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춥다. 전철 타러 걸어가는길이 매섭다. 뒷모자가 있는 외투를 입고 탄천길

을 일부러 내려가서 걷는다. 손에 뭘 들고 가려니 장갑은 필수다. 예전같으면

승용차 끌고 가니 추위도 별로 몰랐는데,, 가서 하루죙일 추운데 차를 세워두는

것도 사실은 차 한테는 미안한 일이다.

 

3년전만 해도 바람부는 겨울이면 머리가 시려웠다. 특히 정수리 부분이 써늘했

다. 머리카락이 적어서였다. 모자를 써야한다고 집사람도 그랬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말했었다. 헌데 지금 머리가 춥지않다. 숱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샴푸? 때문인가? 스트레스를 안 받아서인가? 글쎄다..

암튼 요근래 머리카락이 많이 복구된건 사실이다. 사진을 찍어두긴 했는데,,

그 외에 또 하나 뭐가 있긴한데,, 아직 공표하긴 좀 그렇고..

 

머리는 빠지는데 안 빠지고 줄기차게 나는 놈이 있다. 수염이다. 수염은 왜날까?

코 밑을 보호하려고 아무렴 수염이 나는것 같지는 않다. 그럼 왜 날까? 이유가

있을터인데,,아직 그런거 얘기하는 인간 본적이 없다. 함 생각들 해보시길,,

그런데 이유가 뭔지도 모르고 왜? 인간들은 그 수염을 열심히 아침마다 자를까?

하루 1분씩만 면도에 써도 1년이면 360분,,무려 6시간을 면도에 바치는 것이다.

이거이 미친짓 아닌가? 다 필요해서 나는 수염을 왜 그리 지겹게 자르고,,시간을

허비하는지 알수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두 일단 수염을 좀 안자르고 놔둬 보기루

했다. 문명 했다는것이 이렇게 단정해지는것 만은 아니지 않을까?

 

전철에 앉아있는 사람들,, 여자는 다 머리를 기른다. 남자는 다 자른다. 이건 또

무슨 연유인가? 아니 여자중에 머리 좀 자르고 다니면 안되는가? 또 남자중에 머리 좀

기르고 다니면 큰일 나는가? 연예인중에 아주 가끔 남자가 머리 기른것 보긴했다.마는

여자가 머리 자른거는 정말 보기 힘들다. 아마도 비구니 스님외에 머리자른 여성을 보

는건 매우 힘들듯하다. 그러니 이것도 무슨 과학적 이유가 잇다기보다 그냥 그렇

게 관습으로 굳어진 것일게다. 허긴 여자가 머리를 길게 기르는 덕분에 미장원이란게

성업을 이루긴하지만,

 

전철 30분 타러 가는길에 이만하면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너무 많이했나? 오호라^

무념 무상이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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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에 있는 그대 / maronie

 

 

최근 유명 가수의 모창 대회의 하나인 히든싱어가 인기리에 진행되고 있다.

유명 가수의 모창 지원자들을 모아서 일정 부분 훈련을 시키고 이들을 원창자와

함께 무대의 보이지 않는 칸막이에 섞어 넣고 한 소절씩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게

한 다음 가장 원창자와 다르게 부른 사람을 투표하게 하고 마지막에는 누가 가장

원창자 같은지를 가려서 결판을 내는 진행 방식이다.

 

평가단으로 참가한 청중들은 원창자 뺨치는 모창자들의 실력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을 무수히 보여 주기도한다. 사실 원창자의 발성 패턴을 연구하면 웬간하면 그걸

유사하게 따라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걸 듣는 청중도 평소

원창자의 노래를 깊이 연구하지 않은 이상 쉽게 구분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다.

 

그나마 발라드 장르의 노래는 원창자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창자들이 아주 잘 부르는 편이다.

그만큼 성대의 조절이 용이하단 얘기다. 헌데 트롯 모창은 완전히 다르다. 원창자를 능가하기가

매우 어렵다. 첫 느낌에도 저건 아닌데,라고 쉽게 구분이 간다.

