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트를 처음 본 건 초등학교 4-5 학년쯤이다.
당시 대부분은 썰매라는 걸 타고 겨울을 즐기고 있었다.
썰매 밑에는 가느다란 철사부터 굵은 철사 심지어 내 썰매는 아버지가
일제강점기에 놓였던 시멘트 철길을 도끼로 깨서 얻은 철근을 썰매
밑에 깔았다. 그러니 그 굵은 철근이 제대로 속력을 내줄 수 있었을까?
이리 미끄러지고 저리 미끄러지고 영 썰매로써는
불합격 점수였으나 아버지가 힘들여 만들어 주신 거라 애지중지하며
자랑스럽게 타곤했다.
그뿐인가?
이 멍텅구리같은 썰매는 좌우 전후 방향도 없이 쉽게 미끄러져
수시로 썰매에 선채로 뒤로 나자빠지기를 잘해 얼음판에 뒤통수를
와장창 부딪치는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때 부딪치지만 않았어도
내 머리는 아마도 훨씬 더 성능이 좋았을게다. 그런데,
좀 뭐가 있는 애들은 스케이트 날을 어디서 구해서 썰매에
붙였는데, 이게 그중 제일 잘 나가고 빠른 썰매였다. 속도 경쟁에서 늘
그런 썰매가 압도적이었다. 그게 또 항상 부러웠었다.
그러니 늘 그 빠른 속력을 내게하는 원천인 스케이트라는 게 궁금할 수밖에~
서울 가서 유학한다는 윗동네 형이 겨울방학이면 내려와 예의
그 스케이트를 꺼내 아주 자랑스럽게 폼을 잡으며 논 중앙에 자리 잡은
커다란 웅덩이 빙판에서 혼자 쉭쉭 속력을 내며 달렸다.
거참~ 저게 뭐여? 아! 저거이 스케이트라는 것이구나!
스케이트를 다 타면 케이스에 챙겨 윗마을로 돌아갔다.
음 스케이트~~
궁금하기가 이를데 없었지만 가서 한번 자세히 들여다볼 숙기가 없었다.
서울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을 때 난 그 스케이트가 생각났다.
용돈을 아껴 청계천으로 스케이트를 사러 갔다. 은빛이 찬란한
스케이트 날을 보는 내 가슴은 크게 설레었다.
주인이 골라준 세이버인지 전승현인지 아마도 세이버였을거다.
스케이트를 사서 기분이 째질 듯 집으로 돌아왔고 며칠 후 곧바로
노량진 한강 철교 아래까지 버스로 달려가 스케이트를 타 보기 시작했다.
꿈에 그리던 스케이트를 그것도 한강철교 아래서라니~
그러나 초보라 실력도 없었고 겨우겨우 얼음판을 도는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스케이트 구두 안쪽으로 나사못이 들어와 있는 불량
제품이라 발이 아팠지만, 교환 같은 거는 엄두도 못 냈고 그냥
스케이트만 탈 수 있어도 감지덕지였다.
그러고는 동네 논두렁을 막아 만든 스케이트장에서 몇년간 타다가
스케이트는 차차 마음에서 사라졌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당시 1960년대 말에서 30여 년이 흐른 1990년 초쯤엔
스키로 변신을 했다.
스케이트와는 달리 스키는 높은 데서 쭈욱 내리 달리는 호쾌함이
있었으나 곤돌라를 타야 했고 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게 여간 불편
한 게 아니었다. 나이 40이 넘어 스키를 배우는것도 만만치 않아
넘어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해야했고 급기야는 정강이를 10cm 이상
스키날에 찢기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늘 빙판을 내 맘대로 휙휙 달릴 수 있는 스케이트
가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맘뿐이었다.
혹시나 해서 검색을 해 보니 최근 스케이트는 20만 원에서 30만 원 정도면
구입할 수는 있다. 약국 근처에는 용덕 저수지라고 있는데 요즘처럼
강 추위가 계속되면 아마도 아주 멋진 빙판이 되어 있을 것이다.
거기서 스케이트를 한번 타 보고 싶다. 예전 원천 유원지가 개발되기
전에는 분당에서 출퇴근을 할 때마다 늘 거기 빙판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걸 상상해 보기도 했다.
더 늦기 전에 한번 다시 시도를 해 볼까?
아닌가? 그냥 스케이트는 이제 마음속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겨두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