センチメンタル・ゲイ・ブル‐ス   すぎもとまさと

 

2013년 5월초에 처음 갔었던 후쿠오카 가족여행, 그때는 후쿠오카
시내와 유후인,그리고 벳부를 돌아오는 코스였다. 워낙 한국에
잘 알려진 코스이기도 했지만 숙박이며 기타 경비를 저렴하게 설정
한 여행이었다.

 

그리고 2015년 11월의 아들과의 우레시노 여행에서 타케오를 거치는
여행을 했었고 이번 5월에 다시 가족전체가 우레시노를 다시 찾았다.
한번 간데를 또 가나? 뭐 이럴수 있지만 사실 한번 가봐야 뭘 얼마를
그 동네를 돌아볼 수 있을까? 수박 겉핧기 보다 못하게 휙 차로 지나
가거나 잠시 머문게 전부인 여행을 하고 뭘 봤다고 할수 있을까?
이번 우레시노 여행에서 그걸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가족여행에 의의를 뒀는데 딸은 여행 2일전까지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갈까 말까를 반복했다. 딸이 안가면 엄마도 물론 함께 안가게
되는지라 어떻게 예약을 할지 참 난감했다. 다행이라면 지난 4월에
일어난 구마모토 지진 여파로 대거 예약 해지 사태가 일어났고 비행기
며 숙박이 초토화되어 출발 2일전에도 표를 구할수 있었고 예약이
힘들다는 료칸도 막바지에 방을 잡을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행에서는 이런 예기치 않는 사태도 생기는 것인데, 이번 5월 6-8 연휴
는 절호의 기회가 된 셈이다. 이미 국내는 그 어디에도 방을 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번 여행에 발이 되어준 혼다 하이브리드 소형차, 모양도 예쁘지만

실내 크기나 연비,승차감 어느것도 부족하지 않은 정말 준수한

차였다.

 

왜 이런 차가 국내에 수입되지 않는지^ 연비는 약 20km/L,

트렁크 부분이 높아서 짐도 넉넉히 실을 수 있다

 

 

 

갈때 마다 점심을 먹으러 들르는 하카타 항구, 이번에도

싱싱하고 값싼 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 위에서 적당히 골라온 아지,부시리,참치회 ~

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점심이 되고도 남는다

맨아래 우측 쇠고기는 우리의 반값 정도로 팔고있다

 

 

 

아들이 차를 몰고 나는 옆좌석에서 달리며 한장^ 찰칵!

저 멀리 섬을 넘어 부산항을 오가는 페리가 다닌다

 

 

 

토스市 부터는 국도로 빠져 내가 차를 몰고 갔다

우레시노 인근에 다달아 차를 정차하고 보니 준수한 산림과

밭에는 자운영이 자욱하게 피고 있었다.

 

평화롭기가 그지없다

 

 

 

자운영만 크롭해본 사진

 

 

 

일본 농촌의 모습, 2층집이 꽤 번듯하고 뒤로는 무성한 숲

그리고 집들이 옹기종기 펼쳐져있다. 대개 지붕은 기와로

올려져있고 넓게 넓게 집들을 펼쳐 짓는게 특징이다. 사가 시내

쪽으로 달리다 보면 끝없이 이어진 집들을 볼 수 있다

 

 

 

작년 11월에도 들렀던 히젠 요시다 도자기 회관, 이번에는

쉽게 찾을수 있었다. 이곳에 도자기는 비교적 저렴하지만

품질이 우수한게 특징이다

 

 

 

전시관 내부

 

 

 

 

 

그릇을 잘 모르는 남자가 봐도 너무 예뻐 마음이 확 끌리는데

하물며 여자들이 보면 오죽할까?

 

전부 사고 싶겠지^

 

작년 아들과 방문때 볼품없는 찻주전자를 사와서 늘 맘에 걸렸

는데 이번에 딸은 주전자 두셋트를 거침없이 골랐다.

