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에서 태백으로 향하는 아침 새벽길 -- 차가 단 한 대도 없다)
 
 영월 청령포 숙박 후 일요일 아침 찬공기를 가르며 태백을 향하는 도로는 한가롭기 그지없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3.1절이다.왕복 차량이 한대도 없는 길을 엊그제 군에서 갖 제대한
아들과 함께 달린다. 2년 가까이 군생활로 묶인 몸이 숨통이 트였으나 며칠후 복학을 하게되니
실상 아빠랑 함께 스키를 타볼 수 있는 기회는 오늘 밖엔 없는 셈이다
아침 기온은 영하 5도 정도, 이만하면 오전 스키는 탈만하다. 언제나 자동차로 꽉찬 길만
달리다 옅은 안개가 희미한 산중 도로를 달리며 어줍잖은 지난 스키 이력을 떠올려 본다.
 그렇게 시작된 스키는  맨땅에 헤딩식으로 부닥치면서 지산,양지,홍천대명,휘닉스파크,
성우리조트를 거쳐 용평까지 가게 되었고 난이도가 가장 높다는 용평 레인보우코스까지
오르게 되었다. 남들이 다 말리던 스키를 50줄에 배워 국내의 웬만한 코스는 다 타보게
된것이다. 허지만 실력은 여전히 기초 수준이어서 경사도가 높은곳에 오르
면 이를 악물고 안 넘어지려 애쓰며  간신히 내려오는 정도다.

 

( 하이원의 自然雪 스로프)
 
 하이원 카지노를 돌아 올라간 마운틴 코스는 무슨 세계대회가 열린다고 하여 한참을
돌아 밸리코스로 갔다.수속을 거쳐  나서니 여느 스키장과 크게 다른 건 없다. 자 이제부터
본격 하이원스키를 즐겨보자. 일부 인공설을 뿌려 슬로프를 만들어놓긴 했지만 중간
정도 내려오니 하이얀 자연설이 펼쳐진다. 갑자기 스키 속도가 줄어든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자연설만의 촉감을 천천히 느끼면서 미끌어져 간다.
 
 

 

(곤돌라에서 바라본 산 정상 부근의 참나무 숲)
 
 1340m 정상에 세워진 전망대에 서서 동서남북을 보면 온통 산! 산! 뿐이다. 강원도가
산이지만, 진짜 한국은 산악 국가임에 틀림없다. 평지가 산에 비해 너무 적은것이다.
국토의 8할 정도는 산이 아닐까..저거 빼고 나면 남는 평야라고 해봐야 정말 얼마
안되는 땅이다. 그렇다고 산의 쓰임새가 그리 큰것도 아니다. 바다를 막아 간척지를
만들어도 그 용도가 매우 제한적인 것처럼 산을 손대어 봐도 역시 그 용도는 너무
국지적일것이 뻔하니 그냥 생긴대로 두고 볼 수 밖에 없을거 같다. 작년 봄에 일본
후쿠시마에 가서 보니 거기도 저렇게 희뿌연 나무로 뒤덮여 있었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적절히 배합되어 있는 후쿠시마의 삼림)
 
 비록 작은 땅이기는 하지만 저렇게 가득차있는 나무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일까.
그냥 있는 대로만 있어도 자연은 충분히 제몫을 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숲이 없이 황폐한 이웃 중국이나 내몽고의 황사 바람은 얼마나 기가 막히는지..
 
 
( 하이원 밸리 최상급 코스)   
 
 저기 저곳을 이제 올라야 한다. 십 몇년전 한참 스키를 타러 돌아다닐 때는 겁도 없이 무조건
최상급 코스를 올랐었다. 이를 악물고 겨우겨우 내려오면서도
"이제 이곳의 제일 난코스도 다 올랐지.."
하는 일종의 자부심 같은걸 느끼는게 좋았다.
용평의 최상급 레인보우 코스는 영하 20도의 기온에다 강풍까지 동반했는데도 올랐었다.
중간에 어찌나 바람이 강한지 반쯤 내려와서 저절로 멈추기까지 했다. 귀를 잘못 덮는 통에
반쪽이 얼어서 혼나기도 했다. 그때 생각하면 저 정도는 별거 아닌 셈이다. 허나 벌써 십
몇년전 일이다. 더구나 아주 낮은 코스인 지산에서 넘어져 정강이를 스키날에 크게 베인후
부터 몇년간 스키를 접기까지 했으니,, 이제 실력도 그 시절보다 떨어지지 않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아들 앞에서 도전에 움츠리거나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
그래 한번 해보자~
 
