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죽면 능국리를 먼데서 잡은 사진
6.25 전쟁중에 태어나 어릴적 시절을 지낸 내 고향은 지금 안성시 일죽면 능국리란
동네이다. 큰 동네를 동물이라 불렀고 그 옆에 살짝 돌아가 있던 우리 동네는
빼나골 이라 불렸다. 단 6가구만 모여있던 그곳^
13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그 6가구 마을을 떠났다. 아래 큰 동네로 방 하나를
얻어 내려갔다. 그리고 6개월여 후 면 소재지가 있는 송천리로 다시 이사를 했다.
비록 13년의 추억이 새겨진 곳이지만 능국리 분동이야말로 나의 유년기 추억이
가장 고스란히 간직된 곳이다. 13년의 어린 시절,,이것이 내 인생에서 차지
하는 비중은 아마도 30년 못지않을 것이다.
헌데 이곳은 산수가 좋은곳도 아니요,,특산물이 많은곳도 아니요, 그저 평범한
시골 농촌일 뿐이다. 논과 밭이 있고 야산이 있고 개울이 있고 신작로가 있고,,
봄에는 아지랭이가,여름에는 웅뎅이의 미역 감기가,개울의 등목하기가,논둑물
꼬에서 고기 잡기가,가을이면 땅콩 캐먹기,고구마 수확하기,무우 뽑아 먹기 소나
무 솔방울 따기, 싸리나무 꺽기,노란 솔잎 긁기,영나무 하기, 메뚜기 잡기,또 미류
나무가지로 피리 불기,새알 줍기,버섯 따기,매미 잡기,감자 캐먹기,자라 잡기,기타
등등 이루 헤일수 없이 많은 추억들을 나에게 선사해준 고마운 그런 곳이다.
이 모든 것들은 이미 나의 인생노트에서 한가지씩 언급하여 기록을 해둔바
있다.
그러니까 나의 고향은 미우나 고우나 나만의 추억을 간직하게 해주는 세상에
둘도없는 바로 그런 곳이다. 어느 고향과도 바꿀수 없고 대체 불가한 그런 유일
무이한 곳인 것이다. 마치 나의 조국이 그러한것과 같다.
고향 동네에 피어있는 백일홍 2014.7.
그런데 나이 들어 세상을 아곳저곳 돌아 댕겨보니 내가 어릴적 자랐던 그 동네만
좋은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산천 경계좋고 물 맑고 인심 순박한 곳들이
이 나라에는 아직도 많이 있었고 또 그런곳에서 예로부터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거기에는 뭔가 이유가 있는것도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이 그리 큰 나라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작은 나라도 아니다. 면적
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인구가 결코 적은 나라가 아니다. 우리보다 훨씬 작은
나라도 많다. 그러니 이 작은 나라에서 좋고 나쁜 동네가 어디있단 말이요?
이렇게 되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작년 가을 아이들과 함께 다녀왔던 경북 봉화의 달실 마을 전경이다. 마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해서 조선 4대 길지란 곳인데,,
뒷산의 산세나 풍모로 봐서 보통 동네가 아님을 한 눈에 알아보게 하는
곳이다. 조선 4대 길지가 아무렇게나 된것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 봉화
에는 여기 말고도 수많은 곳에서 많은 인물이 나온 걸로 알려져있다.
헌데,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나의 선택이 아니듯 고향은 더더욱 나의
선택과는 무관한 것이다. 좋은 동네에 태어난 것은 그 자체로 복이요
조상의 음덕일 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니 나의 고향을 얘기할때 다른 동네보다 좋다 나쁘다 말하는 건
어찌보면 할 얘기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내 고향이 최고
라고 말하는것도 무지의 소치일 수 있어 조심스럽긴 마찬가지다.
산은 너무 높지 않아야 좋고 들은 아담하게 폭 쌓여있는듯 해야 좋다.
개울은 너무 넓고 크지 않아야 좋고 마을 또한 너무 많거나 흗어져 있는
곳은 별로일듯하다. 땅의 기운이 너무 쎄거나 바람의 흐름이 너무
강한 곳도 길지라 할 수는 없을것이다.
고향 집이 있던 곳 (스케치로 그려본 그림)
6가구가 모여있던 저곳은 마을뒤로 아주 야트막한 동산을 끼고 있었다.
동산 뒤로 약 1키로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했던 노송산 이란 산에서 줄기가
내려와 마지막 끝난 지점이 바로 저 동산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등성 너머 약 60호가 살던 큰 동네와는 떨어진 외톨이 마을이었는데
큰 부자도 없고 그저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던 6가구였다.
그런데 위의 봉화 달실 마을을 가 보니 그 느낌이란것이 사진에서도
나타나듯 매우 평온감을 준다는 것이다. 높지않은 뒷산과 동네앞을
받쳐주는 넓지않은 논,,10여호에 불과한 작은 마을..
능국리를 달실 마을에 비교하기는 좀 힘든 일이지만,,달실 마을 앞으로
는 청정한 계곡물이 흐른다. 시골 오지나 다름없는 그곳.
달실 마을 앞을 휘감아 돌아가는 계곡
고향 얘기를 하다보니 나처럼 그나마 고향의 원형이 남아있는 경우는
나은 것이고 대체로 고향의 흔적이 아예 지워저 개발되어 없어진 경우,
이곳저것 어릴적 떠돌아 다녀 어디가 딱히 고향이라고 말하기도 그런 경우,
물론 이북이나 그런 곳이라 가 볼수도 없는 경우,,등등 해서 오롯한
고향을 기억속에 남겨둔 이도 많지 않다는걸 알게 되었다.
산수 좋고 풍수 좋고 동네 인심까지 좋은 그런 곳을 고향으로 두었다면
더할 나위없이 행복한 거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다소 그만 못
하더라도 남아있는 내 고향을 마음속으로나마 성원하고 잘 간직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예전 고향에서 상처받은 이도 있을 것이고 남부
럽지않게 대접 받으며 자란 이도 있을것이나 산천초목으로의 고향이
있고 사람으로의 고향이 있을 터이니 그중 어느 한쪽만 기억해도 고
향은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옛날과 달리 산도 낮아지고 뚝도 허물어져 사라지고 우물도
말라 없어진 고향,,집도 다 없어지고 새 집으로 들어차고 논밭도 그
옛날의 것들이 아니고 축사며 창고 등으로 가득 들어찬 드넓던 벌판을
보면 더구나 옛날 함께 알고 지내던 옛 사람이 거의 사라진 고향을
생각하면 뭣 그리 애닯을것도 그리울것도 없는 것이 고향이기두하다.
너무나 환상적인 꿈속의 고향과 같은 그런 고향은 이제 현실 세계에선
없다. 누군가가 만일 그런 고향을 읇어대고 있다면 나는 별로 신빙성
을 두지 않을것이다.
누군가가 ' 당신은 아직도 고향을 그리워 합니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리워하는 것도 아니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산이
거기 있으니 오를뿐이라고 말했듯이 고향이 거기 있으니 가볼 뿐이다.
가서 옛날 살던 추억에 잠시 젖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더 이상
뭘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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