분회장 총무위원장
연수 교육후 잠시 둘러본 단양 일대에 대한 기행문입니다.

 

 

단양하면 웬지 단아하고 깨끗하며 약간은 세속적이지 않은 그런 이미지가
다가오는 곳입니다. 산골중의 산골이요, 앞으로는 소백산이 병풍처럼 가려 있고
뒤로는 금수산을 비롯해 서쪽으로는 월악산이 치솟아 있어 어디 하나 찌르고 들어갈
빈틈이 보이지 않는 그런 곳입니다. 충주호가 생기면서 조선시대 산수화에서나
볼수 있음직한 기암괴석과 소나 무가 등장하는 옥순봉을 호수 위에 탄생시킨 곳입니다.

 

 

(단양 옥순봉)

 

2 월 25-26일 연례행사로 개최되는 지부임원 분회장 총무위원장 워크샵을
잘 마친 다음 일요일날 쌀쌀한 초봄의 바람을 맞으며 주변 일대를 돌아보게
되었읍니다. 사실 단양 팔경이라지만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충주호는 썰렁
하기만 했읍니다. 그래도 유람선 운전기사의 구수한 입담을 들으며 장회나루를
한바퀴 돌았읍니다. 
그리고 새로생긴 죽령 터널을 지나 영주 부석사로 향했읍니다. 빗바랜
교과서에 등장하던 부석사, 부석사의 안양루와 무량수전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아! 이것이 과연 한국의 멋과 맛이요 세계 어디에 내어놔도 은은한
맛이나는 천하 제일의 자랑거리임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봉황산 부석사 란 글씨가 보입니다
소백산의 동쪽 가지를 뻗어 내려와 땅에 다달을 즈음에 사뿐히 다소곳이
자리잡은 봉황산이란곳 그곳에 마치 새가 알을 품어 놓은듯한 온화한 자리에
부석사는 자리잡고 있읍니다.

 

 

(안양루의 나무 기둥입니다)

 

세월의 주름을 그대로 간직한 나무기둥을 쓸어보면서 천천히 무량수전으로
올라갑니다. 세상에 크고 웅장한 석조 철골 시멘트 건축물은 우리 말고도 다른
나라에 얼마든지 많읍니다. 물론 목조건물도 많겠지요. 허나 무량수전의 소박한
이 목조 건축물은 바로 우리 조상들의 혼과 얼이 그대로 드러나 는 멋진 작품입니다.

 

(무량수전 대웅전)
제가 처음 이곳을 본것은 한 4년전 쯤입니다. 그때 가을 영주군 봉화에서
송이 버섯축제가 열릴 때였읍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9월 말일 시골
친구와 둘이서 송이 좀 먹어보고 잘하면 산에서 캐보기도 하자며 왔다가
가는 길에 혹시 송이를 좀 캘 수 있나..하면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결국
도착한게 바로 이곳 부석사입니다.

 

(무량수전의 환상적인 목조 추녀)

 

처음 저 건축물을 본 순간 정말 눈이 떼어지지 않았읍니다.조악한 시멘트를 덧칠한
누각들만 보다가 순수한 알몸같은 나무결로 만들어진 단아한 건축물 을 보니 그 손길이
순간 확 가슴에 닿았던 거지요. 나무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편의상 대부분 짓고있는
현대의 시멘트나 철골건물은 웬지 부드러운맛도 온화 한 맛도 없는
차거운 물건에 불과합니다.

 

(서까래의 배열)

 

위 그림도 보면 서까래의 배열이 얼마나 멋진지 알수 있읍니다.
하나더 볼까요?
뒷산의 청명한 하늘색과 나무와 어우러진 무량수전의 추녀입니다.

 

이런 스 타일의 사찰은 많이 볼수 있읍니다만, 순수 목재로 지어진 이런
구도는 어 딜가도 만나기 쉽지않아 보입니다.
무량수전에서 앞을 보면 턱 자리잡고있는 안양루와 석등입니다.

 

저 석등에 다 밤이면 불을 밝히고 안양루 바닥에 둘러앉아 시를 읊거나
참선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무량수전에서 저 멀리 풍기 들판을 바라보는
시야는 참으로 일망무제입니다.

 

 

그렇지 않읍니까? 그런데 저 안양루에 들어가보면(들어가지 말라고 씌어져있 음)
거기에 유명한 김삿갓(金笠)의 시가 한 수 적혀 있읍니다.
천하의 김삿갓 이 그리워지는 요즘 그가 지엇다는 詩 한수를 살펴보겠읍니다^^
누각 안에는 그 외에도 여러분들의 詩등이 붙어 있었으나 거의가 세월과
더불어 지워지거나 알아볼수 없는 상태였읍니다.

해석이 어려우니 아래 한글 번역판을 보겠읍니다.

 

"평생에 여가가 없어 이름난곳 못왔더니 백수가 된 오늘에야 이곳 안양루에 올랐도다"

 

김삿갓같은 분도 평생에 여가가 없었다니.. 참 믿기지 않는 글입니다.

그럼 허구헌날 일에 목매고 있는 우리들은 도대체 무슨 여유로 이름난

곳을 간단 말 입니까.

 

"백년동안 몇번이나 이런 경치구경할까.. 이제 좀 경치를 볼만..하니
세월 무정하게 나는 이미 늙어 버렸도다!! "

 

 

참으로 가슴을 칠 통탄할 일입니다. 천하를 주유한걸로 알려진 인물도 저리 말할진대

우리 인생이 결국 천지간에 헤엄치는 오리같은 신세, 가는 세월 에 속절없고 오는 세월에

대비가 안된 연유입니다. 더구나 시간과의 싸움으로 살아 간다해도 과언이 아닌

개국약사들의 오늘의 현실이 가슴을 찌릅니다.

실제 김삿갓은 54세로 생을 마감했다지요!

 

부석사가 왜 부석사인가를 말해준다는 떠있는 돌을 보며
다시 안양루를 지나 아래로 내려옵니다. 가까운 곳에 소수서원이 있었지요.
주세붕 풍기군수가 세 웠다든가..한때 영남의 수재는 모조리 이곳에서
공부하고 국가요직을 두루 꿰 차게 되었다는 우리나라 사학(私學)의 원류입니다.
하바드대학보다 훨신 앞선 사학이란 연유로 얼마전 하바드대학 총장이
이곳을 방문했었다 하는군요. 그
소수서원의 뒷뜰엔 지금도 소나무가 그 옛날 인재들이 그렇게 자라듯 울울
청청 여전히 자라고 있었읍니다.
(소수 서원의 뒷뜰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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