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조루, 우리가 묵었던 곡전재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
있었다. 뭐 미리 알고 그리한건 아니고 숙박업소가 없어
이리저리 찾다가 우연히 하나 남은 방을 잡은게 곡전재였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하동 매화마을로 가지 않는다면
오다가다 차에서 공치기 십상이어서 마음이 좀 급하긴 했지만
이곳이 어디인가? 운조루가 있지 않은가?
한국의 종부기행? 에서 한번 본거 같다. 인근의 어려운 사람
들이 와서 쌀을 한바가지씩 담아갈 수 있게 쌀독을 개방하고 배고픈
사람들의 눈에 밥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이지 않기위해 굴뚝을
없애고 연기가 마당으로 깔리게 배려했다는 그곳이 바로 운조루 인
것이다. 허니 아무리 지금 매화가 대단한들 어찌 이곳을 지나쳐 갈수
있단 말인가.
1776년 영조 52년에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라는 분이 지은 집인데
사실 뭐 여행하기 전에 이런 저런 자료를 언제 다 찾아보고 하나?
암튼 어렴풋이 들었던 운조루가 있다하니 아침 일찍 숙소에서 컵라면 하나로
때우고 올라갔다. 이름이 특이해서 찾아보니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따온 이름이라 하는데!
雲無心以出岫(운무심이출수) -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나오고
鳥倦飛而知還(조권비이지환) - 새는 날다 지치면 돌아올 줄 아네
앞글자 운과 조를 따서 운조루라 했다고 하는데^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이날 날씨는 맑고 해가 밝게 떳다 첫눈에 들어온

운조루 전경이다 멀리 지리산 등성이 높이 보인다

 

 

 

앞에 작은 연못이 있지만 이건 아마도 지리산에서

흘러나오는 계곡수인듯하다. 어쩜 이리 수량이 풍부

할까?

 

 

 

저 문을 통해 들어간다

어른 1000원의 입장료가 있다

 

 

저택 정면

 

 

동쪽 측면

앗, 그런데 이곳에 투숙객들이 있었다

 

 

그리고 제일 궁금했던 타인능해

 

 

쌀독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옆에 좀더 큰 저장고가 있었다

우측의 저 통이 쌀을 보관하고 있었던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한번에 한 바가지 정도만 쌀이 나오게 설계가 되어 있다는

저 쌀독^

 

 

 

뒷켠으로 돌아 들어가니 담 너머 산수유며 대나무가

고즈넉하게 반기고 있다

 

 

동백도 이렇게 피어있다

 

 

 

 

아, 이곳이 바깥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던 조선 여인들이

세상을 구경하라고 만들어놓은 망루 였던가?

 

 

어린 매화나무엔 이렇게

 

 

사실 나중에 안건데 이곳의 매화가 매화 마을의 그것보다

더 아름다웠다는거

 

 

저 꽃이 다 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운조루 앞 도로에선 마을 아낙들이 산나물을 팔고

있었고 이것저것 사고있는 집사람^

 

 

운조루에서 멀리 섬진강을 바라본 풍경, 바로 앞에

곡전재가 있고 우측으로는 운조루가 소유한 땅을 매입하여

구례군에서 조성한 한옥 마을이 꽤 크게 지어져있다.

운조루의 명성 때문에 한옥마을도 잘되길 바래본다^

 

 

 

사실 운조루나 곡전재만 찬찬히 볼려면 하루가 걸릴

곳이다. 헌데 하동의 매화를 보러 온 길이라 마음이 너무

급했다. 일찍 가지 않으면 중도에 되돌아 올것만 같은 조바심이

나서 이곳을 여유있게 돌아볼 수가 없었던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음 기회에 구례와 이부근 사찰들을 찬찬히 둘러볼때 다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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