 

그만큼 트롯은 쉬운것 같지만 각 개인의 고유한 창법을 남이 따라 하기가 어려운 노래인 것이다. 

 

 

자, 그런데,,

 

우리 사회가 지금 모창대회로 흥미와 인기를 유발하는 이유가 뭘까?

사람들이 왜? 원창자 뺨치는 모창자에게 환호를 하는 걸까?

어떻게 원창자보다 더 잘하나?

거참 신기하네.. 이런 호기심이 우선일 것이다.

 

모창대회가 전 부터 없던 것은 아니다.

배호 모창대회란것도 있었으나 그리 인기 있었던 건 아니다.

매스컴이 관심을 가져 주지도 않았다.

 

그리고 모창 잘하는 가수를 짝퉁이라 해서 무시하기 일쑤였지 않은가?

그런데, 요즘 왜 이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모창대회를 할게 아니라 누가 더 원창자보다 창의적으로 멋지게 부르느냐를

시합을 하는게 더 나은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원창자는 빼고 노래를 듣고 진짜 멋지게

부른 가수를 평가단이 투표하는 것이다,이것은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을 타파하는 방법이 될것이다.

 

원래 노래는 원창자의 방식대로만 부르란 법이 없는 것인데 한가지 창법으로만 노래를 들어서야

말이 되는가? 노래를 듣고 부르는데 각 개인의 고유한 권리란게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작곡자의

창작물을 마음대로 훼손해서 멋대로 하는 건 허용할 수 없는 것이지만,

 

피카소의 그림을 누가 더 아주 비슷하게 그리느냐? 대회를 한다 치자.

이게 무슨 재미가 있는 일이겠는가?  유명 작가의 사진을 같은 장소에 가서 누가 더 비슷하게

찍는 대회를 한다치자.

 

이게 무슨 거지같은 대회란 말인가?

 

마찬가지로 원 가수를 뺨치는 모창대회란 건 이와 비슷해서

실은 아무 가치도 없는 일인것이다.

 

 

과천의 장미 

 

 

그리고 그렇게 해서 뽑힌 히든 싱어는 절대 훌륭한 가수로 성장하기 힘들것이다.

그런 사람이 독자적인 고유의 창법을 개발하기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선진 일류 국가의 제품을 모방만 해서는 절대 그들을 능가할 수 없는것이듯

처음부터 창의적으로 나가지 않으면 남의 뒤 꽁무니만 따라가다 마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남의 흉내만 내고 살 수 없는 것이듯 나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이렇게 산다,라는 확고한 인생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모창에 환호하는 요즘 세태는 뭔가 번지수가 잘못된것라고 말할 수 있을것이다.

모창이 아니라 독자적인 창의적 노래의 개발을 주문할때이다. 각 개인이 고유의 목소리를

내는 사회야말로 창의적 사회를 만들어가는 첫 발자국인 셈이다.

 

누구나 한펀치 하는 사회. 남의 뒤꽁무니를 따라가지 않는 자신감,

한 세상을 행복하게사는데 중점이 두어지는 사회,

이것이 진정한 선진 사회가 아닐까?  

 

 

 

가요제~

 

사실 정식으로 노래 경연 대회에 출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굳이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고 싶은 맘이 있던 적도 없었고 또 노래를 자랑하러

나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늘상 나의 지론은 프로

보다 더 출중한 실력을 가지려는 아마추어 골퍼와 기성 가수 뺨치는 아마추어 노래

실력자야 말로 허망 이라는 생각이다. 자기 만족은 되겠지만 현실에서 그것은

정말 안쓰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세상의 최고가 되는 일에 합당한 보수가 없다면 별 쓰잘데 없는 잡기

정도에 인생을 거는 무모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니 말이다.

