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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초당의 얼크러진 나무뿌리 길을 어수룩한 저녁에 내려오는데
중년의 남자를 만났다.
" 저 위에 백련사 넘어가다 시간이 늦어 그냥 내려오는 길입니다. "
하고 내가 말하니~
"아이구 그래요? 백련사
동백나무 숲을 못 보면 후회가 될겁니다"
라고 말한다
" 앗! 그런가요? 이런,,그럼 차를 돌려 얼릉 가봐야겠구만요"
대전서 왔다는 그 분은 동백나무숲은 찬양을 했지만
"근데 영랑 생가같은덴 가 보시면 후회할겁니다.
별 볼게 없어요 "
했다.
백련사 입구부터 빼곡히 자리잡은 동백 숲
부랴부랴 어둑해지는 백련사에 당도해 동백숲을 보러 올라 간다. 다산초당에서
내려오다 발을 삐끗한 아내는 차에서 쉬겠다 하고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동백꽃이야 아까도 보질 않았느냐고 하며,
이런^
백련사의 목백일홍
올라가는 길은 동백과 비자나무숲이 빽빽했다. 숲에서 우는 새소리 또한 요란하였다.
부랴부랴 오르니 눈 앞에 저런 멋진 장관이 펼쳐진다.
목백일홍 나무가 저렇게 멋지게 생긴거는
아무튼 나는 처음이다.
😛
나무의 얼키설킴이 저렇듯 대단하다. 아! 정말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백련사의 역사를 백년은 족히 기억하고 있음직한 나무다^^
백련사를 뒤로하고 멀리 구강포구 를 바라보니 으스름 저녁인데도 해안도로
주변에 벛꽃이 만발한게 끝도 없이 펼쳐진다. 오늘 숙박지를 정하지도 않았는데~
우선 저 길을 달려보고 싶다.
해는져서 어두운데,,저 건너 칠량의 불빛과 산세가 어렴풋 다가온다.
아..이토록 멋진 저녁 풍경을 보러 다니는
사람도 없다니,,, 이곳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적막한 저녁 방파제를 조용히 달려 본다.
포구 저 멀리 불빛이 보이는곳이 강진 시내 쪽이다.
(당시 카메라가 시원찮은 것이라 저녁 사진이 이렇다)
아무도 없는 길이 으시시해서 얼른 차를 돌려 강진 시내로 향한다. 올때 봐두었던 남도장 여관을 연락하니
그만둔지 10년 이란다. 근데 전화는 우째 받을꼬~ 이런,,결국 유명하다던 한정식집 해태 식당도 시간이 늦어
안되고,,암튼 간신히 저녁을 어느 식당에서 해치우고 겨우 숙박도 해결했다. 더러 보이는 관광버스 손님들이
시내 숙박업소를 모두 차지한 모양이다. 이것 때문에 아내에게 핀잔을 왕창 들었다. 어디갈땐 제발 예약
좀 하고 댕기라고^^
무화과 나무
묵었던 온천장 여관 앞집에 자라고 있는 나무인데 하도 신기해서 지나가는 아주머니 한테
물어보니 저게 무화과 나무란다. 사진은 그저 그러해 보이지만 담장
안으로 보이는 나무의 모습은 정말 신기했다.
자 드디어 영랑의 생가이다. 강진 시내의 좀 높은 곳에 자리잡은 그의 집은
꽤 면적이 넓고 아주 좋은 위치에 있었다.
동백나무와 대나무가 빽빽하게 둘러쳐 있는 뒷담을 끼고 자리잡은 생가는
한 눈에 봐도 명당임이 틀림 없었다.거기다 여기서 멀리 구강포구가 어렴풋이
눈에 잡힐 그런 곳이니 말이다.
척 봐도 얼마나 좋은 곳인지 ~~
뒷뜰에 흐드러지게 피어 떨어진 동백 꽃들이 너무나 운치가 있다
방문 틀에 끼워 놓은 동백꽃!! 이곳은 동백이 함박눈처럼 날린다^^*
별채 앞에 피어있는 겹동백의 어여쁜 모습
은행 나무도 이렇게 멋지게 자란게 있다^^*
동백 한 닢을 손에 들고 영랑의 집 손님이 되어 본다.
뒷뜰의 동백,백련사의 동백에 전혀 뒤지지않는 멋진 자태다.
생가 우측 높은 곳에 자리잡은 금서당(琴書堂).. 독립 운동의
산실이자 소학교 였다는데,
어느 화가의 작업실로도 씌였다 한다.
금서당 뜰에 피어있는 꽃
이곳 언덕에 누워 멀리 포구를 바라보면,
영랑 시인의 한 분 누님이 떠오른다 했든가??
