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하구쪽으로 유명한 꽃 잔치가 두어개 있는건 다 아시는 바 이지만
계절적으로 그 첫째는 하동의 매화요 둘째가 쌍계사 십리벛꽃이다.
근데 그 어느곳도 감히 절정기엔 접근하기가 정말 어려운곳이다.

 

  그 호랑이 굴같은 곳으로 무작정 떠나가 보기로 한게 지난 목요일
불과 D 데이를 2일 앞에 남겨 놓고다. 실은 집사람 생일과
아들 생일이 3월달 중순 이후라 겸사겸사 가족여행으로 그 의미를
찾고자함도 내심 있긴했다. 내 성격상 원래 여행을 주도 면밀하게
미리 계획하고 하는 편이 아닌지라, 어찌보면 앞뒤 생각없이
급조된 여행인 셈이다.

 

용케 하나 남은 방을 예약한 구례 곡전재^
토욜 오후 출발해서 구례에 닿으니 저녁 7시가 훨 넘었다.
구례 시내를 돌아댕기다 겨우 찾은 황돈 샤브샤브집^
역시나 맛좋은 남도의 저녁을 마치고 곡전재에 도착했다.
비록 밤에 봐도 첫눈에 운치가 감도는 집임을 알수 있었다.

 

피곤해 못가겠다는 집사람을 남겨 두고 아들과 둘이 지리산 온천을
하러 밤길을 달린다. 온천 동네는 마침 산수유 축제가 개막을해서
난리도 아니게 법썩이었다. 맨처음 예약을 할려던 숙박업소가 여기었단
아들의 얘길 듣고 여기로 안한게 참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보기엔 조금 어설펏지만 목욕 마감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2,000원씩
깍아 준다. 그런데 여기 물이 장난이 아니게 괜찮다. 게르마늄 온천이라는데
아들 얘기로는 작년 11월에 다녀온 일본 타케오 온천과 비슷하다고^
지리산 물이 너무 좋아서 그런가보다^ 그래, 여행에는 온천이 최고지^

 

일단 곡전재로 돌아오니 밤 10시 반이다. 잠시 켜본 TV 에선 섬진강
시인 김용택과 시인의 고향 임실 얘기가 나온다.
수려한 산천과 섬진강 얘기에 내일 올라갈때 저곳을 들러야지 라고
생각해본다. 따스한 온돌방에서 숙면을 취한후 아침 6시에 일어난다.
오늘은 서둘러 하동 매화마을로 떠나야한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카메라를 들고
곡전재 촬영에 나선다. 산수유와 매화 그리고 동백이 집안에 빼곡하게 피어 있다.
날이 밝아오자 보이는 앞 마당, 자그만 냇물이 마당 가운데로
흐른다
홍매,청매가 어울려 피어있고 뒷담으로는
대나무가^

 

 

곡전재의 산수유는 너무 운치가 있어 굳이 저위에

동네 산동의 산수유를 보러 가지 않아도 충분히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을듯했다

 

굵은 기둥으로 봐서는 저 집이 본채인듯하다
마당에 아이들이 놀도록 평상과 놀이기구를 마련해 두었다

 

솟을 대문^

 

동백도 있고
忍 하면 德 을 쌓을수 있는 뜻인가? 본채로 들어가는
문에 적힌 글이다

 

우리가족이 묵었던 방에 써진 문구
주차장 마당위 담벼락에 이제 마악 피어나는 벛꽃
높은 돌담으로 둘러쳐진 곡전재
어떻게 저리 높게 담을 올렸을까?
끝으로 곡전재의 유래를 아래글로 대신해본다(곡전재 홈피에서 인용)
곡전재의 유래 본 건축물은 1910년경부터 승주 황천면에 사는 7천석의 부호 박승림이란 분이明堂을 찾기 위해 십여년을 많은 地官과 함께 수색 끝에 토지면 오미리 環洞(환동)금환락지다 확정짓고 李敎臣(호 穀田: 병주의 曾祖父)씨와 함께 건축하게 되었다 그후 박승림씨가 사업상 서울에 거주하고 집은 李敎臣 씨가 위임맡고 있었는데 박승림씨가 죽음으로 그의 子婦가 李敎臣씨에게 인 도하여 현재 5代째 살고 있다 그리하여 이집을 구례문화원에서 金環洛地(금환락지)라 하고 여러대학 건축 학자들이 건축이 잘되었다하여 목포대학 건축과에서 일주일 이상 조사한후 문화적 가치가 있다하여 문화재로 할 것을 신청하였다 원래는 6채 53칸 한옥으로 지어졌으나 중년에 인수당시 동행랑과 중간채를 팔아 훼손되었다가 현재 소유주 이순백께서 1998년1월 새로이 동행랑과 중간 사랑채를 복원하고 누각을 신설하여 "춘해루" 라 이름 지었으며 5채 51칸 연못(洗淵:세연)을 확장하였다 구례 군청에서 몇 년간 향토문화유산을 선정하다 2003년 문화재관리위원의 심의를 거쳐 구례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2003-9호)
금환락지(金環洛地)의 유래 도선(道詵:高麗名僧),무학(無學 ;朝初名僧), 남사고(南師古:朝明宗때 豫言家) 등 유명한 地師(지사)들의 秘訣(비결)에 의하면 구례읍에서 동쪽으로 十里를 지나면 큰 明堂터 가 있는데 오성(다섯 성씨 水火金木土) 받이가 다 살수가 있고 萬戶(만호)가 가히 살수 있다 하였다. 이 명당터에 살면 부귀는 물론 白子千孫(백자천손:많은자손)에다 文官(문관) 千名 (천명), 武官(무관)이 萬名(만명) 文千武萬(문천무만)이라 하고 王妃(왕비)가 3명이 나고 臥廳朝報(와청조보) 30代라 하고 그 부근에 上垈(상대:윗 집터) 中垈(중대) 下垈(하대)가 있어 沒尼(금귀몰니) 金環洛地(금환락지) 五鳳歸巢(오봉귀소)등 陽宅 (양택:집터) 3곳이 있고 四大陰(사대음택:묘자리)이 있는데 月明峰下化爭飛(월명봉하화 쟁비) 鷄鳴邱隅東嶺曉(계명구우동령효) 水廻券頭龍喜笑(수회권두용희소)馬? 三脊北岸肥(마비삼척북안비)라 하였다 이 명당은 下元甲(1984년)부터 운이 돌아온다 하였다. 또한 신혼부부들이 이 명당터에서 하룻밤만 숙박을 하면 금환락지의 운을 받아 평생 부귀영화를 누릴수 있다는 말이 전해 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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