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수목원 아랫동네에 숙소를 정하다 보니 어딜 좀

갈려면 기본 수십 킬로는 지나야 했다. 

태백산 정상 쪽이 그랬고 불영사 또한 그랬다. 보통 60여 키로는

달려야 했다. 물론, 땅이 넓은 나라에 거주하시는 분들이 보면 새발에

발톱 정도도 안될 거리이긴 하지만~ 

 

찌는듯한 도심에 비해 훨 시원한 동네에 오긴 했지만, 이틀밤을 

자고 나니 그만 집으로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휴가는 며칠 더

남아 있었다. 

 

오늘은 그 옛날 가 보았던 불영사를 들른 후 영주 무섬을 거쳐 소수서원을

경유해 집으로 가기로 했다. 

 

 

 

 아참! 

 

그 이전에 엊져녁 저녁을 먹으러 갔던 봉화 지역의 오전 약수터 

얘기를 하고 넘어가야겠다. 

 

약수~ 하면 나는 설악산 오색약수를 먼저 떠 올린다. 직장 다닐 때 

1박 2일로 대청봉을 오르기 위해 머물던 오색마을의 오색약수는 그 맛이 참으로 독특했었다.

나중에 장인 어른도 그 오색약수로 위장병을 고치셨단 얘길 집사람에게 들었다. 

 

신기하게도 그 찝지름한 탄산수가 나는 입에 잘 맞는다. 

허나 지금 오색약수터는 폐허가 되고 말았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숙소에서 산 하나를 넘으면 도착하는 [오전] 약수는 우선 일대 계곡이 아주

청정했다. 어떻게 약수터 계곡이 이리도 깨끗하단 말인가? 

위의 계곡물이 바로 그곳 약수가 흘러나오는 지점이다. 

 

약수터 계곡에서 닭백숙을 주로 만들어 파시는 아주머니 얘기로는 이번 폭우에

계곡에 지저분한것들이 싹 씻겨 내려가서 그렇단다. 

 

위의 청진 식당이 평점이 아주 높은 집인데, 우리도 백숙 한 마리를 주문해

먹었다. 약숫물로 끓인 백숙~이라 그럴까? 매우 특별한 맛이었다. 허긴 좋은

물이 지천인 이 동네서 어떤 물을 쓴들 그 맛이 안 날까 마는~ 

 

나는 준비해간 20리터 바이오 물통 가득 약수를 담고 추가로 2L 병에 두어 개 더 

물을 담았다. 집에 가져가서 똑같이 그 물로 백숙을 해 먹을 생각이었다. 

 

어두운 태백의 산길을 꼬불꼬불 넘어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은 상쾌하고 즐거웠다.

 

 

예전엔 불영사를 가려면 버스를 타고 마치 서커스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 위험한 길을 끝없이 달려야 했었다. 

 

지금은 쭉 뻗은 고속화 도로를 편하게 갈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러나

만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울창한 소나무를 비롯한 푸르른 수목을 보며 가는 길은

뙤약볕이지만 매우 상쾌하고 즐거웠다. 

 

어찌 이리도 산이 깊고 인적이 없는지~ 

저 산 기슭 어디쯤에 들어가면 세상모르고 평생을 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불영사에는 때마침 목백일홍이 예쁘게 피어 있었고 고즈넉한 절 분위기는

한낮의 땡볕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무려 40 여년전에 처음 와 봤던 불영사는 전혀 내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 그래 이 더운데 불영사까지 와서 뭐 좀 본 게 있소?" 

 

글쎄 올시다~ 뭘 봤다기보단 그저 한 폭의 좋은 그림을 보고 간다 할까~ 

오고 가며 깊은 산골짝과 소나무와 숲을 보았으니 그만하면 한번 올만하지

않았겠소? 

 

사찰 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냉커피 한잔과 아이스크림을 주문해 먹고

고추며 약초등을 파시는 동네 할머니가 앉아 계시는 곳으로 걸어갔다.

새빨갛게 말린 태양 고추는 1kg에 2만 원, 5킬로 비닐 포장에 10만 원,

매실청은 2리터 한 병에 3만 원~

고추가 탐 났지만 가져가도 활용이 어려울 거 같아 포기하고 대신 매실청

을 한병 구입했다. 