이제 몽우리를 키우고 있는 모란이 생가 뜰안 곳곳에 심어져 있었다. 아마도 4월 말이나
5월 초순이면 저 모란이 벌겋게 만개할 것이다. 지금도 저리 멋진 집인데,,
모란이 피면 정말 영랑의 생가는 詩로 만발할 것이다. 그때의 생가를 다시 한번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니 말해 뭐 하겠냐마는 다산 초당길에서 만난 중년의 남자가
" 별거 없어요..실망 할겁니다"
란 말은 전혀 틀렸다!!
동백과 대나무가
어울러진 이 땅에서 볼수 있는 정말 멋진 집을 나는 가슴에 품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1948 년도에 이집에서 떠나 서울로 향했다던 영랑!! 그는 왜 이 좋은 곳을 두고
서울을 택했을까? 당시 많은 시인 문인들의 주 활동 무대가 서울이라서
그랬을까?
서울로 간 그는
1950년 6.25 동란에 부상을 입어 그해 9월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강진이 낳은 천재 서정 시인이 그렇게 사라질 줄
이야^^ 너무나 아쉬운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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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생가를 돌아본후 얼핏 보니 부근에 사의재가 있다고 되어 있었다. 정약용이 강진땅으로 유배되어
왔을때 모두들 피하고 문을 걸어 잠그는둥 마치 외계인 대하듯 할때 따뜻히 그를 맞아준 곳이 있었으니
바로 동문밖(당시는 강진에 성곽이 있었다) 사의재라는 주막집이었다. 이곳 주모되는 할머니가 다산을
측은히 여겨 그 집에서 유숙하게 했다는데~
90년대만 해도 이곳을 찾을수없어 안타가워 했던 곳이다. 아마도 유홍준 교수가
문화재 청장이 된후 사의제를 포함한 몇곳을 복원한게 아닐까..추측을 해본다.
왜냐면 그의 저서에 사의재의 유적지를 찾지못한 걸 못내 아쉬워한
대목이 나오기 때문이다.
저 자그마한 초가집에 방 한칸을 다산 선생에게 내어 주었다는 주막주인 할머니!!
아마도 하늘이 도움을 주러 내보낸 이가 아닐까..
이젠 이곳이 실학의 4대 성지로 불려지는 곳이 되었다. 1801년 11월 23일 날도 차고 바람도
심했을 11월 말의 강진 땅에 간신히 거처할 곳을 마련했을 때의 다산 선생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더구나 실의에 빠진 다산에게
[어찌 그냥 헛되이 사시려 하는가? 제자라도 가르쳐야 되지 않겠는가? ]
라는 주막 할머니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아 경세유표 같은 불후의
명저를 남긴 곳이 바로 이 골방이었다니....참으로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사의재...
생각을 맑게 하되 더욱 맑게,
용모를 단정히 하되 더욱 단정히,
말을 적게 하되 더욱 적게,
행동을 무겁게 하되 더욱 무겁게,
나는 고려 청자 도요지에 가서 결국 사의재가 적힌 청자 판을 하나 구입했다. 그
냥 식탁 옆에 두고 수시로 읽어볼 요량이었다.
사의재에 걸려 있는 다산의 시 한수입니다. 당시나 오늘이나 세상 사정은 늘
비슷한가 봅니다. 그래봐야 불과 200년 전 일이니 그리 먼 옛날도 아닌 셈이군요^^*
그런 세상이었건만 오늘같은 나라로 성장한 걸 보면 참으로
세상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음,,여기에 잘 나타나 있네요^^* 1803년 12월 초열흘이니 1801년11월 23일
처음 이곳에 정착한지 대략 2년쯤 경과한
때입니다. 다산선생도 주역을 읽고 계셨군요!!
물론 최근에 복원시킨 거겠지만,,아담한 우물이 여기도 있읍니다. 먹을 수 있을까..
하고 들여다 보니 식음으로 사용은 못하겠드라구요.
다산 선생에게 힘을 주고 따스하게 맞아주었다는 주막집 할머니와 그의 외동딸
기념 동상입니다.
저는 주막집 뒷편에 있는 저 할머니 동상을 두손으로 어루만져 드렸읍니다.
" 할머니...고맙습니다^^ " 하면서 ~ 물론 다산과 저 딸과의 사이에 자식이 하나
있었다고 하지요?
주막집 입구에는 이렇듯 앵두가 피어 옛날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있었읍니다,
참으로 이곳 사의재를 복원한것은 정말 잘한 일 같읍니다.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이곳을
그냥 지나쳐 버렸다면 얼마나 아쉬운 일이었을까요^^
비록 작은 주막집에 불과하지만 이곳을 둘러 보고 나오는 강진의 하늘과 동네는
더없이 청량하고 맑게 느껴 졌읍니다^^*
무소의 뿔처럼 - 범능 스님 고규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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