 그러나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눈이 적고 얼음이 많은  상급자 코스에서 초반에
보기좋게 넘어지고 말았다. 빠른 속도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겨우 일어나 보니 허리가
엄청 아프다. 아! 또 오늘도 피니쉬를 말끔하게 장식하지 못했구나~ 언제나 마지막 한두번
코스에서 부상을 입거나 넘어지는 일이 발생하곤 했는데, 허나 어쩌랴~ 아직 미숙해서
그런걸!!
스키에서 넘어지는것은 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선수들도 툭하면 넘어지는걸 종종 볼 수 있으니 말이다~

 

      ( 밸리에서 마운틴으로 넘어가는 곤돌라에서 본 밸리하우스 전경)
 
 겨울엔 눈이 온다. 눈이 없는 동남아시아 인들은 사계절이 분명한 한국을 많이 부러워한다고
한다. 대만인들도 겨울엔 한국으로 스키여행을 많이 온다. 허나 눈이 오는것은 좋으나 쌓이면
우선 집에 돌아갈 걱정이 앞서는게 우리네 심정이다.
모든 잎새를 땅에 내려놓고 가지만 남은 나무에 하이얀 솜사탕처럼 쌓이는 눈!! 겨울의
최대의 낭만은 역시 눈이라 할 수 있다. 정말 눈이 많이 내린다는 일본의 북해도나 아오모리
지방을 한겨울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 깊이가 10미터에 이르는 다테야마(立山)의 눈길
도로는 보기만 해도 탄성이 나온다. 그러나 지난해 중국에는 폭설로 막대한 인명
재산피해가 났었다.
눈.바람,비,불, 어느것도 과하면 재앙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적절한 자연은 그 자체가
축복이다. 그 축복을 제때에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것 또한 행운에 속할듯하다.
 

 

 

(하이원 정상에서 아들과 함께)  
 
 간신히 허리를 추스리고 歸路에 오른다. 영월 제천을 거쳐 충주 앙성으로 향한다. 제천의
박달재는 예전엔 돌고돌아 한참을 걸리던 곳이지만 이젠 몇분이면 터널로 통과한다. 박달재
정상에서 목을 축이고 가던 길을 계속하던 지난날이 오히려 그립다. 박달재의 전설이며 그런것을
읽어보곤 했었는데,
박달재를 지나면 이제 산세가 완연히 작고 아담해진다. 여기서 장호원까지 비슷한 산세를 이룬다.
그 마지막 즈음에 앙성 탄산온천이 있다. 물을 직접 먹기도 하는데 몸에 매우 좋다고한다. 삐끗한
허리도 좀 풀겸해서 온천을 들어간다. 냉온탕을 반복하며 몸을 풀어본다.
아! 여기 와 본지가 얼마만인가?
전에는 걸핏하면 겨울 온천하러 들르던 곳이다. 온천 후 뒤로 돌아 남한강 상류로 돌아가면
무성한 갈대밭에 들새 소리가 하늘로 퍼지던 곳이다.
웬지 인심도 후덕할거같고 음식맛도 매우좋은 곳이다. 온천과 산과 골프장과 과일이 풍부한
곳이 충주지방이다. 은퇴후 지내기 제일 좋은곳이라 추천되는 곳이 바로  이 주변이다. 
(충주 앙성온천 부근의 산세)  
 
 이제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하이원에서의 어설픈 식사 탓일게다. 멀지않은 장호원
근처 고갯길에 외할머니집 이라는 두부 전문식당이 있다. 수년째 단골로 가던 곳인데 너무
오랜만에 찾다보니 근처로 옮긴줄 모르고 원래 있던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래도 두부 전골을
아들과 함께 맛나게 먹을 수 있었다. 고향동네인 일죽을 천천히 거쳐 백암으로해서 올라 왔다.
밥을 한그릇 더 주문해먹은 아들은 너무 배가 부르다며 결국 백암의 약국에서 소화제를
한병 사 먹었다.
산수유가 망울을 터뜨리는 춘삼월 첫날의 하이원 스키는 이렇게 마무리가 되어
기억속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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