 

 

 

 

" 8월 태양이 내리쬐는 불영사 ~

전각 모퉁이에 서서 수련 자욱이 핀 뜰앞을 바라본다

 

천축산의 줄기 뻗어 내려와 절 뒤쪽으로 흐르는 계곡물과 만나고

강아지도  더위를 피해 한 마리 없는 앞뜰엔 태양이 내리꽂는다!

 

나뭇잎은 무르익어 가을을 재촉하고 

쓰르라미 울어 울어 이 또한 가을을 재촉하노라~

 

갈 길 있는 나그네의 마음 또한 뜨거운 햇살에 녹아

불영사 앞뜰에 내려앉는다~ "

 

 

 

거의 솥에서 찌는듯한 폭염에 불영사를 나서니 점심시간이 되어간다.

춘양을 지나 다덕 약수터까지 씽씽 달려갔다. 그곳에 장작불로 고아서 판다는

소머리 국밥집이 있기 때문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소머리 국밥집은 목요일 그날이 휴일이었다. 결국 근처

산채비빔밥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영주를 지나 전부터 익히 들어왔던 무섬을 

향해 달렸다. 오후 2시를 갓 넘긴 무섬마을은 그야말로 푹푹 찌는 폭염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중이었다. 우산을 받쳐 들고 동네를 걸었으나 더위가 너무 심해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무섬 마을을 둘러싸고 흐르는 개울을 본 순간 ~ 하는 감탄사가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그것은 진정 이 땅의 개울이 가지고 있어야 할 넓은 모래사장을 이곳이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개울은 고유의 모래사장을 잃고 온갖 잡풀이 무성한 하천으로

변해버렸다. 가축의 분뇨가 개울로 흘러들어 유기물을 다량 주입시킨 덕에 그리된

것으로 추정을 하는데, 이것이 어느 특정지역이 아닌 전국의 하천을 오염시켰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하겠다. 

 

무섬 마을 둘레가 특별히 잡풀을 제거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전국의 지자체에서 한번쯤

와서 그 연유를 찾아 봄직한 연구대상이라 생각된다.

 

 

이런 모습이 원래 우리의 개울이었던 것이다. 

이랬던 하천은 요 수십 년 이래 아주 그냥 개판이 돼 버리고 말았다. 

 

" 하천의 모래를 돌려주오~ "

 

 

 

 

무섬마을의 그 유명한 나무 다리는 폭우에 다 망가져 보수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망가지기전 그 다리를 건너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영주 시내를 거쳐 흐르는 시냇물은 그닥 깨끗하지 않았다. 무섬 마을이 영주

보다 상류에 위치했더라면 더 좋았을걸~ 허긴 그랬다면 이런 마을이 생기지도

않았을테지만!!

 

한걸음 옮기기도 벅찬 무더위에 우리는 마을 중간에 마련해 둔 쉼터에서 아이스

크림과 참외 하나 그리고 냉커피 한잔을 마시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기착지인

소수 서원을 향해 차를 돌렸다. 

 

 

소수서원은 꽤 오래전 한번 와 본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은

남아 있는게 거의 없었다.  이번에 와 보니 오래된 낙락장송이 참으로 일품

이었다. 

 

소수가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이미 무너진 학문을 다시 수습해 이어 닦게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했다. 암튼 당시 서원을 설립한 풍기군수 주세붕은 

매우 훌륭한 인물이라 생각이 되었다. 

 

이곳 서원에서 배출한 인물이 도합 4000명 정도라 하는데, 당시로서도 그렇고 설령 지금 현재라

해도 대단한 업적이 아닐까?

 

 

 

 

 

무더운 여름날 깊은 산중은 모르겠지만 이렇듯 평지나

도회지 근처는 아무리 인내심이 강해도 찬찬히 둘러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이런 더위엔 어디 무얼 보러 다닐게 아니라 그야말로

산중에 박혀 피서를 할 일이다. 

 

서둘러 소수서원을 나와 입구에 좌판을 벌여놓은 복숭아 판매점

애서 큼직한 복숭아 한 박스를 트렁크에 넣고 쏜살같이 집으로 내

달렸다. 

 

 

어디라도 좀 다녀와야지?

이 더운데 어딜 간다 해도 시원하게 피서를 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라고

생각되었다.

 

서벽이라는 동네는 백두대간 수목원 바로 아랫동네였다. 동네 모퉁이에 

자리 잡은 2층집은 방이 2개였고 거실에는 살림 도구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어 지내기에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무엇보다 깨끗하고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의 방과 거실 천장에는 편백나무가 시공되어 은은한 향이 몸과

마음을 휘감았다.  