물론 좀더 프로페셔널 하게 그것을 추구한다 해서 안 될건 아니지만, 각자 개인의

판단이니 더 이상 얘기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암튼 가요제는 시작되었고 전날 저녁부터 일찌감치 잠을 청했다. 웬지 모르게

무척 피곤을 느꼈다. 아침에 동네 미장원을 찾아 약간의 머리 손질을 하고 살짝

화운데이션도 바르고 등등, 집 사람이 태워 주는 차에 오늘 부를 곡이 녹음된 씨디를

들으며 혹시라고 까먹을지 모르는 가사에 집중하며 코엑스 앞에 내렸다.

 

11시 전에 도착했지만 아직 출전 선수들은 몇명 오지 않은듯했다. 대기실

에 잠시 앉아 있는데 시커먼 양복을 입은 낮이 좀 익은 사람이 '어이 누구

아냐? ' 하길래 보니 동기 오천권이었다. 서울시약 합창단으로 출전했다고,

 

근데 반가와 할 여유도 없었다. 우선 나도 초조하고 불안한 상태였으니까.

어영구영 하는 사이 출전자들이 모여들고 리허설을 병행하며 출전 순서 제

비뽑기에 들어갔다. 제일 먼 제주부터 뽑았고 부산,광주,이런순이었다.

제발 1번만 뽑지 말아라~하며 내 차례를 뽑으니 아뿔싸 이게 웬일!

1번 선수가 되고 말았다.

 

행인가 불행인가?  

 

대약측이 준비한 도시락을 찬 물과 함께 먹는데 이게 당췌 밥이 먹히지 않는다.

추운 날인데다 아침도 9시 넘어 한술 뜨고 왔는데 12시쯤 먹자니 밥맛도 없고,

긴장도 되고,에휴 그냥 내려가서 뜨끈한 순두부라도 한 그릇 먹을걸,

 

 

만추/작자미상

 

 

리허설을 하는데 악단의 문제는 없었으나 마이크 음량이 너무 적다고들

난리다. 흠, 본 시합에서는 마이크를 올려 준단다. 밴드가 쿵닥쿵닥 치고

받으니 상대적으로 마이크 음량이 적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합창제를

우선 시작했는데,청중이 별로 없다. 아니 이래서야 가요제가 될까?

걱정이 살짝 들었지만,

 

인천,경기,전북,등등 대약까지 6팀 인가가 합창단 공연을 마치고 에스피포

라고 실내악 공연이 진행된 후 10분간 휴식을했다. 아! 이제 곧

첫 타자인 나부터 공연을 해야하는구나. 휴^

 

목에 가래가 끼는 걸 방지하려고 가져온 용각산 스틱 4개중 벌써 리허설에

두개를 사용했고 청심원도 반 병을 먼저 먹었고, 좀 있다 출전을 하려니 맥박이

빨리뛰기 시작한다. 햐,이거 제대로 될까?

 

얼른 청심원 남은 반 병을 입에 털어 넣는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하지만,공연도 먼저 하는게 과연 나을까? 한 중간쯤이 적당할텐데,,

 

 

집사람이 보러 다시 온다고는 했는데 왔는지 어쩐지도 생각이없다. 어떡

허든 실수 안하고 잘 마치는게 최대 목표가 되다 보니 출연 바로 직전까지도

가사를 손에 쥐고 다시 한번 더 기억하려 애써 본다.

 

드녀 가요제 시작^ 팡파르가 울리고 ,사회자가 어쩌고 저쩌고 몇 마디를

하고 나를 호명한다.

 

짠! 이제 나간다^ ㅋ

 

익숙히 들려오는 악단의 연주를 들으며 시작한다. 썬그라스를 쓰니

앞에 심사위원들 보는 것도 편하다. 노래하면서 위원들이 어떻게 집중해

서 평가를 하는지 두어 차례 쳐다 보았다. 별로 신중히 듣는거 같지도 않다.

가사는 틀리지 않았고 적당히 감정도 잘 넣은듯하고 마지막 소절에서 팔을

두번 흔들기로한 동작도 잘 되었다.

 

이제 됬다. 끝..

 

무대 뒤로 돌아 나가는데 동두천 前 회장이 와서

 

"오우.첨엔 누군지 몰랐시요. 아주 끝내주게 잘 하셨읍니다..멋져요" 한다.

