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들어가기 전 아마도 6세 정도..작은 누나와
함께 찍은 사진,, 돐 사진이 없는 나의 생애 최초의 사진이다.
국민학교 이야기를 한번 짚고 넘어가 보도록 하자. 아랫 마을 큰 동네도
겨우 가 보던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을했다. 누나 손에 이끌려 2km 정도
떨어진 학교를 간 날이 입학식이었다. 사실 학교를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가야한다니 이끌려 간 것인데~
그날 비가 왔었다. 축축하고 음습한 중에 교실이라고 찾아갔고 그리고
뭐라뭐라 설명을 잔뜩 듣고 다시 집에 돌아온것이 기억날 뿐이다.
당시엔 다들 그랬지만, 한글도 다 학교에 가서 깨우쳤고 학교를 가고 오는 五里
안팍의 등하교 길은 그냥 놀이터의 연장일 뿐이었다. 봄이면 비를 맞고 여름이면
하교 길에 미역을 감고,,가을이면 고구마를 캐어 먹고,,겨울이면 얼어 붙은 개울을
미끄럼 타고 댕기는 재미로 학교를 오갔다. 물론 고구마는 등하교 길에 있던 우리
밭에서 캣다. 사실 그 시절 1950년대 시골서 학교 다니던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을것이다
공부? 는 솔직히 국민학교 6년간 집에서 단 한 차례도 책을 펴서 예습 복습을
해본 기억이 없다.책가방은 집에 오는 즉시 방에 팽개쳐 버리고 오로지 들로
산으로 새집 찾고 미역 감고 물고기 잡고 이런저런 나물 뜯고,, 버섯 따러
댕기고,솔방울 채취, 영나무 하기,싸리 훓어 오기,등으로 바빴다.
저렇게 밖으로 나 돈 것은 집에서 딱히 할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책을 펴본 건 여름 겨울 방학숙제 할때 뿐이었다. 그것도 마지막 날 간신히
곤충 채집이며 과제물 하기 등을 시간에 쫒겨 겨우겨우 땜빵하기 일쑤였다.
그니깐 애초부터 나는 학교 공부 같은것엔 그닥 취미가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2학년인가,3학년이 되니 주변에서 내가 공부를 잘한다고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공부를 잘한다, 못한다에 별 관심도 없었다. 이렇듯 학교 공부에
대한 집착같은게 별로 없던 내가 하나 잘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집중하는
능력이었다.
수업 시간에 절대 한눈 안 파는것.. 그리고 한번 들으면 좀체로 잊어 먹지 않는것,,
뭐, 결국 그게 공부 좀 하는 비결이 되긴 했겠지만,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나는 예전 국민학교 시절의 기억이 많지 않다. 산천을
헤매며 놀던 기억은 많은데 비해 학교 생활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 요즘
시골 동창을 만나면 그들은 내가 모르는 당시의 학교 일을 아주 세세하게 잘
기억하고 있음에 나는 놀라곤 한다.
암튼 요새 애들의 선행 학습이 어떻고, 유치원에서 한글을 떼는 건 기본이고
영어까지도 척척 하고, 노는 건 오로지 컴퓨터 게임이고,이것이 아이들의
창의력을 좀먹는 원흉이라고 하는데,,한국에서 더구나 공부 잘 한다는게
인간의 무한 창의성과 심미안을 희생하며 달성하는 반대 급부적인 성격이
강함을 어느정도는 인정해야할 터인데 뭐든 예전이 좋았다라고 말하기는
적절치 않지만, 이 시대는 중요한 걸 망각하고 있는게 확실한듯하다
물론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때와는 상황이 너무도 변해서 뭐 꼭 그때가
최상 이었다고 말할수는 없을것이다. 더구나 공부 잘하기와 감성의 무한
개발이 동시에 가능했던 그 시절에 나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벼포기 하나,솔잎 하나,미류나무의 잎새 하나,고구마의 새순이 어떻게
나오는지, 아침 이슬이 맺힌 풀잎들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마음,
이런 것들은 결코 학교 공부에서 배울 수 있는 건 아니다.
가난했지만 공부에 목숨걸지 않아도 좋았던
그 시절을 나는 지금도 가슴이 시리게 회상해 볼 뿐
아니라 너무도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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