 

무엇보다 저렴한 숙박비는 덤이었다. 1일 65,000원은 이 깊은 산중에

찾는 이가 드물단 반증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금년 여름휴가는 전에도 몇 번 가 본 적이 있는 봉화지역을 거쳐

가면서 부터 시작되었다. 

 

점심으로 찾은 봉화 한약우 타운~

 

 

 

그런데 이곳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를 하고 있었다. 

 

바로 은어를 가득 수조에 가득 넣어두고 판매를 하는 거였는데, 이번 유례없는 강원지역

장맛비로 애써 준비한 은어 축제가 무산되어 할 수 없이 비축해 둔 은어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행사였다. 

 

마당 앞쪽에서 은어 1kg에 1.2 만원~ 

우린 1.5 만 원어치 튀김을 구입했다. 튀긴 은어 맛~ 조금은 특이하기도 했지만 특유의

은어향은 별로 나지 않았다. 

 

"저 많은 은어를 대체 어떻게 잡았대요? " 물으니

 

"은어가 양식이 되잖아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은어가 저리 많은가? 은어 양식장 한번 들러보고 싶네~ 

 

 

이번 숙소가 있던 서벽리~ 에 있는 서벽초등학교!

해질녁에 저 운동장에서 맨발 걷기를 몇 번 했었다. 

 

이런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될까?

교정에는 이순신과 세종대왕 동상을 세워두긴 했는데, 물론 그런 위인을 

본받아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애써야겠지만,

 

그 보다도 행복한 생을 살아가는 법을 좀 가르쳐 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백두대간 수목원은 아직 초창기라 할까~

호랑이 두 마리를 가두어 기르긴 하지만, 그 멀리 태백산 자락까지 가서

수목원만 탐방하기엔 조금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긴 한데!. 

그 높은 산에 웬 호두 나무가 그리 많은지!

 

 

 

도착 당일 찾았던 백두대간 수목원에서 본 호랑이~

수목원에 유달리 많은 호두나무~

 

 

 

 

펜션옆을 흐르는 개울에서 밤새 물소리가 마치 폭우가 내릴 때 나는 소리처럼 들렸다.

찌는 듯한 도시와는 달리 시원한 밤공기가 좋았지만 나는 잠을 쉽게 잘 수가 없었다.

태백산 줄기아래 서벽이라는 단출한 동네~

 

마침 보름달이 불그스름하게 창을 비추는데 베란다에 나가 이렇게 소회를 적어 보았다.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

서벽이라는 백두대간 수목원 바로 아랫

동네는 이렇게 밤이 깊어간다

 

붉으스레 떠 오르는 보름달이 정겹네^

 

마치 비가 퍼붓듯 좌르륵 좌르륵 들리는

개울물 소리는 

이 세상이 아닌듯 

 

그렇게 나의 간장을 녹이는 구나! 

 

 

 

 

 

 

 

 

 

 

 

 

태백산과 만항재등을 오가며 찍은 여름 고산지대 꽃들~

 

솔직히 태백산 정상 까지는 너무 덥고 힘들어 오르지 못했고 유일사라는 절 

까지만 갔다. 

 

그런데 말이지요~

 

유일사의 화강암 수조에 흘러나오는 물은 가히 천하의 명품수라 할 만 했다.

내 평생에 이렇게 찬 물은 이날 껏 접해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물이 이렇게 찰 수가 있을까?  잠시 팔뚝까지 흐르는 물에 적셔 보았으나

손이 저려서 곧 그만두어야 했다! 

 

 

바로 이 물~.

 

그리고 만항재는 태백산 유일사 부근에서 어느 분이 제 카메라를 보더니

한번 꼭 가보라 해서 찾아 올라갔는데, 광범위하게 심어진 고산 꽃들이 멋지기는

하지만 그다지 사진으로 남길만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춘양에서 삼척 가는 길로 돌아 태백을 올라가다 보니 정말 태백의 소나무 숲은

세계 어디에 내어놔도 명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저리 소나무가 울울

창창할 수가 있을까?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한국 태백의 소나무가 들어갈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참으로 이 나라의 보배~ 소나무^ 

 

40여 년 전 춘양 입구의 어느 남의 집 밭 근처에서 텐트를 치고 하루 유숙을 한 이래

다시 찾아본 이 일대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소나무 숲이 울창했고 산중의

산이었다. 