 

흠..왠만큼은 부르긴 불렀구나. 객석으로 돌아 올라 오니 수원시 분회장을

비롯한 안양시,안산시 등지의 아는 분들이 아주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 세운다.

앞줄에서 열심히 환호와 응원을 해준 도약 합창단 멤버들의 열성도 분위기를

띄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편안한 맘으로 나머지 출연자들의 공연을 감상했다. 물론

약간의 실수도 나오고 아주 잘 부르는 출연자도 있었다.

그런데 응원 해주겠다고 한 친구 부부가 내가 끝난 다음에 들어오질 않나,  

같은 반 회원도 늦게 들어 오는게 보인다. 이런 내가 1번 타자가 된게

화근이다. 한 10번째 쯤 불렀으면 되는 건데^ 괜히 미안해진다.

 

중간에 약사 초대 가수의 공연이 두차례 있었는데 어느새 마지막 출연자

의 공연이 끝났다. 주현미 가수가 등단하여 네곡을 불렀다.   

 

요세미티 석양/김웅렬 신부님

 

 

결과 발표.

 

이것 또한 떨리는 일이다. 혹시 이름이 안 불리면 어쩌지?

17명 출전자 중 입상도 못하면~ 등등..허나    

 대상은 기대 안하지만 우수상? 정도,2명인데,

그러나 나의 예상은 많이 빗나가고 말았다.

 

처음 4명에게 주는 장려상에 첫번째 나를 호명하는게 아닌가? 순간

웬지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처음 그렇게 불려지니 에고,장려상이라니,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가창력이 출중했다고 생각했던 울산의 약사도 장려상,

 

나는 그가 대상일거라 예상했던 터라 깜짝 놀랐다. 그리고 경기도 출전 팀인

중창단에게도 장려상, 헉,이럴수가, 총 7팀의 수상에 2팀이 경기도인

셈이었다.그리고 중창단은 노래를 두곡이나 믹스해서 불렀기 때문에

아예 수상에서 제외되는 줄 알았었다. 

뭐 축제의 성격이 많았던 대회이니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만, 

 

그리고 서울이 대상,사실 난 그녀가 잘하면 우수상 정도일 거로 예측

을 했었다. 그리고 지방 두 팀에 우수상, 적절히 안배한  모양처럼

보인다. 경기는 뒤늦게 내가 합류한 탓에 중창만 나갔으면 우수상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상을 둘로 쪼개 나눠 준 셈이지.

 

일반 가요제 시상은 이미 출전에 앞서 정해져 있다는 얘길 들은바 있다.

이게 왜 그럴까?  

   

또 그날 학술제에서 경기도가 대상,우수상을 몽땅 휩쓸었으니 가요제에선

서울에 좀 주자,체면도 있고,이런 배려가 충분히 나올 수 있었을게다.

 

이런  경우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들은 어떨까? 미술제,음악제,영화제 같은 건

사실 절대적 평가를 하기가 어려운 분야이다. 어느 수준에 오르면 나머지는

주관적 평가가 뒤따를 수 밖에 없을것이다.

평가자도 인간이니까.

 

수십년 전 중학교때 친구가 안성군 미술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그때 미술 선생님은 여선생님 이었는데 평가 위원이었다. 나중에

우리에게

 

"내가 우리학교 학생 후하게 만점을 매겨 줬는데도, 잘 안 된거 같아. 딴 학교도

다들 그렇게 해"

 

라고 말씀을 하신 걸 듣고 나는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왜? 우리학교라고 만점을 줘야 하나?

그냥 공정히 평가를 하면 되지.. 이 의문은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자, 그것이 가요제에도 미술대전에도 음악콩쿨에도 영화제에도

광범위하게 지금도 적용되는게 아닐까? ㅎㅎ

 

난 그래서 그런 주관 평가보다 객관적으로 평가되는 골프나 수영 같은 스포츠가

더 정당하다고 믿는다. 스케이팅이나 수영에 주관적 평가가 나올 수 없지 않은가?