 

 

 

뭣에 쓸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난, 저 쑥색 그릇들이

멋져 보였다, 근데 한개에 평균 5만원 정도라 깨끗히 접었다

 

 

 

기념 촬영후 자!

이제 우레시노 시내로~

 

 

 

첫날 숙박할 화락원(와라꾸엔)

 

 

로비에서 수속을 하는데 예쁜 아가씨가 녹차와

물수건을 담아 왔다 찻잔이 독특해서 들고 찍어 봤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보니 그날 대접받은 녹차는 新茶

라고 하는 매우 고급차였다.포르스름하게 연두빛이 우러나는

물에 약간의 자잘한 녹차 가루가 잔 밑에 깔린다.

 

그리고 바닥이 양탄자이기는 하지만 나이 많은 지배인이 와서

무릎을 꿇고 확인을 하는게 정말 특이했다. 지배인뿐 아니라

차를 가져온 아가씨도 그렇게 했다

 

손님을 왕처럼? 료칸에서만 있는 일인가? 이것이~

 

 

 

오늘 묶을 방에 셋팅된 茶, 이 동네는 어딜가도

일단 차부터 나온다

 

 

 

2층 창가에서 부랴부랴 보이는 풍경부터 한장

찍어 본다

 

 

사실 일본 여행을 몇차례 왔지만 그 대부분은 자유여행이고 비지니스

호텔급에 머물렀다, 료칸은 이번이 처음이다

 

 

 

좀전에 차를 대접 받았던 리셥션 공간! 에 다시 나와서^

 

 

 

저녁 먹기 전 잠시 밖으로 나오니 와라꾸엔의 별관 스이게츠

가 나온다. 약간의 비가 뿌리고 있는 저녁 풍경이다

 

원체 예약자체가 2일도 채 안되게 진행된데다가 옵션 자체가

별로 없어 이틀 연박도 불가했고 저녁은 밖에서 먹는 옵션을 택했는데,

내심 걱정이 조금,시원찮으면 어쩌나,, 참고로 와라꾸엔에는 외부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옵션이 7-8 군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찾아간 스즈시로 라는 조그만 식당, 밤이라 네비도 이상하게

안되고 가까운 거리를 많이 헤맷다.

 

 

스즈시로 식당의 저녁 가이세끼 요리

 

 

식당의 규모나 폼으로 봤을땐 처음에 아! 이거이 옵션대로

가나부다,,했는데, 나오는 식사 자체는 매우 준수했다. 어떻게

이런 식당에서 저런 멋진 요리가 나올까?

 

 

 

이날 식사한 스즈시로 의 저녁 메뉴이다

사진을 다 찍지 못해 부실한 메뉴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스즈시로 식당 내부, 이외에도 몇가지 더 메뉴가

나온듯한데, 얘기 하다가 사진을 빠뜨렸다. 나중 생각해

보니 이곳 식당의 주방장이 아마도 화락원의 주방장을 정년

퇴임한 분이 아닐까?

 

처음 불안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정말 멋진 식사를 한 풍만한 기분으로 료칸에 돌아올 수 있었으니^

 

여행이란 이런 것인가?

 

 

 

히젠요시다 도자회관에서 보지못한 예쁜 칼라의

물컵도 한장 찍어두었다

 

식당의 겉보기와는 전혀 다른 요리를 보여주는 일본의 식당^

다음 다음날 낮에 지나다 보니 참으로 조촐한 식당이었는데,,

 

 

 

식사후 나와보니 우레시노의 사쿠라 호텔의 불빛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료칸으로 돌아오니 밤 9시 정도가 되었다.맛있는 식사를 하고
나니 이제 좀 여유가 생기는 듯하다. 아내와 딸은 서둘러 잠을
청하고 아들과 나는 다시 온천을 하러 내려 간다. 도착하자마자
한번 했고 지금 두번째다. 아들과 일본을 올땐 철처히 지키는게
있으니 그건 바로 온천을 될수록 여러번 하는것이다. 이번 여행
2박3일에도 총 7번의 온천을 했다.
새벽 4시반이 되니 잠이 깬다 온몸이 개운하다. 전혀 피곤을 느끼지
않는다. 온천 때문인가? 어제 늦게까지 오던 비는 오늘(7일) 새벽엔
안 오는 듯하다.

