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3학년때 처음 그분의 존재를 알게되면서 부터 나는 한참 동안을 함 선생님을 따라다니게

 되었다. 당시  꼬집어 낼수는 없지만 뭔가에 매우 목말라하던 나에게 혜성처럼 다가온 분이 바

  함석헌 선생님이시다. 

 

그분의 대표적 저서인 [뜻으로 본 한국 역사] 를 읽으며 우리 역사에 대한 전혀 새로운 안목을 

갖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도저히 배울 수 없는 인생과 역사를  배우며 전율을 느꼈다. 함 선생님이 

저술한 여러 책들에 심취하면서 월간 [씨알의 소리]의 애독자가 되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의 언

론말살 정책으로 그 어느 누구도 한국에서 바른 말을 하지 못하는 세상이었는데 오로지 바른 말을

 하는 유일한 곳은 바로 [씨알의 소리] 뿐이었다. 정간과 폐간을 밥먹듯하며 잡지는 겨우겨우 연

명을 해나가고 있었다. 

 

 신촌 퀘이커의 집을 드나들면서 간혹 외국의 소식도 들을 수 있었고 김대중 당시 총재의 얘기며

이런저런 정치적인 얘기도 접할 수 있었다. 사실 함선생님은 일제시대부터 민족의 독립정신을 일깨

우기위해 부단히 노력하신 분이고 그 자신이 엄청 독실한 기독교인 이셨다. 유영무 김교신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며 일제의 박해에도 꿋꿋히 버티신 분이다. 해방후 피폐한 한국 기독교계를 강하게

비판한 글 [ 한국 기독교 무엇을 하려는가] 란 책 때문에 기독교 계로부터 이단으로 몰리게 되고 

결국은 그로인해 기독교를 이탈하여 퀘이커라는 교로 바뀌게 된다. 기독교계를 비판했다고 이단

으로 모는 한국 기독교계야 말로 역으로 구제하기 힘든 곳은 아닐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라는 책을 보면 이나라 백성들이 얼마나 생각이 짧은지를 절감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없어 보인다. 나는 그 이후로 나름 혼자 생각하는 

연습을 자주하게 되었고 모든 인생사, 사물을 보는데 있어 내 나름의 주관을 일정부분 갖게 되었다. 

 

[한국 기독교 무엇을 하려는가], [인간혁명], [죽을때까지 이 걸음으로], [새시대의 전망], 

[수평선 너머] 등의 저서를 탐독하였고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원본격인 [ 성서적 입장에서 본 한국역사] 

 를 약대 도서관에서 발견하여 사실은 그책을 가져오고 말았다. 지금 그책은 종이가 바스러져

 펼쳐 보기도 아렵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38년 전의 일이다. 

 

영어본인 인도 힌두교 성전 [바가바드 기타] 는 모임에서 공동으로 한 페이지씩 공부를 하였고

  칼릴지브란의 [사람의 아들 예수] 란 책은 함선생님 특유의 통찰력으로 번역을 하셨다. 장자와 

노자도 함께 공부를 하였으나 난 시간이 부족해서 장자 일부만  명동 가톨릭 회관에서 공부를

 했었다.

 

 원효로 산 70번지에 위치했던 선생님의 자택엔 꽤 큰 규모의 식물원이 있었고 그곳에서 

늘상 식물들을 키우고 계셨다. 

 

 

흰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서울시내를 휘적휘적 긴 수염을 휘날리며 활보하시던 

함석헌 선생님!! 

 

성자의 모습을 간직한 한국의 간디라 불리던 선생님!

오로지 한 평생을 독재와 불의에 맞서 싸우시며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하신

우리시대 최고 최대의 참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을것이다.  

 

비록 그분과 같은 삶을 이어 가진 못했지만 나는 단 몇년간 이지만 함께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쫓을 수 있었던 걸 큰 영광이자 기쁨으로 여기고 있다.

선생님 서거 후 사실 뚜렸한 시대의 지도자를 모시지 못하는 한국 사회는 

불행하다 할수 있을 것이다.

 

얼마전 김수환 추기경님이 타계하셨지만 추기경님과

 더불어 뚜렷한 한국 현대사의 정신적 큰 어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1974~5 년 경으로 추정, 천안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겨울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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