간혹 피겨에서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사실을 우린 기억한다.

 

"자 그러니까. 7명의 입상자는 비슷한거 아닐까? 7명 뽑아 넘겨 주면 나머지는

주최측에서 알아서 배분 하는 거라구^

안 그려?"

 

뭐 꼭 그렇다고 단정하기는 좀 뭐 하지만, 사실 이런 공연에서 100% 엄정하고

공정한 심사를 하기는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 인간사 세상에서 어찌 그런것 까지

바랄 것인가? 

 

희망 사항일 뿐이고 우리는 될수록 그에 가깝게 가기를 힘쓰고 노력해 나갈 뿐

이라 생각한다. 

 

사실 나 자신은 그날의 판정에 특별한 불만은 없다. 또 장려상을 받았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내 나이가 어때서~ 라고 흔히 말하지만,

당시 가요제 출전시 내 나이는 60을 훨 넘었기 때문에, 사실 젊은 후배들과 

경쟁이 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만해도 감사할 일이다. 

 

 

거짓말 / 전국 약사가요제 출전곡, 2일 전 녹음

 

우레시노의 부겐빌레아 / 2016.5.7 maronie

 

 

 

 

카메라 공부~

 

이 얘기를 하려니 또 옛날 얘기가 안 나올 수 없다. 1950년 대에 사실

카메라는 쉽지 않은 물건이었다. 동네에 유성기라는것도 한대 정도,카메라는

아예 하나도 없었다. 장터에 가면 사진관이 하나 있었으나 거길 가 보는 사람도

실은 거의 없었다.

 

사진이란 걸 찍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해서 중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을 지날때 까지도 카메라는 남의 동네 일이었다.

뭐가 손에 잡혀 있어야 관심이라도 가지지,고등학교 졸업 후에 어느 친구가

조그만 트랜지스터를 가지고 왔는데 이게 좌우 음이 분리되는 스테레오란 거였다.

하도 신기해서 그 멋진 음을 오랬동안 들어봤던 기억이 있다.

 

해서 초,중,고 대학을 통틀어 변변한 사진이란게 없다. 물론 아무리 사진이 많았

다해도 개인적 역사이니 뭐 그리 대수로울것도 아니지만. 내 손으로 카메라를

장만한 건 대학을 졸업후 취직을 해서 돈을 번 다음이었다. 거의 1980년대에

들어와서다.

 

*

 

그렇게 겨우 시작된 나의 카메라. 고등학교때는 30명씩 두 개의 科가 합쳐진

즉 인쇄과라는 데와 건축과가 한 반이었는데 인쇄과는 사진을 공부한 곳이다.

나는 건축과를 다녔는데 우린 사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운게 없다.

그리고 주변에 사진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는고로 제대로 관심조차 두지

않았었다.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탈로 넘어오긴 했지만 디지탈의 원리가 뭔지 알게 뭐란

말인가? 그냥 찍으면 되지. 사실 더 이상 깊이 안다고 인생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세상에는 혼자 배워서 되는게 있고 안되는게 있는 모양이다. 전문

선생한테 제대로 배운 건 뭐가 달라도 다르기 마련이다.

골프는 거의 독학으로 배웠지만 용케 완전 싱글의 반열에 올랐다. 워낙 거기에

들인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카메라?

 

이제 그 최고봉으로 일컫는 DSLR 로 가기 직전이다. 어느 정도는 공부를

해 둬야할것 같아서 큰 관심을 갖고 있지만 그 기초 이론이란게 아무

래두 잘 이해가 안된다. 허긴 아직 제대로 매달려 공부 해 본것도 아니니

그렇게 말하면 안되겠지만, 아무려면 카메라가 20여년 해왔던 골프보다

더 어려울까.

 

 

엊그제 강남 학동 4거리의 한 빙딩에서 카메라 중급 강의란게 있었다. 큰

맘 먹고 찾아가 자리에 앉으니 옆자리에 70은 족히 넘었을 아니 그보다 더

되었을지도 모르는 할머니 두분이 앉아 계신다. 옆에는 육중한 카메라를

내려놓고 말이다. 으휴~일찌기 저렇게 연세 드신 분들이 카메라를 다루는걸

본적이 없어 저으기 신기했다. 한눈에 고수임이 분명했다. 배우고 익히

는데 나이가 뭔 상관이랴마는!

