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제~
사실 정식으로 노래 경연 대회에 출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굳이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고 싶은 맘이 있던 적도 없었고 또 노래를 자랑하러
나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늘상 나의 지론은 프로
보다 더 출중한 실력을 가지려는 아마추어 골퍼와 기성 가수 뺨치는 아마추어 노래
실력자야 말로 허망 이라는 생각이다. 자기 만족은 되겠지만 현실에서 그것은
정말 안쓰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세상의 최고가 되는 일에 합당한 보수가 없다면 별 쓰잘데 없는 잡기
정도에 인생을 거는 무모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니 말이다.
물론 좀더 프로페셔널 하게 그것을 추구한다 해서 안 될건 아니지만, 각자 개인의
판단이니 더 이상 얘기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암튼 가요제는 시작되었고 전날 저녁부터 일찌감치 잠을 청했다. 웬지 모르게
무척 피곤을 느꼈다. 아침에 동네 미장원을 찾아 약간의 머리 손질을 하고 살짝
화운데이션도 바르고 등등, 집 사람이 태워 주는 차에 오늘 부를 곡이 녹음된 씨디를
들으며 혹시라고 까먹을지 모르는 가사에 집중하며 코엑스 앞에 내렸다.
11시 전에 도착했지만 아직 출전 선수들은 몇명 오지 않은듯했다. 대기실
에 잠시 앉아 있는데 시커먼 양복을 입은 낮이 좀 익은 사람이 '어이 누구
아냐? ' 하길래 보니 동기 오천권이었다. 서울시약 합창단으로 출전했다고,
근데 반가와 할 여유도 없었다. 우선 나도 초조하고 불안한 상태였으니까.
어영구영 하는 사이 출전자들이 모여들고 리허설을 병행하며 출전 순서 제
비뽑기에 들어갔다. 제일 먼 제주부터 뽑았고 부산,광주,이런순이었다.
제발 1번만 뽑지 말아라~하며 내 차례를 뽑으니 아뿔싸 이게 웬일!
1번 선수가 되고 말았다.
행인가 불행인가?
대약측이 준비한 도시락을 찬 물과 함께 먹는데 이게 당췌 밥이 먹히지 않는다.
추운 날인데다 아침도 9시 넘어 한술 뜨고 왔는데 12시쯤 먹자니 밥맛도 없고,
긴장도 되고,에휴 그냥 내려가서 뜨끈한 순두부라도 한 그릇 먹을걸,
만추/작자미상
리허설을 하는데 악단의 문제는 없었으나 마이크 음량이 너무 적다고들
난리다. 흠, 본 시합에서는 마이크를 올려 준단다. 밴드가 쿵닥쿵닥 치고
받으니 상대적으로 마이크 음량이 적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합창제를
우선 시작했는데,청중이 별로 없다. 아니 이래서야 가요제가 될까?
걱정이 살짝 들었지만,
인천,경기,전북,등등 대약까지 6팀 인가가 합창단 공연을 마치고 에스피포
라고 실내악 공연이 진행된 후 10분간 휴식을했다. 아! 이제 곧
첫 타자인 나부터 공연을 해야하는구나. 휴^
목에 가래가 끼는 걸 방지하려고 가져온 용각산 스틱 4개중 벌써 리허설에
두개를 사용했고 청심원도 반 병을 먼저 먹었고, 좀 있다 출전을 하려니 맥박이
빨리뛰기 시작한다. 햐,이거 제대로 될까?
얼른 청심원 남은 반 병을 입에 털어 넣는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하지만,공연도 먼저 하는게 과연 나을까? 한 중간쯤이 적당할텐데,,
집사람이 보러 다시 온다고는 했는데 왔는지 어쩐지도 생각이없다. 어떡
허든 실수 안하고 잘 마치는게 최대 목표가 되다 보니 출연 바로 직전까지도
가사를 손에 쥐고 다시 한번 더 기억하려 애써 본다.
드녀 가요제 시작^ 팡파르가 울리고 ,사회자가 어쩌고 저쩌고 몇 마디를
하고 나를 호명한다.
짠! 이제 나간다^ ㅋ
익숙히 들려오는 악단의 연주를 들으며 시작한다. 썬그라스를 쓰니
앞에 심사위원들 보는 것도 편하다. 노래하면서 위원들이 어떻게 집중해
서 평가를 하는지 두어 차례 쳐다 보았다. 별로 신중히 듣는거 같지도 않다.
가사는 틀리지 않았고 적당히 감정도 잘 넣은듯하고 마지막 소절에서 팔을
두번 흔들기로한 동작도 잘 되었다.
이제 됬다. 끝..
무대 뒤로 돌아 나가는데 동두천 前 회장이 와서
"오우.첨엔 누군지 몰랐시요. 아주 끝내주게 잘 하셨읍니다..멋져요" 한다.
