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세리 성당

  1990년대 후반 그러니까 의약분업이란게 생기기 전이었다. 한국의 약국가는 이제 곧 다가올 의약분업이란 커다란 변화의 목전에서 마지막 대형화의 몸부 림을치고 있는 중이었다. 우후죽순격으로 여기저기 약국은 대형화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소형 약국들은 몸살을 앓고 있었다.

당시 양평에서 중급이상 규모의 대형약국을 운영하고 있던 시골 중학동창의 약국에 가끔씩 바람을 쐬러 다니다 보니 나도 좀 큰 약국을 한번 해보고 싶은 맘이 들었다. 거기다 어느날 저녁 무슨 약인가를 사러온 동네 아주머니와 얘 기도중 뭔가가 언짢은 말이 오갔는지 좀 지난 밤에 남편이란 사람이 약국에 와서 왜 그런 말을 집사람에게 했냐며 따지기 시작했다. 물론 약국 하다보면 그런일은 더러 일어나는 일상사이긴 하지만 웬지 그날은 참 기분이 안 좋았다. 이거 동네에서 조그만 약국이라고 하다 보니 별거 아닌걸로 비추어 지나보다 . 그런 생각도 들고 아무래두 이젠 뭔가 변신을 해야할 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곰곰이 생각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대형약국을 해보기로 맘을 먹게 되었다. 대형약국을 할려면 몇가지 선결해야할 과제가 잇었는데 나는 사실 그런걸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 그 첫째가 약품의 사입과 직원관리, 매출 규모의 적정화 등인데 그 어느것 하나 제대로 연습할 시간도 없이 달려들게 되었으니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것이 꼭 약국 처음 개업하던때와
어찌 그리 똑 닮은 꼴인지~ 허나 뭐 세상사 뭐는 충분히 연습을 하고 시작하는
게 있던가?

첫째 입지부터 문제였다. 장소는 큰 도시의 인접 마을이었는데 그게 문제의 시발이었다. 내가 구성면 경찰대학 입구를 본건 그 보다 몇년전 88cc에 골프 를 치러 갔다가 점심을 먹으러 그 동네에 내려왔을 때였다. 당시 그 동네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게 보였고 식당이란 식당은 꽉 들어차서 아주 번화한 동네로 기억이 되었었다.
그런데 마침 그 동네에 큰 평수의 약국을 임대한다는 광고가 약사공론에 올라 온게 얼핏 보였다. 나는 아! 그동네,,번화한 그동네,,란 생각이 뇌리를 스쳤고 그날로 달려가 앞뒤 안가리고 주인의 대리인과 가계약을 체결했다.

그런 다음 수원에 거주하는 동문들에게 그 장소가 어떤가 좀 봐달라고 연락을 했다. 몇이서 장소를 본 소감은 부정적이었다. 허나 한번 인식이 번화했던 곳 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힌 나는 좀체 생각을 바꿀 엄두룰 못내고 결국 그자리 에 실평수 60평,분양평수100평이나 되는 대형 약국을 개업하기에 이르렀다. 마 치 병목과 같은 그곳은 안으로 들어가면 꽤 큰 옛날식 동네가 펼쳐지는 곳이었 는데 그 입구에 들어선 대형약국으로의 접근성이 안좋았을 뿐 아니라 출퇴근 시 에도 그저 스쳐 지나는 자리지 쉬어가며 약국을 들르기엔 교통 여건등이 좋지 않았다. 결국 후방의 동네를 다 집어 삼킬듯한 인근에 유례가 없이 큰 약국은 매출이 처음부터 그리 신통치 않았다. 멋지게 인테리어를 해서 약국에 들어서면 정말 근사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막상 약국 운영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거기다 판매원이라고 둔 직원이 일요일이면 부산집으로 갔다가 월요일 오후에 도 착하는 바람에 바쁜 월요일을 비우기 일쑤였고 이래저래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 다. 나는 수원에 원래 있던 약국을 후배에게 넘기고 대형약국만 전념하긴 했지만 항상 그곳도 염두에 두고 함께 관리를 해야했기에 몸도 마음도 너무나 지치기 시작했다.

결국 1년을 딱 채운 시점에서 약국을 넘기고 말았다. 아주 많은 투자를 한건 아 니지만 모양새 좋게 시작한 대형약국은 이렇게 어설픈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한 동 안은 그곳으로 차를 타고 지나기도 싫었으니 얼마나 맘 고생을 한지를 짐작할만한 했 다. 생각해 보면 판단 착오에 무모한 자신감 그리고 세심한 입지 분석력없이 시작한 일이기에 모든게 내 탓이었다. 이후 대형약국을 다시 시작할 엄두도 못냈을 뿐 아 니라 의약분업의 갈림길에서 자리를 박차고 새 환경에 적응하는데도 적잖이 걸림돌 이 되고 말았다. 분업이후 대형약국들이 대부분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마땅한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고 있는게 작금의 현실인거 같다. 특히 분업후 일반약품의 구 매 비중이 현저히 낮아진것도 그 이유가 될것이다. 약은 처방에 의해서만 먹어야 되는걸로 오해를 한 측면도 강하고 그것이 의약분업의 예기치 않았던 역기능의 하 나로 오늘날 자리 매김하고 말았다.

허나 세상 모든게 그렇듯 대형약국도 시스템 하나로 척척 움직이는건 아니다. 큰 만큼 내부에 복잡한 문제가 다수 발생하게 된다. 특히 종업원 문제가 정말 만만치 않게 된다. 툭하면 나가고 들어오고 무단히 결근하고 등등 약국의 분초를 다투는 환경에서 이런일은 참으로 그냥 지나가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냥 맡겨놓고 약국장 은 유유히 관리나 하면 된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분 업하에서는 크게 벌으나 적게 벌으나 약국장 개인의 수입에는 많은 차이가 나지않는 기이한 환경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제 어디에도 노력한 이상의 많은 열매를 가져다 주는 약국은 없지 않을까..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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