 

 

고3때 늦게 시작한 영어~ 삼위일체를 들으러 광화문 세종학원에 갔을때

일이다. 맨 뒷좌석에 중 3생 둘이 앉아 있었다. 당시 경기중학교 애들

이었다. 3년의 차이~ 난 그때 숨이 막히는줄 알았다. 늦게 시작한 공부,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똑똑히 본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카메라~ 70을 훨 넘은 할머니 두 분을 보면서 40여년 전

영어공부 할때와 대비가 되었다. 그때는 나이 어린 동생들을 보면서 , 이번

에는 나이를 저만치 초과한 할머니 두분을 보면서!

 

카메라가 단순 취미이긴 하지만,또 카메라를 전문가처럼 배울 생각도

없지만 적어도 좀 배우긴 배워야 할 그 무엇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끝으로 내가 생각하는 카메라에 대한 소견 한마디,

 

흑백이건 칼라건 카메라는 사물을 표현하는 기록하는 유력한 수단이다.

풍경,건물,인물,동물,등등을 기록하는 것인데, 눈으로 보는것과 카메라

렌즈를 통과한 것이 그리고 기록으로 남는 것이 무슨 차이란 말인가?

 

눈으로 본 것은 머리에 저장되지만 부정확하고 대개 잊어 먹는다. 나무잎

하나 꽃잎 하나를 보더라도 카메라를 통해 보는 것이 세밀하고 새롭다.

배꽃이 흰 줄만 알았는데 그 속에 핑크빛 꽃술이 있는줄 안 게 카메라를 통해서다.

말하자면 사물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카메라이다.

 

세상 모든 만물은 찰라에 변하고 사라진다. 순간을 붙잡아 놓는 건 카메라다.

그리고 세상에서 유력하게 어떤 일에 큰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특성중에 하나

는 카메라에 상당부분 고수였다는 점이다. 이런 말은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난 그 말에 상당부분 동의를 하는 셈이다. 왜? 카메라에 심취한다는 건 감각적

초월적 어떤 감성에 접근하는 것이고 사물을 보는 눈이 좀더 예리해 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루틴한 일이 아닌 엣지가 있는 어떤 일

에 누가 더 성공적이겠는가? 단지 패션, 예술,디자인 같은 부분에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다.

 

여행을 제대로 하는데도, 등산을 멋지게 하는데도,일상의 삶을 기록해 두는데도

카메라는 필수이다. 일생에 한번 갈까 말까하는 여행을 하고도 변변한 사진 하나

남겨두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는가?

 

그냥 아무렇게나 찍은 사진 몇장이 전부인 여행!

이렇게 인생을 살 수는 없지 않는가?

 

그렇다고 카메라에 몰입하여 눈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춥거나를 가리지 않고

소위 며칠씩 출사를 떠나는 그 정도는 못할것 같다. 나는 그저 내가 가고 싶은

여행,산,들,바다,꽃,그리고 내가 사는 동네 주변에서 일어나는 계절의 변화를

좀더 근사하게 멋지게 기록해두고 싶을 뿐이다.

 

그것은 곧 나의 삶의 기록이기 때문이고 궤적이기 때문이다.

 

분당의 단풍 2013.11.

 

 

 

2013.11.17 일요일 대한 약사회에서 약사 가요제를 여는 날입니다. 서울,경기,대구,인천,

충북,충남,경북,경남,제주 등 전국을 16개 시 도 지부로 운영하고 있는 대한 약사회인지라

각 시도지부에서 1팀씩 그리고 서울과 경기는 두팀씩 해서 도합 17개 팀이 출전을 합니다.

