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3때 학교 바로 아래서 하숙을 할 때의 일이다.


인근 장암리라는 동네에 살던 친구가 가정 형편상 중2 때 학교를

그만 두었는데, 내가 어쩌다 그 친구를 보러 친구집을 가게 되었다.

헌데 당시로는 귀한 공기 총이 친구집에 있었다. 지금처럼 가스를

충전해 쏘는게 아닌 총구 입구에 쇠 막대기로 공기를 수십번 압축

해서 총을 쏘는 구식 총이었다.

 

나는 시간만 나면 친구집으로 달려가 함께 인근 야산으로 새를

잡으러 다녔다. 촉새 종류부터 조금 덩치가 큰 콩새, 비둘기 등이
주 대상이었다. 당시 새 잡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공기총으로 새 잡던 시골 그 친구와 먼 훗날 친구의 포도밭에서

(1980년대 후반 즈음) 

 

 

 

 

      그러다 어느날 총을 아예 빌려 하숙집으로 왔다. 하숙집 아저씨는

 

" 내가 이래뵈도 군대에서 특등 사수였어" 하며 공기총을 팡팡 쏴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만 총이 고장이 났는지 더 이상 격발이 되지 않았다.

주인 아주머니는 괜히 총을 만져 고장나게 했다면서 아저씨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중에 어떻게하여 다시 총이 기능을 발휘하게 되었다.

 

실은 그 총을 빌려온 이유는 하숙집 뒷 동네에 비둘기를 많이 키우는

집이 있었고 허구헌날 비둘기가 그 집 지붕위에 쭈욱 늘어서서 앉아있는

걸 자주 보았었다. 또한 비둘기가 너무 많아 귀찮으니 비둘기를 좀

잡아 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 받은 때문이었다. 당시 공기총 탄피 속엔

큰 쇠 구슬과 작은 구슬을 넣을 수가 있었는데 작은 새를 잡을때는 작은

산탄을, 좀 큰 새나 꿩 종류를 잡을땐 큰 쇠구슬을 함께 넣어 총을

쏘곤했다.

 

 

 일요일 아침 나는 혼합된 총알을 만들어 뒷 동네로 내려갔다. 총이
귀했던 그 시절인지라 몇몇이서 구경한다고 함께 갔었다. 사랑채를 넘
어 안 마당으로 들어가며 지붕을 보니 예의 비둘기들이 여러 마리가 쭈욱
앉아 있었다. 나는 총을 슬며서 들어 올려 지붕위의 비둘기를 겨냥하려
했다. 허나,, 아뿔싸~ 미처 겨냥해서 제대로 총을 쏘기도 전에 대문 문턱
을 넘다 발을 잘못 디디는 바람에 격발이 되었고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총알은 그 집의 뒷방 방문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순간 등골이 싸아 하며 식은 땀이 주룩 흘렀다. 혹시나 뒷방에 누가
있었다면 큰 일인 것이었다. 다행히 거기 아무도 없어 화는 면했고
다시금 호흡을 조정하여 아직도 지붕에 태평하게 앉아 있던 비둘기를
향해 다시 총을 한방 탕! 하고 쏘았다. 그런데 비둘기는 한마리도 즉시
떨어지지 않고 모두 날아 가고 말았다.

 

뭐야 이거! 총은 제대로 쏘긴 쏜거야? 하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는듯도

했다. 며칠 후 동네 뒷산에서 죽은 비둘기 두어 마리를 발견했다. 아마도

그날 총에 산탄을 맞은 비둘기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두고두고 내 마음을 괴롭혔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
으로 당시는 애호 받는 새 였기 때문이다. 허나 총을 쏘아 볼 욕심에 앞뒤
분간이 안 되었던 것이다.물론 부탁을 받기는 한 것이나 뒤늦게 비둘기를
총으로 쏜 것을 많이 후회했다. 더구나 그날 총 쏘다가 큰 사고를 낼 뻔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이후로 비둘기를 잡으려는 시도는 안 했지만 소소하게 새 종류와
꿩을 잡기 위한 사냥은 오랜 동안 해왔다. 가끔씩 나이 들어 시골 내려가면
그 친구를 찾아 꿩을 잡으러 함께 시골 동네를 다니기도 했다. 약국을 경
영하면서도 공기총을 구입하여 눈이 하얗게 내리기라도 하면 수원 인근을
돌며 꿩을 잡으러 다니기도 했는데,, 실제 꿩을 한 마리도 잡은적은
없었다.


1990년대 초에 수원서 약국하던 한참 후배와 공기총을 70만원에 하나씩
구입하였고 그후 몇년 동안 그렇게 총을 가지고 다니다 관리가 귀찮아
결국 파출소에 헌납하고 말았다.

 

그런데 파출소는 왜 총기에 대한 보상도 한푼없이
그냥 총을 가져 가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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