 

단지, 승용차로 휙 지나다 보니 그 멋진 소나무 군락을 촬영하지 못한 게 매우 아쉽다.

 

 

 

 

 

 

 

딱히 뭘 보러 간 건 아니다.

 

여름방학 겸 잠시 들어온 아들이 제주를 보고 싶다 했고, 해서 늦은 여름휴가를

떠났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짐을 챙겼다. 

3일을 풀로 쓰는 여행, 지난 5월만 해도 하늘 높던 렌터카 비용이 이젠

아주 조신해졌다. 거기다 4인 가족이 이용하니 가성비가 쏠쏠하다. 

 

거의 아무런 일정표를 미리 만들지 않았지만 나름 만족한 여행이 되었다. 

 

내가 사는 용인 주변은 요즘 정말 찍을 게 없다. 해서 제주 역시 기대를 하지 않았다.

제주 약사회 사진 담당 총무님한테 미리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만큼 지금은 사진은

영 아닌 계절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주의 하늘이 기대 이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건 아니다.

또 여행 내내 하늘만 쳐다본 것도 아니다. 

 

육지의 그것과는 아주 조금 달랐을 뿐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사람을 두 분 만났고 덤으로 하늘을 만난 셈이다. 

 

 

그 한 분이 김만덕이라는 위대한 여인이었고~

또 한 분은 김영갑이라는 위대한 사진작가였다. 

 

아침 9시부터 영업을 하는 '자매국수' 집을 찾아 순번을 기다리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행기를 본다. 

 

제주 내려서 처음 올려다보는 하늘이다. 

 

 

 

 

 

  역시 서귀포 하늘~

 

 서귀포 ~

 

 

 

제주도의 하늘이 더 맑다거나 더 푸르다거나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직 가을이 다 온 건 아니니까~ 

 

성산 일출봉 위의 하늘과 구름 역시 그랬다. 

바닷물 색은 그리 푸르지 않았고 광치기 해변의 이끼 낀 바위들은 

썰물 때가 되어야 나타난다는것도 처음 알았다. 

 

마치 기차가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듯한 이 풍광~ 

 

단 3일간 본 하늘 치고는 그럭저럭 만족스럽다고나 할까? 

 

땅이 半이면 하늘 역시 半을 차지한다. 

땅의 변화도 무쌍하지만 하늘의 변화는 더 무쌍하다. 

 

 

***

 

 

 봄, 초여름, 가을, 겨울의 제주는 분명 풍광이 아름답다.

뛰어난 볼거리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그러나 8월 말의 제주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내가 사는 용인 주변을 봐도 그렇다. 

물론 매일의 하늘이 새롭고 들판이 새롭고 나무가 그렇고 그 모두가 다 

기적이요 신비임은 분명하지만, 눈에 띄게 새롭거나 아름다운 건 당분간 보기

힘들다. 

 

그러니 제주라 해서 별 다를게 없지 않을까? 

 

 

이시돌 목장 부근에는 우유등을 파는 곳이 있다. 

여기 우유는 진짜 우유라 할까? 

 

 

맛이 육지의 우유와는 완전 다르다. 우유가 이렇게 맛이 있는 것이었나?

생각하게 된다. 예전 비슷한 맛의 강성원 우유가 있었는데, 망했다. 

아쉽다.  북해도를 가면 이곳 우유와 비슷한 아주 맛 좋은 우유를 먹을 수 있다. 

 

제주에서는 흔히 볼수 있는 열매다. 무슨 열매일까? 

 

도대체 맛이 없어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하귤을 

토끼는 먹고있다. 

 

" 토끼야~ 그거 맛없다고~ "

" 아뉴~ 그럭저럭 먹을만해요!! "

 

뭔가 신비하지만, 실은 사진을 잘못 찍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 시기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꽃이다.

 

흔히 수산물 시장에 가면 보이는 가격표다.

 

서귀포 재래시장은 완전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돌 자가 들어가는 것은 무조건 맛있다. 

 

돌 광어, 돌문어, 돌 멍게, 돌돔, 

 

우리는 여기서 몇가지 구입했다. 

 

다들 이렇게 하시라는것은 아니다.

양이 작아 보이지만, 4인 가족이 먹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맛 또한 최고였다는 점~ 

 

숙소에서 가깝고 늘 지나다니던 중산간 도로에 있는 이곳~ 

 

그저 잠시 쉬기엔 아주 좋은 곳이다. 

