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개업할 당시 모습 1987

  

회사를 그만 두기 두어 달 전 부터 일요일이면  약국 할 만한 곳을 찾아 다녔다. 수도권

인근을 샅샅히 다니며 어떻게 약국을 할 것인지를 생각했다.수원 부천 인천 성남 안양 등등,

그러다 결국 수원의 한 곳을 계약을 하게 되었다.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인

장소였는데 그 상가 주인은 서울 강남에서 약국을 하는 여약사였다. 영남대를 나온 박모 약사,

그녀는 이미 완전히 약국이 궤도에 올라 슬슬 부동산 투자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최종 부천의 약대 동기생이 운영하는 금마 약국에서 1주일, 근처 중동 약국에서 1주일

약국 실무를 익혔다.  약국 시작하는데 총 2주일의 현장 실습을 끝으로 마친 셈이니 이 얼마나

부실한 준비인가? 하지만 당시 회사를 다니다 중도에 개업을 한 약사들은 거의가 그런 정도였다.

물론 회사 10년 다니며 익힌 약물의 물성 등 약학지식은 기본이 갖춰져 있었지만 아무래도

약국 실무는 턱없이 부족했다.  

 

 

 1987년 5.27일  드디어 약국을 개업하기에 이르렀다. 제약회사를 10년을 채웠으나 

실제 약국에 대해  준비한 건 적었으니 내심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었다. 어떻게 약국을

해 나갈 수 있을까~ 걱정만 앞섰다. 인생의 여정에서 차근차근 자기의 갈 길을 예측하고

꾸준히 준비해 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때그때 상황에 직면하여 갈 길을 틀어가는

사람도 있으니 나는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얼핏 보기에 좁은 공간에 갇혀있어 답답해 보이는 약국 생활~ 그 길을 택한 나는 앞으

로 어떻게 일을 해나가야 할지, 막연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딱히 어디 가서 물어

보고 조언을 구할 곳도 별로 없었다. 그냥 먼저 개업한 친구들이 유일한 물음의 상대

였다. 

 

 1987년 당시만해도 약국에서는 직접 환자에게 조제를 해줄 수가 있어서 나는 선배들이 

그간 노우하우로 작성한 두툼한 참고용 노트를 친구에게 빌려서 몽땅 필기를 해 나갔다.

볼펜 글씨에 재미가 없던 나 보다 또박또박 잘 쓰는 집사람에 의해 그 노트는 완성되었

다. 개업 초기엔 그 노트가 꽤 힘을 발휘해서 증상을 잘 모르는 환자가 오면 속히 노트를

펼쳐서 처방을 보고 응용하곤 했다. 그래도 환자에 대한 임상지식이 워낙 부족한지라 나는

틈만 나면 그런 강의를 하는 곳을 찾아 다니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배울수 없었던 임상 지식, 그리고 한방 지식을 위해 찾아다닌

강의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1988년 한 겨울이었다. 당시 서울 종로 관철동에서 한방 강의를 수강하던 때이다. 새벽

 4시 정도에 일어나 수원에서 종로까지 도착하면 강의는 6시 정도부터 시작되어 10시 경에

끝났다. 추운 겨울이어서 중고로 장만했던 포니2는 시동이 잘 안 걸릴때가 많았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새벽부터 앵앵 거리는 시동 거는 소리를 낼때가 많았다. 당시는 지하

주차장 같은거는 꿈도 꿀수 없던 대이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에 수원 지지대 고개를 넘어 가는데 갑자기 차의 시동이 꺼지고 말았다.

할수없이 고갯길 내리막을 천천히 시동이 꺼진채로  내려가 의왕시 버스 차고지 앞에 차를

세우고 버스 회사로  들어가 도움을 요청하니 여기선 안 되니 다른 정비소로 가라 한다.

버스 기사가  쫓아 나와서 간신히 시동 거는 걸 도와주어  차를 과천의 어느 정비소에 맡기고

버스를 타고 강의실에 도착하여 강의를 마치고  다시 내려와 차를 찾아 돌아온 적도 있다. 

 

 한방공부에 임상공부에 정신없이 준비를하며 90년대로 흘러 들어갔다. 그동안 공부한것

도 한방,양병학, 홍채학, 하정헌 자연건강요법,서울약대 임상약학, 옵티마,온누리 등등 

실로 헤아릴 수 없을만큼 여러 과정으로 같은 강의를 몇번씩 공부를 해왔다.특히 그중에 

한방에 쏟은 시간과 정열이 막대한데 투입된 노력에 비해 성과가 제일로 없는게 한방

이다. 물론 그것도 내 탓인 셈이지만^*

 

내가 골프를 잘 치니 공부는 안 하고 늘상 필드만 댕긴줄 아는 친구들이 많은데 실은 그

렇지 않다는 점이다. 약국 개업후 26년이 흐른 지금까지 할수 있는 공부는 거의 다 해왔다

는거, 임상에서의 약학은 완전  백화점 식이어서 어느 분야도 놓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단지 문제라면 한방이면 한방, 임상이면 임상, 양병이면 양병,자연건강 식품이면 식품, 한

분야를 집중으로 파고 들지 못한 것인데 각 분야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이 분산된 노력을

할 수 밖에 없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적어도 2,000년 의약분업 전까진 최대한 푸로페

셔널한 약사가 되기위해 정말 몸부림을 치며 공부를 했었다. 분업 후에는 나 뿐 아니라 대

체적으로 약사들의 공부 열기가 1/10이하로 줄어들고 말아 큰 아쉬움으로 남게 되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