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4. 보라산

 

 

봄을 알리는 꽃은 아주 여러 종류가 있다. 산수유가 그렇고 목련이 그렇고

진달래,개나리가 그렇고 앵두나무 꽃도 그렇다. 초등학교 시절 봄 소풍을 갔던

선유바위 라는곳엔 앵두가 지천이었다. 하얀 앵두꽃! 속에 무수히 많은 벌이

날아다니고 앵앵거림 속에 노닐던 그 곳은 선녀의 놀이터 같았다.

 

헌데, 이른 봄에 저 멀리 뒷산을 울긋불긋 장식하던 진달래,, 아랫동네 한 집

뒷뜰 장독대 부근에 붉게 피어오르던 진달래는 멀리 고갯마루에서도 아주

잘 보였다. 진달래가 발갛게 피어 오르면 아! 이제 봄이구나,,를 실감하곤

했었다.

 

 

그런데 나는 유독 이 진달래에 관한 추억이 하나 있으니 ,

 

시골 옛날 겨울은 참으로 혹독하게 추웠다. 그 길고 긴 겨울을 변변치 않은

옷으로 겨우겨우 버티고 이제 밭 고랑에 쌓인 눈 밑으로 포르스름한 풀이

눈을 뚫고 비치기 시작하면 이제 봄이 오는거였다. 그리고 뒤 이어 햇빛

가득히 아지랭이가 어리기 시작한다. 아! 봄이다..

 

간식거리라곤 일체 없던 시골, 진달래가 피기 전 얼었던 흙이 푸석푸석

해지기 시작하면 동네 뒷산으로 칡을 캐러 갔다. 운 좋으면 알이 토실

하게 밴 암칡을 캘수 있었고 그렇지 않은 날은 숫칡이라고 질기디 질긴

맛 없는 칡만 몇개 캘 뿐이었다. 돈 안들고 구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간식거리가 칡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허기진 배를 더 채우

려고 담장 뒤에 자라던 돼지 감자를 캐어 먹기도했다.

 

그런데 당시 우리 아버지는 먼데 산으로 봄 나무를 하러 가시곤 했다. 마곡산

이라고 우리집에서 약 3 십리 떨어진 산인데 사실 거기서 나무를 한 짐해서

집까지 오시기엔 좀 먼곳이다. 그래도 가까운 산엔 나무가 별로 없으니 어쩔

수없는 노릇이었다.

 

해가 거의 질 무렵이 돼서야 아버지는 지게에 나무를 지고 저 멀리서 나타나

셨다. 그런데 봄철이면 예외없이 지게 위에 진달래를 한줌 꺽어 꼿아서

오셨다. 나는 진달래만 보고 달려가곤 했다. 얼릉 달려가 아버지의 지게 위에

꼿혀있는 진달래 묶음을 빼어 한잎 한잎 진달래를 먹었다.

 

 

소월이 진달래를 읊기를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라 가실 길에 뿌리 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눈물 아니

흘리우리다.'

 

이렇게 읊었지 아니한가? 아마도 소월은 진달래를 먹어본 적은

없는가 보다. 진달래를 님을 보내는 아쉬움을 대신하는 소재로

보았으니 말이다. 아니지,,그도 진달래를 먹어 보았을지도

모른다

 

 

 보라산

 

 

 

 

진달래가 피면 봄이 온다 했지

연분홍 꽃이 아랫 마을에 피면

따스해져 살 만한 세상이라고

생각했지

 

울 아부지 지게 위에 꼿힌 진달래!

달려가 봄을 입안 가득히 끌어 안았지

무거운 지게 위 꽃 송이는

봄 하늘을 훠이 날아

세상을 구원하러 내려 왔어

 

그 봄은 다시 또 오고

아부지도 진달래와 같이

오고 계시네

 

지천에 피어 귀함도 없는 꽃

나에겐 귀한 꽃이라네

 

(마로니에 지음)

 

 

진달래 개나리는 지천으로 피어나 이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꽃이

되었다. 사람이게는 누구나 가슴에 안겨 피어 나는 꽃이 있다. 누구는

장미가,백합이,,란초가,,복사꽃이,혹은 배꽃이,,

 

나에겐 진달래가 그렇다. 또 봄이 그렇다. 내가 유독 봄을 좋아하는

것은 아무래도 진달래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랑이

전해져 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배고픈 어린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게

산에 지천으로 나는 진달래 꽃이었기 때문이리라.

 

그 봄이 도둑처럼 다가오고 있다.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그대 가슴으로 스몄으면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그대 타는 가슴으로 스몄으면

사월 목마른 사월 하늘
진홍빛 슬픔으로 피어
그대 돌아오는 길 위에서 흩어지면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피어 피어
사월 목마른 사월 하늘
진홍빛 슬픔으로 피어
그대 돌아오는 길 위에서 흩어지면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피어 피어 피어 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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