 

많은 분들이 아주 죽치고 편백나무의 기를 흡입하고 있었다. 

 

조천은 이번에 다시 가보니 참 좋은 동네였다. 

성미가든의 닭백숙은 워낙 맛이 있어 갈 때마다 찾는데, 

 

이렇게 깔끔한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면 훗날 행복하게

살게 되지 않을까?

뛰어난 인물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가 행복할 수 있어야 빛이 나기 때문이다. 

 

조천초등학교 교래분교 다

 

이런 길을 천천히 다니는 맛도 여행의 한 멋이다. 

 

서귀포의 여명이다

 

광치기 해변은 한여름이다

 

멀리 우도를 잡아본 사진, 과연 소의 어디를 닮았을까? 

 

폰으로 찍어 본 성산 일출봉~ 

 

제주의 북쪽 해안으로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멀리 성산까지 와 봤으나 제주의 지형은 남서쪽으로 모든 게 이루어

졌음을 알게됬다. 

 

그런데 하나가 있었다. 

 

해녀 박물관~ 

 

뿐만 아니라 해녀 헌장이라는 것도 있었다. 

 

 

이들은 유독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고 있었다. 

공생, 공영, 그리고 후배 해녀의 양성을 외치며 해녀 문화의 세계화 까지를

내걸고 있었다^

 

비슷한 헌장에 '약사윤리강령'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해녀헌장에서 배워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크고 작은 해녀들의 무수한 항일 항쟁이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제주의 해녀 문화는 유네스크 인류무형문화재로 등재되었다. 

 

참고로 제주 바람의 종류와 물때의 종류이다. 

 

 

아마도 제주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서부두 항에 갈치를 사러 아침에 들렀다 건너편 건물의 간판을 보고

알았다. 어디선가 어렴풋 들었던 김만덕이라는 여인의 기념관! 

 

서부두의 안쪽까지 깊숙히 들어오는 바닷물은 예상을 깨고 무척이나 

맑고 깨끗했다. 비슷한 한림항이나 서귀포의 여느 항구와는 사뭇 달랐다. 

 

김만덕 行首 內醫女

 

김만덕의 호칭은 의인이라고도 하고 행수 내의녀라고도 한다. 

마땅한 벼슬을 한 적이 없으니 호칭 또한 그럴 수밖에 없는듯하다. 

 

허나 호칭이 王이었으면 뭐하나? 생전에 아무 업적도 없고 나라 망하게 한 게

전부인 몇몇 왕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 20대 초반까지 그녀의 삶은 매우 고단했다. 

 

제주의 어마한 거상이 된 그녀지만 일생 소원은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지금의 경복궁, 청와대를 한번 보는 것과 금강산을 유람해 보는 게 일생의

소원이었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소원일지도 모르겠다. 

 

 

 

기념관 안에는 이렇듯 나눔을 실천한 여러분들(익히 잘 알고 있는) 중 몇 분을 선정하여

전시물로 남겨 놓았다. 

 

김만덕 할머니의 기념관이라서 그럴까? 사뭇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

하루였다. 

 

 

그녀의 무덤이 모충사에 있다는 것~ 을 알고 사라오름에 있는 모충사를

찾았다. 

 

 

모충사 부근에는 이리 유도화가 멋지게 피어 있었다. 

 

 

김만덕의 조촐한 무덤 

 

 

 

 

 

* *

 

 

 

 

 

 

 

 

 

 

 

 

 

 

 

 

 

 

 

 

 

 책 한 권과

사진첩을 구입했다~

 

 

 

 

 

 

 

 

2005년에 문을 열었는데 어째서 나는 이제야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을까? 

 

허긴 이 동네는 제주의 시골 중의 시골이고 서귀포는 물론 위미 남원에서도

멀고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이다. 

 

사진을 좋아하는 축에 속하는 나로서는 너무 늦게 찾은 셈이다. 

 

김영갑은 사진은 물론 글도 탁월하게 잘 쓴다고 생각한다. 

몇 권의 사진 관련 책을 읽어 봤지만 위의 책은 상당히 다르고 사진에 대한

전혀 새로운 시각을 일깨워 줄 듯하다~ 

 

그런데 천재들은 어찌 이리 단명하단 말인가? 

 

 

 

무릇 모든 여행에는 뭘 보고 느끼는 게 첫째이기는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게 있으니 그것은 입에 맞는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다.