 

화락원의 고급 별채 스이게츠 ~

이곳은 정말 예약하기도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방이 몇개 안된다.

 

무라까미 하루끼가 이곳 화락원에와서 유숙했던걸로

인해 더욱 유명해진 곳이기도하다

 

 

안쪽으로 슬쩍 들여다본 스이게츠의 모습인데,
뭐 고즈넉하니 쉬기엔 안성맞춤인듯하다.
아침 식사 전 살짝 비가 개인 우레시노의 화락원
부근을 돌아 본다
화락원 뒷동네
이곳도 매우 준수해보인다
화장실에 걸려있는 이 글씨^
당신과 만나게 되어 정말 좋았다
엄마는 일생에서 그것이
가장 보배로웠다
뭐 이렇게 해석? 가능한걸까
1층에 마련된 아침식사^ 밥은 얼마든지 더
퍼서 먹을수 있게 충분히 가져왔다

 

1층 응접실

 

 

 

두시간 정도 화엄사를 둘러보니 벌써 오후 2시가 넘는다.
아들이 배가 고프다고 난리다. 구례 시내에 있는 토종 야생닭집으로
가기는 너무 늦어 화엄사 입구, 아까 들어올때 봐두었던 식당으로^

 

 

찬이 20가지인 대통밥, 집사람은 제첩국으로,

 

 

이 집이다 , 지리산 대통밥집

 

 

대통밥집 뜨락의 수선화

 

 

자, 이제 임실에 위치한 김용택 시인의 생가로

출발이다. 어차피 가는 길이고 조금 돌아가면 되는곳^

 

어제밤 TV 에서 봤기 때문이다

 

남원쪽으로 올라 가다 순창으로 간다. 순창^ 은 고추장으로

너무나 유명한데, 순창을 지나면서 창문을 여니 웬지 구수한

고추장 만드는 냄새가 나는듯도했다.

 

순창에서 시인의 마을로 오는 길 좌우편에는 수려한 산들이 여럿

눈에 들어온다. 봉우리가 봉긋한것부터 능선이 유려한것,나무가 산등성을

빼곡히 감싸고 도는 형상 등 늦은 오후에 햇살과 더불어 너무도 멋지게

빛나고 있었다.

 

 

순창에서 임실 시인의 생가로 가는 길은 너무 잘 되어

있었다. 전주로 가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마침 그 동네 입구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생존해 계시는 분의 생가라고 하는 말이 좀 그렇다고 시인께서도

말씀을 했다는데,,적절한 용어가 현재는 없다고^

 

 

 

그런데 이날 뜻하지 않게 김용택 시인을 이곳에서

만날수 있었다. 괭이를 들고 주변 땅을 고르는 모습이 흡사

농부와 같았다.

 

 

 

생가에 쌓여있는 책들

 

 

 

저 집이 생가인데, 너무 오래되어 이젠 거처하기엔

불편한듯했다. 그렇지만 생가가 저렇게 보존되어 있다는게

어디냐!