 

아직 1회 대회라 여러모로 관련 정보도 없고 또 가요경연 대회란게 순수 아마추어 노래 대

회니만치 특별한 무엇이 있을리 없지만,일단 대회는 대회이니 이런저런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수가 없군요^

 

최근 우리나라에는 수없이 많은 가요제가 생겼읍니다. 무슨 포도,사과 같은 과일을 주제

로하는 가요제부터, 유명 가수의 고향에서 열리는 향토 가요제,등등 해서 아주 많은 가요

제가 열리고 여기서 입상하면 가수 자격증까지 수여하다 보니 전국의 내노라 하는 노래 잘

하는 분들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일이 된듯한 느낌입니다.

 

제가 어릴때 우리 고향에서도 노래 자랑이란게 종종 열렸지요. 주로 추석 즈음해서 달 밝은

밤에 열렸는데,어린 나이에도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기억에 남아 있읍니다. '내이름을 나와

같이 알아줄 사람은,,' 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로 우승을 한 어느 아가씨는 지금도 또렷히

기억에 남아 있읍니다. 또 국민학교 친구의 형 이란 분도 무척 노래를 잘해서 콩쿨대회만 하

면 우승을 따놓은 당상이었는데,당시는 황소 한마리도 상으로 주곤 했지요.

 

허나, 서울가서 가수의 꿈을 키우다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나중에 친구한테서 들었읍니다.

 

 

 

그런데, 이 나이에 전국 약사 콩쿨대회를 나가다니,참,누가 이럴줄 알았겠읍니까?

노래에 급 관심을 가진 건 2003년 부터입니다. 그때 삼성동 코엑스 지하에 있는 어느 작

은 쎄미 녹음실에서 첫 씨디를 만든게 출발이 되었지요. 그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결국 2013년 봄에 6집 씨디를 만들게 되엇으니~꽤 집중을 한 셈입니다.

 

그런데 콩쿨대회에 나갈려하니 우선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지부터 곤란해지기 시작했읍

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 수가 없다는게 문제입니다. 그건 많은 청중이

자리한 큰 강당 같은 곳에서 부르는 노래인지라 너무 조용한거, 느린곡 , 잘 안 알려진

곡등은 청중의 외면을 받고 그리 좋은 평을 얻기가 힘들다는것 등입니다. 해서 선곡

은 절충을 해야 하는데,

 

많은 분들이 아주 명곡이라고 평이 난 곡들을 가지고 나오시더군요. 아마 많이 고심을

했으리라 여겨지는데,평소 가사를 보면서 노래에 익숙해진 입장에서는 가사를 전부

외우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었읍니다. 어려서,또는 자라면서 따라 부르던 노래들은 가

사 외는데 별 어려움이 없지만,최근의 노래를 부르려니 그게 아주 힘듭니다. 녹음실에서

몇번 테스트를 해봤지만 여전히 첫번에는 가사를 중간 부분에서 까먹는 실수를 하더군요.

 

발음,감정처리,노래의 흐름등에 중점을 두고 많은 연습을 했지만,갈수록 보완할

부분이 나타나고,툭하면 가사가 생각이 안나고,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머 어쩌

겠읍니까? 이왕 나가기로 한거 최선을 다해 봐야지요.

 

제 출전곡은 조항조의 거짓말 입니다. 친구가 블러그에 올려있던 이 노래를 듣고

이 곡이 좋다해서 그리한건데 뭐,잘 한건지 어떤지는 아직 모르겠군요. 다른곡

을 택했다고 그게 최선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고 하여간 선택된 노래에 최선을

다해 봐야지요.

 

불러 보니 이 거짓말이 매우 어려운 곡이네요. 쉽게 감정처리도 안될 뿐더러 트롯도 아

니고 발라드도 아니고 롹도 아니고..목소리에 특성을 집어 넣기가 아주 어려운,

정말 쉽지 않은 곡입니다.

 

내일 생 음악 밴드에,특히 드럼소리에 가사만 안 까먹으면 이젠 해볼만한 노래로

된듯 합니다. 더 잘하려고 애쓰기 보다 연습한 만큼만 틀리지 않게 완주하는게

목표가 되엇읍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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