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적부터 살던 우리집을 떠나 그야말로 방랑길 같은 남의 집을
전전한 건 중학교 1학년 때이다. 그 때는 정든 내 집을 떠나 남의 집으로
간다는 불안감이나 이런것 보다도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난 후의
썰렁하고 무섭게 느껴지는 시골 초가집을 일단 벗어나는 게 좋을거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마침 먼 동네에서 누군가 우리 집을 쌀 두 가마니에 사겠다했고 그 길로 작은
누나와 나는 아랫동네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얼마 안 되는 보따리를 챙겨
아랫동네 아는 집 뒷방으로 이사를 했다.
담은 물론 대문 까지도 어엿히 갖춘 집이었다. 그 집에서 몇달인가 지내다
어차피 남의 방에 사는 거 학교 근처로 가자 하여 면사무소가 있는 송천리로
다시 이사를 했다. 그 집은 버스가 다니는 알죽 시내 큰 길가집 이었는데
방에 앉아 있으면 버스가 지날때 창이 우르르 울리곤 했다.
물론 시골이라 버스가 그리 자주 지나는게 아니라서 큰 문제가 되는건
아니었다
거기서 몇달인가를 지내다 좀더 한적한 곳으로 방을 하나 다시 얻어 본격적
으로 자취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나이에 무슨 자취냐? 그것도 시골에서
할지 모르겠으나, 친척이 인근에 사는 것도 아니고 도무지 의탁할 곳이 없어
별 도리가 없었다.
당시 석유 곤로라는 걸 써서 밥을 해 먹었는데,,이것이 석유 냄새도 많이 날
뿐더러 또 어린 나이에 밥을 안 해 먹고 여름 같은 때는 참외 하나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지금도 그때의 약간은 향긋한 특유의 석유 냄새가 어쩌면
그립기도하다.
내가 방을 세 얻은 동갑나기 친구의 집은 규모가 꽤 커서 당시에도 여러개의
방을 세를 놓고 있었는데,,마침 내 옆 방은 신혼부부가 어린 아기 하나와 살고
있었다.중학 2년생이었던 내가 밥을 잘 못해 먹는 걸 보고는 어느날
"학생!! 쌀만 주면 밥은 내가 해줄께"
라고 새댁이 보다 못해 나한테 말을 했다 아마도 밥도 잘 안 해먹고 학교라고
다니는 어린 학생이 많이 안쓰럽게 보였나 보다. 나는 무조건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날부터 옆집 새댁 방에서 밥을 날라다 먹기 시작했다. 같이 셋방 살이를
한다는 동병 상련의 심정이 있다고는 하나 시골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인심이다.
참으로 고마운 새댁이다.만일 지금은 사라졌지만 'TV는 사랑을 싣고' 란 프로에
만약 내가 출연할 기회가 있다면 단연 1순위로 찾고 싶은 분들이다.
말이 자취이지 사실 한창 커갈 나이에 뭐 하나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없는
생활의 연속이 었다. 직장 일 때문에 한달에 한번 겨우 들르는 작은 누나가
이것저것 챙겨 주기는 했으나 워낙 역 부족이었다.
"공부나 열심히 하거라 암것두 생각하지 말고~ "
라고 누나는 언제나 그 말만 하곤 돌아가곤 했다. 그러나
국민학교때부터 습관 들여진 예습 복습 전혀 안 하기는 여전해서 맘 잡고
집에서 책을 들여다 보는 건 거의 안했다. 몸은 점점 야위어 갔고 체육 시간에
츄리닝을 입고 보니 두 다리가 정말 가늘어져 있었다. 국민학교 시절 나름 건장
하던 내가 정말 초라하게 변한 걸 실감해야했다
시골서 혼자 자취한다하여 불량한 패거리에 끼어 다니거나 생활이 무질서 해
지거나 이런건 전혀 없던것만도 감사할 일이었다
식사는 그렇다 치고 가끔씩 찾아오는 감기나 이런 병이 나면 참으로 난감했다.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고열이 났을때 벽지 무늬가 뱅뱅 돌던 기억이 지금도
또렸하다.
그 렇게 일년여쯤 지내다 도저히 안 되겠서서 한 동네 하숙집을 찾아 들었다
도무지 자취를 해 가며 중학교를 다닐 능력이 없었다고 봐야겠다
초등 동창집 이기도 했던 하숙집 문간방을 하나 차지하고 지내게 되었다. 밥은
걱정 안해도 되니 이젠 살 것 같았다. 친구의 엄마이기도한 아주머니는 문 단속
과 전기 끄는것에 아주 엄격했다. 방을 나올 때 반드시 전기를 꺼야 한다고 신신
당부를 해서 지금도 그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그 집에는 주인 아주머니의 친척뻘되는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하나 같이 살고
있어서 그나마 말 동무가 좀 되어 주어 심심하지는 않았다.
당시 3학년때의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두번재 하숙집이다
서글서글하고 화통한 성격으로 서울로 이주해서 쉽지 않은
생활을 이어갔으나 2017년쯤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러다 중 3 이 되면서 중학교 교무실에 근무하는 뒷 동네 누나가 학교 바로 아랫
동네 '내뚠이'에 하숙집을 소개해 주었다. 농사를 짓는 집 이었는데 건너방 하나를
쓰게 되었다. 그 방은 늘상 어둑하였었다.
집은 약간 높은 곳에 지어져 있었고 외동딸이 당시 국민학교 4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따로 지어진 안방과는 좀 떨어져 있는 방에 혼자 지내는 건 참으로 심심하고 외롭고
고독한 일이었다. 먼저번 하숙집에는 그나마 말 동무라도 있었는데, 여긴 그렇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중학 3년간 나는 집을 네번이나 이사하며 안정적인 생할과는 거리
가 먼 어수선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천리 타향이 아닌 바로 내 고향
땅에서라니~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볼것 없는 나를 공부를 좀 잘 한다는 이유로 점
찍어 둔듯 한참의 세월이 지나 나중에 내가 대학을 들어간 후 까지 은근한 미련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뭐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것이지만,
세상 일이란 그래서 알다가도 모를 일인 것이다.
암튼 그렇게 시작된 남의집 살이가 결혼해서 내 집을 꾸리기 까지 무려 25회 이상
을 전전하는 시발점이 될줄이야 !
애수의 네온가/maronie
밤비는 부슬부슬 지향 없이 오는데
향수에 젖은 몸이 처마 끝에 지새듯
명동의 이 한밤이 길기도 하다
눈부신 네온만이 마냥 밉구나
장미꽃 한 송이를 내 가슴에 안고서
원많은 옛 추억 하룻밤을 새우네
푸른 별 꽃잎처럼 쏟아져 온다
때묻은 안개 길엔
등불만 깜박
김초향 작사/ 박시춘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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