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지난 2006.2월 말 경 경기도약 임원 각 분회장 총무위원장연수 교육후 잠시 둘러본 단양 일대에 대한 기행문입니다.
단양하면 웬지 단아하고 깨끗하며 약간은 세속적이지 않은 그런 이미지가다가오는 곳입니다. 산골중의 산골이요, 앞으로는 소백산이 병풍처럼 가려 있고뒤로는 금수산을 비롯해 서쪽으로는 월악산이 치솟아 있어 어디 하나 찌르고 들어갈빈틈이 보이지 않는 그런 곳입니다. 충주호가 생기면서 조선시대 산수화에서나볼수 있음직한 기암괴석과 소나 무가 등장하는 옥순봉을 호수 위에 탄생시킨 곳입니다.
(단양 옥순봉)
2 월 25-26일 연례행사로 개최되는 지부임원 분회장 총무위원장 워크샵을잘 마친 다음 일요일날 쌀쌀한 초봄의 바람을 맞으며 주변 일대를 돌아보게되었읍니다. 사실 단양 팔경이라지만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충주호는 썰렁하기만 했읍니다. 그래도 유람선 운전기사의 구수한 입담을 들으며 장회나루를한바퀴 돌았읍니다. 그리고 새로생긴 죽령 터널을 지나 영주 부석사로 향했읍니다. 빗바랜교과서에 등장하던 부석사, 부석사의 안양루와 무량수전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아! 이것이 과연 한국의 멋과 맛이요 세계 어디에 내어놔도 은은한맛이나는 천하 제일의 자랑거리임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봉황산 부석사 란 글씨가 보입니다소백산의 동쪽 가지를 뻗어 내려와 땅에 다달을 즈음에 사뿐히 다소곳이자리잡은 봉황산이란곳 그곳에 마치 새가 알을 품어 놓은듯한 온화한 자리에부석사는 자리잡고 있읍니다.
(안양루의 나무 기둥입니다)
세월의 주름을 그대로 간직한 나무기둥을 쓸어보면서 천천히 무량수전으로올라갑니다. 세상에 크고 웅장한 석조 철골 시멘트 건축물은 우리 말고도 다른나라에 얼마든지 많읍니다. 물론 목조건물도 많겠지요. 허나 무량수전의 소박한이 목조 건축물은 바로 우리 조상들의 혼과 얼이 그대로 드러나 는 멋진 작품입니다.
(무량수전 대웅전)제가 처음 이곳을 본것은 한 4년전 쯤입니다. 그때 가을 영주군 봉화에서송이 버섯축제가 열릴 때였읍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9월 말일 시골친구와 둘이서 송이 좀 먹어보고 잘하면 산에서 캐보기도 하자며 왔다가가는 길에 혹시 송이를 좀 캘 수 있나..하면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결국도착한게 바로 이곳 부석사입니다.
(무량수전의 환상적인 목조 추녀)
처음 저 건축물을 본 순간 정말 눈이 떼어지지 않았읍니다.조악한 시멘트를 덧칠한누각들만 보다가 순수한 알몸같은 나무결로 만들어진 단아한 건축물 을 보니 그 손길이순간 확 가슴에 닿았던 거지요. 나무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편의상 대부분 짓고있는현대의 시멘트나 철골건물은 웬지 부드러운맛도 온화 한 맛도 없는차거운 물건에 불과합니다.
(서까래의 배열)
위 그림도 보면 서까래의 배열이 얼마나 멋진지 알수 있읍니다.하나더 볼까요?뒷산의 청명한 하늘색과 나무와 어우러진 무량수전의 추녀입니다.
이런 스 타일의 사찰은 많이 볼수 있읍니다만, 순수 목재로 지어진 이런구도는 어 딜가도 만나기 쉽지않아 보입니다.무량수전에서 앞을 보면 턱 자리잡고있는 안양루와 석등입니다.
저 석등에 다 밤이면 불을 밝히고 안양루 바닥에 둘러앉아 시를 읊거나참선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무량수전에서 저 멀리 풍기 들판을 바라보는시야는 참으로 일망무제입니다.
그렇지 않읍니까? 그런데 저 안양루에 들어가보면(들어가지 말라고 씌어져있 음)거기에 유명한 김삿갓(金笠)의 시가 한 수 적혀 있읍니다.천하의 김삿갓 이 그리워지는 요즘 그가 지엇다는 詩 한수를 살펴보겠읍니다^^누각 안에는 그 외에도 여러분들의 詩등이 붙어 있었으나 거의가 세월과더불어 지워지거나 알아볼수 없는 상태였읍니다.
해석이 어려우니 아래 한글 번역판을 보겠읍니다.
"평생에 여가가 없어 이름난곳 못왔더니 백수가 된 오늘에야 이곳 안양루에 올랐도다"
김삿갓같은 분도 평생에 여가가 없었다니.. 참 믿기지 않는 글입니다.
그럼 허구헌날 일에 목매고 있는 우리들은 도대체 무슨 여유로 이름난
곳을 간단 말 입니까.
"백년동안 몇번이나 이런 경치구경할까.. 이제 좀 경치를 볼만..하니 세월 무정하게 나는 이미 늙어 버렸도다!! "
참으로 가슴을 칠 통탄할 일입니다. 천하를 주유한걸로 알려진 인물도 저리 말할진대
우리 인생이 결국 천지간에 헤엄치는 오리같은 신세, 가는 세월 에 속절없고 오는 세월에
대비가 안된 연유입니다. 더구나 시간과의 싸움으로 살아 간다해도 과언이 아닌
개국약사들의 오늘의 현실이 가슴을 찌릅니다.
실제 김삿갓은 54세로 생을 마감했다지요!
부석사가 왜 부석사인가를 말해준다는 떠있는 돌을 보며다시 안양루를 지나 아래로 내려옵니다. 가까운 곳에 소수서원이 있었지요.주세붕 풍기군수가 세 웠다든가..한때 영남의 수재는 모조리 이곳에서공부하고 국가요직을 두루 꿰 차게 되었다는 우리나라 사학(私學)의 원류입니다.하바드대학보다 훨신 앞선 사학이란 연유로 얼마전 하바드대학 총장이이곳을 방문했었다 하는군요. 그소수서원의 뒷뜰엔 지금도 소나무가 그 옛날 인재들이 그렇게 자라듯 울울청청 여전히 자라고 있었읍니다.
(소수 서원의 뒷뜰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