 

 

 

새로 지은 건물인데 기념관으로 쓰실지

설명을 놓치고 말았다 산 쪽으로 오래된 느티나무가

보인다. 이 동네와 연륜이 같다고 하신다

 

 

우물처럼 샘을 판건데, 물이 워낙 맑아

마셔도 될듯하다고^

 

 

 

홍매화 한 그루에 많은 애착을 보이신다

내년쯤이면 아주 예쁜 꽃을 피울것이다

 

 

 

생가 주변 땅을 시에서 매입하여 자그마한 건물 두채를

지었는데 그중 하나다. 아마도 서책을 저 책꽃이에

빼곡히 들여놓을듯하다

 

지금 전주에 사시는데 곧 이곳으로 완전 이주할 참이시란다

 

 

목단도 이렇게 자라고 있고

 

안 찍다는걸 억지로 설득하여 아들과 시인 한장

찍게했다

 

 

 

어느 애독자 분이 가져다 놓았다는 노란 장미

 

 

 

생가 옆에서 시인의 사모님,,가까이 얼굴이 나오는걸

사양하셔서 멀찍이서 한장 찍었다. 첫눈에 정말 소박하신 분이란걸

알수 있었다. 이날 우리는 커피도 한잔 대접받았다. 아무 생각없이

온지라 나중에 집사람이 매화마을에서 산 돼지 감자 일부를 조금 나누어

드리고 왔다

 

 

 

생가 앞에는 이렇게 잘생긴 느티나무가 있다

 

난, 이날 약국생활 30여년만에 처음으로 내가 디자인한

명함 한장을 김용택 시인에게 건네 드렸다. 그냥 왔다 가는 바람이요

풀뿌리같은 별 이름없는 백성이지만 그래도 누구인지 뭣하는 사람인지

정도는^

 

그 명함을 첫번째 받은 분이 바로 김용택 시인이었다 ㅎㅎ

 

이 아늑한 섬진강 어귀 시인의 고향에서 더욱더

아름답고 귀한 시를 많이 쓰셔서 상처받고 고통받는

이땅의 영혼들에게 마음의 양식이 될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저 산허리를 돌아가면 마을이 두개인가 더 있다 했는데^

개울에 내려가 보니 물은 맑았다, 바닥에 축사에서 나오는

물 이끼가 많이 보인다, 상류에 축사가 꽤 있는듯했다. 나중에

올라오며 보니 대형 축사가 더러 눈에 띄었다.

 

 

깨끗한 산천만 유지한다고 먹고사는건 아닐테지만, 뭔가

개선책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섬진강이 어떤 강인가?

 

 

김용택시인의 섬진강 시를 덧붙여본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재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 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 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내님의 사랑은/ maronie

 

운조루를 둘러보고 나니 벌써 아침 8시가 훨 넘었다. 부지런히
하동 가는 길을 달린다. 쌍계사 입구를 지나 우측 다리를 건너
매화마을로 접어든다. 청매실 농원을 2km 정도 남기고 차가 밀리기
시작한다. 되돌아 오는 차가 많이 보인다. 아^ 여기서 적당히 주차를 하고
걸어서 가야 하나? 어쩌나.. 하다가 주차 포인트를 지나치고 말았다.
아뿔싸! 잘못했나 보다. 역시 앞길은 창창하게 밀리고 있었다.
끝까지 가보자, 이왕 이리된거,,약 30여분 후 홍쌍리 농원앞을 지날수는
있었는데, 그곳은 축제장이라고해서 이랬다.

 

저기 저 통로로 올라가면 청매실 농장인 모양인데

차타고 통과한걸로 갔다온것에 가늠하기로했다

물론 올라가보면 좋겠지^

 

 

이건 광양에 가면 맛볼 수 있는, 벚굴^ ㅎㅎ

 

 

 

입구를 훨씬 지나쳐 운좋게 한자리 주차를 하고

매화밭으로 가 보니^ 사실 이 부근은 청매실 농장을

중심으로 대략 20여 킬로에 걸쳐 전부가 매실밭이 펼쳐져

있어 아무데서나 매화를 감상할 수 있다.