 

제주에 아침 일찍 도착하면 아침 식사를, 저녁에 도착하면 저녁을 일단 먹고

도착지로 향한다. 

이번엔 저녁에 공항에 도착한 관계로 저녁을 먹어야 했다. 

그 목적지가 바로 고을면 이라는 꿩고기 집이었다. 

 

 

 

 

제주엔 꿩이 많다. 또 고사리도 많다. 

제주에 와서 해산물만 찾는건 좀 아쉬운 일면이다. 

평소 꿩고기를 접할 일이 별로 없는 이들은 생각해내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담백한 꿩맛을 한번 보면 잊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여행에서 첫번째 음식이 왜 그리 중요한지는 경험해 보신 분들은 이해가 되실 것이라

생각한다. 

 

 

약 33년 전부터 매년 정기적으로 몇 번씩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이름하여

' 벚꽃회' 선배 부부가 계시는데 마침 이곳 제주에 한 달 살기를 하는 중이었다. 

 

해서 이왕이면 제주에서 한번 만남을 갖자! 이리된 것이다. 

다음날 아침 겸 점심을 중문 컨벤션센터에서 뷔페로 먹기로 했다. 

마침 이날은 제주시 약사회에서 연수교육을 하고 있었다. 

대약회장을 비롯한 멀리 제주까지 와서 근무 약사를 하고 있는 친구까지 뜻하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제주 중문 컨벤션센터 전경 

 

 

 

 

 

 

주상절리 주변의 깨끗한 바다 전경

 

선배님 부부

 

우리 ~

 

 

주상절리 입구에 해녀가 따온 소라 전복 멍게 해삼 등 한 접시를

시켜 싱싱한 제주의 해물을 맛본다^ 

 

" 그래 이 맛이야~~ " 

 

햇살은 뜨겁고 기온 또한 높다. 

 

 

솔잎 사이로 보이는 바다 풍경이 한가롭다

 

 

인근의 천제연 폭포를 가자고 해서 차를 돌린다. 

 

 

 

 

 

천제연은 1~3까지 폭포가 연이어 있었는데, 맨 위 1폭에는 떨어지는 물이

하나도 없는데 2,3 폭포에는 저렇게 근사한 폭포를 보여준다. 

 

수학여행 등에는 여기가 아닌 천지연 폭포를 보여준다. 이곳은 3단으로 되어 관람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해서 단체 여행용 관광으로는 좀 힘들다.

 

물 또한 매우 맑은 편이다. 

 

 

 

 

 

제주 4.3 희생자 위령비가 이렇게 세워져 있다. 

불과 60여 년 전 일이다. 

 

봉개동에 4.3 평화공원이 별도로 조성되어 있지만, 

이곳 천제연 폭포에 위령비가 있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사랑방에 땔감으로 써도 시원찮을 이념이란 나무 동강이를 정치란 괴물이 이용한

전대미문의 비인륜적 만행의 현장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비석에 새겨진 긴 문장을

끝까지 읽어보려 하지 않는다.

 

뭐 그리 시간이 빠쁜지!!

 

 

그리고 인근 중문의 여미지 식물원과 연결된 구름다리에서~ 

멀리 한라산 정상이 보인다.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남원에 위치한 고사리 밭으로 가기로 하여 일찍부터 서둘러야 했다. 

한라산 남쪽을 동서로 관통하는 중산간 도로는 시속 60km 구간 단속이 설정되어 있어 통과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수망리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인데 찻길에서도 멀리 들어간

오지 같은 곳이었다. 

 

1인당 1만 원의 비용을 내고 5월 말의 한라산 고사리 꺾기에 들어갔다. 

사실 고사리는 4월 초순이 전성기이고 그때가 맛도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만일 우리만 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것이지만, 선배 부부와 함께 하는 일이라

기꺼이 합류한 것이다. 

 

인물도 잘 생기고 마음씨도 넉넉해 보이는 최재형 씨 , 이 분은 1만여 평에 달하는 고사리 밭을

가꾸고 있었다. 또 부인은 

 

 

멀리 서울에서 도예를 전공한 분으로 이곳 제주 토박이다.

부친이 말(馬) 전문가 였다는데 딸 역시 말 비슷한 도예작품을 주로 구워 전시회도 하고 

불가리아까지 가서 유학도 한 분이다. 

