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담삼봉 2017.9.3

 

 

 

'타타타'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그래 그거야"라는 뜻이다

이 노래를 작사한 양인자가 인도를 여행하던 중 이 의미를

알게되어 가사를 쓰게 되었고 그녀의 남편인 김희갑이 곡을

붙여서 노래가 만들어 졌으며 이 곡을 김국환이 1991년에

불러 공전의 대 히트를 기록함

 

 

 

 

사람이 한 사람을 이해하고 그 이해의 바탕 위에서 서로 긴밀히 소통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렵습니다. 우선은 가장 가까운 혈육인 부모자식 지간이나 부부 지간에도

아주 긴밀한 소통이 거의 안 되는 경우가 다반사 니까요.

 

심지어는 마누라는 이해 할려고 하지 마라란 말이 있을 정도이니 인간의 깊은 내면은 전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단 말입지요. 사실은 남이 아닌 나 자신을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지도

불투명 합니다.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로 시작하는 노래도 있지요.

바로 저 위의 타타타 입니다. 

 

그러면 걍 모르는 채로 사는게 신상에 이로운 거냐? 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남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이 살아온 길을 들어 보는 겁니다.

어떻게 어린 시절을 보냈고 뭘 하며 살았고 무엇에 중점을 두고 살아 가는지,

무슨 어려움을 겪었고 무슨 성공과 실패를 했으며 무엇에 목숨을 걸 만큼 열정적인지 등등 ,

을 알고 나면 훨씬 그사람이 명료하게 보이는 건 사실일 테니까요.

 

그렇지만 그것이 사실 가감없이 진솔해야지 임의로 자기 주관대로 근사하게 부풀려 말하면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긴 하지요^

 

어릴적 친구가 편하고 친근한 것은 그의 성장 과정에 직 간접적으로 함께한

말하자면 그를 원초적으로 안다는 느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근 40년 전에 함석헌 선생님을 모시고 천안 부근에서 겨울 워크샵을 한 적이 있읍니다.

그때 한 10여명 정도 다양한 학생들이 모였는데,1박 2일인지라 밤 시간에 모여 앉아

하나씩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말하는데,다들 뭔가가 있는 한 펀치 하는 얘기였지요.

 

헌데 누군가 뒤에서 이렇게 말을 했읍니다.

 

" 에휴, 난 뭐 저 양반 얘기 들으니 도무지 말할 용기가 안 나네. 뭐 말할 건덕지가 있어야지.

난 너무 평탄하게 인생을 살았나 봐유"

 

그러고 내가 말할 차례쯤 되었는데, 갑자기 무슨 해프닝이 벌어져 말할 기회를 얻지 못했지요.

아.. 나도 좀 할 말이 있는데, 아쉬웠읍니다.

 

40년 전 얘기를 예로 든 이유는 그 시간 이후 단 한번도 그와 같은 자신의 인생 역정을

얘기하는 모임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남과 나를 이해하는 소통의

틀을 만드는데 너무나 소홀하고 또 무심합니다.

 

어찌 보면 남에게 나를 드러내 놓고 말할 그 무엇이 별로 없는 것도 한 원인이 되지 않나

생각은 듭니다만. 그렇다 해도, 누구든 자신의 인생을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 얘길 뭐하러 세세히 까발려? 이러곤 하는데,천만에 이지요. 나를 까발리지 않으면 

누가? 어떻게 나란 존재가 남한테 알려질 수 있단 말입니까?

 

아니 남들에게 왜? 나를 이해시켜야 한단 말이요? 난 그런게 필요 없어유^이럴 분도 더러는

계실듯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왜 우리가 부모님 형제를 만나면 맘이 푸근하고 고향 집에 있는것 같은 평화와 행복을 느낄까요?

 

그것은 나를 가장 잘 아는 바로 그 혈육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사실은 인간은 누구나 남이

나를 알아 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면이 있지만 나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데 어찌 나를 알아줄

수가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허나, 뭐 씁쓸했던 과거의 인생 살이를 구태어 끄집어 내어 공개하기를 꺼릴 수도 있긴 합니다.

나의 과거는 초라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 극복하고 멋지게 부활했다~ 이럴 경우는 다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게 없다^ 이러면 좀 그렇긴 하지요!

 

그러니 이런 주제도 누누나 공감하는 100% 의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이 말하는 성공한 듯한 인생일지라도 별로 배울것이 없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실패한듯 한 인생이지만 배울것이 많은 인생도 있는법입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란 말이 있읍니다. 마는 실은 사랑에 앞서 이해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더 앞서야 하고 현실적입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누군지 도통 알 수 없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던가요?

 

자신의 정체를 좀체 드러내지 않는 크레물린 같은 사람과 같이 가고 싶던가요? 그리고 그런 사람을

사랑할 수는 있을까요?  

 

아무리 나와 친한 죽마고우라 할지라도 실은 그가 나의 인생 전반을 다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마찬가지로 내가 그의 인생 전반을 세세하게 다 알고 완벽한 공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저를 잘 모르는 외부인이 내 블로그를 들어와 찬찬히 읽어 보면 훨씬 나란 존재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인생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블로그를 만든 것도 다 그런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잘 이해시킬 수 있도록 노력함이 곧 남도 잘 이해할 수 있는 첩경입니다. 사회의 불통을 탓하기

전에 나를 둘러싼 자물통부터 열어 제끼는 것이 먼저입니다. 솔직히 부부 지간에 자식 지간에 뭘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하는지 곰곰 생각해 보십시다^

의외로 별로 이해의 폭이 넓지 않음을 쉽게 인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너를 아는 첩경은 바로 내가 나를 너에게 알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또한 너도 너란 존재를 나에게 알리는 소통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그 첫 발자국이 바로

나란 존재의 살아온 역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란 존재의 신비감을 부풀리는 것이 나의 존재 가치를 높이는 일은 결코 아니며  

그것은 마치 알에서 깨어 나오지 않으면 세상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부단히

나라고 하는 알에서 깨쳐 나오기를 힘쓸 필요가 있다~ 

뭐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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