 

 

 

꽃은 지천인데, 관상용 꽃과는 달리 뭔가 매화가

두텁게 느껴진다

 

 

매화나무는 어느것도 다 열매가 열지만 웬지 이곳

매화는 과수원의 꽃 이란 느낌이 든다

 

 

더 이상 매화를 보는건 의미가 없는듯하여

이꽃을 끝으로 철수한다

 

 

 

과수원 바닥에 핀 개불알인가하는 꽃인데

카메라를 땅에 대고 찍어도 잘 안나온다

 

 

도로변에 심겨져 있는 홍매화인데, 관상용 같다.

집사람은 저 분재를 두그루 삿다.청매,홍매로,

 

 

 

이렇게 몇장 찍고 있는중에 벌써 하동쪽으로 나가는 차가

꽉 막혀 정체되기 시작한다. 앗^ 이러다 이동네 탈출에 발 묶이면

그걸로 끝장이지 싶어 부리나케 챙겨 하동으로 도망치듯 출발한다.

 

여기서, 매화농장에 오실분들에게 한말씀 드린다면

 

주말에는 아무리 새벽처럼 와도 여유있게 둘러볼 여건이

안 될거 같다는거^ 조금만 시간이 지체되면 나가는게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안개가 그윽하게 피어 오르는 섬진강의 절경과 어우러진

매화밭의 풍경을 한번쯤 상상을 안 해본건 아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거이다.

 

정 그러고 싶다면 이 부근 어디 다른 장소를 물색해볼 일이다.

 

 

거기다, 이해할수 없는게 도로쪽에 끝도없이 주차되어있는

차량에 대해 주차단속 차량이 카메라를 장착하고 주차금지를

안내하며 돌고 있었는데, 이거야 참,

 

만일 진짜로 카메라로 찍었다면 주차장을 만들지 못한 지자체가

문제이고 그냥 계도용으로 그랬다면 하나마나한 일을 왜 해서 꽃보러

온 이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가이다. 절정기의 이 동네는 이미 주차니

뭐니를 생각해볼 겨를이 전혀없는 아수라 전쟁통이기 때문인데,

 

멀리 떨어진 공설 운동장 몇군데를 빌려 주차를 시키고 셔틀버스를

활용하는 방안이 좋겠지만, 아니 실제 좀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매화농원의

풍류를 좀 즐길수 있지 않겠는가?

 

 

하동교를 넘으니 그곳은 완전 딴 세상, 4차선 도로가 쌍계사 쪽으로

너무도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허나 시간이 지체되면 이 도로도

밀릴수 있겠다 싶어 하동의 명물 제첩국도 포기하고 구례로

달릴수 밖에 없었으니^

 

낮 12시 정도에 구례 화엄사에 도착한다.

 

화엄사는 약 40여년전에 친구들과 지리산 뱀사골을 거쳐 여수 오동도로

갈때 들러봤던 곳인데, 전혀 기억에 남은게 없다.

 

화엄사에도 꽤 차량이 몰리긴 했으나 매화마을에 비할바는 아니다.

적당히 도로옆에 주차하고 걸어서 올라가는데,,

 

 

 

맑고 맑은 지리산의 계곡수^ 우와! 감탄이 저절로

 

 

 

세월의 연륜을 말해주는 굵은 나무들^

 

 

 

 

 

굵은 나무들이 뭐라고~ 아무데서나 볼수있는 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된 나무에는 일종의 경외심 같은게 생긴다

좀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저 나무에 잎이 돋아나면

얼마나 멋질까?

 

 

 

많은 사람들이 셔터를 눌러대는 화엄사의 홍매

 

 

나도 최대한 각도를 잡아가며 촬영을 해본다

 

 

아, 어떻게 해야 잘 찍을수 있는건가?

근데 이곳 홍매화는 꽃 모양이 다르다. 아주 여린 분홍색이

은은하게 번진다

 

 

 

어디서 가져온듯한 우람한 동백이 올라가는 길에

좌악 양옆으로 심겨져있다

 

 

 

아! 그런데 이건 무슨 나무일까?