 

그런데 이 오지에서 고사리라니~~ ㅎ  물론 주업은 아니지만, 새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제주의  산 속에서 유유자적 삶을 이어간다는 게 괜찮아 보였다. 

 

인생이 뭐 별건가? 

 

싸우고 볶고 모함하고 증오하며 힘든 일상을 영위하는 많은 도시의 사람들이 생각났다. 

 

장근영 작가는 인근 남원 공방에 볼일이 있다며 이 날도 일찍 집을 나섰다. 

 

 

노오란 꽃을 피운 씀바귀는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곳 고사리 집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줄기가 길고 끝에 꽃이 피는 게 특징이다. 

 

 

낯선 방문객이 와도 짖지도 않는 이 녀석~

 

나중에 우리가 나가려고 차를 돌리자 냉큼 도로에 누워 차가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 오지에선 사람이 그리운 모양이다. 

 

착하고 순하고 영리해 보이는 강아지!!

 

 

 

이날 고사리를 실컷 뜯은 선배 부부~

줄기가 길게 자라 버린 이날 뜯은 고사리!

 

 

" 혹시 이 근처에 어디 좀 가 볼 데가 있소? " 

 

" 예, 여기서 몇 백 미터 나가면 찻집겸 다원이 있어요~ 그리고 교래 휴양림 가실 거면 근처에

붉은 오름이 아주 좋읍니다. " 

 

" 아! 그리고 수망리 찻집에 가시면 꼭 '말차'라는 걸 드셔 보세요~ "

 

해서 우리는 말차를 주문했다. 

 

 

말차는 특별히 차잎을 기른다 했다. 그리고 조제 과정에 특별한 기구로

휘젓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차를 아주 좋아하는 마니아가 아닌 한 말차의 특별한 맛을 잘 느끼기는

어려워 보였다. 저 비슷한 차는 미인온천으로 유명한 일본 후쿠오카의 우레시노에서도

맛을 본 바가 있긴하다. 

 

 

 

하지만 이 집은 방문객도 별로 없고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조그마한 차밭과 찻집~ 

 

수망리 찻집은 그런곳 이었다. 

 

 

돌로 울타리를 만든 주변 입구에 핀 조촐한 꽃!! 

 

 

조천에 위치한 성미가든은 평일임에도 점심을 먹으러 온 손님으로 북적였다.

그간 꾸준히 잘 관리를 해 온 징표였다. 

 

 

 

 

닭 가슴살 샤부샤부가 먼저 나오고

녹두를 넣은 백숙이

그리고 죽이 뒤따라 나오는데, 

거기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모든 음식이 다 정성스럽고 맛이 입에 달라붙는다. 

 

뭐 닭이 다 그렇지 별거 있겠어요?  이렇게 말하기 힘든 이유는 여기 음식을 한번

먹어 보면 그 말이 쏙 들어간다는 점이다. 조천은 제주에서도 토종닭 총 집하장이 있는

곳이다. 

 

선배 부부는 내일 새벽에 배를 타고 완도로 가야해서 점심 후 헤어지고 우리는 교래리 휴양림으로

향했다. 

 

헌데 지난번 방문때는 나무에 싹이 돋는 초봄에 이른 아침이었고 이번은 잎이 무성하게 다 나온

오후 시간 이었다.

 

역시 느낌이 너무 달랐다. 

 

같은 숲이지만, 계절과 시간에 따라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었다. 

 

 

붉은오름은 어떤가? 

 

삼나무 숲이 울창한 이곳은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다.

 

불과 해발 300여 미터 정도인 오름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매우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올라야 한다. 

 

그리고 정상에서 둘러 나오는 길은 햇볕을 보기 힘든 빽빽한 나무숲의 연속이다. 

이름에 걸맞는 붉은 흙은 아예 찾기도 힘들다^ 

 

 

리조트에서 위쪽 영실로 가는 길에 위치한 서귀포 휴양림도 사실은 매우

준수한 곳이다. 

 

휴양림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편백나무 숲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자연의 멋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우리는 평상에 앉아 쉬면서 새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붉은오름 입구에는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할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다.

시간이 넉넉히 많다면 저런 곳에서 텐트를 치고 며칠 좀 묵었으면 좋겠다. 

 

뭐 특별히 갈데가 있을까? 하며 찾아오는 제주~

그러나 예상치않은 한 두 곳만 봐도 전혀 새로운 느낌이 나는 곳이 바로 제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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