흠..왠만큼은 부르긴 불렀구나. 객석으로 돌아 올라 오니 수원시 분회장을
비롯한 안양시,안산시 등지의 아는 분들이 아주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 세운다.
앞줄에서 열심히 환호와 응원을 해준 도약 합창단 멤버들의 열성도 분위기를
띄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편안한 맘으로 나머지 출연자들의 공연을 감상했다. 물론
약간의 실수도 나오고 아주 잘 부르는 출연자도 있었다.
그런데 응원 해주겠다고 한 친구 부부가 내가 끝난 다음에 들어오질 않나,
같은 반 회원도 늦게 들어 오는게 보인다. 이런 내가 1번 타자가 된게
화근이다. 한 10번째 쯤 불렀으면 되는 건데^ 괜히 미안해진다.
중간에 약사 초대 가수의 공연이 두차례 있었는데 어느새 마지막 출연자
의 공연이 끝났다. 주현미 가수가 등단하여 네곡을 불렀다.
요세미티 석양/김웅렬 신부님
결과 발표.
이것 또한 떨리는 일이다. 혹시 이름이 안 불리면 어쩌지?
17명 출전자 중 입상도 못하면~ 등등..허나
대상은 기대 안하지만 우수상? 정도,2명인데,
그러나 나의 예상은 많이 빗나가고 말았다.
처음 4명에게 주는 장려상에 첫번째 나를 호명하는게 아닌가? 순간
웬지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처음 그렇게 불려지니 에고,장려상이라니,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가창력이 출중했다고 생각했던 울산의 약사도 장려상,
나는 그가 대상일거라 예상했던 터라 깜짝 놀랐다. 그리고 경기도 출전 팀인
중창단에게도 장려상, 헉,이럴수가, 총 7팀의 수상에 2팀이 경기도인
셈이었다.그리고 중창단은 노래를 두곡이나 믹스해서 불렀기 때문에
아예 수상에서 제외되는 줄 알았었다.
뭐 축제의 성격이 많았던 대회이니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만,
그리고 서울이 대상,사실 난 그녀가 잘하면 우수상 정도일 거로 예측
을 했었다. 그리고 지방 두 팀에 우수상, 적절히 안배한 모양처럼
보인다. 경기는 뒤늦게 내가 합류한 탓에 중창만 나갔으면 우수상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상을 둘로 쪼개 나눠 준 셈이지.
일반 가요제 시상은 이미 출전에 앞서 정해져 있다는 얘길 들은바 있다.
이게 왜 그럴까?
또 그날 학술제에서 경기도가 대상,우수상을 몽땅 휩쓸었으니 가요제에선
서울에 좀 주자,체면도 있고,이런 배려가 충분히 나올 수 있었을게다.
이런 경우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들은 어떨까? 미술제,음악제,영화제 같은 건
사실 절대적 평가를 하기가 어려운 분야이다. 어느 수준에 오르면 나머지는
주관적 평가가 뒤따를 수 밖에 없을것이다.
평가자도 인간이니까.
수십년 전 중학교때 친구가 안성군 미술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그때 미술 선생님은 여선생님 이었는데 평가 위원이었다. 나중에
우리에게
"내가 우리학교 학생 후하게 만점을 매겨 줬는데도, 잘 안 된거 같아. 딴 학교도
다들 그렇게 해"
라고 말씀을 하신 걸 듣고 나는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왜? 우리학교라고 만점을 줘야 하나?
그냥 공정히 평가를 하면 되지.. 이 의문은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자, 그것이 가요제에도 미술대전에도 음악콩쿨에도 영화제에도
광범위하게 지금도 적용되는게 아닐까? ㅎㅎ
난 그래서 그런 주관 평가보다 객관적으로 평가되는 골프나 수영 같은 스포츠가
더 정당하다고 믿는다. 스케이팅이나 수영에 주관적 평가가 나올 수 없지 않은가?
간혹 피겨에서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사실을 우린 기억한다.
"자 그러니까. 7명의 입상자는 비슷한거 아닐까? 7명 뽑아 넘겨 주면 나머지는
주최측에서 알아서 배분 하는 거라구^
안 그려?"
뭐 꼭 그렇다고 단정하기는 좀 뭐 하지만, 사실 이런 공연에서 100% 엄정하고
공정한 심사를 하기는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 인간사 세상에서 어찌 그런것 까지
바랄 것인가?
희망 사항일 뿐이고 우리는 될수록 그에 가깝게 가기를 힘쓰고 노력해 나갈 뿐
이라 생각한다.
사실 나 자신은 그날의 판정에 특별한 불만은 없다. 또 장려상을 받았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내 나이가 어때서~ 라고 흔히 말하지만,
당시 가요제 출전시 내 나이는 60을 훨 넘었기 때문에, 사실 젊은 후배들과
경쟁이 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만해도 감사할 일이다.
거짓말 / 전국 약사가요제 출전곡, 2일 전 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