 

 

 

저 목백일홍이 만개하는 7월 말쯤엔 얼마나 멋질까?

 

 

 

점점 궁금해지는 저 나무의 정체

 

 

이 벚꽃이 필때의 모습은 또 얼마나 환상적일까?

 

청매 한그루

 

 

아,, 정말 저 벛꽃이 필때를 상상을 하면

황홀함이 감돈다

 

고풍스런 목조 건물

 

 

 

 

 

아들과 한장!!

 

내려오며 다시 봐도 멋지다

 

 

 

지리산의 품에 안긴 화엄사의 풍광은 대단했다

40여년 만에 다시 찾은 대 사찰, 화엄사^

 

 

아쉬워 한장 더
그리고 나오면서 계곡을 다시
사찰은 사찰대로 매화밭은 매화밭대로 다 의미가 있지^
아! 지리산의 품이 이토록 위대하구나^
그런데 이날 진짜 화엄사의 홍매화, 아니 흑매화는 
못보고 그냥 왔다. 더 위로 올라가면 흑매화가 있는데
말이다. 에혀!! 
봄날은 간다/박시춘 기타

 

운조루, 우리가 묵었던 곡전재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
있었다. 뭐 미리 알고 그리한건 아니고 숙박업소가 없어
이리저리 찾다가 우연히 하나 남은 방을 잡은게 곡전재였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하동 매화마을로 가지 않는다면
오다가다 차에서 공치기 십상이어서 마음이 좀 급하긴 했지만
이곳이 어디인가? 운조루가 있지 않은가?
한국의 종부기행? 에서 한번 본거 같다. 인근의 어려운 사람
들이 와서 쌀을 한바가지씩 담아갈 수 있게 쌀독을 개방하고 배고픈
사람들의 눈에 밥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이지 않기위해 굴뚝을
없애고 연기가 마당으로 깔리게 배려했다는 그곳이 바로 운조루 인
것이다. 허니 아무리 지금 매화가 대단한들 어찌 이곳을 지나쳐 갈수
있단 말인가.
1776년 영조 52년에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라는 분이 지은 집인데
사실 뭐 여행하기 전에 이런 저런 자료를 언제 다 찾아보고 하나?
암튼 어렴풋이 들었던 운조루가 있다하니 아침 일찍 숙소에서 컵라면 하나로
때우고 올라갔다. 이름이 특이해서 찾아보니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따온 이름이라 하는데!
雲無心以出岫(운무심이출수) -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나오고
鳥倦飛而知還(조권비이지환) - 새는 날다 지치면 돌아올 줄 아네
앞글자 운과 조를 따서 운조루라 했다고 하는데^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이날 날씨는 맑고 해가 밝게 떳다 첫눈에 들어온

운조루 전경이다 멀리 지리산 등성이 높이 보인다

 

 

 

앞에 작은 연못이 있지만 이건 아마도 지리산에서

흘러나오는 계곡수인듯하다. 어쩜 이리 수량이 풍부

할까?

 

 

 

저 문을 통해 들어간다

어른 1000원의 입장료가 있다

 

 

저택 정면

 

 

동쪽 측면

앗, 그런데 이곳에 투숙객들이 있었다

 

 

그리고 제일 궁금했던 타인능해

 

 

쌀독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옆에 좀더 큰 저장고가 있었다

우측의 저 통이 쌀을 보관하고 있었던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한번에 한 바가지 정도만 쌀이 나오게 설계가 되어 있다는

저 쌀독^

 

 

 

뒷켠으로 돌아 들어가니 담 너머 산수유며 대나무가

고즈넉하게 반기고 있다

 

 

동백도 이렇게 피어있다

 

 

 

 

아, 이곳이 바깥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던 조선 여인들이

세상을 구경하라고 만들어놓은 망루 였던가?

 

 

어린 매화나무엔 이렇게

 

 

사실 나중에 안건데 이곳의 매화가 매화 마을의 그것보다

더 아름다웠다는거

 

 

저 꽃이 다 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운조루 앞 도로에선 마을 아낙들이 산나물을 팔고

있었고 이것저것 사고있는 집사람^

 

 

운조루에서 멀리 섬진강을 바라본 풍경, 바로 앞에

곡전재가 있고 우측으로는 운조루가 소유한 땅을 매입하여

구례군에서 조성한 한옥 마을이 꽤 크게 지어져있다.

운조루의 명성 때문에 한옥마을도 잘되길 바래본다^

 

 

 

사실 운조루나 곡전재만 찬찬히 볼려면 하루가 걸릴

곳이다. 헌데 하동의 매화를 보러 온 길이라 마음이 너무

급했다. 일찍 가지 않으면 중도에 되돌아 올것만 같은 조바심이

나서 이곳을 여유있게 돌아볼 수가 없었던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음 기회에 구례와 이부근 사찰들을 찬찬히 둘러볼때 다시 왔으면

좋겠다.

 

 

 

섬진강 하구쪽으로 유명한 꽃 잔치가 두어개 있는건 다 아시는 바 이지만
계절적으로 그 첫째는 하동의 매화요 둘째가 쌍계사 십리벛꽃이다.
근데 그 어느곳도 감히 절정기엔 접근하기가 정말 어려운곳이다.

 

  그 호랑이 굴같은 곳으로 무작정 떠나가 보기로 한게 지난 목요일
불과 D 데이를 2일 앞에 남겨 놓고다. 실은 집사람 생일과
아들 생일이 3월달 중순 이후라 겸사겸사 가족여행으로 그 의미를
찾고자함도 내심 있긴했다. 내 성격상 원래 여행을 주도 면밀하게
미리 계획하고 하는 편이 아닌지라, 어찌보면 앞뒤 생각없이
급조된 여행인 셈이다.

 

용케 하나 남은 방을 예약한 구례 곡전재^
토욜 오후 출발해서 구례에 닿으니 저녁 7시가 훨 넘었다.
구례 시내를 돌아댕기다 겨우 찾은 황돈 샤브샤브집^
역시나 맛좋은 남도의 저녁을 마치고 곡전재에 도착했다.
비록 밤에 봐도 첫눈에 운치가 감도는 집임을 알수 있었다.

 

피곤해 못가겠다는 집사람을 남겨 두고 아들과 둘이 지리산 온천을
하러 밤길을 달린다. 온천 동네는 마침 산수유 축제가 개막을해서
난리도 아니게 법썩이었다. 맨처음 예약을 할려던 숙박업소가 여기었단
아들의 얘길 듣고 여기로 안한게 참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보기엔 조금 어설펏지만 목욕 마감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2,000원씩
깍아 준다. 그런데 여기 물이 장난이 아니게 괜찮다. 게르마늄 온천이라는데
아들 얘기로는 작년 11월에 다녀온 일본 타케오 온천과 비슷하다고^
지리산 물이 너무 좋아서 그런가보다^ 그래, 여행에는 온천이 최고지^

 

일단 곡전재로 돌아오니 밤 10시 반이다. 잠시 켜본 TV 에선 섬진강
시인 김용택과 시인의 고향 임실 얘기가 나온다.
수려한 산천과 섬진강 얘기에 내일 올라갈때 저곳을 들러야지 라고
생각해본다. 따스한 온돌방에서 숙면을 취한후 아침 6시에 일어난다.
오늘은 서둘러 하동 매화마을로 떠나야한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카메라를 들고
곡전재 촬영에 나선다. 산수유와 매화 그리고 동백이 집안에 빼곡하게 피어 있다.
날이 밝아오자 보이는 앞 마당, 자그만 냇물이 마당 가운데로
흐른다
홍매,청매가 어울려 피어있고 뒷담으로는
대나무가^

 

 

곡전재의 산수유는 너무 운치가 있어 굳이 저위에

동네 산동의 산수유를 보러 가지 않아도 충분히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을듯했다

 

굵은 기둥으로 봐서는 저 집이 본채인듯하다
마당에 아이들이 놀도록 평상과 놀이기구를 마련해 두었다

 

솟을 대문^

 

동백도 있고
忍 하면 德 을 쌓을수 있는 뜻인가? 본채로 들어가는
문에 적힌 글이다

 

우리가족이 묵었던 방에 써진 문구
주차장 마당위 담벼락에 이제 마악 피어나는 벛꽃
높은 돌담으로 둘러쳐진 곡전재
어떻게 저리 높게 담을 올렸을까?
끝으로 곡전재의 유래를 아래글로 대신해본다(곡전재 홈피에서 인용)
곡전재의 유래 본 건축물은 1910년경부터 승주 황천면에 사는 7천석의 부호 박승림이란 분이明堂을 찾기 위해 십여년을 많은 地官과 함께 수색 끝에 토지면 오미리 環洞(환동)금환락지다 확정짓고 李敎臣(호 穀田: 병주의 曾祖父)씨와 함께 건축하게 되었다 그후 박승림씨가 사업상 서울에 거주하고 집은 李敎臣 씨가 위임맡고 있었는데 박승림씨가 죽음으로 그의 子婦가 李敎臣씨에게 인 도하여 현재 5代째 살고 있다 그리하여 이집을 구례문화원에서 金環洛地(금환락지)라 하고 여러대학 건축 학자들이 건축이 잘되었다하여 목포대학 건축과에서 일주일 이상 조사한후 문화적 가치가 있다하여 문화재로 할 것을 신청하였다 원래는 6채 53칸 한옥으로 지어졌으나 중년에 인수당시 동행랑과 중간채를 팔아 훼손되었다가 현재 소유주 이순백께서 1998년1월 새로이 동행랑과 중간 사랑채를 복원하고 누각을 신설하여 "춘해루" 라 이름 지었으며 5채 51칸 연못(洗淵:세연)을 확장하였다 구례 군청에서 몇 년간 향토문화유산을 선정하다 2003년 문화재관리위원의 심의를 거쳐 구례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2003-9호)
금환락지(金環洛地)의 유래 도선(道詵:高麗名僧),무학(無學 ;朝初名僧), 남사고(南師古:朝明宗때 豫言家) 등 유명한 地師(지사)들의 秘訣(비결)에 의하면 구례읍에서 동쪽으로 十里를 지나면 큰 明堂터 가 있는데 오성(다섯 성씨 水火金木土) 받이가 다 살수가 있고 萬戶(만호)가 가히 살수 있다 하였다. 이 명당터에 살면 부귀는 물론 白子千孫(백자천손:많은자손)에다 文官(문관) 千名 (천명), 武官(무관)이 萬名(만명) 文千武萬(문천무만)이라 하고 王妃(왕비)가 3명이 나고 臥廳朝報(와청조보) 30代라 하고 그 부근에 上垈(상대:윗 집터) 中垈(중대) 下垈(하대)가 있어 沒尼(금귀몰니) 金環洛地(금환락지) 五鳳歸巢(오봉귀소)등 陽宅 (양택:집터) 3곳이 있고 四大陰(사대음택:묘자리)이 있는데 月明峰下化爭飛(월명봉하화 쟁비) 鷄鳴邱隅東嶺曉(계명구우동령효) 水廻券頭龍喜笑(수회권두용희소)馬? 三脊北岸肥(마비삼척북안비)라 하였다 이 명당은 下元甲(1984년)부터 운이 돌아온다 하였다. 또한 신혼부부들이 이 명당터에서 하룻밤만 숙박을 하면 금환락지의 운을 받아 평생 부귀영화를 누릴수 있다는 말이 전해 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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